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욱의 손이 그녀의 가면에 닿았을 때, 은침 하나가 그의 명치를 가리켰다.봉구안의 눈빛은 차가웠다.“호기심이 사람을 잡습니다.”소욱은 얇은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그리고 손을 뗐다.봉구안도 손에 있던 은침을 거두었다.두 사람은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문이 열렸다.진한길은 황제가 무사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그래도 그 여자 자객은 잡아두는 게 안전했다.그녀가 허약한 틈을 타서 그녀를 해결해야 했다.진한길은 칼집에서 칼을 꺼냈다.황제가 명령을 내렸다.“보내줘라.”…어둠이 짙어졌다.영화궁.연상은 이틀 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황후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곧 황후가 많이 다쳤다는 것을 발견했다.“마마, 마마…”봉구안은 허약한 몸을 이끌고, 한 손으로는 책상 모서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밖에서 지키고 있어.”봉구안의 목구멍은 마치 불에 그을린 것처럼 말할 때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예, 마마.”연상은 황후가 이틀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황후가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몸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바로 문밖으로 물러났다.내전.봉구안은 침대에 가부좌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운공을 시작했다.봉구안은 이번에 많은 내력의 상실했다. 갑자기 절반의 내력의 없어져서 신체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밤은 운공을 잘 해서 몸조리를 해야 했다.그리고 사부님이 가르쳐 주신 내공법을 수련해야 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이 과정은 매우 길었다.적게는 석 달, 많게는 반 년이 걸렸다.하지만 봉구안은 후회하지 않았다.드디어 소욱의 천수지독을 해결했다.이제 능연을 처리하는 걸림돌을 다 제거했다.봉구안은 눈을 번쩍 떴다. 눈에서 살벌한 기운이 스쳤다.…청허궁.능연은 유난히 불안해했다.밤이 깊었는데 능연은 아직 자지 않았다.능연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다음날 아침, 하녀가 아뢰었다.“마
대전에서 양국 대신들이 설전을 벌리고 있었다.후르달이 말했다.“제황 폐하, 맹성주가 우리 양나라의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배상금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고 맹성주에게 석고대죄를 요구하는 것 또한 양나라 전국 백성들을 위로하고 이번의 양국 평화 회담을 성사하고 동맹을 맺기 위해서입니다.”“남제에서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다면 외신이 이 평화 회담서에 서명을 해도 양나라의 수십만 군사가 승낙하지 않을 것이고 백성들이 승낙하지 않을 것이며 죽은 수많은 원혼들이 승낙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자 남제의 대신이 반박했다.“양국의 대전에서 인명피해는 불가피합니다. 게다가 남제의 장병들은 지금까지 양나라의 백성들을 도륙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원혼? 무슨 위로를 요구하시는 겁니까?”후르달은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면 귀국은 화담할 뜻이 없다는 뜻인지요?”“좋아요!”“그럼 계속 전쟁을 합시다.”“어차피 맹성주가 다쳐서 위중하니…”“다시 싸우면 누가 지고 누가 이길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하물며 남제는 자연재해가 빈번하고 국고도 비어서… 전쟁에 필요한 군비를 감당할 수나 있겠습니까?”용상에 앉아 있던 소욱이 낮은 목소리로 사신들에게 말했다.“양국이 교전해도 사신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하거라.”후르달 등은 서로를 쳐다보았다.군왕으로서 이렇게 침착하지 못하다니, 양나라의 황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소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남제는 평화 회담을 성사시키고 동맹을 맺을 마음이 확실히 있다. 그런데 양나라에서 이렇게 몰아붙이고 무례하게 배상을 요구하고 남제의 병사들을 모욕하다니… 짐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천하의 망신이다.”“짐이 보기에 양나라가 소인의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 같구나…”“화해를 구할 마음이 없다면… 여봐라, 사신들을 돌려보내거라!”소욱이 명령을 내리자 호위들은 양나라 사신들은 밖으로 ‘모셨다’.양나라 사신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서재.흰옷을 입고 있는 봉구안에게서 전혀 황후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욱은 이런 봉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봉구안은 무릎을 꿇고 손에 공술서를 높이 들었다.“폐하, 신첩은 억울함을 하소연하러 왔습니다.”내전에는 진한길이 시중들고 있었다.진한길은 공술서를 황제에게 전달했다.한 장 한 장 뒤져보던 소욱의 얼굴에는 광풍이 일었고 먹구름이 뒤덮였다.“황후, 여기에 뭐가 적혀있는지 알고 있느냐?”봉구안은 공손한 태도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보고 계신 것은 산적들의 최초의 진술서입니다. 어떠한 삭제도 추가도 없는 진실입니다.”“그 내용이야말로 신첩이 잡힌 후 실제로 겪었던 일들입니다.”소욱의 동공은 갑자기 수축했다,“궁중의 상궁이 너의 결백을 확인했었다.”봉구안은 분명히 결백한 몸이었다. 그런데 공술서에는 그녀가 납치된 후 능욕 당했다고 적혀있었다.봉구안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신첩은 이역의 금지약물을 복용하여 피부를 한층 탈피해서 흉터들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선 수술도…”“그래서 아무리 경험이 많은 상궁이라 할지라도 신첩이 능욕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탁!소욱은 탁자를 두드렸다. 눈 밑에서 차가운 빛이 번졌다.“그러니, 네가 짐을 속였단 말인가? 봉씨 가문도…”‘봉구안 정말 겁도 없이…’소욱은 봉구안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산적들은 이미 처벌당했다. 능연이 배후의 진범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미 귀인으로 강등되어 청허궁에 갇혔다. 그리고 더 이상 총애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황후는 이 모든 일을 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뒤져내서 자신을 망신시켰다.소욱의 시선은 날카로웠다.“네가 계속 짐을 속이고 있었다니…”봉구안의 마음이 가라앉았다.‘중점이 널 속인 거야?’‘중점은 능연이 한 짓이 아니냐?’봉구안은 침착하게 맞섰다.“폐하, 산적의 증언에 따르면 신첩이 능욕 당할 때 능연은 옆에 있었습니다.”“조검의 수찰에는 많은 내용들이 기록
봉구안은 증인이 누구인지 바로 말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말을 설명했다.“마구 경기 후, 왕천해가 두 비빈을 말에서 떨어뜨린 진범으로 밝혀졌는데, 왕천해는 능연의 사주를 받아 가빈을 해치려고 한 것입니다. 왕천해가 체포된 후, 능연은 사실이 밝혀질까 봐 궁녀 주아를 보내 왕천해를 죽이려 했습니다…”소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소욱은 왕천해와 주아라는 궁녀는 이미 다 죽었다고 알고 있다.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봉구안의 증인이 되는 일을 없을 것이다.봉구안이 침착하게 대답했다.“폐하, 궁녀 주아는 그날 밤에 죽지 않았습니다. 신첩이 비밀리에 주아를 궁 밖으로 보내서 치료받게 하였습니다. 지금 주아는 능연을 지목할 수 있습니다.”소욱은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 표정이 이상하게 잠잠했다.‘정말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고?’소욱은 봉구안의 말을 끊지 않았다.봉구안은 계속 말했다.“조검의 동생 조서가 조씨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데, 그가 능연이 수하들이 보내 조씨 가문 일가를 살해했다고 지목했습니다.”“이것도 부족하다면 능연의 몸종이었던 춘하도 있습니다. 춘하도 증인으로 능연의 각종 죄행을 지목할 수 있습니다.”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이 여자가 몰래 이렇게 많은 일을…’‘능연의 몸종 하녀까지…’“폐하, 증거와 증인이 다 있습니다. 신첩 지금 당장 그들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소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봉구안의 말을 끊었다.“지금 남제와 양나라가 일촉즉발인 상황이라 이런 일을 처리할 시간이 없다. 짐이 그때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때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황후, 이 쓰레기들을 가지고 영화궁으로 돌아가거라. 황후가 짐을 속인 일은 나중에 황후와 분명히 계산할 것이다. 능연이 저지른 잘못도 엄벌할 것이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아직까지도 능연을 보호하고 있군…’봉구안은 황제의 허락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봉구안 눈 속의 공손함과 존경심은 사라진 대신 차갑고 날카로워졌
능연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고개를 바짝 쳐들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증인 조서는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능연을 쳐다보았다.“폐하, 소인의 형 조검은 황귀비 마마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살기 위해 그 수찰을 썼습니다.”“그런데 황귀비가 이렇게 독할 줄은… 황귀비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저희 일가족을 전부 살해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사람의 도움이 있어 소인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그 사람들은 소인의 집에 방화했습니다. 그들은 소인이 몰래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궁녀 주아가 말했다.“폐하, 귀비마마께서 노비에게 왕천해를 암살하라고 시켰습니다.”이들의 자백만으로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있었다.예를 들면 조서가 어떻게 그의 일가족을 죽인 사람이 능연이 보낸 사람임을 확신하는지…그래서 춘하의 증언이 특히 중요했다.“마마께서는 조검의 가족들이 뭔가를 알고 있을까 두려워 노비에게 조검의 일가족을 제거하도록 시켰습니다. 산적이 황후 마마를 납치한 것도 마마가…”“닥치거라!”능연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춘하, 난 너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어. 네가 어떻게 거짓으로 본궁을 모독한다 말이냐! 황후가 널 어떻게 매수했어?”“내가 더 이상 총애를 받지 못하니 다른 생각이 생긴 것이냐?”“폐하, 신첩 억울합니다. 신첩은 산적들이 사람을 납치한 일을 전혀 모릅니다. 더군다나 봉장미가 능욕당하고 있는 것을 방관한 적도 없고요… 진정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봉장미입니다. 봉장미는 혼인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어울려 순결을 잃고 산적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거짓말로 신첩을 모함하고 있습니다… 신첩 정말 억울합니다.”능연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독한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천한 년, 도대체 언제부터 그 증거들을 모은 거야?’‘조검의 수찰까지 찾았다니…’춘하는 옛 주인에게 다소 미련이 남아 있었다.춘하는 귀인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죄증 앞에서 귀인
봉구안은 침착하게 소욱의 말에 대답했다.“폐하께서는 황실의 명성을 중요시하고, 신첩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능연이 저지른 죄만 공개하고 피해자의 신분과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는 생략하시면 됩니다.”이렇게 해도 능연의 죄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소욱은 차갑게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래, 심사숙고했구나…”“짐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 공술서들을 황성 전지에 뿌릴 것이냐?”봉구안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부득이하지 않으면 신첩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폐하께서 능연의 죄를 정리해서 세상에 알린다면 요점만 알리 수 있지만, 만약 제가 세상에 알리게 되면 사실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때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을 겁니다.”협박 당하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게다가 소욱은 한 나라의 군주이다.소욱은 휙 하고 일어섰다. 온몸에 압박감이 휘몰아쳤고 궁전은 차갑고 잔혹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짐은 이미 능연에게 유배형을 처했다. 뭐가 더 불만이냐?”“능연의 죄를 세상에 알리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수모하려는 건가? 짐을?”총애하는 비빈이 큰 죄를 저지른 배후에는 군왕의 방임도 있었다.똑똑한 소욱은 봉구안이 그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라고 한 목적을 알아차렸다.봉구안도 부인하지 않았다.봉구안은 담담하게 소욱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능연의 잘못도 있지만 능연의 문제뿐만 아니라 황제의 총애가 있어 능연이 그런 짓을 했을 겁니다.”진한길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황후가 지금 황제를 비난하는 건가?’‘황후 정말 대단해!’봉구안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계속 말했다.“감추고 회피하는 것보다 잘못을 직시해야 합니다.”“황제의 총애가 능연의 의지였습니다. 폐하가 능연을 총애했기 때문에 설지 등 관원들이 떼를 지어 능연에게 달려들었고 그에게 뇌물을 선사했을 겁니다.”“그리고 은총을 독차지하려고 황후 자리까지 넘볼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신첩이 입궁하기도 전에, 신첩이 폐하의 총
곧 명령이 내려졌다.“여봐라! 황후를….”이때, 대전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황후마마를 모셔오라는 태후마마의 명이 있으셨습니다.”소욱은 싸늘한 눈빛으로 봉구안을 노려보았다.반면 봉구안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마치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대단한 책사 납셨네.’소욱은 진한 살기가 요동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황후, 평생 태후궁에 살 수 있을 것 같더냐.”봉구안은 공손히 예를 취했다.“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뒤돌아선 그녀의 얼굴에서 온화한 미소는 사라지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변했다.자녕궁.태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황후에게 말했다.“걱정 말거라. 내 평생 널 지켜줄 수는 없겠지만 며칠 시간 끌어주는 것은 가능해. 허나….”태후는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황상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며칠 시간을 끌려는 거라면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게야. 황후, 더 뾰족한 방법을 생각해야 해.”봉구안은 공손히 예를 취하고는 말했다.“감사합니다, 어마마마. 신첩은 이 기간 동안에 출궁을 할까 합니다.”태후와 황제는 그녀가 시간을 끌려고 자녕궁에 숨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상 그녀는 따로 계획한 게 있었다.자녕궁에 있는다는 것은 핑계고 궁 밖에 나가서 꼭 할 일이 있었다.태후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출궁을 한다고?”황후가 몰래 출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봉구안은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대전을 나가 편전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떠난 후, 계 상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태후마마, 황후마마께서는 무슨 일로 출궁하려는 걸까요? 태후께서 황후의 출궁을 도왔다는 걸 폐하께서 알면 크게 대노하실 겁니다.”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황후는 골칫덩어리였던 능연이를 제거해 줬어. 출궁이 아니라 더 무리한 요구를 해도 최선을 다해 도울 거다.”얼마 전, 황후가 갑자기 자녕궁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태후에게 능연이를 제거
말을 마친 소욱은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능연이는 바닥에 엎드려 절규했다.“안 돼!”“폐하! 신첩에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폐하!”왜 이렇게 된 걸까?아무도 해독할 수 없다고 알려진 천수독이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능연이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이대로 유배를 가야 한단 말인가.“안 돼!”자진궁으로 돌아온 소욱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유사양은 조심스럽게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상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황제가 직접 죄명을 나열한 첩지를 공개했고 귀비가 유배를 당했다.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유사양도 마찬가지였다.소욱은 책상 앞에 앉아 속으로 청심주를 읊었다.이것도 그 여자객이 알려준 방법이었다.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시급했다.변방은 여전히 불안정한데 후궁에도 피바람이 불었다.황후를 떠올리면 괘씸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용기에 감탄사가 나왔다.능멸을 당한 후에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밝히려는 여인은 흔치 않았고 그 사실을 자신의 부군에게 알리는 여자는 더더욱 흔치 않았다.세상 여인들이라면 모두 부군의 마음에서 깨끗한 형상으로 남길 원할 것이다.하지만 유독 황후는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밝혀냈다.그녀의 용기는 사내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그런 용기가 황제를 기만하고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었다.소욱은 반복해서 속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순결을 잃은 황후를 정녕 이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단 말인가?아무리 그녀를 싫어하고 평생 품을 일이 없는 황후라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고 대외적으로 황제의 정실이었다.정녕 그녀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묵과할 수 있을까?황후를 폐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그 후로 그는 또 새로운 황후를 들여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다음 황후가 봉장미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이 없었다.그녀가 금인장을 잡은 후로 후궁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갔고 그녀처럼 비빈들을 질투하지 않고 조용히 본
막사를 열고 들어온 황제의 키 큰 실루엣은 위엄과 당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봉구안은 소욱이 이렇게 빨리 선성에 도착한 것을 보고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어떻게 이렇게 빨리 선성까지 온 거지?’소욱은 갑옷도 벗지 않은 채 성큼성큼 다가와 아직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그녀를 단숨에 끌어안았다.“왜, 나를 못 알아보겠느냐?”봉구안은 정신을 차리고 팔을 들어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폐하께서 친히 군을 이끄셨다… 고생 많으셨습니다.”소욱은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너를 보니 수고로움도 잊게 되는구나. 오늘 밤, 저들을 공격하려는 것이냐?”그리움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될 터. 지금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었다.봉구안은 표정을 단단히 가다듬고 대답했다.“예, 이제 때가 왔습니다.”원래 계획은 봉구안이 병력을 이끌고 선성의 적군을 고립시키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여 적국이 원군을 파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 후 소욱 황제와 스승이 ‘거미줄’ 기계 장치를 활용해 적의 원군을 소멸시키고, 이어 선성 내의 적군을 몰살하는 계획이었다.그렇게 되면 적군은 식량 부족과 내부 갈등, 공포로 인해 기세를 잃게 될 터였다.이런 방식으로 남제는 적은 병력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봉구안은 그날 밤의 공성 계획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소욱은 그녀의 여윈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알겠다. 먼저 좀 쉬는 게 좋겠구나. 군사 업무는 내가 맡으마. 밤에 적을 치려면 너도 푹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소욱이 나타나자 봉구안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하지만 ‘쉰다’는 건 그녀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더구나 소욱과 비교하자면 그녀는 몇 달간 큰 고생도 아니었다.“지금은 기세를 몰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소욱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알기에 더는 말리지 않았다.그저 한마디 덧붙였다.“밤에 공성을 시작할 때,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봉구안은 적군을 밑으로 내리차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땅굴로 던졌다.옆에 있던 은이는 재빨리 반응해 구멍을 방패로 막았다.곧이어 땅굴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땅굴 안.북연 황제는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전진하던 중, 전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무슨 일이냐!"곧 누군가 소리쳤다."장수말벌이다! 장수말벌이 나타났다! 모두 도망쳐라!"‘장수말벌?’‘어디서 장수말벌이 나타났단 말인가!’황제는 생각할 틈도 없이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후퇴를 했다.비좁은 땅굴 속에서 후방 병사들은 탈출하려고 앞으로 밀치고, 앞쪽 병사들은 장수말벌을 피해 후방으로 되돌아오며 두 무리가 엉켜 서로 밀치고 싸웠다.결국 병사들은 장수말벌에 쏘여 온몸이 붓고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다.다시 선성으로 돌아왔을 때, 병사들의 모습은 완전히 엉망이었다.북연 황제는 호위병들의 보호로 장수말벌의 공격은 피했지만, 여전히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대체 어디서 장수말벌이 나온 거냐!"한 병사가 대답했다."폐하, 남제군입니다! 그들이 땅굴을 발견하고 저희를 막았습니다!"단춘은 얼굴 곳곳에 벌에 쏘인 자국이 생겨 눈꺼풀까지 부어올랐다.그는 분노를 참으며 얼굴이 검게 변해갔다."남제 놈들이 어떻게 땅굴의 존재를 알았단 말인가! 분명 적의 간첩이 있는 거겠지!"북연 황제도 단춘의 생각에 동의하며 소리쳤다."그 밀정을 찾아내라! 가죽을 벗겨버리겠다!"하지만 밀정을 찾지 못한 사이, 연합군의 군량은 거의 바닥이 났고, 병사들은 생존을 위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거기에 밤마다 음병의 괴롭힘까지 더해져, 병사들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선성 밖.맑은 하늘 아래, 남제군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다.고기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선성 안 병사들까지도 그 냄새를 맡고 침을 삼켰다.주막 안.봉구안은 몇몇 장수들과 전략 회의를 하고 있었다.그때 은삼이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황후마마, 진나라가 항복을 요청했습니다."봉구안은 고개를 들
남강 왕궁.서왕은 상객으로 예우받았다.남강왕은 술잔을 들며 거창하게 말했다.“내가 짐작했지. 남제는 큰 책략을 가지고 있다.”“서왕, 남제가 요즘 기세가 대단하군. 한 달 남짓 만에 적국의 원군 십여만을 섬멸했다니, 정말 감탄스럽구나.”“이렇게 가면 곧 적군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서왕은 자만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남제가 적군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전원이 한마음으로 뭉쳤기 때문입니다.”“아직 전세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강왕과 아래에 앉은 신하가 눈빛을 주고받았다.이윽고, 그 신하가 일어서며 말했다.“서왕 전하, 귀국이 승전가를 이어가며 구름을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남강 외곽의 수화부 연합군도 물러갔으니, 이제 남강을 귀국의 주둔군이 지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서왕의 눈빛이 약간 변했다.이것이 바로 남강 군신들의 진짜 속셈은 남제 군대를 남강에서 철수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서왕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내일 제가 병력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애초에 떠날 생각이었다.남강에 주둔했던 것은 남강을 지원하고, 수화부를 막으며, 남제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수화부 연합군이 이미 물러났으니, 황상과 황후의 계획에 따라 그는 확실히 귀국해야 했고, 5만 군사를 이끌고 동방을 증원해 조유관을 지킬 때였다.남강왕은 무척 만족한 듯 술잔을 들어 함께 건배했다.“남제와 남강은 형제의 맹약을 맺은 사이. 서왕, 이 잔을 비우며 남제가 이 난관을 넘기고 대승을 거두길 기원하자구나!”서왕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왕좌에 앉은 남강왕은 남몰래 서왕을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남제는 심모원려한 나라였다. 전쟁도 허실을 섞어 대하기 어려웠다.작은 실수가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에, 남강은 항상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수화부 연합군이 물러났으니, 남강에 남제 주둔군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남강 땅에 남제 군사 한 명도 남길 수 없었다!
3월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들이 만개했다.각국의 원군이 남제 땅으로 들어오자 소욱이 이끄는 남제 군대가 그들을 포위 공격했다.'거미줄'은 아래에 있고 사람은 위에 있으니, 적들은 그 전술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각국 장병들은 이런 전투 방식을 본 적이 없었다. 기습적으로 나타나는 함정과 계략이 그들을 괴롭혔고, 남제군의 움직임은 신출귀몰했다.'병귀신속'이란 말 그대로, 소욱은 직접 전장에 나가 결단력 있고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한편, 선성에서는 연합군이 본국의 추가 지원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들은 3개월째 고립되어 있었고, 식량은 점점 바닥났다. 더는 병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이대로 가면 설령 선성의 보물을 찾아도 살아서 누릴 수 없을 터였다.그간 계속해서 성문 자물쇠를 열어보려 했지만, 50만이 넘는 병사들 중 그 자물쇠를 풀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단춘은 병사들을 이끌고 도끼와 대검을 들고 성문을 부수려 했지만, 철벽 같은 그 방어 장치는 칼도 창도 통하지 않았다.주국공부.북연 황제는 눈앞의 음식을 보고 젓가락을 세게 내려놨다.탁!그는 곧 질책하듯 물었다.“이게 전부냐? 고기는 어디 갔느냐!”호위병이 답했다.“폐하, 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황제가 호위병들을 훑어보니 그들 모두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이대로 가다간 남제군이 공격해 오기도 전에 굶어 죽을 판이었다.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탁자를 뒤엎었다.“쾅!”“오늘 밤, 야습해서 탈출한다!”이대로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성문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그들은 운제와 벽에 매단 밧줄을 이용해 성벽을 넘어가야 했다.그날 밤, 북연군은 북쪽 성문을 통해 탈출하려 했다.밤하늘 아래, 모두가 조심스레 움직이며 성 밖의 남제군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운제를 설치한 뒤, 병사들은 운제를 타고 성벽으로 올라갔다.그 후 밧줄을 붙잡고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하지만, 내려가는 도중 갑자기 화광이 비춰왔다.밝은 불빛이 그들을 드러내며
대하국의 지원군은 초조함에 휩싸였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옥석비가 있다지만, 겨우 소수 병력만 이끌고 있는 남제 황제가 그들의 10만 대군과 싸우려 하다니, 너무나 오만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그러나 곧 이어진 광경은 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땅이 갑자기 들썩이며 사방에서 수천의 병사가 솟아나 그들을 포위해 버렸다.대하국 선봉 지휘관은 망연자실했고, 후방 병사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 외쳤다.“장군님, 매복입니다!”소욱의 눈은 서늘하게 얼어붙어, 차갑기만 했다.“항복하는 자는 살려줄 것이다.”대하국 병사들은 전투용 쇠뇌를 준비하며 진영을 구축했고, 선봉 장수는 큰 소리로 외쳤다.“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 남제군을 모두 쓸어 버려라!”소욱의 얼굴은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했고, 그는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멀리서 준비를 마친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올렸다.같은 시각, 북부에서는 북연의 10만 대군이 남제군의 기습을 받았다.맹건은 북방군을 이끌고 어디선가 나타났고, 그의 옆에는 옥석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북연 병사들은 맹건을 알아보고 크게 놀랐다.“북방군은 이미 궤멸된 게 아니었나?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거지?”맹건은 흙 언덕 위에 서서 강렬한 눈빛과 함께 살기를 뿜어냈다.남제를 공격하는 여러 나라들이 한창 공세를 펼칠 때, 그는 이미 황제와 봉구안으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아두고 있었다.처음에는 북방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너무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곧 남제가 이미 ‘거미줄’로 불리는 비밀 통로를 구축해 놓았음을 알게 되었다.북방군은 패한 척하며 은밀히 거미줄 통로 속에서 숨었고, 그동안 백성들을 대피시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이제야말로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맹건은 장검을 뽑아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선조의 옥석비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 남제의 국토를 침범한 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갇혀 있던 늑대처럼 전의를 불태우던 북방군은 순식간에 몰려들어 포효했다.“돌격하라!”북연의 주
단춘의 손이 떨렸다.“뭐라고? 죽였다고?”보고하던 병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는 무릎을 꿇으며 성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음병들이 지나간 후, 병사 수십 명이 살해당했습니다. 너무도 참혹한 광경이었습니다. 장군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단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그 자신도 답을 몰랐다.평생 사람과의 전투만 치러왔던 그에게, 이번에는 귀신과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주국공부.시위병이 황제의 침실로 뛰어들어왔다.“폐하! 음병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북연의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말했지! 귀신이면 귀신도 베란 말이다! 당장 음병들을 모두 없애라!”황제의 광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광기가 귀신을 향해 번졌다.시위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폐하, 그들은 음병입니다. 신출귀몰하며 잡으려 하면 금세 사라집니다.”“야간 경계 중인 우리 병사들이 수십 명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도저히 손쓸 수가 없습니다!”북연 황제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어렸다.설마, 이 선성에 진짜 귀신이 있다는 것인가?그는 고심하며 생각을 이어가다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만지더니,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내 옥쇄가 어디 갔느냐!”시위병들은 놀라며 어리둥절해했다.황제의 옥쇄가 사라졌다니!제국의 상징이자 중요한 물건이 어째서 사라진 걸까?……다음 날, 선성 밖.남제군은 성 안에서 음병이 나타났다는 사실과, 몇몇 적군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이야기는 너무도 황당해서 믿기 힘들었다.본진 안.장수들은 일제히 갑옷을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봉구안도 차분히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머리가 빠른 자들은 이미 이 모든 것이 황후의 계략임을 간파했다.음병들은 분명 살아 있는 병사들이었다.남제군이 비밀 통로를 통해 이동한 전례가 있는 만큼, 선성 내부에도 비밀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음병으로 적군의 사기를 꺾은 만큼, 이제 공격 명령이 내려질 것이
귀신이 출몰했다는 한 병사의 외침에, 선성을 경계하던 병사들은 순간 굳어버렸다.텅 비었던 선성 내부의 광장에 갑자기 수많은 장병들이 나타난 것이다.그들은 남제 갑옷을 입고, 천둥소리가 어우러진 밤하늘 아래 규칙적으로 걸어갔다.그들 몸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성벽 위, 누군가 공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음병이다! 음병이 나타났다!”음병이 길을 지나간다는 전설은 여러 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사람들은 평소 죄를 짓지 않으면 한밤중에 귀신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흔히 하곤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비겁한 자들뿐만 아니라 겁이 많은 사람들도 귀신을 무서워했다.세상에는 겁이 많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음병의 등장에 병사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그래도 그나마 용기를 내는 병사들이 장군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러 갔다.음병들의 창백한 얼굴만 봐도 등골이 서늘해졌던 그 순간, 단춘 장군은 바로 갑옷을 챙겨 입고 성벽으로 나왔다.그조차도 음병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남제 장병들이 기괴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자, 단춘은 잠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병사들에게 단호히 명령했다.“고개를 돌려라! 눈을 감아라! 그들을 보지 말아라!”이는 오래된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었다.음병이 길을 지나갈 때 이를 보면, 음병들이 자신도 같은 동료로 착각해 데려간다는 것이다.여기서 데려간다는 건, 결국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었다.귀신과 신령은 가까이하기보다는 멀리해야 했다.단춘 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 역시 병사들에게 같은 지시를 내렸다.천둥소리가 계속 이어졌고, 이는 번개의 울림인지 음병들의 말발굽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한편, 북연의 황제는 선성의 국공부에서 자다가 바깥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밖에 무슨 일이냐!”경호병이 급히 보고했다.“폐하, 음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음병?”황제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틀림없이 남제의 계략이다. 무장을 갖춰라! 그 음병들이란 놈들을
성문이 잠긴 것은 자명했지만, 그 열쇠를 쥔 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명백한 것은 이 일이 연합군 내부의 소행일 리 없다는 것이다.즉, 그들 사이에 이미 남제의 첩자가 스며들었다는 뜻이었다.연합군은 차가운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놀람이 가시자마자, 각 군대는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수화부 연합군은 대하국 동부 연합군을 비난하며 말했다.“첩자는 분명 당신들 안에 숨어있을 것이오! 동방군과 교전한 건 당신들밖에 없지 않소!”“우리 수화부는 남부에서 바로 온 병사들이란 말이오!”단춘은 즉각 반박했다.“북연 연합군도 마찬가지로 남제와 싸웠소!”“그리고 남부에서 왔다고 해서 첩자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소?”“오히려 이미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소!”북연 황제는 이때 상대적으로 침착한 태도로 그들의 다툼을 제지했다.“그만하라! 너희의 소리가 귀를 찌르니 멈추거라!”“첩자가 어디에 있든 간에, 지금 중요한 건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성문이 잠겼다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적도 성문을 뚫지 못하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황제의 이 말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단춘 같은 경험 많은 장수에게는 부족함이 있었다.단춘은 그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며 물었다.“폐하, 혹시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계신 겁니까?”“저희가 성문을 나갈 수 없다는 건, 결국 여기서 갇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군대는 순식간에 동요하기 시작했다.포위된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다.남제군이 서두르지 않고 성을 공격하지 않는 것도, 시간을 두고 연합군의 식량을 고갈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하려는 전략임이 분명했다.……선성 밖.남제군은 자리를 잡고 주둔 중이었다.지휘소에서는 봉구안이 침착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한 장군이 허리를 굽혀 물었다.“황후마마, 병사들이 선성을 언제 공격하냐고 묻고 있습니다.”봉구안은 그
선성 밖에서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수십만 남제 장병이 다양한 무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소리는 선성 위를 울려 퍼지며,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성 안에서도 그 소리가 선성을 흔들 만큼 강렬하게 울렸다.봉구안은 전마를 타고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갑옷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성문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성루 위에서는 단춘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옆의 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장군, 저건 동방군입니다. 대체 어떻게 선성에 나타난 걸까요?! 분명 감주에 있어야 할 자들인데…”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북연의 황제는 성 밖 동방군의 존재에 크게 분노했다.그는 단춘의 옷깃을 움켜잡고 호통을 쳤다.“감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이게 대체 뭐냐! 단춘, 정말 잘도 해냈구나!”단춘은 당혹스러웠다.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기에 황제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그때 수화부 연합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남제가 당신들을 속인 게 확실하군!”황제는 점점 격분하며 단춘을 더욱 매섭게 쏘아봤다.“동방군이 너희 뒤를 따라왔는데도 모르다니, 이런 실력으로 남제를 우리 북연과 나누겠다고? 정말 가소롭구나!”단춘은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반박했다.“폐하, 성 밖에 있는 건 일부 동방군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우리 동부 연합군만 속은 것도 아닙니다.”“남부 연합군인 수화부는 어땠습니까? 그들이 남제군을 알아챘습니까? 똑같이 속았으면서 왜 저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동부 연합군의 장수들도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남제의 계략은 워낙 교묘합니다. 감주를 언제 빠져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폐하, 북부 연합군이라고 해서 뒤따라오는 남제군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그만들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