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의 발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냈다. 소욱은 봉구안을 침상 위로 거칠게 던지며 조금도 그녀를 아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두 팔을 잡아 머리 양옆에 눌러 놓고, 그녀 위에 군림하듯 내려다보았다.마치 그의 눈에 비친 그녀가 그저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가 힘겹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무공을 드러낼 수 없기에 더욱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며, 숨이 거칠어지고 점점 급해지는 걸 느끼며 소욱은 여유롭고 냉정하게 그녀의 모든 반응을 지켜봤다.봉구안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온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평생 한 번도 이렇게 속이 터질 듯한 굴욕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남자에게 압도당해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팔이 잡힌 탓에 상반신에는 힘을 쓸 수조차 없었다. 이내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소욱의 눈 속에는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해 그의 허리 아래로 모였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굶주린 늑대와도 같았다.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갈증이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그는 그녀에게 잠시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차갑게 닿은 그의 입술이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힘있고 거침없이 그녀의 입을 열어젖히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저항하는 "움움" 소리가 그의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봉구안의 마음속에는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녀는 그의 입맞춤이 끔찍하고, 그의 모든 행동이 역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두 손목을 잡고 그녀를 단단히 눌러버렸다. 그녀의 팔은 온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드러난 팔 위에는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남자의 손등 위에도 선명하게 힘줄이 도드라졌다.서로의 힘겨루기 속에서 침상에는 주름이 잡혔다. 소욱은 그녀가 끊임없이 저항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몇 차례나 그녀의 팔이
자진궁 안에 있던 웅장한 병풍들이 황제의 손에 의해 한순간에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사양은 장자문 밖에 서서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도대체 황제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는 황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경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황제의 반응을 보니, 혹시라도 황후의 뱃속 아이가 황제의 아이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황제께서 이토록 노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효현궁.녕비의 손에 들려 있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충격과 슬픔이 가득했다."황후가… 아이를 가졌단 말인가?"궁녀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마마. 지금 온 궁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녕비는 거의 자신의 입술을 깨물 듯 격분했다."이렇게 빨리라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황제께서… 황후를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아무도 그 일에 대해 감히 논하지 않지만, 제가 감히 추측하건대 사당에 계실 때…""닥쳐라!" 녕비의 눈에는 질투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그 불꽃이 타올랐다. 사당이라니, 어림도 없었다!생각할수록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녕비는 질투로 몸서리치며, 황후 대신 자신이 그 영광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다른 비빈들도 황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분 녕비와 같은 마음이었다. 부러움에 사로잡히고,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그에 반해, 현비는 두터운 선물을 준비하여 직접 영화궁으로 가서 축하의 뜻을 표했다. 그녀가 방문했을 때, 가빈과 강빈도 자리에 있었다. 이 둘은 진심으로 황후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가빈은 순수한 성정이라, 이 궁에서 드디어 첫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다. 강빈은 황후의 세력 덕에 자신이 보호받고 있었기에, 그녀의 아이가 탄생하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자리에서도 주인 자리에
교먹은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촛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그 표정을 음산하게 만들었다. 황후와 황제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었다니, 그저 놀라웠다. 그런데 황후가 아이까지 가졌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그녀는 황후를 처리하기 위해, 황후의 중요한 약점을 일부러 모용선에게 넘긴 것이었다. 그걸로 모용선이 황후를 공격하길 바랐건만, 모용선은 이렇다 할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 일이 진짜인지 의심하는 것일까?사실, 모용선은 이미 그 사실을 태황태후에게 전했으나, 황후의 임신으로 인해 모든 일이 덮여버린 상황이었다.……방비전.그 시각, 모용선은 우울한 얼굴을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입궁하기 전의 자신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녀의 얼굴엔 처량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의 시녀, 추홍은 무섭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폐하는 항상 영비를 마음에 두고 계시지 않았던가. 어찌 갑자기 황후를 택한 것이란 말인가.밤이 깊어가도 방비전 위에 드리운 먹구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그러던 중 내관이 들어와 전하였다."귀인마마, 황후마마께서 마마를 부르셨사옵니다."추홍은 크게 놀라며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귀인마마, 혹시 황후마마께서 마마가 태황태후께 그 일을 전한 것을 알아챈 것일까요?"’"이번에야말로 마마를 처벌하시려는 건 아닐까요?"모용선은 차분히 말하였다."걱정 말거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그러나 추홍은 여전히 불안에 휩싸여 말했다."마마, 그러시다면 제가 지금 태황태후마마께…""그럴 필요 없다." 모용선은 그녀의 말을 단호히 막았다. 태황태후가 그녀를 아끼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같은 모용가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무엇이 궁중에서 살아남는 길인지 아는 사람이었기에 태황태후의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태황태후에게 의지하다 보면 오히려 그녀의 불만을 살 것이었다.모용선
봉구안이 편지를 꺼내어 모용선에게 건넸다. 모용선의 시선은 그 편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직접 보거라." 봉구안이 냉랭하게 말했다.모용선은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 편지를 받아 들고 펼쳤다. 편지에는 확실히 아버지의 죄에 대한 증거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순간 요동쳤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편지를 다시 접고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자리에 앉았지만 가슴속 심란함은 끊이질 않았다.‘혹여 이 편지가 위조된 것일 수도 있어. 그러나, 이미 한 번 실수하여 오라버니의 목숨을 잃게 한 죄가 있는 내가, 아버지마저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어…’모용선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눈앞에선 봉구안이 그 편지를 등잔불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그 말을 삼켰다. 불꽃이 편지의 한쪽 끝에서 번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온 편지를 재로 만들어버렸다.모용선은 크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황후마마!"도무지 황후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봉구안은 편지를 다 태우고 난 뒤에야 그녀에게 냉정한 시선을 던졌다."너에게 말해두겠지만, 예전에 황 귀비를 쳐낸 것 또한 미궁 속 그 자의 도움 덕이었다."모용선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이미 그 자와 오래 전부터 연을 맺고 계셨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어찌하여 저에게 이를 말씀하시는 것인지…"봉구안은 쓸쓸한 듯 말했다."당시 나도 너와 같은 선택을 했다. 그리하여 그 자의 졸개가 되었고, 그 결과 모든 비밀이 그의 손아귀에서 샅샅이 드러나버렸지."봉구안은 모용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혹 너도 그와 같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 감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조심하거라. 그 자가 너를 주시하고 있다면, 너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모용선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눈이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황후 앞에
침상 발 뒤에서 나온 이는 바로 봉구안이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봉구안은 손에 든 검을 날카롭게 세워 그 신비한 자의 목 앞에 들이밀며 차가운 살기를 드러냈다. 신비한 자는 뜻밖의 매복에 깜짝 놀라 몸이 경직되었다.전각 안은 어둠에 잠겨 있어, 등불 하나조차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봉구안은 한 손으로 화침을 꺼내어 불꽃을 불어 켜고, 그것을 벽 옆에 놓인 등잔에 던져 불을 밝혔다. 전각 안에 비로소 어렴풋한 빛이 퍼졌다.신비한 자는 즉시 공격할 태세를 취했으나, 봉구안의 검날이 그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며 얕게 상처를 남겼다. 봉구안이 냉혹하게 말했다."넌 나를 이길 수 없단다. 교먹아."검은 얼굴 가면 아래에서 교먹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봉구안은 수차례 자신이 틀렸기를 바랐으나, 드러난 신비한 자의 눈을 보자 차갑게 얼어붙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교먹 또한 변장술에 능했으나 눈의 모양만은 바꿀 수 없었다. 그 눈을 보자마자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봉구안의 눈에는 강렬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내가 직접 너의 가면을 벗겨야겠느냐?"전각 안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비한 자는 전각 밖을 바라보았지만, 놀랍게도 밖에도 호위병이 없었다. 그녀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역시 함정이었군…"잠시 후, 신비한 자는 마치 운명을 받아들이듯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들어 가면을 벗어 던졌다. 과연 그 정체는 교먹이었다! 그녀는 봉구안에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언니, 난 그저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변장하고 궁에 몰래 들어와서 함께 제야를 보내려 했을 뿐이야. 그런데 궁이 너무 넓어 길을 잃고 말았어…"그녀는 계속 변명하며 봉구안이 믿어주기를 기대했지만, 봉구안은 냉소를 지었다."방금 내가 왜 정 귀인의 전각에 있는지 묻지 않았어?"모용선은 신비한 자를 잡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고, 이미 며칠 전부터 방비전의 호위들이 교체되어 있었다. 이날이 설날 당일인 만큼, 봉구안은 교먹이
교먹은 복수의 쾌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봉구안을 쳐다보았다."내가 한 일들을 후회하지 않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언니는 내 것을 빼앗아 간 것이 한둘이 아니지 않았어?""어릴 때 맹가에 굶어 쓰러져 있었던 나, 온순하고 영리한 내 성격이라면 분명 맹가에 남아 그들의 양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거야.""그런데 언니는 굳이 끼어들어 나를 제자로만 삼게 하고, 결국 언니는 양녀가 되어 맹가의 아씨가 되었지.""맹가 아씨의 자리를 바로 언니가 빼앗아 간 거야! 같은 부모에게 버려진 처지면서도 언니는 나보다 항상 위에 서고자 했던 거 아니야!"봉구안은 교먹이 그때부터 자신을 미워해왔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차가운 실망이 밀려들었다. 교먹이 그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신이 맹가에 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정작 그녀는 제자로 받아들여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교먹은 그 이유로 그녀를 미워하고, 그 증오로 인해...봉구안은 더는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먹의 말들이 단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먹이 봉가의 일을 알고 있다면 그녀가 어릴 때부터 맹가에서 자랐으며, 사부와 사모가 본래 그녀의 양부모였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불과했다. 이미 어둠에 물든 사람은 깨달을 수 없는 법이다.교먹은 계속해서 태연하게 말했다."언니가 강호를 떠돌던 몇 년간, 내가 사부님과 사모님을 모셨어.""사부님과 사모님은 분명 나를 아껴주셨지. 그런데 언니가 돌아온 이후,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두 분의 눈에는 그저 언니만 있는 듯했어!""군영에 들어갔을 때도, 내가 무공이 모자란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언니는 나를 암위로 만들었잖아. 그것도 바로 언니의 암위로 말이야!""그리고 사부님께서 나를 내쫓으려 하신 것도 언니가 무슨 말을 전했기 때문이었겠지!""언니, 언니는 내가 언니의 공로를 빼앗을까 두려웠던 거지? 언니는 정말… 정말 이기적이었어!""그리고..
“맹 소장군이 죽으면 북방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거야.”“남제를 호시탐탐 노리는 여러 부족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 봉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 자신을 진정 맹성주라고 생각하는거야?” 교먹은 검날을 붙잡고 봉구안이 더 깊이 찌르지 못하게 저지했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깊은 상처가 났고, 피를 내뱉으며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맞아, 내가 맹성주를 가장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언니도 황후 행세를 하기 위해 황궁에 시집온 게 아니었어?” “나는 고아로서 의지할 사람도 없고 혈육인 가족도 없지. 그런데 언니는 다르잖아? 언니 뒤에는 봉가가 있고, 또 그토록 아끼는 맹가도 있잖아.”“우리 둘 중 누가 더 큰 죄인이며,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을 연루시키고 있는 지는 생각해 봤어?” 교먹의 상처에서 피는 점점 더 흘러내렸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길로 봉구안을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언니, 한번 잘 생각해봐. 나를 죽이면 언니도 마찬가지로 이 궁에서 떠나야 할 지도 몰라.” “내가 밖에 사람들을 남겨 두었으니, 내 죽음이 알려지면 언니가 대신 시집온 사실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거야. 그러면 봉가와 맹가는 모두 처벌을 피하지 못할 지도 몰라.”“언니, 나는 손해 볼 일이 없어.” 교먹의 이 말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봉구안의 살갗을 파고들어 뼈까지 후벼 팠다. 그녀가 아끼던 동생이 자신을 해치기 위해 참으로 치밀한 계책을 세웠고, 심지어 친부모처럼 여겨온 사부와 사모까지도 제물로 삼으려 하다니…봉구안은 눈앞에 있는 교먹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은 생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도발과 승자의 여유가 가득했다. 봉구안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나, 자신의 사람에게 검을 겨눈 것은 처음이었다. 교먹이 첫 번째였다. 그녀의 눈가에는 옅은 붉은 빛이 돌았고, 마음속에서는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러나 그녀는 또한 자신을
황궁 대전 안.설 연회는 한참 분위기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고 있었다. 궁중의 비빈들은 평소의 날카로운 신경전을 잠시 잊고, 웃고 떠들며 새해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흥겨운 자리에도 황후의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소욱은 몇 번이나 그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이를 눈치챈 태후가 물었다. “황후가 몸이 좋지 않다는데, 어의를 보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용선이 일어나서 말했다. “태후마마, 조금 전 제가 사람을 보내 황후마마를 살펴보았사옵니다. 황후마마께서 무척 피곤하신지라 이미 잠드신 상태였사옵니다.” 정 귀인은 불심이 깊고 섬세한 성격이어서, 황후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는 사실은 그리 의심할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그녀의 말을 믿었다. 태후는 자애롭게 웃었다. “아이를 가진 여인들은 항상 졸음이 많은 법이지. 폐하, 폐하께서도 황후를 좀더 살펴주어야 합니다.” 소욱의 눈빛은 무척 차가웠다. 술잔을 들어 한 모금에 들이켰다. 모두들 그가 태후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술잔을 내려놓은 소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마마마, 어마마마, 잠시 황후를 살펴보러 다녀오겠사옵니다.” 태황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황제가 자신의 말을 이렇게 순순히 듣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용선은 마음속으로 그를 막고 싶었으나, 황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다. 그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황후가 방비전에서 그 신비로운 자를 잡고 있을 터인데, 괜찮을까? ……영화궁. 내전. 봉구안은 탁자 옆에 앉아 술을 잔잔히 들이키고 있었다. 모두들 술이야말로 시름을 덜어준다 말하지만, 술동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어도 그녀는 아직 취하지 않았다. 연상은 황후의 변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조용히 그녀를 타이르고 있었다. “마마, 더는 마시지 마세요. 술은 몸을 상하게 합니다…” 봉구안은 다가온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옆방.단회욱은 검은 피를 토해냈다.그는 단정의 어깨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마치 버드나무처럼 연약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한 쌍의 옥처럼 맑던 눈동자는 이제 흐릿해지고 있었다.그를 보며 봉구안은 많은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뼛속까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병사들의 희롱과 조롱에도 그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 늘 부드럽게 대했다.그는 군의관으로서 항상 인내심이 넘쳤다.그녀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지닌 고요한 세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그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늘 마음이 차분해졌다.그래서 그가 천룡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녀는 그의 선량함과 자애로움을 부정할 수 없었다.그런 것들은 꾸며낼 수 없는 것이다.그의 신분과 과거는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것.그녀는 한 사람을 좋아할 때 언제나 현재만을 바라보았다.그를 좋아했던 일에 대해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고, 원망도 없었다.봉구안은 둥근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한때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막상 정말로 다시 보게 되자 수많은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그녀는 그에게 이 몇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가 겪은 고통과 고난은 손수 적어낸 기록에 상세히 쓰여 있었다.“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쉰 듯 갈라졌다.단회욱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그의 눈동자는 예전보다 한층 단단해진 냉엄함이 더해져 있었다.그녀의 옷은 흙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가락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었다.예전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다.하지만 지금은 욕심이 생겼다.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단정은 두 사람의 눈빛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단회욱을 눕혀놓고 말했다.“형님, 약을 좀 다려 올게요.”그가 있으면 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단회욱을 구해내는데 성공하였다.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봉구안의 마음이 순간 떨렸다.단회욱은 많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한쪽 팔은 부러졌으며,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잘생긴 얼굴은 생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생기를 잃은 시체처럼 입술은 하얗게 메말라 있었다.“형님!”단정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드디어, 드디어 형님을 찾았어요!”단회욱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멀리 있는 봉구안을 바라보았다.봉구안은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말했다.“오라버니…”단회욱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온화했다.“구안아…”“폐하!”진한길이 놀라 외쳤다.봉구안은 급히 뒤돌아보았고, 몸이 저절로 움직여 그쪽으로 달려갔다.“폐하께서 어떻게 되신 겁니까!” 그녀는 다급히 물었다.그러나 소욱의 안전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진한길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전 구역에 틈이 생겨 폐하께서 낙석에 팔을 맞으셨습니다!”그때 아래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과인은 괜찮다…”남산왕은 급히 외쳤다.“어서 사람을 구하라! 균형이 깨지면 안전 구역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만약 안전 구역이 무너지면, 그 이후의 위험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단정은 황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형님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자 그를 업었다.그러다 형님 얼굴에 찍힌 뺨 자국을 보고 순간 몸을 굳혔다.“형님, 누가 형님을 때린 겁니까!”단회욱은 이전에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러나 그가 말했다.“누구든 상관없다…”그는 오로지 봉구안만 걱정하고 있었다.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렀다.잠시 후, 소욱이 드디어 구조되었다.남산왕은 중얼거렸다.“하늘이시여…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사고를 피했습니다.”그러나 소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의 팔은 옷과 살점이 뭉개져 엉망이었다.진한길은 마음이 아팠다.봉구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
수만 대군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화약과 진천뢰를 옮겼다.구중탑 내부.양연삭은 계속 위층으로 올라가 마침내 여덟 번째 층에 도달했다. 진기의 영향으로 그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다섯 번째 층 이상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지만, 그는 소환과 황제를 찾을 수 없었다.잠시 생각한 뒤, 그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걸음도 돌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꼭 꼭대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꼭대기에 숨어 있을 게 분명하다!”양연삭은 구중탑의 아홉 번째 층에 오르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살폈다.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했다.옷자락 한 조각이었다.그는 손바닥에 진기를 모아 그것을 끌어당겼으나, 나타난 것은 단지 겉옷 한 벌일 뿐이었다.“속임수인가?”양연삭의 눈빛이 차갑고 깊어졌다.“나와라!!”그는 광기에 휩싸인 듯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진기로 형성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공격을 가했다.그때, 밖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안전구역 내부.소욱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산을 폭파하고 있는 모양이군.”그의 눈썹 사이에 약간의 긴장이 풀리며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끝이 나는군…”쾅!!펑…!고요했던 옥령산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순식간에 연기와 화염이 뒤덮었다.남산왕은 장병들을 이끌고 안전지대로 물러난 뒤 명령을 내렸다.“폭파하라!“다시 폭파해라!”남산왕의 반복되는 명령에 진한길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슬그머니 봉구안의 곁으로 다가갔다.“소... 공자, 그 안전구역이라는 곳이 정말 폭파되지 않는 겁니까?”그는 이 상황을 보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봉구안의 다른 쪽에 서 있던 동방세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 동방가문이 남긴 안전구역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물론 전제는 황제가 정말 안전구역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지금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과거 자신이 알던 그 소환이 아니었다.소환이 여인이었다니… 그것도 폐비 봉씨라니…동방세
구중탑 밖, 남산왕은 여전히 굳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이토록 완고한 사람은 봉구안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동방세가 말했다.“저희 선조께서 구중탑으로 옥석비를 보호하신 이유는, 아마도 태조 황제께서 옥석비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길 원치 않으셨기 때문일 겁니다.”진한길이 남산왕 앞에 무릎을 꿇고, 눈가가 붉어졌다.“전하! 방금 말씀 들으셨습니까! 태조 황제께서 정말 옥석비를 필요로 하셨다면 어찌 그것을 진압하셨겠습니까? 진작 그것을 받들어 모셨을 것입니다!”“그러니 더 망설이지 마시고, 어서 구중탑을 파괴하십시오!!”남산왕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냉정하게 돌아섰다.“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그와 그 장수들의 사명은 봉맥을 지키는 것이었다.봉맥이 끊기면, 그들 모두 죽게 될 터였다.달빛이 봉구안의 얼굴을 비추니, 차갑고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남산왕에게 단호히 말했다.“양연삭이 감히 구중탑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나갈 방도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금 탑을 부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양연삭의 손에 의해 탑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 옥석비 역시 그의 손에 들어갈 겁니다. 그때가 되면 천하가 혼란에 빠질 텐데, 그것이 전하께서 바라는 바이십니까!”남산왕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분명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단정은 형님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분노하여 소리쳤다.“이 고집불통 노인네! 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소씨 황족의 혈맥은 끊어져도 된단 말입니까?”“오늘 여기서 저 단정이 맹세합니다! 구중탑을 부수지 않아 저희 형님이 나오지 못하면, 전 소씨 황족을 모두 죽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황위를 잇는 자는 더 이상 없겠죠!”남산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단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못할 것 같습니까! 이 고집불통 노인네, 먼저 당신부터 죽일 것입니다!”봉구안이 단정을 재빠르게 막았다.단정은 곧 멈
“소환?! 너는 어떻게 나온 것이냐!폐하는!”진한길은 즉시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굳게 닫힌 돌 문 뿐이었다. 돌문 외에 황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산왕이 급하게 물었다. “소환! 어찌하여 너만 나온 것이냐! 폐하는 어디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봉구안은 즉시 말했다.“전하, 즉시 명령을 내려 구중탑을 폭파하십시오!” 남산왕의 얼굴이 금세 파래졌다. “그럴 수 없다!” “저긴 봉맥이 이어진 곳이기 이전에, 폐하께서 아직 안에 계시지 않는가!” “지금 나의 손을 빌려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결코 폐하를 시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봉구안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폐하께서는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십니다. 천룡회 교주는 수시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저 구중탑을 파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그래도 남산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래도 안 된다! 구중탑이 무너지면 봉맥은 반드시 끊어지게 돼. 나는 이 봉맥을 망칠 수 없다! 남제 국운에 관계되는 이 일은 내가 감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설령 폐하께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난 끝까지 구중탑을 지켰을 것이다!”진한길이 노했다. “남산왕 전하! 지금 황제 폐하께서 안에 갇혀 계십니다!”그는 즉시 분부하였다.“어서 빨리 사람을 불러와 구중탑을 폭파할 준비를 하십시오!!” 원래 그는 황제의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 황제는 안에 갇혀있는 상태였다.그는 즉시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구중탑을 폭파하기 위해 필요한 폭약과 진천뢰는 이미 충분히 준비해둔 상태였다! 남산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말거라! 황제는 새로 세울 수 있지만, 남제의 국운은 다시 올 수 없는 법이니...” 봉구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남산왕 전하께서 지키는 것은 봉맥이 아니라 그 황백한 물건들이 아닙니까! 설마 그 보물들이 황제 폐하의 목숨보다
소욱은 위층으로 달려갔다. 계속 달려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는 아래로 내려가는 쪽이 생존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면 봉구안에게는 아무런 살길이 남지 않았다.첫째, 그녀는 자신보다 체구가 작고 경공이 뛰어나 내문을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어 탑을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둘째, 탑을 나간 뒤에는 남산왕을 설득해 탑을 부숴야 했다. 만약 탑 안에 남는 사람이 봉구안이라면 남산왕은 그녀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이 황제인 자신이라면 남산왕도 어느 정도는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결국 봉구안은 탑을 나간 뒤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기보다는 그를 살리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심지어 단회욱과 함께 죽을 각오까지 한 듯했다.그런 그녀의 뜻을 소욱이 어떻게 두고 볼 수 있겠는가!…봉구안은 빠르게 1층까지 내려갔다.상황이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시간은 더욱 촉박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구중탑은 오직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는 구조였다. 입구가 곧 출구였다.탑을 나가려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소욱이 탑에 들어온 이상, 진한길과 그 일행은 필사적으로 탑 안으로 들어와 그를 지키려 할 것이다.그러니 문은 언젠가 열릴 터였다.봉구안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이었다.그때였다. 2층에 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젊은이, 여기서 나갈 수는 없다. 이 구중탑에는 문이 두 개지.”“바깥 문이 열리기 전에 안문이 먼저 닫혀버리는 구조라네.”“가끔 머리를 굴려서 안문 바깥에 미리 서 있으면 괜찮을 거라 착각하는 자들이 있더군.”“하지만 그곳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안문의 기계 장치를 작동시키게 되지… 못 믿겠으면 한번 해보거라.”봉구안은 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그녀는 이미 5층에서 악인들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이 바닥에는 하중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사람이 발
봉구안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적룡왕과 자룡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 자들 가운데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너희들, 저 둘의 옷을 입고 변장하거라.”악인들은 봉구안의 명령에 불만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또 그 소위 보물이라는 걸 위해서 일단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곳에 갇힌 자들 대부분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예 구중탑에 갇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흉내 내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옷을 갈아입고, 가면을 쓰자 꽤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다.잠시 후, 그들은 봉구안을 따라 다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양연삭은 그곳에서 명상을 하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발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뜨며 그들을 노려보았다.변장한 자룡왕이 나서서 예를 표했다.“교주님, 조사해본 결과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다섯 번째 층 바닥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다른 층보다 훨씬 두텁더니…”양연삭은 그들의 몸에 묻은 피를 보며 차갑게 시선을 내리깠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했다.“저들을 죽이려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제가 교주였다면 저 자들을 당장 없애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한 위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습니까…”그 말은 은근히 협박의 뉘앙스를 풍겼다.양연삭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충분한 인원을 소집하여 당장 땅을 파거라.”“알겠습니다, 교주님!”봉구안이 제안했다.“외부인을 믿을 수 없으니…”“다섯 번째 층의 모든 이를 몰아내고 저희 손으로 직접 파는 게 어떠십니까?”양연삭의 음성이 날카롭게 변했다.“저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그의 차가운 자신감은 무적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기세를 폭발시키며 강력한 힘을 봉구안에게 발산했다. 기류가 즉시 감옥처럼 형성되어 그녀를 가뒀고, 그녀의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진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그것은 양연삭의 만건성법이었다! 그는 그녀의 내공을 빼앗으려 했다.양연삭의 눈빛은 얼
그녀더러 소욱을 죽이라니?봉구안의 손바닥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양연삭에게 되물었다.“이 탑에서 나갈 방도가 있습니까?”말인즉슨, 황제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양연삭은 그런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황제를 당장 죽여라.”봉구안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소욱을 보호하며 말했다.“보물과 황제, 둘다 필요합니다.”자룡왕은 이미 몸을 가누고 일어서며 양연삭에게 외쳤다.“교주님, 이건 계략입니다! 소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양연삭은 봉구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태연하게 고백했다.“저는 소수자입니다. 미남을 좋아하죠. 황제는 제가 아직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만약 황제를 죽이신다면, 여러분 중 누가 이보다 나은 장난감을 저에게 보상해 주시겠습니까?”그녀는 말하며 시선으로 오왕을 훑었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 눈빛은 방자하고 조롱기가 섞여 있었다.“참고로, 저는 자극적인 놀이를 좋아합니다. 당신들 중 감당할 자가 있다면, 나이가 좀 많더라도 상관없습니다.”그 말에 자룡왕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양연삭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길을 안내하거라.”봉구안은 마치 아쉽다는 듯 오왕을 흘낏 보았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녀의 시선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양연삭은 탑의 제9층에서 떠나지 않고, 자룡왕과 적룡왕에게 봉구안을 따라가라고 명령했다.봉구안은 그들을 탑의 5층 돌계단까지 데려갔다.그러고는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그녀는 눈앞의 돌벽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입니다.”자룡왕과 적룡왕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즉시 봉구안을 죽이려 하였다.그러나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기억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마도 한 층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자룡왕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소환, 경고하겠다. 잔꾀 부리지 말거라!”봉구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물었다.“교주님께서는 보물의 절반을 줄 만큼 후
봉구안은 원래 쓰던 가면이 깨져버려 다른 이의 가면을 대신 쓰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형에 조금 맞지 않아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좁고 작아 보였다.소욱은 살기를 가득 담은 얼굴로 중앙에 있는 이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양연삭은 가부좌 자세로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의 곁에는 다섯 명의 왕이 그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다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봉구안이 뒤에서 기습을 가해 은침 하나를 소욱의 뒷목에 꽂았다.소욱은 검을 쥔 채 동작을 멈추더니 믿기 힘든 듯 뒤를 돌아보았다. 배신감에 휩싸인 표정이었다.“네가 어째서…”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가 들고 있던 검 역시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쓸모없는 쇳덩이에 불과했다.천룡회의 다섯 왕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무슨 상황이지?양연삭은 쓰러진 황제를 한 번 보더니 봉구안을 다시 바라보았다.봉구안은 쓰러진 소욱을 무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저는 소환이라 합니다.”자룡왕은 분노에 찬 냉소를 터트렸다.“소환? 네가 감히 여기에 나타나다니! 우리가 누군지 알기는 하느냐?”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에 든 무기를 봉구안의 목에 들이댔다.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압니다. 여러분들은 천룡회의 사람들이지요.”“예전에 우리 천룡회를 멸망시킨 자가 바로 너구나. 오늘, 네놈을 당장 죽여, 천룡회 일원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자룡왕이 곧바로 공격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저를 죽이신다면, 여러분은 보물을 찾을 가능성이 더더욱 없어집니다.”“멈춰라.”양연삭이 직접 말을 꺼냈다.자룡왕은 즉시 공격을 멈췄다.“네놈,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봉구안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자룡왕을 지나쳐 교주 양연삭을 향해 말했다.“여러분처럼 저 또한 이번에 구중탑에 들어온 것은 남제 태조 황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