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은 음침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아들을 본 진영숙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것 봐! 내가 전부터 그랬잖아! 이유영 걔 진짜 악랄한 애라고!”“엄마 말 안 듣고 굳이 걔랑 결혼하더니 집안 꼴이 대체 이게 뭐야? 걔는 대체 지음이한테 왜 이러는 거야!”진영숙은 유영이 저지른 일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찢어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진영숙은 다급히 의사의 팔목을 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우리 지음이 어떻게 됐어요?”강이한은 그 자리에 서서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의사를 노려보았다.의사가 말했다.“다행히 일찍 발견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한지음이 수술실 침대에 실려 나왔다.위세척을 금방 마친 터라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지음아, 우리 불쌍한 지음이!”진영숙은 한지음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어머니.”“그래, 아가.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진영숙은 한지음의 손을 꽉 잡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이한 오빠는요?”“이한이 여기 있어.”진영숙은 강이한에게 눈치를 주며 대답했다.강이한은 엄마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한지음에게로 다가갔다.한지음이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해요, 오빠. 제가 또….”“지음아!”“왜 저를 살렸어요?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요! 차라리 죽었으면 이런 고통은 안 겪었을 거 아니에요!”한지음이 울며 고함쳤다.진영숙은 한지음이 안타까운 동시에 유영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한지음은 곧 병실로 옮겨졌다.부름을 듣고 병원으로 온 강서희는 한지음을 친딸처럼 챙기는 진영숙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진영숙의 눈에는 한지음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이한이가 알아서 다 해결해 줄 텐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어?”진영숙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목숨까지 바쳐가며 강이한을 구해준 한지석에게 죄를 지을 뻔
진영숙은 강서희에게 한지음을 맡기기로 했다.“너 여기서 지음이 두 시간만 봐줘. 엄마 곧 올 테니까. 그리고 휴대폰 절대 지음이 주지 마!”진영숙은 정신이 없어서 자기가 한지음의 핸드폰을 이미 박살냈다는 사실도 깜빡한 모양이었다.강서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겉으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고 어서 가.”“그래, 너만 믿는다.”진영숙은 흐뭇한 얼굴로 강서희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병실을 나갔다.단 둘만 남게 되자 강서희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한지음에게 말했다.“너 이유영보다 더 대단한 애였구나. 나 감탄했잖아.”유영은 시집온 뒤로 강이한을 제외한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했다.하지만 한지음은 달랐다.이 집안에 강서희를 제외하고 모두가 한지음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진영숙은 한지음을 딸처럼 대했다.한지음이 말했다.“지금 그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지?”싸늘한 말투에 발끈한 강서희가 다가가서 한지음의 귀뺨을 때렸다.“주제도 모르는 년!”원래대로라면 계획했던 일이 끝나면 한지음은 완전히 그들의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서희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지음을 노려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너도 참 대단하다. 그러다가 수술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랬어?”“확신이 있으니까 시작했겠지. 넌 그럴 깜냥도 없잖아.”한지음도 지지 않고 맞섰다.강서희의 얼굴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그녀는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하,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수술 실패해서 평생 장님으로 살지나 마.”강서희는 무덤덤한 한지음의 모습을 보자 더 화가 치밀었다.“우리 오빠, 아직 이유영 못 잊은 모양이더라. 너 우리 오빠랑 결혼하려면 좀 더 분발해야겠어!”“말했잖아. 난 그 자리 원한 적 없다고!”“가증스럽긴!”이제 강서희는 한지음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유영을 증오한다고?그건 당연했다. 강서희 본인도 유영을 증오했다. 유영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강이한은 기증자 쪽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급하게 수술 일정을 잡았다.한지음은 강이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남자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물었다.“왜? 뭐 필요해?”강이한의 눈빛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스쳤지만 앞을 못 보는 한지음은 그 표정을 볼 수 없었다.그녀가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이 암흑에 적응을 해보려고요.”한지음은 남자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남자의 죄책감을 자극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남자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적응할 필요 없어. 곧 광명을 되찾게 될 거니까.”“정말요?”“그래. 수술 준비는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어.”한지음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앞을 못 보는 나날은 그녀에게도 고역이었다. 영원히 어둠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는 했다.“제가 정말 앞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사실 두 눈이 멀쩡했을 때도 기증자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혹시 이유영을 설득한 걸까?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다.강이한이 말했다.“당연하지.”“하지만 사모님은….”한지음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조금 전까지 기뻐하던 얼굴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강이한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어떻게 이렇게 선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을까?강이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기증자 따로 있으니까 걱정 마.”이유영이 순순히 기증서에 사인할 리 없었다.그의 머릿속에는 매번 각막 기증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던 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새로운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한지음이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갈까 봐 가슴을 졸였던 그였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숨 막히는 일이었다.반면 한지음은 가슴이 철렁했다.물론 강이한이 보고 있는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사모님이 아니면 기증자가 따로 있어요?”“그래.”“너무 잘됐네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속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유영을 망가뜨리기
강이한은 진심 어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럴 거야.”그는 한지음 수술만 끝나면 제대로 유영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 시각 한지음의 속도 들끓고 있었다.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선한 표정을 유지했다.“가서 좋은 말로 좀 달래주면 금방 풀릴 거예요. 오빠를 사랑하는 분이잖아요.”강이한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정국진이 유영의 외삼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답답했다.대체 언제부터 그녀는 그에게 그리 많은 비밀을 만들기 시작한 걸까?그녀가 지금 소유한 모든 것은 정국진이 준 것이었다. 심지어 정국진은 그녀를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직까지 올려주었다.전에 그는 유영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여태 능력을 숨겨왔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녀는 관리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오빠, 무슨 생각해요?”“아무것도 아니야. 왜?”“왜 불렀는데 답이 없어요?”한지음이 서운한 어투로 물었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강이한이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이따가 수술 들어가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걱정 마.”“그러니까 사모님이랑….”“나와 그 여자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마.”“저는 괜찮아요. 잘 생각해 봤는데 저 때문에 오빠가 가정을 잃는 건 바라지 않아요.”한지음이 말했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앞을 못 보는 그녀는 느낄 수 없었다.이혼 사실을 떠올리자 강이한은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갑갑했다.처음에는 그녀에게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무시했는데 점점 그녀는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청하시 기업계의 엘리트로 추앙받던 이 남자는 이 순간에 와서야 자신이 전처에게 차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자존심이 상하고 분이 차올랐다.한지음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의료진이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그래요.”강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 선생은 하얗게 질린 배준석의 얼굴을 보고 다가가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배준석은 수술복을 벗어 던지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이 수술, 유 선생이 집도해요.”그 말에 유 선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네? 그건 좀….”“환자 상황은 나보다 유 선생이 더 잘 알잖아요. 그리고 이식 수술도 많이 해봤다면서요. 자신 없어요?”“하지만 강 대표님 쪽은….”“시간이 없어요. 하던 대로 하면 돼요!”강이한이 이 수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배준석은 잘 알고 있었다.한지음과 유영 사이에 많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강이한은 되도록이면 유영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쪽으로 배려했다.그래서 한지음이 광명을 회복하는 일은 강이한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배준석은 그의 복잡한 감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오늘 수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여 기증자 쪽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이 얼마나 곤란해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강 대표님한테는 뭐라고 설명할까요?”유 선생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세강이 청하시에서 어느 정도의 권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갑자기 자신이 주치의로 집도해야 한다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각막 이식 수술을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중한 부담감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그건 나중에 내가 돌아와서 설명할게요.”배준석이 겉옷을 입으며 말했다.그는 더 이상 유 선생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유 선생만 남아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배준석은 그와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만약 수술이 실패하더라도 강이한이 아끼는 후배였기에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수술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유 선생은 벌써 식은땀에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한편, 유영은 정국진의 차를 타고 순정동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최대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업판에 오래 몸담은
정국진의 세상에서 결혼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그래서 정국진은 애처가로 소문났다.파리에 있는 동안 외부에 유혹도 많았지만 정국진은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그런 사람이니 강이한의 외도는 배신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유영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를 바랐기에 다른 여자 때문에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었다.“그래. 네가 괜찮다니 나도 안심이야.”정국진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이한이 유영에게 마음이 남아 있더라도 변하는 건 없었다.그가 걱정하는 건 유영이 그의 감언이설에 흔들리고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그에게 흔들리는 것이었다.유영이 말했다.“저는 외삼촌이 재결합하라고 저를 설득하시려는 줄 알았어요.”조금 전 보였던 정국진의 태도를 보았을 때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자리에서 일어선 정국진이 담담히 말했다.“그 인간이 아직 널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해서 복잡한 여자 관계가 용서되는 건 아니야. 그런 사랑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아.”유영은 외삼촌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지난 생에는 이 도리를 깨우치지 못해서 각막을 잃고 불에 타죽는 순간에 와서야 본질을 파악했다.처음에는 단지 한지음의 존재 때문에 실망하고 상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생의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너도 이제 회사의 오너가 되었으니 예전에 운영하던 스튜디오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니?”“계속 해나가야죠.”유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갑작스럽게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가 되면서 인수인계 작업 때문에 바쁜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처음 시작한 사업인 만큼 쉽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양쪽을 동시에 운영하려고?”정국진이 물었다.“일단은 민정 씨한테 운영을 맡길 생각이에요.”조민정의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그래서 크리스탈 가든의 내부를 장악하는 동안에 조민정이 스튜디오 일을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그것도 괜찮네.”정국진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세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한지음이 수술실에서 나왔다.강이한은 급기야 배준석을 찾았지만 한지음과 함께 수술실을 나온 사람은 유 선생이었다.“강 대표님.”유 선생이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배 선생은 안에 있어요?”“대표님, 그게….”강이한의 질문에 유 선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강이한은 대답을 질질 끄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간호사가 한지음을 병실로 데려갔다.단 둘이 남게 되자 강이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유 선생에게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죠?”“이번 수술 집도는 제가 했습니다. 배 선생은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외출 중이고요.”“배준석 선생 어디로 갔습니까?”고함에 가까운 강이한의 목소리가 복도를 진동했다.유 선생은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그게… 배 선생이 돌아와서 대표님께 따로 설명드린다고 해서요.”“설명이요?”강이한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그는 애써 치미는 화를 참으며 그에게 물었다.“수술 결과는요?”“걱정 마세요.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유 선생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답했다.수술이 성공했다는 얘기에 강이한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돌렸다.그는 복도를 걸으며 배준석에게 분노의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강이한은 치미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한지음의 병실로 향했다.마취가 깨지 않은 한지음은 달게 자고 있었다. 강이한은 붕대를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때, 진영숙도 병실에 도착했다.그녀는 한지음이 한지석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한지음을 딸처럼 보살피기로 했다. 진영숙처럼 이기적인 사람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것이다.“수술은 어떻게 됐니?”진영숙이 작은 소리로 강이한에게 물었다.강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대꾸했다.“성공적이래요.”수술이 성공해서 다행이었다.수술 중에 문제가 생겼더라면 절대 배준석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진영숙이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행이다. 정말 다행
강이한이 병실을 나가자 강서희는 피곤한 기색의 진영숙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도 피곤하면 돌아가지 그래?”진영숙은 아직 자고 있는 한지음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아니야. 여기 있을래. 마취가 깨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울 거야.”“내가 잘 돌볼 수 있어. 엄마 피곤할까 봐 그래.”“지음이 깨는 것만 보고!”진영숙의 단호한 태도에 강서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렇게나 한지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이 맹장수술을 할 때 간병인만 보내고 병실에 한번 찾아온 적 없던 모습이 떠올랐다.진영숙은 항상 강서희를 친딸처럼 아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한지음을 대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며칠 사이 강이한은 유영을 찾지 않았다.그는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고 유영도 마찬가지였다.신제품 출시 시즌이 다가오기에 유영은 공모전을 내고 당첨자의 작품을 신제품으로 출시하기로 했다.유영도 보석 디자인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크리스탈 가든의 스타일은 매우 독특했다. 유행 요소도 고민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는 게 관건이었다.그 중에서도 한정판 제품 디자인이 가장 골머리가 아팠다.유영은 인수인계 작업만 해도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국진은 그녀에게 회사를 맡긴 뒤로 운영에 손도 대지 않았다.대표로 부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전임 대표는 일부 디자이너의 뇌물을 받고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묻어버린 사실이 들통나면서 해임되었다고 했다.“대표님, 이거 좀 보세요.”디자인 팀장이 선별한 원고를 유영에게 건넸다.전임 대표에게 뇌물을 바친 디자이너의 작품도 있었는데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유영이 물었다.“이거 어떻게 된 거죠?”“회장님께서는 다시는 이 디자이너의 작품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런데 그 사람 작품이 왜 내 앞에 나타난 거냐고요.”유영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디자인팀 팀장 장정윤은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