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세가 웃으며 말했다.“좋소. 조금 고생하는 건 괜찮소만, 진짜 양연삭이 도망친다면 골치 아플 일이오.”한 시진 뒤, 봉구안은 남산왕부로 돌아왔다.그녀는 단회욱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그의 방으로 향했다.침상 옆에 있던 단정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오늘 황제 폐하께서 형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폐하께서 다녀가신 이후, 형님이 피를 토하셨습니다.”봉구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단회욱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정이의 허튼소리를 듣지 말거라. 내 상태와 폐하는 무관하니...”“그저 내 몸이 너무 약해서 그런 것이다. 구안아, 교주의 시신은 찾았느냐?”봉구안은 차분하게 답했다.“혹시라도 누군가 도망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사들에게 지키게만 하고 시신을 파헤치지는 않았습니다. 오라버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저희의 눈을 피해 도망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단회욱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나는 교주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야. 구안아, 반드시 조심하고, 방심하지 말거라.”“만약 정말 그가 도망쳤다면, 기억하거라… 만건성법은 너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오발에… 쿨럭, 쿨럭!”단회욱은 너무 허약해 한 번에 말을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목에서 비릿한 기운을 느꼈다.그는 피를 토할 것 같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려 봉구안이 보는 걸 피하려 했다.“구안아, 조금 쉬고 싶구나… 이만 침소로 돌아가거라.”그러나 그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피가 샘처럼 목에서 솟구치며 터져 나왔고, 그는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피는 손가락 틈새로 흘러나왔다.“오라버니!” 봉구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 장면을 보고는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형님!” 단정도 급히 반응해 침대 아래에서 숙련된 동작으로 대야를 꺼내 들고, 형의 상반신을 살짝 일으켜 피를 뱉도록 도왔다.봉구안도 손수건을 꺼내 단
“어찌 이런 일이!”봉구안은 손이 떨려왔다.의사가 말하길, 단회욱은 이미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그녀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그가 이 순간 세상을 떠난다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말았다.봉구안은 곧장 남산왕부로 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단회욱은 침상에 누워 기운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준수한 얼굴엔 생기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단정은 침상 곁에 무릎 꿇고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형, 형님! 잠들지 마세요! 겨우 형님을 구해냈습니다… 형님!”봉구안은 한 걸음 한 걸음 굳은 몸으로 다가가, 단회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오라버니…”침대 시트는 이미 그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그는 그녀를 보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마치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듯,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는 듯…“구안아, 난 괜찮아.”그는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봉구안의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그녀는 그의 몸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심지어, 그에게는 숨을 쉴 때마다 마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그녀는 마음이 풀리며 조용히 침상 곁에 앉았다.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정이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천룡회도 이미 소탕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이제는 마음 편히 쉬세요.”단회욱은 봉구안을 향해 한없이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그 안에는 한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구안아, 아직도 가끔씩 머리가 아프니? 미안해. 더는 약을 만들어 주지 못하겠구나… 너와 혼례를 올리지 못해서, 너에게 행복한 삶을 주지 못해서…… 매일 밤 너를 기다릴 남편이 되어 주지 못해서…”“미안해… 정말로, 널 평생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어.”“나는 이미 오래전에 버티기 힘들었어. 하지만 혹시, 혹시라도 죽기 전에 널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늘이 날 불쌍히 여긴 거야.”“정말 다행이야. 널 보고 갈 수 있
단회욱은 죽었다.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기력이 다해 있었다.그동안 간신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다섯 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이제, 그의 구안이 자립할 수 있게 되었고, 곁에는 친구와 연인이 있는 것을 본 이상, 자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완전히 힘을 놓아버렸다.그는 이 생에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단정의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찢어발겼다.온 왕부가 암울한 그림자에 휩싸였다.소욱은 뜰에 서서, 창백한 달을 올려다보았다.처음으로 마음이 불안해졌다.만약 단회욱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었을까?그들과 단 며칠 함께했을 뿐이고, 나눈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그는 왜 봉구안이 과거에 단회욱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이토록 온화한 군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타인을 생각했다.소욱은 봉구안이 단회욱 때문에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뭐 하나 잡히지도 않고,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남산왕은 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불길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단회욱을 위해 묻을 자리를 찾겠다고 나섰다.하지만 단정은 이를 거절했다.그는 형을 옥령산에 묻고 싶지 않았다.양연삭도 옥령산에서 죽었으니, 형이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게 할 수 없었다.단정은 화장을 하고, 유골을 북방에 묻겠다고 했다.그곳은 형이 평생 가장 행복했던 곳이고, 형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형님께서는 살아 있을 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적어도 죽어서만큼은 북방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단정은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삼키며 봉구안에게 말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단회욱의 시신이 화장되던 날, 소욱도 자리에 있었다.그의 시선은 내내 봉구안을 향하고 있었다.봉구안은 줄곧 무표정이었다. 두 눈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마치 죽은 사람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옥령산.양연삭은 어지럽게 얽힌 바위 틈에서 뛰쳐나왔다.병사들은 적을 만난 듯 경계태세에 들어갔다.동방세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혼자서 양연삭을 저지해, 그를 그냥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곧이어 산을 지키는 십이사명이 출동해 진을 결성하였고, 양연삭을 가두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봉구안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격전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며 이어졌다.병사들이 활과 화살로 공격했지만, 양연삭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제대로 맞히기 어려웠다.봉구안은 가면을 쓰지 않고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그때 양연삭은 소욱을 알아보았고, 더불어 맹성주도 알아차렸다. 바로 자신의 아들 양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였다.맹성주가 아니었다면, 양소도 그렇게 비참한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양연삭의 가면 속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는 즉시 십이사명의 포위를 뚫고 소욱과 봉구안을 향해 돌진했다.봉구안은 장검을 뽑아 정면에서 맞섰다.소욱과 동방세는 양쪽에서 협공했다.세 사람은 마치 화살처럼 날카로운 진형을 이루었다.진한길과 병사들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 양연삭의 공격을 저지하며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양연삭의 목표는 분명했다. 먼저 소욱을 죽이고, 그다음 맹성주를 죽이는 것이었다.그는 전투 중 바위 파편에 의해 이미 중상을 입었으나, 그의 마공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방해가 되는 한 사명을 붙잡아 그들의 내공을 전부 흡수했다.나머지 열한 사명이 분노하며 외쳤다.“마두야! 목숨을 내놔라!”동방세는 가장 먼저 봉구안의 이상함을 눈치챘다.그녀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예전 같지 않았다.양연삭의 함정에 빠진 봉구안이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동방세가 다급히 외쳤다.“비켜! 소환!”양연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소환?동방세가 맹성주를 소환이라 불렀다?설마… 맹성주와 소환이 같은 사람인가!?양연삭은 순간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다.새로운 원한과 옛 원한이
양연삭은 많은 이들의 내력을 흡수했지만, 이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봉구안의 말로 인해 그의 진기가 크게 요동쳤고, 몸속에서 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억제하려다 보니 만건성법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내력을 소모하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이 짧은 순간, 봉구안과 동방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파공참… 두 사람의 협동 공격이었다.봉구안은 자신의 검을 동방세에게 던졌고, 동방세는 먼저 직격으로 나아가 어지러운 검술로 양연삭을 몰아붙였다.양연삭이 몇 발자국 물러섰을 때, 그는 머리 위를 주시하지 못했다. 그 순간, 봉구안이 독수리처럼 급습하며 손바닥에 기를 모았다.쾅!봉구안의 손바닥이 양연삭의 정수리를 직격했다.양연삭의 두개골이 울리는 순간, 소욱은 곧바로 옆에서 손바닥으로 보강했고, 십이사명이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여러 갈래의 힘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양연삭은 본능적으로 진기를 발산하며 모두를 튕겨냈다.그의 면갑이 부서지며 드러난 얼굴은 단단하고도 강직한 모습이었다.쿵! 쿵쿵!모두가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남산왕과 장사들은 방패로 결진해 그들을 보호하며 물러서지 않았다.그러나 양연삭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발광하듯 비명을 질렀다.“아아악…!”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그의 시야에는 온통 붉은 빛이 퍼져 있었다.뜨겁고 비릿한 액체가 눈가를 타고 흘렀다.피였다.선혈이 두 줄기 눈물처럼 흘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소환! 소환!!” 양연삭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는 무작정 주위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돌들이 튕겨 날아가고, 땅은 기류에 의해 먼지가 날렸으며, 나무들이 쓰러져 내렸다.봉구안은 파공참을 사용하기 위해 전신의 내력을 한 곳에 집중했기에 자신을 방어할 여력을 두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일어서기조차 힘겨운 상태였다.소욱은 그녀를 부축하며 어깨를 감싸 함께 섰다.그는 그녀가 진정으로 양연삭을
양연삭을 상대하기 위해 소욱은 이미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호위병들은 결진을 이루며 그물을 내려 양연삭을 마치 고기잡이하듯 가두었다.곧이어 병사 몇 명이 주변을 돌며 위치를 바꾸자, 그물구멍은 더욱 단단히 조여졌다.양연삭은 두 손을 휘저으며 발버둥쳤다.그러나, 구중탑이 붕괴하면서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데다, 여러 명과 싸운 후 특히 소환의 일격까지 더해져 그의 진기는 안으로 흡수되기는커녕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평소라면 이 그물을 쉽게 부숴버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진기가 계속 새어나가며 그의 몸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화살을 쏴라!” 남산왕이 소리쳤다.이제 곧 대마두를 사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갑자기 주변에 하얀 연기가 터져 나왔다.그 연기의 중심은 바로 양연삭이었다.봉구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누군가 양연삭을 구하고 있었다!연기가 너무 짙어 모두 앞을 볼 수 없었고,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남산왕은 급하게 외쳤다.“화살을 쏴라! 어서 쏴라!”그러나, 양연삭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한 잔의 차를 다 마실 시간이 지나서야 연기가 완전히 가셨다.봉구안은 즉시 양연삭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그가 있던 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를 가뒀던 그물은 찢겨나간 상태였다.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확인하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녀의 반쯤 기댄 몸은 소욱의 어깨에 의지하고 있었다.소욱은 그녀를 그대로 안아 들며 냉랭한 표정으로 남산왕에게 명령을 내렸다.“온 도시를 뒤져 양연삭을 잡아라. 죽었으면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동방세는 그물을 살펴본 후 찢어진 자국을 보고 말했다.“검기로 끊은 것이군.”…남산왕부.귀환한 이들을 본 단정은 얼굴에 분노를 띤채 물었다.“양연삭은 죽었나요?”이어 소욱의 품에 안긴 채 의식을 잃은 봉구안을 보고는 급히 묻기 시작했다.“형수님,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양연삭에게 당한 것이란 말인가요? 이렇게 많
남산왕부.다음 날, 봉구안은 자신의 방에서 깨어났다.눈을 뜨니 한 시녀가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소 공자, 깨어나셨군요!”왕부의 시녀들은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그녀가 남장을 한 탓에 공자라 부르고 있었다.봉구안은 몸을 일으켜 앉아 이마를 짚으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양연삭이 도망쳤다.누군가 그를 구해간 것이다.분명 그들 눈에 띄지 않은 누군가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간단히 세수한 후 소욱을 찾아갔다.소욱은 그녀가 이렇게 일찍 깨어난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내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쉬어야 낫는다.”봉구안은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곧바로 물었다.“사람을 보내 양연삭을 수색했습니까? 무슨 소식이라도 있나요?”소욱은 담담히 대답했다.“아직 아무런 실마리가 없다. 일어난 김에 아침을 들도록 해라. 양연삭은 중상을 입었으니 큰 일을 벌일 힘도 없을 것이다.”그가 말하는 사이, 눈빛으로 진한길에게 아침상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봉구안은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상 위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옆방.단정과 염추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염추는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네가 날 의심한다고? 단정, 사람이라면 양심은 있어야지. 난 너희들 중 누구보다도 양연삭이 죽길 바란다! 내가 그를 구했을 리가 없잖아!”단정의 의심은 단순히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네가 그렇게 딱 맞춰 나타난 걸 우연이라 믿으라는 거냐? 말해봐, 네가 우릴 몰래 지켜본 게 아니면 뭐겠어?”“예전에도 네가 우리 형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형이 네 도움이 가장 필요했을 때, 이번 구중탑에서도,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도, 오양산을 잃었을 때도, 네가 무슨 도움을 줬지?”“난 네가 진심으로 형을 돕고 싶어 했는지조차 의심스럽워. 도대체 목적이 뭐야!”“무슨 소란이냐.”봉구안이 문가에 서서 단호한 어조로 물었다.단정은 즉시 염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이 여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접근
“북방으로 가겠다고?”소욱은 봉구안이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자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다.소욱은 본래 구중탑의 일이 끝나면 봉구안이 자신과 함께 황성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였다.그래서 그녀를 기다리며 떠나지 않았던 것이었다.겨우 단회욱이 숨을 거두기를 기다렸건만, 이제 그녀는 단회욱의 유골을 위해 북방으로 가려 하다니…물론 그녀는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이런 일이 특별하진 않았다.하지만 그는?그녀는 그를 위해 생각해 준 적이 있었던가?소욱은 제자리에 선 채, 주먹을 조금씩 쥐어갔다.그가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다시 돌아올 것이냐.”봉구안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즉시 답하지 않았다.그녀가 잠시 망설이는 몇 초 사이, 소욱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나고 말았다.어둑했던 그의 눈동자는 삽시간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그는 봉구안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문 뒤에 밀어붙이며 거칠게 물었다.“너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봉구안, 네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단회욱이 죽기 전에 했던 말 때문인가? 네가 나를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가 죽자마자 네 마음은 그쪽으로 기울어 버렸어!”봉구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제가 북방에 가는 건 회욱 오라버니 때문만은 아닙니다…”소욱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전부 변명으로 여겼다.그는 들으려 하지 않고 차갑게 몰아붙였다.“네가 바라는 대로라면 황위를 내려놓으란 말이냐!”“좋아, 솔직히 말하지.”“대의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유언을 남기고 황위를 물려줄 수 있다. 하지만, 여인을 위해 천하를 포기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나는 너를 위해 끝없이 양보할 수 있지만, 저 흙바닥처럼 낮아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봉구안은 그를 밀쳐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북방에 가는 건 무엇보다도 제 쌍둥이 여동생 봉장미 때문입니다.”소욱은 순간 멍해졌다.장미? 봉장미?그 아이는 이미 죽지 않았던가?혹 그녀의 시신이 북방에 묻혀 있는 걸까?봉구안은 그에게 진실을 말
요녀의 얼굴은 연약해 보였으나, 이 순간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웠다.그녀는 소욱의 등을 바라보며 비웃었다.“생각지도 못했겠죠! 모두가 선황께서는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을 테니 말입니다. 심지어 그 자신도 그렇게 믿었죠.”“하지만 사실은, 제가! 제가 독을 썼습니다!”“폐하, 제게 정말 감사해야 될 겁니다.”“선황께서는 신중한 사람이셨습니다. 허나 그 당시 저를 불쌍히 여겨 숙비마마께서 저를 궁으로 들이신 덕에, 제가 선황께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소욱의 눈빛은 냉랭했다.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을 자극하려는 것뿐이었다.그러나, 선황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그의 어머니를 마치 헌 신짝처럼 내버린 그 남자. 황제로서 별다른 잘못은 없었을지 몰라도, 아버지와 남편으로서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다!“저 여인이 살고 싶어도 못 살게 하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하라!”소욱은 이 말을 끝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요녀를 한 번 더 보는 것조차 그의 눈을 더럽히는 일처럼 느껴졌다.“예!” 천옥의 옥졸들이 공손히 답했다.그들은 죄수를 어떻게 고문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왕은 떠나기 전 요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는 살기와 더불어 깊은 증오가 서려 있었다.그녀는 누구를 증오하는 것일까?어째서 계속해서 황제를 암살하려 한 걸까?그는 그녀의 배후에 있는 자가 반드시 남제를 위협하려는 자일 것이라 추측했다.그래서 옥졸들에게 따로 명령을 내렸다.“가능하다면 심문하라. 저 자가 하는 모든 말을 기록하라.”“예, 폐하.”황궁.봉구안은 동방세에서 온 소식을 받았다.그들이 이미 순풍을 잡았으나, 약쟁이에 관한 어떤 단서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그녀는 여기서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어, 만추에게 장서각에서 책을 여러 권 가져오게 했다. 대부분은 기문이록과 같은 것들로, 약쟁이에 대한 기록이 있을지도 몰랐다.오늘 한가한 틈에 그녀는 이미 가져온 책 세 권을
어전.소욱은 서왕으로부터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들은 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드리웠다.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빛이 마치 날이 선 칼날 같았다.“그 여인은 어디에 있느냐!”서왕은 황제가 그 여인을 언급할 때 눈에 가득한 증오를 눈치챘다.“옥사에 있습니다. 신이 이미 사람을 시켜 그 자를 감금해 두었습니다.”소욱은 위엄 있는 얼굴에 한기를 띠며 냉랭하게 명령했다.“천옥으로 옮겨라.”“예.”천옥.이곳에 갇힌 죄수는 많았으며, 그중에는 사건에 연루된 관리와 심지어 황실의 친척도 있었다.그들은 성가신 소리를 내며 황제에게 구걸했다.“폐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폐하, 제발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폐하, 소인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소욱은 그들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갔다.그의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가득했다. 그녀의 슬픈 모습, 고통스러운 모습, 그리고 절망에 빠져 높은 곳에서 떨어지던 모습까지…어머니는 과거의 일로 인해 항상 우울해했다. 어머니를 완전히 무너뜨린 마지막 사건은 어머니의 궁에서 선황과 간통을 벌인 궁녀 때문이었다!그는 그 궁녀를 잊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연약한 척하며 동정을 유도하곤 했다.그 후,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그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찾아 죽이려고 했었다!이제, 그녀가 감히 다시 나타났고, 심지어 암살을 시도했다니!“폐하, 그 여인은 저 안에 있습니다.” 서왕이 그의 생각을 끊으며 앞의 한 형방을 가리켰다.소욱은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자 즉시 옥졸이 감방 문을 열었다.그 후, 그는 큰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진한길은 그 뒤를 따르며 언제든 황제를 보호할 준비를 했다.어차피 그 여인는 본래 황제를 암살하려던 자였다!형방 안, 여인의 손발은 쇠사슬로 묶여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손바닥만 했다.그녀는 몸부림치며 소욱에게 달려들려 했고,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소욱은 그녀 앞에 서서 어두운 눈빛을 내비치며, 억누를 수 없는 폭풍
영비는 현흥궁을 떠난 뒤 곧장 영화궁으로 갔다.궁녀 만추가 공손히 말했다.“영비마마,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안에서 중요한 일을 두고 의논 중이시니, 뵙기 어렵습니다.”의논?막 대혼을 치렀는데 무슨 의논할 일이 있다는 거지?대낮부터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괜찮다. 조금 뒤에 다시 오마.”만추는 말하고 싶었다. 아마 나중에 다시 와도 황후마마를 뵙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이다.궁 밖.정자.서왕은 서신에 적힌 대로 황제로 변장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그는 유화에게 은밀히 매복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했다.멀리서 보니 정자 안에 여인이 서 있었다.가까이 가니 그녀는 삼사십 대쯤 되어 보였고, 흰옷을 입은 채 수척하고 연약한 모습이었다.서왕은 정자 밖에서 멈추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네 눈이 마주쳤고, 여인은 눈물로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저는 당신이 절대 저를 다시 만나려 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서왕은 다소 의아했다.이 말을 들어보니, 이 여인과 황제는 구면인가?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상황을 살폈다.여인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며, 눈빛에는 깊은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저는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황자… 아니, 이제 당신은 황제가 되었군요.”“예전에 제 잘못 때문에 숙비마마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겁니다.”“저는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절 지독히 미워하고 있다는 걸요.”“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제 죄를 씻고 용서를 구하고 싶을 뿐입니다.”서왕은 이 말을 들으며 의문이 깊어졌다.이 여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그녀는 황제가 황자일 적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숙비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듯했다.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뒤에서 유화의 놀란 외침이 들렸다.“전하, 조심하십시오!”햇빛 아래, 여인의 손에 있는 물건이 반짝였고, 그것은 단검처럼 보였다.그녀는 방금까지의 연약함을 버리고 단검을 들고 눈앞의 남자에게 덤벼들었다.그 공격은 매우 빨랐고, 그녀의
오늘 황제가 조회를 쉬자, 궁중의 모든 일은 서왕에게 맡겨졌다.지금, 서왕은 한 통의 편지를 보고 그 속에서 미심쩍은 냄새를 맡았다.황제를 홀로 보내라니, 분명 계략이 있을 터였다.더구나 이 사람은 매우 영리했다. 숙비를 미끼로 사용하다니.숙비는 황제의 생모로, 황제가 어릴 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었다.이 일은 줄곧 황제의 마음에 남은 아픔이었다.만약 이 편지가 황제 손에 들어간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이성을 잃을 터였다.서왕의 온화한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스쳤다.“유화야, 나는 폐하를 대신해 약속 장소에 갈 것이다. 가서 변장술에 능한 자를 찾아와라.”유화는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전하, 이 일을 폐하께 먼저 의논하고 결정하심이 어떻겠습니까?”서왕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필요 없다.”황제는 막 혼인했으니, 오랜만에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내는 시간인데, 그가 황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숙비와 관련된 일이라면, 자신이 한 번 다녀와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방 안, 완부옥은 이미 옷을 정리하고 요염한 자태로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굳이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어요. 제가 조금이나마 변장술을 배운 적이 있답니다.”예전에 소환 곁에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변장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서왕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이 요녀가, 변장술도 할 줄 안단 말인가?…황궁, 비가 갓 멎은 후.소욱은 봉구안을 품에 안고 놓을 줄 몰랐다.봉구안은 억압받는 느낌이 싫어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녀의 긴 머리는 헝클어진 채 흘러내렸고, 지친 기색 속에서 은은한 홍조와 매혹적인 빛깔이 묻어난 얼굴이 드러났다.눈가까지 붉은 기운이 올라,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당장 자유각으로 가고 싶었다.그녀가 몸을 돌리자 소욱은 마치 덩굴처럼 그녀를 다시 꽉 껴안았다.거친 손이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소욱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를 가지고 싶어.”봉
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비록 신혼의 단꿈도 중요하나, 자신은 황제의 몸, 나라의 일을 우선해야 했다.그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눈빛을 보였다.“그대는 먼저 영화궁으로 돌아가시오. 일을 마치고 다시 그대를 찾아가겠소.”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영화궁.궁녀들과 후궁들이 황후에게 문안을 올리러 왔다.봉구안은 그녀들을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그들 또한 봉구안을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사람들은 새 황후와 폐비 봉씨가 쌍둥이 자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닮았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특히 성격까지 비슷하니 더더욱 놀라웠다.녕비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굳어버렸다.눈앞의 사람이 폐비와 똑같다고 느껴졌다.‘어쩐지 그래서 폐하께서 굳이 이 사람과 혼인하려 했던 거구나. 틀림없이 폐비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겠지.’녕비는 그렇게 생각하며 새 황후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그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으며, 특별히 할 말도 없었다.그들이 물러간 뒤, 한 궁녀가 다가왔다.“마마, 저는 궁녀 만추라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마마를 모시라 하여 여기에 왔습니다.”봉구안은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 무술을 배운 사람임을 짐작했다.“무공을 익혔느냐?”“그렇습니다. 소녀는 과거 은위로 있던 중 부상을 입고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중용되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나를 모시는 것은 네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더냐?”만추는 고개를 흔들었다.“아닙니다! 마마께서는 남제의 여걸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마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마마를 모시는 것은 제가 간청하여 얻은 영광입니다!”봉구안은 그녀가 이렇게 진지할 줄은 몰랐다.소욱이 선택한 사람이니, 그녀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그때, 다른 궁녀가 들어왔다.“마마, 장공주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내전.장공주는 봉구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소장군, 묻고 싶은 게 있네. 그대
서왕은 완부옥이 봉구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이 자신의 저택에 눌러앉아 떠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서왕은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듯 말했다.“너희 집 낭군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겠구나.”“하지만 내가 아는 건, 황제와 황후가 서로 사랑하여, 분명 이 밤이 짧게만 느껴질 거라는 거지.”그러나 완부옥은 그의 예상과 달리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낭군님이 좋아하시면 됐습니다.”서왕의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텅 빈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어쩐 일인지 따라 말했다.“그래. 네 말이 맞다.”황궁, 자진궁 안.소욱은 연거푸 들려오는 ‘부군’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밤새 한도 끝도 없이 요구했다.정말로 서왕이 말한 대로, 그는 이 밤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이튿날 아침.봉구안이 눈을 뜨니, 소욱이 그녀 옆에 누워 뜨겁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봉구안은 몸을 돌려 등을 보이며 말했다.“폐하, 아침 조회에 나가셔야 하지 않습니까?”그러나 소욱은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고 목덜미에 입맞추며 말했다.“오늘은 조회에 나가지 않겠다.”봉구안은 온몸이 쑤시고 아팠기에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과하게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조만간 몸이 쇠약해져 사내 구실을 못 하실 수도 있어요.”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정말로 사내 구실을 못 하게 된다고?”봉구안은 대꾸했다.“절제하는 게 나쁠 건 없지요.”소욱은 어젯밤 늦게까지 자신이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떠올리며 그녀보다 자신이 더 의아해했다.어째서 그는 여전히 이렇게 기운이 남아돌까?황제가 조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황후로서 봉구안은 태후께 문안드려야 했고, 궁중 규례대로 후궁들을 만나야 했다.그리하여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했다.소욱은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녀가 하는 일을 똑같이 따라 했다.그녀가 머리를 빗으면, 그는 구리 연지를 들고 나서서 그녀의 눈썹을 그려주겠다고 말했다.“들으니
대전.대신들이 이미 배불리 먹고 마셔서야, 황제가 느지막이 대전에 나타났다.몇몇 신하가 몰래 수군댔다.막 과거 시험에서 급제한 젊은 관리가 말했다.“폐하께서 얼굴빛이 아주 좋으십니다. 역시 경사가 나면 사람도 기운이 나나 봅니다!”“그대도 장가를 가면 이렇게 얼굴빛이 좋아질 거네.”그 관리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설마 황제가 늦은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아니야, 말도 안 돼!어떻게 그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황제께서는 본래 여색이나 욕망에 집착하는 분이 아니시다!용좌에 앉은 젊은 황제는 신이 나 보였으나, 몸은 여기 있어도 마음은 여기 없었다.그가 대전에 온 건 봉구안이 자꾸 재촉했기 때문이다.몇 잔 마신 뒤 곧바로 자리를 떠서 자진궁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남산왕이 일어서더니 엄숙한 태도로 간언을 시작했다.“폐하, 모든 일에는 절제를 지키셔야 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로서 천하의 사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대혼례는 물론 기쁜 일이지만, 만일 도를 넘는다면…”남산왕의 말에 군신들은 하나같이 안절부절못했다.남산왕은 정말 할 말을 다 하는구나.소욱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이 고리타분한 노인을 상대로 따질 생각은 없었다.그는 못 들은 척하며 말을 잘랐다.“시간이 늦었소. 대신들께서 특별히 하실 말씀이 없다면 모두 물러가시오.”말귀는 알아듣는 법.대신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오직 남산왕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황제가 이렇게 행동하는데 아무도 간언을 안 하다니.모두 간신배들이로구나!대신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왜인지 누군가 뒤에서 욕을 하는 느낌이었다.자진궁.소욱은 자진궁으로 돌아가기 전에 특별히 서왕을 불러 말했다.“내일은 조정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급한 일이 있다면 자네가 먼저 처리하거라.”서왕이 공손히 답했다.“예, 폐하.”소욱이 가려 하자, 서왕이 갑자기 불렀다.“폐하!”“무슨 일인가?” 소욱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서왕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입맞춤은 더욱 격렬해졌다.소욱은 봉구안의 입술을 깊게 마주했다. 그 입맞춤은 방금 마신 진한 술향과 섞여 있었다.봉구안은 눈을 감고, 그 순간에 온전히 빠져들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긴 시간 후, 소욱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며 이마를 맞댔다.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이 정도면 교배는 충분히 한 셈이겠지.”봉구안은 목이 바짝 타들어가면서도 그의 옷깃을 붙잡은 채 눈을 반쯤 감고 대답했다.“그렇습니다.”머릿속이 흐릿해진 채, 봉구안은 그를 바라보며 한껏 달아올랐다. 그를 껴안아 눕히고 싶었지만, 알고 있었다. 의식에 따른 규칙대로라면, 소욱은 곧 대전으로 가야 했다.그러나 소욱의 마음은 이미 뒤죽박죽이었다.그는 바깥으로 명령을 내렸다.“모두 물러가라.”궁녀들과 마마들이 눈짓을 주고받더니, 순식간에 전부 대전 밖으로 물러났다.모든 외부인이 나가자, 소욱은 직접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진 봉관을 벗겨주었다.그는 그것을 손에 들고서야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봉구안은 머리의 무거운 장식을 벗어던지자, 한결 숨이 편해졌다.그녀를 끌어안은 소욱은 낮게 읊조렸다.“고생이 많았겠구나.”그러나 봉구안은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폐하, 이제 대전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욱은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짐짓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막 혼인식을 끝냈건만, 어찌 아직도 이리 딱딱하게 구는 것이냐?”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말하기를 원했지만, 봉구안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소욱은 그녀의 입술 옆을 가볍게 맞추며 나지막이 재촉했다.“황후, 이제 나를 뭐라고 부를 것이냐?”“폐하…”“틀렸다.” 소욱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다시 생각해 보거라.”그의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고,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띠를 풀며 몸을 기울여 부드러운 침상 위로 그녀를 눕혔다.목덜미에 키스를 하며, 그는 희미하게 묻곤 했다.“구안아, 넌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듣고 싶은 호칭 말이야.”
모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햇빛 아래 한 무리의 흰 구름이 일곱 빛깔로 변해 있었다.“이런 이변은 처음 봅니다. 이는 길조입니다!”“황후마마는 진정 하늘이 내린 분이십니다!”“이런 현명한 황후를 얻었으니, 우리 남제는 반드시 오래 번영할 것입니다!”봉구안은 무거운 봉관을 쓰고 있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답답함이 가득했다.소욱은 다가와 묻는다.“구안아, 보았느냐? 저것은 상서로운 구름이다.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구름은 처음 본다. 넌 정말 나의 운명으로 정해진…”“언제 신방에 드십니까?” 봉구안이 그의 말을 끊으며 무겁게 말했다.소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소욱도 신방에 들고 싶긴 했지만, 그녀가 자신보다 더 급한 것처럼 보였다.소욱의 눈에는 희미한 웃음이 스친다.“곧이다.”소욱은 봉관이 얼마나 무거운지 미처 알지 못했다.황실 의례 담당이 계속 진행을 알렸다.“황제와 황후는 폐백 의식을 행하라! 천지에 예를 드리시오!”봉구안과 소욱은 돌아서서 절을 했다.“종친에게 예를 올리시오!”종친들이 자리한 곳에는 태후와 황실의 어른들이 앉아 있었으며, 서쪽 경계에서 온 남산왕도 그 자리에 있었다.태황태후도 예외적으로 옥양산에서 풀려나 이 혼인식에 참석했다. 혼인식이 끝나면 다시 옥양산으로 보내질 예정이다.그녀는 황제와 황후를 보며 늙은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과거 자신의 잘못을 회상하며 깊이 후회했다.“부부는 서로 맞절하시오.”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 봉구안이 허리를 숙일 때, 눈앞에 있는 구슬 장식이 흔들리며 부딪쳤다.부부가 되어 서로 맞절을 하다니. 이는 소욱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이 절은 그들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의미했다.아래에 있던 대신들은 축하 인사를 올렸다.봉 대인은 눈가의 젖은 자국을 닦으며, 속이 끓었다.머릿속에는 성지를 받던 때의 기억만 떠올랐다. 성지 안에는 ‘맹가의 딸 봉구안’이라고 적혀 있었다.제기랄!맹가는 염치도 없는 자들이었다!봉구안은 분명 봉가의 딸이지 않는가!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