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허공에서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올기를 노려보며 소리 높여 꾸짖었다.“말이 참 많구나. 진용 혈통도 없으면서 내 앞에서 감히 헛소리를 쳐?”진서준의 말에 올기는 충격을 받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올기가 진용 혈통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진용은 전설 속에만 나타나는 강력한 존재였고 강력한 생물일수록 번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전 세계에서 진용 혈통을 가진 교룡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이놈아, 내가 진용 혈통이 없다고 해서 날 깔보는 거야? 내가 진용 혈통이 없다고 해도 너 따위가 함부로 모욕할 상대가 아니거든?”말을 마친 교룡은 진용처럼 포효했고 그 포효 때문에 고요한 호수 위에 거센 파도가 일어났다.이때, 진서준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얼핏 보기엔 마른 체형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진서준이 올기의 앞에 나타났다.그리고 올기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의 손바닥이 교룡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찰싹!순간 교룡은 지구와 충돌한 작은 별처럼 몸을 제어할 수 없이 아래의 호수로 떨어졌다.첨벙!교룡의 거대한 몸이 호수에 떨어지면서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고 거대한 동호 전체가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이 장면을 본 서지은은 큰 결단을 내리고 호수 중앙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뭐 하는 겁니까?”관리자는 서지은이 수영해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육지에서 달리듯 호수 위에서 물을 딛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박이야!”관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연약해 보이는 이 여자가 사실 강자였다는 사실이 관리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호수가 다시 진정된 후, 10미터가 넘던 올기는 겨우 50cm 크기의 작은 생물로 변해 있었다.그리고 조금 전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교룡은 이제는 위축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렇게 큰 변화를 감지한 곽윤상은 또 한 번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용존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대놓고 하늘을 나는 용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그 용은
누군가가 진서준이 살아있는 교룡을 몸에 얹고 다니는 걸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네, 용존님.”올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곽윤상은 진서준과 교룡을 바라보며 머리가 어지러워 멍하니 서 있었다.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교룡이 벌써 진서준에게 복종하다니,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았다.진서준은 사람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 것 같았다.곽윤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서지은이 급히 달려오면서 곽윤상을 충격 속에서 벗어나게 했다.“서준아, 괜찮아?”서지은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괜찮아.”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서지은이 자기를 걱정해 주는 사실에 매우 감격했다.서지은이 본인 위험도 무릅쓰고 달려와 진서준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는 건 진서준이 서지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확증이었다.“괜찮다니 다행이구나.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봐 엄청 걱정했어.”서지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숨을 돌린 서지은의 시선은 진서준의 어깨 위에 앉은 올기에게로 향했다.“이건 뭐야? 용 같아 보이는데?”서지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이 위대한 몸의 이름은 올기, 보다시피 교룡이야.”교룡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고 그 말투와 자태는 처음 진서준을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서지은은 두려움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겁을 잔뜩 먹은 눈으로 교룡을 바라보았다.“서준아, 이건 도대체 뭐야?”서지은은 급하게 진서준을 껴안으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그냥 자그마한 교룡일 뿐이야. 무서울 게 없어.”진서준은 서지은을 진정하고 나서 올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다시 위대한 몸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 가죽을 전부 벗겨 놓을 거야.”교룡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고 얼른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용존님.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겠습니다...”서지은은 교룡이 진서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서준아, 이게 진짜 교룡이야?
진서준은 진심으로 자기를 초대하는 곽윤상을 보고 잠시 망설인 뒤 서지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어쩔래? 갈래?”“네 결정에 따를게.”서지은이 고분고분 대답했다.진서준이 가자고 하면 서지은은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요, 수고해요, 곽 선생님.”진서준은 곽윤상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별말씀을요, 거절하지 않아서 제가 오히려 고맙죠.”곽윤상은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곽윤상은 사실 지금 진서준과 친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지금 바로 방을 예약하겠습니다.”곽윤상은 전화를 꺼내 잘 아는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전화 한 통으로 방 예약이 끝났다.“용존님, 제 차를 타십시오.”곽윤상이 자발적으로 제안했다.“그러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양하지 않고 서지은과 함께 곽윤상의 차에 탔다.진서준은 이번이 처음 명주시에 발을 들이는 거라 명주시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곽윤상이 현지인으로서 길을 안내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하지만 곽윤상은 별장 단지 관리팀장 최승준을 전혀 초대할 생각이 없었다.최승준의 신분과 위치를 놓고 볼 때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진서준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꺼내 보니 화면에 서정훈 이름이 나타났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진서준의 마음에 스쳤다.“무슨 일이에요, 서 시장님?”진서준이 묻자 전화 너머에서 서정훈의 자책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서준아, 박운기가 사람에게 끌려갔어.”“그랬어요?”진서준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랐다.“누가 데려갔죠?”“전라도 사람들이야.”서정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 사람은 내 상관이니까 나도 거절할 수 없었어...”서정훈은 한풍시 시장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직위의 사람도 많았다.박씨 가문의 세력은 단지 명주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도 가문 사람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진서준은 박운기가 구출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쪽 사
곽윤상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대답했다.“조금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스승님과 함께 몇 번 명양사해가 조직한 경매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그 조직은 업계에서 최정점에 오른 조직이죠. 단순히 국내 부자들뿐만 아니라 해외 돈 많은 사람들도 많이 참여합니다. 물론 매번 경매 가격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높고요.”가격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서준은 다만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경매회에서 판매되는 물건들은 보통 보기 드문 명품인가요?”“매우 귀하고 희소한 물건들입니다. 다른 경매회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죠.”곽윤상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진 마스터님은 무엇을 사려고 하는 겁니까?”“네 가지 귀한 약초를 사려고 해요. 칠색정화, 혈령지, 천년홍련, 그리고 천년병제련도 하나 필요하고요.”“진 마스터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중에서 천년홍련 외 세 가지 약초는 저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이 약초들은 전부 희귀한 약초로 황금보다 더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고 진서준이 이전에 얻었던 다섯 가지 약초보다 훨씬 더 구하기 어려웠다.진서준은 이번 경매회에도 원하는 약초가 없을까 봐 걱정했다.“근데 저는 한 약장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 진 마스터님이 찾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곽윤상의 말에 진서준의 눈앞에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이내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그 약장수는 혹시 성약당에서 약을 구하는 사람인가요?”“아닙니다. 성약당은 그 사람이 약을 구하는 여러 경로 중 하나일 뿐입니다.”곽윤상이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 약장수는 명주시 유명 인사들마저 약왕이라 부를 정도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 사람은 수없이 많은 귀한 약초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 약초들은 천남해북을 막론하고 그 사람이 직접 찾아낸 것들입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그럼 그 약왕과 연락할 수 있나요?”“물론이죠. 지금 바로 전화하겠습
총소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서지은은 깜짝 놀라 급히 진서준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지은만 놀란 게 아니었다. 진서준과 곽윤상도 예외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상황을 살폈다.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경성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인 명주였다.명주시 한복판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면 단순한 사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총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군중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국안부 상경인 진서준은 이 상황에서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곽 선생님, 우리 서지은을 잘 보호해요. 난 나가서 상황을 좀 살펴볼게요.”진서준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서준아, 조심해!”서지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소리쳤다.차에서 내린 후, 본래 차가 막혀 빈틈도 없던 도로는 이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혔다.총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자 그 근처의 사람들은 모두 차를 버리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단번에 가장 큰 자동차 위로 뛰어올랐다.높은 곳에 서자 진서준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멀지 않은 전방에는 은백색 벤틀리 한 대가 네 대의 검은색 자가용에 포위당한 채 있었다.그 자가용 네 대 안에서 총잡이 네 명이 벤틀리 안의 사람들을 겨냥해 미친 듯이 총격을 퍼붓고 있었다.방탄차는 고사하고 심지어 대종사급의 강기라고 해도 이런 끔찍한 총격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그 은백색 벤틀리는 금세 벌집처럼 구멍이 잔뜩 나고 총알 자국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진서준은 이 장면을 보고 즉시 총잡이들이 타고 있는 자가용으로 달려갔다.그중 한 대의 자가용 위에 오른 진서준은 발로 강하게 차를 내리쳤다.철컥!진서준의 발차기에 단단한 철판이 순식간에 뚫렸다.차 안에 있던 네 명의 총잡이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진서준을 보고 놀라 도망칠 틈도 없이 말을 꺼냈다.“넌 누구야?”“너희를 잡으러 온 사람이야.”진서준은 쌀쌀한 목소리로 한마디 남기고는 번개처럼 빠른 동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진서준은 이 칠색정화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진서준 씨가 치료한다고요?”소하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실례지만, 진서준 씨가 황예은 씨와 친구가 아니었다면 진서준 씨는 나와 대화할 자격도 없을 겁니다.”상당히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만 냉혹한 사실이기도 했다.샛터의 국제적 위치는 매우 높아서 심지어 용란 같은 상임이사국보다도 우위에 있었다.그러니 소하비의 지위는 여태껏 진서준이 만났던 어떤 인물보다도 높았다.진서준은 지금 실력도 대단하고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소하비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했다.“네가 원한다면 내가 사줄 수 있어.”황예은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그 말에 소하비의 눈에 질투가 스쳤다.소하비는 여태껏 황예은이 이렇게 남자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만둬, 돈 낭비하지 마.”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이 왕자도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쓰는 것인데 굳이 가격을 200조 단위까지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다.정말 그 정도로 가격을 올린다면 오히려 명양사해 경매장만 이득을 볼 뿐이었다.“황예은 씨, 더 이상 경매하지 않으실 건가요?”이세아의 질문에 황예은이 되물었다.“이 정도면 명양사해가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않았나요?”진서준은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황예은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의 성격이 항상 차갑고 도도한 건 알지만 누군가가 정상적으로 말을 건넸을 때 이렇게 거칠게 반격하지는 않았다.혹시 이 두 여자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황예은의 날카로운 반응에 이세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응했다.“세상에 돈 많이 버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황씨 가문이 이렇게 오래 대한민국 갑부 일인자 자리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은퇴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잖아요.”그 후 이세아는 소하비를 보며 말했다.“소하비 왕자님, 이제 이 칠색정화는 왕자님 거예요.”200조라는 거액으로 약초 한 송이를 사다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너 저 여자와 갈등이라도
변지산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이 약초는 사실 널 위해서 내가 사려고 했던 거야.”사실 예전에 진서준은 변지산에게 전화를 걸어 칠색정화를 포함한 여러 약재를 요구했었다.하지만 성약당 안에는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재가 없었다.그래서 변지산은 이 약재들을 기억해 두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진서준의 빚을 갚기 위해 주기로 했다.이번에 이씨 가문 사람이 변지산을 귀빈으로 초청했을 때, 변지산은 처음에 단호하게 거절했었다.하지만 이 약초가 바로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초라는 소식을 듣고 변지산은 바로 초청에 응했다.변지산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도 바로 이 약초 때문이었다.“감사합니다, 변 어르신.”진서준이 고마워하며 말했다.모두가 이번 경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을 때, 소하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참 공교롭네요. 이 약초는 저도 필요하거든요.”소하비가 이 약초를 놓고 경쟁하려는 모습을 보자 다들 진서준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조금 전에도 이 왕자는 1조 7600억이라는 거액을 불쑥 제시했으니 이 약초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제시할 게 분명했다.“진서준 씨, 제가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약초가 정말 필요해서 그래요.”소하비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자 진서준이 물었다.“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건가요?”“맞아요.”소하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제 여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있는데 교회 의사도 이 칠색정화라는 약초가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어요.”소하비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진서준은 그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만약 소하비가 진심이라면 상황은 꽤나 복잡해질 것이다.칠색정화를 사용해야 하는 병이라면 진서준도 무조건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그럼 공정하게 경매를 진행합시다.”진서준이 제안하자 소하비는 바로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2조!”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시작 가격이 1조에 불과한데 소하비는 그 가격을 단숨에 두 배로 올렸다.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박서명은
이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을 벌였다.황예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고 그 목걸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1조 7600억.”경매가 열린 후 줄곧 침묵을 지키던 소하비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순간, 경매장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방금 최고가는 6000억이었는데 소하비는 바로 1조가 넘는 돈을 더 올렸다.돈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건가?경쟁을 벌이던 부자들은 속으로 소하비를 무식하고 무모한 부자라고 욕설을 날렸다.“소하비 왕자님, 이렇게 거액을 들였는데 분명 왕자님이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실 겁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은 바로 축하하는 멘트를 날렸다.“그랬으면 좋겠습니다.”소하비가 덤덤하게 웃어넘겼다.소하비의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목걸이로도 여자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그 돈은 사실 불로 태워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이건 1만도 아니고 1억도 아닌 1조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다.잠시 후, 한 직원이 해양의 심장을 소하비에게 전달했다.하지만 소하비는 서둘러 황예은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구애하는 데 실패하기라도 하면 소하비 왕자는 너무나 창피해 경매장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사치품이 여러 개 판매된 후, 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여러분, 이제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됩니다. 우선, 칠색정화를 보여 드리겠습니다.”길이 약 30cm에 달하고 일곱 가지 색깔의 꽃이 핀 약초가 등장했다.“진 신의님, 이 약초가 맞죠?”이용진의 질문에 진서준은 흥분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습니다.”오늘 진서준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칠색정화였다.“이 약초가 바로 칠색정화입니다. 이 약초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약효가 있고 이 약초를 먹으면 10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칠색정화의 신기한 약효에 관해 간단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이건 소하비가 대한민국의 병법에 관련된 책에서 배운 말이다.지금 소하비는 이미 진서준을 잠재적인 위험인물 목록에 올려두었다.자기 정체를 몹시 궁금해하는 소하비에게 진서준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내 목표는 당신과 분명 다를 테니 내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소하비는 그 말에 멈칫하더니 이내 진서준의 뜻을 알아챘다.“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거죠?”“난 거짓말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진서준이 평온하게 대답하자 소하비는 내심 기뻤다.“좋아요. 당신은 이제부터 내 친구입니다.”하지만 옆에서 대화를 듣던 황예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자기가 진서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매력이 없단 말인가?황예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소하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황예은 씨, 무슨 일 있나요? 몸이 불편한 건가요?”“괜찮아요.”황예은이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동안 익숙했던 황예은의 태도와는 거리가 먼 태도에 소하비는 저도 몰래 움찔했다.여자의 마음은 바다 밑의 바늘과도 같았다.조금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왜 눈앞의 여자가 갑자기 이런 태도로 변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박서명은 진서준과 소하비 왕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박서명의 에리 그룹은 실력이 강력해 황씨 가문과 충분히 겨룰 수 있었지만 샛터 왕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고 약했다.그런데 진서준이 샛터 왕자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박서명은 더 이상 악의를 품고 진서준과 경쟁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반 시간 후, 경매장 홀의 불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밝은 빛 한 줄기가 무대 위로 비춰졌다.그리고 몸에 딱 맞는 자주색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이 무대 뒤에서 나왔다.“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저희 명양사해 경매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렇게 많은 권력자와 부자 앞에서 여성은 전혀 기죽지 않아 보였고 대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이용진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진서준과 황예은은 동년배 중에서 소문난 천재였다.이 두 사람은 연애 상대를 찾을 때 자기 실력과 지위가 비슷한 사람을 찾을 것이다.“이 삼촌.”황예은이 이용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쌀쌀했다.“진 신의님, 사실 이번 경매에서 저는 신의님을 지원할 생각이었습니다.”이용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우리 황 조카가 있으니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요.”황씨 가문의 재력과 비교하면 이용진의 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무조건 칠색정화를 손에 넣을 것이다.진서준이 대화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그중 진서준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그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흰 모자를 쓰고 짙은 눈썹과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청년이었다.“세상에, 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가 아니야? 왕자도 이 장소에 왔어?”“저 왕자가 원하는 물건이 나와 겹치지 않을지 걱정이야. 그럼 오늘 경매장에 헛걸음을 치게 될 게 분명할 거야.”“쯧쯧, 샛터의 셋째 왕자 앞에서는 초아국 금융 업계 거물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을 거야.”사람들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다들 돈 많은 최고급 권력자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고귀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한없이 들떠 있었다.황예은이 진서준에게 소개했다.“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 소하비야.”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예 로마에서 태어났다.이 말은 바로 샛터의 왕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샛터의 부유함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세상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8성급 호텔도 샛터에 있었다.그곳에는 부유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샛터 왕실은 돈을 그냥 휴지로 취급했다.소하비는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바퀴 휙 돌아본 뒤, 바로 황예은에게 다가갔다.“황예은 씨, 이렇게 여기서 만나다니
경매장은 유람선의 가장 위층에 자리 잡고 있고 입구의 보안 검사도 매우 엄격했다.첫 번째 검사는 바로 자산을 제시하는 것이었다.전체 자산이 조 단위여야 했고 손에 쥔 예금 역시 조 단위여야 했다.첫 번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이 검사만 해도 99%의 사람들이 걸러지게 된다.조 단위 자산을 자랑하는 부자는 꽤 있겠지만 조 단위 예금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대다수 부자는 손에 쥔 돈을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다.“너랑 함께 와 참 다행이네. 네가 없었다면 절대 들어올 수 없었을 거야.”진서준이 엄격한 검사를 보며 감탄했다.황예은은 보기 드물게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진서준도 드디어 황예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진서준은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 번 둘러보았다.경매장은 70여 평 크기로 4줄의 계단식 좌석이 있었고 그 좌석들 정면에는 무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경매가 시작되면 전시물은 바로 이 무대에서 등장하게 된다.두 사람은 한적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네 여자 둘을 데려오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아?”황예은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서지은과 허윤진은 함께 경매장에 따라오지 않았고 유람선의 다른 곳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괜찮아, 누군가 그 애들을 보호하고 있어.”진서준이 대답했다.정확히 말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교룡이었다.진서준은 올기가 서지은과 허윤진과 함께 다니게 했다.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교룡인 올기 한 마리로도 충분히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다.올기는 동호에서 풀려난 이후 서서히 실력을 회복하고 있었다.비록 아직 절정의 상태는 아니지만 칠급 이하의 대종사는 올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황예은 씨, 또 만났네요.”이때 박서명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황예은 씨도 여기 물건에 관심이 있나 보네요.”예전에 박서명이 경매에 참석했을 때 황예은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황예은이 예전에 오지 않은 건 단순히 시간이 없었기
진서준과 서정훈은 환경 오염을 대가로 지역 경제 발전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박진강은 네가 죽였지?”진서준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예상외의 질문에 박서명은 움찔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봤다.박서명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냉기를 품은 독기가 눈에서 뿜어나왔다.박신준과 연락이 닿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 박서명은 자기 형제가 뭔가 큰 일을 당했음을 직감했다.“내가 어떻게 내 아들을 죽일 수 있지?”박서명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진서준은 바로 사실을 폭로했다.“그 녀석이 네 친아들이 아니니까 죽일 수 있지. 물론 너와 박신준 둘 중에 누가 누구에게 오쟁이를 진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이 말에 박서명은 순간 당황해하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오늘 밤 달빛이나 제대로 즐겨.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말을 마친 박서명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너 말이 참 거칠어.”황예은의 말에 진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이건 전부 저놈이 자초한 일이야.”“너는 혼자잖아. 박씨 가문이 공해에서 너에게 무슨 일을 할지 걱정되지 않냐=아?” 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언젠가는 한 판 벌여야 할 싸움이야.”“대한민국 전역에서 너처럼 거침없고 대담한 사람은 아마 몇 명 되지 않을걸?”“그 말은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진서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묻자 황예은은 대답하지 않았다.황예은의 말에는 칭찬과 비하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잠시 후, 유람선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유람선은 서서히 부두를 떠나 어두운 바닷속으로 향해 나갔다.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황예은은 달랐다.“유람선 안으로 들어가자.”진서준이 제안하자 황예은은 선뜻 동의했다.“좋아.”두 사람이 막 유람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 마스터님.”진서준이 머리를 돌리자 두 사람
“이렇게 큰 유람선은 처음 봐!”차에서 내리자 허윤진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철갑 괴물을 감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서울시 명문대가 출신인 허윤진도 이 유람선 앞에서는 감탄 이외에 할 말이 없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마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주변을 지나가는 권력자들도 유람선의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대한민국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지만 천하 유람선에 올라설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황예은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갑부 맏딸이 아니었다면 진서준은 초대장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진서준, 너랑 서지은은 이렇게 큰 유람선을 본 적 있어? 너희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은데.”허윤진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묻자 서지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 아빠랑 이 유람선에 탄 적 있어. 그때 내 표정도 너 지금 표정과 똑같았거든.”서씨 가문은 강남 최고의 가문인지라 서지은이 천하 유람선에 올라탄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난 오늘이 처음이야.”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하자 허윤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넌 이 유람선이 하나도 놀랍지 않아?”“안 놀랍다면 거짓말이지.”진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허윤진은 말로만 놀랍다고 하고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는 진서준이 못마땅해 눈을 굴렸다.“배에 올라타자.”황예은이 말을 꺼내자 다들 그녀를 따라 여러 차례의 보안 점검을 거쳐 유람선에 올랐다.유람선 안에 들어선 후, 진서준은 서지은에게 허윤진을 데리고 유람선 내부를 구경하라고 시켰다.그리고 자기는 황예은과 함께 유람선 갑판에 올라가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유람산에 올라온 사람 중, 권력자도 많았고 무인도 적지 않았다.종사 경지의 무인들은 흔치 않았고 대다수는 사급 대종사였으며 오급 대종사와 육급 대종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정도 인원만 해도 이미 굉장히 큰 규모였다.강남과 서남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은 대종사가 한자리에 모인 걸 진서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명주시는 역시 진짜
이 자식은 정말 밉상인데 의술 하나만은 정말 뛰어난 듯했다.황예은은 오늘 진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내렸다.“미리 말해두지만 난 거기서 널 보호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력을 퍼부을 수 없어.”진서준이 미리 경고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을 치료할 약재를 손에 넣은 후, 간첩을 찾으러 가야 했다.그때가 되면 유람선 위에 사람이 많아 자연스레 보는 눈도 많을 것이다.누군가 황예은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황예은은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날 보호할 사람을 구할 거야. 알았어, 그럼 너 먼저 밥 먹어. 나중에 약 바르러 올게.”진서준은 방을 나갔다.허윤진은 진서준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물었다.“진서준, 오늘 밤만 지나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갈 거지?”“왜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려 해?”진서준은 허윤진의 말에 의아해했다.황예은이라는 여우를 경계하기 위해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허윤진이 차마 꺼낼 수 없었다.“너무 늦으면 엄마랑 진서라가 걱정할까 봐 그래.”허윤진이 비장 카드인 두 사람을 꺼냈다.어머니와 진서라를 생각하니 진서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약재만 받으면 내일 바로 돌아가자.”“이따가 또 저 여자 약 발라줘야 해?”허윤진이 질투와 원한이 섞인 눈빛을 보이자 진서준은 등골이 서늘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속이고 불륜을 피운 거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응, 근데 이따가 바르는 건 마지막 약이야.”“그럼 다행이네.”허윤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예은의 몸매는 너무 매력적이라 여성인 허윤진조차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진서준 같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불꽃이라도 튄다면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약 바를 시간이야. 일단 들어가서 약 바르고 나올게.”진서준이 약을 들고 들어가자 황예은이 이미 죽을 다 먹은 걸 발견했다.“엎드려, 먼저 등부터 발라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