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나가 듣더니 손뼉을 쳤다.“대단해! 정말 대단해!”김하린은 살며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일부러 소은영과 맞서고 싶지 않았지만 소은영이 먼저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점심, 소은영이 조심스레 2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다리가 불편한지라 내려오는 데 애를 먹었다. 그녀는 거실에서 일하고 있던 유미란을 보더니 왠지 모르게 우월감을 느꼈다.“아줌마, 배고프니까 밥 좀 해줘요.”박시언 품에서 나약한 척하던 모습과는 달리 건방지기 그지없었다.유미란은 소은영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꼴 보기 싫었지만 박시언이 직접 데려온 사람이라 애써 참아보려고 했다.“사모님의 규정대로 점심은 12시에 먹습니다.”김하린 언급에 소은영은 가슴 한구석이 찔렸다.“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 거예요! 배가 고프다는데!”소은영의 말투는 별로 상냥하지 않았다.얼굴이 망가진 것 때문에 성격이 그 전보다 더 난폭해졌다.유미란은 하고 싶은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그저 순순히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박시언이 아끼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소은영은 그제야 만족해하면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학교 숙소에는 TV는 물론 이곳만큼 좋은 침대도 없었다. 어제저녁에는 오래간만에 푹 잔것 같았다.‘언젠가 안방에서 잘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이때, 격렬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소은영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소리 질렀다.“아줌마, 노크 소리 안 들리세요? 빨리 안 열어주고 뭐 해요!”소은영의 심부름이나 하고 있자니 불만이 많았지만 억지로 문 열어 주러 갈 뿐이다.유미란은 문밖에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큰 사모님.”최미진은 예리한 두 눈으로 방안을 힐긋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소은영은 다급하게 일어서더니 아까처럼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했다.“사... 사모님...”갑자기 최미진이 들이닥칠 줄 몰랐던 소은영은 말까지 더듬거렸다.“또 너야?”최미진의 눈빛이 차갑기만 했다.“사모님, 작은 사모님께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린이처럼 착한 애가 저년 때문에 집을 뛰쳐나갔는데 너는 어떻게 남편 구실 한 거야?”“할머니. 하린이가 은영이 차 사고를 낸 거예요. 걔가...”“그만해!”최미진이 호통쳤다.“이런 년 때문에 자기 마누라나 탓하고 있고.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박시언은 최미진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을 지킬 뿐이다.최미진이 소은영을 관찰하면서 말했다.“우리가 장학금까지 대줬으면 공부나 잘할 것이지. 어디서 감히 사모님 노릇이나 하고 있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아? 내가 말해주는데, 꿈 깨!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절대 우리 집안에 발을 내디딜 수 없어!”박시언이 더는 못 참겠는지 말했다.“할머니, 소영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그런 애가 아니라고?’최미진이 한 웅쿰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뿌리더니 말했다.“이거 잘 봐봐. 장학금까지 대줬는데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사진 속 소은영은 짙은 화장에 노골적인 의상을 입고 클럽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 밖에도 낯선 남자와 끈적거리는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박시언은 이 사진들을 보더니 침묵을 지켰다.그러자 소은영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최미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출세하려고 미친 이 년이 강씨 가문을 건드린 바람에 우리 집안이 얼마나 우습게 된 줄 알아? 시언아, 할머니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할머니, 이 일은 제가 처리할게요.”박시언이 유미란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할머니 좀 바래다 주세요.”“네. 도련님.”최미진은 유미란의 부축하에 더 빌리지를 떠났다.소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박시언을 보면서 별안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대표님...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박시언이 말했다.“증거가 여기 다 있는데 무슨 설명?”소은영이 입술을 꽉 깨물면서 말했다.“이거... 제가 아르바이트하면서... 어쩔 수 없이...”“아르바이트?”박시언은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소은영이 고
“하린이한테 전화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요.”“네?”이도하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시각, 김하린은 한창 강한나와 함께 클럽 룸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기분이 안 좋은 김에 어쩌다 건하게 마셔보기로 했다. 알코올 효과인지 기분 안 좋은 일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핸드폰이 울리고,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이도하의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라고 합니다.”“네? 뭐라고요? 오라고 하면 가야 해요? 걔가 뭔데요!”김하린의 취한 목소리에 이도하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사모님, 지금 어디 계세요?”“박시언이 없는 곳이요!”그러면서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강한나가 김하린을 안으면서 배시시 웃었다.“우리 둘만 있으니까 심심하네. 언니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재밌는 거요?”강한나가 벨을 누르자 클럽 매니저가 웃으면서 들어왔다.“강한나 씨, 뭐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여기서 제일 잘생긴 남자 모델분들 다 데려오세요!”“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뒤이어 잘생긴 남자들이 줄줄이 들어오자 김하린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늘 착하게만 살았던 그녀는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어때? 짜릿하지?”강한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김하린을 쳐다보았고, 김하린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짜릿하긴 한데 난 유부녀잖아...’“보기만 하면 재미없지.”강한나는 남자 모델들을 두 사람의 옆에 앉혔다.“누나 너무 예쁘세요.”이때 남자 모델 중 한 명이 귓가에 속삭이자 김하린은 순간 얼굴이 발개졌다.한 번도 누나라도 불려본 적이 없었다.이 시각, 이 두 여자의 문자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두 남자가 있었다.서도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누나가 하린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지?”배주원이 급하게 타자를 하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인맥을 동원해서 물어보고 있으니까 곧 소식 있을 거야!”얼마 지나지 않아 배주원은 클럽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배 도련님,
배주원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초조했다. 이 둘은 쏜살같이 집을 나서서 클럽으로 향했다.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클럽 사장은 배주원과 서도겸이 차에서 내리자 냉큼 허리 굽혀 인사했다.“배 도련님, 서 도련님, 아직 안 가셨습니다. 제가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배주원이 발걸음을 멈추면서 물었다.“그러면 지금까지 그 남자 모델들이랑 룸에서 안 나왔다는 말씀이세요?”클럽 사장이 머쓱하게 웃었다.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었다.“이런 젠장!”배주원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물었다.“어느 룸인데요?”“여기요!”클럽 사장이 문을 열어주려고 할 때, 배주원이 아예 발로 걷어차 버렸다.룸 안, 김하린과 강한나는 남자 모델들의 중심에 앉아 한껏 흥분된 모습이었다.“어머! 주원이랑 도겸이 아니야!”강한나의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김하린도 이 둘을 발견했다.두 남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방안을 쳐다보고 있었다.“누나, 이 두 사람도 부른 거예요?”남자 모델 중 한 명이 김하린에게 끈적하게 물었다.술이 좀 깬 김하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배주원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전부 다 꺼져!”클럽 사장이 눈빛을 보내자 남자 모델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가지 마! 좀 더 있다가 가! 왜, 안 마셔?”배주원은 어두운 표정으로 남자 모델들을 잡으려는 강한나를 말렸다.“이런 곳에서 뭐 하는 짓이야! 돌았어?”“누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난 너보다 나이가 많아!”강한나는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배주원은 강한나를 들어서 안으면서 말했다.“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집에 가!”“어머, 동생 팔 힘 좀 봐. 나 이런 거 좋아해!”배주원의 표정은 이보다 더 어두울 수가 없었다.김하린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술을 마셔서인지 휘청거리다 서도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중심을 못 잡겠어?”서도겸의 중저음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김하린은 애써
이미 쿨쿨 자고 있는 강한나는 배주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뒷좌석에 앉은 김하린도 따뜻한 에어컨 바람에 해롱해롱해지면서 얼굴도 더 빨개졌다.서도겸은 뒤에 트렁크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 김하린에게 덮어주었다.“잠깐 자고 있어. 곧 도착할 거야.”김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곤했는지 역시나 창가에 기대어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이 시각, 조용히 서재에서 태양혈을 어루만지던 박시언은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김하린의 문자는 없었다.잠시 후, 이도하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하린이는요?”“클럽에 있는 것 같습니다.”“클럽이요?”박시언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김하린은 클럽 같은 곳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에 클럽에 간 것은 한태형과 만났을 때였다.‘지난번 온라인에서 떠들썩했는데 어떻게 또 거기에 갈 생각을 했지?’“아마도요. 너무 시끄러워서 잘 듣지는 못했는데... 사모님께서 술에 취하신 것 같았고... 돌아오기 싫다고 하셨습니다.”이도하의 말에 박시언은 화가 났다.“빨리 찾아서 데려오세요! 한밤중에 혼자서 클럽까지 가고. 미친 거 아니에요?”“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연락이 올 거예요.”전체 해성에 있는 클럽마다 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 하나 찾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박시언이 말했다.“하린이를 찾는 대로 저한테 연락주세요.”“네. 대표님.”전화를 끊은 박시언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이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면서 소은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박시언이 외투를 챙기는 모습에 멈칫하고 말았다.“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려고요?”“잠깐 나갔다 올게. 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자.”박시언은 별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소은영이 커피 한잔을 건네면서 말했다.“업무 처리하러 가시는 거예요? 이거 방금 타온 커피인데 마시고 가요. 그러면 정신이 좀 들 거예요.”“하린이 찾으러 갈 거야.”소은영은 또 멈칫하고 말았다.“하린이 언니 찾으러요?”“응.”박시언은 차
아직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은영은 박시언이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오자 혹시나하는 마음에 물었다.“하린 언니는... 같이 안 왔어요?”박시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돌아오기 싫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해.”박시언의 말에 소은영은 속으로 좋아했다.‘김하린 이년 멍청하긴. 분명 대표님 마음을 얻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놓치다니. 차라리 잘됐어. 그년이 없는 동안 대표님한테 접근해서 마음을 빼앗아야지.’박시언의 옆모습을 보고 있던 소은영은 그의 마음을 빼앗아 올 자신이 있었다.예전부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박시언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다음 날 아침,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 김하린은 눈을 뜨자마자 어딘가 낯선 천장을 마주하게 되었다.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 어제저녁 강한나와 함께 클럽에 가서 남자 모델과 함께 놀다 배주원과 서도겸에게 붙잡혀 간 기억은 있었지만 차에서 잠들어 버린 이후로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김하린이 말했다.“들어오세요.”문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강한나였다. 그녀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하린아, 미안해. 내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지.”“괜찮아요. 기분만 좋으면 됐죠, 뭐.”“얼른 씻고 일어나 밥 먹어!”배주원이 주방에서 외쳤다.방문을 나서서 거실에 갔더니 서도겸, 배주원이 모두 다 있었다.이 집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단조로웠고 가구도 얼마 없어 깔끔해 보였다. 장식품들은 시중에서 파는 것이 아닌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였다.“거기서 멍때리고 뭐해. 얼른 씻어. 밥 이미 차렸으니까.”배주원이 멍때리고 있는 김하린을 재촉했다.김하린은 자신이 입고있는 잠옷을 보고 강한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강한나는 바로 그녀의 의혹을 알아차리고 귓가에 소곤거렸다.“이집 아주머니가 갈아입혀 준 거야.”“여기가 도겸이 집이에요?”“응.”강한나가 말했다.“도겸이 어릴 때 해성에서 자랐어. 출국하는 바람에 오래 비워둔 집이야.”김하린이 고개
배주원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은 모두 김하린에게 향하게 되었다.김하린은 황급히 표정을 숨기면서 뜨거워진 얼굴을 감쌌다.“그러게... 감기 걸렸나 봐.”“감기 우습게 보면 안 돼. 이따 도겸이한테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옆에 있던 강한나는 이 둘에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김하린이 고개를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있으면 나을 거예요.”강한나가 김하린을 자리에 앉혔다. 조촐한 서도겸의 앞접시와는 달리 세 사람의 아침은 풍성하기만 했다.어제 술을 마셔서 아침에 해장국이 필요했는데 마침 해장국이 차려져서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했다.서도겸은 한두 입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하고는 외투를 챙기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러자 배주원이 물었다.“아침부터 어디가?”“잠깐 나갔다 올게.”서도겸은 바로 집 문을 나섰다.배주원이 중얼거렸다.“아침부터 장 보러 나가나?”강한나는 배주원이 한심하기만 했다.“멍청하긴!”반 시간 뒤, 다들 조용히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서도겸이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배주원은 그 쇼핑백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물었다.“뭐야... 정말 장 보러 간 거야?”서도겸은 쇼핑백에서 바나나, 포도, 사과, 그리고 요구르트 등 숙취에 좋은 음식들을 꺼냈다.“숙취에 좋은 거야.”서도겸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과일칼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강한나가 배주원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우리 동생 장난 아닌데? 다시 보게 되네?”“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나도 깎을 수 있거든?”“지금 사과 깎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강한나와 배주원이 투닥거리고 있었다.서도겸은 능숙한 솜씨로 사과껍질을 깍아 작은 조각으로 썰어 김하린의 앞에 가져다주었다.강한나가 일부러 장난쳤다.“어머, 지금까지 살면서 왜 난 네가 누나한테 사과 깎아주는 모습을 못 봤지? 별일이네.”“잠깐만, 내가 지금 깎아주고 있잖아.”배주원은 강한나의 옆에서 배시시 웃으면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강한나가 장난치지 말라면서
서도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김하린이 말했다.“과일 고르는 솜씨가 우리 집 아주머니보다도 나아.”서도겸이 피식 웃었다.차마 하나하나 먹어보면서 고르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윙-안방에서 미세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오자 강한나가 말했다.“누구 핸드폰이 울리는데?”이들은 서로 쳐다만 볼 뿐이다.배주원이 말했다.“내 핸드폰은 진동모드가 아니야.”서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한나는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내건 여기 있어.”김하린은 그제야 어제 이도하의 전화를 끊고 귀찮은 마음에 진동모드로 바꿔놓은 사실이 떠올랐다.그래서 부랴부랴 안방으로 달려갔다.윙-발신자는 다름아닌 이도하였다.김하린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도하는 김하린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이제야 전화를 받으시네요.”“무슨 일 있으세요?”“대표님께서 어제 온 저녁 찾으셨어요. 서도겸 씨와 함께 클럽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요. 오늘은 출근도 안 하셨고요. 혹시 대표님 연락되시면 출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저를 찾았다고요?”김하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왜 갑자기 나를 찾는 거지? 내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잖아.’핸드폰을 확인하자 정말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있었다. 하지만 새벽 3시쯤 되었을 때, 박시언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사모님, 그래도 대표님께서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 대표님께 연락이라도 해보세요. 혹시나...”“알았어요. 고마워요. 도하 씨.”김하린은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직접 전화하기로 했다. 전화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냉랭한 기계음이 들려왔다.“지금 거신 전화는 통화 중입니다.”김하린은 인내심을 가지고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냈다.[어제 술을 마시느라 못 봤어. 날 찾았어?]문자를 보내자마자 갑자기 뜨는 차단 알림에 김하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박시언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