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962장

작가: 십육인
”엄마, 왜 그래?”

“엄마, 울어?”

귓가에 위청재의 절절한 소리가 들려오고 뒤 이어 두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만리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창백한 입술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왜 그를 사랑하는 일에 이렇게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죠? 왜...”

위청재는 소만리가 바로 기모진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몹시 당황하며 말했다.

“소만리, 너 모진이 말하는 거냐? 모진이가 뭘 했길래?”

소만리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흘렸다. 고통스럽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가 불을 질렀어요. 우리 집을 불태워 버렸어요.”

“뭐!”

위청재는 너무 놀라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야. 모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 아냐. 아냐...”

소만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정말로 기모진이 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소만리의 목을 졸랐을 때 그 냉혹하고 잔인한 표정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소만리는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목이 메어 가슴이 아파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웠다. 그녀는 갑자기 이불을 홱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서 뛰쳐나갔다. 그녀는 차를 불러서 모 씨 집으로 갔다.

소방관이 아직도 최선을 다해 불을 끄고 구조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고 있었다.

소만리는 창백한 얼굴로 집 앞에 서서 한때는 호화로웠던 집이 화염에 휩싸여 폐허가 되어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뛰어들어갔다.

소방관은 갑자기 누군가가 돌진해 들어가는 것을 보고 급히 소만리를 잡아당겼다.

“위험해!”

“내 부모님이 아직 저 안에 계세요!”

소만리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들어가서 그들을 구해야 해요. 꼭 들어가야 한다구요!”

“여기 들어가면 너무 위험해요. 당신에게도 일이 생길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은 내 부모님이에요! 내 친부모님이라구요!”

소만리는 마음이 무너져 내려 가슴을 찢고 울부짖으며 소방관을 힘껏 밀치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3장

    소만리가 탄식하며 원망하는 말을 들으며 기모진의 눈은 더욱더 일그러졌다.만나도 알지 못하는...이 말이 유난히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놀라지도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소만리는 그를 홱 밀치고 방안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기모진은 소만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고 다시 그녀를 앞으로 잡아당겼다.“이거 놔! 기모진, 이거 놔!”소만리는 발버둥 치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남자에게 눌려서 죽을 것만 같았다.“기모진, 이 나쁜 놈! 이거 놔! 저기 내 부모님이 있다구! 내 친부모라구!”소만리는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고 눈물이 이미 그녀의 눈앞을 가렸다.그러나 기모진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소만리를 그의 품속에 꽉 누르고 있었다. 소만리는 다시 감정이 무너져내렸다.“놔, 놔줘. 기모진, 날 놔줘!”그녀는 통곡하며 애원했다.“의지할 데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이십여 년을 보내고 겨우 돌고 돌아 내 부모를 찾았다고. 당신이 지금 내 집을 망가뜨렸어. 설마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야!”“기모진, 내가 당신을 미워하고 증오해야만 당신이 만족하는 거야?!”소만리가 힘껏 발버둥 치며 원망했지만 기모진은 끝내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 소만리는 눈앞의 모든 것이 서서히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정신이 나간 채 멍하니 얼어붙고 말았다.불길이 모두 꺼진 후 소방관은 집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조했다.그들이 결국 들것 두 개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자 소만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온몸을 에워쌌다.그녀의 초점 잃은 눈에 들것이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이자 힘껏 기모진을 밀어내고 들것 앞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덮여 있는 흰 천을 살며시 젖혔다. 온통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을 보자 그녀의 심장이 도려져 떨어지는 것 같았다.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아픔이 그녀의 정신을 순간적으로 흐려지게 했다. 소만리는 두 발에 힘이 빠져서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소만리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4장

    ”아니야, 소만리.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자신을 탓하지 마.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하늘에서 널 보고 계신다면 네가 자책하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야.”예선의 위로에 소만리의 눈물은 더욱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그녀는 갑자기 예선의 품에서 벗어나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왔다.“소만리, 어디 가?”“아빠 엄마. 나 아빠 엄마 보러 갈 거야!”소만리는 병실을 뛰쳐나와 긴 복도를 따라갔고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우리 엄마 아빠 보신 적 있어요?”예선은 뒤에서 따라다니며 소만리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시야가 흐릿해졌다.“소만리!”예선은 뒤쫓아가서 안타까운 듯 소만리를 잡아당겼다.“소만리, 이러지 마.”그러나 소만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사화정과 모현의 행방을 물었다.소만리의 집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소군연은 황급히 달려왔지만 엘리베이터를 막 나오자마자 얼굴이 창백해져 눈물투성이가 되어 앞으로 나오는 소만리를 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매우 초췌해 보였고 심지어 정신도 혼미해 보일 정도였다.소군연은 소만리의 이런 모습에 너무나 놀랐다.“소만리?”그가 한 번 불러 보았는데 소만리가 그를 쳐다보더니 소군연인 걸 알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선배, 우리 엄마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그녀가 묻자 소군연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소만리, 괜찮아?”소만리는 그에게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럼 기모진은 봤어요? 내 남편이고 불을 질러 내 부모님을 죽인 사람인데 혹시 어디 있는지 봤어요?”“...”소군연은 소만리의 말을 듣고 멍하니 얼어붙었다.그는 소만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소만리의 뒤에서 바쁜 걸음으로 달려오는 예선을 바라볼 뿐이었다.“소만리.”예선은 가슴이 무너지고 있는 소만리를 마음 아프게 끌어안으며 말했다.“이러지 마.”소만리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5장

    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살짝 곁눈질을 하다가 다가온 남자를 보고 냉랭하게 말했다.“나가.”기모진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소만리에게 계속 걸어갔다.“꺼져! 당신은 우리 부모님 앞에 설 자격 없어, 꺼져.”소만리의 어투는 날카로웠다.그러나 기모진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며 소만리의 뒤로 가서 말했다.“더 큰 비극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강연에게 가서 사과해. 그리고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해.”“허. 허허.”소만리는 마치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천천히 일어나며 냉담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번쩍 치켜들고 손바닥을 들어 기모진의 얼굴을 때렸다.“기모진, 잘 들어. 난 그녀를 때리는 걸 멈추지도 않을뿐더러 당신도 때릴 거야!”소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기억을 잃은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기억을 잃으면 불을 질러 사람을 죽이고 인간성은 모조리 없어지는 거야? 그래서 내 엄마 아빠를 죽인 거야?”그녀는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두 눈에 핏발이 선 채 눈앞에 서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한때는 그녀를 위해 몸을 던졌던 남자였고 마음이 아파서 애간장이 타들어가던 남자였다.“기모진, 꺼져! 강연이 곁으로 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예선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안에서 소만리의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그녀가 들어가 보니 언제 온 건지 기모진이 와 있었다.“기모진, 이 나쁜 놈아!”예선이 화가 나서 욕을 퍼붓고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소만리를 곁으로 끌어당겼고 싸늘한 표정의 남자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기모진, 소만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 같은 남자를 만난 거야!”“지난 몇 년 동안 소만리는 묵묵히 당신의 고통과 상처를 다 받아주고 참아왔어. 소만리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했던 거야. 그런데 당신은! 당신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그 여자가 소만리에게 앙심을 품고 이런 인면수심의 일을 저질렀는데, 당신이 사람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6장

    ”하하하...”위청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 입구에서 갑자기 여자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강연은 섹시한 빨간 치마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강연!”위청재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너 이 년 마침 잘 왔다! 너 내 아들 기억을 상실하게 하고 내 며느리를 조산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내 사돈까지 죽이다니. 내가 널 죽여 버릴 거야!”위청재는 빗자루를 들고 곧장 강연을 향해 호되게 때렸다.“그만해.”기모진이 갑자기 나타나 막았다.“누가 감히 그녀를 건드려.”위청재는 빗자루를 하늘 높이 든 채 마주 오는 남자를 보고는 빗자루에서 손을 놓았다.“모진아, 너 아직도 기억이 안 돌아온 거냐! 저 여자가 네 아내를 조산하게 했고 너를 이용해서 네 장인 장모까지 죽였는데 어떻게 저 여자를 감쌀 수가 있어!”위청재가 호되게 야단을 치자 기모진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내가 언제 내 장인 장모를 죽였어? 난 기모진이 아냐.”“너...”위청재는 화가 나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기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기모진 앞으로 걸어갔다.그는 기모진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한번 훑어보았다. 누가 기모진이 아니라고 했는가.분명 그의 친손자 기모진이었다.“모진아,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 그때 소만리를 그렇게 아프게 해놓고 그녀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려고 얼마나 네가 애썼는지 몰라? 이제 와서 소만리가 준 기회를 스스로 무너뜨리려 하느냐?”강연은 도도하게 피식 웃었고 담배를 피워 물으며 말했다.“소만리는요? 나오라고 해요.”“이 뻔뻔스러운 여자야. 어디 내 며느리를 볼 낯짝이 있다구. 썩 꺼져!”위청재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소만리를 감싸며 강연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어서 우리 집에서 나가!”“뭐, 우리 집?”강연이 비웃으며 말했다.“당신들 집도 모 씨 집처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되지 않으려면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마시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7장

    강연은 얼굴이 굳어졌다.“소만리, 얘가 네 아들이야?”강연이 또 기란군에게 화살을 돌릴까 봐 소만리는 급히 기란군을 불러 그녀의 뒤로 오게 했다.“기란군, 들어가서 여동생이랑 같이 있어. 나오지 마.”기란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그렇지만 엄마...”“엄마 말 들어, 어서 들어가.”“응.”기란군은 철이 든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들어 이번에는 기모진을 향했다.“아빠, 언제 집에 올 거예요? 나랑 기여온이랑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두 꼬마가 이렇게 말하며 아쉬운 듯 기모진을 바라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갔다.기모진은 넋을 잃은 듯 떠나가는 작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느껴졌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곧장 소만리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분명히 울고 있었는데도 얼굴이 아름답기만 하다.비록 정신은 아직 추스르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감탄을 자아낼만한 미모였다.강연은 기모진이 소만리에게 눈길이 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불만스럽게 헤어스타일을 매만졌다.“소만리, 당신 아들 성격이 정말 당신이랑 똑같아. 날 정말 귀찮게 해. 알아서 죽었어야 했는데!”그녀는 뭔가 암시가 가득한 말로 경고했다.“이 세상에서 감히 나와 맞서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어. 소만리, 당신 아들이 당신 부모처럼 되길 원하지 않으면 내일 기 씨 그룹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와 내 친구에게 사과해. 네가 잘못했다고 빌어. 그렇지 않으면...”강연은 매서운 눈초리로 소만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아들이 죽는 걸 보게 될 거야.”강연이 협박하며 더욱 도도하게 웃으며 말했다.돌아서서 갈 때 그녀는 기모진을 불렀다.“좌한, 소만리가 지금은 아주 마음이 아픈가 봐. 당신이 이왕 그녀의 남편과 닮았다고 하니 몇 마디 위로해 줘. 나 차에서 기다릴게.”강연은 의기양양하게 담배를 피우며 돌아섰다.위청재는 강연이 가는 것을 보고 급히 기모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8장

    ”누가 감히 그 여자 부모에게 내 뒷조사를 하게 했겠어.”강연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돈과 권력은 생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좌한, 소만리가 아주 예쁘게 생겼던데 혹시 그 여자한테 설레는 건 아니지?”강연은 이 말을 물으며 천천히 기모진에게 다가갔다.“그렇게 순진하고 재미도 없는 여자가 어떻게 나와 비교할 수 있겠어? 소만리는 단지 생긴 게 좀 예쁘게 생겼을 뿐이지. 여자는 미모만 가지고는 소용없어.”강연은 자신의 매력에 심취해 말했지만 기모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그러자 그녀는 환심을 사려고 웃음을 띠며 말했다.“좌한, 내가 이번에 너무 심하게 처리했다고 탓하는 거 아니지? 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흑강당의 배경을 파헤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귀찮아지는 건 우리 쪽이야. 당신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타까울 거 아냐?”기모진은 이 말을 듣고 웃는 듯 마는 듯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당연히 안타깝지.”“난 당신이 안타까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강연은 교태를 부리며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기모진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려고 했지만 기모진은 갑자기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좌한, 어디 가려고?”기모진은 냉혹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무래도 내가 너무 소만리를 살살 대한 것 같아. 잠시 갔다 올게.”강연은 눈이 번쩍 뜨였다.“좌한, 소만리를 어떻게 할 건데?”“그녀를 좀 더 아프게 해 줘야겠어.”좀 더 아프게?강연은 기모진의 대답이 아주 만족스러웠다.그러나 기모진은 차에서 내려 소만리에게 간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된 모 씨 집으로 갔다.폐허가 된 집 앞에 서자 그는 왠지 데자뷔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여기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았다.그가 대문을 들어서자 불에 탄 뒤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렇게 큰 집에 불이 나는 것은 분명히 평범한 화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강연이 말하길 불을 지른 사람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69장

    기모진의 모든 관심이 이 일곱 빛깔 조가비에 옮겨간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런 그림이 떠올랐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는 어린 여자아이를 업고 황급히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그 어린 소녀는 그의 목을 껴안고 달콤하게 그를 불렀다...“퍽!”기모진이 추억에 잠겨 어린 소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는 순간 그의 얼굴에 소만리가 뺨을 한 대 때렸다.소만리는 기모진이 보는 앞에서 목걸이를 세게 잡아당겨 땅바닥에 매섭게 던져버렸다.“내가 진작 내려놓았어야 했어. 내 부모님을 죽인 건 당신이야, 당신이라구!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말았어야 했어. 당신에게 나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구!”그녀는 그를 밀치고 쏜살같이 떠났다.기모진은 멍하게 소만리가 멀리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소만리가 땅바닥에 던진 목걸이에 촘촘히 박힌 일곱 빛깔 조가비를 주웠다.이렇게 평범하게 생각 조가비인데 왠지 그는 눈에 아주 익숙하고 특별하게 여겨졌다.소만리는 모 씨 집 대문 앞에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집안에서 실낱같은 따뜻함과 추억을 찾으러 이곳을 찾았지만 뜻밖에도 기모진을 만난 것이다. 그녀는 후회한다고 말했지만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후회해도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이미 그를 사랑하지 않는 척하며 그를 내려놓았다.소만리는 단숨에 멀리 뛰쳐나갔고 석양빛은 그녀의 마음속 지독한 추위를 다 날려버리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땅에 넘어져 무릎을 꿇었다. 초가을 첫 비가 갑자기 내렸다.가늘고 촘촘한 빗줄기가 점점 대지를 적셨다. 소만리의 마음도 젖어들었다.“왜?”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괴로워하며 자문했다.“왜? 왜 내가 사랑하기만 하면 이런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거지?”소만리는 고개를 들어 흐린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눈물과 차가운 빗물이 한데 섞여 흘러내렸다.“하느님, 제게 죄가 있다면 제발 저를 벌해 주세요. 더 이상 내 가족들은 해치지 말아

  • 황제가 사랑한 여인   970장

    소만리는 의아한 듯 눈을 들어 부드럽게 웃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경연 씨를 구했다고요?”경연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이거 혹시 기억나세요?”경연의 손에 어느새 500 원짜리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기억이 안 나요.”소만리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저었다.“역시 잊었구나.”경연은 약간 실망한 듯 웃으며 막 자세히 설명하려 할 때 갑자기 경연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날 기세등등했던 것에 비해 오늘은 매우 친절하고 다정했다.“모 씨 집에 일어난 일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혹시 잠시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 손님방에 있어도 돼요. 이전의 일은 정말 죄송했어요.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요.”소만리는 잔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왔다.“고맙습니다. 지난 일은 오해일 뿐이었어요. 이미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아요.”그녀는 시간을 보고서야 이미 하루가 지난 아침이라는 걸 알았다.“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연 씨, 고마웠어요.”“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 먼저 씻고 아침 드세요. 가는 곳까지 데려다 줄게요.”경연이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소만리는 지금 자기가 이렇게 집을 나서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경연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녀는 씻고 난 후 경연이 일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특별히 보내온 옷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갔다.간단히 아침을 몇 입 먹고 소만리는 경연의 차를 타고 기 씨 그룹 현관에 도착했다.소만리는 경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회사 정문으로 향했는데 뒤에서 갑자기 노기등등하게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소만리!”소만리는 걸음을 멈추고 양이응이 악랄하고 흉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았다.“역시 당신 경연과 엮이고 싶었구나!”양이응은 화가 나서 정신없이 소만리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내가 전에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이었어. 경연이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 준 거였는데 이제 너한테 입혀

최신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9장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8장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7장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6장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5장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4장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3장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2장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1장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