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유영의 이런 침묵에 강이한은 기분이 나빴다. 그는 불쾌함을 몇 푼 담아 입을 열었다.“내가 당신보고 나랑 같이 있어 달라고 했지, 나한테 이렇게 눈치 주고 있어 달라고 한 게 아니야.”“그럼 나보고 뭐 더 어떻게 하라고?”‘뭐 어떻게 하라고?’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박연준을 어떻게 대했으면 나한테도 똑같이 대해!”“당신이 연준 씨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이유영의 직설적인 말은 비수가 되어 아주 꼿꼿하게 강이한의 심장을 저격했다.강이한은 아주 무섭게 이유영을 째려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더 말하면 안 되었다. 더 말하다가는 언젠가 이유영 때문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지금의 이유영은 아주 입이 날카롭기에 그지없었다.아무나 상대할 수 있는 그런 날카로움이 아니었다.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유영도 그제야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도원산.이유영은 차에서 내릴 때야 자기가 신발을 안 신은 걸 발견했다.정말 강이한 때문에 화가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이유영은 몸이 붕 뜨더니 강이한에게 가로 안겼다.이유영은 발버둥을 쳤다.“내려줘!”“정말 그래도 걸을 수나 있겠어?”“당신이 뭔 상관이야?”“이제 곧 상관이 있을 거야!”강이한은 이 말을 하고는 이유영을 안고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집사와 이시욱 등 사람들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온 것을 보고 긴장을 한 푼도 늦추지 않았다. 심지어 더욱 반짝 정신을 가다듬었다.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지금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든 한바탕 싸울 수 있었다.이 두 사람의 모순이 도대체 언제 풀릴지도 모른 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사람보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미칠 게 뻔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고 곧장 자기의 침실로 들어갔다.“나 이 방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당신 좋기는 잘 생각하고 말해.’“그게 무슨 뜻이야?”“당신 표현이 좋으면 그 사람 소식을 줄게.”“...”‘그 사람은 소은지!?’처음에 강이한은 한
위층에서 이유영은 화가나 돌아버릴 것 같았다.소은지가 다쳐서 다섯 바늘을 꿰맨 것만 생각하면 이유영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잡생각들로 가득했다.‘은지는 도대체 어쩌다가 다쳤지? 그리고 왜 꿰맸지?”이 많은 정보 때문에는 이유영은 전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나는 소은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게 한다고 했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안 했어!”“보장할 수는 있어?”“아니, 없어!”“...”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강이한의 답으로부터 소은지는 아마 아주 엄청난 인물을 건드렸다는 걸 이유영도 알아낼 수 있었다.아니면 강이한 조차도 소은지의 안전을 보장 못 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소은지의 일은 당신도 관여할 수 없어!”“...”이유영은 다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강이한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가슴이 멎는 것뿐만이 아니었다.심지어 두려움도 있었다.‘은지 도대체 어떤 인물을 건드린 거지? 왜 강이한마저도 자기가 건드릴 수 없다고 하지?’‘왜 관여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내가 예전에 당신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 은지의 일에도 관여할 수 있어.”이유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그래. 왜 못해? 할 수 있어!’“그거랑 달라!”“다를 게 뭐가 있어. 당신도 전에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 말고는 정말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강이한은 골치가 아팠다.여자들은 다 뒤끝이 있다는 말이 정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단 여자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잡고 언제까지 잔소리 해댈지 모른다.강이한도 정말 지긋지긋했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말이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강이한이 샤워하고 나와보니 이유영은 역시 침실에 있지 않았다.결국은 객실에서 이유영을 찾았다.불을 켜는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불빛
침묵하고 있는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일어나 불빛을 조금 어둡게 조절한 강이한은 이유영의 기운도 불빛 따라서 사그라든 것을 보았다.하지만 자신을 등지고 누운 이유영을 보고 강이한은 가슴이 몹시 답답했다.그는 침대로 올라가 이유영의 뒤에 눕고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이유영이 거부하고 발버둥 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강이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사람은 분명 품속에 안겨 있지만 강이한은 마치 천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이런 거리감 때문에 강이한은 팔에 힘을 더 주어 이유영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유영아.”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이유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결국은 다시 강이한의 품속으로 돌아왔다. 2년... 외부인이 보기에는 2년이지만 강이한에게는 이게 몇 년 만이지?지난번 생에, 이유영이 식물인간이 된 후, 강이한이 요양원에서 이유영 곁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줬는지 본인도 모른다.그건 가슴을 쥐어뜯는 아픔이었다!결국 이유영이 세상을 떴을 때, 강이한은 세상을 다 잃는 것 같았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생을 건너 다시 이유영을 쫓으러 왔다.하지만 이번 생에 다시 왔을 때 들은 건 역시 이유영의 부고 소식이었다.오늘날 이렇게 겨우겨우 다시 그녀를 품속에 안으니 강이한은 뭐가 됐든 이제 다시는 그녀를 놔주고 싶지 않았다.이날 저녁, 이유영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반면 강이한은 전례 없는 꿀잠을 잤다.아침에 일어난 이유영은 핸드폰을 들어 안민한테 여기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고 전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강이한에게 뺏겼다.“오늘은 회사에 가지 마.”강이한의 말투는 마치 명령을 내리는 듯 아주 강력했다.이유영은 당연히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나 꼭 가야 해!”“로열 글로벌의 기초를 놓고 말해서, 당신이 회사에 하루 말고 일 년을 안 간다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큰 웨이브 파마에 아주 매혹적인 몸매를 갖고 있었다.“잘됐네. 너 이제 여자 보는 눈이 점점 좋아졌네!”“...”“전에 한지음 씨보다 훨씬 낫네. 이봐, 취향이 아주 크게 발전했어!”강이한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이 여자도 참, 왜 아무 때나 한지음 얘기를 꺼내는 거지?’이 생각이 들자 강이한은 머리가 아팠다.“여기 이분은 의사 선생님이야!”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유신비 이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한지 생각이 났다.저번에 소군리 의사가 소개했었던 실력이 아주 뛰어난 의사 이름이 바로 유신비였다.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아, 이분이 바로 그 소문으로만 듣던 강 씨 사모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강 씨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듣자, 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저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이지 강 씨 사모님이 아니에요.”인사를 건네고 악수하면서 손을 잡았을 때, 두 사람 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유신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군요.”사적인 대화는 여기에서 끝을 맺었다.그리고 유신비가 입을 열었다.“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먼저 검사부터 할까요?”검사!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에 있는 흉터들을 전부 다 없애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분고분 말을 들을 이유영이 아니었다.“필요 없어요.”“유영아!”“강이한 당신은 내 몸에 있는 흉터들이 없어지면 당신이 한 그 죄들도 다 같이 사라질 줄 아나 봐?”“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강이한은 그저 최선을 다해 이유영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이유영은 웃었다. 아주 비웃음이 가득한 웃음이었다.“유신비 씨, 그냥 돌아가 주세요.”“저 일정이 아주 빠듯해요. 지금 이렇게 저를 보내면 아마 앞으로 한 2년 동안 절 보지 못할 건데 확실해요?”“네! 확실해요.”태도가 아주 굳건한 두 마디였다.유신비는 아주 거만한 의사였다. 그래서 이유영의 대답을 듣고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바
이유영이 더 몰랐던 건 강이한은 생을 건너 이번 생으로 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당신한테 건강검진 의사를 불렀어!”결국 강이한의 말소리가 들렸다.병원 쪽에서 이유영의 진료기록을 찾을 수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의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특히 어젯밤, 이유영이 잠든 후 새벽 때 그녀는 땀이 흠뻑 나서 베개까지 다 적셨다.이런 신체 상황인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걸 강이한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건강검진 해줄 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불렀다.“시간 낭비하지 마!”“당신은 정말 당신 몸의 이상을 못 느꼈어?”이유영은 강이한을 대꾸하기도 귀찮아 바로 집을 나서서 회사로 갔다. 안민은 이유영이 불러 이미 도착해 있었고 루이스도 와 있었다.도원산에서 이유영을 픽업한 루이스와 안민은 다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루이스!”“네! 아가씨.”“혹시 소은지 파리에 있는 게 아닐까요?”이유영은 아주 심오한 말투로 물었다.어젯밤에 본 소은지의 모습과 강이한이 소식을 알아내는 속도를 종합해 보니 이유영은 소은지가 파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제일 먼저 파리부터 뒤졌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사람을 찾지 못하지 그제야 수색 범위를 해외로까지 확장한 것이었다.하지만 지금...“파리요?”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병원부터 뒤져봐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병원뿐만이 아니었다.어젯밤에 비록 강이한이 제대로 밝힌 건 아니었지만 이유영은 그에게서 얻은 정보 중 하나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그건 바로 파리에 있는 귀족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강이한이 나도 관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관여할 수 없다는 거지?’유일한 답은 상대방이 아주 강력하게 나올 것이라는 거였다.도대체 누가 소은지랑 이렇게 원한이 있는지 이유영은 이 근원을 조사해 내야 했다.“네!”“그리고 이 몇 년 동안에 소은지가 맡았던 사건 중에 파리랑 연관이 되는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정국진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입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유영이 때문에 온 거야!?”“유영이 이 2년 동안 줄곧 몸이 안 좋았나요? 맞아요?”강이한은 목이 멘 상태로 물었다.강이한을 바라보는 정국진의 눈빛에는 한기가 돌았다.당연한 말을...!아무리 한지음이 강이한 옆에 나타난 데는 숨은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강이한이 이유영의 몸 상태에 관해 물어보는 것에 대해 정국진은 여전히 첫 반응이 강이한은 그걸 물어볼 자격이 제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무래도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강이한이었다.뒤에 일어난 일들에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고 해도 결국 진실이 드러날 때는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다 핑계에 불과했다.정국진은 강이한의 대답에 대답도 안 하고 되물었다.“한지음 아직도 모리나 호텔에 있어!?”모리나 호텔도 사실은 로열 글로벌 아래의 호텔 중 하나였다.‘강이한이 한지음을 모리나 호텔에 안배해 놨다고?’‘강이한은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한지음 얘기가 나왔을 때 두 사람의 얼굴색은 다 안 좋게 변했다.특히 강이한의 얼굴색은 선명하게 안 좋아졌다.정국진은 강이한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음이 너한테 아주 중요한가 보네. 그럴 거면...”“정 회장님!”정국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강이한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도대체 언제부터인지 누구든 강이한의 앞에 서면 무조건 강이한이랑 한지음을 엮어서 말했다.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정국진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며 강이한은 목이 좀 뻣뻣해 났다. 그리고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전 그저 이 2년 동안 유영이가 잘 지냈는지만 알고 싶어요.”그랬다. 강이한이 정국진을 찾으러 온건 사실 제일 직접적으로 이유영의 몸 상태에 알아볼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정국진의 생각대로, 어젯밤 강이한은 그걸... 느꼈다.새벽 늦게까지 이유영의 몸에는 아무런 온도도 없었다. 이건 정상적
그저 간단한 운전이었다...하지만 정국진의 말은 그렇지 않았다.“그날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날 뻔했어!”“유영이의 두 눈은 2년 전의 그 큰불 때문에 엄청나게 크게 다쳤어!”순간 강이한은 이유영을 만날 때 그녀가 언제든지 항상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어젯밤에도 강이한은 이유영이 강력한 불빛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는 것을 느꼈다.2년 전의 그 화재는 이유영의 피부만 태웠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그녀의 두 눈까지 빼앗아 갈 뻔했다.어둠!인생의 궤적이 결국은 달라졌다. 전생의 이유영은 두 눈이 실명되었지만, 이번 생은 실명이란 어둠과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의 집에서 나와 어떻게 로열 글로벌까지 왔는지 모른다.방금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온 이유영은 사무실 문을 연 순간 바로 강이한의 품속에 들어갔다.익숙한 서늘한 기운에 이유영은 끊임없이 발버둥을 쳤다.“이거 놔!”‘이런 빌어먹을 강이한, 왜 어디에나 다 있지?’이 점에 대해 이유영은 정말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하필 강이한을 철저하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필경 지금 소은지의 소식이 강이한의 손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여기를 자유자재로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왜 말 안 해줬어?”이유영이 발버둥 칠수록 강이한은 더 세게 이유영을 끌어안았다.이 시각, 강이한의 따뜻한 숨결은 그저 이렇게 이유영의 귀에 떨어졌다.“...”‘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강이한의 앞뒤 없는 질문에 이유영은 정말 그가 뭘 물어보는지 몰랐다.특히 강이한의 고통이 담긴 말투가 정말 이해가 안 갔다.‘하하, 강이한이 고통스러워한다고? 나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고?’하지만 이유영의 인식 속에 강이한은 절대로 자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리가 없었다. 마치 이 남자는 아픔을 못 느끼는 것처럼...“먼저 이거 좀 놔!”이유영은 인내심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아직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였다.강이한은 몸을 돌려 이유영을 소파에 앉혔다.자유를
점심때 일어난 일은 전혀 이유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그녀는 마치 냉혈 인간처럼 강이한이 간 후 다시 일에 몰두하였다.오후에 루이스가 왔지만, 그의 표정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은지 소식이 있어요?”소은지!지금 아무리 소은지 때문에 강이한을 계속 상대하고 있지만 이유영은 그래도 주변 사람더러 소은지 소식을 알아보라고 했다...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이랑 더 깊숙한 사이가 될 기회마저 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실망스럽게 루이스는 고개를 흔들었다.“없습니다.”“없다고요?”이유영은 가슴이 조여들었다.하지만 루이스의 안색은 엄숙하다 정도가 아니었다. 이유영이 보기에는 소은지 소식이 없는 것만이 아닌 것 같았다.“또 다른 일 있어요?”이유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루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온몸에서 심각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이유영 곁에 오래 있으면서 루이스가 이런 적은 아주 드물었다. 이로써... 이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었다.루이스는 이유영을 한눈 보고는 입을 열었다.“그쪽에서 우리가 소은지 씨를 조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서 그런지, 소 변호사님 전에 맡았던 사건들, 기록이 전부 다 사라졌습니다!”이 말을 듣고 이유영은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전부요?”“네!”‘모든 사건 기록이 다 지워졌다고!?’“그래서 우린 지금 은지가 어떤 사람들이랑 원한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없다는 건가요?”“네.”이유영은 숨이 꽉 찼다.‘그럼, 이 배후의 사람은 은지의 일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하지만 이유영 쪽에서 사람을 써서 조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렇게 귀신같이 알고 소은지랑 관련된 사건들을 다 지웠다.이로써 이 사람은 참...이유영은 숨이 턱턱 막혔다.“대표님.”“왜요?”“지금...”지금! 분명한 건 지금 이유영은 밝은 곳에 있고 그 사람은 어두운 곳에 있으니, 당연히 이유영이 뭘 하든 그쪽에서는 다 알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헛수고하는 문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유영의 곁에 머물러 있겠다고?이것은 이유영이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자기 말이 진심임을 결국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고 심지어 보름이 지나도 강이한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저 말없이 이유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강이한의 존재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파리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고 서주의 상황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강이한은 매일 외출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그 의사는 고집이 워낙 세서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우천시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이유영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다른 의사들로부터 상태를 유지하는 데 그쳤다.강이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의사를 데려오겠다는 각오로 노력하고 있었다....한편, 서주에서 박연준이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이유영의 두 눈이 완전히 실명했을 수도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정국진 쪽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 원인은 알프산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했다.“아직도 소식이 없니?”서재 안, 박연준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문기원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 없습니다.”이유영의 소식은 단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박연준은 예상하지 못했다. 서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사라질 줄은.게다가 벌써 보름 가까이 아무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대체 어디로 데려간 걸까?”박연준은 미간을 짙게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이 소식을 들은 일주일 동안, 박연준은 밤마다 뒤척이며 이유영의 걱정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이유영의 시력이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만약 알프산의 사건으로 인해 시력이 급격히 더 나빠진 것이라면...박연준은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점점 조여 왔다.“찾아볼 곳은 다 뒤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박
강이한은 알아챘다. 이유영이 일부러 강이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걸.강이한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일부러 화를 돋워 강이한을 떠나보내려는 의도였다.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강이한이 설마 다 알아챈 건가?“10년이란 세월이야.”강이한은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어떤 관계도 서로를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10년이었다.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든 강이한은 이유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점심 식사.무거운 침묵 속에서 점심시간이 흘렀다. 이유영이 가장 좋아하던 우천시의 지역 요리였지만 강이한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모든 음식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말을 너무 많이 했던 걸까? 이유영은 오후 내내 강이한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유영은 철저히 강이한을 무시하고 있었다.강이한은 우천시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거리들을 사왔다. 우천시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며 음식을 내밀었지만, 이유영은 한 입도 손대지 않았다.“유영아.”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강이한도 알고 있었다.이유영과 얽힌 수많은 일들만으로도 이유영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지금은 연서의 사건까지 얽혀 있으니...이유영의 마음속 상처는 단시간에 치유될 수 없을 만큼 깊었다.“좋은 기분을 유지하지 않으면 눈도 빨리 낫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내 곁에서 빨리 벗어나지도 못할 거야. 잘 생각해 봐.”“...”강이한은 말하면서 싸늘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 남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강이한과 잘 지내지 않으면 강이한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인 건가?아니면 이유영의 눈이 다 나을 때까지 계속 곁에 있겠다는 뜻인 건가?“흥!”이유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웃는 듯한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럴 시간이 있긴
이 정도도 못 견디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유영은? 이유영은 이전에 강이한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견디고 참아내야 했던가? 강이한은 그런 기억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이유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손 놔!”“네 상태가 나아지기만 하면, 네가 뭘 말하든 다 받아들일게!”강이한은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것은 이유영의 눈이 나아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지금 이유영의 감정이 더 격해지면 안 됐다. 강이한은 진심으로 이유영이 걱정되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강이한은 답답했다. 이유영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이 손 놓으라고!”이유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의 완강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유영의 단호하고 강한 의지는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가장 진실된 이유영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강이한의 머릿속에 지난 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한 건 아마 이유영이 실명한 이후였던 것 같았다.실명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이한을 믿었다. 그때를 떠올릴수록 강이한의 마음은 점점 더 쓸쓸해졌다. 이유영이 말했듯 이유영은 강이한에게 정말 많은 기회를 주었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이 준 기회들을 한 번도 소중하게 여겼던 적이 없었다.강이한 스스로가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유영을 조금도 탓할 수 없었다.“유영아!”강이한은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떼었지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나 이유영이 다칠까 봐 강이한은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이유영은 더듬거리며 숟가락을 잡으려 했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을 돕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이유영은 냉랭하게 말했다.“모두 나가줘.”“아가씨!”“나 혼자 할 수 있어요.”이유영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우지와 우현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영아.”강이한은 따스하면서도 아린 눈빛으로 온전히 자신을 밀어내려는 이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영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두 사람의 과거는 차마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더욱이 말로 꺼낼 수도 없는 상처였다.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이미 아물어가는 흉터를 억지로 다시 뜯어내는 기분이었다.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 다시 스며들 뿐이었다.하지만 피할 수 없었고 그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네 눈이 나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강이한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결국 삼켜버렸다.그 목소리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당장 의사를 만날 수도 없었다. 강이한의 말처럼, 그 의사는 정말 괴짜일지도 몰랐다.결국 오늘도 헛걸음이었던 건가?점심 식사 자리에서.“도와줄게.”이유영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강이한이 이유영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유영 앞에 있던 컵이 손이 닿자마자 뒤집혀 버렸고 컵 안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우지와 우현이 서둘러 다가와 물잔을 정리했다.그 사이, 강이한은 이유영을 안아 들어 올렸다. 덕분에 이유영은 물이 쏟아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안은 순간, 이유영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강이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던 말은 거짓말이 분명했다.어떻게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유영아.”이유영은 여전히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지난 생에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던 이유영도 여전히 어둠은 공포였다.사실, 어둠 속의 삶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찬란한 햇빛 아래서 살아가길 원하니까.다양한 색채를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말이다. 이유영 역시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은...강이한의 기억 속엔 지난 생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느꼈던 절망이 여전히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때의 강이한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강이한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소문으로만 듣던 ‘염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다.그 시간 동안 우지와 우현은 휴대전화를 빌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강이한답게 이미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아침에 나갈 때부터 강 선생님의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했어요. 외부 사람들과 연락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우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둘러싼 모든 외부 연락을 완벽히 차단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이유영은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눈앞이 캄캄한 데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우지가 이유영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아가씨.”“네?”“적어도 부인께는 아가씨 소식을 전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임소미를 말하는 것이었다.우지와 우현은 임소미가 이유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애타게 이유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아이를 잃은 뒤로, 임소미는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그리고 현재 이런 상황까지 겹쳤으니, 임소미의 심정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할지는 뻔한 일이었다.이유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네.”이유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이한에게 할 말은 이미 다 했지만, 그 남자는 끝내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밖에 비가 아직도 오고 있나요?”“네.”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우지의 대답을 듣고 나니 우천시의 비가 얼마나 지독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이유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빗소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마음마저 차분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강이한이 돌아왔을 때, 이유영은 처마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우지가 걸쳐준 망토를 두른 채, 조용히 비가 오는 풍경과 녹아든 모습이었다.강이한의 몸에서는 축축한 빗물 냄새가 났다.강이한이 다가오자마자 이유영은 그 냄새를 감지했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런 자신의 반응이 너무 싫
이곳이 싫어진 이유가 강이한과 함께 있기 때문일까? 한때는 이런 곳에서 강이한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었다.“우지를 불러줘!”이유영은 강이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이제는 견딜 수 없었다.이유영은 이 모든 것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아까 말했잖아. 우지랑 우현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러 나갔어. 여기 지역은 아침으로 특산 요리가 많거든, 그래서 주방에는 따로 요청하지 않았어.”“...”이유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의 이 침묵과 순응은 강이한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이유영은 차라리 말없이 기다리는 쪽을 택했고 절대로 강이한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예전에 아무리 바쁜 아침을 보냈어도 강이한은 이유영이 아침에 어떤 루틴을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내가 화장실까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이유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이러면 몸에 좋지 않아. 그냥 가자.”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과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화제를 돌렸다.“네가 우지 씨와 우현 씨의 핸드폰을 가져갔지, 그렇지?”강이한은 잠시 멈칫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래.”“부모님께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드리는 게 맞지 않아?”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이미 분노가 쌓여 있었다. 어젯밤 우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터질 것 같았다.강이한은 여전했다. 여전히 타인의 감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에게 어떤 짓까지 했는지, 그 기억은 이제 이유영에게 있어서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이 되었다.하지만 강이한은 태연하게 말했다.“이미 쪽지를 남겼어. 네가 눈 치료를 받으러 갔다는 건 부모님도 알고 계실 거야.”“...”“치료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다 줄 거야.”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듣고 차갑게 숨을 몰아쉬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모든 행방을 전부 숨겼다는 거잖아?”이유영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다음 날 아침, 이유영은 지붕 위에서 여전히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옆에서 느껴지던 온기 역시 그대로였다. 이유영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강이한이 살짝 안으며 말했다.“깼어?”“당장 떨어져!”어젯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잠들었지만, 이 남자는 대체 어디서 이런 뻔뻔함이 나오는 걸까? 이유영이 몸을 움직이려 하자 강이한의 큰 손이 이유영의 손을 단단히 감싸며 태연하게 말했다.“움직이지 마. 춥잖아.”이불 밖으로 팔을 뻗자 싸늘한 한기가 순간적으로 스며들었다.우천시는 여름에 오면 굉장히 쾌적하다고 한다. 전통 가옥은 단열 효과가 뛰어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강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이유영의 짜증과는 반대로 강이한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부드러운 인내심이 배어 있었다.강이한은 마치 오랜 시간 이런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이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유영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일어날래? 내가 옷 입는 거 도와줄게!”“우지 씨를 불러.”시야를 잃은 이유영의 성격은 예전보다 한층 더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전히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으니, 이유영의 화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태연히 대답했다.“우지와 우현은 나갔어.”나갔다고? 말도 안 돼!우지는 이유영이 강이한과 단둘이 있기를 꺼린다는 걸 잘 알았기에, 늘 둘 중 한 명은 곁에 남아 있으려 했다.“강이한!”그러나 강이한은 이유영의 화난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여유롭게 말했다.“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나랑 조금 더 누워 있어.”“...”이유영은 비록 자신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강이한의 농담 섞인 말에 자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강이한이 옷을 입혀주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상황 같았지만 강이한은 의외로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강이한은 이곳의 기
임소미가 자리를 비운 서재.정국진은 여진우와 마주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이번 일, 넌 어떻게 보니?”이유영을 데리고 간 강이한에 대한 이야기였다.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이번에는 정말 모든 걸 내던졌네요.”이유영을 위해 강이한은 정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리고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서주의 상황이 이런 와중에 이유영을 데려간 것을 보면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이유영이 차지하는 자리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둘 사이의 시작은 ‘연서’라는 이름의 여자로 인해 엮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과정은 완전히 변질되었다.이유영은 이미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그 여자의 그림자가 아니었다.정국진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업보지.”이게 업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두 사람은 끝내 서로를 놓지 못했다. 이러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월이가 하루 종일 엄마를 찾더라.”정국진은 월이의 이야기를 하며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강이한이 과거 이온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강이한이 서주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유영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갔다고 해도 아버지로서 강이한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다.“곧바로 찾아내겠습니다.”여진우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해.”임소미가 생각했던 것처럼, 정국진 역시 아버지로서 이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앞섰다.이유영은 강이한 옆에서 한 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그러니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우천시.비가 내리고 있었다.전통 가옥의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밤공기 속에 은은하게 울렸다. 그 빗소리는 묘하게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우지와 우현은 이유영의 옆방에 있었다. 이유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유영이 처음에는 괜찮다
강이한은 조용히 이유영을 방으로 데려다주었다.방 안에서는 이미 우지와 우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한이 문밖으로 나가자, 이유영이 차분히 물었다.“연락해 봤어요?”정국진과 임소미와의 연락을 의미했다.“아가씨, 모르셨나요? 우리가 여기로 올 때 강 선생님이 우리의 휴대폰을 전부 통제하셨어요!”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조금 전까지 차분하던 이유영의 표정은 우지와 우현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굳어졌다.강이한, 제정신이 아니구나!우지가 말을 이었다.“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가씨의 눈이 나아질 때까지는 외부와의 연락을 금지하라고 하셨어요!”이유영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이 강이한!이게 대체 뭐야? 늘 그랬듯이 언제 어디서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거야?지금 상황에서 강이한이 정말 몰래 이유영을 데려온 거라면 백산 별장 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그렇다면 부모님 쪽은...!이유영이 생각했던 대로였다.아침부터 지금까지, 임소미와 정국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특히 임소미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정국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때, 여진우가 돌아왔다.임소미는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어때? 소식 있어?”‘소식’은 이유영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임소미는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애초에 강이한은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임소미와 정국진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강이한 옆에 있으면 사건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말이다.“없어요.”하지만 여진우가 가져온 소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그 말은 임소미의 이미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강이한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춘 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강이한이라는 인물은 누구에게나 항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임소미의 초조함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