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사모님은 이내 연재준에게로 다가가더니 한결 나긋해진 목소리로 말했다.“재준아, 너 내가 연락했을때 기차역이었지? 서안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애들 보러 와줬구나.”“괜찮아요, 별 것도 아닌데요.”“오늘 밤엔 여기서 쉬어, 내가 방 두개 마련해줄게.”연재준도 거절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한다.하 사모님이 허리를 툭툭 두드리시며 한숨을 쉬신다.“하루종일 골치 앓았더니 이 늙어빠진 뼈들이 여기저기 쑤시네.”서정희는 눈치 빠르게 하 사모님 곁으로 다가가 부축해주며 말했다.“사모님 얼른 쉬세요. 저희가 외부인도 아니고 무슨 접대를 받겠어요. 저희가 알아서 잘 할게요.”유월영은 누구도 관심주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어지럼증을 회복하고 있다.보이진 않지만 귀가 달렸으니 들리긴 할것 아닌가.서정희의 말엔 뭐랄까, 알게 모르게 연재준과 자신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것 같았다.“저희가 외부인도 아니고”, “저희가 알아서 잘 하겠다”며 말 끝마다 저희거리는걸 보니.어제 연재준이 서정희를 연회에 데리고 온건 해운 직원 신분으로 데려온거라고 치자, 그럼 오늘 밤은?유월영이 피식 웃는다. 연재준의 여자 바꾸는 속도는 물론 그런 사실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으니 말이다.지난번 산장에서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 유월영이다.무릇 여자들이란 이성관계에서의 경쟁자나 자신을 그런 경쟁자로 간주하는 사람에겐 예민하고 민첩한 “레이더”를 가지고 있다. 그때 유월영은 벌써 서정희가 연재준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눈치채고 있었다.말 끝마다 연 선배, 연 선배 거리는것만 봐도 뻔했다.지금은 어딜가나 서정희를 데리고 다니는걸 보면 백유진이 또 차인건가, 아니면 연재준이 원래 그런 사람인걸까?전엔 유월영과 백유진이었는데 어느새 서정희와 백유진이 돼버렸다.유월영이 한숨을 푹 내쉰다. 몸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그녀의 두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하 사모님이 서정희를 지그시 쳐다본다. 벌써 두번이나 연재준 곁에서 함께
유월영이 입술을 꽉 깨물고 베이비시터를 바라본다.“실례지만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베이비시터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전혀 협조하고픈 생각이 없어보인다.유월영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할머님이 저에게 독을 먹인 진범을 찾으시라고 할땐 당신 뿐만이 아니라 하씨 가문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도 된다는 뜻이세요. 협조 안 하겠다면 전 당신이 찔리는게 있다고 의심해 할머님께 그 사실을 알려드릴거고 그 뒤 할머님이 어떻게 처리하실진 저도 모르겠네요.”그 말은 베이비시터 뿐만 아닌 다른 하인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그들의 협조를 받아내려면 이 정도 과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확실히 효과가 있어보인다. 그 말에 베이비시터가 순식간에 표정을 싹 바꾸며 공손히 말한다.“저, 저는 조씨에요. 다들 절 조 아주머니라고 부르고요.”연재준은 2층으로 올라가던 길에 벌써부터 조사에 나선 유월영의 모습을 보고는 이내 다시 시선을 거뒀다.그리고는 이내 걸음을 우뚝 멈추는데.“먼저 방은 가지 말지.”길을 안내하던 하인도 덩달아 걸음을 멈춘다.“그럼......”“하부인 방은 어디지?”연재준은 이내 시선을 돌리더니 서정희에게 뭔가를 얘기한다.......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이 감기더니 의식을 잃었고 베이비시터에 의해 다시 정신을 차렸다.“저기요, 저기요, 여기서 자면 어떡해요.”잠든게 아니라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이마를 짚어보니 역시나 열이 나기 시작한다.가쁜 숨을 한번씩 내쉴때마다 펄펄 끓는 용암같은 공기가 입 안을 감쌌지만 몸은 추위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그 사실을 알리 없는 베이비시터는 연신 중얼거린다.“사모님이 겨우 하룻밤밖에 안 주셨는데 잠이 와요? 팔자려니 그냥 단념하겠다는거예요? 그럼 난 어떡하라고요? 나까지 물고 늘어지진 마요.”진범을 잡지 못한다면 누명을 덮어쓰는건 물론 직장도 잃게 될게 뻔했다.유월영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소파에 앉아있던 하부인은 유월영을 보자마자 불만스러움을 표출해낸다.이 바닥에서 벌써 오랜시간을 버텨온 유월영에게 그 정도 표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하부인님, 진범에 관한 단서를 알아냈으니 허락만 해주신다면......”“월영 씨, 먼저 말하지 말아봐요.”서정희가 냅다 유월영의 말을 끊어버린다. 어안이 벙벙한 유월영이다.서정희는 이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부인에게 말한다.“정연 씨, 아이들 때문에 많이 힘든건 알겠지만 진범을 잡아야만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잖아요, 제 말이 맞죠?”어느덧 시간은 새벽 한 시를 훌쩍 넘어서 있었고 하부인은 눈가엔 실핏줄이 터진 채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허나 범인을 잡지 못하면 편히 쉬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하부인이다.유월영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서정희가 또 한번 앞서 말을 꺼낸다.“연주 씨가 말해봐요.”“......”방금 거실에서까진 “연 사장님”이던것이 이젠 “재준 씨”가 돼버렸다.유월영이 그에게로 다가간다.여긴 안방에 아닌 서재였고 방 안엔 여자들 뿐이었는지라 연재준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에 기대 있었다.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에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유독 연재준만큼은 늘 그렇듯 또렷하고 단정해 보였다.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수제 양복은 그의 훤칠한 키와 어우러져 고급진 우아함을 뽐내는것이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연재준을 눈을 들자 유월영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고 귀에는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온다.“독을 먹인 사람은 하부인과 연관된 사람일겁니다. 진작에 준비를 끝내고 연회날을 기다리다가 하씨 가문에서 바삐 움직이는 어수선한 틈을 타 범행을 저질렀죠.”유월영의 마음 속에 물결이 일렁인다.짜지도 않았지만 그는 유월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허나 이상할것도 없었다, 이 일은 원체가 그리 분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유월영이 생각할 만한걸 연재준이 어찌 모를수 있을까?뭐든 다 알고 다 가지고 싶어하는 연재준이었고 그저 하
유월영은 한숨을 내뱉고 다시금 하부인에게 진지하게 묻는다.“그렇다면 하 부인님께선 평소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이 계신가요?”하부인이 이마를 감싸쥐고 고뇌에 빠진다.“지금은 머리속이 뒤죽박죽이라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유월영이 태블릿을 건네주며 말한다.“어젯밤 감시 카메라에 찍힌 손님들 전부를 캡쳐한 사진들입니다. 이 중에 아이들을 해하거나 부인님께 복수할 만한 누군가가 있을까요?”사진을 넘겨보던 하부인은 7,8번째 사진에서 갑자기 멈추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얘요! 얘예요!”태블릿 화면에 앳된 여자아이가 보인다.하부인이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씩씩대며 말한다.“제 여동생인데 줄곧 제가 하씨 가문에 시집오는걸 질투했거든요. 혼자 엄마를 백 삼아 사랑을 독차지한다면서 볼때마다 시비를 걸었었는데 절대 좋은 마음으로 아이들 보러 갔을리가 없어요!”엄마를 백 삼는다? 그럼 두 자매는 한 엄마 배속에 태어난 친자매가 아니란 말인가?하지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타깃만 정해졌다면 충분하다.“이런 사람은 겁만 제대로 주면 됩니다. 이미 증거를 확보했으니 인정하지 않으면 경찰에 넘길거다, 경찰에서 지문 같은 증거들만 채취하면 더는 도망갈데가 없다고 하면 될겁니다.”하부인이 태블릿을 꽉 움켜쥔다.“그건 나도 알아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뭘 해야할지는 나도 안다고!”그렇다면 더이상 유월영은 할 일이 없다......사실은 전혀 상관없는 그녀에게 닥친 뜻밖의 시련이었으니.그러게 누가 지위가 낮으라고 했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한바탕 호되게 당해놓고도 할수 있는게 없는데.“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으니 하 부인님이 내일 사모님께 잘 전달해 주십시오. 그럼 전 이만.”연재준이 묻는다.“지금 이 시간에 가겠다는거야?”유월영이 힘겹게 침을 넘기며 말한다.“내일 출근해야 돼서요. 여긴 회사랑 너무 멀거든요.”연재준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서정희가 또 앞서 그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재준 씨, 기사라도 보내서 바래다 주게
별다른 해명이 없는 연재준이다.늘 그렇다, 그는 누군가에게 해명하는 법을 모른다.2층 난간을 붙잡고 있는 그의 시선은 활짝 열려있는 대문 뒤로 펼쳐진 칠흙같은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이내 연재준은 고개를 틀어 서정희에게 말한다.“준비해둔 방으로 가서 쉬어.”“재준 씨는요?”딱히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는 그였지만 서정희는 그가 간섭받기 싫어한다는걸 잘 알고 있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제 말은 내일 아침에 사모님이 재준 씨 안 보이는거 알면 어디 갔냐고 물으실텐더 그땐 어쩌냐는거였어요.”“네가 알아서 해.”앞으로 두 발자국 내밀던 연재준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하부인은 아직 상태가 많이 불안정하니 네가 잘 말씀드려. 사모님한테 유월영이 찾은 진범에 대해 잘 말씀드리라고.”유월영이 찾은 진범이라......유월영이 본인의 힘으로 찾아낸건 맞지만 방금 하부인 앞에서 사건에 대해 분석한건 분명 그였는데.허나 그는 특별히 강조하며 유월영이 찾은 진범이라고 콕 집어 말한다.“잘 말씀드릴게요.”연재준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왔을때 유월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가 곁에 있던 하인에게 묻는다.“그 사람 택시타고 갔나?”“걸어가셨습니다. 여기는 택시가 잘 안 잡혀서요.”걸어서 갔다?이 늦은 밤에, 그것도 산길을 혼자 걸어 내려간다?연재준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바로 차에 올라탔다.아니나 다를까 100미터쯤 내려오니 비틀거리는 뒷모습이 보인다.그는 냅다 유월영의 옆으로 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추운 밤바람에 정신이 더 혼미해져 자동차 소리도 듣지 못한 유월영이 놀라서 펄쩍 뛴다.차창이 내려오고 연재준의 차가운 얼굴이 보인다.“타 빨리.”한사코 거절하는 유월영이다.“사장님한테 민폐끼치기 싫어요. 제가 알아서 택시타고 갈게요.”“여기서 택시가 잡혀?”그 말은 맞다. 택시는 커녕 위치 서비스도 되지 않는다.올라올때도 돈을 더 얹어줬으니 기사가 산길을 올라와준거지 가장 가까운 지점은 산 아래 뿐이었다.유월영은 차가운 밤
연재준이 쌀쌀맞은 눈빛으로 유월영을 쳐다본다.“네가 준다며?”유월영이 이를 꽉 악문다. 그러나 갑자기 풀악셀을 밟아 코너를 돌아버리는 바람에 유월영은 준비도 없이 차문에 부딪혔다가 다시 안전벨트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왔다.“......”아프진 않았지만 울화통이 치민 유월영이 실핏줄 터진 눈으로 남자를 노려본다.핸들을 쥔 연재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더니 이내 속도를 늦추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전엔 한 성깔하는거 왜 몰랐지?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이런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다면 진짜 “넌 방법이 없다”, “널 어떻게 하면 좋겠냐”, “넌 날 너무 무안하게 만들어”같은 애정표현의 일종으로 여길테지만 그는 연재준이다.그의 말에서 묻어나오는거라곤 짜증 뿐이었다.유월영은 그런 성격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뭐든 다 억제할수 있는 사람이지만 일단 몸이 불편하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감정을 표출해낸다. 그 날 영안에서 몇끼를 굶었을때도 연재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 반박을 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랬다.유월영이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사장님도 재밌더라고요. 하 사모님이 따지고 드실때도 ‘어젯밤에 저랑 쭉 같이 있었고 그런 적 없었다’는 말 한 마디도 하기 싫으셨던걸 보면.”그런 사람이 “아가씨 도와드려야죠”라는 서정희의 말에 구구절절 입을 열다니.“지금은 또 친히 저 쫓아오셨는데 본인 행동에 괴리감이 들지도 않으세요?”“내가 그 말 안 해준것 때문에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가뜩이나 날카로운 연재준의 옆모습이 더욱 예리하고 차가워진다.“그럼 넌 왜 사모님이 물으실때 나랑 같이 있었다고 말 안 했어?”다른 사람은 다 거론해놓고 자기 이름만 쏙 빼놓고선 이제 와서 자기 탓을 한다니.“말해도 도와주지도 않을건데 뭐하러 힘을 빼요?”연재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뭐?”유월영이 간크게 또 한번 똑같은 말을 읊조린다.“제가 말해도 도와주지도 않았을거잖아요, 아니에요? 사장님은 신 교수님처럼 아무 이유없이 제 편을 들어줄
누가 누굴 건드려?자길 건드렸다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건가? 그런 법도 또 자기 마음대로 정한거겠지?뭐든 지 마음대로면서!유월영은 울화통이 치민 나머지 말도 못하고 있는다. 연재준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아낸다. 사람 손 못 탄 야생 고양이마냥 입술을 냅다 물어버린다니.“잘 잡아, 또 부딪히고는 내 탓마냥 째려보지 말고.”유월영은 목구멍까지 솟구친 화를 겨우 누르고 자리에 앉아 손잡이를 꽉 잡았다.연재준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그는 집주소를 묻지 않았고 유월영 역시 말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다는걸 알았으니까.겨우 손바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들은 사실 전부 그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었다.드디어 차가 산 아래로 내려와 도로에 들어서자 연재준은 그제야 조수석에 앉은 유월영을 힐끔 쳐다본다.유월영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찔끈 감고 연신 불안정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잔뜩 찌푸린 미간은 어딘가 모르게 생각이 많아보인다.몇 번이고 곁눈질해 보던 연재준은 말 끝마다 신 교수님거리던 그녀의 말이 떠올라 다시 시선을 홱 돌려버린다.유월영은 절대 잠이 든게 아니었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이 느낌은 그 날 유람선에서 정신을 잃었을때와 똑같은 느낌을 줬다.아마 그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쓰며 쉬지도 못하고 일한 탓이겠지.호텔에 도착하자 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영혼없이 한 마디를 했다.“감사합니다 사장님.”극한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유월영은 어기적어기적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르려고 한다.연재준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유월영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구급대에 주소를 말하며 정신을 판 사이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히고 마는 유월영이다.멀쩡한 사람이라면 잠시 비틀거리다 중심을 잡겠지만 중심이라는게 전혀 없었던 유월영은 그만 뒤로 넘어가고 만다.그래 뭐, 넘어가면 넘어가는거지. 어차피 구급차도 불렀는데......허나 예상했던 통증과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허리가 붙잡히는
유월영은 누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고 이튿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이곳은 2인실, 커튼으로 가려진 옆 침대에선 따뜻하게 주고 받는 대화 소리가 들리지만 여긴 적막이 맴돈다.연재준은 어느새 자리에 없다.아마 어젯밤에 간거겠지.신분 고귀한 연 사장님께서 밤을 새워 곁에 있어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유월영이다.서안의 아침, 쌀쌀한 겨울바람이 창문 틈으로 불어들어오자 유월영은 추위에 이불속을 파고든다.여전히 머리는 어지러웠고 고열이 빠진 몸엔 근육통이 자리잡았다.신현우가 깨있을 시간이라고 추측한 유월영은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연락을 한다.역시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는다.유월영이 기침을 하고는 입을 연다.“사장님, 하씨 가문 일은 어젯밤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그래요, 무슨 일이었는데요?”유월영은 일련의 일들을 서술하면서도 서정희와 연재준을 만난 일은 자연스레 생략했다.“이렇게 된 겁니다. 결국 다 오해였고요.”“오해면 다행이네요. 우리 두 가문은 내년이면 다시 계약 연장을 해야 할 관계인데 이번 일로 틀어지면 어쩔까 했어요.”유월영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잘 처리할게요.”“기침 하던데 어디 아파요?”“어제 열이 나서요.”“그럼 오늘은 쉬어요.”“괜찮습니다. 오전까지 링거 맞고 오후엔 미리 가서 화상회의 준비 해 놓겠습니다.”반차를 쓰겠다는 의미다.유월영같이 능력있는데도 분수를 잘 알고 절대 사생활로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직원은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직원이다.신현우도 그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그리고는 식탁에 마주앉아있는 넷째 동생을 바라보는데.그는 커피 한 모금을 홀짝 마시더니 입을 연다.“유 비서 열 때문에 병원에서 링거 맞는 중이라는데 안 가봐도 돼?”신연우는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일할때 열심히는 해도 몸은 사릴줄 아는 사람이야. 오후에 출근할수 있다는걸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닐텐데 괜히 가서 부담주긴 싫어.”전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