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소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서지은은 깜짝 놀라 급히 진서준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지은만 놀란 게 아니었다. 진서준과 곽윤상도 예외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상황을 살폈다.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경성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인 명주였다.명주시 한복판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면 단순한 사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총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군중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국안부 상경인 진서준은 이 상황에서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곽 선생님, 우리 서지은을 잘 보호해요. 난 나가서 상황을 좀 살펴볼게요.”진서준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서준아, 조심해!”서지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소리쳤다.차에서 내린 후, 본래 차가 막혀 빈틈도 없던 도로는 이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혔다.총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자 그 근처의 사람들은 모두 차를 버리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단번에 가장 큰 자동차 위로 뛰어올랐다.높은 곳에 서자 진서준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멀지 않은 전방에는 은백색 벤틀리 한 대가 네 대의 검은색 자가용에 포위당한 채 있었다.그 자가용 네 대 안에서 총잡이 네 명이 벤틀리 안의 사람들을 겨냥해 미친 듯이 총격을 퍼붓고 있었다.방탄차는 고사하고 심지어 대종사급의 강기라고 해도 이런 끔찍한 총격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그 은백색 벤틀리는 금세 벌집처럼 구멍이 잔뜩 나고 총알 자국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진서준은 이 장면을 보고 즉시 총잡이들이 타고 있는 자가용으로 달려갔다.그중 한 대의 자가용 위에 오른 진서준은 발로 강하게 차를 내리쳤다.철컥!진서준의 발차기에 단단한 철판이 순식간에 뚫렸다.차 안에 있던 네 명의 총잡이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진서준을 보고 놀라 도망칠 틈도 없이 말을 꺼냈다.“넌 누구야?”“너희를 잡으러 온 사람이야.”진서준은 쌀쌀한 목소리로 한마디 남기고는 번개처럼 빠른 동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진서준과 곽윤상은 약속된 호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곽윤상이 말문을 열었다.“진 마스터님이 황씨 가문 따님을 데리고 떠난 직후, 경찰청과 군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습니다.”그 총격 사건에 관련된 총잡이들은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을 받았다.하지만 진서준이 사람을 구할 당시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누가 황예은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아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쪽에서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의 수행자입니다. 이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죠.”아까 진서준이 그 총잡이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이미 중독된 상태란 걸 알아챘다.그 독은 독성이 맹렬한 독이었고 섭취 후 12시간 안에 즉사하게 되어 있었다.이를 통해 배후의 진짜 범인은 상당히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명문대가로 불리는 가문들은 흔히 이런 죽음의 수행자들을 양성한다.이 죽음의 수행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명주시에서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 알아요?”진서준의 질문에 곽윤상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진 마스터님은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겁니까? 황씨 가문 따님과 친구 사이신가요?”“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조사 중인 다른 일이 오늘 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진서준이 답했다.간첩 문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황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황예은이 확보한 자료 중에 진서준이 필요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주시에서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외에도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열 곳은 넘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명주시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땅값이 금값입니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진서준은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선량한 사람과 심보가 고약한 사람을 수없이 많이 봤다.하지만 손원순처럼 자선 활동을 위해 생사가 걸린 경기에 뛰어드는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손원순의 상대는 기세만 봐도 손원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진서준은 모니터에 나온 정보를 훑어봤다.“상대는 육급 대종사네. 승패는 이미 결정 났어.”이전에 곽윤상은 스승 손원순이 칠급 영선 술사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손원순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적어도 칠급 절정 대종사 실력을 갖춰야 한다.진서준은 천용 반지를 쓰지 않고는 손원순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손원순은 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라 그 깊은 내공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링 위에서 손원순은 차분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너 스스로 경맥을 끊고 내려가.”육급 무도 대종사는 칠급 영선 술사인 손원순을 상대로 맞붙으면 승산이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대로 경맥을 끊고 내려가려고 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다.70년 넘게 수련한 노인이 아무런 공격도 선보이지 않고 바로 항복하는 것은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될 것이다.“손 천사님, 여기까지 온 이상 전 천사님 필살기라도 보고 싶습니다.”노인이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다.“고통은 네가 자초한 거야.”말을 마친 손원순은 손을 약간 떨자 손바닥에 보랏빛 번개가 모이기 시작했다.그 번개가 손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반 미터 크기의 사자 형체를 이뤘다.이건 손바닥을 뒤집어 번개를 만든 술법이었다.”손원순의 실력을 여러 번 구경한 경험한 있는 권력자들도 이 장면을 보고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비록 실제 번개는 아니지만 그 위력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지하 경기장 전체에서 번개가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진서준도 감탄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이 정도의 진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손원순의 재능과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설명할 수 있었다.만약 진서준도 수선공법을 수련했다면 그의 실력은 상상
진서준 일행은 계속 내려가서 유람선의 가장 아래층으로 향했다.“진서준, 너 생사가 걸린 도박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이세아의 질문에 진서준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응? 이게 생사가 걸린 도박장으로 가는 길이야?”“당연하지, 남자들은 항상 그러더라. 입으로는 안 한다고 하면서 몸은 누구보다 더 정직하지...”이세아는 진서준의 하반신을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 여자는 정상적인 대화도 그쪽 화제로 돌리는 재간이 있는 것 같았다.진서준은 손으로 자기 중요한 부위를 가렸다.“농담이야, 날 따라와.”이세아는 웃으며 앞서서 두 사람에게 길을 안내했다.지하 1층에 도착한 진서준은 이곳이 또 다른 세상임을 발견했다.그 층의 한가운데에는 눈 부신 빛이 반짝이는 거대한 링이 있었다.주변에는 부자들이 앉아서 구경할 수 있도록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그리고 링 위쪽에는 단면 유리로 된 방이 몇 개 있었다.이세아의 안내로 진서준과 황예은은 VIP 룸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갔다.방은 크지 않았지만 유리창을 통해 링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여기가 바로 생사가 달린 도박이 열리는 곳이야. 매번 내기 금액은 최소 200억이야.”이세아가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링 위에는 빨강과 검정 두 팀으로 나뉘어 있고 20분마다 파이터 두 명이 링에 올라. 경기를 통해 승패도 가리고 생사도 결정해.”짝짝!이세아가 손뼉을 치자 서비스 직원 두 명이 들어왔고 각자 모니터를 들고 있었다.“여기에는 참가자들의 자료가 있어. 너도 관심이 있다면 직접 올라갈 수도 있어. 한 판 이길 때마다 200억의 보상이 있어. 세 번 연속으로 이기면 추가로 200억이 더 주어져.”한 판 이길 때마다 200억이라고?진서준은 눈꺼풀이 살짝 뛰었다.이곳에서 돈을 버는 게 참 쉬운 일인 것 같았다.한 판만 이기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참가자는 전부 대종사급 고수였고 그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진
“서준아, 내가 윤진을 데리고 올게.”서지은은 허윤진이 충동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급히 뛰어갔다.“남자는 여자 비위를 맞춰야 해. 그렇게 거칠게 대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널 원망할 거야.”이세아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허윤진이 도박만 멀리하게 할 수만 있다면 원망받는 건 상관없어.”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여색, 도박, 마약, 이 세 가지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했고 특히 도박과 마약은 더욱 위험했다.이 위험한 것에 발을 들이면 가벼운 경우에는 재산을 다 잃고 심각한 경우에는 가정이 파탄 날 수 있었다.허윤진은 이제 진서준의 가족이다.진서준은 절대로 이런 비극이 가족에게 일어나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정말 고집 센 사람 같구나.”이세아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가끔씩 이런 카지노에 놀러 와서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진서준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여기는 너희 그룹 산하 카지노잖아.”이세아는 멈칫하더니 이내 가볍게 웃어넘겼다.“난 이곳이 우리 가문 카지노라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날 너무 가볍게 보는 거야. 모든 사람은 짜증 나고 심기가 불편할 때가 있잖아. 스트레스와 불안이 쌓이면 그걸 풀어야 하는데, 이때 도박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넌 황예은이란 든든한 배경이 있어 돈을 다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진서준은 이세아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스트레스는 확실히 풀어야 하지만 절대로 도박이나 마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이 두 가지 방법은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사람을 다시는 기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이 도박이 네게는 별로일지 모르지만 내가 말하는 도박은 네가 관심이 있을지도 몰라.”이세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관심 없어.”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왜 그렇게 서둘러 떠나려고 해? 너희 남자들은 뭐나 다 그렇게 서둘러 하길 좋아하더라.”이세아는 눈을 굴리며 진서준에게 일부러 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서준은 여전히 일괄된 차가운 표정으로 이세아를 대했다.두 사람이 카지노에 도착해서야 이세아는 매력 발산을 그만두었다.카지노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많은 부자가 이곳에서 천금을 한순간에 쏟아내는 쾌감을 경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진서준, 오늘은 조금 놀아보려고 여기 온 거야?”이세아는 어느새 친숙하게 진서준에게 말을 놓으며 이름을 대놓고 불렀다.“아니야. 사람 찾으러 왔어.”진서준도 말을 놓았다.이세아는 진서준이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어차피 물어봐도 진서준은 말하지 않을 게 뻔했다.어차피 진서준을 따라가면 누구를 찾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진서준은 섹시한 유니폼을 입은 여자 직원에게 다가갔다.“실례합니다, 21점 놀이는 어디에 있나요?”21점 놀이는 일종의 도박 게임이다.여기에는 고급 도박부터 일반적인 크기 비교 게임까지 모두 있었다.직원은 손으로 위치를 가리키며 알려주었다.진서준은 그 정보를 받은 후,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또 터졌어!”진서준이 도착하기도 전에 허윤진의 절규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는 아무리 봐도 돈을 전부 잃은 도박꾼처럼 들렸다.옆에 있던 서지은이 허윤진을 말리며 말했다.“윤진아, 그만해, 서준이 곧 올 거야.”“안 돼, 이번 한 번만 할 거야. 내가 잃은 돈 전부 되찾을 거야!”허윤진은 눈이 충혈된 채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너무나 당황하고 초조한 서지은이 진서준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나 졌어? 멀리서도 네 목소리가 들리네.”“서준아!”진서준이 오자 서지은는 처음에 기뻐했지만 황예은과 이세아 두 여자가 함께 있는 걸 보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서준아, 빨리 와서 도와줘. 내가 잃은 돈을 전부 되찾아 줘.”허윤진은 진서준의 손을 잡고 그를 카드 테이블로 끌고 갔다.허윤진의 상태를 본 진서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중독됐어?”“아니야, 그냥 잃은 돈을 다 되찾고 싶을 뿐이야.”허윤진이 변명했지만
치파오 같은 의상은 입는 사람의 몸매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너무 말랐다면 옷이 제대로 맞지 않고 너무 뚱뚱하면 몸에 있는 군살이 다 드러나 버린다.그래서 지금 거리에 치파오를 입은 여성은 보기 드물었다.어떤 여자도 굳이 치파오를 입고 완벽하지 않은 몸매를 드러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이세아가 입고 있는 치파오는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된 것처럼 보였다.가슴은 우뚝 솟고 풍만한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까지, 몸에 군살 하나 없이 매끈했다.그리고 검은색 스타킹을 입은 가느다란 다리까지 함께 보면 이세아는 너무나 섹시해 보였다.지나가는 남자들, 심지어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까지도 이세아에게 눈길을 돌리며 뒤를 돌아봤다.황예은이 이세아를 바라보는 눈에는 적대감이 가득했다.“명양사해 업무는 다 끝났나요?”“보잘것없는 일들은 다른 직원들이 하면 되죠. 난 굳이 모든 업무를 다 지휘할 생각은 없어요.”이세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무슨 일이나 다 직접 하려고 한다면 제 몸이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일찍 죽게 되겠죠.”이세아는 황예은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모두 황예은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었다.황예은은 모든 일을 자기가 직접 해야만 시름을 놓는 성격이었다.황예은이 황씨 가문을 이끌면서 황씨 그룹의 수익은 3분의 1이나 증가했다.진서준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잘 알지 못했지만 두 여성 사이에 짙은 긴장감이 감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두 여자가 지금 또 보이지 않는 대결을 하고 있었다.“이씨 가문은 전국을 누비고 다니잖아요. 그런데도 죽을까 봐 두려운 건가요?”황예은이 냉랭하게 말을 이어갔다.“우리 가문 내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두려워요.”이세아가 진서준 앞에 서서 유혹적인 눈빛을 보냈다.“어쨌든 나는 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덜컥 죽기라도 하면 평생 후회할 거예요. 진 선생님, 황예은 씨와 연인 관계는 아니
하지만 진서준은 이 칠색정화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진서준 씨가 치료한다고요?”소하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실례지만, 진서준 씨가 황예은 씨와 친구가 아니었다면 진서준 씨는 나와 대화할 자격도 없을 겁니다.”상당히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만 냉혹한 사실이기도 했다.샛터의 국제적 위치는 매우 높아서 심지어 용란 같은 상임이사국보다도 우위에 있었다.그러니 소하비의 지위는 여태껏 진서준이 만났던 어떤 인물보다도 높았다.진서준은 지금 실력도 대단하고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소하비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했다.“네가 원한다면 내가 사줄 수 있어.”황예은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그 말에 소하비의 눈에 질투가 스쳤다.소하비는 여태껏 황예은이 이렇게 남자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만둬, 돈 낭비하지 마.”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이 왕자도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쓰는 것인데 굳이 가격을 200조 단위까지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다.정말 그 정도로 가격을 올린다면 오히려 명양사해 경매장만 이득을 볼 뿐이었다.“황예은 씨, 더 이상 경매하지 않으실 건가요?”이세아의 질문에 황예은이 되물었다.“이 정도면 명양사해가 수익을 충분히 올리지 않았나요?”진서준은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황예은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의 성격이 항상 차갑고 도도한 건 알지만 누군가가 정상적으로 말을 건넸을 때 이렇게 거칠게 반격하지는 않았다.혹시 이 두 여자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황예은의 날카로운 반응에 이세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응했다.“세상에 돈 많이 버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황씨 가문이 이렇게 오래 대한민국 갑부 일인자 자리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은퇴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잖아요.”그 후 이세아는 소하비를 보며 말했다.“소하비 왕자님, 이제 이 칠색정화는 왕자님 거예요.”200조라는 거액으로 약초 한 송이를 사다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너 저 여자와 갈등이라도
변지산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이 약초는 사실 널 위해서 내가 사려고 했던 거야.”사실 예전에 진서준은 변지산에게 전화를 걸어 칠색정화를 포함한 여러 약재를 요구했었다.하지만 성약당 안에는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재가 없었다.그래서 변지산은 이 약재들을 기억해 두고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진서준의 빚을 갚기 위해 주기로 했다.이번에 이씨 가문 사람이 변지산을 귀빈으로 초청했을 때, 변지산은 처음에 단호하게 거절했었다.하지만 이 약초가 바로 진서준이 필요로 하는 약초라는 소식을 듣고 변지산은 바로 초청에 응했다.변지산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도 바로 이 약초 때문이었다.“감사합니다, 변 어르신.”진서준이 고마워하며 말했다.모두가 이번 경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을 때, 소하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참 공교롭네요. 이 약초는 저도 필요하거든요.”소하비가 이 약초를 놓고 경쟁하려는 모습을 보자 다들 진서준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조금 전에도 이 왕자는 1조 7600억이라는 거액을 불쑥 제시했으니 이 약초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제시할 게 분명했다.“진서준 씨, 제가 일부러 엿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약초가 정말 필요해서 그래요.”소하비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자 진서준이 물었다.“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건가요?”“맞아요.”소하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제 여동생이 불치병에 걸려 있는데 교회 의사도 이 칠색정화라는 약초가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어요.”소하비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진서준은 그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만약 소하비가 진심이라면 상황은 꽤나 복잡해질 것이다.칠색정화를 사용해야 하는 병이라면 진서준도 무조건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그럼 공정하게 경매를 진행합시다.”진서준이 제안하자 소하비는 바로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2조!”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시작 가격이 1조에 불과한데 소하비는 그 가격을 단숨에 두 배로 올렸다.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박서명은
이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을 벌였다.황예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고 그 목걸이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1조 7600억.”경매가 열린 후 줄곧 침묵을 지키던 소하비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순간, 경매장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방금 최고가는 6000억이었는데 소하비는 바로 1조가 넘는 돈을 더 올렸다.돈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는 건가?경쟁을 벌이던 부자들은 속으로 소하비를 무식하고 무모한 부자라고 욕설을 날렸다.“소하비 왕자님, 이렇게 거액을 들였는데 분명 왕자님이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실 겁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은 바로 축하하는 멘트를 날렸다.“그랬으면 좋겠습니다.”소하비가 덤덤하게 웃어넘겼다.소하비의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렇게 엄청나게 비싼 목걸이로도 여자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그 돈은 사실 불로 태워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이건 1만도 아니고 1억도 아닌 1조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다.잠시 후, 한 직원이 해양의 심장을 소하비에게 전달했다.하지만 소하비는 서둘러 황예은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구애하는 데 실패하기라도 하면 소하비 왕자는 너무나 창피해 경매장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사치품이 여러 개 판매된 후, 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여러분, 이제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됩니다. 우선, 칠색정화를 보여 드리겠습니다.”길이 약 30cm에 달하고 일곱 가지 색깔의 꽃이 핀 약초가 등장했다.“진 신의님, 이 약초가 맞죠?”이용진의 질문에 진서준은 흥분한 말투로 대답했다.“맞습니다.”오늘 진서준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칠색정화였다.“이 약초가 바로 칠색정화입니다. 이 약초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약효가 있고 이 약초를 먹으면 10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자주색 복장의 여성이 칠색정화의 신기한 약효에 관해 간단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이건 소하비가 대한민국의 병법에 관련된 책에서 배운 말이다.지금 소하비는 이미 진서준을 잠재적인 위험인물 목록에 올려두었다.자기 정체를 몹시 궁금해하는 소하비에게 진서준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내 목표는 당신과 분명 다를 테니 내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소하비는 그 말에 멈칫하더니 이내 진서준의 뜻을 알아챘다.“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거죠?”“난 거짓말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진서준이 평온하게 대답하자 소하비는 내심 기뻤다.“좋아요. 당신은 이제부터 내 친구입니다.”하지만 옆에서 대화를 듣던 황예은의 얼굴은 창백해졌다.자기가 진서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매력이 없단 말인가?황예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소하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황예은 씨, 무슨 일 있나요? 몸이 불편한 건가요?”“괜찮아요.”황예은이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동안 익숙했던 황예은의 태도와는 거리가 먼 태도에 소하비는 저도 몰래 움찔했다.여자의 마음은 바다 밑의 바늘과도 같았다.조금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왜 눈앞의 여자가 갑자기 이런 태도로 변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박서명은 진서준과 소하비 왕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박서명의 에리 그룹은 실력이 강력해 황씨 가문과 충분히 겨룰 수 있었지만 샛터 왕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고 약했다.그런데 진서준이 샛터 왕자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박서명은 더 이상 악의를 품고 진서준과 경쟁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반 시간 후, 경매장 홀의 불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밝은 빛 한 줄기가 무대 위로 비춰졌다.그리고 몸에 딱 맞는 자주색 전통 복장을 입은 여성이 무대 뒤에서 나왔다.“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저희 명양사해 경매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렇게 많은 권력자와 부자 앞에서 여성은 전혀 기죽지 않아 보였고 대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