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신경전을 벌인 탓에 힘이 쏙 빠진 유월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저기 잔디 위에 있는거 과녁 맞죠? 양궁용이에요, 사격용이에요?”웨이터가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며 친절히 대답해줬다.“양궁용 과녁입니다. 사격장도 있긴 하나 그건 실내에 있어요.”유월영이 흥미를 보인다.“양궁 표적이구나.”연재준은 버섯새우죽을 한 술 뜨더니 유월영을 보고 말한다.“활 쏘고 싶어? 그럼 내가 너 데리고 갈게.”낮잠과 활쏘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거다.아침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잔디밭으로 걸음을 옮겼다.둘 뿐인줄 알았던 양궁장엔 신현우와 소은혜,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애가 있었다.여자 둘에 남자 하나라, 꽤나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연재준과 유월영이 다가가자 셋 다 각자 시선을 돌려버린다.신현우가 그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웃었다.“저희만 일찍 나온줄 알았더니 연 사장님과 유 아가씨도 오셨네요?”연재준은 소은혜를 쳐다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오늘 날씨가 좋아서 야외 운동하긴 딱이겠더라고요.”신현우가 고개를 끄덕인다.“맞아요, 이틀간 날씨 좋아보여서 영훈씨 제안을 받아들인거죠. 아마 여럿 데리고 왔을겁니다.”말이 나온 김에 그가 곁에 있던 여자애를 소개시켜줬다.“태영건설 따님 임지연이에요.”임지연이 발랄하게 손을 흔들어보인다.“안녕하세요~”연재준이 고개를 까딱한다. 어쨌든 마주쳤으니 그가 신현우에게 묻는다.“신 사장님 같이 하실까요?”신현우가 흔쾌히 수락한다.“마침 그러려던 참인데 잘 됐네요.”소은혜가 별안간 입을 연다.“그럼 팀은 어떻게 정해요? 연 사장님네는 두분이니까 제가 나갈게요.”임지연은 그 말에 반박하며 말한다.“네가 뭔데 나서?”흰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를 준 운동복을 맞춰입은 소은혜는 오늘따라 아리땁고 요염해 보였다. 허벅지까지밖에 오지 않는 미니 스커트에도 전혀 추워하지 않는 소은혜가 웃는것 같지도, 웃지 않는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활 쏠줄 아는데 넌
허나 본체 만체 하는 신현우다.임지연은 팔짱을 끼고 기고만장해하며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참 비열하단 말이지. 오라는 말도 안했는데 낯짝 두껍게 따라오고는 들러붙어서 떨어지지도 않고 말이야. 받들어 모시는걸 좋아하면 잘 모시기나 할 것이지, 겨우 그만한 가치밖에 없으면서.”이 말은 곁에서 제3자의 입장으로 듣고 있던 유월영마저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임지연이 눈을 꿈뻑거리며 말한다.“아이고~ 소대리 오해하지 마, 소대리 말하는거 아니야. 근데 우산 좀 씌워줄래? 소중한 피부 다 타버릴것 같거든~”화장에 가려져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소은혜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유월영은 이상하게도 소은혜가 임지연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 감정이 동요한게 아닌 분명 그 말을 듣고도 꼼짝않고 있는 신현우로 인해 더욱 기분이 상한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유월영이 무의식적으로 연재준을 바라본다. 소은혜는 연재준 곁에서도 잠깐 일했었는데 이런 모습을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연재준이 미간을 찌푸린다.하지만 그 대상은 소은혜가 아닌 유월영이었다.“너 그 체스트가드 반대로 입은거 아니야?”당황한 유월영이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본다. 정말 반대로 입긴 한것 같다......한 쪽만 있는 체스트 가드는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입어야 했다.“네 심장은 오른쪽에 있나 봐?”연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가와 도와주려 하자 유월영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치며 말했다.“저 혼자 하면 돼요!”너무 민감한 위치라 안 된다.유월영은 얼른 찍찍이를 떼내 다시 반대로 입는다. 연재준은 체스트가드에 꽉 조여진 굴곡을 바라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유월영이 갈아입는 사이 소은혜는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채 우산을 들고 순순히 임지연 뒤에 서 있었다.유월영은 썩 마음이 좋지 않다. 생각해보면 남자들이란 쉽게 질려하는 동물이라 전엔 아무리 가까운 사이였어도 눈 깜짝할 새에 낯선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연재준이 묻는다.“어느 활 고를거
한숨을 쉰 연재준도 활을 빼들었다.세사람의 활 쏘기 실력은 막상막하였지만 임지연은 세번 연속 과녁 근처에도 가지 못한채 한 번은 힘없이 땅에 내리꽂히기도 했다.자연스레 1라운드 승자는 연재준과 유월영이었다.마침 이때 연재준의 휴대폰이 울린다. 그가 신현우에게 눈짓을 보내자 신현우도 고개를 끄덕인다.“편히 연락 받으세요. 전 아가씨한테 배우고 있을게요.”유월영이 SK그룹에 입사하려던걸 연재준은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연재준이 유월영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나긋하게 말했다.“그럼 2라운드는 두 분이 겨루세요. 누가 이기든 다 상관없어요. 유 비서, 잘 가르쳐드려.”유월영이 입술을 깨문다.“네.”연재준은 그제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연락을 받았다.복합활로 바꾼 신현우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말한다.“복합활은 전통활보다 훨씬 힘이 드는데 아가씨같은 약한 몸에서 어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네요.”“힘은 쓰면 생기죠. 전통활은 활 받침대가 없어서 조준하기가 어려워요. 두 분 전통활 잘 다루시던데 그게 더 대단하신거죠.”유월영이 진심으로 말했다.“저희는 오히려 받침대가 있는게 더 구속이라고 느껴지던데요.”그러면서 신현우가 활시위를 당긴다.유월영이 눈썹을 치켜든다. ‘그래서 그런거였구나’라는 느낌이 드는 신현우의 말이었다.복합활에 있는 받침대는 활을 어디에 놔야 하는지, 어떻게 쏴야 하는지를 정해주고 있었다.허나 연재준이나 신현우같은 대기업 사장들은 본래가 누군가에게 제한당하고 조종당하는걸 싫어하는데 전통활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걸까?아마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일거다. 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쏠수 있으니까.이런게 집착성이 강하다는 표현 아니고 뭐란 말인가?신현우가 손을 놓는다. 활은 힘차게 뻗어나가더니 또한번 정중앙에 꽂혔다.저기 멀리 연재준이 돌아온다.“사장님, 이틀째 저 보러 안 오셨어요......”전화너머 처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재준은 별다른것 없이 활만 쏘고 있는 둘을 보고 그제야 시선을 거둔다.“일
잔디밭 위엔 여자 세 명만 남아있었다. 별 생각도 없어보이는 임지연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눈을 희번득거리더니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활 쏘는게 뭐가 재밌다고, 손 아파 죽겠네!”소은혜가 차갑게 쏘아붙인다.“말했잖아, 임 아가씨는 사장님 발목만 잡고 늘어진다고.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마구잡이로 낚아채는게 무슨 소용있겠어? 안 되는건 안 되는건지, 어차피 질거면서.”이건 활 쏘기 뿐만 아니라 남자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말이기도 했다.임지연이 바보도 아니고 그걸 어찌 알아채지 못할까.“너!”임지연이 고개를 홱 돌린다. 한 손으로 우산을 잡고 편한 자세로 아무렇게나 서있는 그녀의 온 몸에 햇살이 내리쬔다. 가뜩이나 흰 두 다리는 햇빛에 반사될 정도로 광이나고 있다.눈이 부시게 아리따운 소은혜더러 우산을 들게 하는게 아니었다. 모욕감을 주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임지연을 더욱 못 생겨 보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늘 소은혜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었던 임지연은 비꼬는 듯한 말투에 화가 폭발했는지 소은혜를 콱 밀치며 말했다.“뻔뻔한 년! 감히 너 같은게 내 곁에 서있다니!”손찌검을 할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못한 소은혜는 갑작스레 밀쳐져 뒷걸음질치다 그만 유월영의 발을 밟아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사과를 건넨다.“죄송해요......”유월영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임지연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교양있는 척하긴! 너희들같은 사람들 내가 모를줄 알아? 번지르르한 얼굴 앞세워서 남자 꼬시고 나니까 뭐 사모님이라도 된줄 아나본데 꿈이나 꾸셔!”“하룻밤 자고 나면 쓰레기마냥 버려질것들이. 이름이 뭔지나 아시겠어?”유월영이 고개를 들어 임지연을 노려본다. 소은혜가 차갑게 경고한다.“임지연 너 미쳤어? 연 사장님 사람이야.”“그게 뭐 어때서? 너도 한때 연 사장 사람 아니었나?”임지연이 비아냥거리며 말을 이어간다.“내가 모를거라 생각하지 마, 찾아본지 오래니까. 현우 씨가 싫증나니까 너 연 사장한테 보냈겠지. 연 사장도 잠자리하는게 싫증나니
유월영은 점점 창백해져가는 임지연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게 무서웠는지 활을 내려놓는다.소은혜도 그녀의 목덜미를 놓고는 다시 느긋하게 벤치에 자리잡았다.순간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땅에 주저앉아 버릴 뻔한 임지연은 둘을 이글이글 노려보며 말했다.“나......나......현우 씨 돌아오면 꼭 다 말할거야!”유월영과 소은혜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그러시든가.”임지연은 뭔가 하고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둘의 말도 안되게 예쁜 얼굴을 보고나니 엄두가 안 났는지 결국 발을 탕탕 구르며 자리를 떠버렸다.이윽고 남자 둘이 다시 돌아왔다.연재준은 뭔가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유월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별거 아니에요. 손 아파서 3라운드는 못 쏘겠어요. 두 분이서 하세요.”유월영은 팔을 만지작거렸다. 활 쏘기는 실로 손바닥과 팔뚝 인대에 무리가 가는 스포츠였다.연재준은 강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직원에게 눈치를 줬다.“뜨거운 수건으로 찜질 좀 해줘요.”이윽고 직원은 뜨거운 수건을 가져와 유월영의 손바닥에 쥐여줬다.소은혜가 웃으며 말한다.“방금 임지연한테 따끔하게 참교육한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요. 연 사장님이 이렇게 챙겨주시니. 배경 좋은 집안이라 신씨 가문에서도 신현우 결혼상대로 맺어준거죠.”유월영이 덤덤하게 듣고 있는다. 사실 그녀가 참교육을 한건 전혀 연재준을 믿고 그런게 아니라 단순히 이치를 따지려는것 뿐이었다. ---왜 말도 안되는 욕설과 모욕을 감내하고만 있어야 하는가?하지만 딱히 소은혜에게 구구절절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친구도 아니거니와 여전히 소은혜에겐 앙금이 남아있었으니 말이다.”소은혜가 대뜸 입을 연다. “사실은 쭉 아가씨한테 사과드리고 싶었어요.”“사과요?”유월영이 그녀를 바라본다.“무슨 사과요?”소은혜가 입술을 깨문다.“듣자하니 그 뒤로도 연안에서 이런저런 일들 많으셨다던데 제가 아가씨를 황무지에 버리고 온게 시발점이 됐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 반응
“......”연재준은 곁에 딱 붙어 꽤나 많은 골프 스킬들을 가르쳐 줬었다. 그래서인지 골프공은 유월영이 가장 잘 배운 스포츠가 돼버렸다.어쩌면 그건 연재준이 처음으로 유월영을 위해 나서주며 뭐든 다 참을 필요없다는걸 가르쳐줬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수건을 아직도 꽉 쥐고 있는 유월영이다. 그런 그녀의 손가락 끝을 무언가가 똑똑 한방울씩 땅에 떨어진다.눈물같은게 말이다.정말 유월영에게 잘해줬던 연재준이었으니 마음이 변한 지금에 와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밉상 투성일수 밖에 없었던거다. 소은혜는 그가 유월영을 챙겨준다고 했었는데. 소위 말하는 ‘챙김’이란 지금은 거래이자 협박이고 하룻밤이 보내고 싶어 놔주기 싫은 단순한 소유욕 같은거였다.즉 별거 아니라는거다.소은혜는 더는 바짝 붙어있는 신현우와 임지연을 바라보지 않고 뭔가 생각난듯 유월영에게 물었다.“저랑 사장님은 별 관계 아니고 사실 아가씨가 조심해야 할건 다른 여자예요.”유월영이 수건을 직원에게 건네주며 그녀를 쳐다본다.“임지연이 방금 말한 서정희 말이에요. 어젯밤에 같이 카드 게임하면서 보니까 연 사장님한테 호감 있어 보이더라고요.”소은혜가 진지하게 말한다.서정희? 생각지도 못하긴 했지만 딱히 남은 인상은 없었고 그냥 윤영훈의 누이라는것과 이국적은 외모를 갖고 있다는 정도밖엔 없었다.연재준이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심도 없었지만 호의로 귀띔해주는 소은혜에게 예의상 대답했다.“알겠어요.”다섯번째 연장전까지 갔지만 여전히 실력을 가늠할수 없었던 연재준과 신현우는 결국 무승부를 선포했다.연재준은 장갑을 벗으며 유월영에게로 다가온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쌀을 약간 찌푸린 연재준이 턱을 까딱해 보인다.잠시 주춤하던 유월영은 다가가 그의 체스트 가드를 풀어주며 말했다.“고생하셨어요.”연재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묻는다.“뭘 건것도 아니고 그냥 게임인데 고생은 무슨?”소은혜가 혀를 끌끌 찬다.“무슨 대답이 그렇게 직설적이세요. 아가씨는 걱정돼서 그
점심은 그야말로 양고기 파티가 따로 없었다, 양고기를 먹는 108가지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르는 갖가지 부위들은 여러가지 별미들로 만들어졌고 거기에 통구이까지 진수성찬을 이뤘다.다들 센스있는 윤영훈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윤영훈은 기분이 좋은듯 연신 떠들어댄다.“겨울엔 양고기만큼 몸보신되는게 없죠. 아 맞다, 산장에 천연온천도 개방했다던데 여자분들 가서 담궈보세요. 겨울엔 온천도 좋으니까요.“누군가 키득키득 웃으며 놀려댄다.“너무 잘 챙겨주는거 아니야? 하기야 이러니까 엄마같다는 소리 듣지.“다들 술잔을 들고 윤영훈에게 건배를 한다, 분위기는 이루 말할 필요 없이 화기애애했다.연재준은 술 한모금을 홀짝 들이키고는 고개를 숙여 유월영에게 스윽 다가갔다.“오후엔 너도 온천 같이 가. 우린 상의할게 있으니까.“역시 그럴줄 알았다.그가 어디 이틀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놀음에만 낭비할 사람인가. 설사 정말 휴가를 온다 할지라도 이혁재나 서지욱 같은 친한 친구들과 왔겠지 윤영훈과 신현우와 올땐 반드시 공적인 일이 있었던거다.커다랗고 둥근 테이블엔 유월영도 이름을 부를수 있을 정도로 한 자리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윤영훈이 이번 모임자리를 마련한것도 아마 괜찮은 프로젝트가 생겨 그들더러 투자를 하라는 목적인듯 하다.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의 국그릇으로 옮겨가더니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맛있어? 벌써 두그릇째 같던데.”“......”많이 먹었다고 지저당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유월영은 가볍게 기침을 한번 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꽤 맛있는데 사장님도 드셔보세요. 근데 어느 부위인진 모르겠네요?”국 안엔 어느 부위인지 모를 양고기와 무, 구기자, 대추 등 갖가지 재료들도 함께 들어있었다. 게다가 주원료인 생강과 후추덕에 한모금 마시는 즉시 온 몸엔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골똘히 생각에 빠진 유월영은 어느 부위인지를 알아내 돌아가면 직접 우려내
생각지도 못한 서영희가 눈 앞에 떡하니 서있다.그녀는 짙은 녹색의 노출은 없지만 스타일 좋은 일체형 래쉬가드를 입고 있었다.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더 놀라운건 백옥같이 흰 피부덕에 저런 컬러를 무난하게 소화해냈다는 것이다. 유월영이 예의를 갖추고 서영희를 향해 살짝 미소 지어보였다.서영희도 유월영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오며 물었다.“아가씨 왜 몸 안 담그세요?”“래쉬가드를 안 갖고 와서요. 다리까지가 최선이네요.”“그러셨구나. 전 또 어릴때 물에 빠진적 있으셔서 물 무서워 하시는줄 알았어요. 그래서 못 내려오고 계시는거라면 제가 옆에서 적응시켜 드리려고요.”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말에 조금은 넋이 나간듯한 유월영이다.물에 빠진적이라......고등학교 수영시간에 진짜 물에 빠진적은 있는데 서영희가 그걸 어떻게 알지?유월영은 생각한 그대로 서영희에게 질문을 던진다.서영희의 풀어헤친 새까만 머리카락들은 인어공주마냥 물결에 살랑살랑 움직였다.이내 서영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어보인다.“저도 특목고 다닌적 있거든요. 그 날 아가씨 물에 빠졌을때 옆에서 봤었어요.”“아......”반전의 연속이다.“그 날 중식당에서 처음 뵀을때 단번에 알아봤었죠.”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유월영을 본 서영희가 웃으며 말한다.“연 선배랑 사귄다는 말 들었을때 제 표정도 딱 그랬더랬죠.”그저 놀라운 인연에 신기할 따름이다.서영희를 몇번이고 더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여전히 별달리 떠오르는건 없었다.잠깐의 놀라움을 뒤로하고 다시금 침착함을 되찾은 유월영은 이제는 ‘동창생’을 만난 반가움으로 안부인사를 건넸다.“학교 동창이라니 이런 인연이 다 있네요. 학교 동창 만나기 참 드문데 같은 학년이었겠죠? 전엔 몇반이었어요?”서영희가 욕조 벽에 등을 기댄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던터라 이국적인 느낌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였다.“전 8반이었는데 아가씨는 6반이었죠? 전 별 볼일 없었어서 당연히 기억 못하겠지만 그때 아가씨는 전교에 모르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