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와 우현은 돌아온 이유영을 보고 얼른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특히 우지는 입을 열고 말했다.“아가씨가 자리를 비운 반 달 동안에, 반산월의 가로등 전부를 다 아가씨 눈에 제일 적합한 색으로 바꿨습니다.”“네. 수고했어요.”“국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사모님의 지시대로 준비했는데 아가씨는 지금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씻고 나오시겠습니까?”“먼저 씻고 다시 나올게요!”이유영도 확실히 피곤했다.외숙모가 그렇게 먼 곳에 있으면서까지 자기를 신경 쓸 줄 이유영은 생각도 못 했다.이 반 달 동안, 이유영은 정말 힘들게 지냈다. 그래도 외숙모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지 외숙모마저 없었더라면 이유영은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지금 외숙모가 거기에 남아계시니 이유영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샤워하고 나온 이유영은 기다란 로브 가운을 입고 늘씬하고 흰 다리를 드러내고 계단을 내려왔다. 이에 우지랑 우현은 넋을 놓고 이유영을 보았다.정말이지 비록 이유영은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 다리는 정말 눈이 엄청 많이 갔다. 날씬하고 꼿꼿한 다리 때문에 전체적인 신체 비례도 좋아 보였다.“뭘 그렇게 봐요?”두 사람의 얼굴색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이유영은 이상하다는 듯 두 사람을 보며 투덜거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아가씨는 갈수록 이뻐지는 것 같아요.”“…”“그러고 보니 사모님의 2년 동안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이유영은 이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우지의 말은 진심이었다. 외숙모는 몸조리에 아주 일가견이 있어서 이유영에게 여러 가지 보양식 국을 끓여주었다.보기에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지만 사실은 다 피부에 좋은, 여자의 몸에 좋은 국들이었다.이유영은 식탁에 앉았다.우지는 이유영이 이 반달 동안 제대로 잘 먹지 못한 것을 알고 특별히 이유영이 좋아하는 음식들만 가득 준비했다.“사실 이렇게 많이 준비 안 해도 되는데, 저는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이유영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그저 마음이 아플
하지만 강이한의 생각 밖인 건 이유영이 떠난 이후로 꼬박 반 달 동안 그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정말 오늘날의 이유영은 재주가 조금 있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서 그제야 통제 불능이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배웠다.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롱의 미소였다.“당신은 날 참 “바로 묻는 말에나 대답해!”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세졌다.“내가 당신한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어?”“아이를 보러 간 거야?”이유영이 시종 정면으로 물음에 대답하지 않자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더 거세졌다.“…”강이한의 물음에 이유영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리고 바로 안색을 회복하였다.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미세한 표정 변화도 강이한의 눈을 빠져나가진 못했다.강이한은 빠른 걸음으로 이유영에게 다가가 그녀를 식탁에서 끌어냈다. 이유영 앞에 놓였던 국물은 강이한 때문에 떨어져 바닥에 튀었다.외숙모가 주방에 당부해 놓은, 자기를 위해 만든 국물이 이렇게 낭비가 된 것을 본 이유영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짝!”이유영은 강이한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강이한은 그저 국물 한 그릇 때문에 이유영이 이렇게 자기한테 손찌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걸 따질 틈이 없었다.강이한은 한 손으로 이유영의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 때문에는 강이한은 이유영 목 아래의 흉터들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강이한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지난번 차에서 강이한은 이미 이런 대면적의 화상 흉터들을 한번 보았었다. 하지만 이런 밝은 조명 아래서 이렇게 다시 보니, 그의 마음은 여전히 호되게 아팠다.강이한은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 물었다.“아이, 아직 살아있지?”“아니! 오래전에 죽었어!”“이유영!”“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물어?”‘자격도 없는 놈!’이유영의 이런 날카로운 말에 강이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실… 아이에 관해 물을 자격이 없었다.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했다.“소은지 소식이랑 바꿀게. 응?”“
그리고 아이가 살아있다고 해도 강이한은 지금 소은지의 소식으로도 아이의 소식을 얻어낼 수 없었다.이로써 이유영의 마음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이한에 대해 일말의 미움도 남아있지 않는 게 아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 미웠다. 아주 미웠다.강이한 몸에 있는 뼈를 다 부수고 싶을 만큼 그가 미웠다.그리고 이유영이 강이한을 미워하는 건... 마땅한 일이었다. 지난번 생으로부터 지금의 생까지, 이유영이 강이한 때문에 잃은 게 얼마나 많은지 강이한이 제일 잘 알았다.“가자.”결국 강이한은 몸을 돌렸다.강이한의 말에 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가자고? 어딜?’“설마 그새 까먹었어? 반 달 전에 말했잖아. 이 2년 동안 당신이 박연준이랑 만난 시간만큼 나랑 같이 있어 주기로.”이렇게 하면 이유영은 소은지의 소식을 얻을 수 있었다.이 반달 동안, 이유영은 아주 바빴고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이한이랑 떨어져서 지낸 연유로 많이 냉정해졌다.“당신이 갖고 있는 소은지 소식, 정말 확실해?”이유영은 애써 평정심을 잡으며 물었다.다시 말해서 이유영은 그저 이 남자랑 계속 엮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은 바로 이유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핸드폰을 꺼내서 뒤적뒤적하고는 핸드폰을 이유영에게 건넸다.이유영은 그가 넘겨주는 핸드폰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이유영의 인식 속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시각에 강이한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것은 분명 소은지랑 상관이 있는 것이라고 이유영은 생각했다.결국 이유영은 강이한의 핸드폰을 넘겨받아 손에 들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가슴은 다시 한번 조여들었다.“은지 왜 이래?”전에 강이한이 보여준 소은지의 낭패한 사진 때문에, 특히 소은지의 아주 넋이 나간 두 눈은 시시각각 이유영의 신경을 건드렸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의 핸드폰에는 소은지가 두 눈을 꼭 감고 병원의 병상에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핼쑥해진 얼굴만 보아도 소은지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을
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침묵에 강이한은 기분이 나빴다. 그는 불쾌함을 몇 푼 담아 입을 열었다.“내가 당신보고 나랑 같이 있어 달라고 했지, 나한테 이렇게 눈치 주고 있어 달라고 한 게 아니야.”“그럼 나보고 뭐 더 어떻게 하라고?”‘뭐 어떻게 하라고?’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박연준을 어떻게 대했으면 나한테도 똑같이 대해!”“당신이 연준 씨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이유영의 직설적인 말은 비수가 되어 아주 꼿꼿하게 강이한의 심장을 저격했다.강이한은 아주 무섭게 이유영을 째려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더 말하면 안 되었다. 더 말하다가는 언젠가 이유영 때문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지금의 이유영은 아주 입이 날카롭기에 그지없었다.아무나 상대할 수 있는 그런 날카로움이 아니었다.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유영도 그제야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도원산.이유영은 차에서 내릴 때야 자기가 신발을 안 신은 걸 발견했다.정말 강이한 때문에 화가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이유영은 몸이 붕 뜨더니 강이한에게 가로 안겼다.이유영은 발버둥을 쳤다.“내려줘!”“정말 그래도 걸을 수나 있겠어?”“당신이 뭔 상관이야?”“이제 곧 상관이 있을 거야!”강이한은 이 말을 하고는 이유영을 안고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집사와 이시욱 등 사람들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온 것을 보고 긴장을 한 푼도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더욱 반짝 정신을 가다듬었다.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지금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 한바탕 싸울 수 있었다.이 두 사람의 모순이 도대체 언제 풀릴지도 모른 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사람보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미칠 게 뻔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고 곧장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나 이 방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당신 좋기는 잘 생각하고 말해.’“그게 무슨 뜻이야?”“당신 표현이 좋으면 그 사람 소식을 줄게.”“...”‘그 사람은 소은지!?’처음에 강이한은 한
위층에서 이유영은 화가나 돌아버릴 것 같았다.소은지가 다쳐서 다섯 바늘을 꿰맨 것만 생각하면 이유영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잡생각들로 가득했다.‘은지는 도대체 어쩌다가 다쳤지? 그리고 왜 꿰맸지?”이 많은 정보 때문에는 이유영은 전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나는 소은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한다고 했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안 했어!”“보장할 수는 있어?”“아니, 없어!”“...”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강이한의 답으로부터 소은지는 아마 아주 엄청난 인물을 건드렸다는 걸 이유영도 알아낼 수 있었다.아니면 강이한 조차도 소은지의 안전을 보장 못 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소은지의 일은 당신도 관여할 수 없어!”“...”이유영은 다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강이한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가슴이 멎는 것뿐만이 아니었다.심지어 두려움도 있었다.‘은지 도대체 어떤 인물을 건드린 거지? 왜 강이한마저도 자기가 건드릴 수 없다고 하지?’‘왜 관여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내가 예전에 당신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은지의 일에도 관여할 수 있어.”이유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왜 못해? 할 수 있어!’“그거랑 달라!”“다를 게 뭐가 있어. 당신도 전에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 말고는 정말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강이한은 골치가 아팠다.여자들은 다 뒤끝이 있다는 말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단 여자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잡고 언제까지 잔소리 해댈지 모른다.강이한도 정말 지긋지긋했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말이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강이한이 샤워하고 나와보니 이유영은 역시 침실에 있지 않았다.결국은 객실에서 이유영을 찾았다.불을 켜는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불빛
침묵하고 있는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일어나 불빛을 조금 어둡게 조절한 강이한은 이유영의 기운도 불빛 따라서 사그라든 것을 보았다.하지만 자신을 등지고 누운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가슴이 몹시 답답했다.그는 침대로 올라가 이유영의 뒤에 눕고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이유영이 거부하고 발버둥 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강이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사람은 분명 품속에 안겨 있지만 강이한은 마치 천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이런 거리감 때문에 강이한은 팔에 힘을 더 주어 이유영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유영아.”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이유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결국은 다시 강이한의 품속으로 돌아왔다. 2년... 외부인이 보기에는 2년이지만 강이한에게는 이게 몇 년 만이지?지난번 생에, 이유영이 식물인간이 된 후, 강이한이 요양원에서 이유영 곁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줬는지 본인도 모른다.그건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이었다!결국 이유영이 세상을 떴을 때, 강이한은 세상을 다 잃는 것 같았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생을 건너 다시 이유영을 쫓으러 왔다.하지만 이번 생에 다시 왔을 때 들은 건 역시 이유영의 부고 소식이었다.오늘날 이렇게 겨우겨우 다시 그녀를 품속에 안으니 강이한은 뭐가 됐든 이제 다시는 그녀를 놔주고 싶지 않았다.이날 저녁, 이유영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반면 강이한은 전례 없는 꿀잠을 잤다.아침에 일어난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안민한테 여기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전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강이한에게 뺏겼다.“오늘은 회사에 가지 마.”강이한의 말투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 아주 강력했다.이유영은 당연히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나 꼭 가야 해!”“로열 글로벌의 기초를 놓고 말해서, 당신이 회사에 하루 말고 일 년을 안 간다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큰 웨이브 파마에 아주 매혹적인 몸매를 갖고 있었다.“잘됐네. 너 이제 여자 보는 눈이 점점 좋아졌네!”“...”“전에 한지음 씨보다 훨씬 낫네. 이봐, 취향이 아주 크게 발전했어!”강이한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이 여자도 참, 왜 아무 때나 한지음 얘기를 꺼내는 거지?’이 생각이 들자 강이한은 머리가 아팠다.“여기 이분은 의사 선생님이야!”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유신비 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한지 생각이 났다.저번에 소군리 의사가 소개했었던 실력이 아주 뛰어난 의사 이름이 바로 유신비였다.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아, 이분이 바로 그 소문으로만 듣던 강 씨 사모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강 씨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자, 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저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이지 강 씨 사모님이 아니에요.”인사를 건네고 악수하면서 손을 잡았을 때, 두 사람 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유신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군요.”사적인 대화는 여기에서 끝을 맺었다.그리고 유신비가 입을 열었다.“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먼저 검사부터 할까요?”검사!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 있는 흉터들을 전부 다 없애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분고분 말을 들을 이유영이 아니었다.“필요 없어요.”“유영아!”“강이한 당신은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없어지면 당신이 한 그 죄들도 다 같이 사라질 줄 아나 봐?”“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강이한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이유영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이유영은 웃었다. 아주 비웃음이 가득한 웃음이었다.“유신비 씨, 그냥 돌아가 주세요.”“저 일정이 아주 빠듯해요. 지금 이렇게 저를 보내면 아마 앞으로 한 2년 동안 절 보지 못할 건데 확실해요?”“네! 확실해요.”태도가 아주 굳건한 두 마디였다.유신비는 아주 거만한 의사였다. 그래서 이유영의 대답을 듣고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바
이유영이 더 몰랐던 건 강이한은 생을 건너 이번 생으로 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당신한테 건강검진 의사를 불렀어!”결국 강이한의 말소리가 들렸다.병원 쪽에서 이유영의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특히 어젯밤, 이유영이 잠든 후 새벽 때 그녀는 땀이 흠뻑 나서 베개까지 다 적셨다.이런 신체 상황인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걸 강이한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건강검진 해줄 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다.“시간 낭비하지 마!”“당신은 정말 당신 몸의 이상을 못 느꼈어?”이유영은 강이한을 대꾸하기도 귀찮아 바로 집을 나서서 회사로 갔다. 안민은 이유영이 불러 이미 도착해 있었고 루이스도 와 있었다.도원산에서 이유영을 픽업한 루이스와 안민은 다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루이스!”“네! 아가씨.”“혹시 소은지 파리에 있는 게 아닐까요?”이유영은 아주 심오한 말투로 물었다.어젯밤에 본 소은지의 모습과 강이한이 소식을 알아내는 속도를 종합해 보니 이유영은 소은지가 파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제일 먼저 파리부터 뒤졌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사람을 찾지 못하지 그제야 수색 범위를 해외로까지 확장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파리요?”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병원부터 뒤져봐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병원뿐만이 아니었다.어젯밤에 비록 강이한이 제대로 밝힌 건 아니었지만 이유영은 그에게서 얻은 정보 중 하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그건 바로 파리에 있는 귀족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강이한이 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관여할 수 없다는 거지?’유일한 답은 상대방이 아주 강력하게 나올 것이라는 거였다.도대체 누가 소은지랑 이렇게 원한이 있는지 이유영은 이 근원을 조사해 내야 했다.“네!”“그리고 이 몇 년 동안에 소은지가 맡았던 사건 중에 파리랑 연관이 되는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