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인시윤과 전연우의 식사 자리라니...인시윤은 또 장소월의 귓가에 대고 부탁했다.“소월아, 나랑 같이 가자! 아니면 무슨 말을 나눠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면 분위기가 어색해지잖아. 동생인 네가 있으면 훨씬 더 자연스럽잖아. 날 도와준다면 네가 수학 팀에 들어가는 일은 내가 책임질게!”“따르릉...”수업 종이 울렸다.“좀 더 생각해볼게. 오빠 평소에 바빠서 오늘 시간이 나는지 모르겠어.”인시윤은 기뻐하며 말했다.“그건 걱정 마. 내가 가는 이상, 무조건 나올 거야. 그럼 저녁에 같이 가는 거다? 나 먼저 갈게!”인시윤의 눈에는 전연우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다.장소월은 책상 위의 시험지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갑자기 등이 무언가에 부딪히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뒤돌아보니 뒤에 앉은 학생의 책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장소월이 몸을 굽혀 책을 줍고 그에게 건넸다.“누가 너더러 주워 달래?”엽준수의 말투는 조금 거칠었다.장소월은 눈썹을 약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전 수업이 끝나고 인시윤은 장소월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장소월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먹었다. 전에는 아줌마가 해준 도시락을 갖고 와서 학교 식당의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장소월은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담았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다. 억지로 먹기는 했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인시윤은 전연우에게 완전히 꽂혔는지 휴대폰으로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보냈는지 모른다.“왜 답장을 안 하는 거야! 너희 오빠 평소 이 시간에 뭐해? 점심 12시면 휴식시간이잖아!”장소월은 콩 반찬을 맛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았고, 냅킨 한 장을 뽑아 입을 닦았다.“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몰라. 아마 회의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얼른 밥부터 먹어, 식겠어.”남천 그룹.전연우는 중앙 자리에 앉아 각 부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 팔을 반쯤 들어냈고,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손에 든
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휴대폰을 내주었지만, 사실 이 식사 자리에 전혀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 사이를 엮어주기 위해 장소월은 하는 수 없이 참가해야 했다.인시윤은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음이 울린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전화기 너머에서 낮고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소월아, 무슨 일이야?”인시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 실망했고, 화난 말투로 말했다.“아저씨 동생 아니고 저예요!”“시윤 씨? 무슨 일이죠?”인시윤은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냉담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차별 대우를 하고 있었다.“제가 보낸 메시지 못 보셨어요? 저 오늘 밥 사주기로 하셨잖아요!”인시윤은 말하면서, 전화기 너머로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표님, 회의 끝나셨어요? 주문하신 음식 이미 사무실로 갖다 놓았습니다.”전연우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기성은은 다음 스케줄을 보고하며 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알겠어요. 저녁 몇 시죠?”인시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부러 자신의 전화를 안 받는 걸로 오해한 것 같아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식사 안 하셨어요? 그럼 먼저 식사하세요. 몇 시 퇴근하세요? 저녁에 소월이랑 같이 갈게요. 어디 가서 먹을 지는 저녁에 다시 정하죠.”“네.”“그럼 이만 끊을게요. 우리... 저녁에 봐요!”“네.”전연우는 인시윤이 먼저 전화를 끊기 기다렸고 기성은에게 저녁 스케줄을 물었다.“저녁 7시에 건자재그룹 대표님과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취소하세요.”“네.”...오후 마지막 수업은 자습이었고, 장소월은 훈련동의 강의실로 향했다. 수학 팀의 책임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남자로 이름이 고건우였다. 장소월은 도착하자마자 따로 다른 교실로 불려갔다.잠시 후, 고건우는 또 다른 학생을 데려왔다. 다름 아닌 장소월의 뒤에 앉은 엽준수였다. 그는 문 앞의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고건우는 강단으로 올라가
장소월은 정 집사에게 전화해 먼저 백윤서를 데려가라고 하고, 인시윤 집안의 자가용을 타고 전연우의 회사로 향했다.인 씨 집안의 인하 그룹에 비해 장 씨 집안은 별 볼 일 없는 벼락부자에 불과했다. 도심에 있는 인하 빌딩은 가치가 수백억이었고, 앞으로 가치가 최소 수십 배는 더 될 것이다.전연우와 인시윤이 함께 한다면, 전연우에게는 큰 이득이었다.차 안의 운전기사는 칸막이를 당겼다. 인시윤은 교복을 갈아입고 거울을 보며 틴트를 바르고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장소월에게 말했다.“이뻐?”장소월은 가슴에서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떠보듯 물었다.“너... 진짜 우리 오빠 좋아해?”인시윤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맑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당연히 좋아하지, 아니면 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나러 가겠어.”“너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데 괜찮아? 너 대학 졸업하면 오빠는 거의 서른이야. 넌 아직 한창이니... 어쩌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쉽게 마음을 주지 말고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인시윤은 콧방귀를 뀌었다.“나이가 많긴 하지. 하지만 여덟 살 정도야 뭐. 우리 부모님은 12살 차이 나지만 사이가 아주 좋아. 우리 아빠가 엄마 말을 얼마나 잘 듣는데, 완전 애처가야. 하지만 난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어. 지금은 좋아하지만, 앞으로는 아닐 수 있잖아. 하지만 난 지금까지 나를 이 정도로 안중에 두지 않는 남자를 본 적이 없어.”인시윤은 장소월을 덥석 잡으려 말했다.“소월아, 그거 알아? 내가 인 씨 집안의 딸인 걸 알면서도 날 욕한 사람은 처음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나한테 아부하지도 않아.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을 많이 만나봤는데. 전부 내 신분이 아니면 우리 집안의 돈을 목적으로 접근해왔어. 그런 사람들 진짜 짜증나.”“...”“내 스커트 어때? 예뻐? 좀 추울까?”장소월은 생각에 잠긴 듯 천진난만한 인시윤을 바라보았다. ‘넌 아직 전연
예전 장소월은 전연우에게 매달리려 자주 이곳에 왔기에 회사 안은 손바닥 보듯 훤했다. 프런트 직원이 장소월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너무나도 까다로운 손님이었으니 말이다.직원이 말했다.“아가씨, 전 대표님을 만나러 오신 건가요? 대표님께선 지금 회의 중이시라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 고마워요.”장소월은 인시윤이 34층으로 올라가자 두 사람을 방해하기 싫어 옆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네... 알겠습니다.”프런트 직원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맙다고? 장소월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솟을 일이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잡지를 들고 무심히 펼쳐보았다.그때 직원이 마침 일 때문에 32층에 도착한 기성은을 불러세웠다.“기 비서님, 이건 대표님에게 드릴 서류입니다.”기성은은 서류를 받은 뒤 휴게실을 힐끗 쳐다보았다. 장소월인가?만약 장소월이라면 조금 전 올라간 건 누구의 뒷모습이란 말인가?기성은이 눈을 축 내리깔았다.“왜 온 거예요?”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잘 모르겠어요. 오자마자 저기에 들어가 앉더라고요. 기 비서님, 설마 또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쓸데없는 곳에 관심 두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요.”“알겠습니다.”기성은의 말에 직원은 더는 묻지 못하고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시간은 흐르고 흘러 장소월은 이제 몇 잔의 물을 마셨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갖고 있던 시험지도 모두 다 풀었다.필통을 정리하고 나서 바깥을 쳐다보니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전연우가 이미 퇴근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시계를 보니 어느덧 일곱 시 반이었다.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은 장소월 뿐만 아니라 대표 자리에 앉아있는 인시윤도 마찬가지였다.20분을 더 기다리니 여덟 시가 거의 되어갔다.그녀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책가방을 메고 자리
장소월이 천성 빌딩을 나왔을 때 시간은 이미 늦어 버스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기다리는 버스가 눈앞 신호동 앞에 멈춰 섰다.지금은 서울시의 퇴근 시간이라 거리엔 차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그녀가 가방에서 차비를 꺼내려던 순간,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연우가 창문을 내리고 준수한 얼굴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타!”인시윤은 왜 차에 없는 거지? 장소월은 의문스러운 얼굴로 잠시 생각하다가 차 뒷자리에 올라탄 뒤 문을 닫았다. 차 안에 전연우와 단둘이 있으니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네가 인시윤을 어떻게 알아?”그가 백미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제가 반을 옮겼어요. 그래서 이제 같은 반이에요.”그는 더이상 묻지 않고 회사 문 앞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이어 얇은 치마를 입은 인시윤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저런 차림으로 견디다니.그녀는 타고난 체질이 냉해 겨울만 되면 손발은 항상 차가운 상태이다.인시윤이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탔다.“전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려왔어요?”“뭘 먹을래요?”전연우는 핸들을 돌리며 운전에 집중하느라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인시윤은 이미 온갖 산해진미를 모두 맛본 사람이다. 가장 즐겨 먹던 것들도 이제 다 질려버려 갑자기 물으니 무엇을 먹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 것이니 무엇이든 좋을 것이다.“소월아, 넌 뭘 먹고 싶어? 추천할만한 식당 있어?”그녀는 이 난제를 장소월에게 떠넘겼다.멍하니 앉아있던 장소월이 그녀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은평관으로 가요.”“은평관? 거긴 어디야? 왜 난 들어본 적 없지? 그냥 대게 먹으러 가자. 그곳에 가면 따뜻한 자스민 차도 끓여줘. 나 추워죽겠단 말이야.”전연우가 말했다.“주소.”인시윤이 식당 이름을 말했다.“신사처럼 겉옷을 벗어 나한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장소월은 그들에게 공간을 양보하며 가장 뒤에서 걸어갔다. 종업원이 문을 열자 정갈한 일본식 다다미가 깔려있었고 바닥엔 보일러가 켜져 있어 얼어붙었던 몸을 녹일 수 있었다.장소월이 목에 걸었던 목도리를 풀어 문 앞 옷걸이에 걸었다.“먼저 주문해요! 난 화장실에 가야겠어요.”“그래. 가!”인시윤은 메뉴판을 전연우에게 밀며 말했다.“같이 주문해요. 뭘 먹고 싶어요? 이번엔 봐주지 않을 거예요.”전연우가 말했다.“좋을 대로 해요.”인시윤의 몸은 어느덧 전연우의 옆자리까지 가 있었다. 그녀가 자주 먹던 세트를 주문하고는 말했다.“일단 이렇게 시키고 소월이가 돌아오면 더 추가하라고 해요.”화장실에서 돌아온 장소월은 룸마다 단독 종업원이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주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종업원이 그녀에게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아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펼쳐보다가 채소 비빔밥을 시켰다.그녀는 요즘 별로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체중은 감소하지 않았다.장소월은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밥상은 그리 크지 않아 다리를 펴면 상대방에 닿을 정도였다.밥상 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화차를 본 그녀는 손으로 유리컵을 감쌌다. 방금전 찬물에 손을 씻어 추웠던 차에 말이다.인시윤은 흥미진진하게 전연우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장소월은 간혹 인시윤의 말에 대꾸를 할 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녀의 성격은 이러하다. 나른하고 가라앉아있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창밖을 바라보니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이 당장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내일 크리스마스잖아. 소월아, 너 약속 있어?”그 말에 고개를 돌린 장소월은 전연우와 눈이 마주쳤다. 이어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약속 없어.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다른 흥취반 수업을 하려고.”“그래? 몇 시쯤 끝나?”“9시쯤에
인시윤이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전연우는 그녀를 혼자 남겨둔 채 룸을 나왔다. 가게 종업원들이 분명 그녀를 집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줄 것이다. 그녀의 신분이라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무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녹초가 되어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고작 3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렇게까지 취하다니. 처음엔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향기가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연속 마신 것이다. 만약 전연우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면 아마 그녀 역시 인시연처럼 인사불성이 되었을 것이다.그녀는 술을 깨려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연우가 매정히 닫아버렸다.“뭐 하는 거예요! 빨리 문을 열어요, 빨리요... 빨리...”그녀가 손으로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솜사탕이라도 삼킨 듯 부드럽고 나른했다.“시끄럽게 굴지 말고 앉아있어.”“짜증 나요! 창문도 안 열어주고! 열어주기 싫으면 말아요. 다음부턴 절대 오빠 차에 앉지 않을 거예요.”장소월은 두 다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순간 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전연우의 시선이 조심스레 옆으로 향했다. 삐진 건가?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히 삐졌단 말인가? 예전이었다면 떼를 쓰며 난리를 피웠을 텐데.“바깥이 추워서 그래. 찬바람 맞으면 감기 걸려.”모처럼 부드러운 말투였다.못마땅한 듯 축 가라앉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런 가식적인 말 믿지 않아요. 오빠는 나한테 상처만 주잖아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오빠예요. 이제 영수를 제외하고, 날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몸이 강하게 앞으로 기울었다. 그녀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왜 멈춰요?”“너 방금 뭐라고 했어?”차디찬 얼음이 산산조각이라도 난 듯 살을 에일 듯한 한기가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한 날카롭고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니 장소월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농후했던 취기가 단번에 깨
장소월이 그의 손목을 잡고 약간 차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집에 돌아가요. 윤서 언니가 집에서 오빠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저도 피곤해서 돌아가 쉬고 싶어요.”전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아래턱을 움켜쥐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악마처럼 귓가에 속삭였다.“넌 아직 어려서 사랑이 뭔지 몰라. 소월이가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하면 이 오빤 막지 않아.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줄 수도 있어.”장소월은 눈을 감았다. 지금은 그와 맞설 때가 아니니 이 화를 스스로 삼켜낼 수밖에 없다.“알... 알겠어요.”이젠 정말 술은 입에 대지도 말아야겠다. 술에 취해 또 그에게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말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장소월은 완전히 취기가 사라졌다.집에 돌아가니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뒤를 따라 빛 하나 없는 어두운 거실에 들어가 더듬거리며 벽에 붙어있는 전원을 켰다. 그제야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장소월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발을 뗐다. 하지만 등 뒤에서 남자가 입을 열었다.“국수를 삶아.”계단에 발을 디디려던 장소월의 귀에도 그 무례한 요구가 들려왔다.“제... 제가 아주머니를 불러올게요.”“내 말 못 알아들어?”전연우는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린 채 소파에 기대에 앉았다.장소월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의 상태를 살펴보니 분명 또다시 위병이 도진 것 같았다. 요즘 자주 공복에 술을 마셔댄 데다 오늘 밤 해산물 요리도 많이 먹었으니...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 거다.장소월은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고 식자재를 찾았다. 그녀는 늦은 시간이라 너무 피곤해 음식을 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분명 집에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도 기어코 이곳으로 왔다. 최근 들어 전연우는 자주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집을 나갔단 말인가.장소월은 365일 단 하루도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물을 끓이고 채소를 썰고 국수를 넣었다. 그녀는 먹지 않을 테니 일 인분만 끓였다.국수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