이혼하려고 결혼했습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71 - 챕터 980

1699 챕터

972화

하준은 아무 말 없이 여름을 안고 별장으로 서둘러 돌아갔다.집사가 곧 의사를 데리고 왔다. 상처가 깊어서 소염 주사를 놓아야 했다.여름은 꾹 참았다. 하준만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준은 너무 마음 아파하며 자책했다.“앞으로는 해변에 산책 갈 때 절대 당신만 놓고 자리 비우지 않을게.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떡해?”여름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매일이 감옥 같은 생활인데 하준이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나 안 지키나 다 똑같았다.----밤이 되자 여름은 발코니 소파에서 멍하니 있었다.답답했다. 휴대 전화도 없고, TV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쇼핑할 데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으니 매일이 그저 책을 읽거나 이러고 멍때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심심하지?”하준이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여름이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심심하면 한 번 할까?”그러더니 여름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는 잠옷을 벗겼다.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여름은 거부감이 들었다.“다리 다쳐서 아파. 그냥 가만 좀 두면 안 돼?”잠깐 죄책감이 스치는 듯하더니 그래도 기어코 말했다.“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생리 후에 며칠은 임신이 잘 된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 걱정하지 마. 자기 상처는 내가 하나도 안 건드릴게.”그러더니 하준은 바로 격렬하면서도 부드럽게 여름에게 키스했다.다치기 전에도 힘으로 이길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아프기까지 하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하준은 굳은 결심을 했으니 절대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최고의 가임기는 지났지만 아직까지 안심할 수 있는 날짜는 아니었다.하준의 아이를 가질 것을 생각하니 공포였다.“쭌, 제발, 나한테 이러지 좀 마.”여름이 애걸하듯 하준의 어깨를 잡았다.하준의 몸이 굳었다. 여름이 언젠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그런데 여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 어쩐지 너무 익숙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하준을 그렇게 불렀다.“미안해. 정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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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화

第973章추명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심희철 팀에서 곧 새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다면서?”최양하의 눈이 커졌다. 속으로 탄식했다.‘역시나….’그 일은 추동현이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추명택과 추성호가 직접 나선 것이 좀 이외였을 뿐이다.최양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예전에는 추동현인 세상일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예술만 추구하는 고아한 사람인 줄 알았다. 3년 전 최하준의 정신 병력을 들춘 것도 그때는 추신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했다.그러나 이제 보니 자기가 아버지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삼촌, 전에는 성호랑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형님은 제가 실험실 쪽 일에 손대게 하는 그런 성미가 아니에요.”최양하가 조곤조곤 설명했다.“옛날은 옛날이고.”추성호가 웃었다.“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 최하준은 이제 국내에 있지도 않은데. 일단 제품이 개발되면 홍보도 시작할 텐데, 네가 부회장인데 여러 가지 결제 서류에 사인도 하게 될 거 아냐? 그런 과정에서 정보 좀 빼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최양하는 찻잔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러면서 눈을 내리깔아 자신이 눈빛을 감추었다.솔직히 추신에 대해서 너무나 실망했다.젊은 세대가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는 것도 기분 나쁘지만 추신의 탐욕에 질리는 것도 있었다. 국내 2위의 재벌 그룹으로 자기 힘으로 개발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애써 쌓아 올린 연구 개발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행위에 구역질이 났다.물론 자기가 그렇게 고상한 사람도 아니고 자기도 FTT에서 자리를 얻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쓰기도 했지만 선은 넘지 않았다.아무 말이 없는 최양하를 보면서 최명택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양하야, 네가 성은 최 씨지만 우리 핏줄 아니냐. 사실 따지고 보면 너도 추신 사람이지. 솔직히 FTT는 너희 외가 아니냐? FTT에서 널 어떻게 취급했는지 생각을 해 봐. 똑같은 최란의 아들인데 최하준은 모든 걸 손에 쥐고 있잖니?”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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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4화

“생각할 게 뭐….”추성호가 벌떡 일어섰다.“양하에게 시간을 좀 줘라.”추동현이 경고하듯 말을 끊었다.“양하야, 잘 생각해 보렴. FTT의 새 반도체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나오면 FTT는 이제 세계 일류그룹이 된다. 그러면 모든 영광은 최하준의 것이야. 그리고 너는 그저 일개 부회장이겠지. 지금 넌 FTT의 주식도 하나 없잖니? 앞으로도 그저 네 엄마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잖아?”“그리고 너희 엄마랑 최하준이 요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던데.”최명택이 유유히 덧붙였다.“나중에 최란이 보유한 주식이 네 손에 얼마나 들어올 것 같니? 하지만 네 아버지는 다르다. 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너 하나잖니?”최양하의 눈이 번뜩했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추동현이 웃었다.“좋은 소식 기다리마.”그러더니 일어설 차비를 했다.“아버지….”최양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물었다.“어머니가 알게 되면 얼마나 속상할지는 생각해 보셨어요?”최란이 추동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 왔는데 추동현은 FTT를 무너뜨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최란이 알게 되면 얼마나 상심하게 될 지는 뻔했다.추동현은 정색했다.“네 어머니한테 진 빚은 천천히 갚으면 된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한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그리고, 네 엄어마는 앞으로 FTT에 기대지 말고 남편인 나와 너에게 기대면 된다. 여전히 부잣집 사모님이야.”“내가 너라면 절대 망설이지 않아. 원래 자식은 아버지 성을 따르는 법이지. 너도 원래는 추 씨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추성호가 진지하게 말했다.최양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엄청난 갈등이 몰려왔다.다들 자리를 뜨는데도 모르고 계속 앉아 있었다.추동현 일행은 아래로 내려가 검은 세단에 올라탔다.추성호가 물었다.“삼촌, 양하가 우리를 도와줄까요?”“상관없다.”방금 전까지 온화하던 추동현의 표정이 냉혹하게 확 바뀌었다. 추명택이 훗하고 웃었다.“형님, 거 친아들에게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닙니까?”추동현은 의자에 길게 기댔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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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5화

찻집 위층.최양하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추동현의 말이 준 충격이 너무나 컸다.세차게 머리를 도리질 쳐보았다. 마냥 자신이 추동현을 돕는다면 최란은 분명 너무나 마음 아파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얼마나 실망하실지 뻔했다.식구들이 늘 자신을 공평하게 대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부족하게 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최하준이 자신보다 확실히 능력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만 언제까지 이렇게 최하준의 그늘에서 살 수만은 없었다.자신은 늘 최하준에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한참 갈등하는 중에 여울에게서 전화가 왔다.“아빠, 왜 나 안 데리러 와? 친구들은 다 갔는데.”최양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였다.“어, 금방 갈게.”가는 길에 최양하는 추동현의 어머니인 백원경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유치원에 도착하니 5시 반이었다. 여울은 입이 부루퉁해서 차에 올랐다.“삼촌, 아직도 엄마가 전화를 안 해요. 아빠가 엄마를 어디로 데려갔을까요? 이제 영원히 엄마는 못 만나요? 엄마 보고 싶은데.”그러면서 꼬맹이는 울려고 했다.“아니야. 아빠는 엄마를 둘만의 세상으로 데려간 거야.”최양하가 서둘러 달래는 말을 했다.“아마도 다음에 돌아올 때는 엄마가 너희 동생을 데리고 올지도 몰지.”“말도 안 돼.”여울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우리 엄마는 유진이 아저씨랑 결혼했는데 어떻게 아빠랑 동생을 만들어요? 그러면 안 되잖아?”최양하는 헛기침을 했다.‘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하지만 우리 형님이라면 돌아서 충분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위인이거든.’“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여울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했다.“삼촌, 우리 어디 가요? 집에 가는 길이 아닌데?”“추신으로 밥 먹으러 가자.”최양하가 말했다.“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저녁 먹자고 하시더라.”“아, 난 싫은데.”여울이 바로 살래살래 저었다.“난 안 갈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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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화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도 다른 사촌이나 조카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제는 여울이에게까지 그러다니.추동현은 말로는 자신이 보유한 추신의 주식 60%가 언젠가는 최양하의 것이 된다고 하지만 그 집 식구들이 여울이에게 하는 태도로 봐서는 전혀 자신을 아낀다는 느낌이 없었다.‘설마….그 말은 그저 날 써먹기 위한 미끼인지도 몰라.생각해 보면 그동안 아버지는 나를 신경 써준 적이 없잖아. 심지어 여울이가 손녀인데도 늘 데면데면했어.그런데 그렇게 많은 주식을 나에게 물려주려고 할까?’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나 추동현이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데 밖에 여자라도 있어서 아들을 숨겨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혼외 자식이라? 그래, 요원이가 누구일까? 난 이름도 처음 들어.’생각할수록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여울아, 삼촌이 부탁 좀 하나 할까?”최양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우리 여울이는 똑똑하니까 이따가 그 집에 가면 가히한테 요원이가 누구인지 한 번 물어봐 줘. 삼촌이 밤에 초콜릿 쏜다.”“알겠어요. 초콜릿을 봐서 억지로 한 번 들어주지.”여울이는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안 돼.”최양하가 특별히 당부했다.“알겠어요. 별거 아니지. 가희는 바보니까 그런 건 살살 꼬시면 물어보면 금방 말해줄걸.”여울이 으쓱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추동성희 본가에 도착했다.최양하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울이는 가희를 찾아가서 놀았다.가희는 추동현의 고모의 손녀였다. 추동현이 아버지 추지환은 동생과 사이가 좋아서 이웃해 살며 거의 정원을 서로 개방해 놓고 있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여울이 가희에게 다가가자 가희가 싫은 얼굴을 했다.“너 왜 또 왔냐? 내가 너 싫다고 했지? 너랑 안 놀아.”여울은 새침하게 눈알을 한번 굴리더니 주변에 어른이 없는지를 먼저 살폈다. 그리고는 조그맣게 물었다.“내가 너무 심심해서 그래. 같이 좀 놀아주면 안 돼? 이 퍼즐 언니가 다 맞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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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7화

“알았어. 나도 비밀 지키면 되는 거지?”여울이가 온순한 얼굴을 했다.“나랑 놀아 주면 이제부터 언니 말 잘 들을게.”“알겠어. 지금은 같이 놀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너랑 놀아줄게”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는 역시 어린 아기들은 바보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다.----그러나 여울은 저녁을 먹고 추동현의 본가를 나서면서 바로 가희의 말을 빠짐없이 그대로 최양하에게 전달했다.“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이라….”그 말을 들은 최양하의 얼굴이 확 변했다.가희에게 작은할아버지라면 추명택과 추동현이다. 추명택의 아들은 둘인데 큰아들이 추성호고 작은아들은 추우민이다. 지금은 외국에 유학 중이다.그렇다면 요원이란 아마도 자기 아버지나 추명택의 혼외 자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그러나 추명택의 아내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라 남편이 밖에서 혼외자식을 만들었는데 집에 들락거리도록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니 요원이는 추동현의 혼외자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등줄기가 서늘했다. 어쩐지 추동현이 자신에게는 영 정을 주지 않는다 싶었는데 밖에 다른 자식이 있다면 충분히 여러 가지가 말이 되었다.자신이 유일한 아들이라던 추동현의 말에 하마터면 홀랑 넘어갈 뻔했다.‘우리 아버지란 사람은 알면 알수록 무서운 사람이구나.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서 그 오랜 세월 얼마나 뒷바라지를 지극정성으로 했는데, 심지어 3년 전에는 추신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조달해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버지는 밖에 여자와 자식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니. 어머니가 아시면 기절하시겠군.’여울이가 전해 준 정보에 최양하는 머리를 냉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최양하가 FTT의 반도체 정보를 넘기는 순간 추신은 국내 최고의 재벌 그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추동현을 위한 발판이 될 뿐이다.다만 이 일을 어떻게 어머니에게 전할지는 고민이 되었다.“여울아, 일단 이번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최양하가 당부했다. 최란이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밤이 되자 최양하는 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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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화

여름은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갔다. 태도는 냉랭했다.하준은 여름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때 하준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심희철이었다. 흥분한 듯 매우 떨리는 목소리였다.“회장님, 개발에 성공했습니다.”“그런가?”하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했어.”심희철은 적잖이 당황했다.“별로 안 기쁘십니까? 이 작은 반도체 칩을 위해서 그 많은 자금을 퍼부으셨는데요. 게다가 이건 세계 최고의 물건입니다. 이제 어느 회사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FTT의 주가가 3배는 뛸 것 같습니다.”“그래.”하준은 평온하게 답했다.“개발 성공 소식은 알려도 좋아. 2주 후에 발표회를 하도록 하지. 내가 참석하겠어.”“언제쯤 돌아오십니까?”심희철이 급히 물었다.“이게 알려지면 전 세계 최고의 업체들이 저희와 협력하려고 올 겁니다. 회장님께서 회사에서 중심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중요한 일이라 홍보에서부터 협력까지 직접 참여하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최하준은 복잡한 심정으로 멀리에 있는 여름을 바라보더니 억눌린 소리로 답했다.“난 지금 시간이 없어. 그 돈 많이 들여 데려다 놓은 경영진들이 이제 힘을 발휘할 때가 되었어.”“알겠습니다”사랑에 빠진 하준을 아무도 못 말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심희철이 말했다.“그러면 관련 자료는….”“전성에게 사람을 보내라고 해서 실험실을 보호해 줄게. 자네가 실험실에 딱 붙어있어.”하준이 당부했다.이 일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경쟁자가 심희철을 해치려고 들 수도 있었다.“알겠습니다.”심희철과 통화가 끝나고 하준은 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특별히 여름을 피하지는 않았다.해안에 둘 뿐이었다. 하준이 전성에게 하달하는 지시가 여름의 귀에도 들려왔다.들을수록 놀라웠다.FTT가 최첨단 반도체를 이렇게 빨리 개발해낼 줄은 몰랐다. 그것이 사장에 풀리고 나면 FTT는 이제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시장에서 최고의 입지를 차지할 것이고 이제 최하준과 겨룰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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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화

처음에는 다리를 다친 줄 알고 움찔했는데 자기 상처가 아니었다. 여름의 것이었다.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춰보니 여름의 아랫도리와 이불이 난리였다.아무리 자신이 경험이 없다고 해도 이건 생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런데 지난번 생리 이후로 이제 겨우 20일 정도 지났는데 왜 또 왔지?’순식간에 하준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지난번 그것이 생리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때가 딱 가임기인데.그러면 그때 생리가 아니었던 건가?그러면 그 피는 어디서 난 거지?’하준은 그때 해변 바위에서 미끄러져 생겼던 상처를 생각했다. 한군데가 이상하게 무엇에 찔린 것처럼 깊었던 것이 기억났다.여름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하준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여름은 깨어나서 곧 자기 몸의 이상을 발견했다.생리였다. 날짜를 따져보니 확실히 맞았다.속옷을 버린 것을 하준이 발견하지 못했기를 바랐다.그러나 어쨌거나 오래는 속일 수 없을 터였다.‘뭐라고 말하지?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일찍 왔다고 하나?아, 모르겠다. 일단 씻자.’여름은 일어나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거대한 모습을 발견했다. 우아한 다리를 포기고 해를 등지고 있어 모습이 역광이라 모호하게 보였다.여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몰려왔다.하준이 두 손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모으는 것이 보였다. 또렷한 두 눈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자기 살을 찔러서라도 생리를 가장하고, 또 그걸 덮기 위해 바위에서 굴러떨어지고… 꽤 애썼어.”여름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미 하준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데 변명해 봐야 소용 없다.“내 사랑을 받으면 마음대로 나에게 사기를 쳐도 되나?”하준이 일어섰다. 싸늘한 모습이 침대 가로 걸어왔다.“생리 중이니까 나는 당신을 전혀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야. 믿어져?”여름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냉랭하게 맞섰다.“생리 기간에 관계를 가지지 않는 걸 무슨 은혜로 생각하지 마. 웃겨, 정말.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생리 기간에 여자랑 관계하지 않아. 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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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화

“그만.”하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경고했다. 눈에서는 한기가 흐르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다.여름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찢었다.그간 여름이 온순하고 가만히 있어서 드디어 익숙해져서 생각을 바꾸었구나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여름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여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자 어마어마한 공포가 엄습했다.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면 당신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한꺼번에 다 매장시키겠어.”“당신은 미치광이, 악마야!”여름은 저주를 퍼부었다.“언젠가는 주변 사람이 모두 당신을 배신하고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모두가 다 당신을 증오하고 침을 뱉고, 회사는 망하고 당신은 땡전 한 푼 못 건질 거라고.”“그래, 욕해 봐. 아무리 욕해도 난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하준은 비통함을 꾹 눌러 참았다.“이번에 임신이 안 되면 다음번에, 한 달로 안 되면 두 달을, 당신이 임신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난 얼마든지 당신이랑 보낼 준비가 되어 있어.”그러더니 하준은 나가버렸다.방문을 나설 때쯤 뒤에서 물건 깨지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속이 쓰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장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저주밖에 못 받는 신세라니.‘하아, 나도 놓고 싶다. 하지만 양유진과 여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여름의 손을 잡고 지옥으로 뛰어들겠어.’서재에서 하준은 한 잔, 또 한 잔 와인만 들이켰다.전에는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휴대 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초조한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큰일 났습니다. 랜들에서 오늘 한발 앞서서 자기네 신개발 반도체를 발표했습니다. 그런 그쪽 반도체 데이터가 우리 것과 똑같습니다. 게다가 저희 실험실의 반도체 관련 자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뭐라고?”하준은 벌떡 일어났다. 술잔이 털썩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분노에 소리를 질렀다.“지룡 녀석들에게 가서 실험실을 지키라고 했잖아? 어쩌다가 데이터가 모두 사라져?”“그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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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화

“여름아, 여름아….”하준은 아무 것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여름의 입술을 탐할 뿐이었다. 마치 영원히 헤어질 사람과 마지막 키스 나누는 것 같았다.하준의 광기 어린 키스에 여름은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거의 질식할 때쯤이 되어서야 하준은 여름에게서 입술을 떼더니 힘껏 품에 안았다.“내가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하준이 잔뜩 가라앉은 소리로 여름의 귀에 속삭였다.여름은 흠칫했지만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싸늘한 말투로 뱉었다.“어, 갈 거면 빨리 가. 매일 매일 그 꼴 보기 싫었거든.”“최대한 빨리 돌아올게.”하준은 여름의 귀에 깃털 같은 입맞춤을 남겼다.여름의 몸은 감전이라도 된 듯 하준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기다리고 있어.”하준은 여름을 놓아주더니 그윽한 눈으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야 하준은 욕실을 떠났다.여름은 샤워기 아래서 멍하니 서 있었다.‘뭐야, 잠깐 다녀 온다면서 뭘 그렇게 사람 죽을 것처럼 난리야?’----6시간 뒤, 하준의 전용기가 서울에 도착했다.그길로 FTT본사로 차를 달렸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사가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이날 벌어진 일로 FTT는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최대범부터 최란, 최진, 최양하까지 가족도 모두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회의실 문이 열리자 모두 우르르 몰려들었다.“최 회장, 이 일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네. 지금 주식 총액이 얼마나 증발했는지 알아? 심지어 전에 우리와 업무 협약을 맺었던 업체들이 계약을 해지하고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네.”“맞아. FTT에서 전세계 최고의 유일무이한 반도체를 제공하겠다고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랜들에서 동일한 반도체를 출시했잖나? 문제는 랜들에서 우리 제품을 카피한 거라고 고소를 하려고 해도 실험실에 관련 자료가 하나도 남지 않았어?”“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 판이야. 회사가 마비될 거라고. 그동안 사내유보금은 대부분 신제품 연구개발에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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