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유영이 정국진과 함께 비행장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정국진과 이유영은 박연준을 보고 다 깜짝 놀랐다. 특히 정국진의 눈 밑에는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네가 연준이한테 전화했었어?”“아니, 아니요!”이유영은 허리가 경직되는 것 같았다. 이유영도 박연준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생각 중이었다.이유영과 외삼촌 사이의 케미에 따르면 외삼촌은 그녀가 사라진 이 반 달 동안의 행방을 절대로 아주 꼭꼭 감추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박연준을 보면, 그는 이유영이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뻔했다.“난 외삼촌이 유영 씨 데리러 안 오는 줄 알고 데리러 왔어요.”박연준은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였다.검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박연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청량하고 멋있었다. 비행장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많은 사람 중에서 그를 위해 눈길을 멈추는 여인이 적지 않았다.이유영은 외삼촌을 한눈 보고는 입을 열었다.“외삼촌?”“유영이 넌 연준이 차를 타.”정국진은 전혀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감정을 아주 깊게 잘 숨기며 말했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필경 이렇게 늦은 시간에 데리러 온 박연준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동안 이유영은 온갖 방법을 써서 박연준을 피했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 면전에 대고 대놓고 피하는 건, 이유영은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었다.결국, 이유영은 박연준의 차에 올라탔다.뒷좌석에서 박연준은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붙잡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비행기 안의 에어컨이 좀 낮았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이유영은 아주 밋밋한 말투로 말했다.그러고는 바로 주제를 따른 데로 돌렸다.“제가 오늘 돌아올 걸 어떻게 알았어요?”“이곳 파리에서 내가 그 정도 알아내는 건 몹시 어려운 일 아니에요.”“…”박연준의 말에 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파리에서 박연준은 항상 겸손하게 지냈지만, 박연준의 숨은 힘은 심지어 몇
박연준이 입을 열었다.“됐어요. 당신을 강요하진 않을게요.”“연준 씨,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요.”“…”박연준의 얼굴색은 더 어두워졌다.이유영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내다보며 더 이상 박연준을 보지 않았다. 지금 이때 그에게 눈길을 한 개 주는 것마저도 이유영에게 아주 큰 죄책감을 가져다주었다.전에는 외삼촌의 부추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유영은 자기와 박연준 사이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박연준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아직 과거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그리고 이번에 다시 퀘벡에 다녀온 후 이유영은 자기와 박연준의 관계에 대해 더욱 확고한 생각이 들었다.이유영과 박연준이 함께 하는 길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유영은 이전에 가시밭길을 겪은 적이 있어서 이젠 더 이상 용기가 없었다.앞날이 꽃길만은 아닌 걸 알게 된 이상, 이유영은 그 한 발짝을 내디딜 용기가 있을까?답은 없었다!지금의 그녀는 결국 예전이랑 달랐다.“유영 씨 지금 절 확실하게 거절하는 거예요?”박연준의 엄숙한 말투 속에는 몇 푼의 냉랭함이 추가되어 있었다.‘거절?’이유영은 두 눈을 감았다.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 주먹만 한 작은 얼굴을 생각하며 결국 마음을 굳게 먹었다.“저는 연준 씨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요.”“강이한 때문인가요?”박연준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아니요!”사실이었다. 강이한 때문에 그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었다.이 순간, 이 답을 하는 이유영의 태도는 아주 굳건했다. 하지만 그녀의 거절은 강이한과 한 톨의 상관도 없었다.“유영 씨, 저랑 완전히 선을 긋는 후의 결과가 어떤지 알고 있죠?”박연준은 ‘결과’ 이 두 글자에 강조를 주며 말했다.아주 평온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자동으로 그 두 글자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연준 씨 지금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이유영은 박연준의 말을 듣고 한 첫 반응이 바로 이거였다.‘날 협박하는 건가
우지와 우현은 돌아온 이유영을 보고 얼른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특히 우지는 입을 열고 말했다.“아가씨가 자리를 비운 반 달 동안에, 반산월의 가로등 전부를 다 아가씨 눈에 제일 적합한 색으로 바꿨습니다.”“네. 수고했어요.”“국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사모님의 지시대로 준비했는데 아가씨는 지금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씻고 나오시겠습니까?”“먼저 씻고 다시 나올게요!”이유영도 확실히 피곤했다.외숙모가 그렇게 먼 곳에 있으면서까지 자기를 신경 쓸 줄 이유영은 생각도 못 했다.이 반 달 동안, 이유영은 정말 힘들게 지냈다. 그래도 외숙모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지 외숙모마저 없었더라면 이유영은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지금 외숙모가 거기에 남아계시니 이유영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샤워하고 나온 이유영은 기다란 로브 가운을 입고 늘씬하고 흰 다리를 드러내고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우지랑 우현은 넋을 놓고 이유영을 보았다.정말이지 비록 이유영은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 다리는 정말 눈이 엄청 많이 갔다. 날씬하고 꼿꼿한 다리 때문에 전체적인 신체 비례도 좋아 보였다.“뭘 그렇게 봐요?”두 사람의 얼굴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이유영은 이상하다는 듯 두 사람을 보며 투덜거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아가씨는 갈수록 이뻐지는 것 같아요.”“…”“그러고 보니 사모님의 2년 동안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이유영은 이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우지의 말은 진심이었다. 외숙모는 몸조리에 아주 일가견이 있어서 이유영에게 여러 가지 보양식 국을 끓여주었다.보기에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지만 사실은 다 피부에 좋은, 여자의 몸에 좋은 국들이었다.이유영은 식탁에 앉았다.우지는 이유영이 이 반달 동안 제대로 잘 먹지 못한 것을 알고 특별히 이유영이 좋아하는 음식들만 가득 준비했다.“사실 이렇게 많이 준비 안 해도 되는데, 저는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이유영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그저 마음이 아플
하지만 강이한의 생각 밖인 건 이유영이 떠난 이후로 꼬박 반 달 동안 그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정말 오늘날의 이유영은 재주가 조금 있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서 그제야 통제 불능이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배웠다.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롱의 미소였다.“당신은 날 참 “바로 묻는 말에나 대답해!”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세졌다.“내가 당신한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어?”“아이를 보러 간 거야?”이유영이 시종 정면으로 물음에 대답하지 않자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더 거세졌다.“…”강이한의 물음에 이유영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리고 바로 안색을 회복하였다.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미세한 표정 변화도 강이한의 눈을 빠져나가진 못했다.강이한은 빠른 걸음으로 이유영에게 다가가 그녀를 식탁에서 끌어냈다. 이유영 앞에 놓였던 국물은 강이한 때문에 떨어져 바닥에 튀었다.외숙모가 주방에 당부해 놓은, 자기를 위해 만든 국물이 이렇게 낭비가 된 것을 본 이유영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짝!”이유영은 강이한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강이한은 그저 국물 한 그릇 때문에 이유영이 이렇게 자기한테 손찌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걸 따질 틈이 없었다.강이한은 한 손으로 이유영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 때문에는 강이한은 이유영 목 아래의 흉터들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강이한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지난번 차에서 강이한은 이미 이런 대면적의 화상 흉터들을 한번 보았었다. 하지만 이런 밝은 조명 아래서 이렇게 다시 보니, 그의 마음은 여전히 호되게 아팠다.강이한은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물었다.“아이, 아직 살아있지?”“아니! 오래전에 죽었어!”“이유영!”“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물어?”‘자격도 없는 놈!’이유영의 이런 날카로운 말에 강이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 아이에 관해 물을 자격이 없었다.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했다.“소은지 소식이랑 바꿀게. 응?”“
그리고 아이가 살아있다고 해도 강이한은 지금 소은지의 소식으로도 아이의 소식을 얻어낼 수 없었다.이로써 이유영의 마음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이한에 대해 일말의 미움도 남아있지 않는 게 아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 미웠다. 아주 미웠다.강이한 몸에 있는 뼈를 다 부수고 싶을 만큼 그가 미웠다.그리고 이유영이 강이한을 미워하는 건... 마땅한 일이었다. 지난번 생으로부터 지금의 생까지, 이유영이 강이한 때문에 잃은 게 얼마나 많은지 강이한이 제일 잘 알았다.“가자.”결국 강이한은 몸을 돌렸다.강이한의 말에 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가자고? 어딜?’“설마 그새 까먹었어? 반 달 전에 말했잖아. 이 2년 동안 당신이 박연준이랑 만난 시간만큼 나랑 같이 있어 주기로.”이렇게 하면 이유영은 소은지의 소식을 얻을 수 있었다.이 반달 동안, 이유영은 아주 바빴고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이한이랑 떨어져서 지낸 연유로 많이 냉정해졌다.“당신이 갖고 있는 소은지 소식, 정말 확실해?”이유영은 애써 평정심을 잡으며 물었다.다시 말해서 이유영은 그저 이 남자랑 계속 엮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은 바로 이유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꺼내서 뒤적뒤적하고는 핸드폰을 이유영에게 건넸다.이유영은 그가 넘겨주는 핸드폰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이유영의 인식 속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시각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분명 소은지랑 상관이 있는 것이라고 이유영은 생각했다.결국 이유영은 강이한의 핸드폰을 넘겨받아 손에 들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가슴은 다시 한번 조여들었다.“은지 왜 이래?”전에 강이한이 보여준 소은지의 낭패한 사진 때문에, 특히 소은지의 아주 넋이 나간 두 눈은 시시각각 이유영의 신경을 건드렸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의 핸드폰에는 소은지가 두 눈을 꼭 감고 병원의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핼쑥해진 얼굴만 보아도 소은지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침묵에 강이한은 기분이 나빴다. 그는 불쾌함을 몇 푼 담아 입을 열었다.“내가 당신보고 나랑 같이 있어 달라고 했지, 나한테 이렇게 눈치 주고 있어 달라고 한 게 아니야.”“그럼 나보고 뭐 더 어떻게 하라고?”‘뭐 어떻게 하라고?’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박연준을 어떻게 대했으면 나한테도 똑같이 대해!”“당신이 연준 씨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이유영의 직설적인 말은 비수가 되어 아주 꼿꼿하게 강이한의 심장을 저격했다.강이한은 아주 무섭게 이유영을 째려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더 말하면 안 되었다. 더 말하다가는 언젠가 이유영 때문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지금의 이유영은 아주 입이 날카롭기에 그지없었다.아무나 상대할 수 있는 그런 날카로움이 아니었다.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유영도 그제야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도원산.이유영은 차에서 내릴 때야 자기가 신발을 안 신은 걸 발견했다.정말 강이한 때문에 화가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이유영은 몸이 붕 뜨더니 강이한에게 가로 안겼다.이유영은 발버둥을 쳤다.“내려줘!”“정말 그래도 걸을 수나 있겠어?”“당신이 뭔 상관이야?”“이제 곧 상관이 있을 거야!”강이한은 이 말을 하고는 이유영을 안고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집사와 이시욱 등 사람들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온 것을 보고 긴장을 한 푼도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더욱 반짝 정신을 가다듬었다.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지금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 한바탕 싸울 수 있었다.이 두 사람의 모순이 도대체 언제 풀릴지도 모른 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사람보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미칠 게 뻔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고 곧장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나 이 방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당신 좋기는 잘 생각하고 말해.’“그게 무슨 뜻이야?”“당신 표현이 좋으면 그 사람 소식을 줄게.”“...”‘그 사람은 소은지!?’처음에 강이한은 한
위층에서 이유영은 화가나 돌아버릴 것 같았다.소은지가 다쳐서 다섯 바늘을 꿰맨 것만 생각하면 이유영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잡생각들로 가득했다.‘은지는 도대체 어쩌다가 다쳤지? 그리고 왜 꿰맸지?”이 많은 정보 때문에는 이유영은 전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나는 소은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한다고 했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안 했어!”“보장할 수는 있어?”“아니, 없어!”“...”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강이한의 답으로부터 소은지는 아마 아주 엄청난 인물을 건드렸다는 걸 이유영도 알아낼 수 있었다.아니면 강이한 조차도 소은지의 안전을 보장 못 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소은지의 일은 당신도 관여할 수 없어!”“...”이유영은 다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강이한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가슴이 멎는 것뿐만이 아니었다.심지어 두려움도 있었다.‘은지 도대체 어떤 인물을 건드린 거지? 왜 강이한마저도 자기가 건드릴 수 없다고 하지?’‘왜 관여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내가 예전에 당신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은지의 일에도 관여할 수 있어.”이유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왜 못해? 할 수 있어!’“그거랑 달라!”“다를 게 뭐가 있어. 당신도 전에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 말고는 정말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강이한은 골치가 아팠다.여자들은 다 뒤끝이 있다는 말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단 여자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잡고 언제까지 잔소리 해댈지 모른다.강이한도 정말 지긋지긋했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말이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강이한이 샤워하고 나와보니 이유영은 역시 침실에 있지 않았다.결국은 객실에서 이유영을 찾았다.불을 켜는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불빛
침묵하고 있는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일어나 불빛을 조금 어둡게 조절한 강이한은 이유영의 기운도 불빛 따라서 사그라든 것을 보았다.하지만 자신을 등지고 누운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가슴이 몹시 답답했다.그는 침대로 올라가 이유영의 뒤에 눕고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이유영이 거부하고 발버둥 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강이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사람은 분명 품속에 안겨 있지만 강이한은 마치 천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이런 거리감 때문에 강이한은 팔에 힘을 더 주어 이유영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유영아.”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이유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결국은 다시 강이한의 품속으로 돌아왔다. 2년... 외부인이 보기에는 2년이지만 강이한에게는 이게 몇 년 만이지?지난번 생에, 이유영이 식물인간이 된 후, 강이한이 요양원에서 이유영 곁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줬는지 본인도 모른다.그건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이었다!결국 이유영이 세상을 떴을 때, 강이한은 세상을 다 잃는 것 같았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생을 건너 다시 이유영을 쫓으러 왔다.하지만 이번 생에 다시 왔을 때 들은 건 역시 이유영의 부고 소식이었다.오늘날 이렇게 겨우겨우 다시 그녀를 품속에 안으니 강이한은 뭐가 됐든 이제 다시는 그녀를 놔주고 싶지 않았다.이날 저녁, 이유영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반면 강이한은 전례 없는 꿀잠을 잤다.아침에 일어난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안민한테 여기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전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강이한에게 뺏겼다.“오늘은 회사에 가지 마.”강이한의 말투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 아주 강력했다.이유영은 당연히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나 꼭 가야 해!”“로열 글로벌의 기초를 놓고 말해서, 당신이 회사에 하루 말고 일 년을 안 간다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유영의 곁에 머물러 있겠다고?이것은 이유영이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자기 말이 진심임을 결국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고 심지어 보름이 지나도 강이한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저 말없이 이유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강이한의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파리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고 서주의 상황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강이한은 매일 외출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그 의사는 고집이 워낙 세서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우천시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이유영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다른 의사들로부터 상태를 유지하는 데 그쳤다.강이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의사를 데려오겠다는 각오로 노력하고 있었다....한편, 서주에서 박연준이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이유영의 두 눈이 완전히 실명했을 수도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정국진 쪽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 원인은 알프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했다.“아직도 소식이 없니?”서재 안, 박연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문기원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 없습니다.”이유영의 소식은 단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박연준은 예상하지 못했다. 서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사라질 줄은.게다가 벌써 보름 가까이 아무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대체 어디로 데려간 걸까?”박연준은 미간을 짙게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이 소식을 들은 일주일 동안, 박연준은 밤마다 뒤척이며 이유영의 걱정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이유영의 시력이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만약 알프산의 사건으로 인해 시력이 급격히 더 나빠진 것이라면...박연준은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점점 조여 왔다.“찾아볼 곳은 다 뒤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박
강이한은 알아챘다. 이유영이 일부러 강이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걸.강이한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일부러 화를 돋워 강이한을 떠나보내려는 의도였다.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강이한이 설마 다 알아챈 건가?“10년이란 세월이야.”강이한은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어떤 관계도 서로를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10년이었다.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든 강이한은 이유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점심 식사.무거운 침묵 속에서 점심시간이 흘렀다. 이유영이 가장 좋아하던 우천시의 지역 요리였지만 강이한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모든 음식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말을 너무 많이 했던 걸까? 이유영은 오후 내내 강이한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유영은 철저히 강이한을 무시하고 있었다.강이한은 우천시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거리들을 사왔다. 우천시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며 음식을 내밀었지만, 이유영은 한 입도 손대지 않았다.“유영아.”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강이한도 알고 있었다.이유영과 얽힌 수많은 일들만으로도 이유영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지금은 연서의 사건까지 얽혀 있으니...이유영의 마음속 상처는 단시간에 치유될 수 없을 만큼 깊었다.“좋은 기분을 유지하지 않으면 눈도 빨리 낫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내 곁에서 빨리 벗어나지도 못할 거야. 잘 생각해 봐.”“...”강이한은 말하면서 싸늘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 남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강이한과 잘 지내지 않으면 강이한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인 건가?아니면 이유영의 눈이 다 나을 때까지 계속 곁에 있겠다는 뜻인 건가?“흥!”이유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웃는 듯한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럴 시간이 있긴
이 정도도 못 견디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유영은? 이유영은 이전에 강이한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견디고 참아내야 했던가? 강이한은 그런 기억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이유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손 놔!”“네 상태가 나아지기만 하면, 네가 뭘 말하든 다 받아들일게!”강이한은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것은 이유영의 눈이 나아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지금 이유영의 감정이 더 격해지면 안 됐다. 강이한은 진심으로 이유영이 걱정되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강이한은 답답했다. 이유영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이 손 놓으라고!”이유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완강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유영의 단호하고 강한 의지는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가장 진실된 이유영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강이한의 머릿속에 지난 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한 건 아마 이유영이 실명한 이후였던 것 같았다.실명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이한을 믿었다. 그때를 떠올릴수록 강이한의 마음은 점점 더 쓸쓸해졌다. 이유영이 말했듯 이유영은 강이한에게 정말 많은 기회를 주었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이 준 기회들을 한 번도 소중하게 여겼던 적이 없었다.강이한 스스로가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유영을 조금도 탓할 수 없었다.“유영아!”강이한은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떼었지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나 이유영이 다칠까 봐 강이한은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이유영은 더듬거리며 숟가락을 잡으려 했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을 돕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이유영은 냉랭하게 말했다.“모두 나가줘.”“아가씨!”“나 혼자 할 수 있어요.”이유영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우지와 우현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영아.”강이한은 따스하면서도 아린 눈빛으로 온전히 자신을 밀어내려는 이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영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두 사람의 과거는 차마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더욱이 말로 꺼낼 수도 없는 상처였다.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이미 아물어가는 흉터를 억지로 다시 뜯어내는 기분이었다.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 다시 스며들 뿐이었다.하지만 피할 수 없었고 그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네 눈이 나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강이한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결국 삼켜버렸다.그 목소리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당장 의사를 만날 수도 없었다. 강이한의 말처럼, 그 의사는 정말 괴짜일지도 몰랐다.결국 오늘도 헛걸음이었던 건가?점심 식사 자리에서.“도와줄게.”이유영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강이한이 이유영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유영 앞에 있던 컵이 손이 닿자마자 뒤집혀 버렸고 컵 안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우지와 우현이 서둘러 다가와 물잔을 정리했다.그 사이, 강이한은 이유영을 안아 들어 올렸다. 덕분에 이유영은 물이 쏟아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은 순간, 이유영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강이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던 말은 거짓말이 분명했다.어떻게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유영아.”이유영은 여전히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지난 생에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던 이유영도 여전히 어둠은 공포였다.사실, 어둠 속의 삶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찬란한 햇빛 아래서 살아가길 원하니까.다양한 색채를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말이다. 이유영 역시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은...강이한의 기억 속엔 지난 생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느꼈던 절망이 여전히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때의 강이한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강이한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소문으로만 듣던 ‘염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다.그 시간 동안 우지와 우현은 휴대전화를 빌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강이한답게 이미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아침에 나갈 때부터 강 선생님의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했어요. 외부 사람들과 연락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우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둘러싼 모든 외부 연락을 완벽히 차단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이유영은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앞이 캄캄한 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우지가 이유영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아가씨.”“네?”“적어도 부인께는 아가씨 소식을 전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임소미를 말하는 것이었다.우지와 우현은 임소미가 이유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애타게 이유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아이를 잃은 뒤로, 임소미는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그리고 현재 이런 상황까지 겹쳤으니, 임소미의 심정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할지는 뻔한 일이었다.이유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네.”이유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이한에게 할 말은 이미 다 했지만, 그 남자는 끝내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밖에 비가 아직도 오고 있나요?”“네.”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우지의 대답을 듣고 나니 우천시의 비가 얼마나 지독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이유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빗소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마음마저 차분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강이한이 돌아왔을 때, 이유영은 처마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우지가 걸쳐준 망토를 두른 채, 조용히 비가 오는 풍경과 녹아든 모습이었다.강이한의 몸에서는 축축한 빗물 냄새가 났다.강이한이 다가오자마자 이유영은 그 냄새를 감지했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런 자신의 반응이 너무 싫
이곳이 싫어진 이유가 강이한과 함께 있기 때문일까? 한때는 이런 곳에서 강이한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었다.“우지를 불러줘!”이유영은 강이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이제는 견딜 수 없었다.이유영은 이 모든 것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아까 말했잖아. 우지랑 우현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러 나갔어. 여기 지역은 아침으로 특산 요리가 많거든, 그래서 주방에는 따로 요청하지 않았어.”“...”이유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의 이 침묵과 순응은 강이한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이유영은 차라리 말없이 기다리는 쪽을 택했고 절대로 강이한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예전에 아무리 바쁜 아침을 보냈어도 강이한은 이유영이 아침에 어떤 루틴을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내가 화장실까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이유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이러면 몸에 좋지 않아. 그냥 가자.”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과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화제를 돌렸다.“네가 우지 씨와 우현 씨의 핸드폰을 가져갔지, 그렇지?”강이한은 잠시 멈칫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래.”“부모님께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드리는 게 맞지 않아?”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이미 분노가 쌓여 있었다. 어젯밤 우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터질 것 같았다.강이한은 여전했다. 여전히 타인의 감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에게 어떤 짓까지 했는지, 그 기억은 이제 이유영에게 있어서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이 되었다.하지만 강이한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미 쪽지를 남겼어. 네가 눈 치료를 받으러 갔다는 건 부모님도 알고 계실 거야.”“...”“치료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 줄 거야.”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듣고 차갑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모든 행방을 전부 숨겼다는 거잖아?”이유영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다음 날 아침, 이유영은 지붕 위에서 여전히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옆에서 느껴지던 온기 역시 그대로였다. 이유영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강이한이 살짝 안으며 말했다.“깼어?”“당장 떨어져!”어젯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잠들었지만, 이 남자는 대체 어디서 이런 뻔뻔함이 나오는 걸까? 이유영이 몸을 움직이려 하자 강이한의 큰 손이 이유영의 손을 단단히 감싸며 태연하게 말했다.“움직이지 마. 춥잖아.”이불 밖으로 팔을 뻗자 싸늘한 한기가 순간적으로 스며들었다.우천시는 여름에 오면 굉장히 쾌적하다고 한다. 전통 가옥은 단열 효과가 뛰어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강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이유영의 짜증과는 반대로 강이한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부드러운 인내심이 배어 있었다.강이한은 마치 오랜 시간 이런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유영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일어날래? 내가 옷 입는 거 도와줄게!”“우지 씨를 불러.”시야를 잃은 이유영의 성격은 예전보다 한층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전히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으니, 이유영의 화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태연히 대답했다.“우지와 우현은 나갔어.”나갔다고? 말도 안 돼!우지는 이유영이 강이한과 단둘이 있기를 꺼린다는 걸 잘 알았기에, 늘 둘 중 한 명은 곁에 남아 있으려 했다.“강이한!”그러나 강이한은 이유영의 화난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여유롭게 말했다.“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나랑 조금 더 누워 있어.”“...”이유영은 비록 자신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강이한의 농담 섞인 말에 자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강이한이 옷을 입혀주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상황 같았지만 강이한은 의외로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강이한은 이곳의 기
임소미가 자리를 비운 서재.정국진은 여진우와 마주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이번 일, 넌 어떻게 보니?”이유영을 데리고 간 강이한에 대한 이야기였다.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번에는 정말 모든 걸 내던졌네요.”이유영을 위해 강이한은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서주의 상황이 이런 와중에 이유영을 데려간 것을 보면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이유영이 차지하는 자리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 사이의 시작은 ‘연서’라는 이름의 여자로 인해 엮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과정은 완전히 변질되었다.이유영은 이미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그 여자의 그림자가 아니었다.정국진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업보지.”이게 업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놓지 못했다. 이러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월이가 하루 종일 엄마를 찾더라.”정국진은 월이의 이야기를 하며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강이한이 과거 이온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강이한이 서주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유영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갔다고 해도 아버지로서 강이한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다.“곧바로 찾아내겠습니다.”여진우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해.”임소미가 생각했던 것처럼, 정국진 역시 아버지로서 이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앞섰다.이유영은 강이한 옆에서 한 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니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우천시.비가 내리고 있었다.전통 가옥의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밤공기 속에 은은하게 울렸다. 그 빗소리는 묘하게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우지와 우현은 이유영의 옆방에 있었다. 이유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유영이 처음에는 괜찮다
강이한은 조용히 이유영을 방으로 데려다주었다.방 안에서는 이미 우지와 우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한이 문밖으로 나가자, 이유영이 차분히 물었다.“연락해 봤어요?”정국진과 임소미와의 연락을 의미했다.“아가씨, 모르셨나요? 우리가 여기로 올 때 강 선생님이 우리의 휴대폰을 전부 통제하셨어요!”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조금 전까지 차분하던 이유영의 표정은 우지와 우현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굳어졌다.강이한, 제정신이 아니구나!우지가 말을 이었다.“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가씨의 눈이 나아질 때까지는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하라고 하셨어요!”이유영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이 강이한!이게 대체 뭐야? 늘 그랬듯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거야?지금 상황에서 강이한이 정말 몰래 이유영을 데려온 거라면 백산 별장 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그렇다면 부모님 쪽은...!이유영이 생각했던 대로였다.아침부터 지금까지, 임소미와 정국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특히 임소미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정국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때, 여진우가 돌아왔다.임소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때? 소식 있어?”‘소식’은 이유영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임소미는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애초에 강이한은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임소미와 정국진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강이한 옆에 있으면 사건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말이다.“없어요.”하지만 여진우가 가져온 소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그 말은 임소미의 이미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강이한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춘 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강이한이라는 인물은 누구에게나 항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임소미의 초조함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