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해요.”격렬한 사랑이 끝난 뒤, 유영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달뜬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다.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상기된 볼을 살짝 가렸다. 그녀의 두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표정은 처량했다.남자가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욕구를 방출시킨 남자, 그 어디에도 유영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10년을 사랑했지만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남지 않았다.단추를 잠그던 강이한의 손이 움찔하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갑자기?”“네.”유영의 말투는 단호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기억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했다.강이한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했다.“손 이리 줘봐.”탁!유영은 매몰차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하지만 힘 조절을 잘못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저리 치워요. 당신 도움은 이제 필요 없어. 더러워.”이 남자와 같은 지붕 아래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불쾌했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허공에 손을 내민 채, 신경질적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지금 나한테 더럽다고 한 건가?유영은 바닥을 더듬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고 뜨거운 물로 몸에 남은 그의 흔적을 씻어냈다.할 수만 있다면 그의 손길이 닿았던 피부를 모두 도려내고 싶었다.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벽을 더듬으며 옷장으로 향했다. 시력을 잃게 된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암흑 같은 이 세상이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유영은 손끝에 닿은 느낌을 따라 옷 한 벌을 꺼내 입고는 호적 등본을 챙기고 그에게 말했다.“지금 법원으로 가요.”“이유영.”강이한이 이를 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벌떡 일어나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런 모습으로 나랑 이혼하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그녀는 가진 게 없었다
또각또각.익숙한 하이힐 소리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함께 가까워지고 있었다.한지음!강이한의 첫사랑이자 그녀의 망막을 가져간 여자.유영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용인 부를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불렀으니까.”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말투.“여긴 왜 왔어?”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모든 걸 잃은 그녀에게 또 뭘 바라고 온 것일까?한지음은 그녀의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을래?”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너 임신했더라.”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한지음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이한 씨는 이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 않을 거야. 나도 임신했거든.”쿵!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유영의 얼굴에 금이 갔다.‘강이한, 이런 거였어?’혈색을 잃은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렸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유영은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여자는 자랑하러 온 것이다. 이미 모든 걸 잃었는데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내고 싶었다.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어제 그 사람한테 내가 이혼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한지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유영도 그녀의 기분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망막까지 빼앗아 가고 임신까지 했는데 그래서 뭐? 그이는 네가 이 집의 안주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봐.”강이한을 좋아해서 한지음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여자에게 더 이상 짓밟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다.강이한과는 이미 끝내기로 했지만 집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도발하는 여자에게 가만히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하, 그래서 이한 씨가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악!”유영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피부에서 아직도 뜨거운 작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남자의 거친 손이 다가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꿈꿨어? 조금만 더 자자.”유영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강이한의 준수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유영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앞이 보여? 이게 어떻게 된 거지?’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천장, 커튼, 그리고 익숙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설마?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찾았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화재가 일어나기 몇 개월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회귀… 한 건가?강이한은 뒤척이는 소리에 불만스럽게 눈을 떴다.“아침부터 왜 이래?”그러거나 말거나 유영은 핸드폰에 찍힌 날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납치하기 전 날로 돌아와 있었다.“당신 왜 그래?”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유영은 남자를 내버려두고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화상 자국이 있어야 할 팔뚝도 말끔했다.아직도 불길이 자신을 덮친 그날의 느낌이 생생한데 그녀는 그 사고가 있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유영은 바닥에 앉아 양팔로 자신을 껴안고 중얼거렸다.“유영아, 하늘이 널 불쌍히 여겨 기회를 준 거야.”욕실을 나선 유영은 침대로 다가가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우리 이혼해.”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에 강이한이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은지한테 부탁해서 이혼 서류 준비시킬 거야. 못 믿겠으면 당신도 변호사 불러.”“대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강이한은 이 상황이
잠시 후, 소은지가 팩스로 이혼 서류를 보내왔다.이유영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사인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이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용인은 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간 뒤에 바로 외출했다고 답했다.이유영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팩스로 그의 회사에 이혼 서류를 보냈다. 서류를 확인한 비서가 다급히 그녀에게 연락했다.“사… 사모님, 대표님은 아직 출근 전입니다만….”“그 사람 도착하면 바로 사인하고 법원에서 만나자고 전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강이한의 비서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유영은 전화를 끊은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거울 속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누라가 예쁘다고 남자가 한눈을 팔지 않는 건 아니었다.아무리 예쁜 외모라도 질릴 때가 있는 법, 그때가 되면 남자들은 바깥의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이유영은 바로 차를 타고 법원 앞으로 가서 기다렸지만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강이한은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강이한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전화를 받았다. 영상 속 배경을 보니 회의 중인 듯했다.이유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나 법원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어. 대체 협의서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나타나는 거야?”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강이한에게로 쏠렸다.대표님이 이혼? 게다가 재산분할?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자,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잠깐의 통화만으로도 대표가 곧 이혼한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30분 쉬었다가 다시 진행하지.”남자는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가는 강이한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자,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사모님께서 지금 이혼을 제기하신 거 맞지?”“그렇게 온화한 분도 폭발할 때가 있구나.”“그럼 한 비서는 어떻
이유영은 홧김에 손을 번쩍 들고 남자의 귀뺨을 때렸다.남자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잡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오늘 아침부터 이상했어. 대체 무슨 일인지 이유는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강이한은 그제야 이유영이 단지 기분이 나쁜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줄곧 온화하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얌전한 현모양처였다. 정말 화가 나는 순간이 와도 그녀는 혼자 삭히고 오히려 먼저 그에게 다가와 줄 줄 아는 여자였다.이유영은 자신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곧 있으면 법원 직원들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야. 일단 서류부터 제출하고 다시 얘기하자.”“이유영!”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이유영은 매몰차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가슴을 밀쳤다. 하지만 남자는 태산처럼 요지부동이었다.강이한은 운전 기사에게 곧장 집으로 갈 것을 명령했다.어차피 기분이 엉망이라 돌아가서 회의를 계속 진행하기도 무리였다.돌아가는 길, 운전기사의 등 뒤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집에 도착한 뒤, 이유영과 강이한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이제 얘기해 봐.”“더 얘기할 것도 없어. 말하긴 뭘 말해?”반년 사이 비서와 바람이 난 사실을 온 청하시 사람들이 다 아는데 정작 그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해명조차 해주지 않았다.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이유영을 잡아먹을 것처럼 훑어보았다.그녀는 고집스럽게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남자의 표정이 점점 더 험하게 일그러졌다.“이유영, 세강 일가에게 이혼이란 존재할 수 없어. 사별이면 몰라도.”이유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그녀는 착잡한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그래서 지난 생에 나를 불에 태워 죽인 거니?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첫 이혼이면 되겠네. 아니면 나가서 죽거나.”강이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거만한 표정으로 이유영을 내려다보았다.왕의 기질을 타고난 이 남자는 화가 날 때면 항상 이
고용인이 점심식사를 식탁에 올렸다.강이한은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아 수저를 들지도 않았다.반면 이유영은 우아하게 꼭꼭 씹어서 맛있게 식사 중이었다. 이혼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던 여자가 이러고 있으니 강이한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전화를 끊은 그가 말했다.“오후에 남영에 출장 가야 해. 3일 정도 있을 거야.”그는 며칠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 며칠 사이에 기분을 정리하고 다시는 이 불쾌한 얘기를 꺼내지 않기를 바랐다.조용히 먹는 데만 집중하던 이유영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그 모습은 지금도 미치게 아름다웠다.강이한의 동공이 확 수축하고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결혼하고 3년이나 지났지만 그녀의 저런 모습은 여전히 그의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이유영은 그제야 과거에도 이날 강이한이 출장 갔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물론 한지음이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랴부랴 돌아왔지만.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그렇게 해. 마침 오후에 은지 만나서 그 한지음 씨를 찾아가 봐야겠어. 법률적으로 얘기할 것도 있고.”절대 강이한을 출장 가게 둘 수 없었다. 무조건 오늘은 그와 같이 있어야 한다.강이한의 참고 있던 분노가 그 순간에 폭발했다.“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당신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내 예전 모습 정말 기억해? 난 당신이 예전에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당신은 기억나?”뻔뻔하게 과거를 말하다니!강이한은 그제야 반년 동안 침묵만 지키고 있던 그녀가 쌓았던 불만을 한 번에 터뜨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는 이유영이 자신을 믿어줄 거라 생각했기에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잘 참고 있다가 갑자기 이혼이라니!“결국 그 일 때문이구나.”그들 사이에 신뢰는 굳건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착각이었다니!이유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건, 입을 꾹 다물었다.지금 와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우린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만 감으면 강이한과 한지음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과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재촉하던 그의 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7년의 달콤했던 연애와 3년간의 결혼 생활은 더 이상 떠올리기 싫었다.어제 오후, 그녀는 이혼 협의서를 필적 감정 센터로 보냈다. 아침에 깨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화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모든 준비가 끝난 뒤, 그녀는 소은지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소은지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한 오피스룩을 입고 옅은 화장을 한 그녀는 유영이 기억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이유영도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강이한과 결혼한 뒤에는 한 번도 저런 옷을 입지 않았다.매번 소은지를 만날 때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가 부러웠다.“먼저 들어가 있지 않고 왜 기다리고 있어?”“고귀하신 우리 세강 사모님이 워낙 비싼 곳을 예약해서 말이지. 회원 아니면 못 들어가잖아.”그 말에 유영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그녀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친구에게 사과했다.“미안해. 난 그런 줄도 몰랐어.”“장난이야.”소은지는 침울해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강이한과 함께한 뒤로 이유영은 점차 그의 세상에 완벽히 적응해 갔다.간단히 먹는 아침도 일반 직장인의 한달 월급을 육박했다.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두고 강이한의 돈 보고 결혼했다고 비난했다.“어쩌다가 생각을 바꾼 거야?”소은지가 커피잔을 들며 느긋하게 물었다.유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냥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반년 전, 소은지가 이혼을 처음 권유했을 때, 유영은 홧김에 3개월이나 그녀와 연락을 끊은 적 있었다.유영이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은지야, 전에는 미안했어. 사실 너한테 화낼 게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냥 두려웠었어.”그녀는 외부에 전해지는 소문이 진짜일까 봐 두려웠다.10년이나 사랑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게 될 수도 있는데 두려운 게 어쩌면 당연했다.소은지는 대수
“유영아, 나 때문에 저런 인간들이랑 싸울 필요 없어. 난 전혀 신경 안 써.”밖으로 나온 뒤, 소은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댁에서 친구를 괴롭힐까 봐 걱정했다.유영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날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야. 곧 이혼할 건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강이한을 위해 시댁에서 아무리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혀도 유영은 말대꾸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진심으로 다가가면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받아줄 거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댁의 횡포는 더 심해져만 갔다.핸드백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강이한의 연락이었다.“이거 봐. 그새를 못 참고.”유영은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희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강서희한테 다 들었을 거면서 왜 물어봐? 한지음이랑 둘이 같이 있던데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래?”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소은지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둘이 언제 이 정도로 사이가 나빠진 거야?”전화를 끊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영의 얼굴에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은지야, 일하는 곳까지 데려다줄 수 없을 것 같아. 나 먼저 갈게.”그녀는 친구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비록 그 친구들이 자신의 처지를 다 알고 있을지라도.소은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유영은 차로 돌아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불쾌한 목소리가 전해졌다.“지금 당장 본가로 와.”“싫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린 뒤,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했다. 그 뒤로 휴대폰 화면이 여러 번 깜빡였지만 그녀는 전부 무시로 일관했다.저택으로 돌아오자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살갑게
“내가 당신의 약혼녀라고 해서 무조건 약혼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박연준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이유영은 정말 강인한 여자였다.박연준은 그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결국 박연준은 이유영을 품에 꽉 안았다.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유영아, 넌 정말 마녀 같아.”그래, 이건 마녀다.이유영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박연준은 어쩔 수가 없었다.사실 10년이나 지나오면서 이유영은 강이한에게 철저히 실망했다. 그리고 강이한은 한 사람을 잃는 슬픔을 느꼈다.하지만 왜 박연준도 비슷한 느낌일까.“장혜주한테 더 조사하지 말라고 해.”박연준은 이유영을 더욱 세게 안고 얘기했다.“너랑 강이한 다 나보고 조사하지 말라고 하니까 정말 궁금하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그런 말 못 들어봤어?”“뭐.”“호기심이 죄라고.”가끔은 모르는 게 상책이다,그래서 박연준은 굳이 알 필요가 없으면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이미 몇 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때도 죄는 없었지만 죽을 뻔했지.”‘사실은 죽은 거지만.’저번 생은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었다. 자기 옆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말이다.“유영아!”“두 사람이 이렇게 나올수록 난 더 알아야겠어. 두 사람이 이렇게 뜻이 맞는 일이 뭣 때문인지.”“...”“아니면, 내가 두 사람의 한계를 건드린 거야?”한계.강이한과 박연준의 동일한 한계가 도대체 무엇인지.만약 그렇다면 정말 한번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한계가 아니야.”그의 말투는 매우 진중했다.이 순간, 이유영은 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박연준의 말투에서 아픔을 느낀 것만 같았다.‘아픔? 왜 아픈 거지? 도대체 뭐가?’“네가 내 한계야.”박연준의 말투는 더욱 의미심장해졌다.“...”그 순간 이유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윽고 표정도 차가워졌다.‘말은 잘
‘못 한다고?’못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거다. 한지음은 강이한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온유는 강이한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어떻게 쉽게 내어주겠는가이유영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유영아, 꼭 그래야겠어?”이온유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이온유가 그의 곁에 있을 때부터, 이유영은 더욱 끈질겨졌다. 이온유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말이다.이유영은 이온유에 대한 증오가 아주 깊었다. 하지만 이온유가 이유영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아는 강이한은 순간 가슴이 저렸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갔다.그녀와 이온유의 사이가 어떤지는 이미 강이한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지금도 대답을 못 하는 것이겠지....점심.박연준은 돌아오지 않았다.식탁 앞에 앉은 이유영은 고용인이 가져온, 백산 별장에서 자주 마시던 국을 마셨다. 식탁 위에는 이유영을 위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이건 뭐지? 아삭아삭한 게 맛있네.”이유영은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자세히 보니 점심의 음식들은 이유영이 처음 먹는 음식 같았다. 다만 맛을 내려고 신중을 가한 것이 보였다.“연꽃 뿌리입니다. 입에 맞는가요?”“음, 맛이 괜찮네. 이렇게 먹을 수도 있는 거구나.”이유영이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제야 연근처럼 구멍이 보이는 듯했다.“주인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고용인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이유영이 마음에 들어 하자 그들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이유영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얘기했다.“이런 날씨에 이런 것이 자라다니, 의외네.”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연꽃은 날이 좋은 곳에서만 자란다. 게다가 더운 곳에서 잘 자란다.연근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지만 연근은 날이 좋은 곳에서만 자라는데...“이건 모두 청하에서 가져온 겁니다.”“...”‘청하?’그 애기를 들은 이유영은 놀라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박연준은 돌아와서 이유영이 점심을 잘 먹었다는 말을 듣자 표정이 부드러워졌다.“오
이때 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또 다른 할 말 있어? 없으면 갈게. 난 바빠서.”말을 마친 이유영이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발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손목에서 힘이 느껴졌다.이유영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여진우의 사람더러 멈추라고 해.”결국 강이한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이유영이 이런 태도로 서주에 나타나 강이한과 박연준에게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더욱 많은 일들이 있었다.예를 들면 박연준이 이유영을 이용한 일이라거나,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접근하지 못한 원인이라거나...하지만 이런 상황이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이유영은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러니 강이한이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캠퍼스의 무궁화나무 아래서 강이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모르겠으나...하지만 이 뒤의 일은 그 무궁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그럼 네가 직접 알려줄래?”이유영이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그 미소는 부드러워 보였지만 강이한에게는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그녀의 눈빛은 이토록 집요했다.게다가 여진우의 사람이니 이 일을 무조건 조사해 낼 것이다.그해의 일에 대해서... 그분은 그 일이 좋지 않다고 느껴 신분과 존재를 모두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물론 서주에서 그 얘기를 다시 꺼내는 사람은 없지만 일어났던 일은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손목을 더욱 세게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이 뒤에 아무 사건도 없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유영아!”이유영이 손목을 빼낸 순간, 강이한이 이유영을 또다시 불러세웠다.“말하지 않을 거면 시간 낭비하지 마.”“서주에 남을 거면 내 곁으로 와. 박연준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지금 하는 일, 너한테 위험해.”강이한이 또박또박 얘기했다.“걱정해 줘서 고마워.”“나한테 복수하려고?”이유영이 발을 내디딘 순간, 강이한이 다시 물었다.“...”“내 곁으로 오면 네가 뭘 하든지 말리
자동차 안.이유영은 결국 나와서 강이한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손톱을 갈고 있었다.마치 예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강이한의 곁에 있으면서, 이유영은 항상 여유로웠으니까.“그 소식은 엔데스 현우가 알려준 거야?”결국 강이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 말투에서 강이한이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소식? 무슨 소식?’아마도 서류의 일일 것이다. 전에 전기봉을 엔데스 명우에게 팔아넘겼는데, 지금은...? 이유영이 박연준에게나 강이한에게나 다 잔인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을 쳐다보았다.“그래.”이유영은 빠르게 대답했다.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강이한을 쳐다보았다.밝은 표정의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표정이 굳었다.“너, 무슨 깡으로 인정하는 거야.”“인정해야지.”이유영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두운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유영이 얘기했다.“내가 얘기했었지?”“...”“난 솔직한 사람이라 안 할 건 안 하고 한 건 인정한다고. 10년이나 봐 왔는데 아직도 모르겠어?”“...”그 질문에 강이한은 숨통이 옥죄어오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모든 힘을 다해서 보복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그녀에 대한 강이한의 오해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그래, 이유영은 이런 방법으로 강이한에게 경고하는 것이다.전에는 한지음을 위해서, 저번 생이든 이번 생이든 한지음을 위해서 항상 이유영을 짓밟지 않았던가.강이한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이유영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왜? 이번에도 내가 부인하길 바라? 아니면, 내가 부인하면 믿을 거야?”‘믿는다고?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믿는다는 거지?’이유영의 말에 강이한의 세계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지금은 속이 시원해졌어?”일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유영이 서류를 찢어버린 덕에 강이한과 박연준은 골치 아픈 일만 많아졌다.“...”‘속 시원하냐고?’그 말을 들은 이유영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그들에게 골치 아픈 일을 조금
“너...”“유영아, 네가 밥을 잘 먹었으면 해서 난 엄청 애를 썼어.”그의 말투는 여전히 온화했다.이유영의 분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불쾌했다.“먹어, 응?”박연준은 부드럽게 말하면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네가 먹던 걸 내가 왜 먹어.”이유영은 그릇을 옆으로 비켜두었다.그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고용인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지금 주인님을 거절한 거야?’그 눈빛에 이유영은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박연준에게 얘기했다.“오해할 만한 행동하지 마.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잖아.”말을 마친 후, 숟가락을 내려놓은 후 일어났다.화가 난 이유영의 모습을 본 박연준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박연준은 일부러 이른 짓을 한 거다.요즘 이유영이 너무 심심해 보여서 가끔 이렇게 장난을 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침 식사가 끝난 후.박연준은 또 나갔다.이유영은 본인 때문에 서주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전에 문기원이 돌아왔다.그는 예쁘장한 선물함을 들고 와서 얘기했다.“아가씨, 이건 연준 님께서 드리는 겁니다. 저녁에 같이 연회에 참석하자고 하시네요.”“안 가요.”이유영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녀는 이런 연회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빠른 거절에 문기원이 약간 멍해졌다.이윽고 표정을 풀더니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이온유 씨는 일주일 뒤 퇴원합니다. 그분이 이온유 씨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더군요.”“당신...!”이유영은 이를 꽉 깨물고 문기원을 쳐다보았다.“오늘 밤의 연회는 연준 님에게 중요한 연회입니다. 잘 준비해 주세요.”말을 마친 문기원은 이유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갔다.이유영은 그 선물함을 쳐다보았다.문기원은 이온유의 일을 얘기하면서 귀띔해 준 것이다. 이온유 때문에, 이유영이 서주에 온 것이니까.그리고
“여진우의 사람들이 뭘 알아낸 거야.”강이한의 말투는 꽤 불쾌했다.문기원이 말한 것처럼 지금 가장 골치가 아픈 건 강이한이니까. 여진우의 사람들 실력은 인정해 줘야 했다.사실 강이한이나 박연준이나 다 여진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여진우의 사람이 무언가를 알아내서 바로 이유영에게 얘기한다면... 게다가 지금은 박연준의 사람까지 철수한 상태가 아닌가.“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도 아마 이한 님과 박연준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여진우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바로 차가운 표정을 드러냈다.“그러니까, 무조건 알고 있을 거라는 거네.”“네.”이시욱이 머리를 끄덕였다.확인해 보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강이한은 또 담배 몇 모금을 빨아들였다.지금 서재에는 온통 담배 연기뿐이어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지금 이유영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여진우의 사람 중 누가 있냐는 뜻이었다.강이한과 박연준 모두 여진우의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까 말이다.이시욱이 대답했다.“장혜주입니다.”“...”장혜주.그 이름을 들으니 머리가 아팠다.이건 여진우의 사람들 중 가장 철옹성 같은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진우를 위해 장혜주에게 다가갔다가 화를 입었다.여진우가 장혜주를 이유영에게 붙여주다니. 이유영을 보호해 주려는 건지 아니면 박연준과 강이한에게 보복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강이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시욱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진지하게 얘기했다.지금 강이한에게 있어서 골치 아픈 건 이유영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도 있었다.이유영처럼 중요한 사람이었다.“말해.”그 말투에는 어느새 짜증이 약간 묻어났다.“병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수술은 잘 성공했다고 합니다. 괜찮으면 다음 주에 퇴원해도 된다고 합니다.”이온유의 수술이 성공했다.
분명히, 이 일에 대해 박연준은 이유영에게 제대로 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문기원이 이전에 분석한 것처럼 되었다.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강이한이다.“...”‘박연준의 사람을 철수시킨다고? 그러니까 이 일은 박연준에게...’돌아서서 박연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술에 취한 박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아, 뭐가 밝혀지든 잊지 마, 너는 내 약혼자야.” 이유영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의 말에 대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이유영은 박연준에게서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지만 서주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점점 더 소름이 끼쳤다! ‘강이한, 그래!’박연준은 이유영 앞에서 꽤 취한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다.서재.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여러 번 피웠지만 마음속의 답답함은 가라앉지 않는다.“강이한이 너무 조급한 것 같습니다.” 문기원이 찡그린 얼굴로 박연준에게 말했다.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이유영은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거야.” 술에 취한 목소리 속에 약간의 후회가 섞여 있었다. 문기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연준 님.”“문기원.” “예.” “우리는 처음부터 그녀를 서주에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해.” 박연준이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깊은 목소리에서 문기원은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연준 님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 줄 몰랐겠죠.” ‘지금 같은 상황?’ 박연준이 웃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때는 어땠을까? 지금은 또 어떤 걸까!? 그러니 결국 이 사람이 어떤 계획을 세우든, 가능한 한 사람과 연관되거나 직접 접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지금처럼 변한 이유영의 모습은 예전의 그녀와 완전히 반대였다. 그녀의 끈기와 고집은 남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지금 가
장혜주의 전화를 끊은 후이유영은 온몸이 오싹해졌다. 박연준과 강이한의 사람들이 다 방해하고 있다고? 두 사람 모두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고 싶어 하는 걸까? 왜 그런 걸까? 강이한은 그렇다고 쳐도 박연준까지? 그들이 이러할수록 이유영은 더욱 알고 싶어졌다. ‘과연 이 모든 일의 진실은 무엇일까...?’밤이 되자 박연준이 10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이유영은 흰색 잠옷을 입고 계단에 서 있었다.박연준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그의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이었고, 이유영에게는... 그저 불쾌한 가면일 뿐이었다.“유영아, 이쪽으로 와줄래?” 박연준이 손짓을 했다.이유영은 기분 좋지 않은 얼굴로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박연준은 그녀가 계단에서 움직이지 않자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곳에 서 있지 말고, 나에게 와.” 그의 말투는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연인 사이처럼 말이다.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이유영에겐 독이 든 술처럼 느껴졌다. 박연준은 결국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가늘고 여린 허리를 끌어안았다.“살이 빠졌네.”“왜 방해한 거야?” 이유영이 차갑게 물었다.장혜주의 전화를 받은 이후, 이유영의 머릿속은 그동안의 수많은 장면들로 가득 찼다. 모든 장면은 아주 아름다웠다. 하지만 결국 현실은 이렇게 고통스러웠다.강이한이 한지음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가 처음 자신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그때 강이한은 그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바보 같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생각했다. 박연준은... 모든 일들이 그렇게 그럴듯하게 진행되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매 순간이 다소 기묘한 우연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우연들이 박연준의 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이유영을 안고 있는 박연준은 분명 술에 취해 있었지만, 이유영이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순간 굳어버렸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유영을 안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끊겨버렸어, 상대방이 너무 교활해.” 소은지가 말했다. “...”‘그래서 이 사흘 동안 박연준을 보지 못한 이유가, 박연준이 요즘 바빠서였구나.’이 삼일 동안 강이한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엔데스 명우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지금 그 문서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박연준과 강이한 쪽을 주시하게 만들어 두 사람은 더욱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소은지도 지금 상황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 문서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영아, 후회할 거야?” 소은지가 물었다. “...”‘후회?’ 그녀는 소은지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과 그녀는 10년을 함께했다. 그리고 박연준은 그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누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었겠는가? 이유영은 아니었다! “소은지, 너는 이해하지 못해.” “아니, 나는 이해해! 너의 이 감정이 어떤지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걱정되는 거야!” 소은지가 무겁게 말했다. “...”‘전후 관계를 말하는 건가?’ 소은지는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시작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소은지는 이 감정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부유한 가문 사이의 신분 차별과 어릴 적 자란 환경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소은지는 이혼 변호사로서 이런 헤어짐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헤어질 때는 미친 듯이 싸웠다. 하지만 이유영과 강이한같은 상황은 드물었다. 이런 복잡한 관계는 너무 얽히고설킨 것이다.“그만하자,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이유영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후회할까? 후회한다.강이한과의 시작을 후회했다. 소은지와의 통화를 막 끊자마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장혜주의 번호였다! 이유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유영 님.” “소식이 있어?” 전에 강이한과 박연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