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은 내전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봉구안은 암기를 정리하던 중 이 말을 듣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유사양이 직접 말한 것이냐?” 연상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낌새였어요…”“또 돌아가신 영비마마 이후로는 폐하께서 그 누구도 자진궁으로 부르신 적이 없다 하니, 더욱 그 말이 오싹했습니다…”“마마, 오늘 밤 정말 자진궁에 가실 건가요?” 봉구안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건 네가 염려할 일이 아니다. 다만 당장 할 일이 있으니 어서 가서 하도록 하여라.” 연상은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귀를 기울였으나, 봉구안이 지시한 것은 약환을 가루로 갈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벌레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계절에는 궁에 독충이나 뱀이 나오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그날 저녁, 봉구안은 자진궁으로 향했다. 환관이 그녀를 안내하였다. 황제의 침전은 다른 궁실보다 더더욱 엄숙하고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정문에서 주전까지 이어진 백옥 바닥은 아흔아홉 개의 돌로 깔려 있었으며, ‘자진궁’이라 새겨진 세 글자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젊은 황제의 포부와 위엄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전에는 용과 봉황이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이 서 있었고, 특히 용의 눈빛은 마치 진짜 용이 돌기둥을 휘감고 있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감히 정면으로 올려다보기가 어려운 기세였다.봉구안의 허리춤에는 향낭이 매달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주머니에서 약가루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는 남쪽 지방의 독충들을 억제하는 약재로,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날 연회에서 남방에서 온 완부옥이 도중에 자리를 비운 것을 떠올리니, 궁 안에 무언가를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컸다. 남방에서 헌납한 여인의 이례적인 행동을 떠올리자, 봉구안은 그들이 소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그래서 오늘 밤 황제가 그녀를 부르지 않았더라
책상과 옥좌 사이의 거리는 한 사람만 간신히 설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봉구안은 책상을 등지고, 소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소욱은 옥좌에 앉아 상반신을 여전히 곧게 세웠지만,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는 자세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녀가 갑자기 다가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 투항하여 껴안으려는 건가 싶었으나,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직립해 있을 뿐이었다. 봉구안은 즉각적으로 다가왔지만, 그럴 새도 없이 책상 위에 벌레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갈색을 띠며 지렁이처럼 보였고,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러나 봉구안은 그 즉시 알아챘다. 바로 '천주충'이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체내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번식하여 무한히 증가하는 벌레였다. 이 벌레들은 사람의 내장을 갉아 먹고 뼈에 붙어, 결국엔 사람을 껍데기만 남기고 파괴해 버렸다. 이 급박한 순간, 그녀는 가장 짧은 거리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을 허리에 두고 약 가루를 움켜쥐고 내공을 이용해 뒤로 흩뿌렸다. 그러자 천주충은 그 자리에서 즉시 굳더니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봉구안이 책상의 천주충을 제거하자, 갑자기 허리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소욱의 강인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단번에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부딪힐 뻔했으나, 재빠르게 반응해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짚어 충격을 완화했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갑작스레 닿았다. 봉구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눈앞에는 소욱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눈빛이 있었다. ……궁 밖에서는 유사양이 먼지떨이를 손에 쥔 채 지루한 표정으로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진한길이 급히 궁으로 들어갔다. 유사양은 황후가 안에 계시다는걸 알리려 했으나, 촛불이 꺼지지 않은 걸 보고는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하며 말하지 않았다. 또한, 진한길이 너무 급히 전각 안으로 들어간 터라 그는 더더욱 그를 막을 기회가 없었다.하지만, 진한길은 곧 다소 경
침대에 눕는 순간, 봉구안은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황제의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피비린내가 그녀를 자극하며, 그녀는 갑자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녀는 힘껏 밀어내며,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황제는 입술을 뗀 후, 힘이 빠진 듯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높은 콧날이 그녀의 목에 닿아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피부를 달구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보려 했으나, 황제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오늘 이곳에 머무르겠느냐.” 이곳은 자진궁. 황 귀비가 아무리 총애를 받았어도 발을 들이지 못한 곳이었다. 그의 말은 곧 그녀에게 뒤를 맡기겠느냐는 뜻이었다. 봉구안은 곧바로 대답했다. “신첩은 이제 돌아가야 하옵니다.” 그녀는 너무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를 불쾌하게 만들어선 안 되었다. 황제들의 자존심은 종종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그럴 때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소욱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한쪽 무릎을 침상에 세우고, 여전히 그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 차분함은 오히려 그에게 불안을 일으켰다. 그의 입술 끝에는 그녀가 물어 터뜨린 피가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그에게 살벌한 기운이 더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손바닥을 펴더니, 그녀의 손목 사이를 세게 물었다. 그러나 봉구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소욱의 눈은 매서운 매의 눈처럼 그녀를 노려보며 손목을 깨물고 혀끝으로 그 자리를 핥았다. 갑자기 봉구안의 손끝이 저릿해졌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소욱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그녀를 시험하려 들었고, 그녀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체 뭘 하는 걸까? 봉구안
밤은 이미 깊었으나, 완부옥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자시가 되어 음기가 무겁게 내려앉자, 그녀는 침상에 앉아 향로에 불을 붙여 독충을 기르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서늘하고 음흉한 눈빛을 빛냈다. 잘됐다, 그녀의 새로운 독충을 그들에게 시험해볼 기회였다... 쾅!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좁은 방안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완부옥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크게 휘저었고, 모양이 이상한 매미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한 독충이 튕겨져 나갔다. 그 독충은 날아서 한 검은 옷의 사람에게 붙었다. 단 한 순간에 그 사람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 뜨거움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옷을 벗기 시작했고, 연신 뜨겁다고 외쳤다. 그 불타는 고통은 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기에 아무리 벗어도 달아오름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견디다 못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진한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남강 여인, 정말 악독하다! 절대 살아남아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독충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해쳤다. 침상 위에 있던 완부옥은 자세를 바꾸어, 마치 투계놀이를 구경하듯 흥미롭게 반쯤 누워 있었다. 독충이 세 번째 사람을 해치려 하자, 진한길은 독충의 비행 방향을 예측하고는, 검을 번뜩이며 움직였다. 검이 번뜩이는 순간, 독충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황제의 곁을 지키며 호위하는 진한길의 무술 실력은 단연 최고였다.게다가 완부옥이 방금 길들인 독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진한길의 검에 죽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완부옥은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은 서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내 보물을 죽이다니, 죽고싶은 게로구나!” 수십 명의 검은 옷의 사람들이 즉시 진을 쳐 그녀를 포박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완부옥은 내력을 뿜어내어 그물을 치더니, 그물의 끝
봉구안은 별안간 눈을 들어 완부옥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평온한 눈빛 속에는 경고의 기색을 띄었다. 완부옥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딱 걸린 것처럼 어색해졌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의 가면을 쓰다듬었다. 마치 그의 얼굴을 만지는 듯이, 손끝으로 살며시 가면을 더듬었다. “참 차갑고도 차갑네요...”“혹시, 오라버니 얼굴을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거칠고 막무가내였지만, 지킬 것은 지킬 줄 알았다. 소환과 다투더라도, 그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며 인연을 끊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을 어기고 가면을 마음대로 벗긴다면, 그들의 인연은 거기서 끝일 터였다. 봉구안은 말없이 그녀의 상처를 정성스레 싸매기만 했다. 완부옥은 약간 기운을 되찾자, 다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제 몸을 다 봤으니, 책임을 져야되지 않겠어요?” 봉구안은 손을 씻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듣자하니, 궁에 들어가 후궁이 된다던데.” 완부옥은 놀리듯 반문했다. “왜, 질투라도 나세요?” 봉구안은 차갑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남녀 간의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제가 후궁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완부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참으로 무정해요.” “실은, 정말로 궁에 들어갈 뻔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를 위해 마음을 돌렸죠.” “부족의 배신자가 되더라도, 오라버니와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오늘 밤 제게 덤벼든 자들은, 저를 죽이기 위해 그 늙은이들이 보낸 자들일 거예요.”“이젠 갈 곳도 없어요. 오라버니, 절 버리지 마세요...” 그녀는 봉구안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애틋한 사랑이 눈에 어렸다. 봉구안은 손을 씻고 물기를 닦으며, 여유롭고 차분한 태도를 보이며 물었다. “그들이 널 궁에 들게 해서 하려는 일은 무엇이냐. 황제를 암살하려는 것이냐?” 방 안에는 아직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완부옥은 냉
남강의 사신이 깨어나 완부옥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정오였다.완부옥은 길에서 종종 일행과 떨어지는 일이 있었기에 사신들은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도 그녀가 또 소환을 만나러 갔으리라 생각하였다.전날 말에 끌려 다니며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사신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차마 완부옥을 찾아 나설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신들도 침상에 누워 신음하며,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했다.서녀국의 사신들은 특히나 고집스러웠다. 그들은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다쳤으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우리 서녀국은 남제의 현영석 광산 독점을 결단코 허락할 수 없다!”“여러 나라가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남제가 굴복할 것이다!”“이 문제는 중대사이니라! 남제가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둔다면, 양 나라의 오늘이 곧 우리의 내일이 될 터이다!”북월의 사신은 바로 옆방에서 상처로 몸이 쑤시고 아파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고함 소리에 참다못해 짜증이 일었다.감찰위.서녀국이 보낸 두터운 선물을 받은 교먹은 마음이 흔들렸으나, 황제마저 그 사신들에게 진노한 상황이니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요즘 그녀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몇일 전 보낸 자객들이 장기양을 암살하려다 죽었고, 심지어 그녀의 수하 몇 명도 감쪽같이 실종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언니와 관계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교먹은 입궐하여 언니를 찾아가 사람들을 어디로 보냈는지 추궁하고자 하였으나, 문전박대당하고 말았다.교먹은 속이 끓어올라 안절부절 못하였다.‘우리 두 사람은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먼저 약조를 깬 건 언니이니, 내 사람을 건드린 이상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더욱 악이 오른 교먹이었다………자녕궁.녕비는 태후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마마, 어젯밤 황제께서 황후를 자진궁으로 불러들인 사실을 아시옵니까?”“자진궁이라면, 제가 궁에 들어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옵니다.”태후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
며칠 만에 교먹은 유능한 수하 세 명을 잃었다. 그들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것이 틀림없었다. 이 억울함을 가슴속에 품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언니는 내가 내 사람을 잃는다면, 내가 손발이 묶일 것이라 생각했나 보지?’‘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인걸…’교먹은 손에 쥔 찻잔을 꽉 쥐고 있었고, 끝내 그 찻잔을 산산이 부수며 눈에 강렬한 살기를 띄었다.이틀 후, 봉 부인은 며느리와 함께 사찰에 향을 피우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봉 대인의 가슴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예전 장미가 납치되어 큰 비극을 맞았던 일이었다. 이번에도 아내와 며느리가 도적에게 끌려간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워 그는 곧바로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어서 안진이를 관아에서 불러오너라! 빨리!”잠시 후, 봉안진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와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어찌 이런 일이? 실종된 지 얼마나 되었사옵니까? 함께 간 호위들은 어떻게 되었사옵니까?”봉 대인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너를 부른 건 함께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다. 내가 어찌 이 모든 걸 일일이 다 답할 수 있겠느냐!”봉안진은 그런 아버지를 차갑게 바라보며, 무작정 급해하는 모습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어머니와 제 부인이 어디 사찰에 갔는지 정도는 아시지 않사옵니까!”“그거야… 한번 말한 적이 있긴 한데, 까먹었다.” 봉 대인은 난처해하며 변명했다. “나도 나름 공무가 바쁜 사람인데 어찌 그런 것까지 일일이 기억하겠느냐. 네 아내가 어딜 가는지 네가 모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봉안진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대꾸했다.“아버님! 요즘 공무가 많아 집에 들어온 지 사흘이 지났다는 걸 모르셨사옵니까!”이대로 기다리는 것은 방법이 아니었다. 봉안진은 먼저 말을 타고 어머니와 아내가 자주 찾는 사찰 두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일지도 모르니 직접 확인하러 나섰다.한편, 봉 대인은 여전히
자매의 인연으로 엮인 두 사람이지만, 이미 예전의 따스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교먹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언니, 이렇게 급히 날 부른 이유가 뭐야?” 전각 안에는 그녀 둘뿐이었다. 봉구안은 거침없이 말을 꺼냈다. “오늘 벌어진 일, 혹시 네가 한 짓이니?” 교먹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난 언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의 날카로운 장풍이 뻗어 나와 그녀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교먹은 충격을 받고 뒤로 날아가, 둥근 기둥에 등을 부딪쳤다. 그녀는 고통에 찡그렸지만, 화난 봉구안을 보고는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언니, 먼저 날 건들인 건 바로 언니야.” “나를 붙잡아 두고, 내 사람들을 잡아가지 않았어?” “그렇다면, 이제는 언니도 잘 알아야 할 거야. 내가 결코 쉽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오늘은 그저 작은 경고를 했을 뿐이야.” “만약 내 사람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엔 봉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나도 장담할 수 없어.” “사실 궁금하기도 해. 봉장미와 같은 일을 겪게 되면, 사모님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말이야…”교먹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녀의 말에는 도발적인 의미가 충분했다.그녀는 할 말을 다 했고, 그 말대로 행할 자신도 있었다. 봉구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눈앞에 서 있는 이 광기에 찬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은 냉혹하고 살기를 띄웠다. “네 사람들은 내가 모두 죽였어.” 교먹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냉소를 터뜨렸다. “언니,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설마 내가 딱 세 명의 부하만 거느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봉구안의 눈에 싸늘한 광채가 서렸다. 교먹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그 세 명이 죽었더라도, 언니가 봉장미의 대타 혼인을 한 사실은 내 다른 부하들도 잘 알고 있어…”“언니, 내 모든 부하들을 전부 찾아내지 않는 한,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
비록 봉구안이 은위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여국 황제가 자신의 암위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암위들은 즉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곁에는 모신만 남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은근히 이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보아하니, 그들은 네 명령을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국 황제의 명령을 따르며 너를 감시하는구나. 네가 서여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 넌 남제로 끌려가겠지.” 은칠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마, 저희는…”하지만 봉구안은 은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여국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굳이 저와 남제 폐하를 이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적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여국 황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리는 길이 다르구나. 나는 네가 남제 남성들의 권력 아래 있는 걸 싫어해, 여인들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 “서여국의 여인이나 남제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길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천하 대동, 남녀가 평등한 길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누른다면 그 길은 기울고 불공평하며,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서여국의 내란도 조여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가 혼란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군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녀 간 불공평 때문이었습니다. 외지인으로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여국이 남성에게 불공평한 나라이고, 남제가 여성에게 불공평한 나라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멀고 험해 천 년이 지나도 답을 내릴 수
봉구안은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서여국의 미남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을 처리하기 전에, 약은 남겨 두십시오.” 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앞에 있는 귀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녀는 약만 걱정하는 듯했다. 모신은 곁에서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맹 소장군은 남색에 전혀 관심이 없군.’….한편, 서여국 황제가 보낸 미남들을 몰아낸 것을 지켜본 봉구안의 호위들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저따위로 우리 황후마마를 유혹하려 들다니, 당장 찾아가 처리해야겠습니다.”다른 곳에 숨어 있던 은이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머리를 저었다. “형님, 서여국 황제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미남들을 보낸 걸까요?”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풀을 살짝 씹으며 비웃었다. “뻔하지. 서여국 황제는 황후마마를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거다.” “뭐라고요?!” 호위들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만약 서여국 황제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우리 황제 폐하는 어찌 된단 말인가!”그러나 다행히도, 황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남들을 거절하고,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한 시진 후. 서여국 황제는 봉구안이 머물고 있는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구안은 태연한 얼굴로 황제를 마주했다. “내 듣자 하니, 맹 소장군은 내가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가 보낸 미남들은 단순히 약을 발라주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구안이 이들에게 미남계를 쓴 것이라 비난한다면, 황제는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역이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깊은 뜻과 서여국 남자들의 준수한 외모를 보아 외신이 불만을 가질 리 없지요.” “다만… 제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불전에 서약을 한 바 있습니다.”“
서여국 황궁, 천택궁 별채.은위 몇 명이 전각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는 어의가 봉구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봉구안은 내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았다.어의가 물러나려 하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 순간, 서여국 황제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 있거라. 내가 명을 내려 어혈을 풀고 멍을 가라앉히는 약을 바르게 하겠다.”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겠느냐.”“그대의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 계획대로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이번 작전으로 피해를 줄였고, 조여란과 가짜 숙연까지 명분 있게 제거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느냐.”봉구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여란이 동산국과 손잡고 남제를 멸하려 한 만큼, 동산국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그 자를 처단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서여국 황제의 눈빛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번뜩였다.“그 말이 맞다.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파헤칠 것이다.”서여국에서 반역과 군주 시해는 이미 죽음에 값하는 죄였다.게다가 외국과 결탁한 죄는 나라를 배신한 중죄였다.그녀는 이 중죄를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서여국 천옥.조여란은 형틀에 묶인 채 기운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감옥을 직접 찾은 서여국 황제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폐하,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제가 잘못한 건 많지만,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또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드린 것도 저입니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신다면 제 죄를 덜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여국 황제는 냉소하며 말했다.“여동생이라니? 네가 조종하여 내 여동생 행세를 하게 만든 창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자가 내 혈육이라 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