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유월영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네. 금방 일어났어요.”이승연이 말했다.“일단 기사부터 보고 다시 얘기해요. 제가 보기엔 월영 씨가 뭘 더 할 필요는 없어요. 여론은 이미 우리 쪽으로 기울고 있거든요.”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즉시 핸드폰으로 제일병원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그러자 인기검색어에 제일병원 공식입장이라는 키워드가 버젓이 1위에 올라와 있었다.그녀는 신속히 기사를 클릭했다.대략 두 시간 전, 제일병원은 갑자기 장문의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며칠 전 있었던 소란의 자초지종을 진술했다.내용을 간략해 보자면 병원 측은 이영화 환자가 병원에 방문한 날, 기증 대상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 시간에 유월영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가족 측에 기증 대상자 선정에 대한 규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가족 측이 배신감을 느끼고 소란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도 대범하게 인정했다.병원 측은 이번 난동 사건에서 자신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피해자 가족과 이영화 환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까지 덧붙였다.병원 측 입장이 나오자 여론은 완전히 뒤바뀌었다.어제까지 가만히 여론의 풍향을 지켜보겠다던 사람들 치고는 굉장히 갑작스러운 행보였다.‘그래서 이 변호사님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던 거구나.’하지만 갑자기 병원 측에서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었다.유월영은 핸드폰을 꽉 잡고 속으로 연재준을 떠올렸다.‘설마 연 대표님이?’병원 측에서 아무 이유 없이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이미 수많은 댓글들이 제일병원 관계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번 공식 성명이 병원 측에 안 좋은 결과만 가져다줄 것을 그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원 관계자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연재준 말고 딱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연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유월영은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신연우는 뒤늦게 유월영의 문자를 확인했다.감사하다는 문자 이외에 그녀는 창가에 키우는 화분을 사진을 찍어 그에게 보냈다.그는 피식 웃으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허브예요? 어쩌다가 허브를 키울 생각을 다 했어요?]유월영:[키우기도 쉽고 방에 향도 좋아서요. 이파리를 따서 코끝에 대고 맡아도 향이 너무 좋아요.]신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 그 말을 들으니까 나도 키워 보고 싶네요.][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어요. 제가 키우는 거 가지를 많이 쳤으니까 그냥 드릴게요. 키우다 보면 빨리 자라요.]신연우는 그녀의 문자에서 그녀가 지금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는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술 한번 마시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유월영: [그건 아니고 마침 얘기하려던 참이었어요. 아버지 사건 잘 해결될 것 같아요.][그래요?][연 회장님이 나서서 잘 해결해 주셨고 그 간호사도 합의하기로 했어요.]신연우는 인터넷 검색창에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일을 해결한 사람이 연재준이 아닌 연 회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형인 신현우가 눈독 들이던 재개발 사업이 정우증권으로 넘어갔다.일부러 정우증권에서 빼앗았다기 보다는 해운에서 다른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SK과의 협상이 무산되면서 2순위였던 정우증권에 넘어갔다고 했다.연 회장은 지금 새 사업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쁠 텐데 갑자기 유월영의 일에 관여하고 나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재밌네. 과연 진짜 연 회장님일까?’한편, 피해 간호사는 결국 4천만 원의 합의금을 받는 대가로 합의서에 사인해 주었다.두 달을 기다려서 드디어 유현석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승연의 도움으로 결국 유현석은 징역 3개월 형을 받았다.구치소에서 두 달을 있었기 때문에 한 달만 더 있으면 풀려날 수 있었다.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였다.유월영은 이승연에게 거듭 고맙다고
‘이럴 리가 없는데.’유월영은 3년이나 그의 옆에서 비서로 일했기에 그가 월요일에 가장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집에 오기를 극도로 싫어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집에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월영은 연 회장 내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두 달을 안 만났지만 연재준은 여전했다.겨울의 신주시는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갔는데도 그는 검은색 정장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아마 실내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가 안으로 들어왔지만 연재준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유월영은 불편함을 느끼고 곧장 주방에 도우러 들어갔다.그녀가 직접 끓인 갈비탕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윤미숙 여사가 테이블에 수저를 세팅했다.“어머, 월영아. 이 갈비탕 정말 맛있어 보이네. 요즘 날씨가 추워서 안 그래도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던 참이었는데.”유월영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윤미숙은 억지스러운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회장님이 회사 일로 재준이랑 할 얘기가 따로 있다고 부르셨어. 마침 재준이도 점심을 안 먹었다고 하더라고.”유월영이 말했다.“업무적인 일로 오신 거면 제가 끼어 있으면 불편하실 거예요.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윤미숙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식사 준비까지 하고 집에 가는 경우가 어디 있어? 요리는 다 네가 했잖아.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이때, 연 회장도 거실로 나왔다.“비밀 얘기를 할 것도 아니니까 월영이 너도 편하게 밥 먹어. 안 그래도 네 아버지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유월영은 뒤에 있는 연재준을 힐끗 바라보고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그녀와 윤미숙 여사가 같이 안고 맞은편에 연회장과 연재준이 앉았다.고용인이 식기와 국을 세팅하는 사이, 연 회장은 유월영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았다.유월영은 다 잘 지낸다고 답했다.이영화는 그녀와 큰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최근 두 달 사이에 병세가 안정되었다. 약도 꾸준히 먹고 있고 발작을
유월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해 주지 않았다. 그냥 일반 손님처럼 소리를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윤미숙이 다급히 일어나 연재준을 잡았다.“밥 먹다 말고 이렇게 가는 게 어디 있어. 몇 술 뜨지도 않았잖아. 재준아, 밥이라도 먹고 가. 이따가 오후에 바쁘다고 또 끼니를 거르면 속 쓰려서 안 돼.”연재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계모를 바라볼 뿐이었다.윤미숙이 연 회장을 호출했다.“여보.”연 회장은 인상을 쓰고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말했다.“연말에 주주총회가 있다고 들었다. 김 이사와 안 이사에게 정년 퇴직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면서?”연재준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네.”연 회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회사가 설립할 때부터 같이 일해온 공신들이야.”연재준이 싸늘하게 답했다.“그거 핑계로 많이 드셨잖아요.”“회사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니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건 당연해.”“그분들을 이사회에서 퇴출 시켜야 하는 이유는 이미 문서로 보내드렸을 텐데요. 회사는 인정이 아닌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제가 보내드린 증거가 그분들을 보내기에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잠자코 있던 연 회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일해온 사람들이잖아.”연재준이 피식 비웃더니 말했다.“이사회에서 나갈 뿐이지 퇴직금도 넉넉히 챙겨드릴 거고 가지고 있는 주식 배당금도 해마다 나갈 텐데요. 그 정도면 노후자금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연 회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유월영은 조용히 식사에 전념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회장님 사람들을 전부 내치겠다는 걸까?’그녀는 퇴사하기 전에 연재준이 이사들을 조용히 조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아마 그는 그때부터 회장님 사람들을 숙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백발의 노인을 바라보았다.여전히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아
이게 회장님의 생각인지 윤미숙 개인의 생각인지 분간할 수 없어 유월영은 당혹스러웠다.너무도 위험한 제안에 유월영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사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환경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깥세상도 구경하고 싶고요. 저를 딸처럼 생각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새도 크면 둥지를 떠나듯이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 자립하기 마련이에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그녀는 감성을 호소하며 위험한 주제를 가까스로 피해갔다.그녀의 말에 윤미숙도 더 이상 그녀를 만류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차나 마시자꾸나.”유월영은 더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모님도 얼른 쉬세요.”윤미숙이 말했다.“회장님 2층 서재에 계셔. 가서 인사나 드리고 가. 둥지 떠난 새가 또 언제쯤 집에 돌아올지 모르잖아.”유월영이 물었다.“서재는 어디 있어요?”“2층 올라가서 좌측의 두 번째 방이야.”“알겠습니다.”유월영은 해운에 있을 때도 저택에 자주 방문했지만 1층에서 식사만 했을 뿐, 2층까지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윤미숙이 알려준 대로 좌측의 두 번째 방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서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신 거울 앞에서 연재준이 옷을 벗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회사로 돌아간 거 아니었나?’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당황한 유월영은 다급히 시선을 돌리며 그에게 말했다.“죄송해요, 바로 나갈게요.”말을 마친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연재준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유월영.”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등 뒤에서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입구에 단추가 하나 떨어졌어. 그거 좀 주워서 갖다줘.”유월영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니 바닥에 파란색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손을 뻗어 넥타이를 바로맸다.와인색 셔츠에 진한 청색 넥타이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연재준도 눈을 내리 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전에는 그녀가 넥타이를 매주고 옷매무시를 정리해 주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 여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다.그래서 덩달아 그의 기분도 언짢아졌다.“인공심장이 뭐예요?”그녀가 바짝 경계하는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연재준은 담담히 대답했다.“해외에서는 이미 임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이야. 널리 퍼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테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임상실험을 마쳤어.”심장 기증자는 간이나 신장보다도 더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간단한 치료법이 있는데 왜 널리 퍼지지 않은 걸까?유월영이 말이 없자 연재준이 그녀의 의문을 대신 대답해 주었다.“비용이 어마어마하고 감염 확률이 아직은 높기 때문이야. 인공심장의 수명은 길어서 7년이거든.”인체의 심장을 이식 받으면 짧게는 10년, 관리만 잘하면 더 길게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했다.가성비나 안전성에서 인공심장은 아직 장기 기증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유월영은 말없이 넥타이 매듭을 지었다.연재준이 계속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인공심장을 먼저 이식 받은 환자가 다시 인체 심장을 이식받지 못한다는 설은 없어. 먼저 인공심장을 이식받았다가 시간을 벌고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야.”유월영은 전혀 몰랐던 가설이었기에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게 가능해요?”연재준은 그녀의 앞으로 팔을 쭉 내밀었다. 팔 소매 단추를 잠가달라는 의미였다.유월영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단추를 잠가주었다.시선을 내리고 있어서 그녀의 긴 속눈썹이 얼굴이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연재준이 물었다.“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시골에서 먹고 놀기만 하고 이런 것도 안 알아봤어?”“대표님이 하실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옷매무시를 다 정리한 유월영
저택을 나온 유월영은 택시를 잡아 신주대학으로 가면서 핸드폰으로 인공심장에 대해 검색했다.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인공심장 관련해서 대략적으로 요해하게 되었다.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직원 카드를 센서에 찍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유월영은 새로 직장을 구하지 않았지만 신연우의 옆에서 잠시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처음에 신연우가 그렇게 제안했을 때 혹시 그가 자신을 직장도 없는 백수라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오해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아니었다.학기말이라 신연우는 학생들 학점도 케어하고 논문도 써야 해서 굉장히 바빴다.유월영은 이틀 해보고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전에는 교수직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그렇게 일한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물론 신연우도 그녀를 돕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더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을 조교로 초빙했을 것이다.유월영도 그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의 배려에 보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신연우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유월영은 오늘 정리해야 할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는 조용히 다가가서 일에 열중하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오늘은 쉬라니까 왜 왔어요? 조교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월급이라도 더 올려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손에 교재를 들고 안경 너머로 미소를 짓고 있는 신연우는 교수라기보다는 학생처럼 보였다.“재판 순조롭게 풀린 거 축하해요.”유월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식이 신 교수님한테까지 전해졌어요?”“월영 씨 일인데 각별히 관심 갖고 있었죠. 인터넷에서 기사 봤어요.”신연우가 말했다.“그런데 점심까지 기다려도 월영 씨한테서 문자 한 통 없어서 좀 서운했어요. 나랑은 그 정도로 친하지 않은 사이인가 싶어서요. 그래도 이렇게 사무실에서 보니까 좋네요.”굉장히 친근감이 느껴지는 말에 유월영은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신연우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유월영이 자료를 정리해 줬기에 이 일은 그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혹시 저를 배려해서 안 가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신연우가 웃으며 말했다.“꼭 그런 건 아니고요.”유월영은 월급 주는 사람이 직원을 이 정도로 배려해 줄 줄은 몰랐다.“괜한 걱정이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아르바이트 끝나면 정식으로 직장도 구할 건데 어떻게든 일하면서 마주치게 되겠죠. 매번 그쪽을 피할 수는 없잖아요.”유월영은 단호한 어조로 재차 강조했다.“저는 이제 해운그룹에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그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신연우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에 그들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오늘 미팅에는 신연우 연구팀 소속 멤버들이 모두 참석했다.팀장이 문을 열고 한 남자와 함께 룸에 입장했다. 유월영이 고개를 들자 보인 얼굴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들어오는 연재준의 모습이었다.오늘 그와 마주친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그는 아까 입었던 캐주얼한 옷 대신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팀원들과 함께 있는 유월영을 본 순간에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유월영은 오늘 방에서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 중에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던 연재준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꾹 참았다.이어지는 식사 자리에서 연재준은 그녀에게 별다른 시선을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 얘기에 집중했다.유월영은 그들의 협상 내용을 기록하고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올리는 업무를 맡았다.간단히 말하자면 해운그룹에서 과학기술 연구팀에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그들의 연구성과를 해운의 사업에 이용하는 것이었다.만약에 돈이 안 되는 연구였다면 절대 해운에서 거금을 투자했을 리 없었다.하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못했다. 해운에서 연구팀의 주도권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신연우는 연구팀의 핵심인물로써 가장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시로 유월영의 상태를 살폈다. 호텔 직원이 와서 그녀에게 술을 따르려 하자 그는 손을 내밀어 저지하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