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바닥에 엎질러진 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또 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걸까?“강용,너 뭐 하는 거야?”장소월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말없이 웅크려 바닥에 있는 도시락을 주웠다.제대로 잡기도 전에 강용이 발길질을 하여 손에 있던 도시락이 또 떨어졌다.강용은 한 손으로 장소월의 뒷옷깃을 잡아 그녀를 들어 올려 벽에 내동댕이쳤다. 그녀의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장소월의 그 맑은 눈동자를 보고는 또 그녀의 옷깃을 잡고 벽에 밀어버렸다.“너 밖에서 무슨 헛소리를 했어?”장소월의 등이 창턱에 튀어나온 귀퉁이에 찔려 좀 아파왔다. 물보다 더 차가운 눈빛으로 앞에 서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너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강용의 그 좁고 긴 눈에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기온이 맴돌고 있었다.“너 때문에 백윤서가 맞아서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 네 언니라며? 장소월, 넌 언니를 그런 식으로 대해? 응?”“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니.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 뒤에서 꼼수 부리지 말고.”“만약 백윤서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장소월은 그의 손등에 있는 핏줄을 보며 만약 이곳에 보는 눈이 많지 않다면 강용이 정말로 이곳에서 자신을 목 졸라 죽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월은 평점심을 유지했다. 각종 풍파를 겪어 본 그녀이기에, 눈앞에 있는 앳된 강용은 전혀 그녀를 놀라게 할 수 없다.하물며 그녀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인데 두 번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장소월은 호흡이 가빠왔고 움츠러든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강... 강용.... 진정해!”방서연이 입을 열었다.“용아, 됐어. 장소월이 백윤서에게 손을 댈 만큼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어.”장소월의 얼굴은 빨개졌고 그녀도 강용 몸에서 풍겨 나오는 무시무시한 포악한 기운을 느꼈다.“강... 강용... 아... 아파! 손... 손 놔!”방서연은 계속 말했다.“됐어, 또 일 크게 만들고 싶어서 그래? 저번에
장소월은 바로 이미주 3인방이 꾸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그녀들과 말다툼을 한 것 말고는 장소월은 도무지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여자 화장실. 세 여학생은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나비넥타이를 정리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주는 흥겨운 노래도 흥얼거렸다.허여빈이 입을 열었다.“오늘 기분 좋아 보이는데.”이미주는 치마를 정리하며 웃으면서 말했다.“나쁘지 않아. 좋다고 할 수 있지.”유진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내가 그룹 톡방에 올린 사진 봤어?”“봤어, 나 완전 맘에 들어. 우리 유진이 계속 파이팅 해.”유진은 입가에 있는 립스틱을 정리하며 말했다.“나 전부터 장소월이 꼴 보기 싫었어. 걔네 오빠가 잘생겨서 봐줬을 뿐, 아니면 저번에 이미 손을 썼지.”이미주는 손을 세면대에 올리고 얘기했다.“그 저번 자선 파티에서 봤던 도도한 남자? 그 사람이 쟤네 오빠였어?”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아빠 말로는 그 남자는 그냥 장해진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래. 저번에 누가 큰돈을 들여서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끄덕도 없었고 돈을 줘도 싫다고 해서 여자를 품에 안겨줬거든. 그런데 저녁에 바로 그 여자를 쫓아버렸대. 이렇게 뭘 모르는 남자는 정말 처음 봤어. 그리고 제일 화가 나는 건, 내가 저번에 술대접을 했거든.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거 있지.”“강아지 한 마리일 뿐인데, 도대체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쇼하는 건지. 쳇!”“내가 듣기로는 그 전연우가 장소월 보다 백윤서를 더 신경 쓴대.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나온 고아들이고 쓰레기도 함께 주워 먹기도 했대. 그런데 그 사람... 울 아빠는 나한테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는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어...”허여빈은 또 어깨를 으쓱거렸다.“나 저번에 바에서 그 사람을 봤어. 잘생기긴 했지만 나이가 좀 많아서... 난 아저씨보다 연하가 좋아.”이미주는 갑자기 이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도전이다. 가질
강남 개인병원.전연우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백윤서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팅은 절반 밖에 진행이 되지 않았지만 후반부의 미팅은 기성은에게 맡기고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백윤서는 영양액 링거를 맞고 있었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전연우를 본 그녀는 마치 잘못을 한 어린 소녀 같이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하였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오... 오빠... 죄송해요. 또 폐를 끼쳤네요.”전연우는 백윤서 얼굴의 상처를 보고 깊은 눈동자에 쉽게 알아채지 못할 냉기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의사는 뭐래?”“별일 아니에요, 그냥 가벼운 찰과상이에요. 생리가 와서 몸이 좀 불편할 뿐이지. 의사 선생님이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면 좋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때 한 삼십 대 중반의 중년 여성이 들어왔고 약물 리스트를 손에 들고 있었다.“백윤서 학생 오빠 맞으시죠?”전연우는 그녀를 알고 있다. 입학한 날 그녀를 본 적이 있다.“네.”“백윤서 학생 오빠 분, 따라오세요. 할 말이 있어요.”병실 밖, 신정음은 어제저녁 발생 한 일에 대하여 전연우에게 모두 얘기해줬고 양측의 학부모와 협의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 일은 이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제운고등학교 학생들과도 연루되어 있다고 얘기했다.신정음은 그에게 예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 있지만 일부 압력에 못 이겨 결국 흐지부지 끝났다고 얘기했다...그 이유는 다들 성인이니 잘 알고 있다.일을 크게 만들면 더 복잡해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된다.전연우의 눈빛은 차가워졌다.“그러니 선생님 뜻은 이 일을 덮어버리고 싶다는 거죠? 이게 선생님으로서 보여줘야할 태도인가요?”신정음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상대방 학부모와 얘기를 나눠 봤는데 그 비용이 얼마든 모두 책임지고 감당하겠대요. 그리고 고여경 학생도 진심으로 백윤서 학생에게 사과를 했어요. 만약 이 해결방법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학교로 돌아가셔서 다시 함께 의논을 해봐도 좋아요.”전연우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조용한 병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전연우는 무음모드를 클릭했고 확인해 보니 장해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전연우는 병실을 걸어 나가 전화를 받았다.“아버지...”“소월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고 하는데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장해진의 말투는 좀 화난 것 같았다.“소월이요? 네... 알겠습니다.”전연우의 말투는 온화한 편이지만 안색은 굳어 있었다.장해진은 전화를 끊었고 지금 백윤서가 병원에 있어서 그는 떠날 수 없다.전연우는 기성은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대표님.”“회사 일은 언제쯤 끝나요?”기성은:“미팅이 방금 끝났어요.”전연우:“지금 바로 제운고등학교로 가주세요.”기성은:“소월 아가씨가 또 사고를 친 거예요?”전연우:“해결을 다 하시면 데리고 아파트로 와주세요.”기성은:“네, 대표님!”소월 아가씨가 사고를 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그러나 장소월은 이번에 너무 도가 지나쳤다. 하필 이때 학교에서 사고를 쳤고 심지어 상대방 3명은 기업 오너의 아가씨이고 아직 세 건의 계약에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라 이제 계약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저번에 치마 한벌 때문에 방 씨 그룹 아가씨와 싸워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계약이 물 건너갔다. 장소월은 언제면 셈이 들어 회장님, 대표님의 걱정을 덜어 드릴 수 있을까?장소월이 사고를 칠 때마다 뒷 처리는 대표님의 몫이니 말이다.기성은은 제운고등학교에 도착했고 익숙하게 교장실 옆에 있는 회의실로 찾아갔다.회의실은 투명 유리문이라 안쪽 상황이 보이는데 방음이 잘 돼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성은은 들리지 않았다.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강렬한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장소월은 이미 회의 테이블에 올라가 한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덥석 잡았다.이 장면을 목격한 기성은은 바로 한숨을 내뱉었다대표님은 술을 얼마나 마셔야 회장님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만약 회장님이 직접 나선다면 장소월은 반 죽은 목숨일 것이다.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난 또 누군가 했네. 기 비서님, 회장님은? 그집 딸이 우리 딸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비서님이 와서 이 일을 대충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사모님, 그럴 리가요. 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어요. 소월 아가씨 문제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사모님 세 분이 어떠한 보상을 원하시든지, 회장님께서 최대한 만족시켜 드리겠다고 얘기했어요.”기성은은 장소월 얼굴에는 긁힌 핏자국이 있는데 좀 심각해 보였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평소대로라면 장소월이 사고를 치면 항상 전연우가 온다. 이번에 기성은이 온 걸 보고 장소월도 전연우가 백윤서를 위로하러 갔다고 짐작했다. 필경 그녀가 다쳤으니 전연우는 분명히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이 씨 집안 사모님은 차갑게 웃었다.“돈? 지금 우리를 뭐로 보고? 그 작은 회사가 어디서 감히. 지금 장해진이 당장 와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지 않는 다면, 난 바로 이 사실을 내 남편에게 얘기를 해서 그쪽 회사와의 협업을 취소시킬 거야. 내 기억이 맞다면, 요즘 프로젝트를 하나 맡긴 것 같은데 바로 회사를 바꿀 거야.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널리고 널렸으니.”기성은은 사과를 하였다.“사모님, 일단 노여움을 푸세요. 미주 아가씨와 소월 아가씨 모두 아직 학생이잖아요. 친구 사이의 투닥거림도 정상적인 일이고요. 만약 이 일 때문에 저희 두 회사의 협업에 영향을 준다면 저희의 화목함에 타격을 안겨 주는 거잖아요.”여자는 탁자를 힘껏 두드리며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영향을 안겨 줬어. 그러니 당장 장해진에게 전화를 해서 오라고 해!”이미주는 쌀쌀맞게 웃으며 말했다.“누가 이 교양이 없는 촌놈이랑 친구라고 했어? 촌놈이 연 회사가 얼마나 좋겠어...교양이 없이 감히 날 때려? 장소월, 누가 너한테 그런 용기를 준 거야? 오늘 이곳에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사과를 하여도 난 널 용서하지 않을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회의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이미주도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장소월,허튼소리 하지 마.”장소월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고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허 씨, 유 씨 집안 사모님은 더욱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사모님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닥쳐! 그만해! 장소월, 너 감히 날 협박해? 장해진이 도대체 너에게 얼마나 얘기해 준거야?”“헐, 진짜였어!”유진은 놀라서 입을 막아버렸다. 유 씨 집안 사모님은 황급히 유진의 입을 막아버리고 그녀를 째려보았다.세 가문 중, 이 씨 집안의 세력은 가장 강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들러리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이미주는 믿기지 않는 듯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엄마, 이건 무슨 소리야? 그 아이 정말 죽었어? 그 뒤로 어떻게 해결했어? 엄마...왜 음주운전을 한 거야...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해...”자신을 제일 사랑해 주는 엄마 때문에 누군가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다... 심지어 음주운전이라니, 그건 명백한 범죄이다!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진 옆에 앉아있는 사모님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유 사모님... 3년 전 남편 분께서...”“그만... 소월 학생, 이 일은 이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해. 내가 유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아 이렇게 억울함을 당하게 하고...”유 씨 집안 사모님은 착용하고 있던 팔찌를 빼서 장소월의 손에 쥐어주었다.“아줌마가 대신 여기서 사과할게...”“선생님들, 저희 유진이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유진은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의 손에 끌려갔고 머리가 하얘졌다. ‘설마... 엄마 아빠도...’유 씨 집안이 떠나자 허 씨 집안 사모님도 장소월이 그들의 비밀을 얘기할까 봐 말 몇 마디 하고는 허여빈을 데리고 떠났다. 떠나기 전 손에 들고 있던 파텍 필립
사무실 안.비서는 회의실에서 방금 보고한 일을 계속 보고하였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든 보고를 마쳤다.장소월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가 자리에 있었다.“... 도련님, 그때 발생한 일은 이러합니다.”강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비서는 한쪽으로 물러났다.순간 분위기가 차가워졌다.소파에 앉아있는 세 명의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강영수는 강한 포스를 뿜고 있어 공기 속 보이지 않는 무형의 위압력으로 모든 사람을 짓눌렀다. 주변의 공기마저 희박하게 느껴졌다.“반 시간, 위의 계약서에 사인이 적혀 있는 걸 난 봐야겠어.”“네, 대표님.”그는 강영수의 새 비서 신준수이다.그러하다. 강영수가 집을 나서기로 결심한 순간, 그는 그의 소유였던 모든 것들을 되찾기로 결심했다.그래야만 그는 그녀를 보호할 수 있다.모든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분명 회사일인데 강영수가 왜 그녀들을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들은 사모님일 뿐, 회사 일은 그녀들이 관리하지 않는다.이때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영수 도련님, 회사일은 제가 운영하지 않지만... 왜 갑자기 협업을 해제하는 지알 수 있을까요?”“이건 당신이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강영수는 차갑게 말 한마디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이것은 해외에서 새로 개발한 과학 기술 휠체어로, 버튼을 누르면 휠체어가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다.원래대로라면 지금 강영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녀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걸 듣고...지체 없이 바로 왔다.사무실 밖, 강영수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안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회의실 문이 닫히지 않았던 터라, 강영수는 안으로 들어갔고 장소월은 아직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왜 울어?”오늘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코를 훌쩍이며 흐느끼는 소리가 뚝 그쳤고 깃털 같은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다가온 그를 멍
“네, 대표님...”기성은은 전화를 끊지 않고 휴대폰을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전연우는 주방으로 걸어가 물 한잔을 부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 너머로 장소월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녀를 제외하고, 다른 남자가 있었다...“더 이상 누구도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울지 마...”그의 손은 따뜻했다.그리고 그녀도 마음도, 점점 따뜻해졌다.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이런 말을 건네준 사람이다.전연우는 종래로 그녀가 슬플 때 위로를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진다고 저 멀리 가서 울라고 한다.“혹시... 기대도 돼?”장소월의 목소리는 떨렸다.강영수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 그녀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언제 어디서나 기꺼이.”하여 기성은이 들어올 때 장소월이 한 남자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걸 목격했다...이를 본 기성은은 진퇴양난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였다.전연우는 울음소리를 듣고 눈빛이 어두워졌다.…장소월의 얼굴에 약을 발랐고 손에 약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가 사다 준 것이다.이번이 그들의 세 번째 만남인데, 상대방을 끌어안고 울어 그의 가슴 쪽 옷을 적셔버렸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은 바로 그녀의 콧물이다....이 일 외에 장소월은 매 맞는 걸 피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챘기에...그녀는 기성은에게 드라이브를 부탁했다.차 안에서 장소월이 물었다.“오늘 일을 아버지가 알게 될까요?”기성은은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월 아가씨, 만약 섭섭한 일이 있으시면 대표님한테 얘기하세요.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 척 하지만, 추후에 소월 아가씨 대신 일 처리를 진행할 거예요.”장소월은 차 안에 앉아 해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금 서울시와 명주시의 경계에 있다.그녀의 방에 그림이 걸려있는데 바로 이곳을 그린 것이다. 엄마가 그린 그림이다...“... 그냥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평소에... 이미 많이 바쁘시잖아요.”“기 비서님, 이
“뭐라고? 소현아가 사라졌다고?” 높은 자리에 앉은 남자가 잠옷 차림으로 다리를 벌린 채 매서운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위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강지훈은 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는 여자를 힘껏 움켜쥐었다. 천효연은 매혹적인 입술을 다시며 입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바닥에 떨어진 가운을 주워 입었다. 그녀의 유혹적인 눈동자엔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는 음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소현아가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감시하라고 했잖아. 이제 와서 하는 말이, 소현아가 사라졌다고?” 규영은 두려움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말했다. “주인님, 저희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부디 벌을 내려주십시오.” “하지만 아가씨께서 성정이 너무 활달하셔서 감당이 어려웠습니다. 당시 저희는 국경 근처 낙일 마을이라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가씨께서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셨을 때, 저희는 그저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러다 화장실에 간다고 저희를 속이시고는 몰래 도망치셨습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그 별장에 가보니 아가씨께서 입으셨던 더럽혀진 옷만 남아 있었습니다. 분명 그 별장 주인에게 끌려갔을 겁니다.” 미경은 곧바로 말을 보탰다. “맞습니다! 아가씨의 말씀을 되새겨보면, 데려간 사람은 아마 아가씨의 친구분일 겁니다. 그러니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주... 주인님...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아가씨를 모시고 오겠습니다.”“한 번 더 기회를 줘?” 강지훈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천효연이 두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그의 가슴팍으로 손을 뻗었다. “지훈 씨, 그 바보가 뭐가 좋다고 그래요? 나 하나로 부족해요? 사라졌으면 그냥 내버려 둬요... 그 여자가 북경 감옥에 있을 때 저 너무 불편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돌아오게 하지 말아요. 네?” 규영과 미경은 서로
“만약 강지훈이 사람을 보내 쫓아온다면, 얼마나 더 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강용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네가 같이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거니까.” 그는 손가락을 뻗어 장소월의 이마를 살짝 튕겼다. “얼른 자. 내가 떠날 방법 생각해 볼게.”“너 먼저 자. 난 좀 더 앉아 있고 싶어.” “같이 있어 줄게.” “괜찮아.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어서 가서 자.” 강용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12시 전에 꼭 방으로 돌아가. 안 그러면 내가 잡으러 올 거야.” “알았어.” 장소월의 얼굴에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강용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방에 돌아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누워 음 소거로 PS 게임기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강용도 졸음이 몰려왔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 반이었다. 한 시간 동안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부르려고 팔을 뻗었다가 내려놓았다. 강용은 사색에 잠겨 있는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수평선에서 오늘을 밝힐 금빛 광선이 솟아올랐다.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강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았다. “날이 밝았어. 우리 이제 가서 좀 쉬자, 응?” 장소월의 귓가에 강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에서 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용, 봐봐. 진짜 날이 밝았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계속 이렇게 지낸다면, 그녀의 몸은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녀가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강용은 몰래 그녀의 물에 수면제를 타 겨우 잠들게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는 물에 손도 대지 않았다. “소월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한테 말해주면 안 될까?” 장소월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강용, 내 옆에 있으면 안 돼. 난 널 위험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현아까지...” 강용은 그녀의 손에서 하던 일을 빼앗아 들며 말했다. “난 위험 따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난 서울로 돌아가도 안전하지 않아. 차라리 너랑 함께 있는 게 나아. 장소월, 나 혼자 남겨지지 않게 해줘.” 그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강용은 알고 있었다. 장소월에게 있어 강용은 친구 그 이상이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강용은 그녀가 분명 마음이 약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눈썹을 찌푸린 채 망설이는 장소월의 모습에 강용은 일부러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가씨, 나 버리지 마, 응?”그렇다. 사람들은 지금 강용과 강영수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면, 틀림없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장소월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다른 방법 생각해 볼게.” “좋아.” 오늘 저녁은 모두 장소월이 요리했고, 강용은 옆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그녀를 도왔다. 소현아가 장소월의 잠옷을 입고 내려왔다. 사이즈가 가장 큰 옷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소현아에게는 빠듯해 보였다. “소월아, 오늘 저녁 메뉴 뭐야?” 밑으로 드러난 배꼽을 본 장소월은 옷을 잡아당겨 주며 말했다. “이거 내 옷 중에 제일 큰 건데.”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밥상을 차리고 있는 강용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 혹시 새 옷 있어? 내 옷은 안 맞네.” “당연히 없지. 나중에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할게. 우선은 그냥 입고 있어.” 장소월은 그녀의 동그란 배에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단순히 지방 때문에 나온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현아야... 솔직하게 말해봐. 너 혹시 임신한 거야?” 소현아는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
소현아가 말하는 사람은 아마 유월일 것이다. 혹시 그녀의 존재 때문에 강영수가 무언가를 기억해낸 것일까? 그렇다. 지금 강영수는 유월과 결혼한 상태다. 그녀가 계속 옆에 있는 것은 그들의 관계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집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현아야, 오늘 밤엔 우선 여기서 자. 옷장 안에 옷도 좀 있으니까 샤워하고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저녁 준비할게.” 소현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장소월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뒤져 재료를 찾고 있을 때, 강용이 들어왔다. “정말 저 바보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야?” “강용, 현아 그렇게 말하지 마. 어렸을 때 병을 앓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잖아.” 강용은 어깨를 위로 쭉 올렸다가 내리며 말했다. “알았어. 네가 이렇게까지 끔찍하게 감싸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 하겠어. 하지만 소현아는 다시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아? 쟤랑 같이 있으면 너무 위험해. 자칫하면 우리 위치가 강지훈에게 노출될 수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전연우랑 강지훈은 한통속이나 다름없어. 전연우가 해외에 얼마나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재산 대부분을 해외로 넘긴 상태야. 국내 성세 그룹이 망하더라도 전연우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윗선에서 일찌감치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성세 그룹은 아마 성세 글로벌 그룹이 되어 있었을 거야.” “그리고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장소월은 채소를 썰다 멈추고 물었다. “그게 뭔데?” “전연우는 이미 회사를 팔아넘겼어!” “무슨 뜻이야?” “몰랐어? 전연우는 아주 오래전에 나라에 회사 지분을 넘겼어. 그래서 송시아가 아무리 서울을 헤집고 다녀도 전연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야. 그리고 전연우가 요구한다면, 언제든 지분과 회사 통제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한낱 성세 그룹 따위는 해외에 두고 있는 재산의 백 분의 일도 안 돼. 지금까지 해외에서 수도 없이 많은 기업들을 인수했거든. 나중에 집안
장소월은 낙일 마을에 길을 잃은 친구가 있으니, 빨리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 낙일 마을에 그녀의 친구가 있었던가?장소월은 강용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녀가 상황파악도 채 하지 못했을 때, 누군가 뛰어와 그녀를 꽉 껴안았다. “소월아, 소월아, 소월아... 드디어 찾았어. 너무 좋아!” 익숙한 목소리에 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현아?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그 바보 아가씨?”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그 광경이 강용의 눈앞에 펼쳐졌다. “강용...” 소현아는 배시시 웃으며 강용을 향해 뛰어갔다. 반가운 마음에 와락 껴안으려 했지만, 그는 팔을 쭉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밀었다. 소현아는 키가 작은지라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겨우 강용의 옷자락만 잡을 수 있었다. “강용, 너도 보고 싶었어. 한 번 안아보자.” 강용은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난 순결한 몸이라서 말이야. 아무나 만지면 안 돼. 몇 년 만에 보는 건데... 소월아, 얘 왜 그사이에 더 멍청해진 것 같냐?” 장소월은 강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강용, 현아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이어 고개를 돌려 경찰에게 말했다. “현아는 확실히 제 친구 맞아요. 폐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이제 현아 데려갈게요.” 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소현아는 장소월의 팔짱을 끼고 그녀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소월아... 네 몸에서는 여전히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정말 보고 싶었어! 이렇게 멀리까지 놀러 왔으면서 왜 난 안 데리고 온 거야?” “현아야, 말해봐. 여긴 어떻게 왔어? 넌 서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소현아가 대답했다.“응! 근데 강지훈이 나 바보라고 싫다면서 치료받으라고 여기에 쫓아 보냈어. 날 감시하라고 도우미 두 명까지 보냈고. 나 겨우 도망쳐 나온 거야. 소월아, 나도 데리고 가면 안 돼? 그 사람들한테 다시 잡혀가면 끝이야. 나 밥도 못 먹게 하고, 밤마다 수갑으로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한단 말이야.
민선화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 또한 지금처럼 변한 유월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대문이 굳게 닫혔다. 해이는 문밖에 서서 힘겹게 말했다.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모든 걸 똑똑히 알고 난 뒤 다시 올게. 만약 그 여자와 나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너한테 다 얘기할게.” 소현아는 바닥에 떨어진 닭 다리를 주웠다. 방금 전 유월이 던진 의자가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닭 다리를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녀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떨어진 지 3초 안 지났으니까 먹어도 괜찮아.”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유월은 문을 열었다. 텅 비어버린 마당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갔어... 정말 가버렸어!”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는 유월의 모습에 민선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말했다. “유월아, 왜 그래? 유월아...” “유월아, 엄마 무섭게 이러지 마!” “유월아, 제발 말 좀 해 봐!” “언니... 왜 그래요.” 민선화가 유월에게 손을 뻗은 순간,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모두가 깜짝 놀라 허둥지둥 그녀에게 달려갔다. 희미하게나마 어둠을 비추던 달빛이 사라졌다. 달님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했고, 짙은 먹물 같은 하늘에는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밤은 점점 더 깊어져 갔지만, 강영수에게는 절대 잠들지 못할 밤이었다... “오늘 밤엔 일단 여기서 자요. 내가 내일... 장소월 씨한테 데려다줄게요.” “네, 강영수 씨.” 소현아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 몸을 뉘운 뒤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깊이 잠들었다. 강영수는 문밖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 집은 그가 유월과 함께 살려고 지어놓은 신혼집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유월을 향한 그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 또한 알 수 없었다... 규영과 미경은 밤새도록 낙일 마을에서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해이야, 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이 여자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이야? 송 선생님이 아니라 장소월이였다고? 그리고 오늘 친정으로 돌아오는 날인데 왜 너 혼자 돌아온 거야? 유월이는 어쩌고?” 소현아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닭 다리 두 개를 집어 들고 해이 뒤로 몸을 숨겼다. “너무 무서워.” 소현아의 몸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진흙탕에 넘어져 울먹거리고 있던 차에 마침 순찰을 돌고 있던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그녀가 찾으려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자, 경찰은 곧바로 이곳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이곳에서 해이를 본 소현아는 분명 소월이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쫓아내려 했지만, 소현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곳에 눌러앉았다. 다행히 낙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순박했고, 치안도 좋은 편이었기에 소현아는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해이는 뛰쳐나간 유월을 쫓아가지 못하고 먼저 처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소현아를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모님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그 답을 찾고 있어요. 유월이는 괜찮을 거예요.”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잖아.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얼른 나가서 찾아봐.” “찾을 필요 없어요!” 돌연 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유월은 문턱을 넘어 들어와 벽에 걸려있던 그림을 집어 던졌다. “장소월은 네 약혼녀고 저 여자도 널 아는 친구라잖아. 다들 널 찾아왔는데 우리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그리고 우리 결혼은 오늘부터 없던 일로 해. 나 양유월, 아무리 남자가 좋아도 남이 버린 걸 주워서 같이 살진 않아.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한 남자는 더더욱 싫어.” “나가! 다 나가라고!” “너무 무서워! 소월이 그림...” 소현아는 내던져진 그림을 보고 재빨리 뛰어나갔다. 액자 유리는
규영과 미경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사모님, 어디 아프세요? 지금 당장 병원에 가요!” “혹시 여기가 아픈 거예요?” 규영이 소현아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행여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주인님은 그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현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응가 마려워요.” 미경은 곧바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사모님, 이 근처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정 급하시면 저쪽 구석에서 볼일 보세요. 저희가 망봐드릴게요.” 소현아는 휴지를 받아들고 나무 뒤로 달려갔다. “잘 지켜봐야 해요.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요. 안 그러면 나 화낼 거예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소현아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어댔다. “내가 바보라고? 너희들이야말로 바보야.” 소현아는 재빨리 시내로 돌아가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손에 든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이 사람 못 봤어요? 제 언니인데, 언니가 사라졌어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요, 본 적 없어요.” 소현아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밤이 되었고, 그곳 지리에 익숙지 않은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었다. 10분 뒤, 규영과 미경도 소현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주변을 다 찾아보았지만 그녀는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미경이 울먹이며 말했다. “사모님이 사라지셨어. 이제 어떻게 해!” “주인님이 아시면 분명 우릴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우리 그냥 주인님께 얘기하자” “안 돼... 안 돼. 절대 주인님이 알게 해선 안 돼.” “노부인께선 사모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셔. 만약 주인님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아이를 없애려 하실 거야. 노부인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사모님은 복이 많은 사람이니까, 아이와 함께 무사히 계실 거야
“저를 아세요?” 소현아는 눈앞의 남자가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알죠! 예전 소월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쓰러졌을 때, 제가 병원에 데려다줬었잖아요. 당신은 저한테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꼭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고요. 그리고 학교에서 소월이를 잘 챙겨주라고 부탁도 했잖아요. 저 당신 말대로 잘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소월이 괴롭히려고 하면 제가 다 막아줬다니까요. 그런데 소월이랑 결혼식 앞두고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그 후로 소월이도 사라져 버렸어요.”“저 소월이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몰라요...”“됐어요! 그만 해요!” 유월이 갑자기 발작하듯 소리쳤다.해이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조각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며 격렬한 두통을 유발했다.규영과 미경은 눈앞의 남자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두려워 서둘러 변명했다.“선생님,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사모님께서 머리를 좀 다치셔서 가끔 헛소리를 할 때가 있어요. 마음에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제 가시죠. 밖에 비도 그쳤어요.”두 사람은 소현아를 반강제로 끌고 나갔다. 하지만 소현아의 입술은 멈출 줄을 몰랐다. “헛소리 아니에요. 다 사실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한텐 이제 기회가 없을 거예요, 소월이는 이미 다른 놈이랑 결혼했거든요.”규영은 재빨리 소현아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났다.유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해이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에 돌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 지금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거야?”해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해이의 눈빛이 변해버렸다. 그의 눈동자엔 더이상 예전의 부드러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변하고 있다. 그 여자가 낙일 마을에 온 이후부터 그의 마음은 점점 예전과 달라지고 있었다.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