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양은 반응이 빨라 간신히 교먹의 첫 번째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그러자 교먹이 연달아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장기양은 먼 길을 달려와 굶주리고 추위에 시달린 상태라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먹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먹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아이,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하반신을 공격하는 척하며 장기양이 반격하려는 순간, 재빠르게 그의 뒤로 돌아가 무릎 뒤를 세게 차버렸다. 장기양의 한쪽 무릎이 꺾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교먹은 뒤에서 그의 목을 조였다. 장기양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 교먹은 더욱 힘을 주며 목을 조였고, 그의 얼굴은 점점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위기를 느낀 진씨가 급히 소리쳤다. “소장군!” 교먹은 그제야 손을 놓았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그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진씨는 급히 아들을 부축하여 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장기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교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숨을 돌린 후, 그는 교먹에게 공손히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제자를 받아주십시오!” 진씨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교먹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소장군…” 교먹은 애석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양이 이 아이는 겨우 허세뿐인 허약한 무공을 배운 것뿐이라, 전장에 나간다면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장기양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배우겠사옵니다! 소장군님,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장군이 되고 싶었다. 교먹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장군이 아니다.”“지금 나는 감찰위로 궁을 지키고 있으며 군기감의 관리 역할까지 맡고 있어 제자를 받을 시간이 없구나.” “기양, 네 어머니께서 병이 위중하시니 남은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내거라. 고향
장기양은 갈라진 입술로 굉장히 쉰 목소리를 냈다. 봉구안이 그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 눈동자에서 살기를 느꼈다. “선조를 뵈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이다.” 그녀가 설명했다. 장기양은 오래 굶주린 탓에 떨리는 손으로 그녀가 가져온 제물을 집어 들어 다시 내밀었다. “가져가십시오! 어머니에겐 이런 게 필요 없사옵니다!” 봉구안은 그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에 찬 칼을 꺼내 칼집에서 뽑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휙휙 소리를 내더니, 옆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순식간에 베어져 묘비만 한 크기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졌다. 장기양은 그 광경을 보며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봉구안이 그 나무판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성이 무엇이냐.” 장기양은 순간 놀란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봉구안의 말투는 담담하고 부드러웠으며, 어떤 동정도 깔려 있지 않았다. “묘비가 있으면 떠도는 외로운 귀신이 되지는 않겠지.” 장기양은 냉소를 지었다. “난 믿지 않습니다다.” 봉구안은 농담조로 말했다. “귀신도 길을 잃을 수 있거든. 묘비를 세워두면 너의 어머니께서도 여기가 집이라는 걸 아시겠지. 네가 손수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걸 말이야.” 이 말을 듣자 장기양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그 무덤을 바라보며 마른 입술을 움직여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길을 잃을까요?”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봉구안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소년의 귀에 들어왔지만, 그 안에는 은은한 온기가 스며 있었다. 장기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불쑥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성이 진씨입니다.” 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리고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나무판에는 분명한 글씨가 새겨졌다. —[진씨의 묘] 장기양은 이 장면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는 눈이 좋아 남들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동작을 다 볼 수
현영석. 한때 철저히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던 물건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봉구안이 즉시 물었다.“이것은 현영석이 아니더냐? 이걸 어찌 구했단 말이지?”장기양은 도리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되물었다.“스승님께서도 현영석을 아시옵니까?”“3년 전, 처음 맹 소장군을 만났을 때, 부친과 현영석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당시 맹 소장군께서는 읽는 책마다 이 돌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을 정도로 이 돌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사옵니다…”“그걸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사옵니다…” “제 고향 임평에는 산이 많사옵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던 중 1년 전 진정 현영석을 발견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이걸 스승님께 드리는 선물로 삼은 것이온데... 맹 소장군께서는 저를 끝내 받아주시지 않으셨사옵니다…”이미 3년 전, 봉구안은 새로운 죽화총을 개조할 뜻을 품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이 무기의 열을 막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하였고, 이에 가장 적합한 단열 소재가 바로 현영석을 제련하여 만든 현영철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어린아이가 우연히 듣고, 그 돌을 찾아내었을 줄이야!평소 침착하고 절제된 성격의 봉구안이었지만, 내심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쁨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장기양에게 물었다.“나 또한 이 현영석을 매우 좋아한단다. 이 돌을 발견한 산이 어느 곳인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장기양은 스승에게 거침없이 대답했다.그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땅 위에 그림을 그려, 현영석 광산의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하였다. 그림을 마친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스승님께만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스승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가져다 드릴 수 있사옵니다!”이 일은 교먹조차 모르는 일이었다.“내 너에게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봉구안이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장기양은 곧바로 대답했다.“스승님, 명하시옵소서! 저는 온 힘을 다해 수행할 것이옵니다!”……군기감.교먹은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내 말대
누군가 현영석을 바치러 왔다는 소식에 소욱은 교먹을 바라보았다. 교먹은 무심코 입을 열었다. “폐하, 군기감 사람들 말이 현영석은 이미 다 채굴되었기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곧바로 그 소년을 들도록 했다. 교먹의 눈에는 순간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과연 그 현영석이 진짜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잠시 후, 그 소년이 어전 안으로 들여졌다. 그를 본 순간, 교먹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다. 장기양이 아닌가! 장기양 또한 이곳에서 교먹을 보게 되어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스승의 당부가 더 중요하니, 그는 공손히 황제께 예를 올렸다.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폐하께 현영석을 드리러 왔사옵니다.” 소욱은 군기감의 사람들을 궁으로 불러 그 소년이 가져온 현영석이 진품인지 확인하게 했다. 여러 차례의 검증 끝에, 마침내 사람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진정 현영석이옵니다!” 그들은 저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영석이 있으면 새로운 형태의 죽화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교먹은 순간 멍해졌고, 장기양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하여 하필 그가 현영석을 발견한 것인가! 유사양이 그 현영석을 황제 앞에 바치고, 책상 위에 놓았다. 소욱은 장기양에게 물었다. “이 돌은 네가 깎았느냐?” 어쩌면 말처럼 생긴 돌이 이렇게 정교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장기양은 비록 처음 뵙는 황제 앞이라 다소 긴장한 듯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예, 폐하.” 소욱은 그것을 손에 올려놓고 잠시 만지작거리며 무심하게 칭찬했다. “손재주가 좋구나.” 황제의 칭찬과 달리, 군기감 사람들은 소년이 재물을 헛되이 썼다고 느꼈다. “이건 현영석이란다, 꼬마야… 장차 우리 남제에 귀한 무기를 만들 보배인데, 네가… 네가 이걸 깎아 버렸단 말인가?” 교먹은 정의롭게 말했다. “이런 돌을 다듬는 데 시간을 얼마나 소모했느냐
네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장기양은 교먹을 바라보았다. 마침 교먹 또한 그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아이, 혹시 그녀가 거절할까 두려운 건가? 교먹은 그를 격려하려는 마음으로 먼저 말했다. “소년이여, 대담하게 말하거라. 그대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누구라도 너를 제자로 삼고 싶어하지 않겠느냐.” 그녀는 현영석 광산을 위해서라면 억지로라도 그를 제자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하면 될 일이니… 장기양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저의 스승님은… 강호에서 천영귀살이라 불리는 소환이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어전 안이 순식간에 죽음 같은 침묵에 잠겼다. 교먹은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마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소환, 그 사람은 언니가 아닌가?! 거짓말이겠지! 언니는 계속 냉궁에 갇혀 있었는데, 언제 장기양을 제자로 삼은 것이란 말인가!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장기양은 본래 그녀, 즉 맹 소장군을 스승으로 삼아야 했는데, 무슨 소환이란 말인가! 이때 군기감의 몇몇 인물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표정이 굳어갔다. 소환이라는 그 자는 강호에 열두 살에 명성을 떨친 자였다. 열세 살에 홀로 봉황루의 악인 여덟을 없애고, 열다섯에는 동방세, 범진, 완부옥과 연합해 몇몇 마교를 쓸어버린 그였다… 오늘날 무림맹을 세운 그 자가… 저 소년의 스승이라니? 이 현영석 광산이 다른 이의 소유라면,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몰수하면 그만이지만, 소환의 소유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녀를 건드리는 건 곧 강호 전체를 건드리는 일이지 않는가! 강호가 어지러워지면, 나라 또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누군가가 희망을 걸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년이여, 그 무림맹의 소환이 맞느냐?” 장기양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게 허리를 세웠다. “그렇사옵니다.”‘젠장…
교먹은 먼저 걱정 어린 마음으로 물었다. “기양아, 며칠 못 봤는데, 그동안 잘 지냈느냐?” 장기양은 그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날 그녀가 했던 상처 주는 말들이 떠올라 더 이상 예전의 존경심을 품고 그녀를 대할 수 없었다. 그는 예의를 지키며 대답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그는 사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께서 굶주림과 병고로 인해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그녀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소환을 알게 되었느냐?” 장기양은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 “그저 우연히 만났사옵니다.” 아무래도 그는 사저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사저 역시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곧이어 교먹은 상심한 표정을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양아, 내가 그날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너를 전쟁터에 보내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단다.”“너의 아버지와 나는 오랜 친구였지. 장군의 일은…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단다.”“너는 장군의 유일한 혈육이니, 나는 네가 무사하고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겠느냐?” 장기양은 그녀에게 여전히 남다른 감정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그가 동경하던 영웅은 바로 명 소장군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알았기에, 설령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소장군님, 그래도 저는 군에 들어가고 싶사옵니다. 이제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셨으니, 더는 저를 말리지 마시옵소서.” 교먹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에게 먼저 말하도록 하여라.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으니라. 나는 네 아버지와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사이이니, 네 안전을 반드시 지켜주마.” 장기양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그는 입을 떼어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상자 안에는 다름 아닌 현영석이 있었다. 봉구안은 의아했다. 소욱이 왜 자신에게 이 물건을 보낸 것일까? 유사양은 현영석과 상자를 내려놓으며, 황제가 이 돌을 냉궁으로 보내라고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황제가 내려주는 물건은 모두 은혜로운 하사품이라 할 수 있지만… 돌 하나를 냉궁에 있는 황후에게 보내다니, 그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엔, 그는 황후마마가 말 타는 것을 좋아하니, 황제가 말의 형태를 띤 이 돌을 선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황제는 그때 무겁게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황후의 성격은 이 돌과 같아, 고집 세고 완강하지.” 황제의 이 말을, 유사양은 황후에게 전하지 않았다. 감히 한 자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황후마마, 황제께서는 마마를 늘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봉구안은 그 속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현영석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그것은 그녀의 제자 장기양이 자신의 스승에게 보낸 진심의 선물이었다. ……감찰위.교먹은 방에 틀어박혀 우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녀는 그날 장기양을 내쫓은 것을 후회하고, 현영석 광산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제 그 모든 공적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이 감찰위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틀 후. 장기양은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 이미 스승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고 전했다. 어전에서 이 전갈을 들은 서왕이 그 말을 듣고 근심스러운 얼굴을 했다. “폐하, 저 소환이라는 사람이 궁에 들어와 어전을 뵙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폐하께서 궁 밖으로 나가 만나야 한다 하니, 혹여 매복이 있을까 염려되옵니다.” 소욱의 깊은 눈동자는 담담하게 비쳤다. “그는 의로운 협객이니, 군왕을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래도 조심하심이 좋겠사옵니다.” “알겠다.” 소욱은 가
봉구안은 훗날 진실이 밝혀질 때 황제가 스승을 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면권을 구하고자 했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면권을 얻기 위해서는 큰 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지금 당장 주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언젠가 폐하께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시면, 평안 전당포로 저를 찾아주시면 되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탁자 위에 은화 한 덩이를 올려놓고, 걸상 옆에 둔 긴 칼을 들고 유유히 떠나갔다. 밖에 서 있던 진한길은 그녀와 마주쳤다. 그는 이 강호에서 명성이 자자한 천영귀살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 뒤에 황제가 나왔다.진한길은 한 걸음 나아가 명을 기다렸다. 소욱 황제는 앞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 양가의 자녀들을 사서,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예!” 진한길이 공손히 명을 받들었다.……현영석 광산의 일은 협의가 마무리되자, 관청에서는 본격적으로 광산 개발을 시작했다. 장기양은 정식으로 군영에 입성하기 전, 매일 밤 봉구안은 궁을 나와 그의 무예를 지도하고 병법을 가르쳤다.그는 상당한 재능이 있어, 금방 깨우쳤다. 그러던 중, 어느 평범한 맑은 날, 강빈의 부친이 궁에 들렀다. 오랜만에 만난 부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팔이…” 강빈은 아버지의 비어있는 소매를 보고 슬픔이 치밀었다. 그러나 강 대인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팔 하나를 내어주고 얻은 승리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강빈은 등을 돌려 눈물을 감췄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그녀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버지, 북방이 어느정도 평정되었다고 하옵니다. 이제 황성으로 돌아오실 수 없겠사옵니까? 더는 불안에 떨고 싶지 않사옵니다…” 강 대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으나, 곧 신중하게 대답했다. “북방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나,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
비록 봉구안이 은위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여국 황제가 자신의 암위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암위들은 즉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곁에는 모신만 남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은근히 이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보아하니, 그들은 네 명령을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국 황제의 명령을 따르며 너를 감시하는구나. 네가 서여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 넌 남제로 끌려가겠지.” 은칠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마, 저희는…”하지만 봉구안은 은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여국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굳이 저와 남제 폐하를 이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적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여국 황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리는 길이 다르구나. 나는 네가 남제 남성들의 권력 아래 있는 걸 싫어해, 여인들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 “서여국의 여인이나 남제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길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천하 대동, 남녀가 평등한 길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누른다면 그 길은 기울고 불공평하며,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서여국의 내란도 조여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가 혼란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군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녀 간 불공평 때문이었습니다. 외지인으로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여국이 남성에게 불공평한 나라이고, 남제가 여성에게 불공평한 나라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멀고 험해 천 년이 지나도 답을 내릴 수
봉구안은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서여국의 미남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을 처리하기 전에, 약은 남겨 두십시오.” 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앞에 있는 귀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녀는 약만 걱정하는 듯했다. 모신은 곁에서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맹 소장군은 남색에 전혀 관심이 없군.’….한편, 서여국 황제가 보낸 미남들을 몰아낸 것을 지켜본 봉구안의 호위들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저따위로 우리 황후마마를 유혹하려 들다니, 당장 찾아가 처리해야겠습니다.”다른 곳에 숨어 있던 은이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머리를 저었다. “형님, 서여국 황제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미남들을 보낸 걸까요?”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풀을 살짝 씹으며 비웃었다. “뻔하지. 서여국 황제는 황후마마를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거다.” “뭐라고요?!” 호위들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만약 서여국 황제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우리 황제 폐하는 어찌 된단 말인가!”그러나 다행히도, 황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남들을 거절하고,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한 시진 후. 서여국 황제는 봉구안이 머물고 있는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구안은 태연한 얼굴로 황제를 마주했다. “내 듣자 하니, 맹 소장군은 내가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가 보낸 미남들은 단순히 약을 발라주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구안이 이들에게 미남계를 쓴 것이라 비난한다면, 황제는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역이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깊은 뜻과 서여국 남자들의 준수한 외모를 보아 외신이 불만을 가질 리 없지요.” “다만… 제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불전에 서약을 한 바 있습니다.”“
서여국 황궁, 천택궁 별채.은위 몇 명이 전각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는 어의가 봉구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봉구안은 내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았다.어의가 물러나려 하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 순간, 서여국 황제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 있거라. 내가 명을 내려 어혈을 풀고 멍을 가라앉히는 약을 바르게 하겠다.”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겠느냐.”“그대의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 계획대로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이번 작전으로 피해를 줄였고, 조여란과 가짜 숙연까지 명분 있게 제거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느냐.”봉구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여란이 동산국과 손잡고 남제를 멸하려 한 만큼, 동산국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그 자를 처단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서여국 황제의 눈빛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번뜩였다.“그 말이 맞다.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파헤칠 것이다.”서여국에서 반역과 군주 시해는 이미 죽음에 값하는 죄였다.게다가 외국과 결탁한 죄는 나라를 배신한 중죄였다.그녀는 이 중죄를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서여국 천옥.조여란은 형틀에 묶인 채 기운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감옥을 직접 찾은 서여국 황제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폐하,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제가 잘못한 건 많지만,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또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드린 것도 저입니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신다면 제 죄를 덜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여국 황제는 냉소하며 말했다.“여동생이라니? 네가 조종하여 내 여동생 행세를 하게 만든 창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자가 내 혈육이라 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