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이 마주치자 성연신은 그제야 병원에 며칠 입원한 심지안이 전보다 조금 마른 것을 발견했다.“아 참, 오늘 장학수 변호사가 저에게 수임료를 안 받고 사건을 맡아준다고 했는데 혹시 연신 씨가 저 대신 돈을 지불할 거예요?”“네.”마음이 착잡한 심지안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금액이 너무 커서 못 돌려줘요. 장학수 변호사한테 괜찮으니까 제 사건은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말 좀 해줘요. 수임료가 낮은 변호사 찾아볼게요.”“안 갚아도 돼요.”“안 돼요. 연신 씨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연신 씨 돈을 너무 많이 썼어요. 160억은 제가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거예요.”심지안이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녀는 숙모가 되고 싶은 거지 돈을 버는 기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지안 씨가 3년 안에 부용 그룹 디렉터가 되고 5년 안에 전 구역 관리자가 되면 160억이 조금 힘들긴 해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고개를 들어 심지안을 빤히 쳐다보던 성연신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하자 심지안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그 정도로 저한테 자신 있어요?”“전 평범한 직원들에게 더욱 많은 격려를 줘요. 그것도 힘들면 이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해요. 돈을 다 갚을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도 가능해요.”적어도 심지안이 해준 요리는 삼키지 못할 만큼 맛이 없진 않았다.이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심지안이 폭탄 발언을 했다.“전 가사도우미 말고 연신 씨 와이프 할래요.”반찬을 집던 성연신의 손이 멈칫했고 고개를 돌려 심지안을 쳐다보았으며 너무 노골적인 시선에 심지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왜… 왜요?”“꿈꾸는 걸 좋아하나 봐요.”심지안은 괜한 기대를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저녁을 먹은 뒤, 베란다에서 옷을 널고 있던 심지안에게 진유진이 전화를 했고 다급한 목소리로 심지안에게 대학교 동창 단톡방의 문자를 확인하라고 했다.어리둥절한 심지안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평소에 대화가 없는
밝은 불빛 아래, 성연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지안 씨에게 저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흠칫하던 심지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화가 난 성연신이 핸드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려고 하자 심지안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하지 마요. 신고를 하면 연신 씨 이모부가 알게 될 거예요.”멈칫하던 성연신은 그제야 심지안이 말한 이모부가 오지석이라는 걸 깨달았다.“알면 뭐 어때요? 지안 씨는 피해자예요. 못 본 척하고 계속 이렇게 숨을 거예요?”“그게 아니라 연신 씨가 걱정돼서 그래요. 만에 하나 오지석 그 사람이 소문이라도 내면 성 씨 가문 사람들이 연신 씨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어찌 됐든 심지안은 명의상에서 성연신의 와이프였기에 그녀는 자신의 일 때문에 성연신까지 피해를 보게 할 수는 없었다.“본인 문제부터 잘 해결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 써요.”“네?”깜짝 놀란 심지안은 평소에 냉정해 보이는 성연신이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15분 뒤, 저번에 주관민 사건을 맡았던 경찰들이 찾아왔고 이를 보자 전전긍긍하던 심지안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그때 당신 주관민은 증거 불충분으로 경찰서에 며칠 동안 잡혀 있다가 바로 풀려났고 사건은 아직도 조사 중이었기에 경찰들은 심지안을 기억하고 있었다.상황을 파악한 경찰들은 전문 기술자를 불러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동영상 캡처 사진을 지워버렸지만 최초 유출자가 암호 설정을 철저하게 설치했기에 IP를 추적하려면 시간이 몇 시간 걸렸다.경찰들은 늦어도 내일 결과가 나올 거라고 하면서 심지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고 그들이 무조건 유출자를 잡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성연신을 곁으로 따로 불러서 신신당부했다.“저번에 현장을 둘러본 결과, 와이프분도 피해자라는 걸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남편으로서 마음이 불편하신 건 저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와
심연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누가 그래? 심지안이 그래?”“맞는지 아닌지 대답부터 해. 내가 지금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강우석이 다정한 말투로 말하자 심연아가 눈시울을 붉히며 대꾸했다.“우리 미래를 위했다면 넌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야.”“왜 그래?”강우석은 심연아의 눈물을 보자 다급하게 휴지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심지안이 너에게 내가 자기 엄마가 남겨준 혼수를 빼앗았다고 얘기한 거야?”“응, 그 혼수만 돌려주면 심지안은…”잠시 머뭇거리던 강우석이 말을 꺼내자 심연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으며 대꾸했다.“넌 심지안 말을 믿으면서도 내 말은 안 믿는구나. 네 눈엔 내가 그렇게 욕심이 많은 여자야? 남의 유산까지 탐내는 그런 사람이야?”“아니야, 오해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그만해. 난 우리가 약혼까지 했고 혼인을 앞둔 사이라서 당연히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넌 나 몰래 심지안에게 찾아간 거야. 내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거야.”강우석은 심연아의 말에 당황했다.“울지 마.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어제 심지안에게 찾아간 건,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하려고 그랬던 거야.”“경고? 경고하러 간 거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나에게 따지는 건 뭔데?”심연아가 처량하게 웃으며 눈물을 줄줄 흘렸고 설명할수록 오해가 쌓이자 강우석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머리를 잡아당겼다.“너도 서로를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날 이렇게 못 믿고 있잖아. 어제 약혼식 때문에 나도 지금 너무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는데 좀 나를 이해해 주면 안 돼?”강우석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우당탕 소리와 함께 뭔가 바닥에 떨어진 듯했으며 심전웅이 바닥에 널브러진 조각들을 발로 차며 언짢은 표정으로 강우석을 째려보았다.“약혼식은 두 집안의 일이야. 짜증 나고 기분 나쁜 건 너뿐만이 아니야. 아침부터 싸우러 온 거면 우린 더 듣고 싶지 않아. 연아야, 당장 집에서 내보내.”심연아도 실망한 표
”그쪽은 저를 누나라고 불러야 돼요.”심지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못 본 사이에 주원재의 기름진 머리는 레게 머리로 바뀌어서 전보다 더 불량소년 같았으며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넘 앳된 얼굴이었기에 나이는 스무 살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안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심지안은 순간 심연아가 어린아이를 꼬신 건지 아니면 주원재가 취향이 독특한지 알 수가 없었다.“누나라고 부르면 연락처 주실 거예요?”“여기저기 남동생을 두는 습관이 없습니다. 얼른 나가세요. 저희 일해야 해요.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 혼나요.”말을 끝낸 심지안은 고개를 숙여 계속 문서 정리에 집중했고 아이를 달래듯 주원재를 보내려 했으며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시를 당한 경험이 없는 주원재는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난 성인이라 아버지가 관여하지 못해요. 얼른 연락처나 줘요. 내가 또 기분이 좋아지면 그쪽에게 차도 한 대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심지안은 어이가 없어서 이마를 꾹꾹 눌렀으며 연락처를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연하를 남자로 본 적도 없었지만 더군다나 심연아와 놀아나는 사람은 멀쩡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심지안은 못 들은 척하며 일에 집중했고 늘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주원재는 화가 슬슬 치밀어 올랐지만 조용히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심지안의 완벽한 이목구비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옆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화가 풀렸으며 심지안의 관심을 받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바로 이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주원재를 불렀다.“도련님, 대표님 오셨어요. 얼른 나오세요.”그 말을 들은 주원재는 화들짝 놀라더니 고양이를 본 쥐 마냥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그 모습에 부용 그룹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심지안도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만 타인의 회사에서 실례인 거 같아서 부용 직원들에게 조용하라고 손짓을 했다.이내, 부용 그룹과의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대리가 걸어 들어왔고 심지안 등 사람들과 한데 모여 앉아 프로젝트 방안에 대해 의논하
이 순간, 장학수는 너무도 경악스러웠다. 그가 알고 있는 성연신은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특히 영웅놀이에 대해서는 늘 콧방귀를 뀌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여자분을 위해 나선 것도 모자라서 본인이 돈이 많고 젊은 데다가 잘생긴 것까지 인정한 셈이었다.‘영웅놀이를 위해 부끄러운 것도 잊은 건가? 아니지! 저 여자가 설마 심지안인가?’장학수는 성연신과 심지안을 번갈아 보다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심지안과 주원재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잘빠진 몸매에 이목구비까지 훤칠했으며 싸늘하고 도도한 눈빛에는 큰 감정의 변화도 없이 주원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몸을 흠칫 떨던 주원재는 건들거리던 태도를 거둔 채 아버지를 만났을 때보다 더 깍듯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연… 연신 도련님,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주원재의 말에 심지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저 사람 알아요?”주원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흥신 그룹 대표 주혁재가 건물에서 걸어 나와 주원재를 확 밀치더니 환한 미소로 성연신을 반겼고 성연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한 뒤, 시선은 여전히 주원재에게 꽂혀 있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그의 여자에게 작업을 걸다니.“장 변호사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장학수를 발견한 주혁재가 반가운 듯 물었고 장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오늘 시간이 좀 남아서 사건에 대해 의논하러 왔습니다.”“아, 그럼 제가 도움이 되진 못하겠네요. 회사 법무팀 직원을 불러드릴게요.”주혁재는 그제야 요즘 회사에 골치 아픈 일이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그는 변호사 여러 명을 찾아봤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해서 큰돈을 들여 장학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주혁재의 말에 그의 곁에 있던 여비서가 장학수를 데리고 들어갔고 주혁재는 곁에 있던 성연신을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성 대표님, 저희도 들어가시죠?”성연신은 느긋하게 주원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고 이를 발견한 주혁재가 주원재를
심지안이 두 눈을 깜빡이며 궁금증이 가득 담겨있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했다.“나한테 음식을 준비하라고 한 건 내가 그 사람 집 도우미이기 때문이에요.”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지만 부부 사이 애정은 없고 해야 할 가사노동만 남아있으니 도우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서인수는 어안이 벙벙했다.“도우미라고요?”“네. 왜요? 안 믿겨요?”부자들은 도우미를 뽑을 때 그 조건이 꽤 높다는 걸 서인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지안은 그 기준을 훌쩍 넘겨버릴 정도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그녀는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흥신 그룹 회장으로 하여금 직접 마중 나오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범상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훤칠한 키, 준수한 얼굴, 모두를 압도하는 분위기, 그리고 훌륭한 인품까지 갖춘 인물이다.아쉽지만... 저 선남선녀 커플은 이대로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왜 주원재 씨한테 번호를 주지 않은 거예요? 그분과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퇴근 후 도우미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이재성은 팀 내 나이가 가장 많은 직원이었는데 회사에 들어온 지 5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부팀장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연히 팀장으로 승진할 거라 생각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심지안에게 밀려 물러나게 된 것이다.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투덜거리며 꼬투리를 잡기가 일쑤였다.심지안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난 주원재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주원재 씨의 아버지는 흥신 그룹 회장님이에요. 그 집안에 시집만 간다면 한평생 일할 필요도 없이 편히 호의호식할 수 있잖아요. 이거야말로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요?”서인수가 약간 못마땅한 듯 말했다.“모든 여자들이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건 아니에요.”“쳇. 명문가에 시집갈 게 아니라면 부용 그룹엔 왜 다니는 거예요.”대기업엔 조건 좋은 남성 자원이 풍부하니 출근을 한다는 핑계로 입사해 남편감을 찾는 선례가 적지 않음을 누구든 알고 있다.“그래서 이재성
심지안이 반신반의하며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잠시만요. 전 아직 부르지 않았는데요.”“그러니까요. 제가 마침 잘 온 거죠.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게요.”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이 놀라움에 살짝 벌어졌다.“절 바래다주려고 일부러 오신 거예요?”“네.”심지안의 얼굴에서 점점 짙어져 가는 의심을 감지한 진현수가 잠시 멈칫하고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이 부근에서 진찬우와 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진찬우가 인스타를 보던 중 지안 씨도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발견했고요.”“그랬군요...”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밤이 깊어진지라 차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아 가는 길에 모셔다드리려고 왔어요.”“저까지 데려다주면 열두 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도착할 거예요.”“괜찮아요.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늦게 잠들거든요.”이렇게까지 말하니 심지안도 더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중정원.성연신이 원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원이는 별장을 나서자마자 땅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며 귀여운 반항을 하고 있었다.오늘 밤 이미 다섯 바퀴를 돌았다. 더 이상 산책하다간 녹초가 되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성연신은 그런 원이의 상태를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더더욱 다그쳤다.“매일 그렇게 많이 먹더니 3킬로나 쪘잖아. 운동해서 살 빼야지.”오늘은 심지안이 원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미 밤이 깊어졌는데도 심지안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무슨 회식을 다섯 시간이 넘게 한단 말인가?보광 그룹 이사 회의도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 않는다.부용 그룹은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데에만 능하다.원이는 헐떡거리기만 할 뿐 고단함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원통했다.‘너희 두 발 달린 짐승들의 다툼에 왜 날 끌어들이는 거야!’성연신이 원이와 함께 열 바퀴를 돌았을 때, 드디어 한 줄기의 자동차 불빛이 비쳐왔다.차가 문 앞에 멈춰 선 뒤 심지안이 안에서 내렸다.성연신의 차가운 얼굴에 부드러움이 피
성연신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한테 데리러 오라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해요?”“내가 말한다고 데리러 올 거예요?”성연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아니’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심지안이 택시를 잡지 못해 다른 남자의 차에 앉아 돌아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데리러 나갔을 것이다.이 어리석은 여자가 누구한테 팔려 갈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그가 침묵하는 모습에서 답을 찾은 심지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성연신은 이마를 찌푸리고 원이를 묶은 줄을 그녀에게 쥐여주었다.“뭐 하는 거예요?”“오늘 아직 원이를 산책시키지 않았어요.”“아직까지도 안 했다고요?”“그러게 왜 일찍 돌아오지 않았어요.”심지안은 깊게 심호흡하며 그와 싸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짓누르고는 줄을 잡고 산책로로 향했다.원이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힘없이 짖어댔다.멍멍멍. 싫어요. 이미 열 바퀴나 돌았단 말이에요!...심지안은 평소 산책하던 곳에 원이를 데리고 왔지만 원이는 푹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많이 지친 듯 힘겹게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원이야, 너 어디 아파?”“멍멍멍!”그게 아니라 단순히 힘든 거라고요.원이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심지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100미터 이내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원이를 묶고 있는 줄을 놓아주었다.“너 혼자 마음껏 놀아. 그러고 나서 집에 가자.”원이는 전혀 예전처럼 신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심지안의 발 옆에서 몸을 뒤집으며 애교만 부릴 뿐이었다.평소 같지 않은 원이의 모습에 심지안은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그녀가 허리를 굽히고 앉아 원이의 상태를 살펴보려 할 때, 돌연 풀숲에서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원이를 덮치러 달려왔다.심지안은 화들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처음엔 전에 보았던 그 골든 리트리버인 줄로 알았으나 원이가 으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