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봉을 본 김남주가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랜만이야! 강영수.”강영수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누가 너한테 돌아오라고 했어?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말했잖아!”김남주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스르륵 쓸어내리고는 그의 앞에 멈춰 섰다.“날 보고 싶어 했던 건 너잖아? 너 설날 밤 내내 내 곁에서 날 지켜줬었잖아. 잊었어?”“시끄러워. 진봉, 경호팀에 연락해 끌어내. 앞으로 한 발자국도 회사에 들이지 마. 또다시 이 여자를 들어오게 한다면 프런트 직원 모두를 해고시킬 테니까 명심해.”진봉이 말했다.“네. 대표님.”강영수는 더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사무실에서 나왔다.김남주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영수야, 내가 왜 널 떠났는지 알고 싶지 않아?”그 말에 강영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동시에 진봉은 김남주의 눈빛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강영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멀어져가는 강영수의 모습에 김남주는 심장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강영수, 넌 평생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진봉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김남주 씨,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대표님은 이제야 겨우 괜찮아지셨습니다. 더는 찾아와 힘들게 하지 마세요. 대표님께서 주신 그 돈이면 남은 평생 편히 살 수 있잖아요.”김남주가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진봉, 당시 나와 영수가 헤어진 데엔 네 공로도 작지 않았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하지만... 아가씬 다른 남자 때문에 대표님을 버렸잖아요. 대표님께서 예전 아가씨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잘 알 거예요. 지금 사진 속 저 여자분에게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저 여자분에게 다른 마음은 먹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의 대표님은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당신은 이제 영원히 대표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어요.”진봉의 말은 모두 사
하지만... 강영수 이 자식 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야!김남주는 혼자 외롭게 해외에서 살다가 자신이 고용한 파파라치로부터 사진을 받았다. 강영수가 다른 여자와 다정히 손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귀국해버린 것이다.그녀는 이 모든 것이 진실인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조금 전 사무실 책상 위 사진을 본 뒤에야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높이 솟아있는 강한 그룹 건물을 올려다보니, 김남주는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따라서 검은색 아이라인도 천천히 씻겨 내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김남주는 아예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녀와 멀리 떨어져 지나쳤다.몇 분 뒤, 검은색 승용차가 김남주의 앞에 멈춰 섰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차에서 내렸다.“김남주 씨, 사모님께서 김남주 씨가 돌아온 걸 아시고 뵙자고 하십니다. 차에 타세요.”김남주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수석에 앉아 차에 있는 휴지로 눈물을 닦고는 다시 화장을 했다.“몇 년이나 흘렀는데 그 노친네는 아직도 안 죽었나 봐?”운전기사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아가씨, 말조심하세요!”김남주는 조금 전 목놓아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예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너희들 대표님도 나한테 뭐라고 못하는데 네가 뭔데 날 꾸짖어!”운전기사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30분 뒤, 김남주를 태운 차가 강씨 저택에 도착했다.그녀는 익숙하게 안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집안에 들어가려 하자 도우미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아가씨, 노부인께서 이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김남주는 아래턱을 빳빳이 올리고 도우미를 따라갔다.검소한 차림의 백발의 노부인이 마당 안 벤치에 앉아 팥죽을 먹고 있었다.“오랜만이에요! 아직 생전이실 줄은 몰랐네요!”노부인은 그녀를 무시해버린 채 계속하여 팥죽을 즐겼다. 그녀가 허허 웃으며 옆에 서 있는 도우미에게 말했다.“소월이의
“넌 졌어.”“우리 강씨 집안은 지금까지 너라는 외부인에게 할 만큼 했어.”노부인이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넌 여전히 그대로구나. 할 말 끝났으니 이제 가. 아줌마, 손님 가신다.”노부인의 말투는 너무나도 단호했고 눈빛엔 냉담함과 혐오감이 가득했다.노부인은 확실히 김남주가 싫었다. 그 여자가 아니었다면 영수는 학창시절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아줌마가 말했다.“네. 사모님.”“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김남주는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소리쳤다.“제가 이 일을 영수에게 알려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와 영수의 관계는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 거예요.”노부인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5년 전 넌 우리 강씨 집안에 발을 들이지 못했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절대 네가 또다시 내 손자를 해치게 놔두지 않을 거야.”김남주는 그렇게 강씨 저택에서 쫓겨났다. 위풍당당하던 자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처참히 무너져버린 패배자의 모습만 남아있었다.그녀는 강영수가 이렇게 쉽게 자신에 대한 마음을 놓았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김남주는 한 번 또 한 번 익숙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야속한 기계음뿐이었다.그녀가 돌연 얼굴을 굳히더니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당신과 손잡을게요. 하지만 절대 그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돼요.」문자를 보내고 발걸음을 뗀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전체가 어둠에 잠식되어 버린 것 같았다.김남주는 돌아오기 위해 연속 며칠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여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장소월은 하교할 때가 거의 되어서야 왜 학생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소현아가 매점에서 잡지 하나를 사와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자신과 강영수가 해성에서 다정히 산책하는 모습이 표지에 담겨있었다.대체 왜 몰래 찍은 것도 모자라 표지에까지 올려 곳곳에 뿌린단 말인가.이제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어요.”“연예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간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게 분명해요.”“조선 시대엔 연기하고 노래하는 딴따라가 바로 기생이었잖아.”한결이 멋쩍은 얼굴로 감독님을 바라보았다.감독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네네네. 여러분들은 모두 귀한 집 도련님 아가씨라는 거 알아요. 그저 관심이 있는지 물으러 왔을 뿐이에요. 강요하지 않아요.”그때, 감독님의 눈에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장소월이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장소월 씨?”장소월이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네? 절 아세요?”감독님은 반가운 얼굴로 앞으로 걸어갔다.“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이번 영화는 강 대표님의 투자로 진행되고 있는걸요. 연기에 관심 있다면 여주인공 역할을 줄게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저희가 밤을 새우더라고 수정할 거예요.”장소월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해요. 전 연기엔 관심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전 고 선생님의 사무실로 가볼게요.”감독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이건 제 명함이에요. 혹시라도 관심이 생기면 언제든 날 찾아와요. 나한테 대본이 아주 많거든요. 오기만 하면 남자 주인공은 소월 씨가 선택할 수 있게 해줄게요.”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이후 문제집을 안고 교실에서 나갔다.지금까지 그녀와 강영수의 관계를 아는 건 학교 안 사람으로 국한되었다. 하지만 잡지에 실린 이후 웬 감독님이 찾아왔고 이걸 시작으로 한 명씩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최근 장소월은 강영수와 함께 학교에 오는 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은밀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까발리는 파파라치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종래로 다른 사람의 가십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누
장소월도 고개를 끄덕이며 허철에게 인사했다.“참, 2등, 나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는데 좀 알려줄래?”장소월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자꾸 날 2등이라고 부르는 거야?”단모연이 책을 펼쳐 장소월의 책상에 놓으며 말했다.“우리 이준이는 전교 1등이고 넌 2등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부르는 건데?”그런 거였어?장소월이 옆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모르겠어. 전교 1등한테 물어봐.”단모연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이준이는 안 가르쳐줘.”“하지만... 나도 모르겠어. 이준아, 너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알아? 우리한테 가르쳐주면 안 돼?”허이준이 책가방에서 똑같은 문제집을 꺼냈다.“가져가서 봐. 모르겠으면 물어보고.”허이준의 문제집을 살펴본 장소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너... 벌써 다 푼 거야? 언제 푼 거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풀 수가 있지?”단모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이 미친놈은 문제집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다 풀었어.”이게 바로 전설 속의 천재라는 건가?장소월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매일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기 전 몇 개의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쟨 과외도 안 해?”“과외는 무슨 과외야. 중학교 땐 더 미쳤었다니까. 3년 내내 나랑 짝꿍이었는데 매일 수업시간에 잠만 자고서도 시험만 봤다 하면 전교 1등이었어.”“그렇게 대단하다고?”“너희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는 거야? 나도 대화에 낄 수 있을까?”백윤서가 책가방을 안고 교실로 들어왔다.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어쩐 일인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장소월이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문제에 대해 토론했을 뿐이에요. 언니는 왜 온 거예요?”백윤서가 장소월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그 감독님이 우리 교실에서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해서 왔어. 네 책가방도 가져왔는데 빠뜨린 거 없는지 확인해봐.”장소월이 책가방을 받아안았다.“고마워요.”평소라면 장소월은 가장 늦게 하
그저 초췌한 얼굴로 낮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네 물건 모두 정리해서 가져가.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방에 들어가 보니 누군가 이미 청소를 해놓은 것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잠그고 책가방을 내려놓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바깥에서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얼마간 지속된 후,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새벽 한 시.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의 적막을 깼다. 강영수가 차에서 내려 집을 올려다보니 거실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그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에 들어갔을 때 도우미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도련님, 소월 아가씨와 함께 계신 거 아니었어요?”강영수의 얼굴이 굳었다.“소월이 안 돌아왔어요?”돌연 그에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도우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네. 아가씨가 운전기사한테 오늘 밖에서 잘 거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전... 도련님과 함께 있는 줄로 알았어요.”강영수는 병원에서 나온 뒤 핸드폰을 봤었지만 부재중 통화나 읽지 않은 문자 메시지는 와있지 않았다.그가 한 번 또 한 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줄곧 꺼져있는 상태였다.뼈를 에일 듯한 차가운 분위기가 그의 몸에서 분출되었다.“왜 똑바로 물어보지 않은 거야! 소월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다들 내 눈앞에서 꺼져버려야 할 거야! 멍하니 서서 뭐 하고 있어! 얼른 나가 찾아보지 않고!”“네... 도련님.”도우미는 강영수가 이토록 불같이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도우미가 나가자 다리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는지 강영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짓눌렀다. 그는 너무나도 무섭고 불안했다. 오늘 김남주에게 가는 게 아니었다.만약 장소월이 그 일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경호원이 학교 부근의 호텔과 술집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장소월의
장소월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겠지만, 강영수는 이미 서울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을 만큼 미쳐가고 있었다.새벽, 한 줄기의 빛이 창문을 비추며 들어왔다. 조용한 낡은 거리에 자리 잡은 가게들이 하나둘씩 아침 장사를 시작했고 이어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그때, 검은색 고급 세단 몇 대가 줄줄이 들어와 아파트 단지에 멈춰 섰다.오부연이 말했다.“소월 아가씨는 예전 이곳에서 한동안 머무른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곳에 있을 것 같습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해 잔뜩 피곤해진 얼굴의 강영수가 다급히 차에서 내렸다. 낡고 더러운 거리를 보니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졌다. 소월이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군데군데 벽이 떨어져 있고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이 건물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그때, 장소월은 욕실에서 씻고 나온 뒤 머리카락을 말리고는 어젯밤 더러워진 소파 시트를 벗겨 세탁기에 넣었다.어제는 머리가 너무 아파 거실에서 봤던 장면에 대해 조금도 관여하지 않고 빠르게 잠이 들었었다.하지만 좀 추웠는지 아침에 깨어나 보니 코가 조금 막혔다.그녀는 수술을 한 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그때, 누군가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장소월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영수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영수야, 나 아파! 너 왜 온 거야?”강영수는 그녀를 본 순간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미안해!”장소월은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옆에 서 있는 진봉과 오부연의 모습도 보였다. 아니... 다 데려올 필요는 없었잖아!한동안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은 뒤에야 강영수가 장소월을 놓아주었다.그녀는 새로운 소파 시트로 교체한 뒤 사람들을 소파에 안내했다. 그녀는 강영수에게 방금 끓인 따뜻한 물을 건네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미안해요.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걱정시켰네요. 어젯
장소월이 전화를 받고 오니 진봉과 오부연은 이미 나가고 방안엔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강영수는 확연히 어두워진 장소월의 안색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 있어?”장소월이 말을 얼버무렸다.“그냥 어젯밤 일을 물으셨어. 아무것도 아니야.”사실 그녀는 장해진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갖은 욕설을 모두 들었으니 낯빛이 밝을 리가 없었다.장소월이 말했다.“내가 죽을 끓여뒀는데 같이 먹을래? 아직 이른 시간이니 먹고 나서 조금 잘 수 있을 거야.”강영수가 깊은 눈동자로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아침밥을 먹은 뒤, 강영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침대 위엔 눈에 띄는 커다란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장소월이 이불을 정리하며 말했다.“너희 집보단 협소해 좀 불편할 거야. 잠시 눈만 붙여.”강영수가 말했다.“내가 자면 넌 뭘 하려고?”“이왕 깼으니 거실에서 숙제를 하려고.”강영수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나랑 같이 자자.”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장소월은 처음엔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가 밤새 자신을 찾아 헤맸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져 고개를 끄덕였다.장소월은 등을 돌리고 침대에 누웠다. 남자의 뜨거운 몸이 등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지만 그녀는 인형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알람이 울리자 장소월은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왔다. 강영수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그녀가 슬리퍼를 신고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책상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녀의 것이 아닌 강영수의 핸드폰이었다.화면을 살펴보니 김남주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곧바로 생각해내지는 못했다.그녀는 본래 강영수의 잠을 방해할까 봐 전화를 끌 생각이었지만 결국 끄지 않고 거실로 갖고 나왔다.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진봉이 장소월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소월 아가씨.”그의 시선이 장소월이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향했다.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가리키며 소곤소곤 말했다.“아직 자고 있어요. 조금 전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