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소만리는 커피 세례를 피할 수 있었지만 기모진의 상의는 온통 더러워져 있었다.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양이응이 말했다.“당신, 좌한 아니에요?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보고해야 하나요?”“...”양이응은 대답하지 못했고 오히려 소만리에게 칼끝을 겨누었다.“소만리, 당신 남편이 죽고 그 사이 외로운 밤을 참지 못해 경연이랑 어울리고 싶었던 거야? 이 일은 쉽게 넘어가지 못할 거야. 두고 봐!”양이응이 소만리를 가리키며 매섭게 경고하고 떠났다.“거기 서.”소만리는 당당하게 양이응을 불러 세웠다.양이응은 걸음을 홱 멈추더니 소만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양이응, 네가 지난번에 날 모함한 일을 내가 지금 추궁하기만 하면 넌 끝난다는 거 알기는 알아? 곧 소송당해도 모자랄 판에 누가 감히 용기를 줬길래 나한테 와서 따지고 들어? 강연이 너한테 이런 용기를 줬니?”“...”양이응은 소만리가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그렇다고 어찌 양이응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맞아, 강연이 나한테 준 용기야. 소만리, 네가 경도 제일가는 이름난 규수라고 해도 강연이랑 비할 바 아냐! 강연 한 마디면 손을 쓰지 않아도 없앨 수 있어!”“그렇다면 내가 죽기 전에 꼭 이 핫한 룸 동영상의 여주인공을 해결해야겠군.“...”양이응이 룸의 여주인공이라는 말을 듣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소만리의 얼굴을 때리려고 했다. 소만리는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던 터라 양이응의 팔을 잡음과 동시에 다른 팔로 양이응의 뺨을 때렸다.소만리는 기세를 몰아 양이응에게 말했다.“양이응, 잘 들어. 강연이 나한테 무슨 방법을 쓰든 난 두려운 게 없어. 그녀처럼 음지에 살면서 빛을 보지 못하는 여자는 조만간 하늘이 천벌을 내릴 거야! 그리고 당신, 넌 내 상대도 되지 못해!”이 말이 떨어지자 소만리는 양이응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길가로 가서
기모진의 입술 사이로 이 세 글자가 저절로 미끄러지듯 툭 나왔다.그는 가슴팍을 세게 잡아당기더니 뜻밖에도 한동안 황홀하고 아련한 느낌을 받았다.소만리.그는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자꾸 ‘소만리' 라는 세 글자를 말했을까.소만리는 아기를 달래서 재우고 몸을 일으켜 눈을 들어 보니 누군가가 입구에 서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문으로 가서야 기모진이 거기 있는 것을 알았다.소만리는 경계하며 문으로 다가가 문을 닫았다.“다시는 내 아이 곁에 오지 마세요.”그녀는 눈동자에 경계의 눈빛을 유지한 채 말했다.“내일 내가 디퓨져를 당신한테 줄 테니까 오늘은 내 아들과 함께 있을 거예요.”소만리는 어차피 기모진이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그는 그러라고 동의했다.조금 있다가 사화정과 모현이 와서 기모진의 지금 상황을 알게 되었고 두 부부는 매우 걱정스러워했다.“모진이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 지금 현재 그 강연이라는 여자 곁에 있어서 정말 걱정이야.”사화정은 근심에 가득 둘러싸여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네 아빠는 요 며칠 F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그 강연이란 여자에 대해 물어봤어.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완전 깡패라더구나. 사회적으로도 아주 나쁜 사람이래.”“게다가 그 오빠라는 강어는 F국에서 세력이 엄청나대. 사업이란 사업은 다 독식하고 있다더군. 그래서 이 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에 원하는 건 다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대.”모현도 사화정의 말에 덧붙였다.“소만리, 지금 이 여자는 모진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으니 아마 가만있지 않을 거야.”그러나 사실 이것들은 이미 소만리도 들어서 다 알고 있었다.단지 사화정과 모현이 자신을 걱정할까 봐 소만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었다.모현은 자신의 귀한 딸을 아끼며 이미 행동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소만리, 조금만 더 참아. 아빠가 이미 사람을 보내서 흑강당의 내막을 수집하고 있어. 만약 뭔가 증거를 확보하
이 남자는 정말 무정하다.그녀는 그의 품에서 나왔다. 아름다운 눈동자에 곤혹스런 물결이 일렁였다.“만약 당신이 기모진이 아니라면 왜 나한테 키스하는 거예요?"“키스하고 싶으니까 키스한 거지. 무슨 이유가 있어야 돼?”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당신 강연에게도 키스하는 거예요? 그녀와 함께 했던 3개월 동안 매일 밤 그녀를 안고 잠든 거잖아요?”소만리의 두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기모진은 마치 그녀의 예쁜 눈동자에서 그녀가 말하는 장면을 본 것 같았다.그는 자신이 이 여자를 안고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보았다.그 안도감과 고요한 느낌을 그는 오랫동안 가지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가 강연을 안고 잠든 기억이 없다는 걸 틀림없이 확신했다.기모진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서운한 듯 그를 밀쳐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그녀를 위해 몸을 던지고 헌신한 장면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기억이 없었다.소만리가 떠난 후 기모진은 잠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내려놓은 향을 집어 들고서 코끝에 대고 살짝 냄새를 맡아보았다.은은한 장미 향기가 콧속를 파고들어 그의 심신을 상쾌하게 했다.소만리는 떠나기 전에 기모진이 잠시 정신이 멍해 있는 틈을 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가져왔다.그녀는 병원으로 가서 아기를 보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아까 기모진이 그 담배를 피우고 그녀에게 키스했을 때 그녀는 순간 자신의 기분이 살짝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이 담배가 결코 그냥 보통의 담배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그녀는 담배를 반 토막으로 잘라서 실험실로 들어갔다.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실험 결과가 나왔다. 소만리가 마침 결과를 보려고 할 때 기모진에게서 전화가 왔다.“당신이 갖고 싶었으면 내가 줄 수 있는데 왜 몰래 가져갔어?”그는 분명히 담배 얘기
”소만리!”거의 본능적으로 기모진은 당황하며 입으로 이 세 글자를 외쳤다. 그는 지체할 겨를 없이 바로 그녀를 안고 차에 올라 병원으로 달려갔다.떠날 때 그가 방금 부른 구급차와 소방차가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기모진은 백미러로 방금 기모진이 불을 질렀다고 말한 가사도우미가 이미 황급히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기모진은 소만리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의사는 그녀가 과도한 자극을 받아 기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과도한 자극?기모진은 소만리가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알았다. 그는 소만리가 깨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괜히 걱정이 되었다.소만리를 걱정하는 그런 마음이 기모진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갔고 자신도 모르게 소만리의 아기가 있는 방으로 갔다.막 입구에 다다르자 그는 위청재가 아주 귀여운 네다섯 살짜리 아이 둘을 데리고 갓난 아기 곁에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 얘가 정말 내 동생이에요?”기여온이 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위청재는 가슴이 벅차올라 기쁘게 말했다.“그럼, 얘가 너랑 기란군 오빠의 동생이지. 봐봐. 이 작은 얼굴이 너네 아빠 어릴 때 얼굴이랑 똑같아. 기란군 봐 봐. 네 어릴 때랑도 똑같아. 너네 형제랑 아빠 얼굴이 전부 똑같아!”“어떻게 그렇게 돼. 난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어.”기란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위청재는 웃으며 말했다.“갓난 애들은 다 못생겼어. 점점 자라면서 예뻐지고 잘 생겨져.”기모진은 이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 위청재와 아이들은 모 씨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소만리가 병원이 입원해 있는 사실도 모른다. 이때 간호사 한 명이 급히 기모진 쪽으로 달려왔다. 기모진은 무슨 일인지 짐작은 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바짝 뒤따라가 보니 간호사는 VIP 병동으로 들어가며 급히 말했다.“혹시 소만리 가족이십니까? 그녀가 방금 병원에 입원했는데 집에 큰불이
”엄마, 왜 그래?”“엄마, 울어?”귓가에 위청재의 절절한 소리가 들려오고 뒤 이어 두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는 소리가 들렸다.소만리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창백한 입술을 끌어당기며 말했다.“왜 그를 사랑하는 일에 이렇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죠? 왜...”위청재는 소만리가 바로 기모진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몹시 당황하며 말했다.“소만리, 너 모진이 말하는 거냐? 모진이가 뭘 했길래?”소만리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흘렸다. 고통스럽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가 불을 질렀어요. 우리 집을 불태워 버렸어요.”“뭐!”위청재는 너무 놀라 당황하며 말했다.“아니야. 모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 아냐. 아냐...”소만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로 기모진이 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소만리의 목을 졸랐을 때 그 냉혹하고 잔인한 표정이 또렷하게 떠올랐다.소만리는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목이 메어 가슴이 아파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녀는 갑자기 이불을 홱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서 뛰쳐나갔다. 그녀는 차를 불러서 모 씨 집으로 갔다.소방관이 아직도 최선을 다해 불을 끄고 구조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고 있었다.소만리는 창백한 얼굴로 집 앞에 서서 한때는 호화로웠던 집이 화염에 휩싸여 폐허가 되어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뛰어들어갔다.소방관은 갑자기 누군가가 돌진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급히 소만리를 잡아당겼다.“위험해!”“내 부모님이 아직 저 안에 계세요!”소만리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내가 들어가서 그들을 구해야 해요. 꼭 들어가야 한다구요!”“여기 들어가면 너무 위험해요. 당신에게도 일이 생길 거예요!”“그렇지만 그들은 내 부모님이에요! 내 친부모님이라구요!”소만리는 마음이 무너져 내려 가슴을 찢고 울부짖으며 소방관을 힘껏 밀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소만리가 탄식하며 원망하는 말을 들으며 기모진의 눈은 더욱더 일그러졌다.만나도 알지 못하는...이 말이 유난히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놀라지도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소만리는 그를 홱 밀치고 방안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기모진은 소만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고 다시 그녀를 앞으로 잡아당겼다.“이거 놔! 기모진, 이거 놔!”소만리는 발버둥 치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남자에게 눌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기모진, 이 나쁜 놈! 이거 놔! 저기 내 부모님이 있다구! 내 친부모라구!”소만리는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고 눈물이 이미 그녀의 눈앞을 가렸다.그러나 기모진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소만리를 그의 품속에 꽉 누르고 있었다. 소만리는 다시 감정이 무너져내렸다.“놔, 놔줘. 기모진, 날 놔줘!”그녀는 통곡하며 애원했다.“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이십여 년을 보내고 겨우 돌고 돌아 내 부모를 찾았다고. 당신이 지금 내 집을 망가뜨렸어. 설마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야!”“기모진, 내가 당신을 미워하고 증오해야만 당신이 만족하는 거야?!”소만리가 힘껏 발버둥 치며 원망했지만 기모진은 끝내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 소만리는 눈앞의 모든 것이 서서히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신이 나간 채 멍하니 얼어붙고 말았다.불길이 모두 꺼진 후 소방관은 집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조했다.그들이 결국 들것 두 개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자 소만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온몸을 에워쌌다.그녀의 초점 잃은 눈에 들것이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이자 힘껏 기모진을 밀어내고 들것 앞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덮여 있는 흰 천을 살며시 젖혔다. 온통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을 보자 그녀의 심장이 도려져 떨어지는 것 같았다.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아픔이 그녀의 정신을 순간적으로 흐려지게 했다. 소만리는 두 발에 힘이 빠져서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소만리는
”아니야, 소만리.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자신을 탓하지 마.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하늘에서 널 보고 계신다면 네가 자책하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예선의 위로에 소만리의 눈물은 더욱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그녀는 갑자기 예선의 품에서 벗어나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왔다.“소만리, 어디 가?”“아빠 엄마. 나 아빠 엄마 보러 갈 거야!”소만리는 병실을 뛰쳐나와 긴 복도를 따라갔고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우리 엄마 아빠 보신 적 있어요?”예선은 뒤에서 따라다니며 소만리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시야가 흐릿해졌다.“소만리!”예선은 뒤쫓아가서 안타까운 듯 소만리를 잡아당겼다.“소만리, 이러지 마.”그러나 소만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사화정과 모현의 행방을 물었다.소만리의 집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소군연은 황급히 달려왔지만 엘리베이터를 막 나오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져 눈물투성이가 되어 앞으로 나오는 소만리를 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매우 초췌해 보였고 심지어 정신도 혼미해 보일 정도였다.소군연은 소만리의 이런 모습에 너무나 놀랐다.“소만리?”그가 한 번 불러 보았는데 소만리가 그를 쳐다보더니 소군연인 걸 알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선배, 우리 엄마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그녀가 묻자 소군연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소만리, 괜찮아?”소만리는 그에게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럼 기모진은 봤어요? 내 남편이고 불을 질러 내 부모님을 죽인 사람인데 혹시 어디 있는지 봤어요?”“...”소군연은 소만리의 말을 듣고 멍하니 얼어붙었다.그는 소만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소만리의 뒤에서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는 예선을 바라볼 뿐이었다.“소만리.”예선은 가슴이 무너지고 있는 소만리를 마음 아프게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러지 마.”소만리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살짝 곁눈질을 하다가 다가온 남자를 보고 냉랭하게 말했다.“나가.”기모진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소만리에게 계속 걸어갔다.“꺼져! 당신은 우리 부모님 앞에 설 자격 없어, 꺼져.”소만리의 어투는 날카로웠다.그러나 기모진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며 소만리의 뒤로 가서 말했다.“더 큰 비극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강연에게 가서 사과해. 그리고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해.”“허. 허허.”소만리는 마치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천천히 일어나며 냉담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번쩍 치켜들고 손바닥을 들어 기모진의 얼굴을 때렸다.“기모진, 잘 들어. 난 그녀를 때리는 걸 멈추지도 않을뿐더러 당신도 때릴 거야!”소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기억을 잃은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기억을 잃으면 불을 질러 사람을 죽이고 인간성은 모조리 없어지는 거야? 그래서 내 엄마 아빠를 죽인 거야?”그녀는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두 눈에 핏발이 선 채 눈앞에 서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한때는 그녀를 위해 몸을 던졌던 남자였고 마음이 아파서 애간장이 타들어가던 남자였다.“기모진, 꺼져! 강연이 곁으로 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예선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안에서 소만리의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그녀가 들어가 보니 언제 온 건지 기모진이 와 있었다.“기모진, 이 나쁜 놈아!”예선이 화가 나서 욕을 퍼붓고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소만리를 곁으로 끌어당겼고 싸늘한 표정의 남자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기모진, 소만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 같은 남자를 만난 거야!”“지난 몇 년 동안 소만리는 묵묵히 당신의 고통과 상처를 다 받아주고 참아왔어. 소만리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했던 거야. 그런데 당신은! 당신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그 여자가 소만리에게 앙심을 품고 이런 인면수심의 일을 저질렀는데, 당신이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