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약을 떳떳하게 구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봉구안은 연상에게 명하여, 어의들에게 핑계를 대어 몰래 약을 가져오도록 지시하였다.연상은 일을 깔끔히 처리해 약을 손에 넣었고, 작은 주방에서 몰래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관리하는 최 상궁이 보게 되었다.최 상궁은 요즘 혈색이 좋았다. 황후마마께서 잉태하셨기에, 그녀도 자연히 지위가 올라 눈에 힘이 들어간 터였다.이제는 하루 종일 영화궁 사람들을 주시하며, 누군가 황후마마의 태를 해치려는 자가 있는지 경계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수상한 장면을 발견한 것이다.연상은 의심스럽게 몰래 약을 달이고 있었고, 그것도 어의가 지시하지 않은 약이었다.‘이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최 상궁은 먼저 연상을 주방에서 멀리 끌어내고는, 빠르게 약의 뚜껑을 열어 확인했다.경험이 풍부한 최 상궁은 금세 약재에 사향 같은 강한 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황후마마 뱃속의 금쪽 같은 자식이 없어지면, 영화궁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최 상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연상, 평소엔 충성스러운 하인 행세를 하더니, 알고 보니 전부 가식이었구나! 이번엔 제대로 혼을 내줄 터이다!”최 상궁은 바로 황후에게 일러바칠 생각이었다.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어, 황후께서는 워낙 주변 사람들을 감싸주시는 터라, 괜히 묵과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다.최 상궁은 눈을 굴리며 꾀를 생각해내고는, 곧장 주방을 떠났다.……반 시진 후.약이 다 달여졌다.연상은 약을 봉구안 앞에 가져다 바치면서 살짝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 했다.황후마마가 임신하셨다는 소문이 허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정말 뱃속에 있을 가능성이…연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궁중의 사람들은 모두 마마께서 태중에 아이를 두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마마께서 우려하시던…”봉구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상을 쏘아보며 입을 막았다.“쓸데없는 짓 하지 말거라.”가능성일
소욱의 분노는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후궁의 빈들은 모두 그의 은총을 갈망하는데, 오직 그녀, 봉장미만은 원하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다.만약 그녀가 원치 않았다면, 어째서 어젯밤 그리 먼저 그를 유혹했단 말인가? 일이 끝나고 나서 이렇게 나오니, 마치 그가 억지로 강요한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그가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봉구안은 진지하게 답했다.“폐하, 손해를 보신 것은 폐하이시옵니다.”소욱의 눈에는 여전히 냉기가 서려 있었지만, 그의 말투는 조금 누그러졌다.“내가 손해를 본 줄 안다면, 황후는 응당 잘 보상해야 할 것이 아닌가.”“만약 정말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다시 이 ‘피임약’ 따위를 손대려 한다면, 너의 충성스러운 시녀를 죽일 것이다.”그는 어젯밤 그녀가 취한 모습을 보고 끝까지 하진 않았다는 걸 말할 생각이 없었다.드물게 군자의 도리를 지켰다고나 할까.지금 생각해보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차라리 어젯밤 정말로 그녀를 취했더라면 이런 손해는 없었을 텐데.봉구안은 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비록 피임약을 쓰지 않는다 해도, 그녀는 결코 황제의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었다.……전각 밖.최 상궁은 죄인을 감시하듯 연상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녀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네 이 악독한 것! 황후마마께서 너를 평소에 아끼셨건만, 너는 어떻게 마마를 해칠 수 있단 말이냐! 기다려라, 곧 폐하께서 너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연상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자신의 처지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봉구안의 안전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나왔다.연상은 급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최 상궁은 황제가 벌을 내릴 것을 기대하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러나 황제는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어?”“폐하!” 최 상궁이 급히 뒤따르며 외쳤다.소욱은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최 상궁은
최 상궁은 참지 못한 호기심에 황후의 서신을 몰래 열어 보았다. 이상하게도, 안에는 평범한 안부 인사만이 적혀 있었다. 이런 평범한 내용의 편지를 굳이 몰래 궁 밖으로 보낼 필요가 있을까? 너무 번거로운 일처럼 보였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최 상궁은 혹시 황후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믿을 만한 인물인지 보려는 것이라 말이다.그래서 그녀는 지시대로 편지를 동문으로 몰래 보냈다. 동문에는 맞이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백이 그 편지를 받았다.겉보기에는 평범한 편지였으나, 사실 이 편지는 암호로 작성되어 있었다. 소장군이 자주 사용하는 암호 방식인 ‘삼사일오’를 사용하여, 각 문장에서 세 번째, 네 번째, 첫 번째, 다섯 번째 글자를 뽑아 연결하면 진짜 전하고자 하는 뜻이 나왔다.[교먹에게 조력자가 있음. 조사할 것]오백은 편지를 읽고 곧바로 불살랐다.……이 시각, 영화궁 내에서는 새해 첫날을 맞아 후궁들이 황후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가빈은 입이 가벼운지 혼자 계속 떠들었고, 그녀로 인해 다른 빈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후궁들은 저마다 불편한 속마음을 숨긴 채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저 황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이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하명했다.“새해가 시작되었으니 각 궁에서는 업무를 정리하시오. 모두 돌아가도록 하여라.”후궁들은 한마음으로 일어나 인사드리고 물러났다. 그러나 무리 중 유독 모용선만 자리에 남아 있었다.“황후마마, 어젯밤…” 모용선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연상에게로 돌렸다.봉구안은 눈짓으로 연상에게 먼저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연상이 자리를 비우자 모용선이 말을 이었다.“어젯밤 그 신비한 자를 잡으셨사옵니까?”부친의 약점을 누군가 잡고 있다는 생각에 밤새 한잠도 못 잤던 그녀였다.봉구안은 단호히 말했다.“그 자는 매우 신중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태황태후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입궁한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침소에 들지 않으면 되겠느냐?”태황태후는 이전에도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그때 황제의 건강이 좋지 않아 미뤄졌을 뿐이었다.이제 황제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게다가 황제는 원래부터 할머니인 태황태후를 극진히 공경해 왔다. 당초 황후도 성혼 후 여전히 처녀로 남아 있었는데, 태황태후가 단호히 명령을 내린 덕에 황제는 마침내 황후와 합방할 수 있었다. 모용선의 합방도 그녀로서는 자신이 있었다.모용선은 얼굴이 발그레해져 눈을 아래로 떨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마마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그녀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순종적인 듯 보였으나, 눈빛 속에는 야망이 서려 있었다. 입궁하여 후궁이 되고 황자를 낳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다만 모친의 일로 인해 잠시 발이 묶였을 뿐이었다. 이제 황후가 먼저 기회를 잡았으니, 그 신비한 자와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황후는 이미 그 신비한 자와 갈라섰고, 그녀 부친의 매관매직 증거 또한 불태워버렸으며, 황후는 모용선과 협력해 함께 그 자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그 신비한 자도, 황후도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만수궁이 이렇듯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자녕궁에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태후는 자신의 조카딸을 일러 당부했다.“남자는 한 번 맛보면 갈망이 생기기 마련이니라. 황 귀비가 유배를 간 후 황제가 다시 여자를 가까이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지금 황후는 아이를 가졌으니 침소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자주 영화궁을 방문하여, 머지않아 기회를 잡고 성은을 입어라.”녕비는 이를 알아듣고, 약간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때에 다른 이들이 기회를 노릴 테니, 제가 그런 것들을 절대 쉽게 두지는 않을 것이옵니다.”그녀는 곧 말투를 바꾸어 물었다.“하지만 태후마마, 정말 황후가 무사히
교먹은 계속 서 있다가, 봉구안의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으라는 소리에 순간 당황하였다. 봉구안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무릎을 꿇으라 했거늘, 감히 서 있을 셈이냐? 너는 신하로서의 예의를 모른단 말이냐?”교먹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그녀가 말재주가 뛰어나도, 황권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이전에 봉구안은 그녀를 몹시 아꼈다. 무릎 꿇게 한 적은커녕 오래 서 있게 하지도 않았었다.이 격차에 교먹은 큰 충격을 받아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봉구안이 명을 내리자, 황실의 호위 한 명이 들어왔다. 교먹은 이 모습을 보고 군영에서의 봉구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도 봉구안이 한마디만 외치면, 병사들이 즉각 명령을 받들곤 했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이었다. 장군으로서의 권력도 이렇듯 강했는데, 황후가 되니 더욱 그러했다.봉구안은 날카롭게 말했다.“맹교먹이 본궁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였으니, 끌고 나가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게 하라.”호위들은 명을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교먹을 내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교먹은 소리쳤다.“황후마마, 저는 남제의 공신입니다! 저에게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봉구안은 다시 찻잔을 들며, 뚜껑으로 찻잎을 가볍게 저어내리며 무심한 듯 명령했다.“시끄럽구나. 저 자의 입을 막아라.”공신이라니? 먼 이야기까지 들 필요도 없었다. 양 나라와의 전투에서 그녀는 두 번이나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갔었다. 당시 그녀는 수도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었다. 당시 배에 난 그 칼자국은 양 나라의 황제가 직접 찌른 것으로, 아무리 봉 부인이 준 연고를 발랐다 한들 완전히 가릴 수 없었다. 교먹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무슨 공신이란 말인가!……전각 밖.교먹은 입이 막힌 채 어깨를 붙들려 강제로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이제 널리 알려진 남제의 첫 여자 장군이자, 지금의 감찰위 맹 대인이었기에 궁중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었다. 지나가던 궁녀들은 이 모습을 보
교먹은 그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속에서 반 시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러다 황제가 오자마자, 그녀는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무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황제는 그녀를 쳐다 보지도 않고 곧장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교먹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어붙은 손을 꽉 쥐었다. 봉구안이 황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아마도 봉구안을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다만, 아무리 여인을 아낀다 해도, 그녀가 조정을 간섭하거나,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장군을 이처럼 함부로 대하는 것을 용납하진 않으리라!전각 안에서, 소욱은 들어오자마자 모든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최 상궁은 마지막으로 황후를 보며 ‘결국 큰일이 났구나’ 하는 눈빛으로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봉구안은 일어나 절을 올렸으나, 얼굴에는 전혀 미안함이나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황제 폐하를 뵙습니다.”소욱은 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꾸짖었다.“어찌하여 맹교먹에게 무릎을 꿇게 했는가?”그는 그녀가 훌륭한 장수를 모욕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지만, 먼저 사정을 물어보려 했다. 그가 그녀를 잘 아는 바, 아무런 이유 없이 아랫사람에게 벌을 내릴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봉구안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그녀가 불경한 언사를 하였기에, 제가 벌을 내렸사옵니다.”소욱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불경했는지 분명히 말해보거라.”“그녀는 제게 폐하께 잘 말씀드려, 다시 북방으로 돌아가 대장군 자리를 맡게 해달라 간청했사옵니다.”“황성에 남아 감찰위로 있는 것이 싫다 하였사옵니다.” 봉구안은 거짓말을 태연하게 지어냈다. 듣는 이가 다른 이였다면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욱은 본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그는 봉구안을 날카롭게 살폈다.“맹 대인이 과거 그대의 행적을 내게 누설했기에, 오늘 마침 구실을 찾아 맹 대인을 겨울바람 속에 무릎 꿇린 것이 아니더냐.”“만일 그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남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교먹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소욱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의 검은 눈썹이 단단히 좁혀지고, 목소리 속에 억눌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봉구안을 꾸짖었다.“황후, 참 ‘잘’했습니다!”그는 즉시 교먹을 편전으로 옮기고, 어의를 불러 진찰을 명했다. 동시에 영화궁 전각의 모두에게 오늘의 일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말라고 엄중히 명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교먹은 따뜻한 편전에서 눈을 떴다. 전각 안에는 궁녀들이 그녀를 시중들고 있었다.“맹 대인, 좀 괜찮으십니까?” 궁녀 한 명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사실 교먹은 기절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인내심이 바닥나서 속임수를 쓴 것뿐이었다. 지금 그녀는 침상에 누워 힘없이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일… 일으켜주게. 아직 한 시진을 다 채우지 못했네…”쿵!그녀는 마치 다리가 얼어붙기라도 한 듯, 일어서려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궁녀는 깜짝 놀라 그녀를 급히 부축했다.“맹 대인,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 명하셨으니 오늘은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교먹은 고개를 저으며, 침상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려 애썼다.“안 돼. 황후께서 무릎 꿇으라 하셨으니 내가 어찌 명을 어기겠는가?”그녀는 헛된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황제에게 봉구안이 자신과 같은 공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반드시 알려야 했다!궁녀는 그녀를 겨우 부축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당황한 채로 말했다.“맹 대인, 정말로 더 이상 꿇으실 필요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대인께서 하는 일에는 마무리가 깔끔하신 걸 잘 아시기에 특별히 당부하셨사옵니다.”“만약 대인께서 다시 꿇고 싶으시다면, 대신 남제의 법률을 백 번 필사하여 황후마마께 바치면 된다고 하셨사옵니다.”“…”황제의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진심으로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그렇다면, 황후마마는…”황후는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단 말인가?직접 물을 수 없어 그녀는 돌려서 물어보았다.“폐하와 황후마마는 본디 매우 사이가
소욱은 그 향낭을 손에 쥐고서 미묘한 기색을 느꼈다. 그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외부의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어의를 부르거라!”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의 태진을 담당하던 어의가 들어왔다. 그는 황후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어의는 향낭을 코에 대고 한 번 냄새를 맡자, 곧 결론을 내렸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이는 ‘영릉향’으로, 피를 순환시키고 어혈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사옵니다.”이 시점까지는 그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곧 어의의 말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어졌다.“그러나, 이 물건은 사향과 마찬가지로 임산부가 장기간 접촉하면 태아에게 영향을 미쳐 유산에 이르게 하거나 사태를 일으킬 위험이 있사옵니다!”“임산부뿐만 아니라, 일반 여인들도 이 향낭을 지니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봉구안은 소매 속에서 손을 살짝 쥐어 보았다. 결국 들키고 말았구나…소욱의 눈빛은 차갑게 변하며 한순간에 서릿발 같은 빛이 사라져, 오히려 얼음 같은 싸늘함만이 남았다. 그 기운은 사람을 떨게 만들 정도였다.그러나 그의 감정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물리친 뒤, 황제로서의 권위와 평정을 간신히 지키며 봉구안에게 차분히 물었다.“이 향낭, 그대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가 준 것이냐?”두 경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봉구안은 그 자리에서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신첩의 것이옵니다.”황제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그 속엔 차가운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네 몸을 해칠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이 향낭을 지니고 있었다니…”“황후, 내가 그대를 칭찬해야 할지, 어리석다 꾸짖어야 할지 모르겠구나!”쾅…소욱의 내공이 터져 나오자, 벽 옆의 화병이 기류에 깨지며 청명한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땅에 흩어졌다. 그의 마음 또한 화병과 같았다. 흐트러져,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그는 황후의 고요한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주먹을 베개에 내리치는 것처럼 그의 모든 격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
비록 봉구안이 은위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여국 황제가 자신의 암위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암위들은 즉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곁에는 모신만 남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은근히 이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보아하니, 그들은 네 명령을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국 황제의 명령을 따르며 너를 감시하는구나. 네가 서여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 넌 남제로 끌려가겠지.” 은칠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마, 저희는…”하지만 봉구안은 은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여국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굳이 저와 남제 폐하를 이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적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여국 황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리는 길이 다르구나. 나는 네가 남제 남성들의 권력 아래 있는 걸 싫어해, 여인들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 “서여국의 여인이나 남제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길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천하 대동, 남녀가 평등한 길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누른다면 그 길은 기울고 불공평하며,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서여국의 내란도 조여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가 혼란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군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녀 간 불공평 때문이었습니다. 외지인으로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여국이 남성에게 불공평한 나라이고, 남제가 여성에게 불공평한 나라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멀고 험해 천 년이 지나도 답을 내릴 수
봉구안은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서여국의 미남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을 처리하기 전에, 약은 남겨 두십시오.” 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앞에 있는 귀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녀는 약만 걱정하는 듯했다. 모신은 곁에서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맹 소장군은 남색에 전혀 관심이 없군.’….한편, 서여국 황제가 보낸 미남들을 몰아낸 것을 지켜본 봉구안의 호위들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저따위로 우리 황후마마를 유혹하려 들다니, 당장 찾아가 처리해야겠습니다.”다른 곳에 숨어 있던 은이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머리를 저었다. “형님, 서여국 황제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미남들을 보낸 걸까요?”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풀을 살짝 씹으며 비웃었다. “뻔하지. 서여국 황제는 황후마마를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거다.” “뭐라고요?!” 호위들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만약 서여국 황제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우리 황제 폐하는 어찌 된단 말인가!”그러나 다행히도, 황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남들을 거절하고,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한 시진 후. 서여국 황제는 봉구안이 머물고 있는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구안은 태연한 얼굴로 황제를 마주했다. “내 듣자 하니, 맹 소장군은 내가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가 보낸 미남들은 단순히 약을 발라주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구안이 이들에게 미남계를 쓴 것이라 비난한다면, 황제는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역이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깊은 뜻과 서여국 남자들의 준수한 외모를 보아 외신이 불만을 가질 리 없지요.” “다만… 제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불전에 서약을 한 바 있습니다.”“
서여국 황궁, 천택궁 별채.은위 몇 명이 전각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는 어의가 봉구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봉구안은 내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았다.어의가 물러나려 하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 순간, 서여국 황제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 있거라. 내가 명을 내려 어혈을 풀고 멍을 가라앉히는 약을 바르게 하겠다.”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겠느냐.”“그대의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 계획대로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이번 작전으로 피해를 줄였고, 조여란과 가짜 숙연까지 명분 있게 제거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느냐.”봉구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여란이 동산국과 손잡고 남제를 멸하려 한 만큼, 동산국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그 자를 처단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서여국 황제의 눈빛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번뜩였다.“그 말이 맞다.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파헤칠 것이다.”서여국에서 반역과 군주 시해는 이미 죽음에 값하는 죄였다.게다가 외국과 결탁한 죄는 나라를 배신한 중죄였다.그녀는 이 중죄를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서여국 천옥.조여란은 형틀에 묶인 채 기운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감옥을 직접 찾은 서여국 황제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폐하,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제가 잘못한 건 많지만,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또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드린 것도 저입니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신다면 제 죄를 덜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여국 황제는 냉소하며 말했다.“여동생이라니? 네가 조종하여 내 여동생 행세를 하게 만든 창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자가 내 혈육이라 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