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빈은 태황태후의 물음에 모두 답하였다. "신첩이 사람을 시켜 사당에 가서 살펴보았사온데, 황후마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그제야 황후마마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단정하였사옵니다." 태황태후의 얼굴이 한층 더 엄중해졌다. "가빈, 네가 알고 있느냐? 함부로 말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중벌을 받는 일이다. 내가 다시 묻겠노라. 정말로 황후가 사당에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태황태후마마! 신첩,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사옵니다." 태황태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황후가 정말 사당에 없다면, 그동안 어디에 있었단 말이냐?" 황제와 관련된 일은 감히 조사할 수 없는 터, 굳이 스스로에게 불편함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가빈에게 명하였다. "내가 네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황후에게는 별다른 위험이 없는 듯하니, 곧 돌아올 것이니라. 네가 이 일을 정말로 알고자 한다면 사사로이 황후에게 물어보도록 하여라." 가빈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정녕 사실입니까!" "황후마마께서 무사하시다니 다행이옵니다!" 태황태후는 친히 가빈에게 당부하였다.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거든, 주저 없이 나를 찾아오도록 하여라." "예, 태황태후마마!" 섣달 그믐날. 소욱과 그 일행은 황성과 인접해 있는 의성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저문 뒤였고, 그들은 의성 안에 위치한 객잔에 투숙하기로 하였다. 의성까지 오면서 소욱과 봉구안은 각기 방을 따로 썼으나, 이 객잔은 방이 몹시 부족하였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여러 호위들은 다 함께 1층 창고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은 유독 바람이 차가웠고, 봉구안 또한 바닥에서 자며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침대가 넉넉하였던 터라, 이전에 운성의 객잔에서 그랬듯 한 침대에 눕고도 서로 살갗이 맞닿을 일
그 객잔 하인이 말을 더 붙이려 했으나 소욱이 그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고, 그는 몸서리를 치며 입을 다물었다.봉구안은 별 생각 없이 그저 소욱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여겼다. 어쨌든 군영에도 겨울에 물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이것이 몸을 단련하는 방법이라 말하곤 했다.삼일 후, 황성에 도착해 입궁하기 전 연상이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연상은 매우 기뻐하며 소리쳤다."마마!"그녀가 ‘죽은’ 후, 소욱은 궁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가 줄곧 사당에 머물러 있었다고 알렸다.봉구안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소욱은 연상을 그곳으로 보냈다는 것을 말이다…입궁 후, 소욱은 조정의 일에 곧바로 착수하였다.봉구안은 영화궁에 머물며 다시 황후의 자리를 지켰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으나, 사실 그녀의 마음 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사방에 아무도 없을 때에야 연상이 용기 내어 물었다."마마, 폐하께서 마마를 찾으셨습니까?"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소욱은 그녀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교먹을 황성에 묶어 두었으니, 이제 맹 부인은 안심하고 용호군 사건을 조사할 수 있었다.그녀 역시 교먹을 더욱 자세히 조사할 수 있었다.봉장미는… 북방에 남아 잘 지낼 것이라 믿었다.이어서, 그녀는 오백이 가져다준 가사약을 잘 보관하여 만일을 대비했다.오후.가빈과 강빈은 소식을 듣고 곧바로 영화궁을 찾았다.가빈은 의심스러운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황후마마, 정말 사당에 다녀오신 거예요? 제가 사람을 보내 확인했는데, 마마가 그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답변만 받았었습니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봉구안은 많은 것을 밝히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말했다."네가 보낸 사람이 반드시 믿을 만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가빈이 더 캐물으려 하자, 강빈이 곧바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황후마마, 벌써 섣달 그믐날이 지났습니다. 설날 연회에 대비하여, 저희가 도울 일이
’침전’이라는 말에 봉구안은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으나, 그의 예리한 눈을 속이진 못하였다. 이는 분명 놀람, 거부감, 그리고 거부의 뜻이 담긴 표정이었다."흠."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저 ‘예’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더니."봉구안은 미묘한 긴장감을 띠며 입술을 떼었으나, 이 순간에는 말을 아끼는 것이 나을 터. 다행히 ‘폭군’은 그녀의 냉랭한 태도를 견디지 못했는지 오래 머물지 않고 곧 자리를 떴다.이틀 후.교먹은 황성에 도착하여 감찰위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먼저 입궐하여 하례 인사를 올렸다. 황제는 교먹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였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정보를 흘려준 덕에 황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등을 돌려 배신하는 자는 결코 군자의 도리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군자라고 자부한 적은 없었으나,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교먹이 궁을 나서려는 찰나, 황후의 부름을 받았다. 그녀는 이 부름을 예감하고 있었다. 내전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오로지 봉구안의 얼굴만을 보았다. 여전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드렸다."황후마마를 뵈옵니다."궁중은 무겁고, 높은 담벼락에 조그만 창문이 달려 있어, 대낮이라 해도 등이 밝혀지지 않으면 어둑어둑하고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봉구안은 그늘과 빛이 섞인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은 여전히 아름답고도 영기가 가득했다."폐하께서는 너를 꽤나 중히 여기시는구나."교먹은 쓴웃음을 지었다."언니도 알다시피, 나는 북방에 남아 사부님과 사모님 곁에 머물고 싶었어.""그저 어찌 된 일인지 폐하께서 갑자기 날 황성으로 불러들이신 거야."봉구안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감찰위는 궁성 각 문을 관할하는 직책이라, 앞으로 자주 궁중에 드나들 수 있겠구나.""내 벗이 되어 주면 좋지 않아?"교먹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것만이 좋은 점이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명을 절대 따르지
"마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표정이 너무 좋지 않으십니다." 시녀 추홍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모용선은 곧바로 그 서찰을 숨기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 듯 보였다."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거라."이틀 후.만수궁.태황태후는 모용선의 말을 듣자 마자 벌컥 화를 냈다."어처구니없구나! 그 봉가가… 감히 어디서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늘 자비심으로 마음을 다스리던 태황태후의 온화함은 그 순간 모조리 사라지고,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태황태후는 모용선에게 다시 확인했다."이 일을 과연 네가 직접 확인한 것이 맞느냐?"모용선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처음에는 저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사옵니다.""그러나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어찌 폐하와 태황태후마마께서 속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그래서 아버지를 통해 사람을 보내 용화사에서 확인하게 하였고, 그제야 비로소 사실임을 알게 되어 이렇게 보고드리러 온 것이옵니다."태황태후는 엄숙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눈은 흐릿해졌으나, 속은 여전히 젊었을 적과 다를 바 없었다."서찰을 보낸 자가 누구인지는 차치하고, 봉가가 용화사의 승려를 매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모용선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속내를 숨겼다. 그녀의 가문이 고초를 겪을 때, 중전은 끝내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 점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더더욱 없었다. 게다가, 이번 일은 본디 봉가의 잘못이니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태황태후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황상과 황후를 여기로 부르도록 하여라!"잠시 후, 황제와 황후가 만수궁으로 차례로 입궐하였다.태황태후는 차가운 얼굴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봉구안은 그 시선에 익숙한 듯 평온하게 예를 갖췄다."태황태후마마를…"입을 떼는 순간, 태황태후는 콧방귀를 끼며 말렸다."예는 사양하겠다! 황후의 예를 내가 감히
봉 대인은 끝내 자백하고 말았다.이때, 소욱의 냉혹한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태황태후는 분노가 더욱 치밀었다."이 배은망덕한 자 같으니! 선황을 속이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단 말이냐? 너는 천 번 죽어 마땅하다!"그 순간, 선해 보이는 모습의 모용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봉 대인은 참으로 겁이 많군. 이렇게 죽음이 두렵다면, 애초에 그런 속임수를 쓰지 말았어야지…봉 대인은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며 말했다."황제 폐하께 아룁니다, 모든 것은 미천한 소인의 잘못이옵니다. 황후께서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셨사옵니다…"하지만 태황태후의 눈은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았다."황상, 저 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 없다! 이 일에 황후가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봉 대인은 이 말을 듣고 크게 흥분하며 고개를 들었다."아닙니다! 황후께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사옵니다!""어릴 때부터 소인은 황후마마를 정성을 다해 가르쳐왔사옵니다. 소인이 단지 황후마마를 최고의 혼처로 만들고자 했을 뿐이옵니다! 당대의 여인들 중, 제 딸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사옵니다… 선황께서…선황께서는 점쟁이의 말만 믿으셨사옵니다… 저는 아비로서 제 딸의 길을 막아버릴 수 없었사옵니다…""네 말은 즉슨, 선황께 불만이 있다는 말이더냐?"태황태후가 물었다."소인이 어찌 감히!" 봉 대인은 고개를 다시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태황태후는 차갑게 물었다."네가 불만이 없었더라면, 네 딸을 황궁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다른 귀한 집에 시집을 보냈음 될 터이지 않았느냐!""그저 딸을 이용하여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야! 네가 갖은 변명을 늘어놓는 이유가 뭐겠느냐! 나는 결코 너를 용서할 수 없다!"때마침, 봉구안도 태황태후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번 일은 확실히 그들 봉가가 잘못한 일이었으니, 친족이라도 죄를 덮어줄 수 없었다.아무도 모르게 모용선이 승려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그
황후가 회임을 했다니!이 사실에 가장 기뻐하는 이는 다름 아닌 봉 대인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렸건만, 드디어 황후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그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은 채, 넋을 잃고 활짝 웃으며 멈출 줄 몰랐다.모용선은 경직된 채로 서 있었고, 방금 황제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녀는 도무지 황후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태황태후는 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곁에 있던 궁녀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외쳤다."태황태후마마!"태황태후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궁녀에게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소욱에게 물었다."언제부터 회임을 하였단 말이더냐? 나를 속이려 하지 말거라! 그동안 황상은 황후를 가까이하지 않았거늘, 어찌 황후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이냐?"소욱은 당당하게 답했다."사당에서 합방을 하였사옵니다. 주변에 황궁 사람들이 없어 합방 기일이 따로 기록되지 않았사옵니다.""사당에서?!" 태황태후는 가슴이 답답하여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손을 들어 소욱을 가리키며 말했다."황…황상은 일국의 군주이지 않는가! 어찌 사당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이더냐…"이것은 조상에 대한 큰 불경이 아니냐! 곧 그녀는 전각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고, 황제와 황후만을 남긴 채 나머지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다.봉 대인은 두 명의 호위병에 끌려 나갔으나, 그는 죄를 받을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외할아버지가 될 기쁨에 젖어 있었다. 모르는 이가 보면 그가 겁에 질려 멍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모용선은 사실 떠나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일의 전말을 너무도 알고 싶었다. 평소 냉정하고 자제력 있는 황제가, 후궁의 미색에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가 어찌하여…전각 안에서 태황태후는 황제가 황후와 함께한 것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는 화를 내며 봉구안을 질책했다."이것이 네가 황상을 유
태황태후는 소욱의 말에 격분하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명서를 조작한 것과 같은 큰 죄를 이렇게 쉽게 용서한단 말인가? 평소 황제는 이렇게 인자한 사람이 아니었다!봉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소욱이 이렇게 하는 것이 황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가 한 신하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은 결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소욱은 다시 말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선황제와 다르게 그 명서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이옵니다."태황태후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한 셈이었다.……태황태후는 갑자기 쓰러져 내실로 옮겨져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어의의 말에 따르면, 잠시 분노가 극에 달해 기절한 것이라 했다.그녀가 깨어난 후, 소욱은 그녀를 보러 갔다. 그때 태황태후는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고, 그저 한 마디만 할 뿐이었다."황상은 이 궁의 주인이지 않은가. 황상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소욱이 물러난 뒤, 모용선이 내전에 들어갔다. 그녀는 태황태후의 침상 곁에서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지켰다. 태황태후는 그녀의 효심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본래 봉 대인의 일로 황후를 실각시키고자 했음을 알고 있었다."선아, 황상의 마음이 이미 정해졌으니, 내가 어찌할 수가 없구나.""허나 두려워 마라. 이 후궁이란 언제나 꽃이 피고 지는 법이지. 한 번 피었다 지면, 또 다른 꽃이 피어나는 것이니라…"모용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예, 신첩도 알고 있사옵니다."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승복할 수 없었다. 황후 같은 여인이 도대체 어찌하여 황제의 눈에 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황후는 아이까지 가졌으니, 다른 후궁들에게 기회가 있을 리 만무했다.모용선은 손을 꼭 쥐며 손톱이 손바닥에 깊이 박힐 정도로 힘을 주었고, 그 고통 속에서 더욱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영화궁.봉구안
침상의 발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냈다. 소욱은 봉구안을 침상 위로 거칠게 던지며 조금도 그녀를 아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두 팔을 잡아 머리 양옆에 눌러 놓고, 그녀 위에 군림하듯 내려다보았다.마치 그의 눈에 비친 그녀가 그저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가 힘겹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무공을 드러낼 수 없기에 더욱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며, 숨이 거칠어지고 점점 급해지는 걸 느끼며 소욱은 여유롭고 냉정하게 그녀의 모든 반응을 지켜봤다.봉구안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온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평생 한 번도 이렇게 속이 터질 듯한 굴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남자에게 압도당해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팔이 잡힌 탓에 상반신에는 힘을 쓸 수조차 없었다. 이내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소욱의 눈 속에는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해 그의 허리 아래로 모였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굶주린 늑대와도 같았다.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갈증이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그는 그녀에게 잠시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차갑게 닿은 그의 입술이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힘있고 거침없이 그녀의 입을 열어젖히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저항하는 "움움" 소리가 그의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봉구안의 마음속에는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녀는 그의 입맞춤이 끔찍하고, 그의 모든 행동이 역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두 손목을 잡고 그녀를 단단히 눌러버렸다. 그녀의 팔은 온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드러난 팔 위에는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남자의 손등 위에도 선명하게 힘줄이 도드라졌다.서로의 힘겨루기 속에서 침상에는 주름이 잡혔다. 소욱은 그녀가 끊임없이 저항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몇 차례나 그녀의 팔이
황성.오늘의 망강루는 유난히 북적거렸다.소욱은 황후가 서여국에 출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녀의 가짜 회임에 대해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그 때문에 그는 궁 안에서 비응군을 위한 축하 연회를 열 수 없었다. 대신 궁 밖의 망강루를 빌려 연회를 준비했다. 1층에는 수십 개의 식탁이 놓였고, 비응군은 나눠 앉아 있었다.한편, 은위들은 따로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누구도 은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그가 워낙 귀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남제로 오는 길 내내 그는 멈추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매를 맞기까지 했다.은칠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황후의 출사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것은 자신인데, 얻어맞는 것도 자신이었다.이제야 깨달았다. 사관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이런 미움을 사는 역할도… 그는 여전히 감당해야 했다.2층, 별실.문 밖에서는 진한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방 안에서는 황제와 황후가 단둘이 고요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강을 내려다보며 멀리까지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봉구안은 서여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서여국 황제에게는 몇십 년 전에 잃어버린 여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제게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이게 유일한 단서인데, 부러진 옥비녀 반쪽입니다."소욱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는 일이면 본국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 아니더냐? 서여국에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그는 그저 황후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그러나 봉구안의 마음은 여전히 국사에 있었다.그녀는 오히려 남제의 상황을 물었다."제가 없는 동안 담대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소욱은 차분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첩보에 따르면, 겉으로는 남제를 도와 적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는 듯하지만…"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소욱
봉구안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은 온몸에 보랏빛 옷을 차려입고 눈에 띄게 화려한 소욱이었다.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어 질끈 눈을 감았다.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방이 맞단 말인가? 그 위엄 넘치는 한 나라의 황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봉구안은 못 본 척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고 싶었다.하지만 소욱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렸다.비응군은 눈치 있게 물러나 황후와 황제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취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황후가 살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부인!”소욱은 흥분한 얼굴로 봉구안을 와락 끌어안았다.공공장소에서 그는 그녀를 황후라 부를 수 없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봉구안은 그의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을 느꼈다. 그 향은 다소 자극적이었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당장 제 몸에서 떨어지세요.”“구안아, 방금 뭐라고 했느냐?”그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봉구안은 억지로 웃으며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아무것도 아닙니다.”차마 그에게 귀신에게 씌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는 왜 이렇게 요란한 옷을 입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이토록 화려하게 차려입다니,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골라준 옷 색감은 아주 훌륭했다. 허나 정작 왜 본인은 이런 그릇된 선택을 하는 걸까.봉구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했다.소욱은 그녀를 데리고 서둘러 가마에 올랐다.가마 안에서 그는 봉구안의 손을 꼭 붙잡고 입을 맞추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봉구안은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사람이 진짜 소욱이 맞는지,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얼굴로 변장한 것은 아
그 손님은 소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이 어린놈아! 돈을 냈으면 일을 해야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내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리라'라고 써달랬으면, 그대로 쓰면 될 걸 왜 이리 말이 많아!” 소년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붓을 움켜쥔 손과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군가라고요. 전우들끼리 사용하는 것을 어찌 애첩에게 주는 시에 사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군가는 이리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손님은 이를 갈며 격분했다. “애첩? 지금 내 부인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린 게 버릇없이! 오냐, 좋다! 오늘 내 널 죽여버릴 것이다!”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절 죽인다 해도 나으리께서는 간부음녀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간통한 남자와 음란한 여자라는 뜻이죠. 이미 아내가 있는 주제에 기생과 혼인하려고 하다니, 대장부로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차라리 환관이 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자식도 못 낳을 테니 말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날카로웠다. “이 꼬맹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손님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손을 올렸지만, 갑자기 그의 귀를 누군가 잡아챘다. “누구야! 감히 내 귀를…”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정실 부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였다. “내가 널 먹여 살리고, 궁 안에 들어가 시험 보라고 뒷바라지했더니… 감히 기방에서 여인을 만나러 다녀?” 그러고는 그녀는 소년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보게, 정말 고맙네. 자네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끝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걸세. 이 사람이 이렇게 간악한 줄도 모르고 정말 당할 뻔했네.” 소년은 두 손을 모아 진지하게 인사했다. “별말씀을요. 악을 벌하고 선을 드러내는 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봉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취사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아마 그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제의 황후가 되었고, 다시 군대를 이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취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죽을 각오로 한 이야기였다. "저희는 황후마마께서 조직하시고,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황궁 금군에 편입된 뒤로, 형제들은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마마께서 소장군이 아니시지만,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무당에서 직책을 맡으실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찌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황후마마, 불경한 말인 줄 알지만, 서여국 황제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제 폐하와 혼인하신 뒤로 실권이 없으시니, 이제 남은 건 자녀를 돌보고 내조하는 일뿐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무예를 그냥 묵히시는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봉구안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서여국 황제가 너를 찾아온 적이 있느냐?" 취사는 순간 얼어붙었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와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여국에 남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마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마마께서 권력을 가지실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하셨습니다."봉구안은 손에 들고 있던 구운 생선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술주머니를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너도 알다시피 남제와 서여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황후가 군대를 이끌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설령 소욱이 그녀를 아무리 용인한다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 또한 소욱에게 부담이 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고인이 된 친부 이야기가 나오자, 서여국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어릴 적에, 아바마마께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궁 안에는 아바마마의 용모파기조차 남아 있지 않다.”“나도 그분의 얼굴이 어떤지 기억나지 않는다. 꼭 용모파기가 필요하다면, 그 시절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봉구안은 난처해졌다.용모파기가 없다는 건 외모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서여국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때 나는 숙연과 겨우 두세 살이었다.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으로 들이닥쳤고, 어마마마께서는 혈통을 지키기 위해 나와 숙연을 궁 밖으로 내보내 숨기셨다.”“훗날 자매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옥비녀를 반으로 나누셨지.”“이것이 내가 가진 옥비녀의 반쪽이다.”황제는 흰 옥비녀의 반쪽을 꺼내 보였다. 비녀 머리와 일부 자루만 남은 상태였다.봉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진짜 여동생 분께서 나머지 비녀 조각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서여국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반쪽 옥비녀와 비단 상자를 봉구안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을 너에게 맡기마.”이는 서여국 황제가 봉구안을 깊이 신뢰한다는 표시였다.봉구안은 두 손으로 옥비녀를 받으며 차분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믿음직스러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서여국 황제가 손목을 붙잡았다.봉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소장군, 정말로 서여국에 남을 마음이 없느냐?”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듯 물었다.봉구안이 서여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섭정왕의 자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도 내어줄 의사가 있었다.멀리서 은칠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 했지만, 은이가 이를 눈치채고는 단숨에 붓을 빼앗아 부러뜨렸다.은이는 부러진 붓을 내던지며 말없이 은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
비록 봉구안이 은위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서여국 황제가 자신의 암위들을 향해 말했다. “물러나라.”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암위들은 즉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곁에는 모신만 남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녀는 봉구안을 바라보며 은근히 이간질을 하기 시작하였다.“보아하니, 그들은 네 명령을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국 황제의 명령을 따르며 너를 감시하는구나. 네가 서여국에 머물고 싶어도 결국 넌 남제로 끌려가겠지.” 은칠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마, 저희는…”하지만 봉구안은 은칠의 말을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차분하고 당당하게 서여국 황제를 향해 말했다. “폐하, 굳이 저와 남제 폐하를 이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외적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지,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서여국 황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우리는 길이 다르구나. 나는 네가 남제 남성들의 권력 아래 있는 걸 싫어해, 여인들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 “서여국의 여인이나 남제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습니다.”“길은 같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천하 대동, 남녀가 평등한 길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억누른다면 그 길은 기울고 불공평하며,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서여국의 내란도 조여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가 혼란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군사들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녀 간 불공평 때문이었습니다. 외지인으로서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부디 절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여국이 남성에게 불공평한 나라이고, 남제가 여성에게 불공평한 나라라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 봉구안은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길이 멀고 험해 천 년이 지나도 답을 내릴 수
봉구안은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서여국의 미남들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저들을 처리하기 전에, 약은 남겨 두십시오.” 그들은 속으로 탄식했다. 앞에 있는 귀인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정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녀는 약만 걱정하는 듯했다. 모신은 곁에서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 맹 소장군은 남색에 전혀 관심이 없군.’….한편, 서여국 황제가 보낸 미남들을 몰아낸 것을 지켜본 봉구안의 호위들은 눈빛에 살기를 띄우며 말했다.“저따위로 우리 황후마마를 유혹하려 들다니, 당장 찾아가 처리해야겠습니다.”다른 곳에 숨어 있던 은이 역시 이 상황을 보고 머리를 저었다. “형님, 서여국 황제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미남들을 보낸 걸까요?”은이는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풀을 살짝 씹으며 비웃었다. “뻔하지. 서여국 황제는 황후마마를 남겨두고 싶어 하는 거다.” “뭐라고요?!” 호위들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만약 서여국 황제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우리 황제 폐하는 어찌 된단 말인가!”그러나 다행히도, 황후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남들을 거절하고,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았다.한 시진 후. 서여국 황제는 봉구안이 머물고 있는 편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구안은 태연한 얼굴로 황제를 마주했다. “내 듣자 하니, 맹 소장군은 내가 준비한 사람들에게 불만이 있다 하더구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가 보낸 미남들은 단순히 약을 발라주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봉구안이 이들에게 미남계를 쓴 것이라 비난한다면, 황제는 오히려 그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고 역이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깊은 뜻과 서여국 남자들의 준수한 외모를 보아 외신이 불만을 가질 리 없지요.” “다만… 제가 서여국으로 출사하기 전, 불전에 서약을 한 바 있습니다.”“
서여국 황궁, 천택궁 별채.은위 몇 명이 전각 밖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에서는 어의가 봉구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봉구안은 내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치명적이지 않았다.어의가 물러나려 하자 봉구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 순간, 서여국 황제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가만히 앉아 있거라. 내가 명을 내려 어혈을 풀고 멍을 가라앉히는 약을 바르게 하겠다.”봉구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할 사람은 내가 아니겠느냐.”“그대의 계책이 아니었다면 내 계획대로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많은 무고한 병사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이번 작전으로 피해를 줄였고, 조여란과 가짜 숙연까지 명분 있게 제거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느냐.”봉구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여란이 동산국과 손잡고 남제를 멸하려 한 만큼, 동산국으로부터 적잖은 지원을 받았을 것입니다.”“그 자를 처단하기 전에 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서여국 황제의 눈빛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기운이 번뜩였다.“그 말이 맞다.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파헤칠 것이다.”서여국에서 반역과 군주 시해는 이미 죽음에 값하는 죄였다.게다가 외국과 결탁한 죄는 나라를 배신한 중죄였다.그녀는 이 중죄를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서여국 천옥.조여란은 형틀에 묶인 채 기운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다.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녀는 감옥을 직접 찾은 서여국 황제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폐하,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제가 잘못한 건 많지만,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또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드린 것도 저입니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신다면 제 죄를 덜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여국 황제는 냉소하며 말했다.“여동생이라니? 네가 조종하여 내 여동생 행세를 하게 만든 창부를 말하는 것이냐? 그런 자가 내 혈육이라 할
서여국 황제는 평온한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잠시 후 궁으로 돌아가거라. 어의에게 너의 상태를 잘 살피게 하겠다."봉구안은 서여국으로 비밀 사절로 파견된 상태였고, 황제와 그녀의 심복 모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황제의 호위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황제의 배려에 봉구안은 사양하려 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모신이 먼저 물었다."폐하, 저 관료들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황제는 조여란이 화살로 모두를 살해하려 했던 순간, 관료들 중 일부가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조여란의 동조자는 모두 체포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라.""예, 폐하!"그 순간, 반역죄가 자신들에게 닥쳤음을 깨달은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폐하, 살려주십시오!""폐하! 순간의 실수였습니다!""폐하, 조여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습니다!""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그러나 서여국 황제는 이들의 간청을 전혀 듣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했다."끌고 가거라!"그렇게 조여란의 동조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아아…" 숙연은 조여란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그녀는 급히 몸을 떨며 말했다."저는 조여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억울하게 끌려온 것뿐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억울하다고? 내가 본 건 너와 조여란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서여국 황제는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숙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저었다."아닙니다! 언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여란이 반역자인 줄도 몰랐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여국 황제는 검을 뽑아 숙연의 목에 겨누며 비웃듯 말했다."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구나?"숙연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언니, 저… 저는 언니의 친동생입니다…!"그 순간, 황제는 매섭게 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