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우의 사람들이 뭘 알아낸 거야.”강이한의 말투는 꽤 불쾌했다.문기원이 말한 것처럼 지금 가장 골치가 아픈 건 강이한이니까. 여진우의 사람들 실력은 인정해 줘야 했다.사실 강이한이나 박연준이나 다 여진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여진우의 사람이 무언가를 알아내서 바로 이유영에게 얘기한다면... 게다가 지금은 박연준의 사람까지 철수한 상태가 아닌가.“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도 아마 이한 님과 박연준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여진우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바로 차가운 표정을 드러냈다.“그러니까, 무조건 알고 있을 거라는 거네.”“네.”이시욱이 머리를 끄덕였다.확인해 보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강이한은 또 담배 몇 모금을 빨아들였다.지금 서재에는 온통 담배 연기뿐이어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지금 이유영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여진우의 사람 중 누가 있냐는 뜻이었다.강이한과 박연준 모두 여진우의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까 말이다.이시욱이 대답했다.“장혜주입니다.”“...”장혜주.그 이름을 들으니 머리가 아팠다.이건 여진우의 사람들 중 가장 철옹성 같은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진우를 위해 장혜주에게 다가갔다가 화를 입었다.여진우가 장혜주를 이유영에게 붙여주다니. 이유영을 보호해 주려는 건지 아니면 박연준과 강이한에게 보복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강이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시욱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진지하게 얘기했다.지금 강이한에게 있어서 골치 아픈 건 이유영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도 있었다.이유영처럼 중요한 사람이었다.“말해.”그 말투에는 어느새 짜증이 약간 묻어났다.“병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수술은 잘 성공했다고 합니다. 괜찮으면 다음 주에 퇴원해도 된다고 합니다.”이온유의 수술이 성공했다.
“너...”“유영아, 네가 밥을 잘 먹었으면 해서 난 엄청 애를 썼어.”그의 말투는 여전히 온화했다.이유영의 분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불쾌했다.“먹어, 응?”박연준은 부드럽게 말하면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네가 먹던 걸 내가 왜 먹어.”이유영은 그릇을 옆으로 비켜두었다.그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고용인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지금 주인님을 거절한 거야?’그 눈빛에 이유영은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박연준에게 얘기했다.“오해할 만한 행동하지 마.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잖아.”말을 마친 후, 숟가락을 내려놓은 후 일어났다.화가 난 이유영의 모습을 본 박연준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박연준은 일부러 이른 짓을 한 거다.요즘 이유영이 너무 심심해 보여서 가끔 이렇게 장난을 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침 식사가 끝난 후.박연준은 또 나갔다.이유영은 본인 때문에 서주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전에 문기원이 돌아왔다.그는 예쁘장한 선물함을 들고 와서 얘기했다.“아가씨, 이건 연준 님께서 드리는 겁니다. 저녁에 같이 연회에 참석하자고 하시네요.”“안 가요.”이유영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녀는 이런 연회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빠른 거절에 문기원이 약간 멍해졌다.이윽고 표정을 풀더니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이온유 씨는 일주일 뒤 퇴원합니다. 그분이 이온유 씨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더군요.”“당신...!”이유영은 이를 꽉 깨물고 문기원을 쳐다보았다.“오늘 밤의 연회는 연준 님에게 중요한 연회입니다. 잘 준비해 주세요.”말을 마친 문기원은 이유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갔다.이유영은 그 선물함을 쳐다보았다.문기원은 이온유의 일을 얘기하면서 귀띔해 준 것이다. 이온유 때문에, 이유영이 서주에 온 것이니까.그리고
자동차 안.이유영은 결국 나와서 강이한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손톱을 갈고 있었다.마치 예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강이한의 곁에 있으면서, 이유영은 항상 여유로웠으니까.“그 소식은 엔데스 현우가 알려준 거야?”결국 강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 말투에서 강이한이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소식? 무슨 소식?’아마도 서류의 일일 것이다. 전에 전기봉을 엔데스 명우에게 팔아넘겼는데, 지금은...? 이유영이 박연준에게나 강이한에게나 다 잔인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을 쳐다보았다.“그래.”이유영은 빠르게 대답했다.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강이한을 쳐다보았다.밝은 표정의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표정이 굳었다.“너, 무슨 깡으로 인정하는 거야.”“인정해야지.”이유영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두운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유영이 얘기했다.“내가 얘기했었지?”“...”“난 솔직한 사람이라 안 할 건 안 하고 한 건 인정한다고. 10년이나 봐 왔는데 아직도 모르겠어?”“...”그 질문에 강이한은 숨통이 옥죄어오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모든 힘을 다해서 보복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그녀에 대한 강이한의 오해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그래, 이유영은 이런 방법으로 강이한에게 경고하는 것이다.전에는 한지음을 위해서, 저번 생이든 이번 생이든 한지음을 위해서 항상 이유영을 짓밟지 않았던가.강이한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이유영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왜? 이번에도 내가 부인하길 바라? 아니면, 내가 부인하면 믿을 거야?”‘믿는다고?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믿는다는 거지?’이유영의 말에 강이한의 세계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지금은 속이 시원해졌어?”일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유영이 서류를 찢어버린 덕에 강이한과 박연준은 골치 아픈 일만 많아졌다.“...”‘속 시원하냐고?’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그들에게 골치 아픈 일을 조금
이때 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또 다른 할 말 있어? 없으면 갈게. 난 바빠서.”말을 마친 이유영이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발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손목에서 힘이 느껴졌다.이유영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여진우의 사람더러 멈추라고 해.”결국 강이한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이유영이 이런 태도로 서주에 나타나 강이한과 박연준에게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더욱 많은 일들이 있었다.예를 들면 박연준이 이유영을 이용한 일이라거나,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접근하지 못한 원인이라거나...하지만 이런 상황이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이유영은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러니 강이한이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캠퍼스의 무궁화나무 아래서 강이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모르겠으나...하지만 이 뒤의 일은 그 무궁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그럼 네가 직접 알려줄래?”이유영이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그 미소는 부드러워 보였지만 강이한에게는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그녀의 눈빛은 이토록 집요했다.게다가 여진우의 사람이니 이 일을 무조건 조사해 낼 것이다.그해의 일에 대해서... 그분은 그 일이 좋지 않다고 느껴 신분과 존재를 모두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물론 서주에서 그 얘기를 다시 꺼내는 사람은 없지만 일어났던 일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손목을 더욱 세게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이 뒤에 아무 사건도 없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유영아!”이유영이 손목을 빼낸 순간, 강이한이 이유영을 또다시 불러세웠다.“말하지 않을 거면 시간 낭비하지 마.”“서주에 남을 거면 내 곁으로 와. 박연준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지금 하는 일, 너한테 위험해.”강이한이 또박또박 얘기했다.“걱정해 줘서 고마워.”“나한테 복수하려고?”이유영이 발을 내디딘 순간, 강이한이 다시 물었다.“...”“내 곁으로 오면 네가 뭘 하든지 말리
‘못 한다고?’못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거다. 한지음은 강이한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온유는 강이한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어떻게 쉽게 내어주겠는가이유영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유영아, 꼭 그래야겠어?”이온유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이온유가 그의 곁에 있을 때부터, 이유영은 더욱 끈질겨졌다. 이온유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말이다.이유영은 이온유에 대한 증오가 아주 깊었다. 하지만 이온유가 이유영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아는 강이한은 순간 가슴이 저렸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갔다.그녀와 이온유의 사이가 어떤지는 이미 강이한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지금도 대답을 못 하는 것이겠지....점심.박연준은 돌아오지 않았다.식탁 앞에 앉은 이유영은 고용인이 가져온, 백산 별장에서 자주 마시던 국을 마셨다. 식탁 위에는 이유영을 위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이건 뭐지? 아삭아삭한 게 맛있네.”이유영은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자세히 보니 점심의 음식들은 이유영이 처음 먹는 음식 같았다. 다만 맛을 내려고 신중을 가한 것이 보였다.“연꽃 뿌리입니다. 입에 맞는가요?”“음, 맛이 괜찮네. 이렇게 먹을 수도 있는 거구나.”이유영이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제야 연근처럼 구멍이 보이는 듯했다.“주인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고용인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이유영이 마음에 들어 하자 그들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이유영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얘기했다.“이런 날씨에 이런 것이 자라다니, 의외네.”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꽃은 날이 좋은 곳에서만 자란다. 게다가 더운 곳에서 잘 자란다.연근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지만 연근은 날이 좋은 곳에서만 자라는데...“이건 모두 청하에서 가져온 겁니다.”“...”‘청하?’그 애기를 들은 이유영은 놀라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박연준은 돌아와서 이유영이 점심을 잘 먹었다는 말을 듣자 표정이 부드러워졌다.“오
“내가 당신의 약혼녀라고 해서 무조건 약혼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박연준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이유영은 정말 강인한 여자였다.박연준은 그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결국 박연준은 이유영을 품에 꽉 안았다.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유영아, 넌 정말 마녀 같아.”그래, 이건 마녀다.이유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박연준은 어쩔 수가 없었다.사실 10년이나 지나오면서 이유영은 강이한에게 철저히 실망했다. 그리고 강이한은 한 사람을 잃는 슬픔을 느꼈다.하지만 왜 박연준도 비슷한 느낌일까.“장혜주한테 더 조사하지 말라고 해.”박연준은 이유영을 더욱 세게 안고 얘기했다.“너랑 강이한 다 나보고 조사하지 말라고 하니까 정말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그런 말 못 들어봤어?”“뭐.”“호기심이 죄라고.”가끔은 모르는 게 상책이다,그래서 박연준은 굳이 알 필요가 없으면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이미 몇 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때도 죄는 없었지만 죽을 뻔했지.”‘사실은 죽은 거지만.’저번 생은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었다. 자기 옆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말이다.“유영아!”“두 사람이 이렇게 나올수록 난 더 알아야겠어. 두 사람이 이렇게 뜻이 맞는 일이 뭣 때문인지.”“...”“아니면, 내가 두 사람의 한계를 건드린 거야?”한계.강이한과 박연준의 동일한 한계가 도대체 무엇인지.만약 그렇다면 정말 한번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한계가 아니야.”그의 말투는 매우 진중했다.이 순간, 이유영은 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연준의 말투에서 아픔을 느낀 것만 같았다.‘아픔? 왜 아픈 거지? 도대체 뭐가?’“네가 내 한계야.”박연준의 말투는 더욱 의미심장해졌다.“...”그 순간 이유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윽고 표정도 차가워졌다.‘말은 잘
저녁.호화로운 연회장에서 레드 와인과 샴페인이 오갔다.이곳에는 서주의 상류층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박연준이 이유영과 함께 이곳에 나타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쏟아졌다.이유영은 그 순간 적의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서주에서 잘 먹고 잘사나 보네.”한번 훑어보자 수많은 여자들이 질투의 시선을 보내왔다.그 말은 약간의 풍자가 섞여 있었다.박연준과 강이한을 향한 풍자였다. 박연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더욱 힘을 줘서 이유영의 손을 잡았다. “이미 왔으니까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알아가면 돼. 네 옆에 있는 남자가 얼마나 갖기 어려운 남자인지 말이야. 그러니까 이 기회를 소중히 생각해. 응?”박연준이 얘기했다.이유영의 풍자는 간단하게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었다.그 순간, 이유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강이한은 도착한 후 이유영과 박연준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여리고 얇은 그녀의 손은 박연준의 커다란 손에 감싸졌다.그리고 키 차이도...이유영의 키는 너무 작았다.박연준의 옆에 서 있는 그녀는 더욱 작아 보였다. 게다가 박연준은 마치 이유영이 세상 가장 소중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박연준 씨가 이런 여자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한 사람이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전에 아무리 박연준 앞에 몸매가 좋고 예쁜 여자들을 데려다 놓아도 박연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연준의 호감을 얻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결국은 박연준의 차가운 표정 밖에 보지 못했다.하지만 이유영이 박연준을 갖게 되다니.“너무 작은 거 아니에요?”“작기는요. 난 내가 저렇게 생겼으면 좋겠어요.”‘박연준이 좋아하니까 말이에요.’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을, 또는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이시욱은 강이한 뒤에 서서 강이한에게서 느껴지는 한기를 눈치챘다.“그...”그 순간 박연준에게 향하는 시선이 있다면 강이한을 보는 시선도 있었다.아무리 큰 연회장이라고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알아차릴
신씨 가문?신지수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 여우 같은 눈이 아주 매혹적이라고 말이다. 이유영의 시선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넌?”이유영은 박연준을 보면서 웃더니 물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마주 보았다.그는 마치 이유영의 기분을 다 읽어낸 것만 같았다. 박연준은 이유영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나?”“그래, 너.”“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야.”“난 지금 네 약혼녀야. 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원래의 밸런스를 맞출 건데?”‘밸런스?’이유영의 입에서 밸런스라는 단어를 들은 박연준의 시선이 한순간 차갑게 식었다.“그러니까 강이한이 이렇게 된 것도 네가 의도한 것이라는 뜻이야?”“반쪽짜리 서류 때문에 골치 아픈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닐 텐데.”이유영이 비꼬는 말투로 얘기했다.‘골치 아픈 일만 있으면 다행일지도.’장혜주가 조사한 자료들을 이유영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이유영은 그 서류가 사라지면서 서주에 보이지 않는 힘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이유영이 서류에 손을 대 이 밸런스를 깨부쉈다.박연준이 이유영의 손목을 확 잡았다. 이윽고 이유영을 품에 안더니 손가락으로 이유영의 턱을 천천히 쓸어올렸다.“그래서, 약혼자의 신분으로 나랑 서주에 온 거야? 그것도 의도한 거겠네?”이유영은 박연준의 부드러운 시선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 애매모호한 감정에 박연준은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그에게 있어서 이유영은 정말 천년 묵은 구미호가 아닐 수 없었다.“이게 우리를 향한 복수야?”복수.강이한뿐만이 아니라 박연준까지. 그 두 사람을 향한 복수였다.겉으로 보기에는 박연준의 편에 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녀의 복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신씨 가문은 서주에서 어떠한 존재인가. 만약 선택이 가능했다면 신씨 가문의 신지수가 왜 여태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겠는가.신씨 가문은 감히 넘볼 수 있는 가문이 아니다. 그걸 잘 알기에 아무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던
기다리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강이한, 박연준, 그리고 이유영. 세 사람의 얽힌 관계는 이제 누구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한편, 파리에서는 엔데스 가문이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강이한은 서주로 돌아갔고 그와 관련된 문서는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도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반산월.남자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시가 연기가 희미하게 실내를 감싸고 있었다. 소은지는 품에 작은 고양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현우의 묵직한 눈빛이 그녀를 스쳤다.현우는 소은지를 보자 순간적으로 표정을 가다듬었다.“이 녀석을 꽤 잘 돌본 모양이에요. 아주 잘 자랐네요.”길에서 처음 이 고양이를 주웠을 때는 겨우 갓난 새끼 고양이였다.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작은 생명체였는데 지금은 소은지의 품에서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로 감싸인 작은 생명체로 자라 있었다. 여전히 조그마했지만 이제는 생명의 따뜻함과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는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현우의 옆에 앉았다.“작은 동물들은 금세 자라잖아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아이는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했다.반면, 동물들은 마음만 쓰면 빠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다.“...”소은지가 아이를 언급하자, 현우는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아이 좋아해요?”현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은지는 잠시 멈칫했다.아이를 좋아하냐고?“좋아한다, 싫어한다로 설명할 수 없어요.”“왜요?”“아마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봐요.”소은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아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존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였다.그러나 소은지가 지금까지 보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그보다 더 복잡했다.청하시에서 일하며 소은지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과 얽힌 상황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처음엔 서로 사랑하던 부부가 결국 이혼을 앞두고는 지독히 싸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우리, 결혼하자.”이유영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연준이 갑자기 말했다.“...”공기가 그 순간 얼어붙은 듯 정적이 흘렀다.이 남자, 미쳤나 봐.이유영은 박연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볼 수는 없었지만 텅 빈 두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다.박연준은 그런 이유영의 눈빛에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이유영은 차갑게 박연준이 있는 방향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침묵 속에서 전해지는 무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유영아.”“서주...”서주?“네가 원하는 건 결국 우리 아버지의 지원이야?”지원? 자신이 지금까지 보여온 확신마저 이유영에게는 이익을 위한 계산으로 보인단 말인가?“괜찮아. 세상 모든 일은 사실 네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걸 알려줄게.”“흥!”박연준의 다짐이 이유영에게는 터무니없게만 들렸다.“내가 기회를 줄 것 같아?”이유영은 단호했다.박연준이 자신을 이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싫었다. 그런데 이제 가족까지 이용하려 하다니. 박연준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박연준, 그런 기회를 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날카롭게 내뱉었다.이유영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같은 말을 했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증오가 서려 있었다.이유영의 마음속에 쌓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만약 지금 이유영이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분명 서주로 돌아가 강이한과 박연준을 혼란의 중심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박연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그날, 서재에서 박연준이 강이한에게 물었다.“이유영이 시력을 되찾으면, 서주를 가장 먼저 공격할 거야.”이유영은 신씨 가문을 알고 있었다.이유영과 신씨 가문이 어떤 관계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신지수가 이유영 편에 선다는 건 그 둘 사이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그런데 서주 자체가 워낙 복잡하니
박연준의 해명은 이유영에게 공허하고 무력하게 들렸다.오늘의 박연준은 이유영을 더욱 놀라게 했다. 박연준이... 강이한을 두둔하다니.결국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사람이었으니,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이유영은 이 상황이 비참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유영아, 넌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이유영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연준은 내심 괴로워하고 있었다.“그만하라고!”이유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연서는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금기와도 같은 이름이었다. 연서의 존재는 강이한과 박연준이 이유영에게 수년 동안 안긴 모욕과 같았다.연서의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이유영은 자신이 강이한과 박연준의 세계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절감했다.이유영은 외부에서 보이는 것처럼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고 스스로 믿고 싶었던 그런 존재도 아니었다.이유영의 존재는 결국 그들의 세계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착각에 불과했다.그것이 바로 이유영이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차지했던 자리였다. 가소롭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자리.“유영아, 나는 변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어.”“또 무슨 꿍꿍이인지 어떻게 알아?”이유영의 목소리는 억누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박연준의 몸은 이유영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순간 굳어버렸다.그 말은 이유영이 박연준을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조종하고 계산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분위기가 더욱 얼어붙었고 우지와 우현은 한 발짝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현재 식당의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시간은 계속 흘러갔다.이유영은 매일 약을 먹고 하루 세 끼를 빠짐없이 챙겼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강이한이 곁에 있었을 때, 이유영은 강이한이 내민 사탕을 자연스럽게 입에 넣었었다.하지만 지금은?박연준이 사탕을 내밀어도 이유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강이한에게 차가웠던 만큼 박연준에게도
이유영은 사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꼭 이래야만 하는 걸까?“나는 나를 벌주는 게 아니야. 그냥... 정말로 익숙해진 거야.”고통도 결국 어떤 이에게는 습관이 될 수 있었다.“...”이유영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졌다.“서주 쪽 상황은 지금 어때?”“강이한은 돌아갔어.”박연준의 대답이었다.강이한이 돌아간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박연준이 서주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이유영의 눈빛은 더 어두워져만 갔다.이유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연준이 먼저 말했다.“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미워?”그 사람, 강이한을 말하는 것이었다.“...”강이한이 정말 미웠다. 그러나 미움에도 강약이 있는 법, 이유영은 극단적인 두 가지 감정을 모두 겪어야 했다.“미워.”“그가 죽기를 바랄 정도로?”박연준은 멈추지 않고 물었다.“...”이유영은 다시 침묵했다.강이한이 죽기를 바랄 정도인가?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망설임 없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듯,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할 때도 그 감정은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었다.그것이 이유영의 강이한에 대한 미움이었다.“뭐가 문제야?”이유영의 말투는 차가워졌다. 이 주제를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강이한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유영에게 너무 무거웠다.“너도 나를 그렇게 미워해?”박연준이 시험 삼아 물었고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그럼 너에게 어떤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강이한과 박연준에게 그녀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은 미움뿐이었다.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은 후에도 그들의 모든 것을 용서할 만큼 이유영은 그렇게 착하지 않았다.박연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따뜻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 태도는 냉정했고 그녀의 감정은 고스란히 드러났다.박연준은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눈에 상처가 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 답답함을 억누르듯 말했다.“네가
강이한이 정국진에게 말했다.염 선생의 조언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고 이유영을 평생 어둠 속에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최대한 빨리 모든 것을 처리해 이유영의 시력을 회복시키겠다고도 덧붙였다.“자신을 벌하고 있는 거예요.”한참을 침묵하던 정국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임소미는 그 말을 듣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정말 자신을 벌하고 있는 걸까?그렇다.정국진의 말이 맞았다. 강이한은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벌하고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속죄하려는 그의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죄는 너무도 무거웠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속죄가 가능할까?...강이한은 떠났다.잠시 후 월이가 임소미의 목을 끌어안고 재잘거리며 들어왔다.“할머니, 아까 모르는 사람이 준 거 안 먹었어요.”“정말 잘했구나.”월이의 말을 들은 임소미의 마음은 더없이 씁쓸했다. 이 모든 것이 강이한이 자초한 일이었고 그의 업보였다. 누구도 그에게 가혹하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그는...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하지만 정말 그럴까?임소미는 이유영이 평생 월이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그리고 강이한이 오늘 월이를 마지막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임소미의 가슴은 더욱 무거워졌다.“할머니, 엄마는 언제 돌아와요?”월이는 정말 이유영이 보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의존은 본능적이었다.“곧 돌아올 거야.”“할머니, 제 아빠는 누구예요?”“...”임소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미 불편했던 호흡은 월이의 질문을 듣고 더욱 답답해졌다.월이의 아빠는...“월이, 아빠가 보고 싶니?”임소미는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아빠가 보고 싶냐는 질문에 월이는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왜?”“아빠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사랑하지 않는다고?월이가 기억하는 한, 월이의 세상에는 아빠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항상 엄마인 이유영 혼자뿐이었다.아이는 단순했고 이유영의 외로움을
강이한은 아마도 세상에서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을 것이다.세상에 아이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이 있을까?그는 지금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아이는 그렇게 경계하며 강이한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다. 월이는 강이한의 고독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혀 다가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모퉁이를 돌 때, 강이한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놀라서 움찔했다.남자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월이에게 말했다.“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기억해.”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월이는 여전히 그를 경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월이가 침묵하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이한은 절망을 느꼈다. 이 모든 고통은 한때 이유영이 홀로 겪었던 것이었다.이제 그 고통이 자신에게로 돌아왔고 이유영이 겪었던 아픔이 하나하나 그의 뼛속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강이한은 떠났다.한편, 임소미는 조용히 정국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정국진은 강이한과 서재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도저히...”임소미는 한참 후에야 간신히 말했다.이것이 이유영이 항상 수술을 거부했던 이유였다. 이유영은 죽은 사람의 장기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 했고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은 더욱 불가능한 얘기였다.그렇게 눈앞이 흐릿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수술을 거부했던 것이다.살아있는 사람의 것은 정말 구하기 힘들었고 기꺼이 수술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그렇다면 기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이유영은 어떤 수단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두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강이한의 말대로 만약 석 달 후에 이유영이 염 선생의 약을 먹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강이한이 책임지겠다고 했다.이것이 서재에서 정국진에게 말한 내용이었다.
딸이 이렇게 다치고 나서 임소미는 강이한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강이한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가 사라져야만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이유영이 돌아온 이후 몇 년 동안, 강이한이 이유영에게서 벗어나려 얼마나 애썼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한편으로는 한지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유영에게 집착하며 그녀의 행복을 방해해 왔다.그런 상황에서 엄마라면 누구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임소미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하지만 강이한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뒷마당에서.강이한은 멀리서 나비를 쫓는 아이를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동시에 강이한의 마음이 아파졌다.그 아이는 나비를 쫓으며 정말 즐거워 보였다. 이곳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곳인 듯했다.정씨 가문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귀여워하고 아끼고 있었다. 그 아이는 꽤 작은 몸집을 가졌는데 아마 조산 때문일 것이다.“유씨 할머니, 저 잡았어요!”아이가 나비 한 마리를 잡고 기쁜 얼굴로 도우미에게 달려갔다.유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작은 아가씨는 점점 더 빨라졌네요. 나비도 잡을 수 있군요.”“저 정말 대단하죠?”“네, 정말 대단해요.”찬을 받은 아이는 더욱 밝게 웃었다.“유씨 할머니.”“네?”“수박 먹고 싶어요.”“알겠어요. 가져다줄게요.”그 아이는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었다.여기서 그녀는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임소미는 종종 한탄했다. 그 아이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서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되었다.그런데도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했다.아이는 나비를 놓아주었다.아이는 나비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고 절대로 해치려 하지 않았다. 수박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유 아주머니가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강이한을 발견한 아이의 눈에는 잠깐의 두려움이 스쳤다.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강이한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는 경계심
그런 결과라면...직면하지 않는 것이 당연히 좋겠지만, 만약 그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영원한 끝을 의미할 것이다.그녀가 원했던 대로 끝이 나는 것이다.그리고 이유영은 그로 인해 기뻐할까?강이한의 곁을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영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을 느꼈다.하지만 이유영이 떠난다고 해도 강이한은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강이한이 만든 결과였다....강이한과 정국진은 서재에서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서재에서 나올 때, 정국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임소미만 홀에 있었다.두 사람이 서재에서 나온 모습을 보고 임소미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진우를 보내서 이유영을 데려오게 했어요.”여진우를 보내 이유영을 우천시에서 데려오기로 했다?이유영이 거기서 어떻게 지내든지 상관없이, 임소미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설령 요 선생이 거기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치료는 장소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었고 약을 먹는 것 역시 어디서든 상관없었다.“돌아오라고 해!”정국진의 목소리는 다소 무겁게 떨어졌다.“...”임소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정국진을 바라보았다.도대체 서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나온 후 정국진의 태도가 이렇게 변한 걸까?임소미는 정국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당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집사!”“예, 선생님.”“진우에게 연락해서 우천시로 가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고 해.”“네!”“아니...”임소미는 정국진의 진지한 모습에 화가 나 발을 굴렀다.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왜 갑자기 강이한 편을 드는 것인가?서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지 임소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임소미는 본래 차분한 사람이었지만 정국진의 태도에 화가 나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그의 뜻을 따르기엔 이유영이 너무 불쌍했다.저번에도 정국진은 강이한에게 기회를 줬지만 그 결과는 참
강이한은 지금 딸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사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래서 우천시에서 돌아오는 내내 그의 마음은 무겁고 괴로웠다.강이한은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지난 세월 동안 강이한은 이유영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심지어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는 이미 나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서재에서.정국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강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차가운 빛으로 번뜩였다.“나를 탓하지 마라.”이유영에 관한 이야기였다. 방금 정국진은 강이한에게 이유영과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강이한은 지금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에게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더군다나 정씨 가문의 사람들 모두 이유영을 강이한에게 다시 맡길 생각이 없었고 둘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려 했다.“지금 유영이의 곁에 박연준이 있습니다.”강이한은 약간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이미 불편했던 감정은 강이한의 말에 더 강하게 흔들렸다.“그게 무슨 뜻이야?”정국진은 영리한 사람이라 강이한의 말을 듣자마자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거래가 있었음을 눈치챘다.강이한은 복잡한 표정으로 정국진을 바라봤다.“염 선생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완벽한 희망을 보장할 순 없습니다.”아무리 의술이 뛰어나고 성공 사례가 많아도,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염 선생이 이유영의 눈을 처음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그는 연기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손상된 눈은 처음이며 지금까지 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가족들이 많은 정성을 들인 덕분이라고 했다.이런 심각한 손상은 신중히 관리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이것이 백산 별장이든 반산월이든, 심지어 황가 국제 그룹의 조명까지도 여러 번 교체한 이유였다. 이유영의 눈에 가장 적합한 빛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바꿔야 했던 것이다.하지만 이유영의 두 눈은 결국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그날 염 선생이 자신도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