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떨구고 서류를 펼쳤다.연재준은 인상을 쓰며 손을 내렸다.“소 팀장, 앉지.”말을 마친 그는 무의식적으로 유월영이 있는 쪽을 살폈다.유월영은 연구팀 소속이었고 주로 데이터를 관리했기에 다른 업무는 그녀와 딱히 상관이 없었다.그래서 사업 목표와 방향을 결정하는 이번 회의에서 그녀에게 발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장장 세 시간 진행된 회의는 저녁 다섯 시가 되어 드디어 끝이 났다.유월영이 정리한 회의록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가려는데 연재준의 비서가 그녀에게 다가왔다.“유월영 씨, 대표님께서 잠깐 뵙자고 합니다. 프로젝트 관련해서 같이 의논할 게 있다네요.”유월영이 물었다.“사무실로 바로 가면 되나요?”“대표님은 지금 서 대표님이랑 이야기 중이니 손님 대기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님 대기실로 향했다.그렇게 30분을 기다렸지만 연재준은 나타나지 않았다.처음에는 두 기업의 오너가 할 얘기가 많아 늦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 소은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짜증이 치밀었다.안으로 들어간 소은혜는 두 시간이 넘도록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소은혜가 들어가고 한 시간이 되었을 때, 유월영은 서지욱의 비서에게 문자를 보내 서지욱이 아직 해운에 있는지 물었다.그런데 아이러니한 답장이 왔다. 회의 끝나고 바로 나갔다는 내용이었다.유월영은 비서실 직원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연재준이 그녀를 남기라고 했을 때는 서지욱과 함께 있었는데 간단히 얘기만 끝내고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기분이 나쁜 건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고 불러주지 않은 연재준의 처사였다.분명 할 말이 있다고 불러놓고 소은혜와 사무실에서 단둘이 두 시간이나 얘기를 나누다니!그날 선박에서 있었던 일과 아까 대놓고 그에게 추파를 던지던 소은혜의 모습을 생각하면 둘이 안에서 일 얘기를 하는지 다른 일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배로 손을 가져갔다. 조금 허기가 졌다
어떤 의미에서 백유진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둘이 얼굴 붉히며 싸운 것만 해도 여러 번인데 매번 만날 때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온화하게 인사를 건네왔다.물론 그녀가 얼굴만 예쁘고 단순한 사고를 가진 여자였다면 연재준의 옆에 오랜 시간 머무르지도 못했을 것이다.“언니, 여기서 뭐 해요?”분명 유월영이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녀는 안으로 들어온 백유진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하고 있었다.백유진은 그녀가 왜 이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퇴근 시간이라 직원들 다 퇴근했을 텐데 언니가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유월영이 말이 없자 백유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언니는 직장 구했어요? 어디 출근해요?”왜 여기 있는지 계속 물어보는 걸 보면 그녀가 연재준을 찾아왔을까 봐 많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컵라면을 다 비운 유월영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넌 연 대표님 만나러 왔지? 어서 들어가 봐. 지금 가면 재미난 구경거리가 아직 진행 중일지도 몰라.”백유진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구경거리요?”유월영은 말없이 생수병을 땄다.백유진은 주먹을 꽉 쥐고 그녀를 노려보다가 결국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편의점을 뛰쳐나갔다.유월영은 이따가 연재준의 사무실에 가서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백유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했다.두 여자 사이에서 골치 아파할 연재준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재미 있었다.아무 이유도 없이 두 시간이나 허비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어차피 그에게서는 받아낼 것이 많았다.유월영은 쓰레기를 처리한 뒤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편의점을 나갔다.택시를 기다리는 길에 그녀는 신연우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회의 내용을 공유했다.길 건너편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해운 본사를 나오는 연재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급하게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유월영은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수화기에 대고 신연우에게 말했다.“그럼 내일 아침 공항에서 만나는 거죠?”“월영 씨는 차도
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백유진이 벌써 얘기한 걸까?자초지종을 모르는 신연우가 작게 물었다.“구경거리가 뭐예요?”유월영은 태연하게 대꾸했다.“몰라요, 저도.”“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야.”연재준은 읽던 신문을 내려놓으며 싸늘하게 말했다.“어제 회의 끝나고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유월영은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며 짐짓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네? 전화하셨어요? 몇 시에요? 지금 확인해 볼게요.”그녀는 연재준이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저녁 여덟 시라는 얘기는 이 자리에서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아니나 다를까, 연재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영문을 모르는 서지욱은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마지막에 도착한 게 아마 소 팀장이었죠?”“저는 직원 여러분께 드릴 밀크티를 사오느라 늦은 거잖아요. 공항 근처에 유명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섰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마시려고 줄을 서다 보니 좀 늦었어요.”소은혜는 와인색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와인색상의 V라인 드레스를 입고 위에 하얀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유월영과 신연우는 묵묵히 길을 비켜주었다.소은혜는 밀크티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연 대표님은 이런 거 싫어하시니까 대표님 건 안 챙겼어요.”그녀는 일부러 연재준에 대해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연재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지욱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도 단 건 싫어하니까 여직원들이나 많이 마셔요.”비서실 직원은 감사를 표하며 소은혜에게서 밀크티를 받았다.소은혜는 밀크티 하나를 두 손으로 유월영에게 건넸다.“이 집 밀크티 정말 맛있어요. 월영 씨도 드셔보세요.”유월영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밀크티를 받았다. 소은혜는 그 잠깐의 시간에 유월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한듯 안 한듯한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본판이 예뻐서 유월영은 어디를 가든 빛이 났다.탑승수속이 곧 시작될 거라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그들은 질서 있
소은혜가 말했다.“어제 백유진 씨를 대표님 사무실로 오게 만든 사람이 월영 씨였죠? 하마터면 저나 대표님이 곤란해질 뻔했어요.”유월영은 담담한 얼굴로 창가 가림막을 내렸다.소은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실 좀 놀랐어요. 소문에 월영 씨는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연 대표님에 대한 소유욕이 그토록 강할 줄은 몰랐네요. 난 그냥 오랜만에 만난 대표님이 반가워서 얘기가 좀 길어진 것뿐인데 그것마저 월영 씨는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요.”과연 둘이 안에서 얘기만 했을까?유월영은 백유진이 갔을 때쯤이면 현장이 거의 정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스튜어디스가 다가와서 음료수 주문 여부를 물었다.“레몬에이드 한 병 주세요.”유월영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스튜어디스가 레몬에이드를 건네자 그녀는 단숨에 마셔버렸다.소은혜가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월영 씨는 내가 대표님과 가깝게 지내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요. 혹시 질투인가요?”유월영은 안대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죄송한데 제가 너무 졸려서요.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요.”소은혜가 당황한 사이, 유월영은 안대를 착용하고 좌석 등받이 각도를 조절한 뒤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대놓고 무시당한 소은혜는 헛웃음만 나왔다.그렇게 많은 말을 걸었는데 머리 묶는 거 가르쳐 준 것 말고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았다.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여자였다.대략 세 시간 뒤, 비행기가 영안 공항에 착륙했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는 이미 공항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유월영과 신연우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신연우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첩을 열고 그녀에게 말했다.“이거 좀 봐볼래요?”그들의 뒤에서 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걷고 있던 연재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유월영은 가까이 다가가서 신연우가 내민 핸드폰을 바라봤다.풍성하게 잘 자란 허브를 담은
해변 도시인 영안은 신주시보다 기온이 찼다. 유월영은 가져온 옷이 너무 얇아서 패딩이나 사려고 밖으로 나왔다.로비로 내려오는데 마침 신연우와 마주쳤다. 그 역시 두터운 옷을 안 가져와서 백화점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는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유월영은 베이지톤의 패딩을 골랐고 신연우는 같은 디자인의 검은색을 골랐다.유월영은 신연우가 괜히 사준다고 나설까 봐 그가 다른 옷을 보러 온 사이, 패딩을 계산해 버렸다.“월영 씨.”신연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는 목도리 하나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이거 엄청 따뜻해 보여요.”그가 손수 목도리를 매주자 유월영은 느슨해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연재준과 소은혜가 백화점으로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소은혜가 웃으며 말했다.“돌아가서 대표님한테 할 얘기가 더 늘었네요. 우리 대표님은 분발 좀 하셔야겠어요. 동생이 저리도 앞서 나가는데 우리 대표님은 여태 솔로이시니.”유월영과 신연우도 고개를 돌렸다가 그들을 발견했다.와인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팔짱일 끼며 들어오고 있었다.신연우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여기서 두 분을 뵐 줄은 몰랐네요. 두 분도 쇼핑을 나왔나 봐요?”유월영은 더 이상 연재준과 엮이기 싫었기에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는 살 거 다 샀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같이 가요. 사실 저희도 다 샀거든요.”그렇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넷은 함께 카운터로 향했다.소은혜는 아까 마트에서 고른 간식과 일용품을 카운터에 내놓았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연재준이 여자와 같이 쇼핑을 나오다니, 둘의 관계가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소은혜는 카운터에 진열된 콘돔을 가리키며 연재준에게 애교를 부렸다.“오빠, 이거도 살까요?”연재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갑작스럽게 바뀐 호칭으로 인해 둘의 사이가 더 이상해 보였다.소은혜는 고
“대체 넌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서 문자 좀 보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그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서지욱은 20층을 사용하고 있었고 연재준과 그의 비서 하정은, 그리고 소은혜는 19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17층이었다.17층에는 어쩐 일로 왔을까?신연우나 그녀를 찾아왔다고 하기엔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둘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백화점에서 돌아온 뒤로 술 마시러 나갔던 걸까?유월영이 말했다.“연 대표님, 이거 좀 놓고 얘기해요.”연재준은 신연우가 걸어주었던 목도리를 빤히 바라보았다.이렇게 보고 있자니 최근 둘이 부쩍 붙어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본 것 같았다.바닥을 내려다보니 그녀의 가방에서 내용물이 쏟아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맨 위에는 그녀의 분홍색 레이스 브래지어도 있었다.그의 시선을 눈치챈 유월영이 이를 갈며 말했다.“이거 좀 놓으시라고요!”연재준은 시선을 다시 그녀의 얼굴로 돌리고 말했다.“나이도 적지 않은데 취향은 여전히 소녀 같네.”유월영은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연 대표님 그거 성희롱에 해당하는 발언이에요. 자중하세요!”“내가 뭘 했다고 성희롱이야? 난 그냥 네 취향이 괜찮다고 칭찬한 것뿐인데?”그가 비아냥거리듯 말을 이었다.“다른 사람이 하는 건 칭찬이고 내가 하면 성희롱이야?”유월영이 바둥거리자 그는 손에 힘을 꽉 주며 계속해서 말했다.“신연우랑 둘이 백화점에 가서 커플 패딩을 맞추더니 속옷까지 세트로 맞췄어?”그러고 신연우의 방에서 세 시간을 같이 보낸 걸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기온 때문에 속옷이 부족할 것 같아서 몇 벌 더 구매한 것인데 왜 이걸 연재준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녀는 생각을 굴리다가 갑자기 그의 등 뒤를 바라보
연재준은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몸을 옆으로 비틀어 유월영의 손길을 피했다.유월영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연재준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채고 벽에 밀쳤다.두 손을 그에게 제압당한 유월영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협박하듯이 말했다.“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 그러지 않으면….”“그러지 않으면?”이미 취기에 이성이 약간 나가버린 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여기서 진짜 뭘 한다고 해도 넌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어.”유월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신현우가 너희한테 뭘 약속했는지 맞춰볼까? 신연우 연구팀이 프로젝트에 가담하면서 SK는 이 사업에서 주도권을 챙겼어. 그리고 그 대가로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너를 SK에 취직시켜 준다고 했겠지. 내 말이 틀려?”“그건 생각해 봤어? 지금이라도 내 말 한 마디면 SK는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걸? 다 된 밥을 빼앗기게 생겼는데 SK가 널 받아줄 것 같아? 그러면 넌 또 직장 잃은 백수가 되겠지.”공공연한 협박이었다.“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요?”유월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협박인가요? 내가 대표님의 잠자리 요구를 거부하면 SK를 이 사업에서 물러나게 하겠다고요?”연재준은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넌 꼭 나를 그렇게 치졸한 인간으로 말해야겠어?”유월영은 웃음을 터뜨렸다.“대표님이 치졸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요!”연재준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솔직히 치졸한 거로 치면 신 교수가 나보다 더할걸?”“여기서 신 교수님이 왜 나와요! 당신이 더러운 생각이 가득하니까 다른 사람도 더럽게 보이는 거죠!”“넌 신 교수를 그렇게 믿어? 걔 약혼녀가 있으면서 너랑 만나고 있는 거야. 처음부터 널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고. 이래도 그 놈 편만 들 거야?”연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걔는 처음부터 네 몸뚱아리 노리고 접근했어. 신연우가 그렇게 좋은 사람 같았어?”“나와 신 교수 사이를 함부로 평가하지 마세요. 해운의 대표라는 사람이
짝!어두운 방안에서 아찔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연재준은 살면서 여자에게 귀뺨을 맞은 것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두 번 다 유월영에게 맞았다.처음에 그녀가 귀뺨을 때렸을 때는 그가 그녀를 두고 쓰다 버린 도구라고 말했을 때였다.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힘이 많이 들어갔다.유월영은 소파에 누워 씩씩거리며 어둠 속에서 그를 노려보았다.광선이 어두워서 그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그들은 마치 폭발 직전의 야수처럼 아무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카드로 문을 열었다.유월영은 급기야 연재준을 밀쳐내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옷깃을 여몄다.이 방은 그녀가 혼자 쓰는 방이었다.전등이 켜지고 광선이 쏟아지면서 유월영은 본능적으로 눈을 찌푸리며 문밖을 바라보았다.호텔 직원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직원은 두 사람을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급기야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방에 두 분이 계신 줄은 몰랐어요! 조… 조금 전에 1702호 방 문이 안 열린다는 신고를 받고 알아보려 온 참이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두 분 볼 일 보세요!”유월영은 직원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여기 나 혼자 쓰는 방인데 누가 신고를 했다는 거예요?”“그게… 전화 거신 분은 남성분이었는데 1702방에 투숙하신다고 했어요. 성이 유씨라고 했는데….”직원이 더듬더듬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사이, 연재준은 일어나서 옷매무시를 정돈했다.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유월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직원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버렸다.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모퉁이에서 누군가 핸드폰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을 사진 찍어 어딘가로 전송했다.[방해 작업 성공입니다.]갑작스러운 전화 신고는 누군가의 짖꿎은 장난으로 결론이 났다. 유월영 본인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고 했고 직원은 거듭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에 문을 닫고 나갔다.유월영은 누군지는 모르나 신고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