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안에는 서왕의 따뜻한 배려와 달리 오직 책임만 묻는 황제가 있었다.“이 자갈들을 봤느냐? 귀비는 바로 이 자갈들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마구 시합은 황후가 주최한 건데 잔디밭에 어떻게 이런 남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났느냐?”이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모습을 보이며 봉구안은 공수하며 사죄했다.“폐하, 신첩의 불찰입니다.”소욱의 표정은 더 냉랭해졌다.“불찰이든 의도적이든 황후는 이 일과 연관이 없기를 바란다.”봉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마구 시합을 신첩이 주관했기 때문에 신첩은 이 시합에 아무런 차질이 없기를 누구보다 더 바랐습니다. 귀비와 가빈이 상처를 입으면 신첩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확실히 그렇다. 귀비와 오랜 원한이 있으니 해칠 수 있다고 쳐도 가빈은...하지만 봉구안이 일부러 가빈을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끈 후 실제로 귀비를 해칠 가능성도 있었다.어쨌든 가빈은 구원되었고, 가빈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봉구안의 모습을 소욱은 똑똑히 보았다.소욱은 쌀쌀하게 물었다.“그러고 보니 짐은 황후가 다른 말에 뛰어오를 수 있는 줄도 몰랐다.”의심에 가득 찬 소욱의 말을 들은 봉구안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신첩은 승마에 능합니다. 말 등에서 뛸 수 있는 것은 균형적 감각과 담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사람을 살리겠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소욱은 여전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매서운 눈빛에는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마구 시합에서 사고가 난 것은 황후의 책임이다. 짐이 열흘 시간을 주겠으니 범인을 밝혀내거라.”봉구안은 침착하게 임무를 받았다.“네. 폐하.”...다른 편.아파서 참기 어려웠던 귀비는 불과 반 시진밖에 안 된 사이에 이미 세 번이나 기절했다.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태의는 더는 지체할 수 없어 귀비가 기절한 틈을 타 빠르게 처리했다.하지만 얼마 안 되어 귀비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깨어났고 춘하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땀을 닦아주었다.“
진통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귀비의 마음은 원한으로 가득 찼다.‘봉장미 나쁜 년! 일부러 나에게 문제가 있는 두통약을 줘서 나를...’상처가 아픈 데다 정서적 충격을 받은 귀비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또 기절했다.“마마!”춘하의 고함을 들으며 태의들은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당시 두통에 신통한 약을 그들이 검사하여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귀비마마에게 복용하도록 했다.하지만 오늘 귀비가 상처를 입어 마비산을 사용할 때에야 그들은 귀비의 맥이 중독 증상을 나타난 것을 알았다.그제야 귀비마마가 평소에 사용하는 두통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태의들은 귀비의 상처를 치료한 후 황제께 사죄드리려고 했다.“폐하, 소신들이 제대로 검사하지 못해서 태의원에 있을 면목이 없습니다.”소욱은 눈빛이 차가워졌다.두통약에 주혼산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확실히 태의들의 잘못이다.주혼산이 들어갔을 뿐이기 다행이지 만약 치명적인 독약이라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이때 서왕도 옆에서 설득했다.“폐하, 소신도 주혼산을 들어봤는데 이 약은 원래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연명하는데 쓰는 신약이라고 하옵니다. 또 주혼산은 매우 희귀하고 또 일반 안심약과 비슷해서 아무리 의술이 뛰어난 명의라도 찾아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황후마마가 준 약 자체는 문제가 없었으나 귀비가 약을 너무 많이 써서 주혼산이 체내에 쌓인 채로 배출되지 못했을 뿐입니다.”착한 서왕은 태의들을 위해 한마디 했을 뿐만 아니라 황후를 위해 변명했다.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진 소욱이 물었다.“귀비는 앞으로 이 약을 쓸 수 없느냐?”태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폐하. 지금은 주혼산을 천천히 배출해야 합니다.”이른바 신약이라 해서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누가 감히 자신이 평생 다치지 않고, 마비산과 같은 진통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장하겠는가?이때 노태의가 한 마디 덧붙였다.“다만 귀비마마께서 워낙 심각한 두통을 앓고 계셔서 그 신약만 진정시킬
마구 시합이 끝나자 비빈들은 모두 침소로 돌아갔다.귀비의 상처가 엄중해 호위들은 대나무로 들것을 만들어 그녀를 영소전으로 조심스럽게 옮겼다.통증을 참지 못하고 계속 끙끙거리는 귀비를 보며 녕비는 멀리서 깨고소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더니 오늘은 결국 소원을 성취한 셈이구나.”옆에 있던 시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오늘은 너무 위험했습니다. 마마께서 마구 시합에 참여하지 않아 다행입니다.”녕비는 거만스럽게 고개를 돌렸다.“마구 시합이긴 개뿔, 총애를 다투는 무대일 뿐이야. 어머, 저분은 강빈이 아니냐?”강빈이 다가와 녕비에게 인사를 올렸다.“빈첩 녕비마마께 인사를 올립니다.”녕비는 미간을 찌푸렸다.“강빈의 안색이 어두운 걸 보니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귀비와 가까이 보내시지 않으십니까?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보러 가지 않을 겁니까?”귀비가 낙마한 후 강빈은 문안하러 갔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너무 심해 강빈은 생각하기만 해도 안색이 창백해지며 마음이 두근거렸다.강빈은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대답했다.“녕비마마, 관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첩은 몸이 불편하여 먼저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강빈이 간 후 녕비의 시녀가 비아냥거렸다.“마마, 강빈이 귀비와의 친분을 믿고 기고만장했었지만 이제 귀비는 얼굴을 다쳤고 몸에도 상처를 입어 곧 실세할 거 같으니 우려가 큰가 봅니다.”녕비는 오히려 표정이 냉랭해졌다.“얼굴이 다친 건 약 바르면 나을 게 아니냐. 상처가 심하다는 건 폐하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말이니 귀비가 총애를 잃을 날이 아직 멀었구나.”비록 귀비가 싫었지만 여러 해 동안 성은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대단한 여자는 결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자녕궁.태후는 염주를 돌리며 눈을 감은 채로 경을 읊었다.계 상궁은 안신향을 피웠다.“태후마마, 귀비의 상처는 생살을 꿰맸다고 했습니다.”태후는 여전히 눈을 감았다.“어
쪽지에는 “오늘 밤 일이 있으니 기다리지 말거라”라고 쓰여 있었다.몇 년 동안 궁에서 일한 수로는 한눈에 황제의 필체라는 것을 알아봤다.그런데 황제가 누구에게 이 쪽지를 남겼을까?이튿날 아침.황제가 영소전을 떠나자 수로는 이 일을 귀비께 아뢰었다.귀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설마 전에 폐하가 매일 밤 가신 곳이 장신궁이었느냐? 폐하를 기다리고 있는 자가 누구냐? 남자냐 여자냐? 그들… 그들 매일 밤 무엇을 하였느냐?”춘하가 급히 다가가 귀비를 타일렀다.“마마, 조급해하지 마십시오.”“볼일이 있어서 일 수도 있잖습니까?”“폐하께서 비밀리에 어떤 관원을 조사하고 있어서 매일 밤 누군가의 보고를 들을 수도…”춘하 자신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귀비의 마음이 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귀비는 안색이 창백했다.“본궁… 머리가 너무 아프다. 약을 가져오너라.”귀비 마마의 두통이 발작했다.춘하는 약을 가지러 가려다 문득 어제 태의의 말이 생각났다. 그 약은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이미 다 처리해 버렸다고 했다.‘지금 마마의 두통이 이렇게 심한데 어쩜 좋아?’“당장 태의를 청하거라!”귀비는 두통뿐만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말에서 추락한 후 귀비는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뼈도 부서진 것만 같았다.태의는 바로 왔다. 하지만 귀비께 진통제를 처방하지 않고 그냥 참으며 견디라고 했다.귀비는 아파서 꽃병을 던졌다.“약! 본궁에게 약을 주시오!”“본궁이 이렇게 아픈 걸 보고만 있을 건가?”“윽… 머리 아파…”귀비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어제 봉합한 상처도 당기는 듯 아팠다.춘하는 어쩔 수 없이 황제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직 아침 조회중이라 춘하는 한참 기다려서야 말을 전했다.귀비가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소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참으라 하거라.”참지 않고 진통제를 복용하면 진통제가 귀비 체내의 주혼산과 상호 작용하여 독소를 생성하게 되는데 그게 더 치명적이다.춘하는 황제에게 귀비를 보러 갈 수 없냐고 부탁하
서왕은 공손하고 온화하다. 평소에 친절하여 이번에 승마장 사고를 조사할 때 어마장의 노비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그에게 알려줬다.“소신이 알아본 결과, 원래 승마장을 준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그날 갑자기 큰 병에 걸려 다른 사람으로 바꿨답니다.”“그날 승마장 청소를 책임진 사람이 내시 왕천해였습니다.”“사고 직후 왕천해는 그 돌들이 어디서 났는지 모른다고 우겼고, 한밤중에 뭔가를 나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조사에 혼선을 주려 했습니다.”“그런데 목격자에 의하면 마구 경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 왕천해는 매일 밤늦게야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마구 경기장에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이것만 봐도 왕천해가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서왕은 궁중의 일을 관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단서를 찾자 바로 황제에게 보고했다.소욱은 바로 진한길에게 명령했다.“왕천해를 잡아서 엄하게 심문하거라!”“분부 받자옵겠습니다.”진한길이 어마장에 도착했을 때 왕천해는 이미 호위에게 잡혀있었다.호위는 영화궁의 사람들이었다.진한길은 의아했다.진한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황제의 서재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소욱은 이 사실을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소식이 참 빠르구나.”그러나 서왕은 이 점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어마장 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황후 마마께서 어젯밤 어마장에서 새벽까지 계셨다 합니다. 거의 밤을 새웠다고 합니다.”서왕이 찾을 수 있는 단서, 황후도 당연히 찾을 수 있다.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내세우지 못하면 왕천해는 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영화궁.봉구안은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지금 봉구안의 글씨는 동생 장미와 거의 비슷하다.황후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조건 해낸다는 점을 연상은 무척 탄복했다.연상은 탁자 위의 모래시계를 보았다.“마마, 한 시진이나 심문했는데 왕천해는 여전히 완강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왕천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봉구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왕천해가 이 일을 했다는
호위 두 명이 밖에서 왕천해가 있는 방을 지키고 있었다.밤이 되자 한 궁녀가 음식을 가져왔다.호위는 술이 한 병 더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해했다.궁녀가 설명했다. “황후 마마께서 간수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호위님들께 상을 내렸셨습니다.”호위들은 술을 받았다. “황후 마마께 감사드립니다!”술 몇 모금을 넘긴 호위들은 곧 어지러움을 느꼈다.쿵!쿵!둔탁한 소리가 두 번 나더니 호위들이 땅바닥에 꼿꼿이 쓰러졌다.그러자 방금 음식을 가져온 궁녀가 나타나 방으로 들어갔다.왕천해는 잠이 들었었는데 이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누구냐?”왕천해는 누군가가 칼을 꺼내 든 것을 보았다.궁녀가 막 손을 쓰려고 할 때, 갑자기 횃불로 밖이 밝아졌다.왕천해는 이를 악물었다.“빨리 가거라! 함정이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호위 몇 명이 뛰어들어 와 두 사람을 겹겹이 에워쌌다.상황이 불리해지자 왕천해는 재빨리 궁녀의 손에 있는 칼을 빼앗아 궁녀 가슴에 찔렀다.궁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체 얼마 못 가 숨을 거두었다.왕천해는 소리쳤다.“자객이다! 내가 자객을 죽였다!”봉구안은 이때 밖에 서 있었다.봉구안의 눈에는 살벌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끌어 내거라!”왕천해는 죽어도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광기를 풍겼다.“마마, 무슨 원인으로 소인을 가두려 하는 겁니까?”“황후 마마라고 해서 형을 남용할 수 있는 겁니까?”“내보내 주시오!”봉구안은 칼에 찔린 궁녀를 쳐다보았다.그 궁녀는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아직 조금의 호흡이 있었다.“이 궁녀의 신원과 어느 궁의 궁녀인지 정확히 조사하거라.”“예, 마마!”왕천해는 궁녀의 ‘시체’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갑자기 소리쳤다.“더 이상 심문할 필요 없습니다.”“소인입니다! 다 소인이 한 짓입니다!”‘귀비 마마께서 나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나 보군…’‘내가 하루 더 살면 마마는 하루 더 불안해 있겠군…’왕천해가 갑자기 죄를 인정할지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봉구안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황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공기 중에 응결된 것처럼 어둡고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귀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봉구안은 황제께 잡혀 비틀거렸던 몸을 바로잡았다.‘귀비를 정말 많이 아끼는구나. 귀비에게 오점 하나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구나’“신첩의 추측일 뿐입니다. 믿고 말고 조사하든 말든 폐하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소욱의 얇은 입술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이 여인 항상 겉으로는 공손하지. 진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말 짐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귀비의 병문안, 가보았는가?”“귀비는 황후의 약 때문에 이 심한 고통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황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귀비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느냐?”“귀비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느냐? 남을 해치려다 자신을 해친 멍청이로 보이느냐?”“짐은 황후가 범인 같구나.”봉구안은 동공이 수축했다.하지만 바로 변명하지 않았다.소욱의 눈빛은 봉구안에게 고정시켰다.“조검 사건 후 짐이 경고했거늘… 모든 것을 거기서 마무리하라고… 무고한 귀비 더 이상 해치지 말라고…”“귀비가 낙마한 이유는 결론적이로 황후가 이번 마구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오.”“황후, 짐이 묻겠다. 황후 정말 아무런 계산이 없었는가?”봉구안은 담담하게 황제를 바라보았다.“없습니다.”봉구안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남자의 얼굴은 윤곽은 뚜렷했고 시선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갑자기 밖에서 누가 아뢰었다.“폐하, 귀비 마마께서 아파서 기절하셨습니다.”…영소전.황제는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귀비는 황제의 소매를 가볍게 움켜쥐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폐하… 신첩 너무 아픕니다…”귀비는 왕천해가 죽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그러나 황제는 계속 영화궁에 남아 있었다.봉장미가 또 이간질할까 봐 두려워 황제를 모셔오라고 했다.소욱은 담담한 눈빛으로 귀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왕천해라는 사람을 아느냐?”귀비는 순진한 얼굴로 의아해
사람은 황제 앞으로 끌려왔다.황제는 한눈에 이 사람이 귀비 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물로 깨워라.”촥--찬물 한 바가지를 맞은 수로는 깨어났다.눈을 뜨자 존귀하고 위엄 있는 황제가 눈에 보였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폐하를 뵙겠사옵니다!”수로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만약 황제께서 귀비가 자신을 장신궁에 보내 감시하라고 시킨 걸 알면 큰일 난다.하지만 그가 이미 맞아 쓰러졌다는 것은 황제에게 들켰다는 뜻이다.수로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소욱의 턱 선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얇은 입술은 가볍게 움직였다.“팔 하나를 부러뜨리거라.”“예!”진한길은 잽싸고 잔인하게 처리했다.처량한 비명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부러진 팔이 하나 더 생겼다.영소전.귀비가 취침하려 할 때 춘하가 갑자기 흥분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마마, 폐하가 오셨습니다!”‘폐하가 이렇게 늦게 오신 건 틀림없이 마마가 걱정돼서 일 거다.’귀비는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귀비가 정리하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성가는 이미 내전에 도착했다.춘하는 눈치 있게 물러나갔다. 이 밤을 황제와 마마께 드렸다.귀비는 사랑이 가득 찬 눈빛으로 앞으로 다가갔다.“폐하, 신첩…”“짐이 귀비의 사람을 데려왔소.” 소욱은 눈빛이 차가웠고 말투도 예전 같지 않았다.귀비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신첩의 사람요?”이때 귀비는 외전에 있는 춘하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아!”귀비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도대체 무슨 일이…’소욱이 손을 흔들자 문이 닫혔다.귀비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몇 년간 짐은 귀비만을 총애하고 보호했소.”“그런데 애비 이번엔 너무 지나친 거 아니오?”황제가 자신을 '애비'라고 부르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순간 귀비는 한기가 발바닥에서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수로가 들켰나 보다.’지금 아무런 변명을 해도 황제의 노여움을 살 뿐이다.그래서 귀비는 바로 잘못을 인정했다.“폐하, 신첩이 잘
꽃가마는 곧바로 황궁 역관으로 옮겨졌다. 봉가는 문 앞이 쓸쓸하기만 했다.봉 대인은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모두 임씨에게 쏟아냈다.“분명히 틀림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직접 나가 맞이하겠다고 했더니 네가 막아서지 않았느냐? 나더러 어찌 몸을 낮추냐며 떠들더니... 네 말에 속은 내가 바보였구나!”임씨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봉구안이 그렇게 매몰차게 굴 줄은 몰랐다. 봉가의 문턱조차 넘지 않겠다고 단언하며, 맹가에서 출발해 시집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임씨는 손수건을 꽉 쥐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대인, 이건 제 탓이 아니에요.”“구안이가 대인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겁니다.”“그 애의 마음은 이미 맹가로 기운 듯 합니다. 딸 된 입장에서 어찌 아버지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요?”“아직도 할 말이 남은 것이냐!” 봉 대인은 눈을 부릅떴다.곧이어 그는 시녀에게 명령을 내렸다.“가마를 준비해라. 내가 직접 역관으로 가야겠다!”봉 대인이 떠난 뒤, 임씨는 의자에 주저앉아 울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봉명헌은 아버지가 왜 굳이 봉구안을 봉가에서 출가시키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알다시피, 봉구안은 봉씨 성을 가진 봉가의 딸이었다.“어머니, 얼굴이 아파요.” 봉명헌의 얼굴 한쪽이 부어 있었다.임씨는 화가 나는데다 그의 둔한 모습을 보자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손가락 하나를 뻗어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이 천벌받을 놈아! 왜 더 화를 돋구려는 것이냐!”“남들은 딸만 둘을 낳아도 속이 편하다는데, 하필이면 난 왜 못난 아들을 낳은 것일까?”“진작 알았더라면, 널 낳자마자 그냥 갖다 버렸어야 했다!”“아니, 차라리 네 그 잘난 사내의 것을 잘라 딸로 만들어버렸어야 했어!”임씨는 너무 화가 나서 생각 없이 말을 쏟아냈다.봉명헌은 다리를 오므리며 울상을 지었다.“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의 것을 자르시느니, 차라리 다른 딸을 하나 더 낳으시는 게 낫지 않나요?”
봉구안의 몸속에 있는 습한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출가를 하게 되었지만, 맹 부인도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했다.그녀는 받은 선물을 곧바로 맹 부인에게 보여주었다.“이것은 적염련이 아니니!” 맹 부인은 크게 놀라며 기뻐했다.“구안아, 적염련은 희귀한 명약이란다. 그 자주빛 서광화보다도 귀한 약이지. 동산국의 열염산에서 자라는데, 5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단다. 네 몸속의 습한 기운을 이 적염련으로 약을 지으면 틀림없이 완전히 치유될 것이다.”봉구안은 그 약을 누가 보냈는지 궁금했다.오백이 답했다. “그 호위병에게 물어보았는데, 상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고 다만 소장군님의 옛 친구라고만 했답니다.”봉구안의 눈빛은 차가웠고,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정말로 옛 친구라면, 왜 정체를 숨기는 걸까?맹 부인이 설득했다.“적어도 이 적염련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그 사람이 널 해치려는 마음은 없을 거야.”하지만 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이 물건은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혼례식을 치르기 전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적염련은 그녀에게 있어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다.맹 부인도 수긍하며 적염련을 다시 내려놓았다.“네 말이 맞다. 몰래 보낸 것이니 경계하는 것이 옳다.”오백이 물었다.“그럼 이 물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봉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객잔에 두고, 은이에게 지켜보라 하거라. 만약 누군가 찾으러 오면 붙잡아 신문하라 이르거라.”“알겠습니다!” 오백은 아쉬워하면서도 명을 받들었다.“그런데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으면요?”봉구안은 미련도 없다는 듯 말했다.“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어차피 원래 그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다음 날.묵성의 한 찻집.한 시녀가 아랫방으로 들어와 보고했다.“주인님, 적염련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합니다.”남자는 찻잔을 손가락으로 감싸며 냉정한 눈빛을 드러냈다.“예전보다 더 신중해졌군.”…완부옥은 몇 번이고 봉구안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렸지만, 매번 서왕에게
맹가의 딸이 시집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도 한 나라의 황후가 되니, 누가 봐도 부러운 일이었다.반면 황성의 봉가는 마치 사람이 막 죽은 것처럼 침울하고 우울했다.봉 대인은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맹가의 봉장미가 시집가는 일조차 아버지인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이제는 봉구안마저 맹가에서 출가한다니, 하나같이 자신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오늘 아침 조회가 끝난 뒤, 봉 대인은 대신들에게 조롱을 당했다.“봉 대인, 정말로 통 크십니다. 딸을 맹가에 보내더니, 이제 맹건 장군이 황제의 장인이 되었네요. 이 얼마나 든든합니까!”“봉 대인, 진작 알았더라면 저한테 딸을 주시지. 그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그나저나, 봉 대인, 맹 장군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맹 장군은 그래도 따님의 성을 바꾸지 않았다 들었습니다!”이런 말을 듣고 나니 봉 대인은 속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다.맹건 그 늙은 놈에게 딸을 보낸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봉 대인은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재에 틀어박혔다.임씨가 탕약을 들고 들어와, 억지로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대인, 대체 왜 그러세요? 점심도 거르시다니,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그녀는 일부러 분홍색 옷으로 갈아입고 두꺼운 분을 바른 채, 평소보다 젊어 보이는 모습으로 들어섰다.그러나 봉 대인은 그녀를 보자마자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부릅떴다.“나이 들어서 젊은 척은 무슨!”“썩 꺼지지 못해?”임씨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대인…”봉 대인은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안 꺼지겠다면, 내가 나가마!”“대인!”임씨는 급히 그를 불렀지만, 봉 대인은 이미 집을 나선 후였다.임씨는 속으로 원망이 가득했다.설마 밖에 다른 여인이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렇게 자신을 미워한단 말인가!임씨는 반드시 알아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대체 어떤 여우 같은 여인이 자신의 남자를 뺏어가려는지 말이다!그녀는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봉 대인
소욱은 대혼례를 서두르기 위해 민간에서 자수를 잘하는 여인들을 십여 명 데려와 교대로 작업하게 했다. 그 결과, 혼례복은 예정보다 일찍 완성되었다. 그런데 어사관에서는 날짜를 점쳐본 결과 길일이 10월이라는 답이 나왔고, 소욱은 어사관 책임자를 파면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어사관 책임자는 입장을 바꿔 이렇게 아뢰었다. “폐하께서 황후와 대혼례를 치르는 그날이 곧 길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어사관을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결국, 대혼례 날짜는 5월 초열흘로 확정되었다. 소욱은 신부를 맞이하는 중책을 서왕에게 맡기며, 한 부대의 군사를 파견했다.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에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서왕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 명을 받들겠다!” 혼례 준비는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궁궐 내에서는 열기와 긴장감이 가득했다. 대전에서 대례를 주관하는 것은 녕비였고, 장공주는 마치 자신의 혼례인 양 간섭하며 여기저기 지시를 내렸다. 이 때문에 녕비는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한편, 서왕은 부대를 이끌고 신부를 맞이하러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누군가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인물을 붙잡아냈다. “완부옥, 대체 무슨 꿍꿍이냐?” 그는 얼마 전 폐하께 청혼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지내는 줄 알았건만, 그녀가 또 나타난 것이다. 완부옥은 매혹적인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서왕의 옷깃을 잡고 매달렸다. 그 소매 끝에서 뱀의 머리가 슬쩍 드러났다.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존재였다. “우연히 같은 길을 가는 것뿐인데 왜 그리 긴장하는 것입니까?” 서왕은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떼어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폐하와 황후의 대혼례에는 어떤 방해도 허용할 수 없다. 네가
봉장미는 두 손을 옷자락에 쥔 채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조마조마해했다.송려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그가 다가와 서툰 동작으로 그녀를 안았다.“부인…”봉장미의 가슴은 마치 사슴처럼 뛰었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라버니.”송려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이제부터는 서방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소?”“네, 서방님.”봉장미는 귓불까지 붉어졌고,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송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침상으로 이끌었다.그를 따라 침상에 앉은 봉장미의 앞에 송려는 층층이 드리운 장막을 내렸다.봉장미는 그 장막을 보며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고,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송려 역시 경험이 많지 않아, 몸의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히고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봉장미는 긴장한 나머지 눈을 꼭 감았고, 숨이 가빠졌다.“서방님…”그녀는 두려운 듯 낮게 속삭였다.송려는 그녀의 떨리는 몸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달랬다.“두려워하지 마시오, 부인.”그는 그녀가 겪었던 좋지 못한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다시 그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을 염려했다.그러므로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그녀가 준비되길 기다릴 것이었다.신방 안 붉은 초가 타오르고, 초의 녹은 기름이 한 방울씩 떨어져 굳어졌다.그 모습은 마치 미인의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잠시 뒤, 장막 속에서 여인의 놀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후로는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한편.송 부인은 아이를 가진 몸이라 일찍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하객을 보내는 일은 모두 송 대인에게 맡겼다.봉 부인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송 대인에게 말했다.“부디 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아이는 정말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만약, 그 아이를 원치 않게 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와서 데리고 가겠습니다.”혼례날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부적절했지만, 봉 부인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봉안진은 송 대인에게
신방 안.한 노파와 하녀 채월이 침대 곁에 서서 새신랑 송려를 바라보고 있었다.송려는 신부 봉장미를 직시하고 있었다.봉장미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겹쳐 놓은 채 등까지 꼿꼿이 세운 자세였다.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역력했다.송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채월이 건넨 저울을 받아 들었지만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혹여 잘못해서 봉장미의 얼굴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송려는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 올렸다.그 아래, 정성껏 화장을 한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봉장미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얼굴이 입술 색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신방 안은 조용했다.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의 고요함이었다.송려의 가슴이 떨렸다.“부인, 정말 아름답소.”그는 봉장미에게 처음에는 의원의 마음으로 다가갔었다. 환자를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친구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그는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그러다 차츰 그녀를 가엾이 여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에 감동했다.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비 오는 날, 다친 참새를 품에 안아 보호해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송려가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내면이었다.그는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가 건강을 되찾고 웃음꽃을 피우기를 바랐다.송려의 칭찬에 봉장미는 더욱 부끄러워졌다.고개를 한층 더 숙이며 수줍어했다.그러자 노파가 시기적절하게 웃으며 말했다.“새신랑, 그냥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이제 합근주를 마실 시간이야!”송려는 봉장미 옆에 앉았다.두 사람은 가까이 마주한 채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채월이 합근주를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합근주는 두 개의 반쪽 과실 모양의 잔에 담겨 있었다.자신의 잔을 마신 뒤, 상대방의 잔에 담긴 술을
신부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친정 오라버니가 업어 꽃가마에 태워야 한다.봉구안은 남장을 하고 친정 오라버니 신분으로 변장하여 봉장미를 업었다.그녀의 걸음은 한없이 안정적이었다.장미는 그녀의 등에 기대어 안도감에 젖었다.“언니, 우리 둘 다 행복해야 해.”한 방울의 눈물이 봉구안의 목덜미로 떨어졌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 될 것이다.”모든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온다 하지 않는가. 장미가 그간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 이후 그녀의 인생길은 분명 순탄할 것이다....기쁜 나팔 소리와 함께 꽃가마는 송가에 도착했다.신부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가마에서 내려왔다.송려는 혼례복을 입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그는 서둘러 신부를 부축하려 했지만, 희포가 막아서며 말했다.“신랑님, 너무 급하면 안 됩니다. 먼저 의식을 치러야지요!”주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송려는 얼굴이 빨개졌다.그는 너무 오랫동안 장미를 보지 못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만약 소환의 사고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오늘 온 하객들 중에는 송려의 강호 친구들도 있었는데, 강림 또한 그를 찾아왔다.그는 봉구안을 보자마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소환! 역시 자네 목숨은 정말 질기군! 몇 달 전 자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자네를 찾느라 적지 않은 돈을 썼다네!”봉구안은 강림을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오늘은 송려의 혼인식이네. 자네가 붉은 옷을 입고 온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강림은 평소 붉은색을 좋아했기에 이런 점을 생각지 못했었다.그가 문을 들어설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그는 스스로를 더욱 멋있어졌다고 착각했던 것이다.강림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남자를 붙잡았다.“어서 옷을 벗게.”그 남자는 황당해하며 말했다.“이보시오, 지금 제정신이오?”하지만, 장면이 바뀌자 그 남자는 속옷만 남기고 벗은 채 금덩이를 손에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형님, 형님은 정
봉구안의 표정이 단호해졌다.“스승님, 사모님, 저에게 대체 무엇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맹 부인은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구안이 스스로와 인연을 끊겠다며 약쟁이의 일을 추적하려고 하는 상황이니, 이제 더는 막을 힘이 없었다.이내 그녀는 비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성주는 예전에 약쟁이에 대해 알게된 후 신분을 숨긴 채 조사를 계속했단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왔었지. 약쟁이들의 소굴을 발견했다며, 직접 조사하러 가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 후에…”“사형께서 그들에게 살해당했습니까?” 봉구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그동안 스승님과 사모님의 아픈 과거를 들추는 것이 두려워 사형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그렇게나 자애로웠던 사형. 그녀는 스승님이 말한 대로, 누군가를 구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고 믿고 있었다.평소 침착하고 강인했던 맹 부인.하지만 아들의 일을 떠올리자 몇 번이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맹 장군은 멍한 얼굴로 남은 이야기를 전했다.“부인이 직접 성주의 시신을 검시했는데, 성주의 무릎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눈은 부서졌으며, 오장육부는 산 채로 도려내졌었다. 그놈들이 놈을 고문했던 게야.”“이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계속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해왔다.”“그런데 천룡회는 약쟁이의 뿌리가 아니야.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은 어둠 속에서 활 쏘는 것과 같단다.”“구안아, 죽은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성주는 더는 이 세상에 없고, 이제 우리에겐 너 하나뿐이다. 그저 네가 평안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이번엔 내 말을 듣거라. 약쟁이의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거라.”그가 그때 명확히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구안이 집요하게 파고들다 성주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을까 두려워서였다.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그녀는 끝내 약쟁이에 대해 알아버린 것이다…사형의 진짜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된 후, 봉구안의 마음은 격랑처럼 요동쳤다.
단정은 병약한 모습으로 여전히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을 욕할 힘은 남아 있었다.“꺼져… 시중드는 사람 따위는 필요 없어! 날 만지지 마. 멀리 꺼지란 말이야!”곁에서 시중드는 하녀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단정이 아무리 모욕하고 욕을 해도 그녀는 묵묵히 약을 먹이려 애썼다.그때 단정이 봉구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화를 억누르며 태도를 바꿨다. 마치 이전에 자신이 욕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큰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형수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봉구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다리가 나무판으로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단정은 눈을 붉히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토로했다.“염추가 제 다리를 묶었습니다. 그 아이는 형님의 유골을 원했어요.”“하지만 전 끝까지 그 아이에게 형님이 어디에 계신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그러자 그 아이가 제 내공을 다 빨아먹었어요.”“참, 형수님께서는 아직 모르시겠군요! 그 아이는 만간성법을 익혔습니다!”“겨우 탈출해 나왔는데, 다리를 다치고 말았어요. 이 모든 건 다 그 아이 때문이입니다!”“형수님, 절 대신해서 꼭 그 아이를 죽여주세요! 그 아이가 정말 증오스럽습니다!”단정은 사람들에게 구출된 후, 자신을 북방 장군부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맹 장군의 도움으로 그는 자유각에서 요양하게 되었다.의원은 그가 평생 다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단정은 염추를 증오했다. 그녀의 가죽을 벗겨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봉구안은 하녀가 손에 든 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약부터 먹어라.”단정은 고개를 돌리며 체념한 듯 말했다.“먹기 싫습니다! 어차피 다시 나아질 수도 없는 몸인데! 이 약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전 그저 염추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수님, 저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형님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형수님께서 제 복수를 해주세요…”“염추는 이미 죽었다.” 봉구안은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요?” 단정이 그녀를 돌아보며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