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차에 가까이 다가가자 백윤서는 장소월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옆에는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있었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설지 않았다. “오빠, 차 세워요. 저기 소월이 있어요.”장소월은 차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익숙한 번호판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차 앞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고, 장소월은 서둘러 차에서 내렸지만 발이 땅에 닿자마자 온몸의 힘이 빠졌다.신준수는 재빨리 소화기를 꺼내 연기를 껐다.강영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장소월의 상태를 확인했다.“어디 다친 거 아니야? 일어날 수 있겠어?”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났지만 강영수가 그녀를 잘 보호해 줬다. 장소월은 겁이 나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뒤에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생각하자 장소월의 마음은 결코 진정되지 않았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오부연은 이마에 묻은 피를 닦고 말했다.“소월 아가씨가 많이 놀랐겠어요.”강영수의 눈가에는 차가운 살의가 번쩍였다. 그러나 그는 부드러운 말투로 장소월을 달래주었다.“이젠 괜찮아.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테니 무서워하지 마. 자, 내 손잡고 일어날래?”장소월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안 다쳤지?”강영수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난 괜찮아.”다행이다.그가 괜찮아서 다행이다.장소월은 그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지만 다리에 여전히 힘이 없었다. 그녀는 일어서자 강영수의 표정이 약간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야? 너 다리 다친 거 아니야? 바지 올려 봐, 다리 보자.”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신준수가 말했다.“별장 측에 연락했으니 곧 차를 보내줄 거예요. 대표님,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그와 오부연은 내막을 알고 있었다. 강영수의 다리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그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신준수는 절대 그를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오늘은 소월 아가씨의 생일이
“아까 돌진해 오는 차를 봤어?” 신준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잘 못 봤습니다.”강영수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럼 가서 조사해. 사흘 안에 범인을 잡아 와.”신준수가 말했다.“네, 대표님.”백윤서가 다가와서 장소월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소월아, 너 괜찮아? 연우 오빠와 같이 집에서 네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연우 오빠랑 나 둘 다 몰랐을 거야. 지난번에는 네 생일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선물을 준비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네가 오지 않아서 너무 아쉬웠어. 다음에 꼭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줄게.” 장소월은 차가운 표정으로 손을 빼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오빠랑 언니, 먼저 돌아가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장소월은 전연우가 계속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그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우리 집 일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맡기겠어. 소월아... 너 아버지께서 했던 말씀 잊었어? 밖에서 사고 나면 오빠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너랑 윤서는 먼저 차에 타. 난 강 대표님이랑 얘기 좀 나누고 집으로 보내줄게.”전연우의 목소리는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고요함 같았다.그는 장소월에게 다시 개인적으로 강영수를 만나면 그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강영수는 그녀를 뒤로 끌어당겼다.“제가 소월이를 돌려보낼 테니 전 대표님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전연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소월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월아, 오빠 말 들어, 응?”장소월은 강영수의 뒤에서 한 발짝 나와 말했다.“영수야... 난 오빠랑 같이 먼저 집에 갈게.”장씨 집안에 있는 한, 그녀는 전연우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강영수의 눈빛에는 어둠의 흔적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손을 그녀의 머리에 얹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집에 도착하면 나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마.”장소월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윤서 너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백윤서는 전연우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장소월을 쳐다봤다.“오빠, 소월이 방금 사고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너무 나무라지 마요.”백윤서는 전연우와 장소월이 단 둘이 있는 것이 싫었다. 가끔 그녀는 전연우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만약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동안 그녀에게 한 말은 무슨 의미일까?백윤서는 한 번도 전연우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안전감이 없었다.백윤서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은경애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 말을 더듬었다.“그... 그럼 저도 올라가 보겠습니다?”전연우가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은경애는 깜짝 놀라 바로 뒤돌아 서서 도망갔다.거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차갑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장소월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전연우가 그녀에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냉랭한 기운이 뿜었다. 장소월은 그를 쳐다보지 않아도 그가 무슨 표정일지 알 것 같았다.방금 전 강영수가 그녀를 걱정해 줄 때 옆에서 짓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기분을 자유자재로 통제했다.“잊지 않았어요.”장소월은 긴장한 탓에 손바닥에 나는 땀을 닦았다. 그녀는 불안해서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설명했다.“오늘은 오 집사님이 데리러 오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기회에 영수한테 말하려고 했어요.”“오빠, 저는 오빠가 말한 대로 다 했어요. 뭘 더 해야 하는 거죠?”“머리 들어.”그는 명령을 내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적대적인 기운이 감돌았다.전연우는 가볍게 웃었다.“네가 어디서 들통났는지 알아? 소월아... 난 네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게 싫어!”그녀와 함께 오랜 세월을 보냈고,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그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뭘 좋
전연우는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그녀의 고통에서 오는 쾌감을 즐겼다.자비를 구하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을 줄 알았지만, 그 어떤 애원도 없었다.이런 그녀를 보며 전연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다.“뭐야, 이젠 용서를 구걸하지도 않아?”장소월은 전연우가 정말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면 여기서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오늘 밤 일어난 일 때문인지, 그는 그녀가 용서를 구하고 순종하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장소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고, 눈은 반짝였다. 눈가에 찬 눈물이 떨어졌다. 가여운 그 모습은 비 오는 날에 망가진 작은 백합 같았다. 꽃잎이 부서진 듯한 그 모습을 누가 보더라도 가슴이 아플 것이다.장소월은 그를 밀쳤다.“나는 죽어도 당신에게 자비를 구걸하지 않을 거야. 전연우, 당신은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갈 거야.”그는 손으로 너무 많은 생명을 죽였다...하늘은 참 불공평하다. 그를 살려두다니.지옥?그는 이미 지옥의 악령이었다.“그럼 난... 너를 지옥에 데려갈 거야.”장소월이 정말 강씨 가문을 넘본다면,그는 그녀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전연우는 도망치려는 장소월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그리고 전연우는 병아리를 드는 것처럼 그녀를 잡아당기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몸을 벽에 눌렀다. 그는 빨개진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거칠게 키스했다.그는 키스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장소월은 뇌에 산소 부족으로 질식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그녀의 입술을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입술과 치아 사이에서 비린내가 났다. 그녀는 허둥지둥 대면서 손으로 그의 얼굴과 목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장소월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전연우는 완전히 미쳐버렸다...복도에서 백윤서는 불안한 마음에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백윤서는 순식간에 머릿속이 텅 비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달빛이 창문을 통해 욕실 문 앞에 쏟아졌다. 장소월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공허하고 무감각한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해 귀신 같았다.침대 위에 있는 휴대폰은 밝게 빛났고, 기분 좋은 벨 소리가 끊임없이 방에서 울렸다.발신자는 강영수였다.장소월은 몇 번이고 자동으로 끊어지고 다시 울리는 휴대폰을 지켜보았고, 다시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잠시 후에야 그녀는 걸어가서 전화기의 배터리를 꺼내 옆에 던졌다.초승달 목걸이는 여전히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손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물에 닿지만 않으면 상처가 벌어지지 않았다.아침에 장소월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장해진과 강만옥은 이미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전연우와 백윤서도 함께 있었다.식탁에서 장해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전연우와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장해진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점차 회사의 모든 중요한 업무를 전연우에게 넘겨주었고, 대부분의 중요한 프로젝트는 그의 손에 맡겨졌다.장해진은 이제 강만옥에게 집착할 정도로 빠져 있었는데, 그에게 회사를 책임질 여유가 있을까?“저녁에 나와 같이 연회에 가면 인가네 큰 아가씨가 너에게 지난번 일로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더구나. 네가 직접 선물을 골라봐. 젊은 아가씨들이 좋아하는 건 그 몇 가지니까 정성 들여 골라.”“네, 아버지.”인가네? 장소월은 어딘가 익숙한 듯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죽 반 그릇을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아버지, 저 먼저 학교 갈게요.”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야 장해진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학원에서 모든 수업을 마쳤니?”장소월이 말했다.“3개월 동안 못 다닌 수업은 다 보충했어요.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성적 떨어지지 않게 노력할게요.”그제야 장해진의 표정이 풀리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봐. 조심해서 다녀와.”장소월이 은경애한테서 책가방을 건네
백윤서는 천천히 안전벨트를 풀었고, 차 문을 여는 순간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오빠,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전연우는 창문을 통해 사라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윤서야, 너 곧 시험이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마.”전연우가 고개를 돌리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화가 나서 입술을 깨물었다.백윤서는 결국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했고 전연우로부터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그가 한 마디만 말해도 그게 어떤 설명일지라도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백윤서는 실망한 채 차에서 내렸다.'소월이는 오빠에게 어떤 존재일까?'장소월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장소월의 서류가 다 넘겨진 후, 그녀는 교실로 돌아와 책상을 정리했는데, 사실 별거 없었고 교과서와 연습 문제 몇 장뿐이었다.이제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다.조용하던 교실에 장소월이 들어온 순간, 교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헐, 진짜야! 장소월이 정말 왔어?”“봐, 1반 담임 선생님이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장소월 정말 1반으로 가는 거였어!”그중에는 몇몇 조롱하는 말도 들렸다.“아니면 우리 내기를 해서 장소월이 1반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보자.”“난 6만 원 걸게. 3일 버티겠지.”“난 하루라고 봐...”장소월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섰다.“한 선생님, 저 준비됐어요. 가요.”한결은 서울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였고, 그녀의 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모두 엘리트였다.장소월은 1반의 학습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한결은 교과서를 손에 들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1반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1반에 오면 1반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 연애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대학 입시 전 마지막 6개월 동안 공부와 관련 없는 물건들은 학교에 가져오지 마.”“
우등반의 학생들은 각자 복습하고 책을 보느라 바빴고, 하루의 수업은 너무 꽉 차서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장소월은 이런 학습 분위기를 좋아했다.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제운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뛰어난 기업의 자식들이고 좋은 집안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게을리하지 않았다.바로 그때 책상이 흔들리자 장소월은 그녀의 책상에 반쯤 걸터앉아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긴 포니 테일을 하고 있었고, 밤색 곱슬 머리였다. 그녀는 장소월과 비슷한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장소월의 가슴 앞에 엎드려 물었다.“얘, 뭘 먹어서 그렇게 커졌어?”“너 오늘 전학 온 학생 맞지? 이름이 뭐더라... 장소월, 맞지!”장소월이 자기소개를 할 때 다른 학생들은 모두 숙제를 하고 있었고, 아무도 장소월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내 이름은 인시윤이야. 우리 친구 하자!”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에 밥 먹으러 같이 가자!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인시윤?장소월은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익숙한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본 걸까?인 씨?오늘 아침 식사할 때 장해진이 언급한 인가네 아가씨가 혹시 인시윤이 아닐까?그녀가 바로 인가네 딸이었어?장해진이 인씨 가문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고 전연우에게 잘 보이라고 당부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굳이 애쓰지 않아도 장해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장해진은 전생에서 죽을 때까지 장소월과 전연우의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은 장해진이 죽은 후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었다. 결혼식도 없었고, 사회자도 없었고 꽃도 없었다... 혼인 신고 서류만 있을 뿐이었다.장소월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장소월은 왜 인시윤의 말에 동의했을까?사실 방금 장
현재 장소월은 친구도 거의 없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녀는 심심할 때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며 좋아하는 일을 했다... 대인관계 없이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친구 사이에 의심이나 불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장소월은 인시윤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몰랐다.하지만 장소월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5호 학생 식당.인시윤이 자주 간다고 말했던 곳은 회전식 샤부샤부 식당이었다.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장소월은 안 매운 국물로 주문했다.인시윤이 주문한 샤부샤부는 매우 매웠고, 장소월은 그 국물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녀는 시금치를 집어 냄비에 넣고 휘저으며 말했다.“소월아, 오늘 우리 집에서 내 생일 파티를 열 예정인데, 알고 있지? 너랑 네 오빠도 초대하고 싶으니까 같이 와!” 냄비 속의 뜨거운 하얀 김이 그녀의 눈을 가렸다.인시윤의 눈은 매우 예뻤다. 길게 째진 눈에 속 쌍꺼풀,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중앙에 아주 작은 점이 있었다.그녀는 독특하게 아름다웠고, 볼수록 더 예쁜 유형이었다. 장소월과는 달랐다. 장소월은 서울 최고 미인인 어머니의 외모를 물려받아 한눈에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예상대로 그녀의 목표는 전연우였다.장소월은 인시윤과 전연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두 번의 인생을 산 그녀는 여자를 이해한 경험으로 볼 때 인시윤은 분명 전연우에게 관심이 있었다.“나 초대장도 가져왔어. 저녁 7시 30 분에 꼭 와. 오늘 밤 맛있는 음식 많이 준비할 거야. 아빠가 연예인들도 초대했어. 꼭 와!”장소월은 빨간색 초대장을 보고 말했다.“저녁에 야자가 있어서 갈 수 없을 것 같아.”인시윤은 매운 것을 많이 먹어서 입술이 부어 있었다.“그건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수업이 끝나면 바로 나를 따라 나오면 돼.”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당부했다.“아빠가 많은 사업 협력 파트너를 초대했어. 그 꼰대들은 행사 예절에 특별히 신경 쓰기 때문에 올 때
소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총괄 비서? 그녀와 소피아가?그녀는 성세 그룹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더러 소피아와 총괄 비서 자리를 두고 다투라니.비서팀엔 능력 있는 비서들이 수두룩한데 왜 하필 그녀를 불러들인단 말인가.소피아도...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수 년간 회사에 다니며 꽤 많은 인맥을 쌓았을 것이다.이 일은 분명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경 송시아의 머릿속엔 갖은 교활한 생각이 가득 담겨 있으니 말이다. 소피아는... 어쩌면 처음부터 송시아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예전 회사에서의 음침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소민아가 송시아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소피아는 이미 안에 앉아있었다. 다들 소민아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소민아가 말했다.“송 부대표님, 찾으셨어요?”소파에 앉아있던 송시아는 손을 휘저어 옆에 있던 간병인을 내보냈다.“사소한 일일 뿐이니 긴장하지 말아요. 일단 앉아요.”소민아의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소피아는 깍듯하게 송시아에게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부대표님, 목마르시죠? 물 마시세요.”송시아는 옅은 웃음만 지을 뿐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까지 오는 길이의 짧은 단발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 깔끔하고 정교했지만, 몸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바른 파운데이션이 잔뜩 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내가 두 사람을 부른 이유 짐작하고 있을 거예요. 기 비서가 돌연 사직하는 바람에 그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렸어요.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에 앉아 맡은 일을 처리해야 해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내 예전 비서였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비서직을 맡고 있어요. 나에게 있어 두 사람 모두 회사 내 가장 뛰어난 직원이죠. 혹시 추천할만한 사람 있어요? 아니면 대담하게 스스로 이 자리에 앉고 싶다고 나서지 않을래요?”소민아는 소피아의 반응을 살피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자신을 향한 송시아의 눈빛
“앞당겨졌다고요? 주말로 결정되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 준비 아무것도 못 했어요. 이런 옷차림으로 가면 실례 아닐까요?”신이랑이 점차 속도를 줄여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그는 긴장감에 경직되어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내가 있잖아요. 뭘 입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민아 씨 자체니까요. 그냥 편하게 밥 한 끼 먹는다고 생각하고 부담 갖지 말아요.”“네.”회사에 도착한 뒤, 신이랑과 소민아는 연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꼭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회사 직원들은 이제 그다지 의아해하지 않았다.하지만 소민아에 관한 루머들은 여전히 가실 줄을 몰랐다.필경 그녀는 얼마 전 제 입으로 기성은과 사귄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비서팀을 떠난 뒤로는 구르미 시리즈에 들어와 신이랑 편집장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소민아는 회사 뒷담화 방에서 꽃뱀 딱지가 단단히 붙어 있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몰래 소민아가 결국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갈지에 대해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지금은 신이랑에게 건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이번 내기를 위해 꽤 많은 돈을 쓴 사람도 적지 않았다.소민아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신이랑의 비서로서 오늘의 일정을 보고하고 일련의 계약서들을 처리했다.소민아가 서류 몇 장을 신이랑에게 내밀었다.“몽크 만화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계약서예요. 이랑 씨 사인이 필요해요.”신이랑은 서류를 받은 뒤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오늘 민아 씨가 할 일은 날 도와 원고를 봐주는 것과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대본을 보고 수정 의견을 내주는 거예요.”신이랑이 옆에 있던 태블릿을 가져와 내부 자료를 열어주었다. 안엔 아직 방영되지 않은 드라마 대본들이 가득했다. 이는 모두 구르미 시리즈에서 수정과 편집을 거듭한 것들이었다.소민아는 순간 수치심이 들었다. 부서를 옮긴 이후로 그녀는 줄곧 신이랑의 사무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간식을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심지어 물까지도 신이랑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소민아는 날이 완전히 밝아와서야 깨어났다. 그 순간 알람이 한 번 울리더니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져버렸다.회사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소민아는 다급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침대 옆에 올려놓고 충전 선을 꼽고는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핸드폰 전원이 자동으로 켜졌을 때, 소민아도 세수를 마쳤다.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로 내려갔다.그러던 중 약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도우미와 마주쳤다.“이건 뭐예요?”“민아 아가씨, 이건 어르신에게 드릴 한약입니다. 어르신께선 아직 쉬어야 하시기 때문에 아가씨와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십니다.”소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모부 지금 많이 나아지셨어요?”“네. 이젠 밥도 드실 수 있습니다.”“다행이네요.”명세진은 완성된 만두를 들고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민아야, 깼구나. 어서 와서 아침 먹어.”소민아는 아침 상이 이렇게나 풍성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모, 너무 많아요. 저 다 못 먹어요.”“많이 먹으렴.”“네.”소민아가 반쯤 먹었을 때, 명세진의 눈에 마당에 들어오고 있는 회색 승용차가 보였다.“저거 누구 차지?”소민아도 호기심에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차 번호를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신이랑 씨?”도우미가 문을 열려 나갔고, 소민아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이랑 씨가... 여긴 웬일이에요. 어서 들어와요.”“민아 씨한테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요.”소민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미안해요! 배터리가 없어서 지금 충전 중이에요.”명세진이 미소를 머금고 걸어왔다.“이분이 바로 네가 어젯밤 말했던 신 총편집장님이시구나. 정말 유능하고 건실한 분이시네.”신이랑은 오늘 입술에 빨간빛이 감도는 것이 얼굴색이 꽤 괜찮았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오늘은 민아 씨를 데리러 온 거예요. 아침밥은 이미 먹었습니다.”소민아는 그를 가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머리를 쥐
소민아는 명세진에게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아니에요. 방금 통화한 사람은 제 회사 상사예요. 저 지금 구르미 시리즈라는 회사로 옮겨서 총편집장 비서로 일하고 있어요. 월급은 예전과 같고요. 제 남자친구는 성세 그룹 총괄 비서예요. 다만 요즘은 다른 일이 있어 회사를 그만뒀어요.”“총괄 비서라고? 그럼 연봉도 엄청 높겠네?”“그건 물어본 적 없어요. 하지만 고아라 옆에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냥 제가 가끔씩 가서 함께 있어 주곤 해요. 최근엔 너무 바빠서 자주 못 만났어요.”명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아의 손을 잡고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시간 있으면 집에 데리고 와. 이 고모가 널 평생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봐야지.”명세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참, 저번에 너희 엄마가 소개해준 남자는 어땠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그 질문에 소민아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최근 있었던 일을 대체적으로 나열해줄 뿐이었다.“일이 좀 복잡하게 되긴 했구나. 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내 마음이 좋다는 걸 어떻게 해. 들어보니 너 그 기성은이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구나.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네 속을 이렇게 태우는지 궁금하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접촉해본 명문가 도련님들도 적지 않았잖아. 성세 그룹 대표와 비교할 수는 없어도 다들 꽤 잘나가는 집안 자제들이었어.” 명세진이 말을 이어갔다.“그 강씨 집안은 어떻게 됐어? 예전 우리 소씨 집안은 강씨 집안 도움을 적잖게 받았었어. 요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분들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구나. 저번... 설 인사를 하러 네 고모부와 함께 강씨 저택에 갔는데 이사를 갔는지 집은 텅 비어있었어. 그 장씨 아가씨한테 묻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줄곧 만날 기회가 없었어.”소민아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급히 말했다.“고모, 안 돼요.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라 절대 강씨 집안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입에 올리면 안 돼요. 특히 대표님,
소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요즘 출근하느라 바빴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꼭 시간 맞춰 들어와 같이 밥 먹을게요.”명세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놓아주었다.“그래. 일이 아무리 바빠도 몸을 꼭 잘 챙겨야 해. 이젠 집에 들어와서 살아. 너랑 현아 방은 오랫동안 비어있긴 했어도 내가 아주머니한테 매일 청소하라고 했어..”“고마워요, 고모. 역시 고모가 제일 좋아요.”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소민아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민아는 욕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그 후 그녀는 기성은에게 오늘 일과가 모두 담긴 문자를 보냈다. 회사일 뿐만 아니라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오후엔 어떤 간식을 먹었는지까지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역시 그 문자는 망망대해에 던져지기라도 한 듯 그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예전 기성은과 이런 문제로 심술을 부렸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너무나도 꿈 같은 시간이었다.소민아는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두 팔로 다리를 감싸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녀가 혼자 중얼거렸다.“언제쯤이면 우리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요?”“기성은 씨, 너무 보고 싶어요.”며칠 전에 보낸 문자에도 지금까지 답장이 없다.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정말 기성은과 사귀고 있는 건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띠링.”기성은에게서 온 문자일 거라 생각한 소민아는 빠르게 핸드폰을 살펴보았다.신이랑의 문자였다.[언제 돌아와요? 민아 씨 주려고 삼계탕 끓여놨어요.]소민아는 문자를 쓰고 지우고 반복하다가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답장했다.[오늘은 안 돌아갈 거예요. 이랑 씨, 저 앞으로 이곳에서 쭉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신이랑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민아 씨 귀찮게 해서 그래요? 미안해요.”“이랑 씨 때문이 아니에요. 집에 돌아와 고모와 고모부를 뵌 지 너무 오래돼서 그래요. 정말 이랑 씨 때문은 아니에요. 삼계탕은 내일 가서 먹을
집에 돌아가는 길, 신이랑이 돌연 기성은을 언급했다.“그 사람이랑은 잘 사귀고 있어요?”핸들을 잡고 있던 소민아의 손이 순간 경직되었다.“네. 어젯밤 병원에서 성은 씨와 우연히 만났어요. 송시아가 총괄 비서 자리에 앉을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소민아는 그 뒤의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아직 대표님의 생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들이 대표님의 상태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 일은 외부엔 비밀로 부쳤지만, 신이랑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신이랑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돌아가 그 자리에 앉고 싶은 거예요?”소민아는 그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눈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필경 그녀는 본사에서 나와 구르미 시리즈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구르미 시리즈는 예전 대표님이 소월 언니를 위해 설립한 회사였다. 현재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는 소설 모두 소월 언니가 직접 선택한 것이었다.지금은 비록 변고가 생기긴 했지만, 그들 손에 맡겨진 일이니 멈출 수는 없다.소민아가 말했다.“아니요. 지금 맡은 일 너무 좋아요.”“월급 때문이라면 상의 가능해요.”그녀를 잡을 수만 있다면 신이랑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줄 수도 있었다.소민아는 신이랑을 집에 데려다준 뒤 일을 처리하러 회사로 돌아갔다.설영우는 이미 사무실에 와 있었다.퇴근 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을 때, 소민아는 신이랑의 문자를 받았다.가족 모임이 이번 주말로 결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4, 5일 정도 남아있었다.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소민아가 그의 문자에 답장했다.[알겠어요.]퇴근길, 소민아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고모부가 의식을 찾았고, 고모는 그의 곁에서 간호를 하고 있다고 한다.명세진이 소민아의 손목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민아야, 우리 현아 어떻게 됐는지 알아? 강지훈은 대체 왜 그 아이를 다시 보내주
그중 살집이 두둑한 털보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했다.“누님, 이런 사소한 일에 친히 걸음하시게 했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저희가 이놈 껍질을 벗겨 누님의 분노를 달래드릴게요.”“전연우가 없으니까 엄청 막 나가네?”“누님, 누님도 아시잖아요. 형님은 지금 손을 씻은 상태라 푼돈을 벌 수밖에 없어요. 겨우겨우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요. 이놈이 겁도 없이 그 물건을 건드려서 저희까지 돈줄이 끊겨버렸어요. 누님... 저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솔직히 형님이 저희한테 추천한 일 꽤 괜찮아요. 시간도 힘도 별로 안 들어요. 하지만 벌이가 너무 적어서... 누님, 다른 방법 없을까요?”송시아가 손을 흔들자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던 간병인은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병실 문이 굳게 닫혔다...소민아는 신이랑의 병실로 들어오던 중 환청인지는 모르나 송시아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송시아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머릿속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소민아는 신이랑에게 죽을 먹여주고 약을 가져다준 뒤 링거를 다 맞히고는 그의 외투를 걸치고 병실을 나섰다.신이랑이 물었다.“민아 씨, 돌아온 뒤로 계속 걱정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인데 무슨 일 있는 거예요?”그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그는 지금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의 그에게는 좋아하는 일인 소설을 마음껏 쓰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직 채 못한 일이 있나 고민하느라 그랬어요. 오늘 이랑 씨는 회사에 못 나간다고 말해뒀으니까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요.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제가 찾아갈게요. 이랑 씨가 저작권료 상의 때문에 출판사와 잡은 약속은 잠시 뒤로 미뤘어요.”소민아는 그를 부축해 걸어가며 핸드폰으로 메일을 보냈다.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신이랑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말했다간 거부감만 더 살 뿐만 아니라 그녀가 천 리 밖으로 자신을 밀어낼 거라는
“충분히 생각한 거예요?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 없어요. 위험이 닥쳐도 내가 민아 씨 안전을 완전히 보장해줄 수는 없고요.”소민아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알아요. 저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저 운도 항상 좋았어요. 아무도 저 다치게 못 해요.”기성은이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민아 역시 단호한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기성은이 입을 열었다.“그럼 나 대신 그 자리를 지켜줘요. 송시아의 손이 너무 높게 뻗지 못하도록.”“그게.. . 무슨 뜻이에요? 기성은 씨 대신 총괄 비서 자리에 앉으라는 건가요? 하지만 전 지금 회사 본사에서도 나왔어요. 안 된다고요!”“어떤 일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어요. 때가 되면 민아 씨 스스로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소민아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에 키스했다.“나 걱정하고 있다는 거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고요. 기성은 씨처럼 입이 지독한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아니면...”기성은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예요?”소민아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두 글자를 내뱉었다.기성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어떻게 그런 황당한 말을. 소민아 씨,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라는 거 잊었어요?”소민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기성은 씨가 있으니까 곧 결혼하겠죠.”소민아는 굶주린 늑대처럼 기성은이 입고 있는 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헤쳤다.“기성은 씨, 저 남자를 한번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한테 듣기론 남자랑 자면 너무 짜릿하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다른 여자랑 잔 적 있어요?”“솔직히 저번 기성은 씨 집에서 밤을 보낼 때부터 잠자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적극적이지 못했어요. 이번엔 꼭 할 거예요.”소민아는 허기진 암컷 호랑이처럼 차갑고 꼿꼿한 나무막대기 같은 기성은을 향해 군침을
죽 한 그릇을 먹여주는데 무려 20분이나 걸렸다.소민아는 그에게 수면 촉진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가져다주었다. 신이랑이 침대에 누워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랑 같이 있어 줘요. 안 가면 안 돼요?”소민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뭐든 이랑 씨가 몸을 다 회복한 다음 얘기해요.”옆에 앉아 신이랑이 잠드는 것을 지켜보던 중 핸드폰에 배터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천천히 손을 빼냈다. 하지만 신이랑은 그녀의 움직임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불안한 얼굴로 다시 눈을 떴다. 소민아는 환자를 보살피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지는 정말 몰랐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엎드려 잠시 잠을 청했다.창밖에서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그녀가 어깨를 움츠렸다.그때, 그녀의 귀에 미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뜬 순간,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휙 지나갔다.“기성은 씨, 당신이에요?”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소민아는 자신을 잡고 있던 신이랑의 손을 풀고는 바로 일어나 남자를 쫓아갔다. 그녀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순간 복도의 센서 등이 환하게 어둠을 밝혔다. 바깥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제가 문자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했어요?”“이거 놔요.”“설명해주기 전엔 놓지 않을 거예요.”작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기성은은 소민아의 손을 잡고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소민아는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켜려다 말했다.“따라와요.”이후 그녀는 옆쪽 간병인 방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의 손가락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뜨거운 물 가져올게요.”소민아는 따뜻한 물을 가져온 뒤 그가 손으로 감싸게 하고는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조금만 기다려요. 곧 따뜻해질 거예요.”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분명 기성은이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자신과 그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다는 느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