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온 심지안은 세움 그룹 직원에게서 얼른 처리할 일이 있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고청민이 사임한 뒤로 대부분의 무거운 책임이 심지안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바빠졌다.성연신은 성우주를 데려오러 학교로 향했다.카시트에 앉은 우주는 휴대폰으로 열심히 서류를 확인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아빠, 상의할 게 있어요.”성연신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말해.”“엄마한테 밥 좀 시키지 않으면 안 돼요? 여자한테는 명령하는 게 아니라 아껴줘야 해요.”화면 스크롤을 올리던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네 엄마가 해주는 밥이 좋은걸.”“가끔 한 끼 정도는 이해해요. 우리 집에 셰프가 부족한 것 도 아니고 매일 하는 건 얼마나 힘들겠어요.”“매일 시킨 적도 없잖아.”“어쨌든 생각해 보라고요.”점심에 그렇게 평생 밥을 못 먹어본 사람처럼 주접스럽게 먹더니. 그마저 그 모습에 놀란 참이었다.다 머고 나니 접시들은 조금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은 건지 깨끗했다.저한테도 남겨주지 않았다.이기적인 아빠 같으니라고.성연신이 어쩔수 없다는 듯 말했다.“나도 그건 싫지만 네 엄마가 하는 밥이라면 항상 평소보다 더 먹고 싶어져.”3일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그는 배고픈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지안이 음식을 차려 대령하면 마치 굶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흡입하게 되었다.전아내 앞에서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우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버지 말씀도 틀린 것이 없었다.엄마가 만든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맛있다.“그럼 이렇게 해요. 가끔 몇 끼 하는 건 괜찮은데 엄마가 요리할 때 아빠가 옆에서 좀 도와줘요.”우주는 마치 애어른인 양 진지하게 훈계했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요리는 요리사가 해야 할 일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요리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지만,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아직 다시
“세움 그룹의 반은 원래 제 것이었어요.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는데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담담한 목소리에 원망이 담겨있다.어쨌든 그는 이방인일 뿐이고,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심지안이다. 옳든 그르든 그 마음은 무조건 편향되어 있다.“우선 마음 가라앉히고 이야기 잘 나눠봐요. 회장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굴지 않을 거예요. 그저 교훈을 주고 싶은 것일 뿐 정말 회사에서 쫓아낼 생각은 아닐 거예요.”“정말 쫓아내는 게 아니라면 왜 외부 언론에 알렸겠어요?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일종의... 변칙적인 보호일까요?”늙은 비서가 떠보듯 말했다. 사실 지금은 아무도 성동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안까지 포함해서.“필요 없어요. 지금 날 이렇게 대한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실망했어요.”진심으로 진심을 바꿀 수 없다면, 그럼 차라리 됐다.자기만을 위해 살 것이다.가족에 대한 사랑은 2순위에 두고.이기적으로 살면 많이 생각할 필요도 고통 받을 필요도 없다.고청민이 야윈 손목에서 팔찌를 빼내 갖고 놀았다. 눈빛은 사람 한 명이라도 죽일 것처럼 매서웠다.늙은 비서는 불시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얼른 물러났다.그녀는 일개 직원일 뿐이다. 성씨 가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그녀와는 상관도 없었고 그녀가 상관할 바도 아니었다.사실 회장님께 주의를 주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히 그럴 순 없었다... 과도한 개입은 좋은 일이 아니니까.가끔은 모른 척 차갑게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밤늦게까지 일에 몰두하던 심지안이 지점장과 화상회의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바깥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심지안은 의자에 누워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지친 눈을 비비며 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와 메시지를 확인했다.그중 낯선 번호가 심지안의 관심을 끌었고, 그녀는 중얼중얼 따라 읽었다.“엄교진 원장님의 예약 표를 판매 중...”이전에 암표상이 대신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
심지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맹수같이 매섭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이때 진유진이 깨어났다....심지안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회식이 끝나고 마주쳤는데 날 못 가게 막고 이상한 음료까지 마시게 했어. 그 이후론 기억이 없어.”“쯧쯧, 조신한 척은. 우리랑 잘만 놀았잖아?”김슬비가 팔짱을 끼며 악의 가득한 얼굴로 비아냥거렸다.심지안이 진유진을 품에 안고 그들을 차갑게 훑어보았다.“임시연이 시킨 거야?”“그래. 꽤 총명하네.”이제 뒷배가 없어진 김슬비는 무어라 반박하지도 않았다.“드디어 미친 거야?”전에 연회에서 임시연과 한바탕 싸우더니, 갑자기 또다시 붙었다.김슬비가 눈을 부라렸다.“네가 뭘 알아?”임시연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이미 패가망신한 데다 수많은 브랜드가 이미 계약을 해지해 버렸고 배상금은 영원히 갚을 수도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많은데.임시연이 왕후가 되고 자신을 위해 좋은 말 몇 마디만 하면 여론이 뒤바뀌어 다시 예전의 스타가 될 수 있다.이런 저급한 인플루언서들과 어울리며 망신당하는 것이 아니라.하여 그녀는 술집에서 진유진을 보고 바로 임시연에게 연락했다.“내가 알든 말든 큰 의미 없어. 네가 곧 끝장날 거란 것만 알면 돼.”심지안이 유진을 잘 앉혀놓은 뒤, 테이블에 놓여있던 술병을 들고 김슬비를 향해 다가갔다.김슬비는 조금 두려웠지만, 심지안이 자신을 해칠만한 대담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빳빳이 들며 말했다.“뭐 하려고, 설마 그걸로 날 치려는 건--”“퍽.”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못다 한 말이 끊기면서 술병은 김슬비의 정수리에 부딪혔다.순간 침묵이 흘렀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김슬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부릅떴다.“감히 날 때려?”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사납고 무서운 짓을 할 수가 있지?“내 친구를 건드릴 거였으면 이 정도 후과는 생각했어야지.”심지안의 붉은 입술이 호를 그리며 웃
“없었어요. 안심하세요. 하지만 경미한 폭행을 당했을 수는 있어요.”심지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언론에 풀기 위해 사람을 샀다.진술서를 작성하고 수액을 다 맞으니 이미 새벽 5시였다.심지안과 진유진은 병원 근처 호텔에 아무 방이나 잡아 휴식했다.두 사람 다 너무 피곤했기에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깨어났다.체크아웃 후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래층 식당에서 음식을 가득 주문했다.옆 테이블에는 예쁜 옷을 차려입은 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처음 들어오고부터 자리에 앉기까지 그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아휴, 인플루언서들이 정말 하루아침에 끝장났네.”“진짜, 그 사람들이 학폭 가해자들일 줄이야. 틱톡에서는 그렇게 착한 척 굴더니.”“지난달에는 모교에 기부도 했다며. 이제 보니 다 조회수를 얻으려고 연기 한 거였네.”“그러니까. 댓글 창에 그 많던 팬들도 이제 한 명도 안 보여.”“뭐 어쩌겠어. 경찰까지 대동했다는데 빼박이지 뭐.”심지안은 핸드폰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그만큼 돈을 썼으니 고용한 사람들이 자기 일을 확실히 해냈을 거라 믿었다.진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쉼 없이 스크롤을 오르내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서러운 듯 입을 삐죽였다.“네가 한 거야?”심지안이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어젯밤 그녀는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뻔했다.“당연하지.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야.”심지안이 연근 조각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살벌했다.“배후에 임시연이 있어. 내가 못마땅하니 너한테 화풀이한 거겠지.”“이번에야말로 정말 혼쭐 내줘야겠어.”임시연이 그동안 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심지안은 결코 잊은 것이 아니었다. 자꾸 이러저러한 작은 일들에 얽매여 상대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임시연은 계속 그녀의 한계를 건드렸다. 이제 그녀가 마음껏 날뛰는 좋은 때는 다 갔다.“어떻게 하려고?”진유진이 묻자 심지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임시연한테 다섯 살 짜리 아이가 있어
도윤지는 기쁜 마음에 핸드폰을 들고 응접실을 뱅뱅 돌았다. 머릿속에는 이미 갱단을 불러 심지안을 괴롭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에 고청민 선배는 분명 기뻐할 것이며 자신이 본인 대신 혼내준 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그리고 기쁜 마음에 자신에게 밥을 사줄 것이고 선물도 챙겨줄 것이다...도윤지는 볼이 발그레해져선 인터넷에서 불량배를 고용하고 심지안과의 거래주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여분의 돈을 더 보내며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기까지 했다.오후 네 시.불량배 몇 명이 거래장소에 도착했다. 그들이 두리번거려도 도윤지가 보낸 사진 속 사람은 찾지 못했다.“뭐야, 왜 없어. 오랜만에 손맛 좀 보고 싶었는데.”사진을 본 불량배들은 흥분한 터였다. 이렇게 예쁜 여인이라면 돈 안 줘도 괜찮았는데.“이미 30분이나 기다렸는데, 안 오는 건 아니겠지?”“안 와? 지금 누구 놀려?”“전화로 물어봐. 번호 있잖아.”“어어. 암표상인 척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남성이 마침 전화를 걸려 할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그쪽이 암표상이야? 거래하러 왔는데.”굵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남성은 거래자가 친구를 데려왔겠거니 생각했다. 남자가 더 있어도 괜찮았다. 그에겐 대여섯 명의 형제가 있었고 1남 1녀는 쉽게 수습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남성이 고개를 돌리자 첫눈에 보인 것은 튼튼한 가슴근육이었다.그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2미터의 다부진 몸을 가진 안철수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손바닥을 내밀며 물었다.“물건은?”조여오는 압박감에 남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한참 떠듬떠듬 말했다.“물, 물건은...”“여기 2천만 원. 빨리 좀.”안철수가 2천만 원 현금을 그의 앞에 내놓았다. 한눈 가득 노란색 지폐가 들어오자 왠지 불법 거래하는 기분이 들었다.게다가 안철수의 험상궂은 얼굴은 척 보기에 좋은 사람 같지도 않았다.겁에 질린 남성은 2천만 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말했다.“그... 형님, 죄송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렸어요
성연신이 그녀를 응시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조사해 볼까요?”“아니요. 이대로 둬요.”위험하지만 않으면 됐지. 비밀조직과 임시연이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앙심을 품은 다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더 조사하기 귀찮기도 했다. 어차피 곧 임시연을 찾아 옛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윙-”성연신의 핸드폰이 진동하자 가까이 앉아 있던 심지안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하여 화면을 바라보았다.이진우가 걸어온 전화였다.“말해.”성연신이 긴 다리를 꼬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소민정이 돌아왔어.”이진우의 흥분이 핸드폰을 넘어서 느껴졌다.성연신이 순간 허리를 꼿꼿이 폈다.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리고 닫혔다.“바로 갈게.”안철수는 비밀조직의 사람이 또 소란을 피운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님, 무슨 일입니까?”성연신이 몇초간 침묵을 지키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소민정이 돌아왔대요.”“깨어났답니까?”“네. 미리 말 안 해줬어요.”“잘됐네요!”“깨어나다니 너무 다행이에요.”“빨리 보러 가봅시다!”안철수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끊임없이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에 심지안이 물었다.“소민정이 누구예요?”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는 듯했다. 통화 중의 말투를 들어보니 산만한 성격의 이진우도 꽤 진지해 보였다.성연신이 대답했다.“비밀조직의 의료진이에요.”“그뿐이겠어요? 실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인내심 있고 착한 사람이에요. 전에 몇 번이나 중상을 입었는데 민정 씨가 밤낮으로 절 돌봐주었었어요.”안철수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인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녀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보였다.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럼 ‘깨어났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이에 안철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조금 다급한 듯 말했다.“그건 말하자면 기니까 나중에 민정 씨 만나면 얘기하기로 해요. 전 먼저 만나러 가봐야겠어요.”심지안이 얼떨떨해하며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성연
화났다기보다는 사실상 투정에 가까웠다.밤바람에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예쁜 쇄골라인, 그리고 돋보이는 날씬한 몸매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성연신이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대답했다.“당신밖에 모르는 변태?”“...”말문이 막힌 심지안이 몸을 휙 돌려 장원으로 들어갔다.그녀가 시야에서 벗어나서야 성연신은 차를 돌려 루갈로 향했다.차의 시동이 꺼지자마자 멀리서 덩치 작은 한 청순한 모습의 여인이 신이 나서 달려왔다. 그 뒤에선 안철수가 뒤따르며 쉼 없이 외쳤다.“천천히, 천천히요! 아직 격렬한 운동 하면 안 돼요!”소민정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헐떡이며 성연신의 차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곤 봄날의 햇살처럼 환히 웃어 보였다.“오빠? 오랜만이에요!”성연신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피어올랐다.“언제 깨어난 거야?”“지난 주요!”소민정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세더니 투정 부렸다.“원래는 일어나자마자 찾아가고 싶었는데, 주치의가 허락해 주지 않아서 며칠 동안 얼마나 지루했던지.”“그래도 건강이 우선이지. 의사 말 잘 듣고. 너도 의료진이니까 잘 알 거 아니야.”막 루갈을 창건했을 때 그들은 비밀조직과 여러 번 전투가 있었다. 한번 상황이 위태로웠을 때 소민정이 성연신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막아주었다.하필 심장이 다치는 바람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 갔었다. 의사는 평생 혼수상태일 거라 했지만, 기적적으로 몇 년 전 깨어난 것이다.“그래도 빨리 보고 싶은걸요.”소민정이 애교 부리며 입을 삐죽였다.“나 건강하게 잘 살아있잖아. 언제든 볼 수 있는 걸.”소민정은 마치호기심 어린 애처럼 그에게 다가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오빠, 결혼하셨다면서요. 아이도 있다고요?”심지안 얘기만 나오면 성연신의 얼음 같은 눈동자도 부드러워지고 행복한 듯 얼굴이 환해졌다.“응.”성연신의 반응에 소민정의 얼굴에 석연치 않은 감정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언제요? 형수님은 분명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
그 말에 성연신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이 돈 가지고 남은 생 행복하게 보내. 네가 레오를 위해 한 희생이 너무 많아. 이제 편히 쉬면서 즐겨.”소민정이 루갈에서의 지위는 원로급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의 공로는 최고의 존경을 받을 만했다.그리고 루갈의 현재 의료 수준은 거의 완벽했기에 소민정이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없었다.“싫어요. 전 계속 루갈에 남아 있을 거예요. 절 미워하지 마요. 제발...”소민정이 눈물을 쏟아내며 측은하게 성연신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용모는 임시연이나 심지안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집안의 예쁜 딸처럼 친밀감을 주었다.성연신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손을 뗐다.“미워하는 게 아니야.”“그럼 왜 쫓아내려고 하는 건데요?”“조기 퇴직이라 생각해. 이제 미용도 하고 영화도 보고,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도 이뤄야지. 어떻게 되든 여기에 있는 것보단 나을 거야.”루갈의 99%는 모두 남자였다. 여자인 그녀가 혼자 남자 소굴에 있는 것도 부적절한 일이었다.“아니요. 가고 싶지 않아요.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소민정은 빨개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울먹였다.“남아서 청소하라고 해도 괜찮아요.”“저 고아예요. 가족도 친구도 없다고요. 오빠만이 유일한 가족이었는데.”“루갈을 떠나면 소속감도 없이 제가 어떻게 살아요. 돈이 많아도 마음이 공허할 텐데.”성연신은 눈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안철수와 그녀의 처지가 똑같다는 것을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 보육원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잠시 생각하고는 카드를 소민정의 손에 쥐여주었다.“너 스스로 결정해. 미리 말해두지만 남는다 해도 루갈의 모든 외출 임무에는 참가할 수 없어.”“좋아요. 약속할게요. 오빠.”소민정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녀는 눈물을 쓱쓱 닦고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성연신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간단히 몇 마디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몇 걸음 걸어 나왔을 때, 심지안의 메시지가 왔다.[민수 씨 당신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