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세상에서 다른 여자는, 중요할까?“만약에 내가, 한지음의 눈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 니가 나랑 여기서 실랑이 할 시간이 있을까?”강이한, “......”한지음의 얘기를 꺼냈다.강이한의 눈빛에 분명 이상한 점이 보였다.이 같은 모습에 이유영을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언제부터, 다른 여자가 니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해진거야?””유영아, 그 사람은 한지석의 여동생이야!”“너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줄 알았네!” 예전에는 그랬잖아?그의 여동생이었다!그러기에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모두 험악한 짓이었다. “이유영!” 남자의 말투가 험해졌다. 그는 한지음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영이 말을 꺼냈으니.그는 이어 말했다. “전에 있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 너도 한지음이 이렇게까지......!”“강이한!”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영이 말을 끊었다.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그럼 지금까지, 넌 그 일들을 내가 했다고 생각한거야, 맞지?” 사실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이 남자, 줄곧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러면, 더 무섭잖아!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모두 받아들였다! 이건 이유영에게 굉장히 두려운 사실이었고 그녀도 이런 용납은 바라지 않는다.그녀가 원하는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주는 남자였다.하지만, 분명히 강이한은 아니다!“내가 니 마음속에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럼 니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유영은 일어나 그릇을 식탁에 내리쳤다.강이한은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위험과 위협이 공존했다.“원본 어딨어?” 이유영은 강이한과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군말없이 그와 함께 홍문동에 갔으며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목적은 분명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남자의 숨결이 차가워졌다.그녀는 신경 쓰지 않은채 계속 강이한을 바라봤다. 두사람은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따라와!” 결국 강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쪽으
이유영은 바로 홍문동을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다실 쪽으로 가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유영아!”“외삼촌, 저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요!” 유영이 떠보듯 말했다.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어리둥절했다.“무슨 일이야?””크리스탈 가든쪽의 일은 처리하는데 며칠 걸릴것 같아요. 외삼촌이 보고싶어서 가보려고요!”“괜찮아, 요즘 본부에서 일이 좀 생겨서 돌아와도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 전화 반대편의 정국진이 말했다.이 몇년간정국진이 이렇게 바쁜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유영에게 이 말을 건낼때도 그는 어이가 없었다.유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강이한이 한 그 말의 뜻을 알것 같았다.그리고 유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과 10년을 같이 살면 뭐해? 이 남자의 겉모습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그래요, 그럼 그쪽 일 다 끝나면, 제가 돌아갈게요!”“이제 두달뒤면 설인데, 그떄 들어와.”“그럴게요!”유영이 전화를 끊었다.온몸에 퍼지는 오한을 멈출수 없었다!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번해도 그 기운이 빠지지가 않았다.......위층 서재!남자의 하얀 손가락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욱에게 전화가 갔다!전화는 금방 걸렸다. “도련님.”“이유영이 누구한테 협박 받은적은 없는지 조사해봐!” 강이한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모든 기억을 그 날 아침으로 미뤘다!이유영과 강이한이 싸운 그 날 아침.전날 밤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았다. 그 날 밤에는 심지어 할거 다 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뜬금없이 이혼?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바뀐것 같았다.그 이후로 이유영은 그와 이혼하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걸었다.여기서 강이한은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유영이 그 전에...... 분명히 어떠한 자극이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사모님을 협박할 사람은 없지 않을가요?” 전화 반대편의 시욱이 어리둥절했다.강씨 집안!그 집안은 크리스탈 가든에서 어떤 존재일까?대체 누가 감히 이유영을 협박할까
”외삼촌이 미 몇년간 바쁜적이 없었는데 방금 통화하니까 본부에 일이 생겼대! 무슨 일인지 알려줄수 있어?”이 일이 강이한과 관련이 있다고 이유영은 확신했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녀를 오한에 떨게 했다.이 남자,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인거야?거기는 파리란 말이야!그의 손이 이미 파리까지 뻗어졌다고!?강이한이 말했다. “큰 문제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바쁘기만 할거야.”“강이한, 이런 행동이 로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는거야 모르는거야!?”“니 외삼촌이 관리만 잘하면 바람이 새지는 않을거야. 그냥 바쁘기만 할거야. 그리고 니 쪽 일은 신경쓸 시간이 없겠지, 안그래?”너......”유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지금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잡아 뜯고싶었다.그녀가 발작하려 할때 팔에서 힘이 전해지더니 한바퀴를 빙돌아 남자의 품으로 안겨졌다.가뜩이나 화가 난 유영은 더 화가 났다.“움직이지마.” 그녀가 발버둥을 치려할때 남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기를 달래는듯한 목소리였다.하지만 강압이 살짝 들어간 달램이었다. “니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더 바빠질거야!”그 사람들!정국진, 박연준!박연준은 청하시에서 대체 어떤 사람일까?강이한이 그 쪽 사람들까지 건드릴줄은 몰랐다.“대체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유영은 너무 궁금했다.강이한이 무슨 짓을 한건지.무작정 정국진을 물어보지도, 그렇다고 박연준을 물어보지도 못했다.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괜히 물어봤다가 그들이 이상한 낌새라고 눈치챘을가봐 걱정이 되었다.“유영, 너는 정말 똑똑해!” 강이한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을 안다.역시, 그녀도 참을성 하나는 대단해.“근데 넌, 박연준과 정국진이 알게된다면 어떨것 같애?”유영의 눈커풀이 떨렸다!이걸 물어보네.온몸에 퍼지는 숨결을 누를수가 없었다.그녀의 모습을 본 강이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크리스탈 가든에서 일을 하더니, 역시 발전이 있어!”예전의 유영이라면
유영이 객실로 들어갔다!남자는 그녀에게 위협적인 눈빛을 주었다. 그녀는 결국 그들의 쓰던 안방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익숙한 모든 것을 본 유영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정말 안 씻을거야?” 그녀가 방문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남자의 호흡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놀란 유영은 온몸에 긴장감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눈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찼다.저번 생에 강이한은 나를 이곳에서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이번 샘에서도 그녀를 못살게 군다니! 그들의 전전생에 그녀는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빚을 졌길래.이번생에 이런 수난을 당하는걸까.유영이 열 받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르는 그때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려 그들의 분위기를 깨뜨렸다.번호를 보니 소은지가 걸어온것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은지야!”“저녁에 순정동으로 돌아갔다며?”“응.” 지금 홍문동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걱정할까봐 무서웠다.소은지한테는 강이한이 그닥 좋은 남자가 아니였다!“그럼됬어, 나 먼저 잘게.”“응.” 전화가 끊겼다.거센 팔힘이 그녀를 품으로 안겨지게 했다. 그 순간...... 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에게 꽉 잡혀버렸다.“유영아, 정말 말 안들을거야?””강이한......” 그 순간, 유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온 몸에서는 매서운 기운이 풍겼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게 싫었다.그리고 강이한은, 그걸 눈치챘다!두 사람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보고싶었어!”“넌 나한테 이러면 안돼.” 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 남자에게 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그의 손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박연준과 외삼촌이 연속으로 어려움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할수없이 이 남자에게 잠시 굴복해야 했다.하지만 굴복한다고 해도 선은 지켜야 한다.그들사이에는 전생과 현생이 있는데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을까!?“내가 너 건드리는게 겁나?”, “왜, 응?” 그녀 몸의 떨림은, 강이한도 느낄수 있었다.그를
“세시요!”“그래요, 데리러 갈게요.” 박연준이 돌아온다고 하니왠지 모르게 유영은 마음이 편했다.강이한은 미친것 같다.강이한의 주변 사람들도, 미친 놈이다!......그날 밤!강이한은 대체 뭘 하러 간건지 밤새도록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영은 좋았다!이튿날 아침.하인이 유영앞에 나타나 준비해둔 옷과 가방을 건냈다. “사모님, 이건......””이 아가씨!” 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해 유여은 넌지시 주의를 줬다.그녀는 사모님이란 호칭이 싫다.이 호칭은 그녀가 이곳에서 겪었던 수단들만 떠올리게 할뿐이다.강이한 곁에서, 그녀는 적지않게 당했다.“네, 이 아가씨. 이건 도련님께서 준비하신 옷과 가방입니다.”“놔두세요!” 유영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하인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갔다.유영은 힐끗 보더니 핸드폰을 들어 조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빨리 걸렸다. “이 사장님.”“홍문동으로 옷이랑 가방좀 가져다줘.”“홍, 홍문동으로요?”“응!”전화 반대편에서 잠시 침묵하더니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유영은 욕실에 들어가 씻었다. 그녀는 강이한이 준비한 것들을 입지 않았다.어젯밤 박연준의 전화를 받은 뒤강이한의 수법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강이한이 식탁앞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내려온것을 본 강이한은 아주 잠깐 눈썹을 지푸렸다. 하지만 잠깐이었다.대충 왜 그랬는지 알것 같았다.유영은 그의 맞은켠에 앉아 죽을 한입 떴다.강이한이 물었다. “박연준이 전화했어?”이유영은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예리했다.그녀의 이런 눈빛을 본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전화를 받았나봐? 아침에는, 받았어?”“무슨 뜻이야?”유영은 아침잠이 많았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얘기들은 그녀의 급한 성질을 더 돋구웠다.강이한이 뭐라 말하려고 하는 순간, 유영이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이 식탁위에서
강이한은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이유영을 보고도 태연하게 그릇 안의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았다.“이리 와.” 세 글자, 날카롭고도 위엄 있다.이유영은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순종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강이한이 호통쳤다. “다 나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특별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뿔뿔히 자리를 떴다.이유영과 강이한 둘만이 남았다. 강이한이 일어서더니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왔다.이유영은 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싶었으나, 오기로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있었다.남자의 강한 기세가 덮쳐와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그녀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남자는 병아리 낚아채듯이 그녀를 좌석으로부터 끌어올렸다. “이유영, 내가 그 동안 너한테 너무 오냐오냐했지?”강이한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그는 아예 그녀를 안고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이유영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강이한이 바로 옴짝달싹 못하게 꽉 눌렀다.“어디서 겁대가리 없이, 감히 외간 남자 때문에 나한테 대들어, 어?”강이한이 그녀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졸랐다.이 때, 이유영이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뜨자 강이한의 표독스러운 눈과 마주쳤다.그의 눈에 비친 독기를 보니 그들 사이는 마치 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이유영은 의지할 곳 하나 없었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이한이였다. 그런데 강이한이 자신을 이처럼 대했을 때, 그때 느꼈던 절망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재간 있으면 날 죽여!”“죽여?”“……”“내가 왜?”“……”“난 너를 지켜주는 놈들만 하나하나 없애버릴 거야!” 강이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독기가 차있다.이런 독기를 이유영은 본 적이 있다.전생에서 그가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의 각막을 뺏어가려고 할 때이다.“그래?” 이유영이 냉소하며 도발했다.박연준과 정국진도 다들 보통 인물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알고 나면 강이한 쪽도 머리가 좀 아플 것이다.강자 간의 대결이라!그런 상황은 강이한도 원치 않을
그러나 지금의 이유영은 달라졌다.안된다.그걸로는 부족하다.잘 정리하고 문을 나섰다. 홍문동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조민정이 이유영을 보자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괜찮아요? 전화했었는데 폰이 꺼져있더라고요.”“괜찮아요.”핸드폰을 강이한의 죽 그릇에 던졌으니 전원이 당연히 꺼졌을 것이다.하지만 조민정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 이유영은 가슴이 뭉클해났다.조민정이 그를 바라보며 쇼핑백을 건넸다.“옷이랑 가방 챙겨왔어요.”“고마워요.”“뭘요.”이유영 목에 난 멍 자국을 본 조민정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은 이유영의 부하직원일 뿐이다. 상사의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은 좀 그렇다.하지만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를 생각하니 또 갈등이 생겼다.이유영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고 벗어놓은 옷을 차창 밖으로 버렸다. “......”그렇다.이 모습은 분명히 강이한과 눈곱만큼도 얽히기 싫다는 뜻이다.......이유영은 회사에 도착한 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가 다가오기만 하면 화를 내서 임직원들까지도 그녀가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알았다.지현우가 문서를 들고 들어와서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습니까?”들어오면서 울상을 하고 나가는 직원을 본 모양이다.“별일 없어요.”말은 그렇게 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지현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외삼촌께서 친히 보낸 사람이기에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지현우에게는 화를 낼 수 없다.하지만 강이한을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사생활로 직장에 영향 주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면.”이 말을 들은 순간, 펜을 들고 있던 이유영의 손이 멈칫했다.지현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적의가 어렸다.지현우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했다.“여성이라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습니다.”“흥.”워낙 불편하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모든
불과 이틀 시간이다.소탈하고 대범하던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이렇게 짓눌리게 되다니. 하지만 그녀도 보통내기는 아니다.달갑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리가 없다.게다가 이유영과 강이한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원래는 이혼 후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서로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강이한의 기세를 보니 이유영을 놔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그리고 또 하나……강이한의 수단을 보니 대단한 가문과 정략결혼을 시켜 강씨 가문을 키우려는 것도 진영숙의 일방적인 생각이다.강이한은 그런 것 따위 필요없었다.……점심시간이 되었다.강이한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이유영을 골치 아프게 했다.“지금 바로 내려와.”이유영이 대답이 없자 강이한이 다시 말했다.“내려오라면 내려와!”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강이한을 참고 있다.그런데 이 갑작스러운 행동은 뭐지?그녀는 순간 당황해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보았다. 다시 합치는 건……아니야, 이건 아니야!“난 식사 생각 없어. 좀 이따 회의가 있어서 이만.” 이유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회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상대방이 뭐라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지현우의 말을 새기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시작하시죠.”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 회의 주제는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해서이다.이유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강이한이 자료를 회사 내부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유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지현우에게 말했다.“재무실장 좀 오라고 하세요.”“네.”지현우는 영문을 몰랐다.원래대로라면 오늘 회의는 재무실에서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필경 전 대표가 남겨놓은 것들이고 자료만 봤을 땐 재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그래도 이유영의 지시대로 재무실에 전화해서 회의 참석 요청을 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무실장이 올라왔다.“대표님.”그의 얼굴에서 불안함이 보였
모이산의 코코넛 주스는 유명해서 파리 수도에서도 판매될 정도였다. 임소미도 피부에 좋다며 코코넛 주스를 즐겨 마셨다.“정말 신선하고 은은한 맛이네!”“원액 그대로라서 그래. 원래 이런 맛이야.”이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정말 맛있어.”코코넛 주스의 맛은 확실히 좋았다. 적어도 이제는 익숙해진 맛이었다.예전에는 하얀 색감과 끈적한 질감이 부담스러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곳의 코코넛 주스는 맑고 달콤했다. 마치 자연 그대로의 신선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멀리서 강이한과 박연준이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캠프파이어를 바라보고 있었다.“이제 가야 해?”강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난 먼저 갈게.”박연준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막힌 듯했다.“안 가봐?”강이한이 물었다.“여진우가 곁에 있으니까. 이유영은 내가 안 가는 걸 더 좋아할 거야.”박연준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강이한은 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정 지었지만 사실 박연준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박연준을 마주할 때마다 냉정했고 그의 접근을 극도로 거부하는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다행히도 유영이의 곁에는 정씨 가문이 있어.”강이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지.”박연준도 작게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정씨 가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전생을 떠올렸다. 그때 이유영은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겨졌었다.그럼에도 그녀는 용감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가 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면서도 이유영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념은 확고했다.한 번 넘은 선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듯,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갑옷을 두른 채 자신을 지켜냈다.강이한은 돌아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만약 나와 유영이 사이에 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면...”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그럼에도 박연준은 이해했다.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강이한은 온 힘을 다해 이유영을 붙잡았을
“나랑 이유영이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미래도 없어. 그러니까 이제 포기할게.”강이한은 여진우의 품에 안긴 이유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강이한은 진심으로 이유영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온전히 그녀를 놓아주기로 했다.박연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오고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다.저녁노을은 붉은빛을 띠며 마치 영원히 기억될 것처럼 아름다웠다. 강이한은 저 붉게 물든 노을처럼 이유영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마음 깊이 새겼다.“내가 왜 수술을 내일로 잡았는지 알아?”“...”“나는 해 뜨는 아침의 유영이를 보고 싶었어. 희망 속에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야.”아침 해는 희망을 상징한다.그는 이유영이 희망 속에서 빛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네 곁에 그렇게 오래 있을 동안 그런 모습 한 번도 보지 못했어?”“유영이에겐 절망의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강이한의 말에 박연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강이한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지난 시간 동안, 이유영은 강이한 곁에서 수많은 절망을 겪었고 그 절망은 결국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켰다.그 어떤 상황도 그 절망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내일 수술이 끝나면, 그녀의 미래는 희망으로 채워질 것이며 비로소 진정한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강이한은 떠났다.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고 우지와 우현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유영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여진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고 이유영은 모닥불이 뿜어내는 따스한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다.“입 벌려.”옆에서 여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할 수 있어!”“입 벌려!”여진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호해졌다.“...”결국 이유영은 조용히 입을 벌렸고 여진우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구운 고기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고
여진우의 품에 안기자 이유영은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정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부터 이유영은 이런 안정적인 가족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위로를 받고 있었다.“수술은 언제로 잡혔어?”“내일.”“그러면 여기서 같이 있어 줄게.”“좋아.”여진우가 곁에 있어 준다는 말에 이유영의 불안은 잦아들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여진우는 이유영을 더욱 꽉 껴안았다.그는 이유영이 겪은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수술이 성공해도 그 고통은 평생 그녀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맞은편 건물에서 강이한과 박연준은 나란히 서서 여진우 품에 안긴 이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눈에는 슬픔과 씁쓸함이 서렸고 목소리는 이미 쉰 듯했다.“나는 유영이의 세상에 나만 있다고 생각했어.”“그래서 평생 너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유영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어왔다.하지만 결국, 강이한의 생각은 틀렸다.이유영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강이한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게다가 지금은 그녀 곁에 가족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상 용서는 거의 불가능했다.“내일 이후로...”박연준은 말을 멈추었다.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내일 이후로 어떻게 될까?내일 이후, 그는 이유영이 견뎌온 그 숨 막히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내일 이후... 박연준, 유영이 곁에는 이제 네가 유일해!”강이한은 진심으로 결심했다.이유영을 떠나 박연준을 우천시로 보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완전히 결심했다.이유영의 곁에서 떠나기로.“너 정말...”박연준은 불안한 마음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은 예전부터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 말해왔다.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있었던 걸까?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그는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변할 거
1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그 10년 동안 그녀와 강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는 이유영만이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수많은 달콤한 순간들은 오히려 더 깊은 아픔이 되어 되돌아왔다.“7년의 장기 연애를 거쳐 결혼까지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그런 경우는 드물었다.그녀와 강이한은 그 7년 동안 정말 달콤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걸림돌도 없었다.굳이 말하자면 그 7년 동안 그녀가 겪었던 불쾌한 일은 오직 강씨 가문뿐이었다.하지만 결혼 전 그들의 추억이 모두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 많은 것들 이 변했다.“우리가 결혼하게 된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었다는 걸, 난 상상도 못 했어...”그런데 어떻게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인생에서 청춘은 고작 십 년에 불과하다.자기의 모든 청춘을 강이한에게 바쳤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당연히 견딜 수 없었다.여진우가 물었다.“연서 말하는 거야?”“그래, 연서!”요즘 이유영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심지어 밤의 악몽에서까지 존재했던 이름이었다.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10년 동안, 나는 그 사람 그림자에 불과했어!”태양처럼 빛나던 소중한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 갇혀 있었다.여진우는 위로하려던 말을 다시 한번 억눌렸다. 지금 이유영에게 어떠한 말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유영은 결코 박연준과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강이한은 그녀에게 가장 빛나는 청춘을 주었고 박연준은 그녀가 가장 힘들 때 구원자처럼 나타났다.결국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소중하게 여겼던 청춘은 결국 타인의 그림자에 불과했고 박연준은 그녀의 청춘을 무너뜨린 뒤 지옥으로 끌어냈다.“처음부터 나 혼자 견뎌냈어...”이유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그녀가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었
이유영은 침묵했다.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이유영의 모습에 여진우조차도 그녀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없었다.여진우는 등나무 의자를 끌어 그녀 옆에 앉았다.“파리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그래서?”“이번에 돌아갈 때, 지난번처럼 그렇지 않을 거야.”여진우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무관심이 섞여 있었다.“...”이유영은 지난번을 떠올렸다.그건 엔데스 명우의 사건과 얽힌 일이었다. 사실 그 일은 정씨 가문에서 걱정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엔데스 가문은 정국진이 절대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는 가문이었고 그래서 이유영이 그 일에 휘말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유영은 현재 박연준과 강이한에 대한 증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었다.“알겠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어.”잠시 후, 이유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그녀의 말에 여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알아줘서 다행이야. 아버지는 항상 너를 걱정하고 있어. 모두 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그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 씁쓸함이 번져갔다.그녀는 결국 가족들에게 가장 걱정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이런 현실을 깨닫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내쉬었다.“내가 모두를 실망하게 했어!”이 말을 하며 이유영의 가슴은 더욱 괴로웠다.“너는 잘못한 것이 없어.”잘못한 것이 없다고?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로 인해 세 사람의 얽힘은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도대체 누가 잘못한 것일까?모든 것을 계산한 박연준이 잘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계산할 수 없다.강이한의 잘못이 더 클까?그도 당연히 잘못이 있었다.“유영아.”“응?”“오빠 말 들어. 그만 놓아줘!”여진우는 고독해 보이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했다.증오일까?물론 증오했다!강이한이나 박연준이 그녀에서
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를 곤란에서 구해주는 것은 단순히 너희가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다 연서 때문이잖아!”‘연서’라는 두 글자에서 이유영의 목소리는 차가워졌다.박연준은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렇지 않았다.하지만 이유영의 분석 속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이 정해진 사실처럼 여겨졌다.지금 이유영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그와 강이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모두 연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녀에게 쏟는 모든 마음도 연서에게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박연준, 기억해! 나는 이유영이야!”“...”“내가 받는 너의 호의는 연서에게 전달되지 않아!”이유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알아, 나도 다 알고 있어!”박연준은 씁쓸한 목소리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는 사실 알고 있었다.언제부터 알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이미 이유영이 연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네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네가 모르길 바랄 뿐이야!”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고 있더라도 이유영은 결코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지금의 이유영이다.“아직 할 이야기 더 남았어?”이유영은 그를 바라보며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조금 전에 박연준이 이야기하자고 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유영은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지금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그의 마음속에는 더욱 깊고 섬세한 아픔이 퍼져갔다.이유영의 웃음 속에 비꼬는 의미가 더욱 강해졌다.박연준은 이유영의 그런 웃음을 보며 목이 막히는 기분이었다.그들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숲속 길에 한 인물이 나타났다. 여진우였다. 그가 왜 여기에 오게 된 걸까?여진우를 보자 박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여진우는 이미 테라스로 올라갔다.이유영은 발소리를 듣고 미
박연준은 이유영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과거에 강이한과 이유영의 삶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든, 그는 강이한을 변호하고 싶었다.“유영아, 사실은...”“내가 너희들이 연서 때문에 내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유영아!”“텅 비었어!”그 순간 이유영의 머릿속은 텅 비었다. 격렬한 감정이 이유영의 마음을 휩쓸었고 이유영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이유영은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상황으로 오게 된 것일까?이유영은 믿을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7년 동안, 그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아?”이유영은 증오가 아닌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들 사이에 사랑이 있었을까?지금 생각해 보니, 있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아이러니했다.이유영은 비웃으며 말했다.“나는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한지음이 나타났을 때, 그래서 한지음이 우리의 관계를 건드렸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지.”7년 동안, 강이한은 이유영을 얼마나 사랑했을까?강이한이 이유영의 세상에 나타난 순간부터, 마치 이유영을 수렁에서 끌어올린 것처럼 보였다.그는 이유영의 세상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지만 그 존재가 얼마나 두려운지 아무도 몰랐다.“유영아.”박연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박연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는 매일 나와 함께 저녁을 먹었어. 매일 나를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주었지. 명절에도 그는 집에 가지 않았어. 그는 내 곁에 있었고 가족이 없었던 나는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어.”그 당시 이유영은 아무것도 없었고 강이한은 강인한 모습으로 이유영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박연준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그는 강이한이 이유영의 세상에서 그런 존재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나를 여행에 데려갔어.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가 주었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이름만
하지만 이유영은 공기 중의 기운을 감지하고 눈살을 찌푸렸다.우지는 얼굴이 굳어졌다.이유영의 후각은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예민했고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냄새에는 매우 민감했다.우지는 이유영을 위해 옷을 조심스럽게 골라주었다.“아가씨, 다 느끼셨죠?”그렇다. 이유영은 이미 알고 있었고 눈살을 찌푸렸다.우지는 이유영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옷 갈아입혀 줘요.”이유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 이유영의 기분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강이한이 왔었고 방에는 그의 향기가 가득했다. 이유영은 그 냄새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왜 온 걸까?아침 식사 자리에서 박연준은 이유영에게 음식을 정성스럽게 덜어주었다.“수술은 내일이야. 오늘은 맛있게 먹어. 내일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니까.”수술 전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수술 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욕이 없을 것이다.이유영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조용히 식사했고 박연준은 이유영을 바라보다가 말을 멈췄다.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햇살이 좋으니, 햇볕을 좀 쬐자.”박연준은 이유영을 테라스로 데려갔고 따뜻한 햇살이 이유영에게 내리쬐자 이유영의 마음도 좋아졌다.“유영아.”“응.”“얘기 좀 할까?”박연준은 고민하다 이유영에게 말했다.“우리 사이에 할 얘기 없어.”항상 그랬다.박연준이 말을 하려고 하면 이유영은 항상 지친 모습을 보였다.박연준은 많은 말들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내일은 수술 날이었고 박연준은 마음속에 억눌렀던 말들을 터트렸다.“너와 강이한 사이는 정말 이대로 끝인 거야?”더 이상 기회는 없는 걸까?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말을 듣자, 이유영은 손을 꽉 쥐었고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박연준은 이유영의 반응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관계는 명확했다.“그 사람, 어젯밤에 왔어?”“응.”“박연준, 너희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과거의 기억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그래서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모두 직면하기 힘들다. 아름다움과 함께 불행이 동반되기 때문이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과거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무거웠고 그 무게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사실 나는...”“연준아!”“...”‘연준아’라는 한 마디가 그의 모든 원망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 그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던가?과거 서주에서 그들은 어떤 존재였던가?만약 그들이 연서 때문에 갈라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서주는 이렇게 되었을까?그들의 연합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었고 누구도 그들로부터 비열한 이익을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잘 돌봐줘.”강이한은 오랜 시간 담배를 깊이 들이켠 후,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렀다.박연준이 이유영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강이한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안심하고 이유영을 박연준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그와 이유영 사이에는...사람은 너무 진실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진실하게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받아들일 용기도 잃게 된다.그는 이유영이 자신에게 가진 혐오감을 보았고 그로 인해 얽히고 싶다는 용기조차 잃었다.만약 이유영이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면 그는 그녀의 눈 속에서 자신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뚜렷이 볼 수 있을 것이다.그것들은 그가 그녀의 세계에서 저지른 악행의 증거였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것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그녀의 눈 속에 있는 혐오감은 그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모든 것의 상징이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또다시 불편하게 할 수 없었다.“그리고, 유영이를 존중해줘!”강이한은 박연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박연준이 이유영의 마음속에 들어가길 바랐다. 현재 이유영이 처한 환경 속에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녀를 대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정씨 가문도 마찬가지고 그와의 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녀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