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동호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한겨울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호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그 차가운 기운은 더욱 강해졌다.이전에 운대산에서 만났던 원혼들과 비교했을 때, 명주 동호의 수역에서 느껴지는 음기는 훨씬 더 짙었다.물은 음과 관련이 있어 음기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었다.진서준은 이 검은 기운에 거의 닿을 거리에 오자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러고는 진서준의 체내 영기를 다루기 시작해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호수 수면 위로 영기가 퍼져 나갔다.그러자 호수 수면 곳곳에 금빛 빛발이 교차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이 금빛 빛발은 사실 영기가 형성한 것이고 강력한 정기가 담겨 있었다.바로 이 영기 덕분에 호수 위에 있는 살기가 가두어질 수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기가 점점 희박해지면서 강력한 살기가 일부 빠져나왔다.진서준이 주위를 살펴보는 눈에 금빛 광채가 번뜩였다.“금쇄곤룡진이었구나. 이렇게 대단한 진법까지 사용해 살기를 막고 있다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인가, 아니면 동호 아래에 뭔가 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가?”진서준은 첫 번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느꼈다.금쇄곤룡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살기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바로 동호 아래에 더 끔찍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이런 판단이 서자 진서준은 안일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체내의 혈해와 영기를 순식간에 다루어 사지와 오장을 가득 채웠다.순식간에 진서준 몸에서 강력한 기세가 흘러나왔다.흥분한 기운을 내며 호시탐탐 진서준을 노리던 살기는 그 기세에 밀려 허겁지겁 후퇴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한 걸음 내디디며 금쇄곤룡진 속으로 들어갔다.그때, 호숫가에서 갑작스러운 차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최승준의 차가 드리프트 하며 호숫가에 멈췄다.차 문이 열리자 최승준과 곽윤상이 차에서 내렸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 서지은은
곽윤상은 그 말을 듣고 입이 떡 벌어졌다.곽윤상의 스승 손원순은 호수 위의 음귀를 정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승님도 처리하기 어려워하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처리할 리가 없었다.“그 자식 미친 건 아니지?”곽윤상은 순간 술을 확 깼다.“무슨 일이죠, 곽 선생님?”최승준은 곽윤상이 왜 이렇게 충격을 받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호수 위의 악귀들은 진법으로 눌러놓고 있어. 그 자식이 함부로 들어가서 진법을 망가뜨리면 동호는 물론 명주 전역도 안전하지 않을 거야.”곽윤상의 말에 최승준도 얼어붙었다.최승준의 온몸에 식은땀이 솟구쳤고 머리가 순식간에 맑아졌다.“곽 선생님, 그럼 서둘러 그 자식을 제지하러 갑시다.”최승준이 말하지 않아도 곽윤상은 이미 빠르게 호수 위로 뛰어 들어가 호수 중앙으로 달려갔다.곽윤상이 호수 위를 걷는 모습을 본 최승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고수가 다르긴 다르네요.”곽윤상의 속도는 번개처럼 빨라 심호흡을 몇 번 하는 사이에 진법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천안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호수 위의 살기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고 이 지역이 너무 흐릿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자기 시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착각하게 했다.“천안!”곽윤상은 눈앞에서 손으로 법결을 그렸다.다음 순간, 곽윤상의 눈에는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장면이 펼쳐졌다.누군가가 그 검은 살기 안을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은 산보하는 것처럼 살기 내부를 유유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곽윤상은 단번에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챘다.“젠장, 이 빌어먹을 녀석이 명주시 수천만 시민과 함께 죽으려는 건가?”곽윤상은 식은땀이 머리에서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오랫동안 스승의 얘기를 전해 들은 곽윤상은 호수 위의 살기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곽윤상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진법을 망치면 안 될 것 같았다.“이봐, 안에 있는 사람 내 말 들려? 아직 큰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얼른 안에서 나와!”곽윤
“대역죄인이라고?”진서준은 옆에 있는 곽윤상을 흘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 악귀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이것들을 못 이긴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네 실력보다 못한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진서준의 연이은 질문에 곽윤상은 입을 떡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곽윤상은 진서준이 이렇게 대담한 말을 당당하게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곽윤상의 눈에 진서준은 한낱 스무 살 남짓 되는 젊은 청년일 뿐이었다.대한민국 무도계에서 괴물 같은 신인이 나온 건 곽윤상도 잘 알지만 그 괴물은 이 청년이 아니었다. 이 청년은 그 괴물과 이름만 같을 뿐이었다.충격을 받은 곽윤상은 정신을 차리고 호통쳤다.“너처럼 거만한 놈은 나도 수없이 많이 봤어. 조금 배운 게 있다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우쭐대며 다니곤 하지.”진서준은 곽윤상의 말을 듣고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혹시 지금 네 얘기를 하는 거야?”“너...”곽윤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사불상 괴물이 두 사람을 향해 덮쳐왔다.괴물이 지나가는 곳마다 호수의 물이 양옆으로 쏟아지며 탁 트인 물길을 만들었다.“이따가 네놈을 혼뜨검 낼 테니까 각오해.”곽윤상은 이 말을 남기고 앞으로 나서서 그 악귀와 맞섰다.“저놈을 베어라!”곽윤상의 호통과 함께 그의 손에 진기가 모이며 투명한 장검이 형성되었다.그 장검은 곽윤상의 손에서 빠르게 솟구쳐 악귀를 향해 내리쳤다.곽윤상의 술법을 보자 사불상의 두 더듬이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앞으로 돌진하던 몸이 급히 멈춰 섰다.곽윤상은 자지가 날린 이 영허검을 본 악귀가 겁먹고 물러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곽윤상의 눈이 튀어나올 만한 광경이 일어났다.곽윤상이 날린 영허검이 악귀의 몸에 부딪히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영허검은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 유리처럼 바람에 흩어졌다.“이... 이 악귀 몸이 왜 이렇게 단단하지?”곽윤상은 이를 악물고 다시 손으로 법결을 그렸다.순간 번개가 번쩍이며 13개의 뇌검이 곽윤상의 주위에
사불상 악귀를 하나도 상대할 수 없던 곽윤상이 네 마리나 상대할 리가 없었다.이 순간 곽윤상은 왜 스승이 줄곧 이곳 악귀를 처단하지 않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이놈아, 너 때문에 명주시가 멸망한 거야!”곽윤상은 진서준을 향해 분노와 원망이 섞인 눈빛을 쏟아냈다.진서준이 함부로 이 진법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네 마리의 끔찍한 악귀가 풀려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전혀 당황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이 상태로 몇 년만 더 지나면 그때야말로 명주시가 진짜 멸망하게 될 거야. 네 생각엔 이곳 진법은 단지 이 네 마리 악귀를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것 같아?”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무슨 말이야? 혹시 이곳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야?”곽윤상은 주위를 살폈지만 이 네 마리 악귀 외에는 다른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이 진법 이름은 금쇄곤룡진이야. 이 진법을 설치한 사람 실력은 최소한 지선 이상이야. 이 네 마리 악귀가 내 상대도 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진법을 설치한 사람 상대가 될 수 있겠어? 이 호수 밑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존재할 거야.”동호는 무려 13제곱 킬로미터의 크기를 자랑하는 대형 호수였고 호숫가에 서면 한눈에 동호의 끝을 볼 수 없었다.수면 아래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최소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네 마리 악귀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 진서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곽윤상은 입을 떡 벌린 채 진서준의 말을 들었고 진서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허풍을 치는 것 같지 않았다.그때, 갑자기 칼날 소리가 울려 퍼지며 푸른 검의 빛이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졌고 진서준이 오른손을 내밀자 참선검이 그의 손에 정확하게 잡혔다.다음 순간, 진서준이 참선검을 휘두르자 겨울바람처럼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며 사불상을 향해 일격이 날아갔다.쿵!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호수 위에 물기둥이 연이어 솟구쳤다.사불상 한 마리가
한동안 곽윤상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일어나 진서준의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용존님, 조금 전에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존님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진서준은 곽윤상을 흘긋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여기서 날 기다려. 난 호수 아래로 내려가야겠어.”곽윤상이 진서준의 말뜻을 이해할 새도 없이 진서준은 바로 발을 구르고 물속으로 잠수했다.“용존님! 용존님!”곽윤상은 두 번이나 크게 외쳤지만 진서준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곽윤상은 진서준이 도대체 뭘 하러 가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호수 밑은 본래 흐릿하고 탁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밤이라 시야는 더욱 흐려졌다.진서준이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눈이 옅은 청색으로 변했다.검고 흐릿했던 호수 바닥이 진서준의 시야에서는 대낮처럼 밝고 선명했다.동호는 매우 깊었고 그 깊이는 약 100미터 정도에 달했다.사람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몸이 받는 압력은 점점 커지게 된다.진서준이 거의 100미터까지 내려가자 체내 혈기가 격렬하게 번지면서 몸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100미터 밑까지 내려가자 아무리 진서준이라고 해도 그 아래에서 무언가를 뚜렷하게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호수 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진서준의 발이 부드러운 진흙에 닿았다.주변엔 물고기나 새우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물풀 같은 식물도 보이지 않았다.수십 미터의 반경 안에는 살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진서준은 무릎을 꿇고 진흙 속에서 손으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오랫동안 손을 뻗어 찾은 결과 진서준은 마침내 단단한 물체를 하나 찾아냈다.진서준은 눈을 반짝이며 손끝에 힘을 주어 그 단단한 물체를 모래에서 꺼냈다.그것은 검은색의 공 모양의 물체였다.길거리에서 봤다면 대다수 사람이 이 물체를 단순한 돌덩어리로 여길 것이다.하지만 이 물체를 수련자들이 본다면 아마 놀라서 말문이
곽윤상은 진서준이 손에 쥐고 있는 그 검은 구슬 속에서 한 마리 거대한 용이 이를 드러내며 끊임없이 포효하는 모습을 제대로 확인했다.용의 눈에는 기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용이 분노하는 건 자기가 이 법기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리고 용이 기뻐하는 건 오랜 잠에서 깨어난 후, 자기를 억누르던 법기의 영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주변의 진법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리고 이 법기를 손에 쥔 자는 기 수련 상급 단계에 있는 수련자일 뿐이었다.“세상에, 진짜 용이 있었네요!”곽윤상은 거듭되는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오늘 밤에 발생한 모든 일들은 곽윤상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진서준은 구슬 안에서 불안하게 몸을 움직이는 용을 바라보며 미소 지은 후, 계속해서 영기를 그 안으로 흘려보냈다.용의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오랜 가뭄의 땅에 비가 내리듯, 용은 진서준의 영기를 마구 빨아들였다.“이 영기가 어떻게 이렇게 진할 수 있지? 이 녀석이 정말 기 수련 상급 수련자에 불과한 게 맞아?”용은 의아해하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영기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용은 큰 문제를 하나 발견했다.자기가 이미 여러 번 용위를 방출했지만 눈앞의 이 수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용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에 용은 조금 화가 났다.구슬 안의 용은 비록 아직 진정한 용은 아니었고 용위도 진용 수준으로 방출한 게 아니었지만 이 수준의 수련자가 도무지 견뎌낼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이었다.용이 한참 동안 제멋대로 날뛰게 놔둔 후, 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이름이 무엇이야?”진서준의 목소리가 영석을 가로질러 용의 귀에 전달되었다.용은 거만한 머리를 들고 진서준을 쳐다봤다. 작은 영석 속에 갇혀 있지만 용의 몸에서 모든 생명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이 뿜어 나왔다.“내 이름은 올기야. 기 수련 수사에 불과한 네가 감히 내 이름을 물어봐? 얼른 날 이 영석에서 풀어주지 못해?”올기의 이름을 알게 된
진서준은 허공에서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올기를 노려보며 소리 높여 꾸짖었다.“말이 참 많구나. 진용 혈통도 없으면서 내 앞에서 감히 헛소리를 쳐?”진서준의 말에 올기는 충격을 받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올기가 진용 혈통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진용은 전설 속에만 나타나는 강력한 존재였고 강력한 생물일수록 번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전 세계에서 진용 혈통을 가진 교룡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이놈아, 내가 진용 혈통이 없다고 해서 날 깔보는 거야? 내가 진용 혈통이 없다고 해도 너 따위가 함부로 모욕할 상대가 아니거든?”말을 마친 교룡은 진용처럼 포효했고 그 포효 때문에 고요한 호수 위에 거센 파도가 일어났다.이때, 진서준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얼핏 보기엔 마른 체형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진서준이 올기의 앞에 나타났다.그리고 올기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의 손바닥이 교룡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찰싹!순간 교룡은 지구와 충돌한 작은 별처럼 몸을 제어할 수 없이 아래의 호수로 떨어졌다.첨벙!교룡의 거대한 몸이 호수에 떨어지면서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고 거대한 동호 전체가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이 장면을 본 서지은은 큰 결단을 내리고 호수 중앙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뭐 하는 겁니까?”관리자는 서지은이 수영해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육지에서 달리듯 호수 위에서 물을 딛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박이야!”관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연약해 보이는 이 여자가 사실 강자였다는 사실이 관리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호수가 다시 진정된 후, 10미터가 넘던 올기는 겨우 50cm 크기의 작은 생물로 변해 있었다.그리고 조금 전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교룡은 이제는 위축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렇게 큰 변화를 감지한 곽윤상은 또 한 번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용존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대놓고 하늘을 나는 용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그 용은
누군가가 진서준이 살아있는 교룡을 몸에 얹고 다니는 걸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네, 용존님.”올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곽윤상은 진서준과 교룡을 바라보며 머리가 어지러워 멍하니 서 있었다.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교룡이 벌써 진서준에게 복종하다니,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았다.진서준은 사람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 것 같았다.곽윤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서지은이 급히 달려오면서 곽윤상을 충격 속에서 벗어나게 했다.“서준아, 괜찮아?”서지은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서지은이 자기를 걱정해 주는 사실에 매우 감격했다.서지은이 본인 위험도 무릅쓰고 달려와 진서준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는 건 진서준이 서지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확증이었다.“괜찮다니 다행이구나.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엄청 걱정했어.”서지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숨을 돌린 서지은의 시선은 진서준의 어깨 위에 앉은 올기에게로 향했다.“이건 뭐야? 용 같아 보이는데?”서지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이 위대한 몸의 이름은 올기, 보다시피 교룡이야.”교룡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고 그 말투와 자태는 처음 진서준을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서지은은 두려움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겁을 잔뜩 먹은 눈으로 교룡을 바라보았다.“서준아, 이건 도대체 뭐야?”서지은은 급하게 진서준을 껴안으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그냥 자그마한 교룡일 뿐이야. 무서울 게 없어.”진서준은 서지은을 진정하고 나서 올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다시 위대한 몸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 가죽을 전부 벗겨 놓을 거야.”교룡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고 얼른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용존님.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서지은은 교룡이 진서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서준아, 이게 진짜 교룡이야?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