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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작가: 고나름
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백유진이 벌써 얘기한 걸까?

자초지종을 모르는 신연우가 작게 물었다.

“구경거리가 뭐예요?”

유월영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몰라요, 저도.”

“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야.”

연재준은 읽던 신문을 내려놓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제 회의 끝나고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유월영은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며 짐짓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전화하셨어요? 몇 시에요? 지금 확인해 볼게요.”

그녀는 연재준이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저녁 여덟 시라는 얘기는 이 자리에서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재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영문을 모르는 서지욱은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마지막에 도착한 게 아마 소 팀장이었죠?”

“저는 직원 여러분께 드릴 밀크티를 사오느라 늦은 거잖아요. 공항 근처에 유명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섰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마시려고 줄을 서다 보니 좀 늦었어요.”

소은혜는 와인색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와인색상의 V라인 드레스를 입고 위에 하얀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유월영과 신연우는 묵묵히 길을 비켜주었다.

소은혜는 밀크티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연 대표님은 이런 거 싫어하시니까 대표님 건 안 챙겼어요.”

그녀는 일부러 연재준에 대해 잘 안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연재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서지욱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단 건 싫어하니까 여직원들이나 많이 마셔요.”

비서실 직원은 감사를 표하며 소은혜에게서 밀크티를 받았다.

소은혜는 밀크티 하나를 두 손으로 유월영에게 건넸다.

“이 집 밀크티 정말 맛있어요. 월영 씨도 드셔보세요.”

유월영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밀크티를 받았다. 소은혜는 그 잠깐의 시간에 유월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한듯 안 한듯한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본판이 예뻐서 유월영은 어디를 가든 빛이 났다.

탑승수속이 곧 시작될 거라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그들은 질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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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영은 임신 8개월 차에 연재준과 함께 마르세유에서 신주시로 돌아와 출산 준비를 하려 했다.두 사람은 아이가 국내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유월영의 몸 상태를 고려해 연재준은 전용기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항로 신청을 시도하는 도중 마르세유에서 항공 통제가 이뤄져 신청이 어려워졌다.다행히 유월영은 입덧도 심하지 않아 두 사람은 일반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그러던 중, 항공기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났다.바로 서정희였다.서정희가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와 만난 적도 그녀에 대한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유월영은 그녀를 거의 잊고 있었지만 그녀가 한때 유월영과 연재준의 애매한 관계를 부추겼던 기억은 있었다.두 사람은 기내에서 우연히 마주쳤다.서정희는 유월영의 배를 보고 잠시 멍해지더니 급히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마치 자신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유월영은 굳이 그녀와 인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그냥 못 본 척하며 연재준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연재준은 메뉴를 주문하고 있었고 유월영은 레몬수를 마시며 무언가를 떠올리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연재준은 젖은 물티슈로 그녀의 젓가락과 숟가락을 닦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월영아,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 무서워.”그는 지금 대부분의 신경을 유월영에게 집중하고 있었다.그녀의 기분을 잘 아는 연재준은 그녀가 보내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연재준은 부드럽게 말했다.“나랑 서정희 씨는 진짜 아무 관계도 없어.”유월영이 천천히 말했다.“내가 당신이 그 여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생각났어요. 그때 서정희 씨가 자작극으로 나를 납치하려다 사건을 일으켜서 사이버 폭력에 시달렸던 거요. 심지어 피 묻은 택배까지 받았었죠.”연재준은 잠시 멍해지더니 곧바로 부정하며 말했다.“그 택배, 과연 극성팬이 보낸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 내가 당신 품에 빨리 안기도록 만든 계략일까요?”연재준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3화

    유월영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내가 뭘 잘못했을까?’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며 생각에 빠져들었고 결국 정신적으로 지쳐 3일간 결석했다.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연재준은 현시우를 찾아갔다.연재준은 유월영이 현시우와의 관계에서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이를테면, 부모님이 평범한 가정 출신인 그녀와의 관계를 반대해 둘을 억지로 떼어놓았을 것이라고 여겼다.하지만 현시우를 찾은 그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쇼핑하고 있었다.연재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현시우의 옷깃을 움켜잡았다.“너, 월영이한테 진심이 아니었다면서 왜 계속 나한테 그녀와 멀리하라고 경고한 거야?”현시우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월영이와 헤어지더라도 네가 그녀에게 손끝 하나라도 닿게 두지 않을 거야.”연재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도로 건너편 복싱장을 가리켰다.“그럼 한번 내기할래?”“뭐?”연재준이 그의 옷깃을 놓으며 말했다.“네가 지면 신주시를 떠나고 다시는 유월영 앞에 나타나지 마.”현시우는 그 말에 분노를 느꼈고,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할 기회를 찾은 듯했다.“좋아.”두 사람은 전력으로 싸웠고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현시우가 지고 말았다.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월영과 자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현시우가 출국하던 날, 유월영은 그의 차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백미러로 그 모습을 본 현시우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차 세워요!”연회 부인이 그의 손을 잡고 멈추려 했다.“시우야,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망치지 마. 네 외할머니가 마르세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정말 레온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고씨 가문에 복수할 희망이 생겨. 월영이는 우리가 성공한 후 다시 만나면 되잖아.”하지만 현시우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차에서 뛰쳐나갔다.유월영은 울며 물었다.“대체 어디 가는 거야? 정말 나를 버릴 셈이야?”현시우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유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2화

    현시우는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그럼 뭐야?”유월영이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현시우, 무슨 일이 있든 나한테 말해줘. 너도 그랬잖아 여자친구는 이런 순간에 필요한 존재라고.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들어줄 수는 있어. 고민은 혼자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 말로 털어놓는 게 훨씬 나아.”“물론, 네가 정말 혼자 있고 싶다면 내가 시간을 줄게. 하지만 연락을 끊으면 안 돼. 그러면 나도 걱정이 되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말이야. 정말 힘들어.”그녀의 말에 현시우는 마치 심장에 바늘이 꽂힌 것 같았다.그 바늘은 그의 숨소리를 따라 점점 더 깊이 찔러 들어갔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월영아, 그냥 여기까지 하자. 내가 사람을 불러 너를 집에 데려다줄게.”유월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지금 나랑 헤어지자는 거야?”현시우의 목젖이 떨렸다.그는 “그래”라고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차마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그가 침묵하는 동안 유월영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 줄기의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유월영의 눈물에 현시우는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달래려 했다.하지만 유월영은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이내 뒤돌아 뛰어갔다.현시우가 본능적으로 뒤따라 가려 했지만 연회 부인이 제때 나타나 그를 막았다.“시우야! 지금은 내버려둬.”어머니의 충고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현씨 가문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고 유월영은 산길을 따라 뛰면서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계속 흘렀다.가을은 좋은 계절이 아니었다.가을은 모든 것이 시들어가는 계절이었다.유월영은 눈앞이 흐릿해졌고 너무 빨리 뛰다가 발이 엉켜 땅에 넘어졌다.흙투성이가 된 채로 집에 돌아온 그녀는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아래층의 부모님이 들을까 봐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손등에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1화

    유월영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연재준조차 알아차릴 수 있었다.쉬는 시간, 그는 일부러 유월영이 있는 반을 지나가며 텀블러에 물을 담고 있던 유월영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그녀는 마치 듣지 못한 듯 돌아보지 않았다.“...”연재준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생각했다.‘현시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봐야 하나? 설령 죽었다고 해도 최소한 죽었다는 소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그러나 현씨 가문의 입단속은 철저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더구나 현시우와 연회 부인의 대화는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다만 현시우는 최근 병원에 드나들고 시골로 내려가는 등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분주하다는 소문만 들렸다.연재준은 손에 동전을 굴리며 고민했다.‘이 틈을 타서 슬쩍 끼어들어 볼까?’보름이 지나도 현시우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결국 유월영은 참지 못하고 생애 가장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그녀는 직접 현씨 가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유월영은 경비원에게 자신이 현시우의 학교 친구이며 그가 너무 오래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러 왔다고 말했다.경비원은 그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하겠다고 했다.10분 후, 유월영은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월영아.”그녀가 돌아보자, 나온 사람은 바로 현시우였다.처음에는 기뻤지만 이내 화가 치밀어 올라 유월영은 달려가며 따졌다.“너 요즘 왜 그래?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거야?”그녀는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휴대폰 부모님이 뺏어갔어? 아니면 벌이라도 받은 거야? 혹시 맞기라도 한 거야? 아픈 건 아니지? 얼굴빛이 안 좋아 보이는데 병원은 갔어?”“월영아.”현시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는 고개를 숙이고 깊게 꺼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그의 모습은 지치고 초췌해 보였다.불과 보름 만에 그는 한층 더 야위었고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듯 보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40화

    현시우는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태도로 어머니를 추궁했다.“단순히 유용우를 봤다는 이유로 유월영이 그의 친여동생이라고 단정 짓는 건 말이 안 돼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시는데요?”그가 아는 바로는 유월영의 집에는 세 자매가 있었다. 왜 꼭 유월영이어야 하는 걸까?“나이대가 맞지 않아서요?”그는 계속해서 반박했다.“다른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유월영의 집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에요. 자식을 여러 명 키우는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고씨 가문의 딸을 키우는 건 위험 부담도 크잖아요. 여동생이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나요?”이 모든 시간 동안 그들은 늘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연회 부인은 외출조차 하지 못했고, 유용우네 가까이 지내는 것도 두려워했다.그래서 유용우네 부부가 시내로 이사한 것도 몰랐고, 그들의 세부 사항도 알 수 없었다.현시우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연회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그러면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해보렴.”“...”만약 그녀가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현시우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핏줄은 그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연회 부인은 그가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아마 너는 처음부터 네 감정을 잘못 알았던 것 같아. 너의 마음속에서 유월영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어쩌면 혈연관계가 작용해서 너를 혼란스럽게 만든 걸지도 몰라.”“그렇지 않다면 너의 성격으로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네 주변에 훌륭하고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잖아? 그런데 너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잖아. 그런데 유월영을 알게 된 지 몇 달 만에 이렇게 깊이 좋아하게 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니?”“그래서 내 생각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운명이 장난을 친 거야.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39화

    “손님, 이 케이크는 당일 제조된 거라 유통기한이 짧아요. 냉장고에 넣어도 최대 3일밖에 보관할 수 없으신데, 이렇게 많이 사가시면 다 드실 수 있으신가요?”유월영이 조심스레 물었다.연회 부인은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일 제조된 거라면 학생이 직접 만든 거예요?”“제가 아니고 저희 가게에서 직접 만든 거예요. 한번 맛보신 후에 마음에 드시면 구매하셔도 돼요. 다만 가족 인원이 많지 않으시면 한 번에 다 사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아요.”유월영이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그녀에게 건넸다.“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어요.”연회 부인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학생, 교복을 보니 신주시 고등학교 학생인 것 같은데 우리 아들도 그 학교 다녀요.”유월영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아, 그러신가요.”“학생, 참 예쁘게 생겼네.”연회 부인은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고 유월영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아니에요. 손님께서 훨씬 멋지고 품격 있어 보이세요.”“말도 참 예쁘게 하네요.”연회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케이크 맛있네요. 이거 전부 살게요. 계산해 주세요.유월영은 계산하며 말했다.“총 3만 6백 원인데, 3만 원만 받을게요. 맛있으시면 또 오세요.”“그럼 그럴게요.”계산을 마친 연회 부인이 케이크 포장을 들려고 했지만 그녀의 네일아트를 본 유월영이 주저하며 물었다.“차로 오셨나요? 제가 차까지 들어다 드릴게요.”“그래요, 그러면 저야 고맙죠.”연회 부인은 그녀를 차로 데려갔고 유월영은 케이크를 차에 실은 후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연회 부인이 출발하려는 찰나 중년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옆에 멈췄다.“아빠!”유월영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연회 부인은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유월영이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은 고해양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었고 그녀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갑작스러운 만남에 연회 부인은 몸은 얼어붙었고 혼란에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38화

    “아니.”현시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남자들끼리의 문제일 뿐이야.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월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별거 아니긴 개뿔!”현시우는 예상밖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유월영이 이렇게 거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비록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해 그랬다는 사실에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월영아, 욕은 하지 마.”“할 거야! 너도 싸움질을 했으면서 내가 욕하는 걸 뭐라고 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유월영은 그의 상처를 가까이서 살펴보며 점점 더 화가 났다.“도대체 너랑 싸운 사람이 누구야? 왜 싸운 건데?”현시우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픈 팔다리를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월영아, 와서 안아줘.”“꿈 깨!”옆방에서 의무실 선생이 연재준의 얼굴에 멍이 든 곳에 약을 바르려고 했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이를 피하며 말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나가세요.”의무실 선생은 잠시 망설였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료 상자를 챙겨 방을 나갔다.두 소년의 부상은 비슷했다. 뼈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었고 학교 보안요원이 빠르게 싸움을 말려 모두 표면적인 상처에 불과했다.방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에 옆방에서 들리는 대화가 연재준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유월영이 현시우를 걱정하며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그의 귀에 들어왔다.연재준은 그 말을 들으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고 느꼈다.학교는 싸움에 대해 별다른 처벌을 내리지 않았고 다만 두 학생의 부모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연민철은 이미 아들 연재준을 신경 쓰지 않았고 반면 현시우의 가족은 이 소식에 크게 놀랐다.현시우는 어릴 때부터 감정 기복이 별로 없고 차분한 성격으로 한 번도 싸움을 하거나 심지어 다툰 적도 없었다.그런 그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참지 못하고 싸움을 벌인 건지 현씨 가문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당시, 현시우의 어머니인 연회 부인은 현씨 가문에서 사모님으로 은둔하며 지냈다.하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37화

    현시우가 유월영을 집까지 데려다주며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내가 대신 병가를 낼 테니까 너는 집에서 푹 쉬어. 책도 보지 말고 문제도 풀지 마.”유월영은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괜찮아. 나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의사 말 못 들었어? 네가 과로로 쓰러진 거라고.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줄여야 해. 월영아, 모든 걸 다 해내려고 하지 마. 그리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도 하지 마.”현시우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월영은 항상 모든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집착과 강박은 결국 그녀를 지치게 만들고 말았다.사람의 몸은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신중히 고민한 끝에 어머니에게 댄스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학교의 댄스 동아리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춤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였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잠시 내려놓는 것이 맞았다. 대학에 가거나 졸업 후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주말과 월요일까지 3일이 지나고 유월영은 학교로 돌아왔다.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감기도 거의 나아 약간의 콧물만 남아 있었다.유월영이 등교한 날, 연재준은 유월영의 교실 앞을 지나쳤다. 친구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그녀의 얼굴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병원에서 그는 원래 깨어난 유월영에게 잃어버린 옥불을 따질 계획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로 인해 급히 돌아가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 문제 논의에 꼭 참석해야 했던 것이다.그리고 익명의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던 그는 방과 후 그녀를 찾아갈 계획이었다.연재준이 유월영의 반으로 향하던 중, 현시우와 마주쳤다. 연재준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려 했지만 현시우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그날 월영이를 병원으로 데려다줘서 고마워.”연재준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고맙다면 네가 아니라 본인이 와서 말해야지. 넌 대리인이야?”현시우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담담히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36화

    운전기사는 연재준의 상태를 걱정하며 우산을 들어주었지만 연재준은 비에 젖은 창백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그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도착했을 때 유월영은 링거를 다 맞고도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연재준은 침대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한참을 서 있던 그는 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유월영, 이제 너는 나한테 빚졌어.”그녀 때문에 잃어버린 것은 그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었다.얼마 후, 유월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침대 앞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와 함께 현시우가 앉아 있었다.“...”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병원이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이 쉬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목 아파? 편도선염이야. 당분간 말하지 마.”현시우는 탁자에 있던 따뜻한 물을 들고 한 팔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씩 먹이며 부드럽게 상황을 설명했다.“너 열이 나서 길에서 쓰러졌어. 다행히 누군가 널 병원으로 데려왔어.”“기절했다고?”유월영은 놀란 눈으로 현시우를 바라봤다. 폭우 속에서 길을 헤매던 기억은 있었지만 쓰러졌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따뜻한 물이 목을 적시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목이 아팠다.유월영이 억지로 몇 마디를 이어갔다.“누가...날 병원에 데려왔어?”현시우는 물컵을 내려놓고 그녀가 좀 더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베개를 정리했다.“간호사 말로는 너랑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았대.”“시험 끝나고 널 찾으러 갔는데 네 짝꿍이 네가 집에 갔다고 했어. 근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돼서 네 집으로 갔거든. 근데 네가 없더라.”유월영의 가족조차 그녀가 어디 갔는지 몰랐고 현시우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학교에서 집까지의 길을 수색했다. 그러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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