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의 할아버지는 자기 직계가족 외에 그 어떤 누구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강이한이 강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장 경호원 불러!”그의 말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달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을 쫓아낼 기세였다. 큰 할아버지와 둘째 할아버지의 눈이 서로 맞닿았다.“너희들 그만해. 말 가려서 못 해? 가족끼리 이게 무슨 짓이야!!”큰 할아버지가 강성과 강산에게 눈치 주며 말했다.삼 년을 못 봤을 뿐인데, 강이한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소란을 피울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큰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이번 프로젝트는 물 건너갔으니, 가능한 한 빨리 새 프로젝트에 도입해야 해. 동교 옆에도 좋은 땅 있으니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할 수 있을 거야.”동교 신도시 옆에 있는 땅, 강이한도 그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노리는 건 그뿐이 아니었다. “이번엔 놓치면 안 돼. 회사가 얼마나 큰 손실을 볼지… 아무리 강씨 가문의 재산 규모라도 감당할 수 없을 거야!”“알았으니까, 가세요! 강서희, 손님 나가신다!”강이한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반면 지시를 강서희는 매우 난감했다.“큰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강서희가 매우 조심스레 말했다. 강이한이 자신들을 무시해 버리자, 큰 할아버지와, 둘째 할아버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은 분풀이하듯 강서희에게 태클을 걸었다. “아주 잘 키웠어, 정말 친자식이랑 다를 바가 없네!”이 말은 진영숙을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진영숙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약 노부인이 그녀의 손목을 잡지 않았다면 집안의 어르신이고 뭐고 그대로 들이받을 뻔했다.‘늙은이들이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과거 그녀가 다쳐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이 얼마나 그녀를 비웃었던가! 어떤 이들은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욕까지 했었다!사실 진영숙은 강서
강이한의 서재.진영숙은 서재에 들어오자마자 진한 담배 냄새를 맡았다.“그 여자랑은 어떻게 됐어?”진영숙의 말한 ‘여자’는 다름 아닌 이유영이었다.오늘 친척들이 들이닥치며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뒤, 그녀는 이유영이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 진작에 능력이 있었으면서 왜 강씨 집안에 있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지, 이건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안 좋으면 재주라도 부려야 하는 거 아닌가?“그 여자? 무슨 소리예요?”진영숙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강이한이 되물었다.“그 여자 말이다, 그 여자! 이유영!”“저희 이혼했어요. 이제 만족하세요?”그의 답을 들은 진영숙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잘했어. 너랑 어울리지 않은 여자였어. 그 여자랑 결혼한 후로 되는 일이 없었잖아.”“….”“이혼하기 전에도 회사에 입힌 손해만 봐.”말하면 할수록 진영숙은 참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영은 절대로 며느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여자였다.강이한의 눈이 차가워졌다.그는 더 이상 이유영에 대해 진영숙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유경원 쪽에서도 저번 잔칫상 사건 뒤로 자꾸만 약혼을 미루고 있고! 흥, 누가 아쉬워한다고!”저번 생일 잔치 이후로 유경원 쪽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진영숙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자기 아들, 강이한한테 어울리기엔 좀 부족한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유영과 이혼까지 한 마당에 강이한은 더 이상 꿀릴 것이 없었다! 그녀의 아들은 최고의 신랑감이었으니까 얼마든지 더 좋은 신붓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참, 요즘 회사 일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 동교 신도시 부지 옆에 있는 땅, 이번이야말로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돼!”강이한이 본가로 돌아오기 전, 친척들에게 받은 수모를 떠올린 진영숙은 아주 진절머리가 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에 또 실수하게 된다면 그들을 하이에나처럼 회사를 삼키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다음 날, 강이한은 본가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뒤
김연우는 서재욱의 요구사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유영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이유영이 디자인을 이 기초를 바탕으로 진행하길 원했다. 반면 이유영은 이런 요구 사항들이 차라리 달가웠다. 고객이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 이유영이 작업 틀을 잡는 데 편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저희 회사에도 실력 있는 디자인 팀이 있어요. 그럼에도 이 일을 이유영 씨에게 맡기는 이유, 그건 저희 대표님과 박연준 대표님의 인연 때문이라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꽤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말투. 과거의 이유영이었다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조민정 씨, 배웅 부탁드릴게요.”“네!”조민정은 서둘러 김연우를 따라나섰다.김연우가 떠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이유영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회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인맥을 통해 일을 맡기는 것이리라. 박연준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와의 인연도 삼촌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번엔 박연준의 도움으로 받은 의뢰였다. 이유영은 두 번 같은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그 누구한테도 무시당하지 않고 인증받으려면 확실한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우우웅-전화가 진동했다. 문 비서한테서 온 전화였다.“안녕하세요, 문 비서님.”“서원그룹 쪽 사람은 떠났어요?”“네, 좀 전에 갔어요. 박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사실 이유영은 이런 식으로 일을 맡고 싶지 않았지만, 박연준의 소개였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거절할 수 없었다!“대표님이 함께 식사하고 싶으시다는데, 시간 괜찮으세요?”“어제도 함께 식사했는데, 무슨 일로….”사실 오늘 아침도 박연준의 차를 타고 출근한 거였다. 하지만 곧이어 서원그룹과 시작한 새 프로젝트를 떠올리며 다시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혹시 오늘 그 프로젝트 건으로….”“네, 서원그룹 프
”좀 전에 서원그룹 대표 보좌관 김여우와 미팅하셨답니다!”서원그룹에서 직접 이유영을 찾아온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동교 신도시 옆 부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청하시의 부동산 개발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동교 옆 부지 개발이 어쩌면 그 마지막 주자가 될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 땅을 원하고 있었다. 서원그룹이 강성그룹과 협력하고 있는 이유영을 찾아간 것도 이 프로젝트 입찰에 더 확실한 힘을 실어주기 위함일 것이다. 이번 동교 신도시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기업이 이유영의 실력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조형욱도 이유영의 역량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점심에 사모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약속을 잡을까요?”조형욱이 망설이는 목소리로 물었다.강이한은 겉으론 무심한 듯 보였지만, 그 속까지 괜찮을 거라 보장할 수는 없었다.안 그래도 지난번 입찰에 이유영의 디자인 때문에 패배의 쓴맛을 맞보게 되었는데 지금은 이혼까지 한 상태였다.이유영은 분명 전보다 더 냉정히 그를 대할 것이다.“이유영과 식사를 하라고?”강이한이 비웃듯 말했다.조형욱이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유영이 얼마나 그를 증오하고 있을지 예상이 가는 강이한은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이유영이 그토록 그를 미워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다시 그녀를 만나 그 증오가 가득한 눈빛을 받을 상상 해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강이한은 눈을 감으며 깊이 생각에 빠졌다. 그의 얼굴은 차분해 보였으나, 그 속은 지금 수많은 고민들로 쑥대밭이었다. “사모님의 능력이 그 정도일 줄은 누가 예상을 했겠어요. 그 어렵다는 입찰 건을 단번에 통과시키다니.”경험이 많은 디자이너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때였으면 수많은 선별과 비교를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영의 디자인은 거의 당일 통과 결과가 나왔다.“나가.”강이한은 지금 이유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조형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사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의사가 말했다.“한지음 씨는 요즘 계속 우울해하셨습니다. 아마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한 게 아닌가 싶어요. 보호자가 옆에 많이 있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우울증?한지음이?그 증거들을 확인한 후로 강이한은 한지음을 속이 시커먼 여자로 단정지었다.아무나 다 우울증에 걸릴 수 있지만 그런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 우울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잠시 후, 한지음이 실려 나왔다. 간호사는 그녀를 끌고 병실로 돌아갔다. 강이한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병실.한지음의 두 눈은 여전히 흰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강이한이 보기에 전혀 안쓰럽지 않고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졌다.“굳이 이렇게 해야 했어?”한참이 지난 뒤, 강이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병상에 앉은 한지음은 더듬거리며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강이한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한지음이 길게 심호흡한 뒤에 말했다.“이렇게 하면 대표님이 저 보러 올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이렇게 했을 거예요.”그녀는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고 아팠다.강이한이 그녀를 빤히 보며 말했다.“너 참 교활한 사람이었구나.”예전에는 절대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전에 유영에게 했던 모든 잔인한 말들을 한지음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그의 태도와는 다르게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뭐?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몰라? 한지음,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내가 널 돌봐줬던 건 네가 지석이 여동생이었기 때문이었어.”“그런데 왜 굳이 이런 일을 벌여서 그 여자가 나랑 이혼하게 만들었니?”유영과 이혼할 때를 생각하면 강이한은 지금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그녀와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 유영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왜 해외에 가서 정국진을 만나고 국내로
점심식사가 끝난 뒤, 박연준은 유영을 사무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유영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조민정을 보았다. 조민정이 그녀의 사무실이 있는 방향을 눈짓으로 가리키자 유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그 인간 또 왔어요?”조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동교 신도시 개발에서 패배의 쓴맛을 보았으니 그 주변 상권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경쟁 회사들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오전에 서원그룹 김연우를 만났는데 점심 시간이 지나 바로 찾아왔다는 게 그 증거였다.유영은 길게 심호흡을 하고 옷매무시를 정리한 뒤에 사무실로 들어갔다.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강이한의 앞에 놓인 일회용 컵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마 그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듯했다.소리를 들은 강이한은 고개를 들고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유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슬픔을 확인한 순간 유영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말을 마친 그녀는 그를 지나쳐 자신의 의자로 가서 앉았다.강이한은 그녀가 입고 있는 정장 오피스룩을 빤히 바라봤다.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한정판 제품들이었다.그의 눈빛에 서렸던 아픔이 갑자기 이글거리는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오기 전에 그녀에게 들었던 죄책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두 사람은 형형한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유영은 말없이 그를 보기만 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에도 온도가 없었다.“당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네.”“왜? 난 꼭 집에서 밥이나 하고 시댁 어르신들 비위나 맞춰야 어울려?”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온몸에 솜털이 곤두섰다.좋게 말해서 온순하고 고분고분한 며느리이자 아내였지만 강이한의 가족들 눈에 유영은 실컷 부릴 수 있는 노예와도 같았다.오히려 본가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이 그녀보다 더 존중을 받았다.“유영아.”강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아픔
하지만 이유영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한지음이 당신 밀어내려고 꼼수 부린 거 다 알았어. 하지만 여기서 끝내자. 이런 일 때문에 우리가 헤어져야 할 이유는 없어.”강이한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은 지금 이 상황이 황당하기만 했다.저게 지금 사과를 하는 태도인 걸까?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그 사건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끝내라 마라야? 그리고 우리가 헤어져야 할 이유는 충분해.”참 말을 쉽게 한다 싶었다.아이의 목숨과 그녀의 목숨, 이 모든 걸 다 합치면 저들을 찢어 죽여도 모자란데 가해자 주제에 여기서 끝내자니?그는 아직도 주도권을 잡고 싶은 걸까?그녀는 길게 심호흡한 뒤, 분노를 삭히고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강이한은 그런 유영을 바라보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사실 난….”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리며 대화가 중단되었다.조형욱의 전화였다.강이한이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상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그는 유영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대표님, 한지음 씨, 눈 주변 상처 감염이 너무 심한데 당사자가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그 여자 상태가 어떤지 조 비서가 몰라?”강이한이 버럭 화를 내며 포효했다.한지음의 상태에 대해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조형욱이 잠깐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강이한이 전화를 끊으려던 때, 조형욱이 다시 말했다.“대표님, 저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그래서?”강이한의 시선이 유영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치며 스파크가 튀었다.또 한지음!그들 사이에 이제 남은 게 뭐가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한지음은 유령처럼 그들 사이에 끼어 있을 것이다.유영은 원한이 사무쳤다. 지난 생에서 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마지막 죽는 순간에야 깨달았을까?강이한은 유영을 매섭게 노려보며 한결 누그러진
유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진해졌다. 그 모습은 강이한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쾅!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얼마나 세게 쳤는지 테이블이 흔들거렸다.“그래, 내가 시켰어.”“당신에게 먼저 보여주고 기자에게 흘린 거야. 알잖아?”“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이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는 걸까?그녀는 단지 반격을 했을 뿐이었다.개한테 물렸는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라는 소리로 들렸다.유영은 길게 심호흡하고 가슴에 치미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당장 여기서 나가.”“이유영, 한지음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남자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고는 뒤돌아서 나가버렸다.유영은 분노에 온몸이 떨려왔다.그녀는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마음대로 해!”저렇게 말하면 누가 두려워할 줄 알고?쾅!사무실 문이 거칠게 닫혔다. 여기 찾아와서 그녀와 관계를 회복하자고 했던 때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유영은 부들부들 떨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강이한이 나가자마자 조민정이 안으로 들어왔다.“어떻게 된 거예요?”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사를 바라보며 조민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유영은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켰다.조민정은 강이한이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것을 보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하지만 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민정도 조용히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한참이 지난 뒤, 드디어 분노를 진정시킨 유영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한지음이 스스로 자해를 한 것 같아요. 진짜 실명된 거 같다고요!”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조민정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게 무슨 말씀인지….”한지음의 실명이 진짜였다니?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유영이 조민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까요?”유영을 날려버리기 위해 한지음은 스스로 자기 눈을 자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