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두 분에게 밥을 한 번 사드리고 싶었어요.”민채린은 식당의 환경을 보더니 말했다.“이렇게 작은 식당을 고를 줄은 몰랐어요. 진짜 저를 위해 돈을 아껴주네요.”심지안은 반신반의했다.“진짜요?”민채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네.”성연신이 수저를 꺼내 심지안 앞에 놓았다.“철수 씨를 찾으세요?”민채린은 눈에 어색한 뭔가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그 사람을 왜 찾아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네, 그렇고 그런 사이일 뿐이니 잘 모르죠.”심지안도 은연중 그녀와 안철수의 얼키고설킨 관계를 들은 바가 있어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둘이 잘 몰라요.”“오해하지 마세요.”민채린은 육회를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저는 오늘 저녁 비행기로 떠나요. 지난번에 구해준 은혜가 있으니 감사 인사로 점심을 사는 거예요.”그녀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지안 씨도 알다시피 제가 이유 없이 납치된 것이 두 분 때문이잖아요. 까놓고 말하면, 저는 그냥 지나가다 얻어맞은 행인과 같은 거죠.”좋게 말하면 송별 인사이고, 나쁘게 말하면 죄를 물으러 온 것이다.그녀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다.심지안은 웃음을 거두고 그녀에게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다.“무슨 그런 말씀을. 그때 우리도 채린 씨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또 별탈 없이 무사히 돌아왔잖아요.”“별탈 없이 무사한 건 제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에요.”“말해봐요. 뭘 원하는지?”성연신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진작에 예상한 듯 담담하게 물었다.민채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필요할 때 고청민을 지켜주세요.”성연신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필요할 때가 어떤 때죠?”또다시 음모를 꾸미다 들통났을 때? 아니면 성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때?그러니까 나쁜 짓을 해도 가만두란 말인가?민채린은 그의 날카로운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심지안이 의아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성형한 게 확실해요?”“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아주 자연스럽지만 저는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게다가 의사가 능력자였는지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됐다.심지안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성연신이 쌀쌀하게 말했다.“남의 뒷담화하지 마세요.”순간 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민채린도 어리둥절해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성 대표님은 좀 오지랖이 넓은 것 같네요.”“내 직원이에요.”그 여자의 명성을 지켜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들렸다.심지안은 이 말을 듣고 더 불쾌해졌다. ‘내 직원’이라는 말이 ‘내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 그녀는 즉시 받아쳤다.“왜요? 우리가 틀린 말을 했어요? 성형했으면 했지, 그렇다고 말도 못 해요?”뒷담화하는 건 물론 나쁘지만 평생 가십 몇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사람들에게 퍼뜨리고 다니거나 나쁜 시선으로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성연신은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채 어이없는 말투로 말했다.“제가 당신을 건드렸나요? 우리가 부부인데 왜 제 편을 들지 않고 다른 사람의 편에 서요?”그는 자신이 민채린에게 선을 지키라고 한 것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민채린이 으쓱거렸다.“애인 앞에서도 원칙이 먼저군요.”심지안이 짜증을 냈다.“가스라이팅하지 마세요.”그러자 성연신은 입을 다물었다.민채린은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근데 성 대표님은 직원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닌데, 왜 저 여직원에 대해 이렇게 신경을 쓰죠? 힘들게 얻은 여자가 질투할까 봐 두렵지 않아요?”성연신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괜한 걱정이에요. 지안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쳇, 알랑방귀를 잘 뀌네요.”성연신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심지안을 데리고 가려 했다.심지안은 그가 내민 손을 홱 뿌리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길가의 택시에 탔다.“피곤해요. 돌아가 쉴래요.”성연신은 택시가 점차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어리둥절
직원들은 등 뒤로 갑자기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고개를 돌려 심지안을 보자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사... 사모님!”심지안은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고, 직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남았다.“우리 큰일 난 거 아니에요?”“큰일 정도가 아니지,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네요.”“난 정말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이 주둥이가 문제네요. 연다빈이 예쁘긴 하지만, 사모님보다는 당연히 못 하죠...”연다빈의 얼굴은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이 있어서 예쁘긴 하지만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반면에 심지안은 단순히 예쁜 얼굴로, 어떤 메이크업이든 소화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밝고 우아하고, 귀엽기까지 한 완벽에 가까운 얼굴이었다.“하...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사모님 귀에 들렸으니 우리는 끝장이겠네요. 그냥 빨리 짐 싸서 퇴사 준비나 합시다.”사무실.성연신은 심지안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 찬 눈빛으로 마우스를 내려놓고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심지안은 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책상에서 태블릿을 집어 들고 돌아서려 했다.성연신은 그녀의 하얗고 가는 손목을 잡으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토라졌어요? 무슨 일 있어요?”“알고 싶어요?”“말해봐요.”성연신은 심지안이 항상 독립적인 것을 알기에,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심지안이 그렇게 힘들게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녀가 자신을 의지하길 바랐다.심지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별일 아니에요. 단지 당신이 다른 여자를 도와주는 모습을 봤을 뿐이에요. 이렇게 급히 돌아온 게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인 줄 알았거든요. 제가 착각했어요.”성연신은 심지안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설명했다.“정말 우연히 보고 도와준 것뿐이에요.”“오... 도와준 거라고요?”심지안은 비꼬는
이를 본 성연신은 곧바로 심지안을 쫓아갔다. 심지안을 따라잡았을 때는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려,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성원 그룹 아래에서 몇몇 체대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그중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남학생이 심지안이 뛰어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저기 예쁜 여자가 나오네.”“와, 정말 예쁘다.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콜라병 같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이야.”“얼른 연락처를 물어보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성공한 직장인 누나를 좋아하잖아. 저 누나가 들고 있는 가방을 보니 최고급 명품인데? 적어도 임원급은 돼 보이잖아!”심지안을 유심히 지켜보던 학생의 이름은 한태석이었다. 그녀의 옷차림을 살펴보니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저런 여자와 친해질 수만 있다면, 학교에서의 용돈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한태석은 아이스크림을 마지막 한 입 베어 물고 일어나 심지안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정교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였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손을 높이 들어 올려 마치 농구 슛을 하는 동작을 취했다.“안녕하세요, 누나.”심지안은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 섞인 눈빛으로 한태석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죠?”“누나, 혼자예요?”“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한태석은 피식 웃었다. 장 여성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랑에 목말라 있다고 들었다. 이어서 한태석은 모든 걸 이해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알겠어요. 일부러 사나운 척하는 건 누나의 방어기제일 뿐이죠."심지안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우리의 만남도 인연이 아닐까요? 연락처 좀 남겨줘요. 힘들고 심심할 때 제가 도와줄게요. 가장 충성스러운 팬이 되어줄게요.”심지안은 불편한 기색으로 생각했다.‘여기서 여자를 상대로 낚시질하고 있었던 거였어?'거절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성원 그룹에서 걸어 나오는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심지안은 이 피도 안 마른 남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연다빈 씨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성연신의 미간이 펴졌다.“그럼 지안 씨...”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심지안이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리고 내가 누구 카톡을 추가하든, 성 대표님과는 상관없잖아요.”심지안의 말이 끝나자, 성연신의 얼굴이 마침내 어두워졌다....정욱은 완성된 일정표를 들고 성연신을 찾아갔다.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사무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정욱은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 위에 일정표를 두고 성연신이 돌아온 뒤 피드백을 받으려고 했다.문을 열자마자, 정욱은 차가운 눈빛에 얼어붙은 듯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정욱은 몸을 떨며 공손한 미소를 지었다.“성 대표님, 계셨군요...”‘그런데 왜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으셨죠? 진짜 무섭게...’성연신은 그 말을 무시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로비 입구의 CCTV를 확인해 봐.”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정욱은 묻지도 못하고 일정표를 내려놓고 서둘러 일을 처리하러 갔다.지하 1층의 CCTV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성연신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게 되었다. 어떤 녀석이 사모님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었다.‘간이 부었군,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정욱은 일을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욱은 성연신 곁에서 오래 일했기에 그의 성격을 잘 알았다.CCTV 영상을 복사하는 동안 한태석의 신상 정보를 조사했다. 신장 183cm, 체중 78kg, 제경체대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부모는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으며, 본인은 연상 여성과의 연애를 10번이나 했고, 모두 상대의 돈을 다 써버린 후에 헤어졌다는 특이한 이력이 남아있었다.‘이것만 봐도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네. 사모님도 진심으로 연락하고 지내려는 건 아닐 거야. 순전히 성 대표님을 화나게 하려고 했던 거겠지.’성연신은 CCTV 영상을 확인하고 한태석이 먼저 심지안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한태석은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반항하려고 했지만, 정욱의 기세와 그가 입은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겁을 먹고 있었다.몇 차례 더 참았지만, 목뒤 쪽이 화끈거릴 정도로 아팠다. 옆에 있던 친구가 보다 못해 용기를 내어 정욱에게 물었다.“형님, 잠깐만요.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는 거예요?”정욱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 성연신의 지시만 생각하며 친구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그 친구도 한 대 얻어맞고 얼굴을 감싸며 말을 아꼈다.‘이 사람 미친 거 아냐?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왜 때려...'‘미친놈이야...'다른 친구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다른 남학생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정욱에게 말했다.“형, 천천히 일 보고 가세요. 저희는 수업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한태석은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자, 두려움에 빠져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모든 게 제 잘못이니 대인배답게 한 번만 봐주세요.”정욱이 물었다.“그래, 네가 뭐가 잘못됐는지 알기나 해?”한태석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형님, 제가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해서요. 가난을 싫어하고 돈 많은 여자들만 좋아하고 등쳐먹고 살았어요. 다 제 잘못입니다!”정욱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자신을 잘 알고 있네. 그럼 오늘 새로 추가한 여자 카톡 연락처를 삭제해.”한태석은 마침내 깨달은 듯 휴대폰을 꺼내며, 정욱에게 아부했다.“형님 여자친구분이세요? 정말 잘 어울리세요! 천생연분이에요...”“천생연분은 무슨! 그분은 우리 대표님 사모님이야!”정욱은 황급히 관계를 부인하며,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혼날까 봐 두려워했다.한태석은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사모님이라니... 얼마나 돈이 많을까... 대표님이라면 나이가 적지 않을 텐데. 대표님이 죽으면 재산은 다 그 여자의 것이잖아. 그 여자랑 잘 되면 돈은 내 것이겠지...'하지만 생각만 할 뿐, 실제로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돈
안철수는 검은 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옷을 갈아입어 깔끔해 보였지만, 충혈된 그의 눈은 숨길 수 없었다.사실 소민정을 위해 안철수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채린 씨... 제경을 떠나는 거예요?”민채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오래전에 떠났어야 했지.”안철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으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심지안은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몇 번 헛기침하며 말했다.“난 먼저 갈게요. 철수 씨가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드려요.”안철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지안은 그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어떤 대화를 나눌지는 그들 스스로 해결할 문제였다.감정의 문제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잘 알기 마련이었다. 심지안은 소민정이 안철수의 첫사랑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첫사랑도 변할 수 있고 충분히 사라질 수 있었다.시간은 흐르고, 절대 멈추지 않으며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다음 날, 세움 주얼리.오랜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가 은퇴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출시된 신제품은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했다.황현준은 심지안과는 다르게 나이가 어리지만, 업계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게이 디자이너로 유명했다. 그의 독특한 안목과 취향 덕분에 그의 작품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아침 회의를 마치고, 황현준은 새 제품을 들고 심지안을 찾아왔다.그는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며 사무실에서 호들갑을 떨었다.“대표님, 이번 신제품 대박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심지안은 그의 손에 들린 나비 모양의 펜던트 목걸이를 바라보았다.“예쁘긴 하네요. 하지만 우리 제품은 가격이 비싸서 받아들일 수 있는 소비자가 제한되어 있어요. 그리고 많은 짝퉁 제품이 나올 테니 품질 관리에 신경 써야 해요.”“곧 품질 관리 부서에 이야기할게요.”황현준은 눈을 굴리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다가와 속삭였다.“고 대표님은 정
성연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마음에 들지 않아요?”‘여자들은 다들 이런 성대한 이벤트를 좋아하지 않나?’성연신은 이런 이벤트를 하기를 꺼렸지만, 심지안이 기뻐한다면 기꺼이 하려 했다. 심지안은 대답 대신 팡팡 튀는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쁘네요.”“앞으로는 함부로 다른 사람 연락처 같은 거 추가하지 말아요. 생각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해요.”심지안은 그의 진지한 어조를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연신 씨, 질투하는 거예요?”성연신은 얇은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참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질투 나요.”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학생들은 심지안에게 눈길을 줄 자격조차 없었다. 심지안은 눈빛이 반짝이며, 작은 손을 허리에 올리고 말했다.“일부러 그렇게 한 거예요.”성연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런 기분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았으니, 앞으로 회사 직원들과 거리를 두도록 해요.”성연신은 바로 수락했다.“알겠어요. 그럼 지안 씨도 낯선 남자랑 카톡 추가하지 마요.”“그건 연신 씨의 태도에 달렸죠.”성연신은 그녀의 오뚝한 콧날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내 태도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객관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좋아요. 오늘 밤엔 만족시키도록 노력할게.”성연신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심지안의 긴 머리를 넘기며 평소처럼 태연하게 말했다.심지안은 약간 발그레해진 얼굴을 만지며 그를 무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진지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성연신은 심지안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성연신은 휴대전화로 간단한 디저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심지안이 잠깐 쉬는 동안 직접 과일을 집어 입에 넣어주었다.심지안은 매우 만족하며 한 조각씩 과일을 먹었다. 과일의 상큼함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심지안은 아직도 처리할 서류가 남아있었다. 성연신은 떠나지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