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누구죠? 왜 우리 오빠를 찾는 거죠?”진서라는 문 앞에 서서 차갑게 물었다.누렁이, 하얀이, 그리고 올기는 진서라의 양옆을 지키며 서 있었다.“진서준이 당신 오빠예요?”서현욱은 진서라의 말에 얼떨떨해했다.서현욱은 사실 진서라가 진서준이 몰래 만나는 여자라고 여겼다.진서준이 어떻게 이토록 예쁜 여동생이 있을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서현욱은 속으로 진서준에게 쌍욕을 쏟아냈다.“장관님, 제 오빠를 찾는 이유가 뭐죠?”진서라는 군복을 입은 고인권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진서라가 공손하게 묻자 고인권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중하게 말했다.“아가씨 오빠가 우리 조카 물건을 빼앗았고 저렴한 말투로 괴롭혔다고 하네요.”진서라는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오빠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진서라는 진서준을 잘 알고 있었다.정직한 성격의 진서준은 그렇게 악랄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항상 다른 사람들이 먼저 진서준을 도발해서 소란을 일으키곤 했다.“당신은 그 사람 여동생이니까 당연히 그 사람을 감싸겠죠.”고우현이 냉랭하게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어젯밤, 당신 오빠는 회춘당에서 내가 사려고 했던 영지를 빼앗았어요. 그때 현장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죠. 지금 당장 당신 오빠를 불러내서 혈령지를 내게 돌려줘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잠시만요.”진서라는 돌아서서 바로 2층으로 올라가 진서준을 찾았다.서현욱은 누렁이가 자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위협적으로 말했다.“이놈의 개는 왜 짖고 난리야? 계속 짖으면 오늘 밤 네 고기를 먹을 거야!”이 한마디에 누렁이는 화가 나서 온모의 털이 곤두섰다.누렁이는 사실 개가 아니었다.누렁이의 몸집은 술법으로 작아져 흔히 볼 수 있는 금색 리트리버처럼 보였다.서현욱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누렁이를 리트리버로 간주했지만 사실 누렁이는 대종사는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사자였다.자
“진서준, 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인정할 용기도 없어? 내가 원하는 그 영지, 네가 빼앗은 게 맞아? 아니야?”고우현은 진서준의 모습에 화나 따지기 시작했다.“그건 내가 가져갔지, 근데 그건 내가 빼앗은 게 아니라 너한테서 산 거야.”“웃기고 자빠졌네.”고우현은 냉랭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어젯밤, 우리가 먼저 영지 가격을 제시했어. 근데 네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기에 그 가게 주인이 네게 팔았을 뿐이야.”진서준은 고우현의 억지 주장에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조카가 말한 게 사실이야?”고인권은 진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은 믿을 겁니까?”진서준이 냉랭하게 되물었다.“당신이 당신 조카를 따라왔으니까 당연히 조카 말을 믿겠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명해도 당신은 절대 믿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의 침착한 태도에 고인권은 눈살을 찌푸렸다.고인권은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싶었다.왜냐하면 진서준과 진서라의 언행을 보니 이 둘이 그렇게 악랄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큰아버지, 방금 들었죠? 저 사람이 스스로 인정했잖아요.”고우현은 이때다 싶어 즉시 입을 열었다.“아버님, 이 사람은 우리 서울에서 소문이 자자한 악당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이 녀석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이젠 이렇게 대놓고 횡포를 부리는 겁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 오셨으니까 꼭 서울시 시민을 위해 이 사람을 처치해 주세요.”서현욱도 옆에서 정의감 넘치는 말투로 부추겼다.진서준은 자기가 서울시 악당이라는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이봐 청년, 얼른 영지를 내놔. 청년이 지불한 금액만큼 우리가 지불할게.”고인권은 평온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물건을 살 때 선후 순서라는 게 있어. 돈이 많다고 남이 이미 산 물건을 뺏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야.”고인권이 도리를 따지는 사람인 걸 눈치채자 진서준도 그제야 사실을 털어놨다.“어제 저 둘이 먼저 영지를 샀어요. 근데 저 둘은 영지가 이미 말라버린 걸 보고 내게 제발 사달라고
“뭐 하려는 거야?”서현욱은 얼굴이 하얘져서 슬그머니 고인권 옆으로 물러섰다.“당연히 네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남기려고 하지.”진서준의 눈빛에 차가운 살기가 번뜩였다.이런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관대할 수 없었다.서정훈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진서준은 절대 지난번 서현욱의 발기부전을 치료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이번에는 서현욱을 철저한 고자로 만들어주겠다고 결심했다.“어디서 까불고 있어? 우리 큰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감히 큰아버지를 투명 인간 취급할 거야?”고우현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사건의 진상을 알기 전에는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고인권의 말에 서현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진서준, 너 그렇게 미친 듯이 나대더니 감히 아버님 앞에서도 나댈 수 있어? 아버님은 흑기린 사령관이야. 네가 아버님과 맞서는 건 흑기린 전체와 군부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야.”서현욱은 진서준에게 큰 부담을 안기려 했다.이렇게 위협하면 진서준이 자기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서현욱의 계획은 너무 단순했다.“흑기린 사령관이 무슨 상관이야? 사령관이 날 제지하려 한다면 사령관도 함께 날려버릴 거야.”진서준의 거침없는 발언에 고인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여태껏 그 어떤 청년도 고인권 앞에서 이렇게 거침없이 대담한 말을 내뱉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 빌어먹을 자식, 개소리도 정도껏 지껄여야지!”고인권 옆의 청년이 분노를 고함으로 터뜨렸다.다른 몇 명도 화가 나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들에게 고인권은 신과 같은 존재였고 누구도 감히 고인권을 모욕할 수 없었다.“우리 사령관님을 감히 모욕해? 당장 사과해!”“저 녀석이 거만하긴 짝이 없네요. 사령관님, 제가 이 자식을 혼낼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건장한 체형에 기세가 대단한 청년이 나섰다.이 사람은 흑기린 내에서 천재로 인정받는 인물인 심홍천이었다.심홍천의 실력과 천부적인 재능은 흑
심홍천의 눈에는 차가운 살기가 스쳤다.바로 그때, 멀리서 차량 행렬의 소리가 들려왔다.다들 고개를 돌려 보니 바로 흑기린의 차량 행렬이었다.“사령관님, 저 대원들은 사령관님이 부른 겁니까?”“이렇게 평범한 사람을 하나 처리하는데 우리 몇 명이면 충분합니다.”“사령관님, 조금 지나친 것 같습니다.”고인권은 측근들은 고인권이 흑기린 대원들을 부른 줄 알았다.하지만 고인권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고인권은 부사령관에게 전화해 사람을 부른 적이 없었다.방금 받은 유일한 전화는 부사령관의 전화였는데 소하비가 외출할 거라는 사실만 전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예상외로 흑기린 대원들이 전부 여기로 온 것이다.“이 청년이 이렇게 태연한 게 이유가 있었네.”고인권은 이 청년이 샛터 소하비 왕자와 관련이 있다는 걸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우리 대원들은 내가 부른 게 아니야.”침묵을 지키던 고인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네? 사령관님이 아닙니까? 그럼 왜 대원들이 다 여기로 온 거죠?”심홍천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방금 부사령관이 소하비 왕자가 외출한다고 내게 전했어.”고인권의 말에 다들 더 궁금해졌다.“네? 소하비 왕자도 여기에 온다고요? 왕자가 왜 오는 거죠?”“설마 이 청년 도우러 온 거 아니겠죠?”누군가 농담을 툭 던졌지만 고인권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너 소하비 왕자와 무슨 관계인 거야?”고인권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진서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소하비 왕자 여동생 생명의 은인입니다.”“헛소리 집어치워! 너 같은 서울시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샛터 소하비 왕자와 관계가 있을 수 있어?”고우현은 진서준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서현욱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서현욱은 진서준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다.진서준의 의술이 대한민국에서 일인자 수준이라고 단언할 순 없어도 적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순 있었다.그래서 진서준이 샛터 왕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가능성도 충분
“무슨 뜻이야?”서현욱은 굳어진 얼굴로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자기는 이미 흑기린에 들어갈 자격을 잃었는데 뭘 더 하겠다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설마 자기를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아까 분명 말했지? 오늘 네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줄 거라고.”진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왜?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전에 날 반년 동안 고자로 만든 걸로도 부족하단 말이야?”서현욱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옆에 있던 고우현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반년 동안 고자로 살았다는 건 고우현이 서현욱을 만나면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그럼 혹시 어젯밤에 서현욱이 가짜 물건으로 자기를 속였던 건가?“반년은 너무 짧았어. 차라리 평생 남자 노릇하지 말고 살아.”진서준은 한 걸음 앞으로 서현욱에게 다가갔다.“안 돼! 거기 서! 너, 가까이 오지 마!”서현욱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서현욱은 진서준의 눈빛에서 그 말이 장난이 아님을 눈치챘다.“이제야 겁먹은 거야? 어젯밤 거만한 태도는 어디 갔어? 조금 전 이를 악물고 날 비방하던 그 태도는 또 어디 갔어?”진서준은 차갑게 웃으며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보였다.서현욱은 진서준을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자극했고 그 정도가 진서준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아버님, 도와주세요. 제발요.”서현욱은 급히 고인권에게 구원을 요청했다.“그만둬, 청년, 너도 별다른 피해는 입지 않았잖아. 이 일은 그냥 넘어가자.” 고인권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왜요? 설마 이 녀석 편을 들어줄 건가요?”진서준은 고인권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야. 너 사령관님에게 그 말투가 뭐야?”심홍천이 분노하며 외쳤다.“샛터 왕자만 여기 없었다면 아까 난 널 톡톡히 혼뜨검 냈을 거야!”“꺼져.”진서준은 칼날처럼 서늘한 눈빛으로 심홍천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심홍천은 진서준의 말에 흠칫하며 몸이 저절로 떨렸다.이 눈빛은 정말
“다들 이 녀석 잡아!”고인권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호통쳤다.“고 사령관님, 진서준은 제 친구입니다...”소하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인권은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소하비 왕자님, 우리가 받은 임무는 당신을 보호하는 것뿐입니다.”고인권이 은근슬쩍 자기를 무시하자 소하비는 순간 몹시 불쾌했다.“진서준은 제 여동생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고 사령관님, 제 여동생의 은인을 공격하겠단 말씀입니까?”“이 청년이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다면 그것 또한 법을 위반한 겁니다. 저는 이 청년을 체포할 권리가 있습니다.”고인권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자 진서준은 웃으며 물었다.“고 사령관님,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고의로 군관을 모함했다면 그 죄는 어떻게 처리되나요?”“군관을 모함한다고?”고인권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너 설마 자기가 군관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농담도 정도껏 해. 나이가 드신 선배님들 제외하고는 지금 군관 중에서 40살 이하인 사람이 하나도 없어.”평화 시대에 평범한 병사가 군관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누군가 40살 전에 군관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그건 야무진 꿈이 아니라 황당한 망상일 것이다.진서준은 느긋하게 주머니에서 작은 증서를 꺼냈다.고인권은 그 증서를 받아 들자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진서준은 거짓을 말한 게 아니었다. 진서준도 고인권과 마찬가지로 계급이 소장이었다.소장인 고인권은 증서 위에 적힌 번호와 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군관증은 허술하게 제조한 짝퉁이 아닌 진짜 군관증이었고 위에 적힌 이름과 사진도 진서준이 버젓이 등록되어 있었다.“너 소장이었어?”고인권은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진서준이 소장이라면 고인권은 진서준을 체포할 권한이 없었다.“뭐라고요? 이 녀석이 소장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죠.”“그 군관증은 가짜일 겁니다. 이렇게 어린 사람이 어떻게 소장이 될 수 있겠어요?”“이렇게 어린 소장이 군부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
서정훈의 태도에 고인권은 순간 멈칫했다.자기 아들이 이런 호된 짓을 당했는데도 모든 게 자초한 거라고 쌀쌀맞게 말하다니, 이 사람이 정말 서현욱의 친아버지가 맞는가?비록 서현욱이 과한 짓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고자 만들어도 되는 건 아니었다.“이 자식이 이전에 몇 번이나 일부러 진서준 심기를 건드렸으니 이렇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죠.”서정훈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서 시장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서준이 한 짓은 선을 너무 넘었습니다.”고인권의 말에 서정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전혀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고 사령관님, 전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많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서정훈은 서현욱을 아예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병원을 떠났다.고인권은 이 상황이 우스운지 서글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인권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자기 조카를 쳐다봤다.“우현아, 솔직히 말해 봐. 왜 그 영지를 사러 갔어?”“서현욱이 제안했어요. 서현욱은 영지를 사서 큰아버지께 드리려고 했어요. 큰아버지에게 잘 보여서 흑기린에 들어가려고 했거든요.”고우현은 이때다 싶어 모든 걸 다 털어놓았다.조카의 말을 들은 고인권은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서정훈이 왜 서현욱을 신경 쓰지 않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이 녀석은 서정훈의 말대로 모든 게 자업자득이었다.사실 고인권은 서정훈의 힘을 빌려 진서준을 혼내주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서정훈이 자기 아들을 신경 쓰지도 않는데 외부인인 자기가 굳이 나설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우현아, 앞으로 이 녀석과 관계를 끊고 살아.”고인권의 진지한 말에 고우현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큰아버지. 앞으로 다시는 서현욱과 연락하지 않을게요.”지금의 서현욱은 이미 고자가 되었으니 고우현은 절대 서현욱과 결혼할 수 없을 것이다.만에 하나 결혼한다면 고우현은 평생 과부살이를 해야 할 것이다.밤이 되자 소하비의 형 행크가 사람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형, 예린의 병
“베컨 닥터, 바보 동생이 장난치는 것도 모자라 닥터까지 장난에 끼어든 겁니까?”행크가 버럭 화내며 베컨을 꾸짖었다.편견이란 건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많은 사람이 편견 때문에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심지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을 놓치기도 한다.행크는 의술이 뛰어난 사람은 최소한 40대 후반 이상이어야 하고 진서준 같은 청년은 병원에서 인턴 기간이 2년 반도 되지 않는 새내기라는 편견이 있었다.“그 말은 내 의술을 믿지 않는다는 거야?”진서준이 차분하게 물었다.“당연히 믿지 않아. 너 같은 어린놈이 무슨 자격으로 감히 의술을 운운해? 그리고 난 너뿐만 아니라 너희 대한민국 한의학 자체를 믿지 않아.”행크의 편견에 진서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한의학은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온 의술이야. 너희 서양 의학이 발달한 지 얼마나 됐다고 감히 한의학을 업신여겨? 서양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우리는 한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어. 넌 우리 한의학을 깍아내릴 수 있는 자격도 없어.”진서준이 단호하고 당당하게 반박하자 행크는 순간 당황했다.“터무니없는 소리야. 너희 한의학엔 과학이 전혀 없거든?”행크는 정신을 차린 뒤 바로 반박했다.요즘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은 과학에 집착한다.심지어 적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한의학을 믿지 않고 서양 의학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서양 의학은 과학이 깃든 의술이었기 때문이다.“과학은 개뿔, 그건 너희가 만들어낸 이론에 불과해. 우리 한의학에도 나름의 이론이 있어.”진서준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반박하자 행크는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그만해, 내가 여기 온 건 너와 논쟁하러 온 게 아니야. 지금 당장 예린 공주를 데려가!”행크가 데려온 사람들이 그 지시를 따라 서둘러 움직이며 예린을 데려가려고 했다.진서준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그러자 갑자기 행크에게 기운이 날아갔고 똑바로 서 있던 행크는 다리가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바닥에 앉아버렸다.“왕자님, 왜 그러십니까?”경호원들이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
이 말이 나오자 방 안의 분위기가 다소 묘해졌다.조호의 머리는 미친 듯이 회전했다.‘이게 무슨 뜻이지? 설마 조상규의 아내를 탐낸다는 건가?’“진서준 씨, 농담이죠? 제 아내는 그저 다도 실력만 조금 괜찮을 뿐입니다.” 조상규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조상규, 거참 겸손하네. 네 아내는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좋고 얼굴은 요염한 여우처럼 매혹적인데?”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치파오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다.이 행동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오영수조차도 눈썹을 꿈틀거리며 진서준이 도대체 뭘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혹시 진짜 여자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건가?치파오 여자는 난감하게 웃으며 진서준의 손을 밀어냈다.“진서준 씨, 농담이 지나치네요. 저도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 젊은 아가씨들과는 비교도 안 돼요.”“맞아요, 진서준 씨. 혹시 여자가 필요하시면 잠시 후 가게 아가씨들을 전부 데려오겠습니다. 마음껏 고르세요.”조상규가 웃으며 말했다.“젊을 땐 숙녀의 매력을 몰라보고 철없이 어린 여자를 보물로 여긴다고 하지.”진서준의 손이 다시 치파오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졌다.“난 이렇게 성숙하고 섹시한 여자가 좋더라. 점심 식사 후에 네 아내 잠자리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면 어떨까?”이 말을 듣자 조호 일행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겉보기엔 신사인 줄 알았던 진서준이 사실 이렇게 천하의 난봉꾼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모자라 남편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아내를 달라고 하다니, 조상규가 격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자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오영수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진서준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오영수는 진서준이 절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진서준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게다가 진서준이 김연아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진서준 씨, 정말 농담이 지나칩니다. 우선 차부터 드시죠.”조상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 분노를 억눌렀다.누구라도 이런 말을 직접 들으
“진서준 씨나 잘 모셔. 내가 당장 전화해 안배할 거니까.”조상규는 단호한 말투로 말하며 조호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알겠습니다.”조호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진서준 씨, 이쪽으로 오시죠.”휴게실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손짓하며 오영수를 가리켰다.“이쪽은 내 친구 오영수야.”“오영수요? 설마 그 오씨 가문 사람입니까?”조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맞아.”오영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 씨,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조호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오씨 가문은 르벨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가였고 감히 귀도파 따위가 건드릴 상대가 아니었다.“괜찮아. 사실 나도 조상규 씨 같은 고수를 한 번 상대해 보고 싶었거든.”오영수가 담담하게 대응했다.조호는 이때다 싶어 슬쩍 말을 붙였다.“오영수 씨가 진서준 씨와 친구라면 이제부터 우리도 한 식구 아닙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하지만 오영수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난 집에 자주 가지도 않아. 나한테 잘 보여봤자 얻을 건 없을 거야.”오영수는 오랫동안 전신전에서 임무를 수행해 왔고 사람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그러니 조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목적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아, 아닙니다. 그냥 오영수 씨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었을 뿐입니다.”조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자기 속내를 대놓고 들켜버리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조호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참, 진서준 씨. 이따가 제 아들도 와서 직접 사과드릴 겁니다.”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태도였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진짜 화났다면 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네, 그 말이 맞네요.”조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조호는 아까 진서준이 조상규 같은 대종사를 가볍게 처치하는 걸 직접 확인했다.그러니 조호는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었다.쓸데없는 행동으로 진서준의 심기를
체육관 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믿을 수 없는 장면에 사람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귀도파의 최종 병기라 불리던 조상규가 진서준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얻어터질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조상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영수를 가볍게 쓰러뜨린 자였기에 실력 하나만 봐도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단 한 가지 결론만이 모두의 앞에 놓였다.지금 귀도파을 건드린 이 청년은 인간을 뛰어넘는 괴물이었다.“와, 대박이야. 이 녀석 실력이 이렇게 대단했어? 야, 너 때문에 나 큰일 날 뻔했잖아.”늑대가 정신을 차리고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엄승현을 노려봤다.조상규 같은 고수도 진서준 앞에서는 그저 두들겨 맞을 뿐이었는데 늑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링에 올라가 진서준과 붙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늑대 형, 오해입니다. 저도 저 자식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엄승현이 기겁하며 변명했다.어제 진서준이 왜 무사하게 유흥업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지, 자기가 호랑이를 찾아갔을 때 호랑이가 왜 버럭 화냈는지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그 모든 이유는 진서준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호랑이의 부하 중에 진서준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멍때리지 말고 얼른 튀어. 이따가 저놈이 우리까지 상대하면 너도나도 여기서 뒤질 거야.”늑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다들 얼른 도망쳐.”엄승현도 체면 따위 집어치우고 그 뒤를 따랐다.링 위에서 조상규는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조상규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아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는다 하지 않았어?”조상규를 내려다보는 진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그 말에 조상규는 흠칫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진, 진서준 씨. 살려주십시오. 제가 눈이 멀어 감히 진서준 씨에게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조상규는 머리를 박아가며
하지만 조상규 앞의 보호막은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상규의 손바닥이 진동했다.그리고 산을 뒤엎는 듯한 힘이 오영수를 덮쳤다.그러자 오영수의 몸이 통제할 수 없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쿵!오영수의 몸이 바닥에 세게 내리꽂히며 몸속에서 우두둑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모두가 넋이 나간 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4대 천왕을 가뿐히 쓰러뜨린 오영수가 인간도륙의 한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역시 인간도륙의 명성은 헛소문이 아니었다.“대박이야, 사촌 형 너무 멋져요!”조호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고 신나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이봐, 이제야 알겠어? 이게 귀도파의 진정한 실력이야.”늑대가 잔뜩 으스대며 자기가 오영수를 때려눕힌 것처럼 신나 있었다.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오영수에게 다가가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리더니 장청의 힘을 체내에 흘려보내며 치료하기 시작했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 저 사람 실력이 너무 강하네요. 제가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오영수는 깊은 자책감에 고개를 숙였다.적어도 몇 방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단 한 방도 막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다.“저 사람은 노련한 대종사입니다. 대장님이 못 이기는 게 당연하죠.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할게요.”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서서 링 위로 걸어갔다.“저 자식 미쳤나? 대체 뭘 믿고 올라가는 거야?”늑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살려달라고 빌려는 건 아니겠죠?”엄승현이 비꼬듯 말했다.“끝까지 숨어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깡은 있네.”조호가 코웃음을 쳤다.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도대체 진서준이 올라가서 뭘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때, 링에 올라오는 진서준을 확인한 조상규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어라? 여기서 다시 보네.”그날, 서광문이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조상규와 진서준은 이미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