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돌진해 오는 차를 봤어?” 신준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잘 못 봤습니다.”강영수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럼 가서 조사해. 사흘 안에 범인을 잡아 와.”신준수가 말했다.“네, 대표님.”백윤서가 다가와서 장소월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소월아, 너 괜찮아? 연우 오빠와 같이 집에서 네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연우 오빠랑 나 둘 다 몰랐을 거야. 지난번에는 네 생일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선물을 준비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네가 오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어. 다음에 꼭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줄게.” 장소월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빼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오빠랑 언니, 먼저 돌아가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장소월은 전연우가 계속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그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우리 집 일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맡기겠어. 소월아... 너 아버지께서 했던 말씀 잊었어? 밖에서 사고 나면 오빠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너랑 윤서는 먼저 차에 타. 난 강 대표님이랑 얘기 좀 나누고 집으로 보내줄게.”전연우의 목소리는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고요함 같았다.그는 장소월에게 다시 개인적으로 강영수를 만나면 그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강영수는 그녀를 뒤로 끌어당겼다.“제가 소월이를 돌려보낼 테니 전 대표님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전연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소월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월아, 오빠 말 들어, 응?”장소월은 강영수의 뒤에서 한 발짝 나와 말했다.“영수야... 난 오빠랑 같이 먼저 집에 갈게.”장씨 집안에 있는 한, 그녀는 전연우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강영수의 눈빛에는 어둠의 흔적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손을 그녀의 머리에 얹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집에 도착하면 나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마.”장소월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윤서 너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백윤서는 전연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장소월을 쳐다봤다.“오빠, 소월이 방금 사고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너무 나무라지 마요.”백윤서는 전연우와 장소월이 단 둘이 있는 것이 싫었다. 가끔 그녀는 전연우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만약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동안 그녀에게 한 말은 무슨 의미일까?백윤서는 한 번도 전연우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안전감이 없었다.백윤서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은경애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 말을 더듬었다.“그... 그럼 저도 올라가 보겠습니다?”전연우가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은경애는 깜짝 놀라 바로 뒤돌아 서서 도망갔다.거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차갑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장소월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전연우가 그녀에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냉랭한 기운이 뿜었다. 장소월은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가 무슨 표정일지 알 것 같았다.방금 전 강영수가 그녀를 걱정해 줄 때 옆에서 짓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기분을 자유자재로 통제했다.“잊지 않았어요.”장소월은 긴장한 탓에 손바닥에 나는 땀을 닦았다. 그녀는 불안해서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설명했다.“오늘은 오 집사님이 데리러 오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기회에 영수한테 말하려고 했어요.”“오빠, 저는 오빠가 말한 대로 다 했어요. 뭘 더 해야 하는 거죠?”“머리 들어.”그는 명령을 내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적대적인 기운이 감돌았다.전연우는 가볍게 웃었다.“네가 어디서 들통났는지 알아? 소월아... 난 네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게 싫어!”그녀와 함께 오랜 세월을 보냈고,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그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뭘 좋
전연우는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그녀의 고통에서 오는 쾌감을 즐겼다.자비를 구하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을 줄 알았지만, 그 어떤 애원도 없었다.이런 그녀를 보며 전연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다.“뭐야, 이젠 용서를 구걸하지도 않아?”장소월은 전연우가 정말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면 여기서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오늘 밤 일어난 일 때문인지, 그는 그녀가 용서를 구하고 순종하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장소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고, 눈은 반짝였다. 눈가에 찬 눈물이 떨어졌다. 가여운 그 모습은 비 오는 날에 망가진 작은 백합 같았다. 꽃잎이 부서진 듯한 그 모습을 누가 보더라도 가슴이 아플 것이다.장소월은 그를 밀쳤다.“나는 죽어도 당신에게 자비를 구걸하지 않을 거야. 전연우, 당신은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갈 거야.”그는 손으로 너무 많은 생명을 죽였다...하늘은 참 불공평하다. 그를 살려두다니.지옥?그는 이미 지옥의 악령이었다.“그럼 난... 너를 지옥에 데려갈 거야.”장소월이 정말 강씨 가문을 넘본다면,그는 그녀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전연우는 도망치려는 장소월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그리고 전연우는 병아리를 드는 것처럼 그녀를 잡아당기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벽에 눌렀다. 그는 빨개진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거칠게 키스했다.그는 키스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장소월은 뇌에 산소 부족으로 질식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그녀의 입술을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입술과 치아 사이에서 비린내가 났다. 그녀는 허둥지둥 대면서 손으로 그의 얼굴과 목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장소월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전연우는 완전히 미쳐버렸다...복도에서 백윤서는 불안한 마음에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백윤서는 순식간에 머릿속이 텅 비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달빛이 창문을 통해 욕실 문 앞에 쏟아졌다.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공허하고 무감각한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해 귀신 같았다.침대 위에 있는 휴대폰은 밝게 빛났고, 기분 좋은 벨 소리가 끊임없이 방에서 울렸다.발신자는 강영수였다.장소월은 몇 번이고 자동으로 끊어지고 다시 울리는 휴대폰을 지켜보았고, 다시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잠시 후에야 그녀는 걸어가서 전화기의 배터리를 꺼내 옆에 던졌다.초승달 목걸이는 여전히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손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물에 닿지만 않으면 상처가 벌어지지 않았다.아침에 장소월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장해진과 강만옥은 이미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전연우와 백윤서도 함께 있었다.식탁에서 장해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전연우와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장해진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점차 회사의 모든 중요한 업무를 전연우에게 넘겨주었고, 대부분의 중요한 프로젝트는 그의 손에 맡겨졌다.장해진은 이제 강만옥에게 집착할 정도로 빠져 있었는데, 그에게 회사를 책임질 여유가 있을까?“저녁에 나와 같이 연회에 가면 인가네 큰 아가씨가 너에게 지난번 일로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네가 직접 선물을 골라봐. 젊은 아가씨들이 좋아하는 건 그 몇 가지니까 정성 들여 골라.”“네, 아버지.”인가네? 장소월은 어딘가 익숙한 듯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죽 반 그릇을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아버지, 저 먼저 학교 갈게요.”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야 장해진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학원에서 모든 수업을 마쳤니?”장소월이 말했다.“3개월 동안 못 다닌 수업은 다 보충했어요.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성적 떨어지지 않게 노력할게요.”그제야 장해진의 표정이 풀리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봐. 조심해서 다녀와.”장소월이 은경애한테서 책가방을 건네
백윤서는 천천히 안전벨트를 풀었고, 차 문을 여는 순간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오빠,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전연우는 창문을 통해 사라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윤서야, 너 곧 시험이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마.”전연우가 고개를 돌리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화가 나서 입술을 깨물었다.백윤서는 결국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했고 전연우로부터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그가 한 마디만 말해도 그게 어떤 설명일지라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백윤서는 실망한 채 차에서 내렸다.'소월이는 오빠에게 어떤 존재일까?'장소월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장소월의 서류가 다 넘겨진 후, 그녀는 교실로 돌아와 책상을 정리했는데, 사실 별거 없었고 교과서와 연습 문제 몇 장뿐이었다.이제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다.조용하던 교실에 장소월이 들어온 순간, 교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헐, 진짜야! 장소월이 정말 왔어?”“봐, 1반 담임 선생님이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장소월 정말 1반으로 가는 거였어!”그중에는 몇몇 조롱하는 말도 들렸다.“아니면 우리 내기를 해서 장소월이 1반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보자.”“난 6만 원 걸게. 3일 버티겠지.”“난 하루라고 봐...”장소월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섰다.“한 선생님, 저 준비됐어요. 가요.”한결은 서울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였고, 그녀의 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모두 엘리트였다.장소월은 1반의 학습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한결은 교과서를 손에 들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1반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1반에 오면 1반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 연애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대학 입시 전 마지막 6개월 동안 공부와 관련 없는 물건들은 학교에 가져오지 마.”“
우등반의 학생들은 각자 복습하고 책을 보느라 바빴고, 하루의 수업은 너무 꽉 차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장소월은 이런 학습 분위기를 좋아했다.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제운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뛰어난 기업의 자식들이고 좋은 집안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게을리하지 않았다.바로 그때 책상이 흔들리자 장소월은 그녀의 책상에 반쯤 걸터앉아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긴 포니 테일을 하고 있었고, 밤색 곱슬 머리였다. 그녀는 장소월과 비슷한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장소월의 가슴 앞에 엎드려 물었다.“얘, 뭘 먹어서 그렇게 커졌어?”“너 오늘 전학 온 학생 맞지? 이름이 뭐더라... 장소월, 맞지!”장소월이 자기소개를 할 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숙제를 하고 있었고, 아무도 장소월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내 이름은 인시윤이야. 우리 친구 하자!”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에 밥 먹으러 같이 가자!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인시윤?장소월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익숙한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본 걸까?인 씨?오늘 아침 식사할 때 장해진이 언급한 인가네 아가씨가 혹시 인시윤이 아닐까?그녀가 바로 인가네 딸이었어?장해진이 인씨 가문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고 전연우에게 잘 보이라고 당부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굳이 애쓰지 않아도 장해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장해진은 전생에서 죽을 때까지 장소월과 전연우의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은 장해진이 죽은 후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었다. 결혼식도 없었고, 사회자도 없었고 꽃도 없었다... 혼인 신고 서류만 있을 뿐이었다.장소월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장소월은 왜 인시윤의 말에 동의했을까?사실 방금 장
현재 장소월은 친구도 거의 없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녀는 심심할 때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며 좋아하는 일을 했다... 대인관계 없이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친구 사이에 의심이나 불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인시윤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몰랐다.하지만 장소월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5호 학생 식당.인시윤이 자주 간다고 말했던 곳은 회전식 샤부샤부 식당이었다.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장소월은 안 매운 국물로 주문했다.인시윤이 주문한 샤부샤부는 매우 매웠고, 장소월은 그 국물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녀는 시금치를 집어 냄비에 넣고 휘저으며 말했다.“소월아, 오늘 우리 집에서 내 생일 파티를 열 예정인데, 알고 있지? 너랑 네 오빠도 초대하고 싶으니까 같이 와!” 냄비 속의 뜨거운 하얀 김이 그녀의 눈을 가렸다.인시윤의 눈은 매우 예뻤다. 길게 째진 눈에 속 쌍꺼풀,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중앙에 아주 작은 점이 있었다.그녀는 독특하게 아름다웠고, 볼수록 더 예쁜 유형이었다. 장소월과는 달랐다. 장소월은 서울 최고 미인인 어머니의 외모를 물려받아 한눈에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예상대로 그녀의 목표는 전연우였다.장소월은 인시윤과 전연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두 번의 인생을 산 그녀는 여자를 이해한 경험으로 볼 때 인시윤은 분명 전연우에게 관심이 있었다.“나 초대장도 가져왔어. 저녁 7시 30 분에 꼭 와. 오늘 밤 맛있는 음식 많이 준비할 거야. 아빠가 연예인들도 초대했어. 꼭 와!”장소월은 빨간색 초대장을 보고 말했다.“저녁에 야자가 있어서 갈 수 없을 것 같아.”인시윤은 매운 것을 많이 먹어서 입술이 부어 있었다.“그건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를 따라 나오면 돼.”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당부했다.“아빠가 많은 사업 협력 파트너를 초대했어. 그 꼰대들은 행사 예절에 특별히 신경 쓰기 때문에 올 때
인시윤은 손으로 머리를 바치고 마음속으로 그것들을 기억했다.“알아. 네 오빠가 아끼는 사람이 백윤서라는 거. 서울제2중학교에서 누구한테 맞아서 네 오빠가 이 학교로 전학 보냈다고 들었어.”장소월은 국을 몇 입 먹어보고 아무 맛도 안나 싱겁다고 생각했다. 이 식당은 주변 환경이 좋고 야채도 신선하지만 유일한 나쁜 점은 사골 국물이 잘 끓지 않아 마지막에 풍미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전연우는 이미 집을 나와 백윤서랑 같이 살고 있어.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백윤서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야.”장소월은 인시윤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렇게 말했다. 인시윤은 긴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혐오감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 여자애는 너무 가식적이야. 너도 설마... 전연우 좋아하는 건 아니지?”장소월은 바로 부인했다.“그 사람은 영원히 내 오빠야. 나는 내 오빠를 좋아하는 일은 없어.”원래 경계하던 인시윤의 눈빛은 즉시 경계를 풀었고 그녀는 안도하며 가슴을 쳤다.“깜짝 놀랐네. 난 네가 백윤서와 똑같은 줄 알았어. 그렇다면 이제부터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나중에 우리가 가족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럼 난 너를 시누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장소월은 담담히 입꼬리를 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인시윤에게 전연우의 본모습에 대해 말해야 할까?그녀가 전연우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면 전연우는 이 상황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인시윤은 분명히 상처받을 것이다.그를 사랑하게 되면 점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을 것이다. 결국 황금색 철로 짜인 새장에 갇혀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끝내 구덩이에 빠져 허둥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그만하자. 그녀 자신도 지금 곤경에 처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을 걱정할까?전연우가 누구와 결혼하든 그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식사 후 인시윤은 그녀에게 밀크티 한 잔을 더 사주었다.그녀는 뒤에서 누군가 인시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인시윤은 손을 흔들며 말
장소월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드리웠다. “강용, 우리 가보는 게 어때?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그 전 부인 쪽 사람들이 또 때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죽을지도 몰라.”“젠장, 그럴 수도 있겠네.” 강용이 곧장 뒤쫓아갔지만,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 앞,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줄지어 정차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거만하고 제멋대로였던 여자가 한없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보스. 제가 힘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그녀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조금 전 사나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잘했어.”“됐어, 그만 울어!” 전연우가 호통을 치자 옆에서 울고 있던 별이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도로록 굴러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삐죽 내밀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더니, 바로 꺄르륵 웃고 있었다.“어머, 너무 귀여워. 안아주고 싶네.”“다른 사람들은?”리샬이 대답했다.“안심하세요, 보스. 시장 사람들은 모두 괜찮습니다. 그냥 연기였으니까요. 제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다친 사람은 보스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총까지 맞다니요.”전연우는 팔과 어깨에 일부러 총상을 입었다. 더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진통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인이었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심하게 매질까지 당했으니... 그의 검은색 옷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그 강인한 의지력은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보스. 사모님이 쫓아오고 있습니다.”장소월과 강용이 걱정되어 달려왔을 때, 손이준은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장소월이 소리쳤다.“강용, 빨리 저 사람들 말려.”“오빠, 괜찮아요?” 장소월이 상처를 확인하려고 손을 뻗었다. 몸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어 손을
“아주 흥미진진했어. 두 부부가 오붓하게 얘기하는 거 방해하지 않도록 안 가는 게 좋을 거야.”장소월은 평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사람... 와이프가 돌아왔다고?”강용은 웃으며 말했다. “응. 어젯밤 네가 쓰러졌을 때, 그 사람 보러 병실에 갔다가 부부가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어. 아이 양육권 때문인 것 같더라고.”“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어서 가면 괜히 불똥이 튈지도 몰라.”그녀는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끼어들었다가 전 부인이 오해라도 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그래. 남의 일에 우리가 간섭할 수는 없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분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응.”지금은 이게 최선이다.이곳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집에 돌아온 장소월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이 옷 몇 벌과 화구 상자가 전부였다.“내일 차 오는 거 확실하지?”강용이 대답했다. “응, 현지 사람 중 한 명에게 말해놨어. 돈만 주면 내일 아침에 차로 시내까지 데려다줄 거야.”“떠나기 전에 현아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어.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현아와 배 속의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잖아.”강용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딴생각을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소현아도 마침 잠에서 깨어났다.장소월은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 내려갔다. 그때 문밖 길 건너편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별이를 안은 채 여행 가방을 끌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입에서는 험한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 뒤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은 손이준을 밀쳐 넘어뜨렸다.그녀는 또다시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장소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남의 집안일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 여자가 바로 손이준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그를 빈털터리로 만든 사람인 걸까?확실히 좀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1분 1초가 그녀에겐 더없는 고통이었다. 왜 멀쩡하던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날이 거뭇하게 어두워졌을 때, 몽롱한 정신의 장소월의 귀에 강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살았다...”장소월이 소리쳤다.“나 여기 있어.”휴대폰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강용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부축해 나왔다.“이준 오빠부터 먼저 살펴봐. 많이 다쳤어.”강용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넌?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장소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얼른 오빠부터 병원에 데려가. 얼마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강용이 손이준을 안에서 끌어냈을 때 그의 몸은 그야말로 온통 피투성이였다. “괜찮아. 과다 출혈일 뿐이야. 밖에 의료진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강용은 그를 업고 나갔다. 장소월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부상자들이 들어왔다. 바닥은 금방 청소를 마쳤는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사방에는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아찔한 광경에 장소월은 순간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소월아.”장소월이 다시 눈을 뜬 곳은 한 허름한 병실이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옆에는 강용이 지키고 있었다.“깼어? 괜찮아?”장소월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용은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는 것을 알고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안전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다. “손이준 씨는 괜찮아?”강용이 대답했다. “와이프가 데리러 왔으니까 괜찮을 거야.”장소월이 물었다. “죽은 사람 많아?”강용은 그녀가 놀랄까 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 내가 차 불러뒀어. 집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현재 해외 시국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장소월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강지훈이 정말 온다면 그 사람과 함께 떠날 거야?”소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놈 싫어. 현아는 소월이랑 강용한테 아기도 낳아줘야 해.”“그리고 우리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많잖아.”“소월아, 네가 그랬지, 다음 목적지는 바닷가라고. 나 데리고 상어 보러 갈 거라고 했잖아.”소현아는 양손에 탕후루를 들고 배시시 웃으며 장소월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녀의 손에는 탕후루 외에도 체리 몇 개가 더 들려 있었다. 새콤한 것을 좋아하는 임산부를 위해 장소월이 사준 것이었다.“그래. 약속 어기지 않을게.”장소월은 저녁 반찬으로 구이용 고기를 조금 구매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입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주변 상인들은 노점도 내팽개치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심지어 칼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장소월은 이런 아수라장을 종래로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는 일찌감치 다른 사람의 발에 걷어차여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뒤 출구가 모두 막혀버려 도저히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그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를 잡아끌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장소월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준 오빠? 어떻게 여기 계세요?”“시장에서 식재료 사는 것 말고 무슨 할 일이 있겠어요?”장소월은 그의 팔에 흐르는 피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다치셨어요!”얼굴까지 창백한 걸 보니 총상을 입은 것 같았다.“쉿, 조용히 해요.”그들은 어둡고 좁은 틈새에 숨어 몸을 바짝 붙인 채 외부의 공포스러운 총소리를 듣고 있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틈새가 너무 비좁아 쪼그려 앉을 수 없었기에 일어선 채 그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손이준의 옆
장소월은 힘이 풀린 다리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생각이 짧았다. 확실히 부적절한 행동이었다.손이준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식재료도 사다 놓았다.소현아는 어젯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에 깨어나는 것은 임산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녀는 냄비에 남은 미음 세 그릇을 어젯밤 먹다 남은 반찬과 함께 야무지게 비벼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위층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소리쳤다.“소월아, 일어났어?”고개를 돌리고 남자의 음산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그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는 테이블 밑으로 파고들기라도 할 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냄비에 있던 미음 다 먹었는데, 조금만 더 먹고 싶어서요... 혹시 더 있어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였다. 그가 무섭기는 했지만,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손이준은 그릇을 탁자 위에 놓아주며 말했다.“드세요.”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차갑고 쌀쌀한 목소리였다.‘강지훈은 왜 저 멍청이한테 꽂힌 걸까?’보는 눈이 점점 더 형편없어 지고 있나 보다.별이도 먹고 싶다며 손을 뻗었지만, 전연우에게 곧바로 제지당했다. 맞은편 식당에서 전연우는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아직도 방에서 내려오지 않은 듯했다.전연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이 시간까지도 밥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 거지?아침도 먹지 않았고, 점심시간까지 지났다.장소월의 방에서부터 가게까지의 거리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가게에 도착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또다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이봐.”덥수룩한 머리숱의 남자가 다가왔다.“형님, 무슨 일이십니까?”“시내에 가서 먹을 것 좀 사와. 10분 준다. 많이 사와.”“알겠습니다, 형님.”“아니야! 저 사람들한테...”“그게 좋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장소월은 방에서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 주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연필로 선을 몇 군데 그
“싫어... 싫어. 나 안 돌아갈 거야.” “안 돼, 잡지 마!” “강용, 나 살려줘!”장소월은 종래로 그토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전연우는 그런 그녀의 모든 행동을 눈에 담고 있었다. 다만 꿈속에서까지 자신을 그토록 두려워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남자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전생과 이번 생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려놓을 수 없는 복수심 때문에 그녀를 한번 또 한 번 사무치는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소월아... 내 아내! 넌 영원히 내 여자야...’전연우는 내면의 욕망을 애써 억눌러 술 취해 자고 있는 여자를 탐하지 않았다.한 시간 뒤.전연우는 삽입만 하지 않았을 뿐, 욕망을 모두 해소하고는 그녀에게 옷을 입혔다.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장소월은 온몸이 파도 속에 잠긴 듯했다. 끔찍하게 숨 막히는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숨통이 트이며 살아나는 것 같았다.술에 취한 탓인지 눈을 떠보면 캄캄한 방에서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저 꿈이라고만 생각했다.잠시 후 눈앞에 흰빛이 번뜩이더니 의식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장소월은 온몸이 붕 뜬 듯한 느낌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1시 반이었다.가슴 위에 무언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이불을 들춰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월이가 엎드려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다.장소월은 아이가 불편할까 봐 조심스럽게 안아 옆에 눕혔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월이를 보고는 이불을 걷어내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었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져버렸다.그때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름 아닌 손이준이었다. 그는 손에 그릇을 들고 있었다.“오빠,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우리 월이는요?”장소월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자고 있어요.”“왜 그래요?”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강용, 그만 마셔.”양똥 소주는 확실히 독했다. 강용은 겨우 반병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좀처럼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반면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운 손이준은 멀쩡한 얼굴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만두는 소현아에게 거의 전부 양보했다.소현아가 혼자서 세 그릇이나 비우는 사이, 장소월은 별로 먹지 않아 거의 공복 상태였던 지라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며 소현아에게 말했다. “현아야, 월이 좀 봐줘. 난 강용을 방에 데려다줘야겠어.”“응, 응. 알았어.”장소월이 손을 대기도 전에, 손이준이 어느새 정신을 잃은 채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강용을 부축했다. “내가 같이 올라갈게요.”“월이는 여기 얌전히 있을 거예요.”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를 짚었다. “저 괜찮아요. 소파에 가서 잠깐 누워 있으면 돼요. 오빠, 그럼 강용 부탁 드릴게요.”장소월이 소파에 눕자, 별이는 장난감을 들고 다가와 작은 머리를 들이밀고는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엄마... 냄새 좋아.”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내팽개치고 장소월의 품에 파고들었다. 조그마한 몸이 그녀의 품에 쏙 들어왔다.아이는 고개를 젖혀 계속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장소월은 어느덧 깊이 잠든 듯했다.소현아는 다정하게 장소월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소파 옆에 얌전히 앉아 턱을 괴고 잠이 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월이 잠들었으니까 내가 지켜줘야 해.’그때, 2층에서 쿵 소리에 이어 거칠게 닫히는 문소리가 들려왔다. 손이준이 술에 취한 강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냉정하게 뒤돌아 방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강용이 다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아래층에 내려와 장소월의 옆을 지키고 있는 어리숙한 여자를 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서늘한 분위기를 느낀 그녀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제 올라가도 돼요.”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서둘러 일어서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자러 갈게요.”소현아는 그에게 겁을 먹은 듯 허
소현아는 잔뜩 신이 난 채 원래 자리에 돌아가 그릇을 들고 강용에게 다가갔다. “닭 다리 먹고 싶어.”강용은 손을 뻗어 닭 다리 두 개를 집어주며 말했다. “말 잘 들었으니까 두 개 줄게.”“고마워, 강용.” 소현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두 볼에 있는 보조개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 의아한 듯 접시에 담긴 닭 다리를 세어보더니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하나 더 먹으면 소월이 몫이 모자라잖아. 이건 소월이 줘야겠다.”소현아가 자신을 챙기는 모습에 장소월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난 괜찮아.”시장에서 사 온 닭 다리 외에 손수 만든 만두도 준비되어 있었다.그때 월이가 깨어나 장소월에게 다가가 안아달라고 조르며 팔을 뻗었다.손이준은 차가운 얼굴로 아이를 꾸짖었다. “이쪽으로 와.”울먹거리는 아이를 본 장소월은 가엾은 마음에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먹일게요.”장소월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를 안아 올리려 했지만, 순간 손목에 격렬한 통증이 밀려와 힘이 풀려 아이를 놓칠 뻔했다. 다행히 강용이 재빨리 아이를 잡았다.“괜찮아? 아직 손목 안 나은 거야?”장소월은 통증을 참으며 아이를 받아 안았다. “괜찮아. 고질병이지 뭐.”“미안해, 월아. 많이 놀랐지?”그녀를 올려다보는 월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엔 조금의 무서움도 들어있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장소월과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오빠, 죄송해요. 예전에 손을 다쳐서 무거운 걸 잘 못 들어요. 하마터면 월이를 떨어뜨릴 뻔했어요.”손이준은 듣는 둥 마는 둥 식탁 위의 음식을 먹으며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장소월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손이준은 저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걸까.식탁 분위기는 소현아와 강용이 주도했다. 강용은 소현아를 즐겁게 해주려고 일부러 장난도 치고 있었다. 그녀가 까놓은 땅콩을 보니 흥이 올라 술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얼마 후 음식점 사장이 맥주 한 상자를 배
규영이 나직이 말했다. “우리 계획이 효과를 본 것 같네. 나중에 현아 아가씨 만나면 꼭 이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탁해야겠어.”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사실 강지훈은 그 편지를 믿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 있는 거라곤 먹는 것과 자는 것밖에 없는 여자니까. 처음 그녀를 곁에 둔 건 단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였다.편지지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을 본 순간 차갑기 그지없는 그의 눈동자가 부드러워졌다.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묘하게 벅차오르는 듯한 특별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소현아는 사나운 늑대가 쫓아오는 공포스러운 꿈을 꿨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소현아는 급기야 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보야, 바보야...” “빨리 일어나! 안 일어나면 만두 다 먹어버린다!”그 말에 소현아는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강용을 보자마자 와락 껴안았다. “흐어엉, 강용, 나 악몽 꿨어. 늑대가 우리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막 쫓아왔어.”갑작스러운 포옹에 강용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그녀의 몸에 닿지 않도록 손을 들어 올리고 당장이라도 밀어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강용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멍청아. 살살 좀 해. 숨 막혀 죽겠다.”소현아는 훌쩍이며 강용을 놓아주었다. “너무 무서웠어.”강용은 그녀의 슬리퍼를 침대 옆에 가져다 놓았다. “됐어. 꿈일 뿐이야. 내려가서 밥 먹어. 몇 그릇 먹으면 바로 잊혀질 거야.”“옷 제대로 입고 내려와. 밑에서 기다릴게.”“응, 응.”소현아는 신발을 신으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강용이 신발 챙겨줬다. 헤헤.’“강용, 잠깐만. 나랑 아기랑 같이 가!”벌써 가버렸을 줄 알았던 강용은 사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눈에 띄게 발걸음을 늦추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소현아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두 사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