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숙이 옆에서 강서희를 더 변호하려 하자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거부 의사를 읽은 진영숙은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지음을 위한 집, 따로 마련해 뒀어. 도우미들도 고용해 놨으니까, 퇴원하는 대로 그쪽에 머물게 될 거야.”진영숙의 의도는 분명했다. 아무리 한지석한테 목숨의 빚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라는 뜻이었다. 이득이 되지 않은 관계에 이 이상의 소모는 사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강이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건 어머니께서 알아서 해주세요.”오랜만에 두 모자의 의사가 통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한지음만 퇴원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강이한은 여전히 이유영에게 마음이 있었으나, 그녀가 떠난 후 유독 한지음을 신경 썼다. 그 때문에 진영숙은 혹시라도 강이한이 이번에 반대하고 나설까봐 걱정했었다. 그러나 의도대로 되니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준비를 마친 의사와 간호사가 강이한 등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한지음 씨가 강 대표님이 오시기 전엔 절대 붕대를 풀지 않겠다고, 꼭 처음 보는 사람이 강 대표님이셨으면 한다고 하네요.”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서희는 달랐다. 그녀의 표정이 짜증으로 물들었다.“그럼 가시죠.”강이한이 무심히 말했다.“네, 이쪽으로.”주치의는 그런 그의 태도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로 안내했다. 어둠에 있다가 갑자기 빛에 노출되면 눈에 안 좋았기 때문에 실내는 살짝 어둡게 조정되어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었고, 주치의는 조심스레 붕대를 풀어냈다.“좋아요, 천천히 눈을 떠보세요.”강이한이 병실에 도착했음에도 한지음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의 말을 들은 한지음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이한 오빠.”“응.”“앞으로 와주면 안 돼요?”한지음이 긴장감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병실에 들어오던 발걸음이 여럿이었던 것을 떠올린 그녀는 이 자리에 강서희도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눈이
강이한은 계속 손을 흔들며 한지음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의 실루엣조차 보지 못했다. 한지음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순식간에 병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유 선생!”강이한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안 그래도 얼어붙어 있던 병실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주치의가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하게 다가왔다.“한지음 씨, 지금 뭐가 보이시나요?”“저, 저 어떡해요….”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수술을 받았는데 어째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구분이 안 가는 것일까? 한지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이한 오빠! 이한 오빠!”한지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이때 강이한이 그녀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 “나 여기 있어.”따뜻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한지음은 지금 그것만으로 조금 안정이 되었다.“오빠, 나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요!”한지음이 절박함과 고통으로 얼룩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안 보일까?“유 선생.”강이한의 시선이 의사에게로 향했다. 그의 살벌한 눈빛을 본 의사는 겁먹다 못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그게….”의사는 두려움에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설명하세요!”강이한이 물었다. 분명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전달받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아악!”한지음이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몇 번이고 눈을 감고 떴으나 변하는 건 없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문제없을 거라고 했는데! 어째서!“배 선생님이 수술하지 않았나요? 왜 유 선생님이?”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 현실이 그녀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붕대는 풀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암흑 속에서 살고 있었다.한편, 모든 관심이 한지음에게 쏠려 있
“저 이제 다시는 앞을 볼 수 없게 된 건가요?”한지음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진영숙의 시선이 강이한에게로 갔다. 강이한은 재촉하듯 강력한 눈빛으로 주치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 주치의는 큰 돌덩어리를 어깨에 올린 듯, 강한 부담감을 느꼈다. 주치의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병실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지음아.”주치의의 답을 들은 진영숙은 한지음을 위로하려 입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부정하고 싶은 현실이겠지만, 한지음은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말씀 좀 해주세요! 저 이제 정말 가망이 없나요?”의사가 말이 아닌 고갯짓으로 답한 탓에 답을 듣지 못한 한지음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다시 물었다.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인생이 되어버리다니, 그럴 수는 없어!“예…”기어들어 갈 듯한 목소리로 주치의가 답했다.절망이 고통스럽게 한지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겠는가? 모두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다시는 볼 수 없다니!”그녀는 울고 싶었지만, 고장이 나버린 눈은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병실엔 침울한 기운이 가득 돌았다. “얘야,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진영숙이 달래듯 한지음의 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미래에 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한지음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이, 이유영은 더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오전 내내 회의에 치여 결국 정국진이 떠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물론 이유영도 정국진이 이런 것에 신경 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국진은 이유영이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쓰는 것보단 커리어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우우웅,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 화면에 박연준의 이름이 떴다. 이유영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만날 때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전에 정국진이 한 말 때문에 이유영은
이유영은 지금 청하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커리어우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정국진의 영향까지, 그 누구도 함부로 그녀에 대해 쉬쉬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그녀가 박연준과 함께 식사를 해도 허튼 소문이 퍼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차 안, 박연준은 정면을 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고 이유영은 어색하니 손을 꼼지락대고 있었다.“회장님은 가셨어요?”이때 박연준이 물었다.“네, 가셨어요. 원래 이렇게 오래 있을 일정이 아니었는데, 괜히 저 때문에 더 머무신 거죠.”그녀는 얼마전까지 매섭게 자신을 공격해오던 강씨 집안을 떠올렸다. 비록 그 일은 잘 마무리됐지만, 정국진은 혹시라도 그가 없는 사이에 또 진영숙이 이유영을 괴롭힐까봐 걱정했었다. 진영숙의 성격대로라면 이대로 이유영이 청하시에서 멀쩡히 잘 사는 걸 두고 볼 리 없을 테니까.“하긴 걱정하실 만하죠.”“제가 왜요?”“딱 봐도 뭔가 연약해 보이잖아요.”“….”이유영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런 이미지에 가장 큰 몫을 하는 건 역시나 그녀의 신장일 것이다. 작은 키는 사람을 하여금 약자로 보이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씨 집안에 있을 때, 사람들이 그녀를 만만하게 봤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체구였다. 입을 꾹 닫아버린 이유영의 모습을 본 박연준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이 작은 체구로 어떻게 강씨 집안이랑 맞선 걸까? 무섭지도 않나?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서재욱이 보이지 않았다.“서 대표님 오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이유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기로 했는데, 약속이 잡혔다고 갑자기 못 온다고 연락왔네요.”박연준이 한쪽으로 핸드폰을 살펴보더니 말했다.“그렇군요.”이유영은 이때부터 갑작스레 어색해졌다. 전에 둘이 만났을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강이한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유영은 다른 생각 따위 할 여유가 없어 자
이때 박연준이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저도 알고 있어요. 이유영 씨, 지금 연애할 여유 없으시죠? 얼마 전에 강씨 집안이랑 그런 일도 있었고.”“….”그 말을 들은 이유영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잘라내고 싶어도, 강이한과 그녀는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하루아침에 정리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맞아요. 전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아요.”이유영은 섣불리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그 두려움으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이유영의 얼굴을 본 박연준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그녀가 느끼고 있을 감정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침묵하던 이유영이 말을 꺼냈다.“대표님도 뜨거운 사랑 해본 적 있어요?”“네?”“아, 아니에요!”이유영은 감성에 젖어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민망했다. 그녀는 서둘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와인 잔을 들었다.보통 사람처럼, 이유영은 회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회귀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국진, 박연준, 서재욱 등, 전엔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후로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게 변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삶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이유영 씨.”과거를 떠올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이유영의 상태를 눈치챈 박연준이 걱정스레 이름을 불렀다. 이유영은 애써 괜찮은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박연준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어요?”박연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았다. 그는 위로하듯 달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가 겪은 일은 그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녀는 얼른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아무 일 없었어요. 다 잊어버렸는걸요.”“잊어
“그러게요, 삼촌을 찾아서 참 다행이었겠네요.”만약 그때 정국진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는 강이한과 이혼은커녕 어떤 보복을 당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저도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이 말은 진심이었다. 무서울 것이 없는 이유영이었지만, 정국진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도 없었을 테니까.잠시 후,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이유영의 회사로 향했다. “6시에 다시 데리러 올게요.”박연준이 차에서 내리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박연준의 차가 떠나자, 이유영은 회사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강이한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의 눈빛에서 싸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언제부터 있었지?’그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누구라도 단번에 시선을 빼앗길 만큼 매력적이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많은 여성이 그를 힐끔거렸다.“여긴 어쩐 일이야?”이유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박연준과는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어?”정국진과 그녀의 사이를 오해했던 사건 뒤로 강이한은 섣불리 추측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유영이 외간 남자와 만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유영이 박연준의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순간, 그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강이한과 달리 이유영은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무심한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봤다.“어제 삼촌이랑 얘기 좀 나눴거든.”“무슨 얘기?”이유영이 정국진을 언급하며 대답을 미루자 강이한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박 대표님 가정사는 좀 복잡하지만, 책임감이 강한 남자니까 잘해보라고 하시더라고. 박 대표님이라면 절대로 날 실망하게 할 일이 없을 거라면서.”“그게 무슨 뜻이야?”강이한이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그의 태도에 이유영이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웃음을 본 강이한은 기분이 몹시 상했다. “모른 척하기는. 너처럼 밖에서 딴 여자랑 놀아날 일은 없을 거란 뜻이잖아!”그 말을 들은 강이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을 상대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너 때문에 지음은 완전히 빛을 잃어버렸어.”이유영이 강이한을 지나치려던 순간 그가 말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이유영은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지금 한지음이 맹인이 됐다는 거야?”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 이유영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 미소를 본 강이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남이 평생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야 한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지?“너…!”강이한은 분노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수술하면 되지 않아?”“이유영!”“왜? 설마 내 각막을 원해?”이유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지음이 진짜로 맹인이 되었다니, 인과응보 아닌가? 묘한 희열이 속에서부터 서서히 피어올랐다. 반면, 점점 환해지는 이유영의 얼굴을 본 강이한은 분노에 휩싸였다.“네가 감히 비웃어?”강이한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나 이유영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왜? 비웃으면 안 돼? 인과응보지! 참, 꼴 좋다.”지난 생에 눈이 멀었던 사람은 이유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멀게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한지음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 따위 서슴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저번 생엔 이유영은 죽을 때까지 어둠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했었다.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치고 올라왔다. 이유영은 도무지 참을 수 없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웃음이 지속될수록 강이한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하지만 이유영은 오히려 그것이 촉진제가 되었는지, 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젖혔다. “이유영!”그녀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이한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이유영을 죽여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 있는가?강이한은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도 잊은 채, 분노했다.“걱정 마, 좋은 약 많이 보내줄게. 그쪽이 빨리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이유영은 한지음이
“방금 강이한이 자기 입으로 그랬어. 한지음, 수술 실패한 것 같아!”이유영은 아주 통쾌했다.“실패했다고?”“응!”“벌받았네!”소은지는 이미 이유영한테서 그동안 한지음이 저질러온 악행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한지음은 이유영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스스로 눈에 상처를 입힐 정도로 아주 악독한 여자였다. 그랬는데 진짜로 눈이 멀어버렸다니, 인과응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그지! 죗값을 받은 거지!”이유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강이한을 너무 믿었던 거지.”“맞아. 웃겨 정말!”한때 이유영이 그랬던 것처럼, 한지음은 강이한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딱 그 꼴이었다.“믿으려면 의사를 믿어야지. 바보같이 강이한을 믿어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이유영이 말했다.“그래, 이제 만족해?”소은지가 물었다.“응, 아주 좋아! 정말 오랜만에 홀가분하다!"이유영은 한지음을 동정하기는커녕 아주 기뻐했다. 한지음이 처음부터 좋게 나왔다면 둘은 좋은 사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엄연히 둘은 아빠가 같은 자매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망친 건 결국 한지음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유영이 느꼈을 지옥을 똑같이 경험해야 할 것이다!“그러니까,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더니 죗값을 치르는 날이 오는구나!”소은지가 말했다. 그녀는 과거에 이유영이 한지음 때문에 당했던 수모를 떠올렸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알겠어, 너도 바쁘고 나도 바쁘니까 남은 얘기는 내일 하자!”한지음이 그렇게 됐다는 것은 매우 통쾌한 일이었지만, 일단 지금은 업무가 더 중요했다.“잠깐!”이유영이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갑자기 소은지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무슨 일인데?”“그래도 너무 방심하진 마.”“왜?”“저번에도 너한테 온갖 누명을 씌웠는데, 이번에 수술 실패까지 했으니 또 어떤 계략을 꾸밀지 누가 알아? 일이 이렇게 순순히 풀릴 것 같지 않아.”소은지는 한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