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87화

작가: 일설연우
황궁 대전 안.

설 연회는 한참 분위기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고 있었다.

궁중의 비빈들은 평소의 날카로운 신경전을 잠시 잊고, 웃고 떠들며 새해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흥겨운 자리에도 황후의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소욱은 몇 번이나 그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이를 눈치챈 태후가 물었다.

“황후가 몸이 좋지 않다는데, 어의를 보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용선이 일어나서 말했다.

“태후마마, 조금 전 제가 사람을 보내 황후마마를 살펴보았사옵니다. 황후마마께서 무척 피곤하신지라 이미 잠드신 상태였사옵니다.”

정 귀인은 불심이 깊고 섬세한 성격이어서, 황후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는 사실은 그리 의심할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그녀의 말을 믿었다.

태후는 자애롭게 웃었다.

“아이를 가진 여인들은 항상 졸음이 많은 법이지. 폐하, 폐하께서도 황후를 좀더 살펴주어야 합니다.”

소욱의 눈빛은 무척 차가웠다.

술잔을 들어 한 모금에 들이켰다.

모두들 그가 태후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술잔을 내려놓은 소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마마마, 어마마마, 잠시 황후를 살펴보러 다녀오겠사옵니다.”

태황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황제가 자신의 말을 이렇게 순순히 듣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용선은 마음속으로 그를 막고 싶었으나, 황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다.

그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황후가 방비전에서 그 신비로운 자를 잡고 있을 터인데, 괜찮을까?

……

영화궁.

내전.

봉구안은 탁자 옆에 앉아 술을 잔잔히 들이키고 있었다.

모두들 술이야말로 시름을 덜어준다 말하지만, 술동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어도 그녀는 아직 취하지 않았다.

연상은 황후의 변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조용히 그녀를 타이르고 있었다.

“마마, 더는 마시지 마세요. 술은 몸을 상하게 합니다…”

봉구안은 다가온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88화

    폐허가 된 사찰 안, 남자들은 번갈아 가며 들어왔다 나갔다.처음에 교먹은 울부짖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풀더미에 쓰러져, 멍한 눈으로 문만 응시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그녀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다. 언니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대할 줄은 말이다! 너무 아팠다… 언니는 평생 자기를 지켜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언니는 확실히 거짓말쟁이였다!영화궁.내전의 장자문 바깥에서 연상은 차를 들고 들어가려다 기묘한 소리를 들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어디선가 나타난 유사양이 그녀를 끌고 나갔다.연상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녀는 내전에 뛰어들어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무력해서 마마를 보호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다.……대전.황제가 떠난 후, 궁녀들은 한층 풀이 죽어보였다. 자리마다 서로 황제의 움직임을 속삭였다."폐하께서는 어찌 돌아오시지 않는거지?""설마… 오늘은 섣달 그믐밤이지 않습니까… 곧 돌아오시겠지요.""하지만, 이제 곧 연회가 끝나가는 걸요…"태후 역시 의아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물어보게 했다. 곧이어 계 상궁이 태후의 귀에 조심스레 전했다."황제 폐하께서 영화궁으로 가신 후 돌아오지 않으셨사옵니다. 그곳에 머무시는 것 같사옵니다."태후는 순간 놀랐다."어리석은 짓이로다! 이게 어찌 되겠는가!"황후가 이제 겨우 두 달 된 몸인데, 만일 일이 잘못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황제는 그렇게 분별없는 분이 아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설 연회는 끝이 났다. 궁녀들은 각자의 궁으로 돌아갔다.녕비는 현비를 불러 세웠다."언니, 폐하께서 요즘 황후 마마에게 정말로 마음을 쏟고 계신가 봐요. 영화궁에 가셨다더니 돌아오지 않으셨다지요. 우리들은 아무래도 폐하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네요."현비는 목소리가 힘없게 들렸지만 미소를 띠며 말했다."동생아, 스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89화

    황제는 몸을 일으켜 앉았고, 느슨하게 풀린 옷깃 사이로 다부진 허리와 복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의 허리와 복부에는 어젯밤 그녀가 남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봉구안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의 머리를 자기 쪽으로 돌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마치 포식 후 나른해진 맹수처럼 그의 눈빛은 평온하고도 나른했다. 다른 게 있다면, 전에는 없던 온기가 섞여 있었다.“어젯밤…”봉구안의 눈빛은 죽은 물처럼 고요했다.“신첩이 취한 탓에 실례가 있었다면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옵니다.”그의 검은 눈썹이 약간 내려앉고, 눈빛에 담겼던 온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황후는 어젯밤, 황손을 속히 잉태하겠다고 약조하지 않았소? 단 한 번으로 족한 것이오?”봉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가 어찌 그런 허무맹랑한 약속을 할 수 있단 말인가!“취중의 말은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소욱의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갔다.“취했으면, 무르려 하는 것이오? 황후께서 어젯밤은 스스로 몸을 내던지며 날 끌어안고 원하신 것이 아닌가? 이것도 무르시겠소?”그의 말은 다소 과장이 섞였으나, 그녀가 먼저 다가간 것은 사실이었다.봉구안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소욱은 그녀의 그 태도를 보자 ‘바지를 올리면 사람을 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보통은 배신한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인데, 여인도 이렇게 무정할 수 있을 줄이야.그는 분에 차서 헛웃음을 터뜨렸다.그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워 그녀를 베어버릴 듯했다.“좋소. 내가 개한테 물린 걸로 치지. 다음번엔 내 손에 걸리지 않도록 하시오.”그는 자신의 옷을 집어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침상 발이 내려오며 봉구안의 모든 시야를 차단했다.그녀는 멍하니 어지럽혀진 침상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소욱은 자리를 떠나 자진궁으로 돌아갔다. 그에게는 깊은 울분이 감돌고 있었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궁인들은 숨을 죽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0화

    피임약을 떳떳하게 구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봉구안은 연상에게 명하여, 어의들에게 핑계를 대어 몰래 약을 가져오도록 지시하였다.연상은 일을 깔끔히 처리해 약을 손에 넣었고, 작은 주방에서 몰래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관리하는 최 상궁이 보게 되었다.최 상궁은 요즘 혈색이 좋았다. 황후마마께서 잉태하셨기에, 그녀도 자연히 지위가 올라 눈에 힘이 들어간 터였다.이제는 하루 종일 영화궁 사람들을 주시하며, 누군가 황후마마의 태를 해치려는 자가 있는지 경계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수상한 장면을 발견한 것이다.연상은 의심스럽게 몰래 약을 달이고 있었고, 그것도 어의가 지시하지 않은 약이었다.‘이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최 상궁은 먼저 연상을 주방에서 멀리 끌어내고는, 빠르게 약의 뚜껑을 열어 확인했다.경험이 풍부한 최 상궁은 금세 약재에 사향 같은 강한 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황후마마 뱃속의 금쪽 같은 자식이 없어지면, 영화궁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최 상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연상, 평소엔 충성스러운 하인 행세를 하더니, 알고 보니 전부 가식이었구나! 이번엔 제대로 혼을 내줄 터이다!”최 상궁은 바로 황후에게 일러바칠 생각이었다.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어, 황후께서는 워낙 주변 사람들을 감싸주시는 터라, 괜히 묵과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다.최 상궁은 눈을 굴리며 꾀를 생각해내고는, 곧장 주방을 떠났다.……반 시진 후.약이 다 달여졌다.연상은 약을 봉구안 앞에 가져다 바치면서 살짝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 했다.황후마마가 임신하셨다는 소문이 허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정말 뱃속에 있을 가능성이…연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궁중의 사람들은 모두 마마께서 태중에 아이를 두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마마께서 우려하시던…”봉구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상을 쏘아보며 입을 막았다.“쓸데없는 짓 하지 말거라.”가능성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1화

    소욱의 분노는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후궁의 빈들은 모두 그의 은총을 갈망하는데, 오직 그녀, 봉장미만은 원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다.만약 그녀가 원치 않았다면, 어째서 어젯밤 그리 먼저 그를 유혹했단 말인가? 일이 끝나고 나서 이렇게 나오니, 마치 그가 억지로 강요한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그가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봉구안은 진지하게 답했다.“폐하, 손해를 보신 것은 폐하이시옵니다.”소욱의 눈에는 여전히 냉기가 서려 있었지만, 그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졌다.“내가 손해를 본 줄 안다면, 황후는 응당 잘 보상해야 할 것이 아닌가.”“만약 정말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다시 이 ‘피임약’ 따위를 손대려 한다면, 너의 충성스러운 시녀를 죽일 것이다.”그는 어젯밤 그녀가 취한 모습을 보고 끝까지 하진 않았다는 걸 말할 생각이 없었다.드물게 군자의 도리를 지켰다고나 할까.지금 생각해보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차라리 어젯밤 정말로 그녀를 취했더라면 이런 손해는 없었을 텐데.봉구안은 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비록 피임약을 쓰지 않는다 해도, 그녀는 결코 황제의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었다.……전각 밖.최 상궁은 죄인을 감시하듯 연상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녀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네 이 악독한 것! 황후마마께서 너를 평소에 아끼셨건만, 너는 어떻게 마마를 해칠 수 있단 말이냐! 기다려라, 곧 폐하께서 너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연상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자신의 처지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봉구안의 안전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나왔다.연상은 급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최 상궁은 황제가 벌을 내릴 것을 기대하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러나 황제는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어?”“폐하!” 최 상궁이 급히 뒤따르며 외쳤다.소욱은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최 상궁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2화

    최 상궁은 참지 못한 호기심에 황후의 서신을 몰래 열어 보았다. 이상하게도, 안에는 평범한 안부 인사만이 적혀 있었다. 이런 평범한 내용의 편지를 굳이 몰래 궁 밖으로 보낼 필요가 있을까? 너무 번거로운 일처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최 상궁은 혹시 황후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믿을 만한 인물인지 보려는 것이라 말이다.그래서 그녀는 지시대로 편지를 동문으로 몰래 보냈다. 동문에는 맞이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백이 그 편지를 받았다.겉보기에는 평범한 편지였으나, 사실 이 편지는 암호로 작성되어 있었다. 소장군이 자주 사용하는 암호 방식인 ‘삼사일오’를 사용하여, 각 문장에서 세 번째, 네 번째, 첫 번째, 다섯 번째 글자를 뽑아 연결하면 진짜 전하고자 하는 뜻이 나왔다.[교먹에게 조력자가 있음. 조사할 것]오백은 편지를 읽고 곧바로 불살랐다.……이 시각, 영화궁 내에서는 새해 첫날을 맞아 후궁들이 황후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가빈은 입이 가벼운지 혼자 계속 떠들었고, 그녀로 인해 다른 빈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후궁들은 저마다 불편한 속마음을 숨긴 채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저 황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이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하명했다.“새해가 시작되었으니 각 궁에서는 업무를 정리하시오. 모두 돌아가도록 하여라.”후궁들은 한마음으로 일어나 인사드리고 물러났다. 그러나 무리 중 유독 모용선만 자리에 남아 있었다.“황후마마, 어젯밤…” 모용선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연상에게로 돌렸다.봉구안은 눈짓으로 연상에게 먼저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연상이 자리를 비우자 모용선이 말을 이었다.“어젯밤 그 신비한 자를 잡으셨사옵니까?”부친의 약점을 누군가 잡고 있다는 생각에 밤새 한잠도 못 잤던 그녀였다.봉구안은 단호히 말했다.“그 자는 매우 신중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3화

    태황태후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입궁한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침소에 들지 않으면 되겠느냐?”태황태후는 이전에도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그때 황제의 건강이 좋지 않아 미뤄졌을 뿐이었다.이제 황제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게다가 황제는 원래부터 할머니인 태황태후를 극진히 공경해 왔다. 당초 황후도 성혼 후 여전히 처녀로 남아 있었는데, 태황태후가 단호히 명령을 내린 덕에 황제는 마침내 황후와 합방할 수 있었다. 모용선의 합방도 그녀로서는 자신이 있었다.모용선은 얼굴이 발그레해져 눈을 아래로 떨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마마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그녀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순종적인 듯 보였으나, 눈빛 속에는 야망이 서려 있었다. 입궁하여 후궁이 되고 황자를 낳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다만 모친의 일로 인해 잠시 발이 묶였을 뿐이었다. 이제 황후가 먼저 기회를 잡았으니, 그 신비한 자와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황후는 이미 그 신비한 자와 갈라섰고, 그녀 부친의 매관매직 증거 또한 불태워버렸으며, 황후는 모용선과 협력해 함께 그 자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그 신비한 자도, 황후도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만수궁이 이렇듯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자녕궁에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태후는 자신의 조카딸을 일러 당부했다.“남자는 한 번 맛보면 갈망이 생기기 마련이니라. 황 귀비가 유배를 간 후 황제가 다시 여자를 가까이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지금 황후는 아이를 가졌으니 침소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자주 영화궁을 방문하여, 머지않아 기회를 잡고 성은을 입어라.”녕비는 이를 알아듣고, 약간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때에 다른 이들이 기회를 노릴 테니, 제가 그런 것들을 절대 쉽게 두지는 않을 것이옵니다.”그녀는 곧 말투를 바꾸어 물었다.“하지만 태후마마, 정말 황후가 무사히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4화

    교먹은 계속 서 있다가, 봉구안의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으라는 소리에 순간 당황하였다. 봉구안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무릎을 꿇으라 했거늘, 감히 서 있을 셈이냐? 너는 신하로서의 예의를 모른단 말이냐?”교먹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녀가 말재주가 뛰어나도, 황권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 봉구안은 그녀를 몹시 아꼈다. 무릎 꿇게 한 적은커녕 오래 서 있게 하지도 않았었다.이 격차에 교먹은 큰 충격을 받아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봉구안이 명을 내리자, 황실의 호위 한 명이 들어왔다. 교먹은 이 모습을 보고 군영에서의 봉구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도 봉구안이 한마디만 외치면, 병사들이 즉각 명령을 받들곤 했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이었다. 장군으로서의 권력도 이렇듯 강했는데, 황후가 되니 더욱 그러했다.봉구안은 날카롭게 말했다.“맹교먹이 본궁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였으니, 끌고 나가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게 하라.”호위들은 명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교먹을 내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교먹은 소리쳤다.“황후마마, 저는 남제의 공신입니다! 저에게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봉구안은 다시 찻잔을 들며, 뚜껑으로 찻잎을 가볍게 저어내리며 무심한 듯 명령했다.“시끄럽구나. 저 자의 입을 막아라.”공신이라니? 먼 이야기까지 들 필요도 없었다. 양 나라와의 전투에서 그녀는 두 번이나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갔었다. 당시 그녀는 수도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었다. 당시 배에 난 그 칼자국은 양 나라의 황제가 직접 찌른 것으로, 아무리 봉 부인이 준 연고를 발랐다 한들 완전히 가릴 수 없었다. 교먹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공신이란 말인가!……전각 밖.교먹은 입이 막힌 채 어깨를 붙들려 강제로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이제 널리 알려진 남제의 첫 여자 장군이자, 지금의 감찰위 맹 대인이었기에 궁중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었다. 지나가던 궁녀들은 이 모습을 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95화

    교먹은 그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속에서 반 시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러다 황제가 오자마자,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무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황제는 그녀를 쳐다 보지도 않고 곧장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교먹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어붙은 손을 꽉 쥐었다. 봉구안이 황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아마도 봉구안을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다만, 아무리 여인을 아낀다 해도, 그녀가 조정을 간섭하거나,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장군을 이처럼 함부로 대하는 것을 용납하진 않으리라!전각 안에서, 소욱은 들어오자마자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최 상궁은 마지막으로 황후를 보며 ‘결국 큰일이 났구나’ 하는 눈빛으로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봉구안은 일어나 절을 올렸으나, 얼굴에는 전혀 미안함이나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황제 폐하를 뵙습니다.”소욱은 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꾸짖었다.“어찌하여 맹교먹에게 무릎을 꿇게 했는가?”그는 그녀가 훌륭한 장수를 모욕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지만, 먼저 사정을 물어보려 했다. 그가 그녀를 잘 아는 바, 아무런 이유 없이 아랫사람에게 벌을 내릴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봉구안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그녀가 불경한 언사를 하였기에, 제가 벌을 내렸사옵니다.”소욱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불경했는지 분명히 말해보거라.”“그녀는 제게 폐하께 잘 말씀드려, 다시 북방으로 돌아가 대장군 자리를 맡게 해달라 간청했사옵니다.”“황성에 남아 감찰위로 있는 것이 싫다 하였사옵니다.” 봉구안은 거짓말을 태연하게 지어냈다. 듣는 이가 다른 이였다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욱은 본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그는 봉구안을 날카롭게 살폈다.“맹 대인이 과거 그대의 행적을 내게 누설했기에, 오늘 마침 구실을 찾아 맹 대인을 겨울바람 속에 무릎 꿇린 것이 아니더냐.”“만일 그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남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최신 챕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6화

    동방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평정과 함께 엄숙함이 깃들었다.“소환, 나는 동의할 수 없소.”“알고 있소. 자네가 양연삭을 찾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말이오. 하지만 자네는 자네의 동료들을 믿어야 하오. 범진과 그들이 지금 북연에서 양연삭의 흔적을 찾고 있지 않소? 염추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오.”“단지 양연삭을 끌어내기 위해 염추의 마공이 점점 더 강해지게 놔둔다면, 결국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클 것이오.”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에는 억제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더군다나, 그녀의 목숨을 살려둔다면, 그녀에게 참혹하게 희생당한 무림맹 동료들을 볼 면목이 있겠소? 우리가 그녀를 여기까지 쫓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소?”봉구안은 그의 말을 다 들은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죽은 사람들이오.”“염추의 만간성법은 이미 2단계에 돌입하였소. 앞으로는 더 이상 사람을 붙잡아 수련할 필요가 없소.”동방세는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늦지 않았소. 염추를 죽이기만 한다면 늦었다고 말할 수 없소.”봉구안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진정하시오.내가 염추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니오.”“다만, 잠시 그녀를 남겨둬야 하오. 지금 그녀를 죽인다 한들, 이미 희생된 사람들을 되살릴 수는 없소.”“그녀를 죽이기 전에, 그녀가 가진 모든 가치를 다 쓰는 것이 왜 나쁘겠소?”동방세는 잠시 평정을 되찾고 물었다.“자네는 어떻게 하려는 것이오?”봉구안은 가늘고 깊은 눈빛으로 대답했다.“염추는 자신의 출생을 모르오. 그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연삭을 죽이고자 하오.”“지금 자네와 내가 힘을 합친다 해도, 양연삭을 이길 수 없소. 그렇다면, 염추를 끌어들여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소?”동방세는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자네는 그들 부녀가 서로를 죽이게 하려는 것이오? 소환, 자넨 정말 독하구려.”봉구안은 이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5화

    동방세는 한밤중에 불려나와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소환, 대체 무슨 큰일이 있어서 날 깨운 것이오?”봉구안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힘껏 흔들며 말했다.“들으시오! 염추가 양연삭의 사생아였소!”이 말을 들은 동방세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염추가 양연삭의 딸이라 하였소? 그러면 염 부인이… 양연삭과 그런 관계를 가졌단 말이오?”그는 놀라며 어이가 없다는 듯 덧붙였다.“염 부인은 그리도 온순하고 현숙한 사람 같았는데, 그런 짓을 하였을 줄이야.”“소환, 대체 무슨 일이오? 어찌 된 일인지 말해 주시오.”동방세는 더 이상 졸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봉구안이 차분히 말했다.“염 부인은 염추가 만간성법을 수련하며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가 더는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야겠다고 결심하였소. 더구나 염추와 연락할 방법이 있다 하니, 우리 내일 즉시 떠나야 하오.”동방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소환, 혹시 염 부인이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오? 염추와 이미 손을 잡고 우리를 덫에 빠뜨리려는 것이라면?”봉구안은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하였다.“처음에는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였소.”“하지만 염추의 출생 비밀을 굳이 드러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오.”“부인이 우리를 해치고자 하였다면 말이오.”봉구안은 염 부인과 양연삭 사이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당시 염 부인은 정신이 혼미했던 양연삭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그 일 이후, 그녀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없었다.그녀의 남편은 양연삭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니,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교주의 명예를 위해 아내를 죽였을 수도 있을 터였다.혹은 남편이 그녀를 죽이지 않더라도,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염 부인은 그 끔찍한 일을 홀로 간직하며 살아왔다.그녀는 결국 아이를 임신했고, 열 달 뒤 딸 염추를 낳았다.그 후, 천룡회에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삶을 살면서 도망칠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4화

    서왕은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온화함도, 평온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모용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그는 즉시 몸을 돌려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그녀를 더 이상 바라보기도 싫은 듯했다.모용란은 속옷만 걸친 채 서왕에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그러나 서왕은 강하게 반응하며 그녀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물러나거라! 날 건드리지 마라!”모용란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전하께서 절 가두고 뭐라고 하셨죠? 병을 고쳐서 정상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병을 숨기지 말고 치료받으라고?”“그런데 오늘 제가 전하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하니, 왜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서왕은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모용란은 그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그의 앞쪽으로 돌아섰다.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왜 저를 돕지 않는 거죠?”“설마, 전하께서는 절 내쫓아 폐하의 곁에 전하만 남기고 싶었던 건가요?”서왕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나는 너와 달라.”그녀는 이미 미쳐 있었다.“모용란, 네가 예전에 소아에게 저지른 일만으로도 몇 번은 죽고도 남았을 거야.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오직 우리가 어릴 적 함께했던 정 때문이었어.”모용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대었다.“그래요. 저도 알아요, 전하께서는 어릴 때부터 옛 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죠.”“저희 셋은 영원히 함께해야 하잖아요.”“그 외 사람들은 저희 관계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거고요.”“그러니까… 저를 도와줄래요?”“폐하의 곁에 제가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서왕은 냉정하게 그녀를 밀쳐냈다. 그러나 그녀의 어깨에 닿은 피부 감촉에 불쾌감이 밀려왔다.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반박했다.“황제 폐하를 떠나지 못하는 건 너야.”“모용란, 돌아가서 네 진심을 잘 생각해보도록 해.”“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너에게 기회를 주셨어. 그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니?”짝!모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3화

    염추는 옆 동굴에서 수련 중이었다.만간성법은 벌써 2단계에 이르렀고,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순조로웠다.보아하니, 이 만간성법은 확실히 여성의 음성 체질에 더 잘 맞는 듯했다.“양연삭보다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거야!”염추는 내심 자신했다.대성공을 거두기만 하면, 그녀는 곧 강호 제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강호의 모든 이들이 그녀의 명령을 따르게 될 것이고, 소환이나 동방세 같은 존재들조차 그녀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염추의 눈빛에는 야심이 가득 차 있었고,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그녀가 가장 먼저 제거하고 싶은 이는 바로 양연삭이었다.“그 놈이 하루라도 살아 있는 한, 난 숨어서 수련을 계속해야 해.”그러나 그녀는 양연삭이 이미 북연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북연황궁.양연삭은 북연의 국사의 추천으로 마침내 연황을 만날 수 있었다.그는 눈 위에 흰 천을 두르고 있었고, 관자놀이 근처에는 새치가 드리워져 있었다.높은 왕좌에 앉은 연황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남제에서 왔다고?”양연삭은 부정하지 않았다.“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래 진 나라의 사람입니다. 남제가 제 나라를 침탈하여, 이 지경까지 저를 몰아넣었습니다.”연황은 그를 만나기 전, 이미 사람을 보내 그의 배경을 알아보게 했다.이 사람은 천룡회의 교주로, 과거 천룡회를 이끌고 남제 황궁을 공격했던 자였다. 그러나 그 작전은 대패로 끝났고, 지금은 남제가 그에게 체포령을 내린 상태였다.“어떻게든 나를 만나겠다고 하더니, 무슨 꿍꿍이냐.”연황의 목소리는 냉소적이었다.양연삭은 공손히 답했다.“폐하께 간청드릴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남제를 멸하는 데 힘을 보태 주시기를 바랍니다.”연황은 그 말에 비웃음을 지었다.“뭐? 도와달라고?”연태자가 삼십만 대군을 잃은 일이 아직도 각국에서 화자되고 있었다.연황은 그 사건을 용서했지만, 양연삭의 요청은 지나치게 뻔뻔하게 들렸다.연황의 모욕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2화

    소욱은 눈앞의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그 사람은 얼굴을 가린 천을 벗고, 그가 익히 아는 얼굴을 드러냈다.“왜? 저를 못 알아보시는 겁니까?”봉구안이 담담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웃는 것 같으면서도 나무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밤길을 위한 옷차림으로 온몸을 단단히 가리고 있었다.긴 머리는 높게 올려 묶어 청량하고 기백이 넘쳤다.얼굴에는 먼 길을 달려온 피곤함이 묻어났으나, 입가의 미소 때문에 마치 사막의 꽃처럼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소욱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겉옷 하나를 걸치고 그녀에게 빠르게 걸어갔다.봉구안은 두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그를 막았다.“아직 씻지 못해 몸이 더럽습니다.”소욱의 차가운 눈빛이 따뜻한 미소로 바뀌었다.그는 그녀의 저항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왜 갑자기 돌아온 것이냐? 일은 다 끝낸 것이냐?”봉구안이 고개를 저었다.“아직요. 염추의 생모가 안성의 망진암에 있습니다. 동방세와 함께 찾아뵈러 왔습니다.”그녀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찾아뵌다는 것은 핑계였고, 실은 사람을 잡으러 온 것이었다.안성은 황성과 가까운 곳이었으나, 이틀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그럼에도 그녀가 황궁까지 온 것은 소욱에게 놀라운 일이었다.“저녁은 먹었느냐?”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으며, 그녀 얼굴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대체 어떻게 달려왔길래 얼굴에 이런 것까지 묻었는지 알 수 없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먹었습니다.”그리고 품속에서 조심스레 싸맨 약초 한 다발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소군주는 요즘 어떻습니까? 이건 곡양초라 하여, 한증 치료에 매우 효과가 있습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혔다.“소아를 위해 돌아온 것이냐?”그는 그녀가 자신을 보러 온 것이라 생각했었다.봉구안은 그의 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아챘다.그녀는 솔직히 말했다.“약을 전하려 했다면, 은육을 보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1화

    서왕은 소군주의 엿들은 일을 들추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온화하고 잔잔했다.“이만 돌아가서 계속 바둑을 둘까요?”소군주는 왠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뒤를 돌아보았지만, 편전 안에 있던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알지 못한 채, 서왕과 멀어지자 영비가 창가에 서서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영비는 믿었던 서왕에게 거절을 당했다.가슴이 불타는 것 같았다.소군주를 보니 지난 일이 떠올랐다.그 시절, 소군주가 겨우 한두 살이었을 때, 황제는 그 아이를 무척 귀여워했다.“천한 년… 갓난아기 때부터 남자들의 관심을 끌 줄 알더니 그대로 자랐구나.”지금은 황제 곁에 또 다른 ‘소환’이 나타났다.황제의 관심을 빼앗는 자들은 모두 죽이리라 다짐하였다!영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고요해 보였다.…소욱은 자객 사건을 처리한 후, 봉구안에게 서신을 보내 알렸다.그때 봉구안은 동방세와 함께 염추를 조사하고 있었다.염추의 부친은 구왕 중 한 명으로, 양연삭을 보호하다 목숨을 잃었다.염추의 생모는 아직 세상에 살아 있었는데, ‘염 부인’은 현재 망진암에서 출가한 상태였다.오늘은 이미 늦었기에, 두 사람은 내일 아침 망진암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똑똑!은육이 봉구안의 방문을 두드렸다.“마마, 폐하께서 당신께 보낸 서신입니다.”봉구안은 서신을 펼쳐 대강 훑어본 뒤, 자세히 읽었다.자객을 보낸 주모자는 태황태후라는 내용이었다.봉구안은 조금 의외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알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황제와 자신이 동성애 관계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어느 집안 어른이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그는 서신을 한쪽에 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지금 겪는 일들은 다 내 실력을 기르는 훈련일 뿐이야.”지금은 염추의 일이 더 중요했다.태황태후든 영비든, 소욱이라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은육은 그녀가 서신을 다 읽자, 조심스레 물었다.“마마, 폐하께 답신은 안 하십니까?”지금까지 황제가 보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700화

    영비의 눈빛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황제 폐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소환은 그의 금단의 존재였다. 그가 자신을 용서해준다면, 그녀는 다시는 그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폐하, 저는 단지 폐하께서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바랄 뿐입니다…”소욱은 일어섰고, 그의 눈빛은 차갑고 엄숙했다.“할마마마는 너를 배신하지 않으셨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너를 보호하려 하셨을 뿐이다.”“하지만 너는 어땠느냐? 모용란, 너는 네 모든 죄를 할마마마께 덮어씌우려고 하였다.”영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떨렸다.“아니에요,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배후자는 확실히 태황태후마마의 생각이셨어요… 사실을 말한 것이 죄가 되나요?”소욱의 눈에는 차가운 무관심이 서려 있었다.“난 황제니라.”“지금 한 나라의 군주 앞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냐?”“그 당시, 넌 내게 약속했었지. 내가 궁에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하지만 그 당시 넌 분명 나에게 어떠한 책략도 쓰지 않겠다고 약조했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나는 이중적인 여인을 가장 싫어한다고…” “그러므로 네가 먼저 내 약속을 어긴 것이다.”영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스며들며, 그녀의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너무 차가웠고, 너무 서늘했다.몇 초 후, 그녀는 고통스럽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폐하,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폐하께서는 저를 그저 남의 손에 칼을 쥐어주려 했다고만 생각하시겠죠. 결국 제 잘못인가요, 아니면 폐하께서는 제가 잘못을 저질렀길 바라시는 건가요?”“폐하는 이미 저를 받아들일 수 없으셨던 겁니다.”“후궁을 다 정리할 때부터 이미 저를 버릴 계획이셨겠죠.”“제가 제 발로 궁을 나가지 않자, 이제 와서 아무 이유 없이 죄를 덧씌우려는 것이군요!”소욱의 표정은 야박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차갑게 모용란을 바라보았다.“나는 너에게 좋은 땅과 집을 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699화

    장락궁.“마마, 폐하께서 마마를 어전으로 부르셨습니다!” 시녀가 기쁜 얼굴로 내전으로 뛰어들었다.화장대 앞에서, 영비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돌아오신 지 며칠 되었는데, 마침내 그녀를 떠올리신 것일까.잠시 후, 영비는 어전 안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황제와 진한길 두 사람만 있었다.그녀는 몸을 낮추어 인사를 했다.“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보고싶었습니다.”소욱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소환의 일, 네가 할마마마께 전한 것이냐?”영비의 마음은 갑자기 가라앉았다. 소환...황제께서 그녀를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란 말인가!영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궁 안에서는 사람들을 잡고 다니고, 특히 만수궁은 말이 많았다. 태황태후는 특별히 그녀에게 알리기까지 했다.소환 암살 사건이 드러났다고. 황제는 매우 날카롭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분명히 누군가가 태황태후에게 고백한 것을 눈치챘을 터였다.이 지경에 이르러, 만약 그녀가 부인한다면 오히려 황제에게 추궁당할 것이고,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힐 것이 분명했다. 영비는 빠르게 이득과 손해를 계산한 뒤 고개를 들어 황제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제가 말했습니다.”소욱의 눈빛은 차갑고 예리했으며, 분노가 서서히 피어올랐다.“모용란! 내가 이미 경고하지 않았느냐! 소환은 내 개인적인 일이다. 너는 어찌 감히...”그는 그녀의 이름을 직설적으로 불렀다.쿵!영비는 두 무릎을 꿇고,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폐하, 저는 당신을 위해, 이 나라를 위해… 그리하였습니다.”“소환은 남자입니다. 어찌 그가 폐하에게 득이 될 수 있겠습니까!”“저는 폐하의 오랜 친구로서, 폐하께서 점점 더 깊은 함정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소욱은 날카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들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였고, 그 관계는 깊었다. 그녀는 태황태후와 마찬가지로 선의로 일을 망쳤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개인적인 의도가 없었을까?소욱은 다시 한 번 그녀를 평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698화

    궁중에 엄격한 조사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에 떨었다.하루 만에 자신궁에서만 해도 여러 궁녀들이 형자사로 끌려갔다. 황제 곁의 대태감 유사양까지도 형자사의 문을 나들어야 했다. 만수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태황태후의 심복들이 모조리 체포되고, 궁인들도 전부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되었다. 이런 강력한 조치에 궁인들은 더욱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자녕궁에서는 녕비가 태후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고모님, 만수궁의 그 늙은이가 드디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듣자 하니 폐하의 뜻이라, 부름이 없으면 돌아올 수도 없다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옥양산에서 휴양한다고 하지만, 누가 보아도 뻔하죠. 태황태후께서 뭔가 큰 실수를 해서 폐하의 노여움을 산 게 분명합니다.”“그렇지 않고서야 만수궁이 저리 소란스러울 리가 없죠.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스님은 아니어도 부처님 체면은 봐줬을 텐데…”“태황태후의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대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태후는 이 말을 들으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후궁이란 곳은 원래가 한 몸이나 다름없어 누구 하나가 망하면 다른 이도 안전할 수 없는 법. 풍수도 돌고 도는 법이니, 태황태후의 오늘이 바로 자신이 태후로서 겪었던 어제가 아니던가. 당시 녕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가 친정에서 돌아와 이 자녕궁에서 크게 진노하지 않았던가.태후는 녕비에게 조용히 당부했다.“너는 후궁의 권한만 잘 지키고 있거라. 다른 일에는 끼어들지 마라.”그러자 녕비의 얼굴에 문득 근심이 스쳤다.“고모님, 들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새 황후를 맞이하실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태후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놀라움과 의심이 뒤섞인 표정이었다.“그럴 리가 없다. 어디서 들은 헛소문이냐?”황제는 비빈들조차 대부분 물리치고 마치 속세를 벗어나 승려가 되려하고 있건만.어찌 새 황후를 들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녕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고모님,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많은 돈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