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28화

Author: 고나름
그 말에 유월영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금방 일어났어요.”

이승연이 말했다.

“일단 기사부터 보고 다시 얘기해요. 제가 보기엔 월영 씨가 뭘 더 할 필요는 없어요. 여론은 이미 우리 쪽으로 기울고 있거든요.”

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즉시 핸드폰으로 제일병원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그러자 인기검색어에 제일병원 공식입장이라는 키워드가 버젓이 1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신속히 기사를 클릭했다.

대략 두 시간 전, 제일병원은 갑자기 장문의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며칠 전 있었던 소란의 자초지종을 진술했다.

내용을 간략해 보자면 병원 측은 이영화 환자가 병원에 방문한 날, 기증 대상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 시간에 유월영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가족 측에 기증 대상자 선정에 대한 규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가족 측이 배신감을 느끼고 소란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도 대범하게 인정했다.

병원 측은 이번 난동 사건에서 자신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피해자 가족과 이영화 환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까지 덧붙였다.

병원 측 입장이 나오자 여론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제까지 가만히 여론의 풍향을 지켜보겠다던 사람들 치고는 굉장히 갑작스러운 행보였다.

‘그래서 이 변호사님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던 거구나.’

하지만 갑자기 병원 측에서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월영은 핸드폰을 꽉 잡고 속으로 연재준을 떠올렸다.

‘설마 연 대표님이?’

병원 측에서 아무 이유 없이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댓글들이 제일병원 관계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번 공식 성명이 병원 측에 안 좋은 결과만 가져다줄 것을 그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원 관계자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연재준 말고 딱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연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월영은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29화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신연우는 뒤늦게 유월영의 문자를 확인했다.감사하다는 문자 이외에 그녀는 창가에 키우는 화분을 사진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그는 피식 웃으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허브예요? 어쩌다가 허브를 키울 생각을 다 했어요?]유월영:[키우기도 쉽고 방에 향도 좋아서요. 이파리를 따서 코끝에 대고 맡아도 향이 너무 좋아요.]신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 그 말을 들으니까 나도 키워 보고 싶네요.][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어요. 제가 키우는 거 가지를 많이 쳤으니까 그냥 드릴게요. 키우다 보면 빨리 자라요.]신연우는 그녀의 문자에서 그녀가 지금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술 한번 마시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유월영: [그건 아니고 마침 얘기하려던 참이었어요. 아버지 사건 잘 해결될 것 같아요.][그래요?][연 회장님이 나서서 잘 해결해 주셨고 그 간호사도 합의하기로 했어요.]신연우는 인터넷 검색창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일을 해결한 사람이 연재준이 아닌 연 회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형인 신현우가 눈독 들이던 재개발 사업이 정우증권으로 넘어갔다.일부러 정우증권에서 빼앗았다기 보다는 해운에서 다른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SK과의 협상이 무산되면서 2순위였던 정우증권에 넘어갔다고 했다.연 회장은 지금 새 사업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쁠 텐데 갑자기 유월영의 일에 관여하고 나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재밌네. 과연 진짜 연 회장님일까?’한편, 피해 간호사는 결국 4천만 원의 합의금을 받는 대가로 합의서에 사인해 주었다.두 달을 기다려서 드디어 유현석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승연의 도움으로 결국 유현석은 징역 3개월 형을 받았다.구치소에서 두 달을 있었기 때문에 한 달만 더 있으면 풀려날 수 있었다.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였다.유월영은 이승연에게 거듭 고맙다고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0화

    ‘이럴 리가 없는데.’유월영은 3년이나 그의 옆에서 비서로 일했기에 그가 월요일에 가장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집에 오기를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집에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월영은 연 회장 내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두 달을 안 만났지만 연재준은 여전했다.겨울의 신주시는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갔는데도 그는 검은색 정장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아마 실내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가 안으로 들어왔지만 연재준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유월영은 불편함을 느끼고 곧장 주방에 도우러 들어갔다.그녀가 직접 끓인 갈비탕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윤미숙 여사가 테이블에 수저를 세팅했다.“어머, 월영아. 이 갈비탕 정말 맛있어 보이네. 요즘 날씨가 추워서 안 그래도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던 참이었는데.”유월영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윤미숙은 억지스러운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회장님이 회사 일로 재준이랑 할 얘기가 따로 있다고 부르셨어. 마침 재준이도 점심을 안 먹었다고 하더라고.”유월영이 말했다.“업무적인 일로 오신 거면 제가 끼어 있으면 불편하실 거예요.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윤미숙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식사 준비까지 하고 집에 가는 경우가 어디 있어? 요리는 다 네가 했잖아.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이때, 연 회장도 거실로 나왔다.“비밀 얘기를 할 것도 아니니까 월영이 너도 편하게 밥 먹어. 안 그래도 네 아버지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유월영은 뒤에 있는 연재준을 힐끗 바라보고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그녀와 윤미숙 여사가 같이 안고 맞은편에 연회장과 연재준이 앉았다.고용인이 식기와 국을 세팅하는 사이, 연 회장은 유월영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았다.유월영은 다 잘 지낸다고 답했다.이영화는 그녀와 큰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최근 두 달 사이에 병세가 안정되었다. 약도 꾸준히 먹고 있고 발작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1화

    유월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해 주지 않았다. 그냥 일반 손님처럼 소리를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윤미숙이 다급히 일어나 연재준을 잡았다.“밥 먹다 말고 이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몇 술 뜨지도 않았잖아. 재준아, 밥이라도 먹고 가. 이따가 오후에 바쁘다고 또 끼니를 거르면 속 쓰려서 안 돼.”연재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계모를 바라볼 뿐이었다.윤미숙이 연 회장을 호출했다.“여보.”연 회장은 인상을 쓰고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말했다.“연말에 주주총회가 있다고 들었다. 김 이사와 안 이사에게 정년 퇴직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면서?”연재준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네.”연 회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회사가 설립할 때부터 같이 일해온 공신들이야.”연재준이 싸늘하게 답했다.“그거 핑계로 많이 드셨잖아요.”“회사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니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건 당연해.”“그분들을 이사회에서 퇴출 시켜야 하는 이유는 이미 문서로 보내드렸을 텐데요. 회사는 인정이 아닌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제가 보내드린 증거가 그분들을 보내기에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잠자코 있던 연 회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일해온 사람들이잖아.”연재준이 피식 비웃더니 말했다.“이사회에서 나갈 뿐이지 퇴직금도 넉넉히 챙겨드릴 거고 가지고 있는 주식 배당금도 해마다 나갈 텐데요. 그 정도면 노후자금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연 회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유월영은 조용히 식사에 전념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회장님 사람들을 전부 내치겠다는 걸까?’그녀는 퇴사하기 전에 연재준이 이사들을 조용히 조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아마 그는 그때부터 회장님 사람들을 숙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백발의 노인을 바라보았다.여전히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2화

    이게 회장님의 생각인지 윤미숙 개인의 생각인지 분간할 수 없어 유월영은 당혹스러웠다.너무도 위험한 제안에 유월영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사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환경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깥세상도 구경하고 싶고요. 저를 딸처럼 생각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새도 크면 둥지를 떠나듯이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 자립하기 마련이에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그녀는 감성을 호소하며 위험한 주제를 가까스로 피해갔다.그녀의 말에 윤미숙도 더 이상 그녀를 만류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차나 마시자꾸나.”유월영은 더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모님도 얼른 쉬세요.”윤미숙이 말했다.“회장님 2층 서재에 계셔. 가서 인사나 드리고 가. 둥지 떠난 새가 또 언제쯤 집에 돌아올지 모르잖아.”유월영이 물었다.“서재는 어디 있어요?”“2층 올라가서 좌측의 두 번째 방이야.”“알겠습니다.”유월영은 해운에 있을 때도 저택에 자주 방문했지만 1층에서 식사만 했을 뿐, 2층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윤미숙이 알려준 대로 좌측의 두 번째 방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서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신 거울 앞에서 연재준이 옷을 벗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회사로 돌아간 거 아니었나?’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당황한 유월영은 다급히 시선을 돌리며 그에게 말했다.“죄송해요, 바로 나갈게요.”말을 마친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연재준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유월영.”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등 뒤에서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구에 단추가 하나 떨어졌어. 그거 좀 주워서 갖다줘.”유월영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바닥에 파란색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3화

    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손을 뻗어 넥타이를 바로맸다.와인색 셔츠에 진한 청색 넥타이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연재준도 눈을 내리 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전에는 그녀가 넥타이를 매주고 옷매무시를 정리해 주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 여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다.그래서 덩달아 그의 기분도 언짢아졌다.“인공심장이 뭐예요?”그녀가 바짝 경계하는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연재준은 담담히 대답했다.“해외에서는 이미 임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이야. 널리 퍼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테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임상실험을 마쳤어.”심장 기증자는 간이나 신장보다도 더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간단한 치료법이 있는데 왜 널리 퍼지지 않은 걸까?유월영이 말이 없자 연재준이 그녀의 의문을 대신 대답해 주었다.“비용이 어마어마하고 감염 확률이 아직은 높기 때문이야. 인공심장의 수명은 길어서 7년이거든.”인체의 심장을 이식 받으면 짧게는 10년, 관리만 잘하면 더 길게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했다.가성비나 안전성에서 인공심장은 아직 장기 기증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유월영은 말없이 넥타이 매듭을 지었다.연재준이 계속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인공심장을 먼저 이식 받은 환자가 다시 인체 심장을 이식받지 못한다는 설은 없어. 먼저 인공심장을 이식받았다가 시간을 벌고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야.”유월영은 전혀 몰랐던 가설이었기에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게 가능해요?”연재준은 그녀의 앞으로 팔을 쭉 내밀었다. 팔 소매 단추를 잠가달라는 의미였다.유월영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단추를 잠가주었다.시선을 내리고 있어서 그녀의 긴 속눈썹이 얼굴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연재준이 물었다.“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시골에서 먹고 놀기만 하고 이런 것도 안 알아봤어?”“대표님이 하실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옷매무시를 다 정리한 유월영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4화

    저택을 나온 유월영은 택시를 잡아 신주대학으로 가면서 핸드폰으로 인공심장에 대해 검색했다.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인공심장 관련해서 대략적으로 요해하게 되었다.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직원 카드를 센서에 찍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유월영은 새로 직장을 구하지 않았지만 신연우의 옆에서 잠시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처음에 신연우가 그렇게 제안했을 때 혹시 그가 자신을 직장도 없는 백수라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오해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아니었다.학기말이라 신연우는 학생들 학점도 케어하고 논문도 써야 해서 굉장히 바빴다.유월영은 이틀 해보고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전에는 교수직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그렇게 일한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물론 신연우도 그녀를 돕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더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을 조교로 초빙했을 것이다.유월영도 그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의 배려에 보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신연우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유월영은 오늘 정리해야 할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는 조용히 다가가서 일에 열중하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오늘은 쉬라니까 왜 왔어요? 조교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월급이라도 더 올려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손에 교재를 들고 안경 너머로 미소를 짓고 있는 신연우는 교수라기보다는 학생처럼 보였다.“재판 순조롭게 풀린 거 축하해요.”유월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식이 신 교수님한테까지 전해졌어요?”“월영 씨 일인데 각별히 관심 갖고 있었죠. 인터넷에서 기사 봤어요.”신연우가 말했다.“그런데 점심까지 기다려도 월영 씨한테서 문자 한 통 없어서 좀 서운했어요. 나랑은 그 정도로 친하지 않은 사이인가 싶어서요. 그래도 이렇게 사무실에서 보니까 좋네요.”굉장히 친근감이 느껴지는 말에 유월영은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신연우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5화

    유월영이 자료를 정리해 줬기에 이 일은 그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혹시 저를 배려해서 안 가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신연우가 웃으며 말했다.“꼭 그런 건 아니고요.”유월영은 월급 주는 사람이 직원을 이 정도로 배려해 줄 줄은 몰랐다.“괜한 걱정이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아르바이트 끝나면 정식으로 직장도 구할 건데 어떻게든 일하면서 마주치게 되겠죠. 매번 그쪽을 피할 수는 없잖아요.”유월영은 단호한 어조로 재차 강조했다.“저는 이제 해운그룹에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그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신연우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에 그들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오늘 미팅에는 신연우 연구팀 소속 멤버들이 모두 참석했다.팀장이 문을 열고 한 남자와 함께 룸에 입장했다. 유월영이 고개를 들자 보인 얼굴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들어오는 연재준의 모습이었다.오늘 그와 마주친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그는 아까 입었던 캐주얼한 옷 대신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팀원들과 함께 있는 유월영을 본 순간에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유월영은 오늘 방에서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 중에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던 연재준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꾹 참았다.이어지는 식사 자리에서 연재준은 그녀에게 별다른 시선을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 얘기에 집중했다.유월영은 그들의 협상 내용을 기록하고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올리는 업무를 맡았다.간단히 말하자면 해운그룹에서 과학기술 연구팀에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그들의 연구성과를 해운의 사업에 이용하는 것이었다.만약에 돈이 안 되는 연구였다면 절대 해운에서 거금을 투자했을 리 없었다.하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못했다. 해운에서 연구팀의 주도권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신연우는 연구팀의 핵심인물로써 가장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시로 유월영의 상태를 살폈다. 호텔 직원이 와서 그녀에게 술을 따르려 하자 그는 손을 내밀어 저지하고 말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136화

    레스토랑을 나온 신연우는 고개를 돌려 유월영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 샤브샤브 어때요?”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연했다.유월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정말 이대로 가도 상관없어요?”신연우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답했다.“당연하죠. 안 될 게 뭐가 있어요?”“이번 프로젝트 제가 들어가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하셨잖아요. 그랬는데 이건 너무…”“내가 감정에 휘둘려 공과 사 구분하지 못하고 뛰쳐나왔다고 생각해요?”신연우가 웃으며 물었다.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사실 이 프로젝트에 해운이 투자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연재준은 저를 쉽게 보내줄 리 없거든요. 어차피 사전 준비는 끝났으니 더 이상 제가 필요 없잖아요. 저 때문에 피해 보지 말고 제가 물러날게요.”“저 때문에 팀에서 오랜 시간 준비한 연구성과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말아요.”신연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장난 좀 치려고 했는데 이렇게 정색하니까 장난도 못 치겠네요. 그럼 나도 사실만 말할게요. 난 처음부터 해운의 투자에 관심이 없었어요. 아까 눈치 못 챘어요? 내가 항상 뚱한 표정으로 있었던 거?”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유월영은 해운에서 제시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그가 불편해하는 줄로만 생각했다.“사실 지금 해운이 진행하는 사업에 SK도 투자했거든요. 형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겠다고 했는데 협상이 결렬돼도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많아요. 오히려 월영 씨 덕분에 해운을 거절할 명분이 생긴 거죠.”신연우는 손을 뻗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다만 형은 내가 월영 씨 때문에 해운과의 협력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테니 남자를 홀린 나쁜 여자로 생각하겠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요.”유월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제가 정말 전문성이 결여된 건 맞나 보네요. 교수님의 생각

Latest chapter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6화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연이가 원하는 거라면 아빠는 꼭 해낼 거야.”윤영훈은 목이 메어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주월향은 딸에게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빠가 누군지 알려주며 7년 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딸이 그를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해줬다.‘이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그러나 윤영훈은 주월향의 이런 행동이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뜻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집안에 들어서자 연이가 활기차게 떠들었다.“엄마!”주월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이야, 배고프지? 어제 배추전 먹고 싶다고 했잖아? 방금 만들어서 아직 따뜻해. 간식이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알았지?”아이가 환호하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주월향은 윤영훈을 힐끗 보며 말했다.“당신도 먹어볼래요?”윤영훈은 그녀 쪽으로 다가가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월향아, 미안해...”“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요.”주월향이 그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딸을 한 번 보더니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윤영훈도 그녀를 따라 나갔다.주월향은 식물에 물을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7년 전, 영훈 씨가 감옥에 가기 전에 우리 모녀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줬어요. 돈, 집, 차까지 모두 마련해줬죠. 게다가 내가 당신을 한 번 배신하기도 했으니 당신에게 상처 준 대가로 다 갚았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는 7년 전에 이미 정리됐어요. 그러니 서로에게 빚진 건 없어요.”윤영훈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주월향이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이 7년 동안 내가 감옥 면회를 가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오늘 출소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죠. 당신이 날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그냥 이대로 끝났을 거예요.”“하지만 영훈 씨는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지금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남을 건가요?”“...내가 여기 남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5화

    “됐어요, 사촌 오빠, 얼른 가세요. 곧 비가 올 것 같아요. 이모와 이모부께는 제가 잘 지낸다고 전해주세요. 여기서 부족한 것 하나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사촌 오빠?’남자는 주월향의 남편이 아니라 사촌 오빠였다.거의 죽어가던 윤영훈의 마음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그는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뻔했다.그러나 그 사촌 오빠가 집을 나서자 윤영훈은 재빨리 수박 덩굴 아래로 몸을 숨겼다.물론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라고 해서 주월향에게 남편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하지만 이 반전만으로도 그는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그때 머리 위의 수박잎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젖혀졌다.윤영훈은 순간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청아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내가 아까 한 말 못 들었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리 벼부터 거두는 걸 도와줘요. 비 맞으면 이번 농사는 다 망해요.”윤영훈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주월향의 말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마치 그가 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 외출했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들렸다.천천히 돌아선 윤영훈을 주월향은 담담하게 바라보며 갈퀴를 건넸다.“모두 한데 모아주세요. 내가 자루를 가져올게요.”윤영훈은 멍하니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그는 감옥에서도 농사일을 해봤기에 이런 일이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일을 하다가도 자꾸 주월향의 눈치를 살폈고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려 애썼다.주월향이 입을 열었다.“지금 나는 온라인에서 요리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어요. 팔로워가 몇백만 명은 되죠. 영상 편집이 아직 안 끝났으니 벼를 다 거두고 나면 이 앞에 초등학교에 가서 연이를 좀 데려와 주세요.”“지안 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죠? 몰라도 괜찮아요. 핸드폰 내비게이션 켜고 찾아가면 돼요.”윤영훈이 여전히 멍하니 있자 주월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 말 들었어요?”“들었어...”주월향은 거둔 벼를 집 안으로 가져가며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4화

    윤영훈은 10년 형을 선고받았다.모범수로 인정받아 감형된 덕분에 실제 복역 기간은 7년 10개월이었다.출소하는 날,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감옥 문 앞에 서서 바라본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그의 모습도 더 이상 과거의 의기양양하고 자유분방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윤영훈은 감옥 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출소를 반년 앞두고 그는 출소 후의 삶을 계획하려 애썼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윤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지 오래였다.2년 전, 그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도관들의 배려로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그곳에서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친척들을 보았다.가문의 보호막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윤영훈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의 사촌 서정희는 출소 후 찾아오라 했지만 그녀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윤영훈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주월향이었다.그녀와 딸 연이를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등장이 그녀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웠다.게다가 그녀는 이미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재판을 받던 날에도 주월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그녀는 분명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녀 곁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남자가 없더라도 모녀는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윤영훈은 감옥에 가기 전 그녀에게 충분한 재산을 남겼고 그녀가 이를 잘 활용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등장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비열하다고 느꼈다.주월향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멀리서 그녀를 한 번 보기만 해도 만족하겠다고 다짐한 윤영훈은 감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기차표를 사서 그녀의 고향으로 향했다.그곳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이었다.기차역에서 그녀의 집까지는 버스로 2시간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3화

    “그래도 돼?”강수영은 신현우가 미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녀의 애인이 되었고 강수영은 반년 넘게 그와 몰래 관계를 이어갔다.강수영은 일부러 자신이 이미 남편과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매주 몰래 찾아오는 신현우를 지켜보며 즐거워했다.가끔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바로 떠났다.그럴 때마다 신현우는 알림도 받지 못한 채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 했다.친구들은 강수영이 신현우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현재 신현우의 눈에는 질투와 시기가 가득 차 있었고 늘 당당하던 그의 얼굴에는 답답함과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강수영은 자신이 그의 곁에서 겪었던 모든 억울함과 상처를 이렇게 풀고 싶었다.이번 주, 강수영은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고 신현우는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 강수영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그는 거실에서 홀로 술병을 비우고 있었다.엉망이 된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초라해 보였고 강수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그녀는 오랜 시간 방치해둔 녹음기를 꺼냈다. 그건 예전에 신연우가 건넨, 신현우의 음성이 담긴 파일이었다.그녀는 당시 결혼 생활에 전념하고 싶어 듣지 않았던 녹음을 재생했다.녹음기에서는 술에 취한 신현우의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것은 강수영의 결혼식 날, 신현우가 취한 상태에서 남긴 말들이었다.신연우가 그를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수영이가 내 앞을 그렇게 지나갔어. 남편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어.”“내가 정말로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아니야, 난 수영이를 좋아했어. 다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을 뿐이야.”“나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었잖아. 너무 어리석었어. 나는 그런 가치를 줄 만한 사람이 아닌데...”“다 내 잘못이야. 처음부터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수영이가 이렇게 집착하지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2화

    두 사람은 서쪽으로 스위스 알프스를 찾아가 산맥의 낭만을 만끽하며 자연 보호구역에서 아름다운 야생동물들을 만났다.북쪽으로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와 캐나다의 퀘벡으로 향해 겨울 축제와 북유럽의 신비로운 매력을 경험하고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오로라의 장관을 즐겼다.그러던 중, 한 여행지에서 강수영은 신연우를 우연히 마주쳤다.오래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식사 후, 신연우는 그녀에게 녹음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이 안에는 우리 형의 음성이 들어 있어. 들을지 말지는 네가 결정해. 하지만 듣는다면 네 결혼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그는 이어 덧붙였다.“형이 요 몇 달 동안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 큰 병을 앓아 체중이 많이 빠졌고, 회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 최근에서야 조금 회복됐지.”강수영은 특별히 반응하지 않고 녹음 파일을 받았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신혼여행을 마치고 부부는 지성으로 돌아와 결혼 후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이혼 절차를 밟게 되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강수영의 남편은 여전히 훌륭한 사람이었고 이혼의 원인은 문화적 차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였다.한 사람은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다른 한 사람은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자라며 서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그들은 평화롭게 헤어졌고 이혼 후에도 좋은 친구로 남았다.부모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이혼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합의한 후 강수영은 다시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그러다 각 나라, 각 도시에서 신현우를 계속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세 번째 만남에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한 강수영이 그를 조롱했다.“신 대표님, 이렇게 한가하신 줄 몰랐네요. 왜 자꾸 저를 따라다니시는 거죠?”“따라다닌 게 아니야. 우연일 뿐이야.”“우연이 이렇게 자주 겹칠 리가 있나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차가운 미소를 띤 강수영에게 신현우는 화제를 돌렸다.“넌 왜 여기저기 여행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1화

    ‘소은혜’에서 다시 ‘강수영’으로 돌아온 후, 강수영은 그 차가운 남자와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한눈에 반했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망쳤고 다시는 그 남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파혼하고 집을 떠나 이름까지 바꾼 채 명분 없이 그의 곁을 지켰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라며 손가락질했다.그러는 동안 그는 가문 배경이 잘 맞는 귀한 집 아가씨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스스로를 명문가의 딸에서 천한 첩으로 전락시켰지만 그에게선 차가운 시선만 돌아왔다. 그녀가 바친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온기 한 줌 나눠주지 않았다.강수영은 결국 깨달았다. 그 감정을 고집한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그녀는 강씨 집안의 딸로 돌아왔고 그는 여전히 신씨 가문의 장남으로 남아 있었다.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맞선을 주선했고 두 가문 모두에게 이로운 자리였다.강수영은 더 이상 부모님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맞선에 응했다.맞선 상대는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배경도 잘 맞았다.며칠간 그와 시간을 보내본 그녀는 그가 괜찮다고 느꼈다. 특히, 그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을 때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고된 일이었기에 이번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3개월간 교제했고 큰 문제 없이 잘 맞았다. 비록 심장이 크게 뛰는 설렘은 없었지만 세상 대부분의 결혼이 ‘적당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 기준에서 본다면 그와의 결혼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결국 두 사람은 약혼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그러나 결혼식 당일,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나타났다. 바로 신현우였다.그의 등장에 강수영은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미소를 띠며 신랑과 함께 술잔을 들었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60화

    방금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이승연은 고양이가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되어 이혁재에게 맡기기로 했다.“경험 있는 네가 좀 맡아줘.”이혁재는 황당했다.“내가 무슨 경험이 있다고 그래!”이승연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처지가 비슷하잖아.”화가 난 이혁재는 이승연을 들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곱게 바른 립스틱을 번지게 했다.“전혀 비슷하지 않거든!”이혁재의 사무실.이혁재와 연재준은 일 얘기를 하고 있었고 두 아이는 옆에서 놀고 있었다.그때 이혁재가 무심코 고양이에게 한마디를 건넸다.“호두야, 누나를 잘 돌봐야 해.”기어다니기 시작한 윤아는 갑자기 호두의 꼬리를 잡았다.호두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했지만 꼬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이혁재의 말 때문인지 꼬리를 잡힌 채로 억울한 듯 야옹 소리만 냈다.윤아는 깔깔 웃으며 꼬리 끝을 입에 넣으려 했고 그제야 호두는 꼬리를 빼내더니 아기에게 돌아서서 야옹 소리를 내며 경고했다.마치 “입에 넣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러자 윤아는 호두를 향해 돌진하며 그를 덮쳤다.두 아빠가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을 때 윤아는 카펫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호두는 듬직한 몸을 베개 삼아 윤아를 받치고 있었다.그 동화 같은 장면에 연재준과 이혁재는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고양이가 어린이를 알아본다더니 진짜인가 봐.”퇴근 시간이 되어 이혁재는 호두를 데리고 이승연의 사무실로 향했다.이승연은 호두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입을 맞췄고 이어 호두가 이혁재에게도 뽀뽀하도록 했다.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이혁재는 고양이 털을 한가득 삼키고 서둘러 뱉어냈다.“퉤퉤퉤.”그 순간, 호두도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흉내를 낸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토해냈다.이혁재는 어이가 없어 발끈했고 이승연은 웃음을 참지 못해 의자에 쓰러지듯 폭소했다.사실 고양이는 털을 핥으며 스스로를 청소하는 습성 때문에 위에 털 뭉치가 생겨 종종 토하곤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9화

    작은 고양이는 케이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치료로 인해 털이 대부분 깎인 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이혁재가 싫은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이승연을 알아본 듯 비틀거리며 케이지 가장자리로 다가와 그녀를 향해 야옹 울었다.이승연은 손가락을 내밀어 고양이를 살짝 만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꿈틀거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그녀는 미소 지었고 이를 지켜보던 이혁재가 말했다.“여보, 얘 다 낫고 나면 집에 데려가 키우자. 이렇게 작고 못생긴 애가 혼자 힘으로 먹을 걸 찾기도 힘들고, 다른 고양이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얘 어떻게 살겠어.”이승연도 같은 생각이었다.두 달 후,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했다.이혁재는 직접 고양이를 씻기고 구충한 뒤 집으로 데려갔다.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털이 윤기 나게 자랐고 살이 올라 뼈만 앙상했던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결국, 고양이는 기름지고 윤기 나는 털을 자랑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이혁재의 몸 위로 덮치는 대형 고양이가 되었다.“이런 젠장!”이혁재는 고양이의 기습에 또 당했고 숨이 턱 막힐 뻔했다.고양이가 도망치려 하자 그는 재빨리 붙잡아 들어 올리며 따졌다.“너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전혀 모르는 거야? 아니면 정말 날 깔아뭉개려고 작정한 거야?”고양이는 억울하다는 듯 야옹거리며 반응했다. 그러나 고양이가 이승연에게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이혁재는 고양이가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고양이는 이승연이 일할 때 그녀의 발등 위에 앉아 체온으로 발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그녀가 서류를 검토할 때는 네 발을 모아 단정한 자세로 그녀 곁에 앉아 ‘독서’에 동참했다.때로는 앞발로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중요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이혁재는 고양이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양이를 뒤집어 배를 위로 한 채 들어 올려 얼굴을 고양이 배에 묻고 한 번 흡입했다.고양이는 저항하며 네 발로

  • 천억대 몸값 비서님   제958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합의한 후, 이혁재는 정관 절제술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피임 수술’을 통해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이혁재는 이 일을 이승연에게 알리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철저히 조사한 뒤, 직접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다.수술은 간단했고 외래 진료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수술을 마친 그는 바로 퇴원했고 그날 오후에는 몇 시간 동안 회의를 열기도 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그 불편함조차 완전히 사라졌다.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이혁재는 가벼운 농담처럼 이 일을 이승연에게 털어놓았다.이승연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재빠른 두뇌 회전과 날카로운 눈치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혁재는 그녀가 ‘수술’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혹시 일이 심각하다고 오해했을까 봐 그녀를 안고 달래며 자세히 설명했다.“여보, 내가 요즘 아이를 갖는 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랐지? 피임을 해도 혹시 실수라도 생길까 봐 계속 걱정했어. 만약 사고가 생기면 낳든 낙태하든 둘 다 누나 몸에 무리가 갈 거잖아. 그래서 아예 근본적으로 위험을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이승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이 수술 알아. 우리 아빠가 받았거든.”그녀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그 시절에는 보통 여자가 피임 수술을 받곤 했는데 우리 아빠는 알아보니 여자가 받는 수술이 훨씬 위험하고 몸에 무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됐대. 그래서 엄마가 고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자신이 받았지.”“아빠는 우리 동네에서 피임 수술을 받은 유일한 남자였고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남자라고 칭찬했어. 엄마도 복 받은 거라고 하셨고.”이혁재는 그녀가 아버지를 칭찬하며 은근히 자신도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날 밤, 소파와 카펫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