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잘됐잖아요. 학교 동창인 현 선배 회사로 취직하면.”딱히 할 말이 없다.이때 유월영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는 물에 담그고 있던 두다리를 빼내며 말했다.“연락이 와서 먼저 가봐여 될것 같네요. 아가씨는 더 계세요.”서영희가 고개를 들어 유월영을 바라본다.“지금은 휴대폰이 없어서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나면 연락처 교환해요.”“그래요.”욕조에서 나온 유월영이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를 끈다---사실 그건 벨소리가 아니라 오후에 맞춰놨던 알람이다.다른 누군가와 현시우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게 불편하고 싫었던 그녀다.근데 회사니 출시니 귀국이니 하는건 다 사실일까?해운 그룹을 떠난 뒤엔 조서희가 유일한 소식통이었는데 그런 그녀마저 지금은 휴가중이니 소식이라곤 알 방법이 없었던 거다.문득 영안 호텔에서 마주쳤던 그 날이 떠오른다.몰카를 찍고 있던 이의 카메라를 던져버린 뒤로는 몰래 찍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현시우가 그 사람더러 그만하라고 한건지 아니면 몰카 수법이 새로워져 눈에 띄지 않게 된건지도 잘 모르겠다.한참을 서있노라니 쌀쌀한 밤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끝에 앉는다고 앉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마자락은 결국 젖어버리고 말았다.어쩔수 없지,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하인없이 혼자서 복도 끝 코너로 걸어간 그녀의 눈 앞에 소은혜와 신현우가 보인다.소은혜는 대뜸 까치발을 들더니 이내 그의 목에 입을 맞춘다.유월영이 못 본 척하고 자리를 뜨려기도 전에 신현우가 먼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은혜를 밀어낸다.매정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유월영도 놀랄 정도다.소은혜는 몇번 비틀거리다 벽에 부딪치더니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뽀뽀도 안 돼요? 오로지 아가씨 위해서 이렇게까지 지조를 지킨다고요 지금?”허나 유월영의 눈엔 그저 씁쓸하기 그지없는 웃음으로 보인다.유월영을 등지고 있어 표정을 보아낼순 없었지만 그의 말투는 그 어느때보다도 차가웠다.“우린 이미 끝난 관계라고 몇번을
뭐?소은헤가 서영희랑 어쩌고 어째?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유월영이 눈쌀을 찌푸린다. 둘은 전혀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닐텐데 도대체 어떻게?저도 모르게 걸음을 재촉하는 유월영이다.......유월영이 떠난 뒤 서영희도 더는 온천에 머무르지 않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한 채 식사 장소에 도착했을때 눈 앞에선 나른한건지 흥미가 없는건지 모르겠는 소은혜가 연재준의 곁에 바짝 붙어 손을 잡고는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이거 내지.”소은혜가 연재준의 손에 들린 카드를 가리켰지만 그는 다른 두 장을 내놓으며 말했다.“카드게임도 같아, 고수는 늘 침묵을 지키지.”소은혜가 포도 한 알을 연재준의 입에 쑤셔넣다 싶이하며 투덜댔다.“말 좀 들어! 목 막히게 해버리기 전에!”서영희가 소은혜를 알아본다. 연안 SK그륩 경영전략팀 부장이저 사교계의 꽃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현우의 전 연인……아니, 버려진 전 연인인 그녀를 말이다.게다가 신현우는 곧 임지연과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과 앞서 영안에 출장갔을때 연재준과도 스캔들이 있었다는걸 서영희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신현우한테 버림받고 다시 연재준에게 붙어먹은건가?서영희는 정중한 말투로 말하는듯 보였지만 실상은 별로 예의를 차리지 않아보였다.“소 아가씨,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소은혜가 서영희를 올려다 보더니 재밌다는 듯 말한다.“널리고 널린게 자린데 하필 왜 여기죠?”“사장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담백한 한 마디였지만 오히려 소은혜에겐 기세등등한 느낌을 준다.소은혜가 콧방귀를 뀌며 연재준을 팔을 끌어안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싫다면 어쩔건데요?“서정희는 더는 소은혜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연재준을 바라봤다.“사장님, 잠시만 얘기 좀 할수 있을까요?“불현듯 그 날 중식당에서 고등학교 시절 두 사람이 사귄 얘기를 했던게 떠오른다……연재준은 손에 들린 카드를 곁에 있던 이에게 건네준다.“나 대신 좀 해.”그렇게 연재준이 서영희를 따라나서고 소은혜는 덩그러니
윤영훈은 임지연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다 보는 앞에서 그런것 아닌것 같고 그러면......”그러자 유월영이 바로 그의 말을 잇는다.“그러면 이젠 공평하겠네요.”“......”윤영훈은 그제야 코 앞에 서있던 유월영을 발견하고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아가씨, 공평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유월영의 말 한마디는 방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충분해 보였다.“서 아가씨가 연 사장님 데리고 나가시는건 여기 있는 저에 대한 예의도 아닌것 같아서요.”서정희가 잠시 놀라는 듯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전 그저 할 말이 있었던것 뿐이에요!”“그래요?”삼각관계로 흘러가는 국면은 유월영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사각관계로 변해버렸다.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서로 눈만 마주치고 있을뿐 누구 하나 입을 열 엄두를 내진 못하고 있다.필경 일을 벌인건 신 사장 사람인데다 피해를 입은건 윤 사장의 누이였고 거기에 끼어든 사람은 연 사장의 떳떳한 파트너 신분인 유월영 아닌가.각자 자신만의 명분이 뚜렷한데다 신분 고귀한 남자 세명까지 거론됐으니 어리석게 끼어들었다간 쓴맛을 볼게 뻔했다.“오해예요.”살얼음판같은 적막을 깨고 연재준이 입을 연다.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유월영을 쳐다보더니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오늘은 제 누이가 뭐 모르고 윤 사장님 누이를 괴롭혔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서 아가씨, 윤 사장님, 이 술은 제 사과의 뜻으로 받아주십시오.”내 누이가 당신 누이를 괴롭혔다.....그 말인 즉 소은혜가 연재준의 누이라는 말인가?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다들 소은혜가 SK그룹 경영전략팀 부장에 “서안 사교계의 꽃”이라는 명성을 지닌, 심지어는 신현우와 연재준 두 사람과 스캔들까지 터졌던 사람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연재준의 누이인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유월영은 뭔가에 맞아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관계여서 그런거구나. 오전 내내 가지고 있던 호기심이 그제야 말끔히 해소된다.연재
잘못을 시인하고 처사까지 완벽히 했으니 당사자도 딱히 할 말이 없다.“다들 친구니까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지읍시다. 연회 준비도 다 됐으니 내려가서 식사나 하시죠.”다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으로 향한다.소은혜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홀로 자리를 떠버리는데.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유월영이 소은혜를 따라가려 하지만 이내 연재준에 의해 손목을 붙잡이고 만다.”어디 가? 오후 내내 못 봤는데 보고싶지도 않았나 보지?“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추파를 던지는줄 알겠다.허나 정작 유월영 본인은 방금 전 자신의 말로 인해 화가 난 연재준이 또다시 이런 방법으로 훈육을 하려는거라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소은혜를 구해주려고 윤영훈의 누이를 궁지를 빠트린데다 사과도 없이 지나간다면 협력관계인 연재준의 일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연재준은 여자로 인해 차질을 빗게 되는 상황을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었다.지난 3년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오던 유월영이었기에 유산이라는 큰 일마저 그에게 알리지 않았던것 아닌가.유월영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한다.“사장님, 소은혜 씨힌테 가보려고요. 술 많에 마신것 같던데.“”너랑 비슷비슷해.“위스키 한 잔 정도로는 끄떡도 없다는 뜻이다.친누이었기에 마음이 쓰이긴 했는지 연재준이 유월영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방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나 찾으러 와.“고개를 끄덕인 유월영은 소은혜가 나간 방향으로 향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연재준의 눈에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는 서정희가 보인다.서정희는 그의 시선을 기다리기도 한듯 곧장 물었다.“사장님, 아가씨가 저희 오해한것 같은데 설명 안 해 드려도 될까요?”연재준은 잠시 주춤하더니 의도가 븐명하지 않은 질문을 한다.“듣기론 온천에서 만났다던데?”“아 네, 근데 저희 고등학교 때 일에 대해선 말 안 했어요.”연재준은 관심도 없는 마냥 물었다.“고등학교 때 무슨 일?”입술을 깨물던 서정희는 더이상 격식을 갖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재준 씨, 그
오랫동안 서울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온 강씨 가문도 경조사가 있을땐 사람을 불러 축하공연을 하는걸 좋아했다.한 곡이 끝나고 배경이 바뀔때면 늘 초록색 천막이 내려오곤 했다. 어린 시절의 소은혜는 무대에 올라가 천막 틈새로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모습을 훔쳐보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다 컸을때까지도 그게 몸에 배어있었는지 어린 친척집 동생들을 데리고 무대로 살금살금 올라가던 그녀다.여동생이 묻는다.“언니, 다음 공연은 뭐야?”빨간색 벽면과 초록의 기와가 어우러진 배경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등 뒤에서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려온다.“얘 또 여기있네! 어릴때도 이러더니 아직도 이러고 있어! 소영이 너 얼른 안 내려와! 훔쳐보는건 무례한거라고 말했지! 다 큰 애가 어린 동생들 데리고 이게 뭐하는거야!”그리고는 이내 나긋하고 진중해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아가씨 귀여우시네요.“”얘, 신 도련님이 다 웃는다.“신 도련님? 그 약혼자 말인가?천막을 들어 그를 보려는 소은혜다.이때 마침 탕탕탕하는 북소리와 함께 천막이 천천히 올라간다.엄마 아빠 곁에 서있던 젊은 남자의 얼굴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둘의 첫 만남이었다.소은혜는 추억에 젖어 웃어보이며 신현우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말했다.그리고 그 뒤에야 약혼 상대는 그가 아닌 셋째 도련님인걸 알게 됐다고 한다.약혼자로 점 찍어둔 도련님이 별로 내키지 않아 연회에 오지 않았으니 장남인 신현우가 직접 사과인사를 전하러 온 것이었다.둘의 시작이 이럴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유월영이다.그들이 이렇게 사과까지 받으려 한 이유는 예비 신랑이 왜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 아니냐하며 딸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게 무서워서였다. 유월영이 곧바로 묻는다.“그 다음은요? 왜 이렇게 된거예요?”강소영은 어쩌다 소은혜가 됐으며 서울 강씨 가문의 진주와도 같은 외동딸은 어쩌다 “서안 사교계의 꽃”으로 거듭났을까?남동생에게 점지된 약
“글쎄요. 후회라기보단 속상하고 섭섭하네요. 몇 년이나 공 들여도 돌리지 못한 마음을 겨우 여기까지 돌려놨는데 이젠 남 좋은 노릇 해버린것 같아서요.”“그럼 시간이 흘러서 몇 년 뒤에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봐요. 그 시절속에 그 남자가 있었다는게 후회되는 안 되는지 말이예요.”소은혜가 웃으며 대답한다.“네.”나무 한 그루가 아닌 숲 전체를 내다보라는 말처럼 많은 이들은 때때로 변해가는 상황속에서야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가 있는 법이다.한결 마음이 편해진 소은혜가 그제야 의문을 품는다.“근데 왜 제 약혼자가 어느 도련님인지는 안 물어요?”“신연우씨겠죠.”앞서 영안에서 연재준은 신연우에게 약혼녀가 있다고 말해줬었다.신연우에게도 직접 물어봤으나 약혼녀가 있는건 맞지만 서로 마음은 없고 근래엔 형과 자주 붙어다닌다고 했었는데.퍼즐 조각이 딱 들어맞지 않는가.소은혜가 고개를 끄덕인다.이때 안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연회가 시작된것 같다.“가 봐요. 전 방 돌아갈게요.”딱히 흥미가 없었던 유월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제가 데려다 줄게요.”소은혜를 방에 데려다주고 유월영도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뭐랄까, 소은혜는 자신과 닮기도, 안 닮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남자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건 둘 다 닮았지만 소은혜는 연재준의 누이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연재준이 나서서 도와준다는게 다른점이였다. 유월영이 거의 방에 다다랐을때 소은혜에게서 문자가 온다.그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겉옷은 깨끗이 세탁해 보내주고 먼저 돌아간다고 한다.유월영이 걱정스럽게 묻는다.“술도 많이 마셨는데 내일 가요.”“고작 위스키 한 잔으로는 안 취해요. 산장 차 타고 갈테니까 걱정 마요.”“그래요, 조심히 들어가고요.”카드키를 찍어 문을 열며 생각에 잠긴다. 소은혜는 앞으로 SK그룹에 돌아갈까? 신현우에게 크게 실망한데다 “남 좋은 노릇”했다고까지 한걸 보면 돌아갈 생각이 없는거겠지?그럼 부모님들은 아마 딸을 용서하고 받아주시지 않을
그렇다. 차마 넘기지 못하고 남긴 그 양꼬리탕은 연재준에게로 넘어갔다.그때 보지 말아야 할걸 본 사람마냥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유월영이었는데.지금도 그녀는 점심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연재준을 쳐다보고 있었다.연재준은 냅다 그녀의 옷을 훌렁 들어올린다. 갑작스레 온 몸을 파고드는 혀의 촉감에 그만 소름이 돋아버리고 마는 유월영이다.급박한 순간 유월영이 버럭 소리친다.“사장님 잠깐만요! 저 생리 기간인데요!”연재준이 콧방귀를 뀐다.“오후엔 온천까지 간 애가 지금은 생리중이다?”유월영이 이를 꽉 악문다.“전 그냥 옆에서 발만 담그고 있었어요. 못 믿겠으면 서 아가씨한테 물어보세요.”연재준이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차가운 눈빛을 하고 묻는다.“하기 싫으면 계약서 얘기나 하자. 이승연은 답장 왔어?”침을 꼴깍 삼킨 유월영은 이때다 싶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아직 메일 확인 못했어요. 지금 가 볼......읍!”유월영이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순간, 연재준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움켜쥐고 만다!그 바람에 유월영의 날개뼈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침대머리 꽃무늬 장식에 부딫혔고 유월영은 순간의 고통에 숨을 거세게 들이쉰다.연재준은 이미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다.“유월영, 넌 날 바보로 아는구나? 계약서 이승연한테 보낸적도 없잖아. 넌 사인할 생각도, 해운으로 돌아올 생각도, 내 결에 돌아올 생각도, 나랑 할 생각도 없잖아.”“내 곁에 있겠다고 거짓말해서 엄마 수술받게 할 의사 보내게 하고는 병세 나아지고 고비 넘기니까 이젠 버리고 가면 그 뿐이라는거야?”어둠속에서도 느껴지는 그의 분노때문에 유월영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세상에 쉽고 대가없는 일이 있는줄 아나 봐?”어깨를 누르고 있던 그의 손은 목에로 옮겨간다. 손에 힘을 주기도 전에 이대로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유월영이다.“넌 대체 목숨줄이 몇갠데 감히 날 갖고 놀려는거야?”유월영이 입술을 꽉 깨물더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한다
길고긴 밤이 지나고 동이 튼다.유월영은 거의 밤새 잠에 들지 못했다.귀를 쫑긋 세우고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지만 연재준은 돌아오지 않았다.수척해진 낯빛은 누가봐도 뭔 일이 있나 싶은 낯빛이었지만 화장품이 없으니 그냥 그러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유월영은 혼자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는 야외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모두들 이틀간의 휴가를 끝마친채 하나 둘 산장을 떠나갔지만 그때까지도 연재준은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에게 연락을 할 유월영도 아니다.점심 식사가 끝나도 오지 않자 유월영도 더는 신경쓰지 않은 채 짐을 정리하고 택시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산장을 나가자 마자 앞에 차 한대가 멈춰선다.유월영은 길을 가로막은줄 알고 옆으로 비켜섰지만 이내 창문이 쭉 내려오더니 윤영훈이 모습을 드러냈다.“유 비서 혼자예요?”잠시 주춤하던 유월영이 대답한다.“윤 사장님.”“타요, 데려다 드릴게.”유월영이 완곡히 거절한다.“민폐 끼치지 싫어서요. 이미 택시도 예약했고요.”“그럼 예약 취소해요 지금.”보아하니 꼭 데려다 주겠다는 의지가 상당해 보인다.망설이던 유월영도 어쩔수 없이 대답한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캐리어도 없이 손에 옷가지만 들고있던 유월영은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연 사장이랑 왜 같이 안 가셨어요?”“아마 일이 있으신가 보죠.”“네? 어젯밤에 벌써 가셨는데 모르셨어요?”유월영이 미간을 찌푸린다. 어젯밤에 벌써 갔다니?“연 사장이 말씀 안 드렸나 보네요. 사장 스케줄을 비서가 모르다는게 드문 일이긴 하네요.”거친 운전에 적응이 안된 유월영이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를 꽉 잡으며 말한다.“전 지금 연 사장님 비서 아닙니다.”“그럼 잘 됐네요. 우리 회사로 와서 일해요.”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있는다.여자의 촉은 유독 두가지에서 더욱 예민함을 발휘한다. 이성관계에서의 적수와 옳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이다. 유월영이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는다.“업무때문에 데려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