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짓이야!”이유영이 짜증스레 물었다.“날 가지고 노니까 재밌었어?”“….”‘가지고 놀다니?’“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하!”강이한은 차갑게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런 뒤, 차 보닛에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정적이 흘렀고, 매캐한 담배 연기만이 뿌옇게 둘 사이를 채웠다. 강이한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감정들을 잠재우기 위해 담배를 한 대, 또 한 대 이어서 피웠다. 이유영의 다리가 저려오고 강이한의 발밑에 담배꽁초가 서서히 쌓여갈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내가 오냐오냐 봐주니까, 분수를 모르네. 네가 누구 것인지 잊은 거야?”“무슨 소리 하는 거야!”이유영은 강이한의 이런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강이한은 좀 전에 배준석과 나서원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국진이 이유영의 삼촌이라고? 그는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둘의 관계를 추측하며 지낸 나날들을 생각하자, 그는 당장이라도 이유영을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었다. “즐거웠어?”강이한이 위험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이유영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즐거웠냐니?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뭘 잘못 했는데?”“….”그녀의 말을 듣자, 강이한은 겨우 가라앉혔던 분노가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강이한은 이유영이 반응할 새도 없이 빠르게 손목을 낚아채 그녀를 차 보닛 위로 제압해 버렸다. 주변은 고요했고 인기척도 없었다. 지금 강이한이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와서 말려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유영은 대립하고 있던 것도 잊은 채 겁에 질려 버렸다.“너,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떨리는 목소리로 이유영이 소리쳤다.이유영의 얼굴에서 공포를 읽은 강이한은 웃음이 나왔다.“왜? 무서워?”“….”“이런 외진 곳에, 뭔 일이 나도 이상할 거 없지.”강이한이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이유영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그녀는 궁지에 몰린 기분으로 끊임없이 속으로
강이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이성으론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강이한, 이 개새끼!”이유영이 욕하며 힘껏 저항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이한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그녀를 몰아붙였다.그리고 한참,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다. 강이한은 고개를 들어 이유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은 곧 터질 것처럼 빨갛게 부어 있었다. 기다랗고 하얀 강이한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이유영은 그의 손가락에 분풀이하듯 꽉 깨물었다.찰칵, 이때 핸드폰 카메라 소리가 울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이한의 반대편 손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뭐 하는 거야!”“뭐 하는 거라고 생각해?”“강이한!”이유영이 소리쳤다.“내가 너 때문에 본 손해가 얼마인데, 너도 이 정돈 감수해야지?”이유영과 달리 강이한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는 이유영이 이토록 사람을 잘 속이고 교활할 줄은 몰랐다. 한지음도 결국 이유영 때문에 지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 않은가? 그의 표정을 본 이유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좀 전에 느꼈던 두려움 따위는 잊은 듯, 분노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결국 참다못한 그녀가 강이한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채 뺨에 닿기도 전에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는 도리어 이것을 기회로 삼아 그녀를 희롱하듯 손등에 입맞춤했다. 이유영은 뻔뻔한 그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녀는 도무지 오늘 강이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이때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왜 진작 해명하지 않았어?”“뭘?”“너와 정국진의 관계!”“….”그 말을 들은 이유영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하, 내가 왜 해명해야 해?”해명이라,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해명했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강이한은 그래도 그녀를 의심했을 것이다. 이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옷을 정리했다.
”나랑 한지음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강이한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결혼 생활은 한지음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었다. 과거 그녀가 고아라는 이유로 얼마나 강씨 집안에서 무시를 당했던가? 이런 작고 큰 문제들이 모여 결국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인데, 그는 여전히 자각이 없어 보였다.이유영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바라봤다.“우린 그것 말고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전생을 포함해서!’회귀 전과 후, 그들 사이엔 수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이유영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쓰라렸지만,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말에 강이한의 동공이 커졌다. 그제야 무수히 많은 순간과 엇갈림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답을 찾기 위해 헤맸다.그러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이유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 환하게 뜬 삼촌이라는 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왜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가 알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의 핸드폰 화면처럼!“네, 삼촌.”이유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를 보아도 이성적인 감정이 한 줌도 섞이지 않은, 가족을 대하는 따뜻한 말투였다. “네, 위치 보낼게요.”정국진이 차를 보내겠다고 했는지, 이유영이 답했다. 그리고 나서 둘은 잠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강이한은 이런 이유영을 그저 옆에서 바라보았다. 통화를 마친 이유영이 담배를 던지며 발로 비벼껐다.“더 할 말 있어?”“뭐?”“없으면 먼저 가. 삼촌이 차 보내주신대.”이렇게 된 마당에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그녀는 당당히 강이한 앞에서 삼촌이라는 호칭을 썼다.정신없는 하루였지만, 결국 이유영은 평정심을 잡았다. 이때 머뭇거리던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부탁 하나 해도 돼?”“뭘?”“화풀이는 지음한테 말고, 나한테만 해.”한지음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
한지음 얘기가 나오자 유영은 치가 떨렸다.한지음의 출생의 비밀을 알았을 때, 그녀가 복수를 위해 일부러 강이한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 황당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대체 누가 피해자란 말인가! 굳이 피해자를 따지자면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한 유영의 어머니가 피해자였으며 남의 가정을 파탄 낸 한지음의 엄마가 가해자여야 맞다.하지만 한지음의 어리석은 복수심으로 유영은 사랑하던 남편을 잃었다.10년을 사랑한 남자는 그녀를 가해자로 지목하며 그녀에게 공개 사과를 강요하고 있었다.유영의 두 눈에서 분노와 실망의 감정을 읽은 강이한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이유영, 넌 한지음을 미워할 자격이 없어.”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한지음보다 더 나빠!”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정국진의 차가 도착하자 유영은 차로 향하며 그에게 말했다.“한지음한테 가서 전해.”그녀는 숨을 고르고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걔 말이 맞았다고. 우리 사이의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이야.”말을 마친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정국진의 차에 올랐다.한지음이 엄마를 증오해서 모든 분노를 그녀에게 쏟았다면 이미 환생하여 다시 태어난 유영은 그녀의 뜻대로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엄마가 죽기 전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팠다.전에는 엄마가 왜 밤중에 일어나서 슬피 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아빠는 충실한 가장이었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었다.하지만 엄마의 일생은 한지음의 모친에 의해 망가졌다.그리고 그 딸이 찾아와서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었다.“가요, 외삼촌.”차에 오른 유영은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홀로 남은 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멀어지는 유영의 차량을 노려보았다.이제 시작이라고?대체 언제면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그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조형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지음 씨가….”“지음이가 왜?”“
강이한은 음침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아들을 본 진영숙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것 봐! 내가 전부터 그랬잖아! 이유영 걔 진짜 악랄한 애라고!”“엄마 말 안 듣고 굳이 걔랑 결혼하더니 집안 꼴이 대체 이게 뭐야? 걔는 대체 지음이한테 왜 이러는 거야!”진영숙은 유영이 저지른 일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찢어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진영숙은 다급히 의사의 팔목을 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우리 지음이 어떻게 됐어요?”강이한은 그 자리에 서서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의사를 노려보았다.의사가 말했다.“다행히 일찍 발견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한지음이 수술실 침대에 실려 나왔다.위세척을 금방 마친 터라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지음아, 우리 불쌍한 지음이!”진영숙은 한지음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어머니.”“그래, 아가.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진영숙은 한지음의 손을 꽉 잡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이한 오빠는요?”“이한이 여기 있어.”진영숙은 강이한에게 눈치를 주며 대답했다.강이한은 엄마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한지음에게로 다가갔다.한지음이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해요, 오빠. 제가 또….”“지음아!”“왜 저를 살렸어요?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요! 차라리 죽었으면 이런 고통은 안 겪었을 거 아니에요!”한지음이 울며 고함쳤다.진영숙은 한지음이 안타까운 동시에 유영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한지음은 곧 병실로 옮겨졌다.부름을 듣고 병원으로 온 강서희는 한지음을 친딸처럼 챙기는 진영숙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진영숙의 눈에는 한지음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이한이가 알아서 다 해결해 줄 텐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어?”진영숙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목숨까지 바쳐가며 강이한을 구해준 한지석에게 죄를 지을 뻔
진영숙은 강서희에게 한지음을 맡기기로 했다.“너 여기서 지음이 두 시간만 봐줘. 엄마 곧 올 테니까. 그리고 휴대폰 절대 지음이 주지 마!”진영숙은 정신이 없어서 자기가 한지음의 핸드폰을 이미 박살냈다는 사실도 깜빡한 모양이었다.강서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겉으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고 어서 가.”“그래, 너만 믿는다.”진영숙은 흐뭇한 얼굴로 강서희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병실을 나갔다.단 둘만 남게 되자 강서희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한지음에게 말했다.“너 이유영보다 더 대단한 애였구나. 나 감탄했잖아.”유영은 시집온 뒤로 강이한을 제외한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했다.하지만 한지음은 달랐다.이 집안에 강서희를 제외하고 모두가 한지음을 안쓰럽게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진영숙은 한지음을 딸처럼 대했다.한지음이 말했다.“지금 그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지?”싸늘한 말투에 발끈한 강서희가 다가가서 한지음의 귀뺨을 때렸다.“주제도 모르는 년!”원래대로라면 계획했던 일이 끝나면 한지음은 완전히 그들의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그런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서희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지음을 노려보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너도 참 대단하다. 그러다가 수술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랬어?”“확신이 있으니까 시작했겠지. 넌 그럴 깜냥도 없잖아.”한지음도 지지 않고 맞섰다.강서희의 얼굴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그녀는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하, 그렇게 자신만만하다가 수술 실패해서 평생 장님으로 살지나 마.”강서희는 무덤덤한 한지음의 모습을 보자 더 화가 치밀었다.“우리 오빠, 아직 이유영 못 잊은 모양이더라. 너 우리 오빠랑 결혼하려면 좀 더 분발해야겠어!”“말했잖아. 난 그 자리 원한 적 없다고!”“가증스럽긴!”이제 강서희는 한지음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유영을 증오한다고?그건 당연했다. 강서희 본인도 유영을 증오했다. 유영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강이한은 기증자 쪽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급하게 수술 일정을 잡았다.한지음은 강이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남자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물었다.“왜? 뭐 필요해?”강이한의 눈빛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스쳤지만 앞을 못 보는 한지음은 그 표정을 볼 수 없었다.그녀가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이 암흑에 적응을 해보려고요.”한지음은 남자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남자의 죄책감을 자극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남자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적응할 필요 없어. 곧 광명을 되찾게 될 거니까.”“정말요?”“그래. 수술 준비는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어.”한지음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앞을 못 보는 나날은 그녀에게도 고역이었다. 영원히 어둠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는 했다.“제가 정말 앞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사실 두 눈이 멀쩡했을 때도 기증자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혹시 이유영을 설득한 걸까?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다.강이한이 말했다.“당연하지.”“하지만 사모님은….”한지음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조금 전까지 기뻐하던 얼굴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강이한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어떻게 이렇게 선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을까?강이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기증자 따로 있으니까 걱정 마.”이유영이 순순히 기증서에 사인할 리 없었다.그의 머릿속에는 매번 각막 기증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던 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새로운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한지음이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갈까 봐 가슴을 졸였던 그였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숨 막히는 일이었다.반면 한지음은 가슴이 철렁했다.물론 강이한이 보고 있는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사모님이 아니면 기증자가 따로 있어요?”“그래.”“너무 잘됐네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속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유영을 망가뜨리기
강이한은 진심 어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럴 거야.”그는 한지음 수술만 끝나면 제대로 유영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그 시각 한지음의 속도 들끓고 있었다.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선한 표정을 유지했다.“가서 좋은 말로 좀 달래주면 금방 풀릴 거예요. 오빠를 사랑하는 분이잖아요.”강이한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정국진이 유영의 외삼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답답했다.대체 언제부터 그녀는 그에게 그리 많은 비밀을 만들기 시작한 걸까?그녀가 지금 소유한 모든 것은 정국진이 준 것이었다. 심지어 정국진은 그녀를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직까지 올려주었다.전에 그는 유영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여태 능력을 숨겨왔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녀는 관리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오빠, 무슨 생각해요?”“아무것도 아니야. 왜?”“왜 불렀는데 답이 없어요?”한지음이 서운한 어투로 물었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강이한이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이따가 수술 들어가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걱정 마.”“그러니까 사모님이랑….”“나와 그 여자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마.”“저는 괜찮아요. 잘 생각해 봤는데 저 때문에 오빠가 가정을 잃는 건 바라지 않아요.”한지음이 말했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지만 앞을 못 보는 그녀는 느낄 수 없었다.이혼 사실을 떠올리자 강이한은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갑갑했다.처음에는 그녀에게 시간을 주려고 일부러 무시했는데 점점 그녀는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청하시 기업계의 엘리트로 추앙받던 이 남자는 이 순간에 와서야 자신이 전처에게 차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자존심이 상하고 분이 차올랐다.한지음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의료진이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수술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그래요.”강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