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세 명이었고, 그중 둘은 자주 보지 못했습니다.” 채소 장수는 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자주 보지 못했다는 것은, 곧 보긴 봤다는 말이었다. 봉구안은 다시 물었다. “그 두 명의 특징이 무엇이냐.” “한 명은 얼굴에 큰 점이 있고, 다른 한 명은… 도박장을 좋아하는 상습 도둑입니다. 그놈은 입이 뾰족하고 얼굴이 여우같이 생겼지요… 대인,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아는 것은 다 말했습니다!” 봉구안은 단검으로 그의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교먹의 명을 따르는 것이냐.” 채소 장수는 과다출혈로 기력이 쇠한 상태였다. “저희는… 저희는 모두 조정에 의해 수배당한 강호의 대도입니다. 그 분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관아에 넘겨진다고 했습니다.”“또한 그 분의 명을 따르면 저희에게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분은 시시 때때로 저희에게 독약을 먹였습니다… 해독제 제때 주지 않으면 저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었죠.” “대인, 제가 이제 그 분을 배신했으니 살아남을 길이 없사옵니다.” “부디… 절 한 번에 죽여 주십시오!” 봉구안은 차갑고도 냉철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좋다.” 그리하여 그녀는 단칼에 채소 장수의 목을 그어 버렸다. 그자는 원래 중대한 범죄자이니 죽어도 아깝지 않았다. 봉구안은 칼을 집어넣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달빛이 그녀의 몸에 내려앉아 차가우면서도 맑았다. 그녀는 금덩이 하나를 던지며 주인에게 말했다. “시체는 산기슭에 묻어 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추가로 사람 두 명을 더 찾아야겠다.” 주인은 죽을힘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말했다. “명령하시옵소서!” ……감찰위. 교먹은 밤을 새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도안을 그려보았으나 모두 쓸모가 없었다. 문제는 그 단열판의 재료였다. 그녀는 여러 책을 들춰보며 눈이 충혈될 때까지 연구했고, 마침내 ‘현영석’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을 제련하면 현영이라는 물질이
장기양은 반응이 빨라 간신히 교먹의 첫 번째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그러자 교먹이 연달아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장기양은 먼 길을 달려와 굶주리고 추위에 시달린 상태라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먹의 공격을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먹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아이,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하반신을 공격하는 척하며 장기양이 반격하려는 순간, 재빠르게 그의 뒤로 돌아가 무릎 뒤를 세게 차버렸다. 장기양의 한쪽 무릎이 꺾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교먹은 뒤에서 그의 목을 조였다. 장기양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 교먹은 더욱 힘을 주며 목을 조였고, 그의 얼굴은 점점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위기를 느낀 진씨가 급히 소리쳤다. “소장군!” 교먹은 그제야 손을 놓았지만, 속으로는 당장에라도 그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진씨는 급히 아들을 부축하여 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장기양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교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숨을 돌린 후, 그는 교먹에게 공손히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제자를 받아주십시오!” 진씨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교먹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소장군…” 교먹은 애석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양이 이 아이는 겨우 허세뿐인 허약한 무공을 배운 것뿐이라, 전장에 나간다면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장기양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 “배우겠사옵니다! 소장군님,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장군이 되고 싶었다. 교먹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장군이 아니다.”“지금 나는 감찰위로 궁을 지키고 있으며 군기감의 관리 역할까지 맡고 있어 제자를 받을 시간이 없구나.” “기양, 네 어머니께서 병이 위중하시니 남은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내거라. 고향
장기양은 갈라진 입술로 굉장히 쉰 목소리를 냈다. 봉구안이 그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 눈동자에서 살기를 느꼈다. “선조를 뵈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이다.” 그녀가 설명했다. 장기양은 오래 굶주린 탓에 떨리는 손으로 그녀가 가져온 제물을 집어 들어 다시 내밀었다. “가져가십시오! 어머니에겐 이런 게 필요 없사옵니다!” 봉구안은 그의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에 찬 칼을 꺼내 칼집에서 뽑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휙휙 소리를 내더니, 옆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순식간에 베어져 묘비만 한 크기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졌다. 장기양은 그 광경을 보며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봉구안이 그 나무판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성이 무엇이냐.” 장기양은 순간 놀란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봉구안의 말투는 담담하고 부드러웠으며, 어떤 동정도 깔려 있지 않았다. “묘비가 있으면 떠도는 외로운 귀신이 되지는 않겠지.” 장기양은 냉소를 지었다. “난 믿지 않습니다다.” 봉구안은 농담조로 말했다. “귀신도 길을 잃을 수 있거든. 묘비를 세워두면 너의 어머니께서도 여기가 집이라는 걸 아시겠지. 네가 손수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걸 말이야.” 이 말을 듣자 장기양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그 무덤을 바라보며 마른 입술을 움직여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길을 잃을까요?”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봉구안의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소년의 귀에 들어왔지만, 그 안에는 은은한 온기가 스며 있었다. 장기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불쑥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성이 진씨입니다.” 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리고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나무판에는 분명한 글씨가 새겨졌다. —[진씨의 묘] 장기양은 이 장면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는 눈이 좋아 남들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동작을 다 볼 수
현영석. 한때 철저히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던 물건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봉구안이 즉시 물었다.“이것은 현영석이 아니더냐? 이걸 어찌 구했단 말이지?”장기양은 도리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되물었다.“스승님께서도 현영석을 아시옵니까?”“3년 전, 처음 맹 소장군을 만났을 때, 부친과 현영석에 대해 나누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당시 맹 소장군께서는 읽는 책마다 이 돌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을 정도로 이 돌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사옵니다…”“그걸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사옵니다…” “제 고향 임평에는 산이 많사옵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던 중 1년 전 진정 현영석을 발견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이걸 스승님께 드리는 선물로 삼은 것이온데... 맹 소장군께서는 저를 끝내 받아주시지 않으셨사옵니다…”이미 3년 전, 봉구안은 새로운 죽화총을 개조할 뜻을 품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이 무기의 열을 막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하였고, 이에 가장 적합한 단열 소재가 바로 현영석을 제련하여 만든 현영철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어린아이가 우연히 듣고, 그 돌을 찾아내었을 줄이야!평소 침착하고 절제된 성격의 봉구안이었지만, 내심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쁨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장기양에게 물었다.“나 또한 이 현영석을 매우 좋아한단다. 이 돌을 발견한 산이 어느 곳인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장기양은 스승에게 거침없이 대답했다.그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땅 위에 그림을 그려, 현영석 광산의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하였다. 그림을 마친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스승님께만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스승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가져다 드릴 수 있사옵니다!”이 일은 교먹조차 모르는 일이었다.“내 너에게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봉구안이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장기양은 곧바로 대답했다.“스승님, 명하시옵소서! 저는 온 힘을 다해 수행할 것이옵니다!”……군기감.교먹은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내 말대
누군가 현영석을 바치러 왔다는 소식에 소욱은 교먹을 바라보았다. 교먹은 무심코 입을 열었다. “폐하, 군기감 사람들 말이 현영석은 이미 다 채굴되었기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곧바로 그 소년을 들도록 했다. 교먹의 눈에는 순간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과연 그 현영석이 진짜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잠시 후, 그 소년이 어전 안으로 들여졌다. 그를 본 순간, 교먹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다. 장기양이 아닌가! 장기양 또한 이곳에서 교먹을 보게 되어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스승의 당부가 더 중요하니, 그는 공손히 황제께 예를 올렸다.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폐하께 현영석을 드리러 왔사옵니다.” 소욱은 군기감의 사람들을 궁으로 불러 그 소년이 가져온 현영석이 진품인지 확인하게 했다. 여러 차례의 검증 끝에, 마침내 사람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진정 현영석이옵니다!” 그들은 저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영석이 있으면 새로운 형태의 죽화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교먹은 순간 멍해졌고, 장기양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하여 하필 그가 현영석을 발견한 것인가! 유사양이 그 현영석을 황제 앞에 바치고, 책상 위에 놓았다. 소욱은 장기양에게 물었다. “이 돌은 네가 깎았느냐?” 어쩌면 말처럼 생긴 돌이 이렇게 정교할 수는 없었기에 말이다. 장기양은 비록 처음 뵙는 황제 앞이라 다소 긴장한 듯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예, 폐하.” 소욱은 그것을 손에 올려놓고 잠시 만지작거리며 무심하게 칭찬했다. “손재주가 좋구나.” 황제의 칭찬과 달리, 군기감 사람들은 소년이 재물을 헛되이 썼다고 느꼈다. “이건 현영석이란다, 꼬마야… 장차 우리 남제에 귀한 무기를 만들 보배인데, 네가… 네가 이걸 깎아 버렸단 말인가?” 교먹은 정의롭게 말했다. “이런 돌을 다듬는 데 시간을 얼마나 소모했느냐
네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장기양은 교먹을 바라보았다. 마침 교먹 또한 그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아이, 혹시 그녀가 거절할까 두려운 건가? 교먹은 그를 격려하려는 마음으로 먼저 말했다. “소년이여, 대담하게 말하거라. 그대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으니, 누구라도 너를 제자로 삼고 싶어하지 않겠느냐.” 그녀는 현영석 광산을 위해서라면 억지로라도 그를 제자로 받아줄 생각이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를 제거하면 될 일이니… 장기양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저의 스승님은… 강호에서 천영귀살이라 불리는 소환이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어전 안이 순식간에 죽음 같은 침묵에 잠겼다. 교먹은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마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소환, 그 사람은 언니가 아닌가?! 거짓말이겠지! 언니는 계속 냉궁에 갇혀 있었는데, 언제 장기양을 제자로 삼은 것이란 말인가!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장기양은 본래 그녀, 즉 맹 소장군을 스승으로 삼아야 했는데, 무슨 소환이란 말인가! 이때 군기감의 몇몇 인물들은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표정이 굳어갔다. 소환이라는 그 자는 강호에 열두 살에 명성을 떨친 자였다. 열세 살에 홀로 봉황루의 악인 여덟을 없애고, 열다섯에는 동방세, 범진, 완부옥과 연합해 몇몇 마교를 쓸어버린 그였다… 오늘날 무림맹을 세운 그 자가… 저 소년의 스승이라니? 이 현영석 광산이 다른 이의 소유라면,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몰수하면 그만이지만, 소환의 소유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녀를 건드리는 건 곧 강호 전체를 건드리는 일이지 않는가! 강호가 어지러워지면, 나라 또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누군가가 희망을 걸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년이여, 그 무림맹의 소환이 맞느냐?” 장기양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게 허리를 세웠다. “그렇사옵니다.”‘젠장…
교먹은 먼저 걱정 어린 마음으로 물었다. “기양아, 며칠 못 봤는데, 그동안 잘 지냈느냐?” 장기양은 그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날 그녀가 했던 상처 주는 말들이 떠올라 더 이상 예전의 존경심을 품고 그녀를 대할 수 없었다. 그는 예의를 지키며 대답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그는 사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께서 굶주림과 병고로 인해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그녀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소환을 알게 되었느냐?” 장기양은 대충 거짓말을 지어냈다. “그저 우연히 만났사옵니다.” 아무래도 그는 사저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사저 역시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곧이어 교먹은 상심한 표정을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양아, 내가 그날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너를 전쟁터에 보내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단다.”“너의 아버지와 나는 오랜 친구였지. 장군의 일은…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단다.”“너는 장군의 유일한 혈육이니, 나는 네가 무사하고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겠느냐?” 장기양은 그녀에게 여전히 남다른 감정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그가 동경하던 영웅은 바로 명 소장군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을 알았기에, 설령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소장군님, 그래도 저는 군에 들어가고 싶사옵니다. 이제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셨으니, 더는 저를 말리지 마시옵소서.” 교먹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에게 먼저 말하도록 하여라.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으니라. 나는 네 아버지와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사이이니, 네 안전을 반드시 지켜주마.” 장기양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그는 입을 떼어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상자 안에는 다름 아닌 현영석이 있었다. 봉구안은 의아했다. 소욱이 왜 자신에게 이 물건을 보낸 것일까? 유사양은 현영석과 상자를 내려놓으며, 황제가 이 돌을 냉궁으로 보내라고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황제가 내려주는 물건은 모두 은혜로운 하사품이라 할 수 있지만… 돌 하나를 냉궁에 있는 황후에게 보내다니, 그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엔, 그는 황후마마가 말 타는 것을 좋아하니, 황제가 말의 형태를 띤 이 돌을 선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황제는 그때 무겁게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황후의 성격은 이 돌과 같아, 고집 세고 완강하지.” 황제의 이 말을, 유사양은 황후에게 전하지 않았다. 감히 한 자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황후마마, 황제께서는 마마를 늘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봉구안은 그 속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현영석을 받아들였다. 어쨌든, 그것은 그녀의 제자 장기양이 자신의 스승에게 보낸 진심의 선물이었다. ……감찰위.교먹은 방에 틀어박혀 우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녀는 그날 장기양을 내쫓은 것을 후회하고, 현영석 광산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제 그 모든 공적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이 감찰위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틀 후. 장기양은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 이미 스승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고 전했다. 어전에서 이 전갈을 들은 서왕이 그 말을 듣고 근심스러운 얼굴을 했다. “폐하, 저 소환이라는 사람이 궁에 들어와 어전을 뵙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폐하께서 궁 밖으로 나가 만나야 한다 하니, 혹여 매복이 있을까 염려되옵니다.” 소욱의 깊은 눈동자는 담담하게 비쳤다. “그는 의로운 협객이니, 군왕을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래도 조심하심이 좋겠사옵니다.” “알겠다.” 소욱은 가
현비의 눈엔 짙은 허망함이 어려 있었다."폐하, 폐하께서 단 한 번이라도 신첩을 이해하려 하셨더라면 아셨을 겁니다. 신첩은 본래 약리학에 정통했습니다.”“영비마마께 쓴 독은 신첩이 직접 조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의원이 제 몸을 고치지 못하듯, 신첩 또한 제 독을 온전히 해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몸속의 독성을 억누를 수 있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했습니다."더 할 말은 없다는 듯, 현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소욱은 손짓으로 진한길에게 몸을 제압한 손을 풀라고 지시했다.양팔이 풀리자, 현비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듯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그녀는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폐하, 제발 제 가족만은… 용서해주시옵소서."곁에서 지켜보던 진한길은 표정 없이 서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 얕은 동정이 스쳤다. 현비에게 분명 죄는 있었지만, 모든 시작은 모용란의 악행이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소욱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현비는 황제인 나를 속이고 궁중의 법도를 어겼다. 천형에 가두고 추후 처분을 기다리게 하라."현비는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마음 한켠으론 안도했다. 그 죗값이 가족에게 미치지 않았으니 말이다.궁에서 끌려나가는 길에 현비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하늘이… 이렇게 넓었구나."수년간 좁디좁은 궁궐 안에 갇혀 살며 늘 발밑만 바라봤던 그녀.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도, 마음을 여는 법도 잊은 채 살아왔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가두었고, 걸을수록 길은 좁아졌다.……현비가 다시 천형에 갇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궁 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지만, 정작 무슨 죄로 잡혀간 건지는 알지 못하였다.현비의 궁녀인 동하는 자녕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태후께 간청했다.태후는 전각 안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곁에서 시중들던 계 상궁은 태후가 독경을 마친 뒤 몸을 굽혀 조심스럽게 말했다."태후 마마, 동하 저 아이가 벌써 두 시진째 무릎 꿇고
현비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영비마마와 폐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지요. 그 시절, 마마는 후궁 중에서도 가장 총애를 받았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영비와 닮았다는 이유로 서둘러 저를 궁에 들여보내셨죠.”“궁의 모든 이들은 영비마마가 온화하고 현명하다고 칭송했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 입궁했을 땐 그렇게 믿었고요. 하지만 곧 마마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습니다.”“겉으로는 자매처럼 지내며 장신구도 건네주고, 심지어 폐하를 뵐 때도 저를 데리고 가셨었죠."소욱은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가 모용란을 후궁으로 맞이한 것도 정이 아닌 우정 때문이었다. 즉위 초창기 정사에 바빠 후궁을 찾을 여유도 없었다. 모용란이 어전 출입이 잦았던 것은 기억했지만, 그 자리에 현비가 있었다는 기억은 없었다.현비는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챘다."폐하께서는 단 한 번도 저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영비마마는 다르셨죠. 간택 당시 폐하께서 제 시를 칭찬하신 그 한마디가 마마에게는 큰 상처였습니다.”“폐하께는 그저 흘려 넘긴 말이었겠지만 저에겐 큰 기쁨이었고, 영비마마에겐 시기와 질투의 씨앗이 되었습니다."소욱은 더는 후궁들 사이의 질투와 다툼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런 다툼을 혐오했지만, 그것을 바꿀 힘은 없었다."모용란이 어떻게 너에게 독을 먹였느냐. 왜 그때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현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마치 허탈한 이야기를 들은 듯 눈에 물기가 어렸다."그때 제가 폐하께 말씀드렸다면 과연 믿어주셨을까요? 폐하께서 영비마마를 벌하셨을까요?"소욱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단언하듯 말했다."아니요. 폐하께서는 안 그러셨을 겁니다."그 말은 속삭임이 아니라, 분노 어린 한숨에 가까웠다. 그녀의 시선엔 실망과 원망이 가득했다."폐하, 저는 한 번도 폐하께서 현명한 군주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황후 마마께서 나타난 후에야 폐하께서는 조금씩 달라지셨습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소욱은 황궁으로 복귀했다.아침 조회 자리에서 신료들이 약쟁이 사건을 거론했다.“폐하, 각지에서 과도한 억제 조치가 이어지고 있사온데 약쟁이들이 그 틈을 타 소란을 일으켜 억울한 판결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무고한 지방 관원들이 연루되어 피해를 입고 있으니 부디 폐하께서 신중히 살펴주시옵소서.”소욱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약쟁이들이 의도적으로 관료들의 집에 숨어들어 수사 대상이 되도록 만들고 사건을 키워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은 혼란 속에 숨어 빠져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와 얽힌 관료들이 모두 무죄라고는 단정할 수 없었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신들을 파견해 진상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었다.조회가 끝난 후 소욱은 곧장 현흥궁으로 향했다.그가 입은 용포는 황제의 위엄을 더욱 드러냈고 냉랭한 분위기는 더욱 그를 권위 있게 만들었다.오랜만에 성상의 얼굴을 뵙는 궁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황제 폐하를 뵙습니다!”궁 안.궁녀 동하가 다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마마! 마마! 폐하께서 오셨습니다!”현비는 탕약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다.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고 평소의 생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뜻밖의 방문에 놀란 그녀는 눈빛에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폐하께서 왜 이곳에...그녀는 급히 약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맞을 준비를 했다.소욱의 등장과 함께 전각 안이 시끄러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엄 넘치는 황제가 천천히 전각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가볍게 입술을 다문 채 예를 올렸다.“신첩,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소욱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잘생긴 얼굴 위엔 차가운 무표정이 드리워 있었다.그는 손짓 한 번으로 전각 안의 궁녀들을 물리고 현비만 남겨두었다.현비는 당황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내가 묻는 말엔 진실만을 말해야할 것이다.”소욱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얼굴엔 엄중함이 어렸다.현비는 속내
황궁.현흥궁.현비는 병이 도지자 오래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었다.그녀는 시녀 동하가 태후를 찾아가 홍련초를 구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마마...”찰싹!갑작스레 손이 날아와, 동하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당황한 동하는 그 자리에 굳어섰다.무엇이 잘못된 건지, 어째서 현비가 이토록 격앙된 건지 알 수 없었다.현비는 힘겹게 가슴을 짚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가.”동하는 현비의 기분이 몹시 나쁜가 보다 여기고 조용히 물러나려던 찰나, 누군가 궁 안으로 들어섰다.“황제 폐하의 명이다. 염 신의를 모셔와 현비마마의 병을 진찰하게 하라!”그 순간 현비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겉으로는 태연한 듯했지만, 장막 너머의 목소리에 단호하게 응했다.“폐를 끼쳐 송구하네. 폐하께는 괜찮아졌다 전해주게.”그러나 염 신의는 말을 자르며 곧장 앞으로 나섰다.“마마, 폐하께서 직접 전하셨습니다. 반드시 병을 완쾌하라 하셨습니다.”그는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장막 앞으로 다가가 진맥을 청했다.“손을 내어주시옵소서. 진맥을 해야 합니다.”한동안 장막 안은 고요했다.잠시 후, 하얀 손 하나가 조심스레 틈 사이로 뻗어 나왔다.동하는 재빨리 비단 손수건을 꺼내 손목 위에 덮었다.여인의 살이 남성에게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궁녀들은 눈치도 없이 염 신의에게 의자 하나 내주지 않았다.그는 묵묵히 허리를 굽혀 그대로 맥을 짚었다.현비는 말없이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잠시 후 염 신의는 맥에서 손을 거두며 말했다.“마마, 피 한 방울이 필요합니다.”그는 말하면서 옆에 있던 동하에게 바늘과 작은 사기그릇을 건넸다.동하는 조심스레 다가가 속삭였다.“마마, 소녀가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현비는 익숙한 듯 손을 내밀며 다정히 말했다.“괜찮아. 어서 하렴.”동하는 피를 모아 염신의에게 전해주었다.염 신의는 약상자를 열어 조그만 병 하나를 꺼냈다.그 안의 약가루를 그릇 위에 조심스레 부었다.그의 손길은 침착했고 집중력 넘쳤
모용가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모용가를 은밀히 조사하라고 했을 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들었느냐.”“갑자기 왜 그 얘길 꺼낸 것이냐? 혹시…”그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봉구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는 모용가가 약쟁이 사건과 얽혀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봉구안은 단정한 목소리로 답했다.“사형이 약쟁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입니다.”“그 말은 곧 선황제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미 약쟁이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그 시점을 고려하면, 선황제께서 무언가 눈치채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소첩은 그래서 모용가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다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 아직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그녀의 말에 담긴 확신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소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모용가를 억지로 몰아세우겠다는 것이냐.”농담조였지만, 소욱 역시 마음속으로 봉구안의 의심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선황제의 유언은 분명 모용가를 경계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껏 감찰을 맡은 자들이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은밀하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그런 점에서 모용가의 행적은 약쟁이들의 수법과 닮아 있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소욱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사람을 더 붙이도록 하마. 이번엔 제대로 조사하게 하자.”그날 밤 소욱은 평소처럼 자유각에 머물렀다.궁 안의 일은 이미 손을 놓아도 될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후궁의 일은 태후가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빈들 또한 조용한 편이었으나, 단 하나. 약쟁이 사건만큼은 태후의 골칫거리였다.태후는 후궁들에게 자중할 것을 명하며, 그 본보기로 현비를 들었다.그날 밤 현비의 시녀 동하가 태후를 찾아와 다급히 울부짖었다.“태후마마, 제발 저희 마마를 살려주십시오!”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태후는 몸을 일으키며
봉구안은 자신이 직접 그려둔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펼쳐 보였다.“황성을 총타로 삼아 사방에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지령 경로입니다.”“그들의 평소 수법을 보면, 지금처럼 조정과 무림이 손잡고 그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연락선을 끊고 총타부터 지키는 것이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인물들을 정리하는 게 먼저입니다.”소욱이 그녀의 말을 받아 이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 틈을 노려 분타부터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로군.”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녀는 지도 위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여기 표시된 곳들이 현재 저희가 확인한 그들의 은신처입니다.”“대부분 외진 산골이나 황량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요. 죽산진 근처 산속 동굴처럼 말이지요.”“폐하께서도 기억하시겠지요. 예전에 황성 도관 아래에서 많은 약쟁이들을 발견했을 때를요.”소욱은 그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봉구안은 약쟁이에게 상처를 입었고, 그가 그녀를 등에 업고 간신히 빠져나왔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도관 자체가 약쟁이의 은신처였을지도 몰라요.”“그리고 기억하시겠지요.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 약쟁이 대군을 풀었는데, 그 시각이 바로 늦은 밤이었어요.”소욱은 그녀가 전하려는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그는 지도 위에 찍힌 지점들을 살펴보았다.“은신처의 위치와 약쟁이들의 활동 시각을 보면, 그 자들은 어둠 속 환경에 익숙한 존재들이겠구나.”봉구안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어둡고 외진 곳이야말로 약쟁이들의 은신처로는 가장 알맞은 곳일 거예요.”“저희가 죽산진에서 약쟁이 소굴을 조사했을 때도, 산속 동굴 안은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지요.”“강주에서 발견한 은신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겹치는 것들이 많아요.”소욱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냉정한 눈빛
봉구안은 놀란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에도 홍련초가 자란다고요?"소욱은 곧바로 진지하게 대답했다."누가 심었는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서쪽 교외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거야."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소욱은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더 담으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으렴. 요즘 부쩍 더욱 말라 보이는구나. 아이를 품은 몸이라면 더 잘 챙겨야 하지."하지만 봉구안의 눈빛은 여전히 다른 데 머물러 있었다."혹시… 열무신의 소식은 아직도 없는거죠?"소욱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가 더 걱정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소탁을 황성으로 데려온 뒤 그는 곧장 태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게 했다. 하지만 상처가 눈에 있는 탓에 회복이 쉽지 않았고 지금은 사실상 눈이 먼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하녀를 붙여 주겠다는 제안도 번번이 거절했다.봉구안은 차분하게 물었다."폐태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마땅한 집을 하나 찾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혹시나 있을 위험을 대비해 그림자 호위도 붙여 두었다."그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소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예전에 널 시중들던 연상을 혹시 기억하느냐?"봉구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연상… 기억하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여쭤 보시는 거죠?"소욱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요 며칠 사이 그 아이가 소탁을 여러 번 찾아갔다는구나. 꽤 신경을 쓰는 듯했다."봉구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가요?""그 아이는 아직 시집을 안 가지 않았느냐."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곧장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론 연상은 궁을 떠난 뒤 곧장 진가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혼자서 글씨와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 왔고요. 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방향은 확실합니다. 진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녕비는 자기가 무슨 심각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현비를 바라보았다.“언니, 우리 자매처럼 지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남한테 덜미 잡히기 전에 차라리 폐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결백한 사람은 당당해도 되는 법이지 않겠어요?”“홍련초는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약초예요. 죄가 있는 건 그걸로 독을 만든 자들이죠.”“언니처럼 착한 분이 약쟁이랑 엮일 리가 없잖아요, 그쵸?”그녀의 웃음은 현비의 눈에 유난히 싸늘하고 따갑게 느껴졌다.현비는 얼굴이 희미하게 질려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녕비, 네가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맹세컨대 내가 마시는 약은 약쟁이 사건과는 정말 아무 관련도 없어.”녕비는 굳이 대꾸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제가 언니를 믿느냐 마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죠.”현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깊은 숨을 고르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야.”“자,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전 이만 자녕궁으로 가볼게요. 태후마마께 기도드릴 시간이네요. 굳이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녕비가 자리를 뜬 뒤, 곁에 있던 시녀 동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마마, 녕비 마마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폐하께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계시다 하니, 홍련초가 얽히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커요.”현비의 눈빛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녀는 그저 이 궁 안에서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녀는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잘못도 없었다.“…종이랑 붓을 준비하거라. 폐하를 뵙기 전에 아버지께 먼저 편지를 써야겠다.”“예, 마마.”……그날 밤.자유각.소욱은 이날 밤도 자유각에 머물며 봉구안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상소문을 검토하는 데 쓰였고 그녀 곁에 있어도 여유를 누릴 틈은 많지 않았다.그는 문서를 펼쳐든 채 농담처럼 말했다.“황제가 된 건, 아마 전생의 업보였던 모양
그해 봉구안은 스스로 천지설산에 올라 자욱화를 채취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이가 바로 염 신의였다.그 후 인연이 닿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무렵 염 신의는 약쟁이 독의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다.이에 봉구안은 그를 황성으로 데려왔다.그는 예전에도 한 차례 해독제를 만들어낸 바 있었으나, 중독자들에게 써보았을 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정한 해독제가 완성된 것이다.분명 기쁜 소식이었다.“염 신의 말로는, 홍련초 덕분에 그동안 풀지 못했던 원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이미 중독자들에게 해독제를 복용시켰고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장순의 어머니까지도요.”장순은 아직 어린 유생이었으나, 과거 제후국들이 남제를 포위했을 당시 봉구안이 특별히 데려갔던 소년이었다.그는 적국을 향한 설전에서 통쾌한 활약을 펼친 바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오래전 약쟁이 독에 중독되어, 살아 있으되 정신이 나간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해독제가 생겼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경사였다.허나 좋은 일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 봉구안이 눈짓 하나만 보내도 소욱은 그녀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 소욱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백에게 명을 내렸다.“사람을 붙여 염 신의를 철저히 보호하라. 해독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오백은 곧장 명을 따랐다.밖에서 듣고 있던 진한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폐하께서는 왜 이렇게 오백을 쓰시는 걸까?’오백이 물러난 뒤,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해독제가 완성되었으니 약쟁이 독이 아무리 퍼져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해독제는 결정적인 열쇠예요. 폐하, 문득 떠올랐는데… 담대연도 약쟁이 독에 중독된 사람이었죠?”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그 자에게도 해독제를 줄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지?”“네.”봉구안도 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