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부들부들 떨며 억울한 눈물을 흘렸다.“이놈아, 내가 네게 수없이 말하지 않았어? 사람은 겸손하게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내 말이 네 귀에 들어갔으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거야. 네 할아버지가 무정하다고 나무라지 마.”말을 마친 후, 변철주는 손을 들어 변지오의 머리를 한 방에 내리쳤다.변지오는 그 충격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바닥에 쓰러졌다.변철주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친손자를 죽이는 모습을 보자 모두가 수군대기 시작했다.당당하던 변씨 가문 도련님의 결말은 이토록 처참했다.“용존님, 우리 변씨 가문은 조씨 가문에게 6조를 배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용존님께서 부디 우리 변씨 가문을 용서해 주십시오.”변철주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마지막으로 부탁했다.“알았어.”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심국강에게 돌렸다.그 순간, 심국강도 움찔하며 가슴속에서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심국강은 20여 년간 군인으로서 수많은 전투에서 총알을 맞고도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 20대의 젊은 청년인 진서준 앞에서는 두려움이 불길처럼 번져나가며 그의 온몸을 태웠다.“심국강, 용존께 문안드립니다.”“네 아들과 너희 심씨 가문 중 하나를 선택해.”진서준이 마찬가지로 심국강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던졌다.“용존님, 제 딸은 이미 죽었습니다. 제 아들에게 한 번만 반성할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심국강의 가슴 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딸을 위해 복수하기는커녕, 이제는 그 복수를 해야 할 상대에게 아들의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어이없었다.“조금 전엔 너희가 내게 살길을 준 적 있어?”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만약 내 실력이 형편없는 상황에서 네게 살려달라고 구걸한다면 네가 과연 날 살려줄 수 있을까?”진서준의 말에 심국강은 말문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딴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 심국강에게 주어진다면 심국강은 절대 진서준을 용서하
조씨 가문 저택에 돌아온 후, 조태희는 진서준 일행에게 별장을 따로 하나 배정했다.드디어 세 사람만 있게 되자 허윤진은 신나서 막 떠들어대며 진서준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드러냈다.“진서준, 너 방금 진짜 멋졌어. 단 한 방에 칠급 대종사를 날려버리다니, 정말 대박이야.”그 말에 진서준은 씩 웃으며 말했다.“방금 내가 날려버린 사람,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니야.”“약한 사람이 아니라고?”허윤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한 방에 그 사람 날아갔잖아?”“맞아, 한방만 쓰긴 했지. 하지만 그 한 방에 내 힘의 절반이 들어갔어.” 진서준의 말을 허윤진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응? 근데 내 눈엔 왜 그렇게 쉽게 보였지?”분명 그 한 방은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전혀 없었다.“칠급 대종사라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사람이 아니야. 방금 그 한 방과 그 검격에 두 대종사를 물리친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는 그 사람들이 날 얕봤기 때문이지.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전력을 다해 기습 공격을 들이댔기 때문이야.” 진서준이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만약 변운도와 강명찬이 진서준이 용존임을 확신하고 전력을 다해 싸웠다면 진서준이 절대 지금처럼 쉽게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두 대종사의 과소평가 덕분에 진서준은 외부인이 보건대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상황을 압도한 것이다.진서준이 방금 선보인 두 번의 일격은 전력을 다해 날린 게 확실했다.칠급 대종사는 거의 무도계 정상에 서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진서준이 한 경지를 더 넘어야 전력을 다해 덤벼드는 강명찬과 변운도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그렇구나...”허윤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대충 이해했어. 설표 특전대에서 그 여자 종사 고소연이 처음엔 날 무시했잖아. 그랬다가 내가 날린 한 방을 맞고 쓰러질 뻔했지. 그 후에 고소연이 전력을 다하니까 내가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없었어.”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화제를 이어갔다.“그러니까 앞으로 누구든 네게 도전하
허윤진은 그 모습을 보고 진서준의 다리를 자기 다리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나도 할래.”“좋아,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진서준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 더 편하게 누웠다.허사연이 허리를 굽혀서 손으로 눌러야 해서 허사연의 풍만한 가슴이 가끔 진서준의 코와 얼굴에 닿았다.어차피 두 사람은 이미 명실상부한 연인사이었기에 둘만 있었다면 진서준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문제는 허윤진이 진서준의 허벅지를 열심히 마사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은은한 향기와 부드러운 촉감이 이중으로 진서준을 자극하자 진서준의 호르몬이 미친 듯이 분비하며 몸을 제대로 공제하기 힘들어졌다.허사연은 그런 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마사지를 이어갔지만 허윤진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허윤진의 시선은 어느새 작은 텐트처럼 올라오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순간, 허윤진의 얼굴은 불타오르듯 빨개졌고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하지만 이미 허윤진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손은 점점 다른 곳으로 미끄러져 가더니 결국 실수로 그곳에 닿고 말았다.그러자 진서준이 가볍게 신음을 냈다.“왜 그래? 내가 너무 세게 눌렀어?”허사연이 깜짝 놀라며 묻자 진서준은 고개를 급히 흔들며 말했다.“아니야, 네 힘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허사연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허윤진의 문제란 말인가?허사연은 고개를 돌려 허윤진을 바라봤고 그녀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자 이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봤다.그제야 허사연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하지만 허사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진서준에게 마사지를 이어갔다.잠시 후, 허사연은 조용히 말했다.“윤진아, 너 먼저 방에 가서 쉬어.”“응, 알겠어.”허윤진은 황급히 진서준의 다리를 소파에 내려놓고 방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허윤진이 사라지자 허사연은 고개를 숙여 진서준의 귀에 속삭였다.“또 그런 생각 하는 거야?”“응...”진서준도 솔직하게 한 글자로 답했다.허사연의 부드러운 손길이 이어진다면 어느 남자라
허사연은 허순재의 전화를 받고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무슨 일이야?”진서준은 손으로 허사연의 얇은 허리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물었다.이 완벽한 몸매는 오랫동안 봐 왔지만 여전히 손길을 멈출 수 없게 했다.허사연은 진서준의 품에 몸을 맡기며 말했다.“허순재가 전화했어. 오늘 점심에 만찬을 예약했다고 하면서 어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했어. 근데 변지오는 네가 어젯밤에 죽였잖아. 허순재 가족이 네 정체를 알 리 없는데?”허사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추측이 맞다면 사과는 가짜일 거야. 허순재 일행은 아마 우리가 만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유인한 후, 든든한 조력자를 불러 우릴 혼내주려고 그러는 거야.”허사연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추측이 맞는 것 같아.”누군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호의를 베풀면 분명 뭔가 음흉한 속셈이 있을 것이다. 허순재 같은 자존심 강한 사람이 진서준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사과할 리가 없었다.진서준의 말대로 든든한 조력자를 일단 불러놓고 식사를 핑계로 허사연 일행을 끌어들인 후, 따끔하게 혼내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그럼 어쩔래? 갈래, 말래?”허사연이 물었다.“우릴 초대했으니 당연히 가야지. 가서 허씨 가문이 어떤 대단한 인물을 불러왔는지 보자고.”진서준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허씨 가문은 물론이고, 설령 심국강이 오늘 초대한 부장급 군관이라고 해도 진서준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정오도 되기 전에 장서안은 약속한 식당에 미리 도착했다.오늘 장서안은 특별히 새 정장을 차려입고 왔다.키가 훤칠하고 우람진 체격에 맞춰 입은 양복을 보니 장서안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하늘 아래에 우뚝 서 있는 거인처럼 웅장한 느낌이 물씬 났다.“타고난 천재는 역시 분위기부터 다르구나.”“설표 특전대 최고 천재는 역시 달라도 한참 다르구나.”“서준
“그래? 정말 잘됐네.”“서안아, 이모가 진심으로 축하해.”허준서는 장서안이 언급한 처방전에 대해 궁금해졌다.“서안아, 네가 말한 그 처방전을 나한테 좀 보여줄 수 없어?”“그건...”장서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건 우리 설표 특전대 극비야. 교관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장서안의 단호한 태도에 허준서는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그럼 너희 교관님 이름이 뭐야?”“그것도 극비야. 우리 교관님은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셔. 누구에게도 교관님 사생활을 방해받길 원치 않으시거든.”장서안은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군대 내의 보안 규정은 다른 곳보다 훨씬 엄격했고 하물며 장서안이 속한 설표 특전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장서안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자 허준서는 한숨을 쉬었다.“그래, 안 알려줘도 괜찮아. 근데 네 절친 부탁 하나만 들어줘야겠어.”“군 규정을 어기지 않는 선이라면 당연히 도와줄 수 있어.”장서안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내 이 두 다리 보이지?”허준서는 자기 다리를 가리켰다.“나도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다리 어쩌다 부러지게 된 거야?”장서안은 미간을 찌푸렸다.허준서는 현재 성약당에서 지명한 연수생인데 감히 그를 건드리는 자는 곧 성약당을 적으로 돌리는 셈이었다.성약당의 위상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높아 어떤 가문도 성약당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어떤 죽일 놈이 부러뜨렸어.”허준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이고, 서안아, 넌 우리 준서가 요 며칠 얼마나 불쌍하게 보냈는지 모를 거야.”강정숙은 눈물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얼마 전 준서가 중부 지역에 가서 친척 하나를 만났어. 그 친척이 우리 준서가 성약당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질투해 사람을 시켜 준서 두 다리를 부러뜨렸어. 근데 그놈이 지금 동북에 와 있어. 오늘 점심 만찬에도 참석할 거야.”강정숙은 진실을 완전히 왜곡하며 모든 책임을 진서준 일행에게 떠넘겼다.장서안은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분
“당장 그놈한테 전화해서 이리 기어 오라 해!”심국도는 엄숙한 목소리로 심국강에게 명령했다.조카딸을 죽이고 심지어 심씨 가문을 없애겠다고 떠벌리다니, 이 녀석은 부장급 장교 심국도를 허수아비로 여기는 걸까?심국도의 위상이라면 동북에서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예전에 동북을 주름잡던 조씨 가문조차 심국도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심씨 가문이 동북에서 점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형님, 그런데 그 녀석도 신분이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그 녀석은 국안부 소속 상경이에요.”심국강이 서둘러 진서준의 신분을 설명했다.어젯밤에 형님에게 상황을 일러바칠 때는 진서준의 신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국안부 사람이라고?”심국도는 그 말에 멈칫하며 물었다.부장급 장교인 심국도는 국안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호국사는 상황에 따라 지역 군부를 호출할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권력의 크기로 보자면 호국사는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더구나 호국사보다 급이 높은 상경이라면 심국도와 거의 동등한 위치였다.하지만 심국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국안부 상경이면 또 뭐 어때? 살인자는 마땅히 그 죗값을 치러야 해. 설령 오늘 내가 그놈을 죽여서 호국사가 책임을 물으러 온다고 해도 난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심국도의 강경한 태도에 심국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진서준은 이미 잠에서 깨어 조희선과 전화를 하며 집안 상황을 묻고 있었다.심국강은 진서준이 통화 중인 것을 듣고는 자기 전화를 일부러 끊었다고 오해했다.“형님, 그놈이 전화를 안 받습니다...”심국강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겁먹은 거겠죠. 우리 큰아버지가 무서운가 보네요.”심도준이 옆에서 대화에 끼어들었다.군부 부장급 장관이라면 명문대가들조차 머리를 숙이는 법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이 겁먹었다는 말은 심국강조차 믿지 않았다.“전화를 안 받으면 우리가 직접 가면 되지.”심국도는 냉랭한 얼굴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 너무 예의 없는 게 아닌가요? 오늘 점심이 뭐 일반 자리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죠?”강정숙이 화가 난 얼굴로 투덜댔다.“그냥 무시해. 음식 다 나오면 우리끼리 먹자.”호텔의 음식은 매우 빨리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상 위에 차려졌다.길이가 5미터나 되는 대형 원탁에 온갖 산해진미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서안아,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먹어.”허준서가 활짝 웃으며 음식을 권했다.“그래.”장서안은 수트 상의를 벗고 주저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오늘은 설표 특전대 장병들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휴일이었다.오늘이 지나면 무려 15일간의 혹독한 훈련이 장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집중 훈련이 끝나면 바로 8대 특전대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서안아, 우리 한잔하자.”허준서가 고급 와인을 들고 장서안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난 주량이 개판이야...”장서안은 손사래를 쳤다.보통 사람들은 군 출신은 술이 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군부에서는 금주가 원칙이었고 특히 설표 특전대 같은 8대 특전대 중 하나의 정예부대는 명령을 어기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장서안은 설표 특전대에 들어온 지 3년째였다.평소에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마신다고 해도 설날 같은 특별한 날에 전우들과 조금 즐기는 정도였다.술이 약한 장서안은 몇 잔 마시지 않아도 금세 취해버리곤 했다.하지만 오늘은 허준서 가족들과 함께 기분 좋게 몇 잔을 마신 탓에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그만해, 서안에게 술 그만 권해. 이따가 중요한 일이 남아 있잖아.”허순재가 말을 꺼냈다.장서안을 부른 이유는 허사연 자매를 혼내주기 위해서였다.그런데 핵심 인물인 장서안이 취해 쓰러지면 계획이 틀어질 판이었다.중요한 일이 언급되자 모두가 비로소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을 떠올렸다.“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안 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강정숙이 참다못해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아예 우리 허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 거 아니야?
VIP룸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게다가 진서준이 말할 때 다들 조용해졌던 터라 진서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마디가 허준서 일행의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겁먹고 쓰러졌다니, 눈앞의 남자는 오만한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헛소리도 정도껏 해. 내 절친 장서안은 설표 특전대 최고 천재이자 전신전에 들어갈 인물이라고. 그런 사람이 너 따위에게 겁먹고 쓰러질 리가 없잖아.”허준서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소리쳤다.진서준은 허준서를 힐끔 쳐다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장서안이 너 같은 사람을 절친으로 두다니, 진짜 눈이 먼 거지.”허사연 자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진서준의 말에 동의했다.허사연 자매는 장서안이라는 청년을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간주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장서안은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서 허준서 같은 인물과 친구가 되었다.“눈이 먼 건 너야.”허준서가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쳤다.“됐어, 얼른 서안을 일으켜 병원부터 데려가 봐. 왜 이렇게 쓰러진 건지 알아봐야 할 게 아니야.”장서안이 기절한 원인이 무척 궁금했던 허순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실 허순재 역시 장서안이 진서준을 보고 기절했다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었지만, 혹시 몰라 확인차 병원에 데려가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허순재의 말에 허씨 가문 사람들이 허둥지둥 장서안을 둘러업고 호텔을 떠났다.“흥, 너희 셋 두고 보자. 내 절친이 정신 차리고 나면 그날이 너희 제삿날이야.”허준서는 으름장을 놓고는 휠체어를 밀며 뒤따라 나갔다.허씨 가문의 떠들썩한 무리가 모두 나가고 나니 VIP 룸은 금세 조용해졌다.진서준은 남겨진 음식들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웨이터를 불렀다.“여기요, 아까와 똑같은 메뉴로 다시 차려주세요. 계산은 아까 그 사람들이 할 겁니다. 어차피 그 사람들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알겠습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은 방을 깔끔하게 치운 뒤 새로운 음식을 한 상 차렸다.“마음껏 먹어
이용진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진서준과 황예은은 동년배 중에서 소문난 천재였다.이 두 사람은 연애 상대를 찾을 때 자기 실력과 지위가 비슷한 사람을 찾을 것이다.“이 삼촌.”황예은이 이용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쌀쌀했다.“진 신의님, 사실 이번 경매에서 저는 신의님을 지원할 생각이었습니다.”이용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우리 황 조카가 있으니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요.”황씨 가문의 재력과 비교하면 이용진의 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무조건 칠색정화를 손에 넣을 것이다.진서준이 대화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그중 진서준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그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흰 모자를 쓰고 짙은 눈썹과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청년이었다.“세상에, 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가 아니야? 왕자도 이 장소에 왔어?”“저 왕자가 원하는 물건이 나와 겹치지 않을지 걱정이야. 그럼 오늘 경매장에 헛걸음을 치게 될 게 분명할 거야.”“쯧쯧, 샛터의 셋째 왕자 앞에서는 초아국 금융 업계 거물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을 거야.”사람들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다들 돈 많은 최고급 권력자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고귀한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한없이 들떠 있었다.황예은이 진서준에게 소개했다.“저 사람은 샛터 셋째 왕자, 소하비야.”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예 로마에서 태어났다.이 말은 바로 샛터의 왕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샛터의 부유함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세상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8성급 호텔도 샛터에 있었다.그곳에는 부유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샛터 왕실은 돈을 그냥 휴지로 취급했다.소하비는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바퀴 휙 돌아본 뒤, 바로 황예은에게 다가갔다.“황예은 씨, 이렇게 여기서 만나다니
경매장은 유람선의 가장 위층에 자리 잡고 있고 입구의 보안 검사도 매우 엄격했다.첫 번째 검사는 바로 자산을 제시하는 것이었다.전체 자산이 조 단위여야 했고 손에 쥔 예금 역시 조 단위여야 했다.첫 번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이 검사만 해도 99%의 사람들이 걸러지게 된다.조 단위 자산을 자랑하는 부자는 꽤 있겠지만 조 단위 예금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대다수 부자는 손에 쥔 돈을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다.“너랑 함께 와 참 다행이네. 네가 없었다면 절대 들어올 수 없었을 거야.”진서준이 엄격한 검사를 보며 감탄했다.황예은은 보기 드물게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진서준도 드디어 황예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진서준은 경매장에 들어서자, 한 번 둘러보았다.경매장은 70여 평 크기로 4줄의 계단식 좌석이 있었고 그 좌석들 정면에는 무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경매가 시작되면 전시물은 바로 이 무대에서 등장하게 된다.두 사람은 한적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아 조용히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네 여자 둘을 데려오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아?”황예은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서지은과 허윤진은 함께 경매장에 따라오지 않았고 유람선의 다른 곳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다.“괜찮아, 누군가 그 애들을 보호하고 있어.”진서준이 대답했다.정확히 말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교룡이었다.진서준은 올기가 서지은과 허윤진과 함께 다니게 했다.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교룡인 올기 한 마리로도 충분히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다.올기는 동호에서 풀려난 이후 서서히 실력을 회복하고 있었다.비록 아직 절정의 상태는 아니지만 칠급 이하의 대종사는 올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황예은 씨, 또 만났네요.”이때 박서명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황예은 씨도 여기 물건에 관심이 있나 보네요.”예전에 박서명이 경매에 참석했을 때 황예은은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황예은이 예전에 오지 않은 건 단순히 시간이 없었기
진서준과 서정훈은 환경 오염을 대가로 지역 경제 발전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박진강은 네가 죽였지?”진서준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예상외의 질문에 박서명은 움찔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봤다.박서명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냉기를 품은 독기가 눈에서 뿜어나왔다.박신준과 연락이 닿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 박서명은 자기 형제가 뭔가 큰 일을 당했음을 직감했다.“내가 어떻게 내 아들을 죽일 수 있지?”박서명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진서준은 바로 사실을 폭로했다.“그 녀석이 네 친아들이 아니니까 죽일 수 있지. 물론 너와 박신준 둘 중에 누가 누구에게 오쟁이를 진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이 말에 박서명은 순간 당황해하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오늘 밤 달빛이나 제대로 즐겨.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말을 마친 박서명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너 말이 참 거칠어.”황예은의 말에 진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이건 전부 저놈이 자초한 일이야.”“너는 혼자잖아. 박씨 가문이 공해에서 너에게 무슨 일을 할지 걱정되지 않냐=아?” 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언젠가는 한 판 벌여야 할 싸움이야.”“대한민국 전역에서 너처럼 거침없고 대담한 사람은 아마 몇 명 되지 않을걸?”“그 말은 칭찬이야? 아니면 욕이야?”진서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묻자 황예은은 대답하지 않았다.황예은의 말에는 칭찬과 비하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잠시 후, 유람선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유람선은 서서히 부두를 떠나 어두운 바닷속으로 향해 나갔다.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황예은은 달랐다.“유람선 안으로 들어가자.”진서준이 제안하자 황예은은 선뜻 동의했다.“좋아.”두 사람이 막 유람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 마스터님.”진서준이 머리를 돌리자 두 사람
“이렇게 큰 유람선은 처음 봐!”차에서 내리자 허윤진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철갑 괴물을 감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서울시 명문대가 출신인 허윤진도 이 유람선 앞에서는 감탄 이외에 할 말이 없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마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주변을 지나가는 권력자들도 유람선의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대한민국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지만 천하 유람선에 올라설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황예은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갑부 맏딸이 아니었다면 진서준은 초대장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진서준, 너랑 서지은은 이렇게 큰 유람선을 본 적 있어? 너희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은데.”허윤진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묻자 서지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에 아빠랑 이 유람선에 탄 적 있어. 그때 내 표정도 너 지금 표정과 똑같았거든.”서씨 가문은 강남 최고의 가문인지라 서지은이 천하 유람선에 올라탄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난 오늘이 처음이야.”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하자 허윤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넌 이 유람선이 하나도 놀랍지 않아?”“안 놀랍다면 거짓말이지.”진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허윤진은 말로만 놀랍다고 하고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는 진서준이 못마땅해 눈을 굴렸다.“배에 올라타자.”황예은이 말을 꺼내자 다들 그녀를 따라 여러 차례의 보안 점검을 거쳐 유람선에 올랐다.유람선 안에 들어선 후, 진서준은 서지은에게 허윤진을 데리고 유람선 내부를 구경하라고 시켰다.그리고 자기는 황예은과 함께 유람선 갑판에 올라가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유람산에 올라온 사람 중, 권력자도 많았고 무인도 적지 않았다.종사 경지의 무인들은 흔치 않았고 대다수는 사급 대종사였으며 오급 대종사와 육급 대종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 정도 인원만 해도 이미 굉장히 큰 규모였다.강남과 서남 지역에서는 이렇게 많은 대종사가 한자리에 모인 걸 진서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명주시는 역시 진짜
이 자식은 정말 밉상인데 의술 하나만은 정말 뛰어난 듯했다.황예은은 오늘 진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또 다른 평가를 내렸다.“미리 말해두지만 난 거기서 널 보호하는데 그렇게 많은 정력을 퍼부을 수 없어.”진서준이 미리 경고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을 치료할 약재를 손에 넣은 후, 간첩을 찾으러 가야 했다.그때가 되면 유람선 위에 사람이 많아 자연스레 보는 눈도 많을 것이다.누군가 황예은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황예은은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알아서 날 보호할 사람을 구할 거야. 알았어, 그럼 너 먼저 밥 먹어. 나중에 약 바르러 올게.”진서준은 방을 나갔다.허윤진은 진서준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물었다.“진서준, 오늘 밤만 지나면 우리는 서울로 돌아갈 거지?”“왜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려 해?”진서준은 허윤진의 말에 의아해했다.황예은이라는 여우를 경계하기 위해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허윤진이 차마 꺼낼 수 없었다.“너무 늦으면 엄마랑 진서라가 걱정할까 봐 그래.”허윤진이 비장 카드인 두 사람을 꺼냈다.어머니와 진서라를 생각하니 진서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약재만 받으면 내일 바로 돌아가자.”“이따가 또 저 여자 약 발라줘야 해?”허윤진이 질투와 원한이 섞인 눈빛을 보이자 진서준은 등골이 서늘했다.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속이고 불륜을 피운 거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응, 근데 이따가 바르는 건 마지막 약이야.”“그럼 다행이네.”허윤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예은의 몸매는 너무 매력적이라 여성인 허윤진조차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진서준 같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불꽃이라도 튄다면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약 바를 시간이야. 일단 들어가서 약 바르고 나올게.”진서준이 약을 들고 들어가자 황예은이 이미 죽을 다 먹은 걸 발견했다.“엎드려, 먼저 등부터 발라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은 이미 사라졌다.황예은은 낯선 방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죽었나?”그날 밤의 고문은 황예은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지독한 기억이었다.살 속에 깊숙이 박힌 가시가 빠져나갈 때는 피부와 살까지 함께 묻어 나왔다.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깨어났구나.”익숙한 목소리가 황예은의 귀에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진서준이 평범한 죽 한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여기는 어디지?”진서준은 천천히 대답했다.“내 방이야.”이건 사실이지만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황예은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진서준을 빤히 쏘아보았다.지금의 황예은은 병기운이 살짝 있었고 평소의 차갑고 도도한 여왕의 분위기와는 완판 다른 다소 애교가 섞인 느낌이 있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반응에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맞긴 한데, 그 말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황예은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누가 들으면 우리 둘이 이 방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든 줄 알겠어.”“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손해 본 건 나야.”진서준이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자 황예은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정말 얼굴 두껍구나.”“난 여자친구가 있어. 내 여자친구가 내가 다른 여자를 내 방으로 데려온 걸 알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여자친구가 화나서 나랑 헤어지면 내가 손해 본 게 아니야?”진서준이 논리적으로 해명하자 황예은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쓸데없는 말은 그만 집어치워. 일단 밥이나 먹어. 다 먹었으면 약 바를 거야.”진서준은 그릇을 황예은에게 건넸다.황예은이 일어나자 몸에 덮인 이불이 떨어졌다.진서준의 눈앞에 황예은의 완벽한 곡선을 자랑하는 풍만한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진서준은 그 부위를 힐끗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내 잘못 아니야.”진서준이 한마디 보태자 황예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더 붉어졌다.
황씨 가문은 일시적으로 갈 수 없었다. 그곳은 아직 안전하지 않다.동호 별장에 돌아왔을 때, 올기는 여전히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용존님.”진서준이 돌아오자 올기는 신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갔다.진서준은 진지한 말투로 한마디 던졌다.“문을 잘 지켜.”‘또 그 여자야? 이 여자는 왜 자꾸 다치지? 혹시 액운이 깃든 운명인가?’올기는 호기심을 품고 생각했다.이때는 이미 깊은 밤인지라 허윤진과 서지은은 잠들어 있었다.진서준은 가볍게 발을 옮기면서 될수록 소리를 내지 않고 황예은을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황예은을 침대에 눕히고 진서준은 큰 물통에 물을 채운 후 가제와 은침을 준비했다.모든 준비가 끝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볼품없게 된 옷을 벗겼다.이전의 완벽하고 무결했던 몸과는 달리 지금의 황예은은 차마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황예은의 몸은 온전한 곳 하나 없이 피와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채찍에 맞은 자국, 피부가 갈라진 자국, 심지어 가시가 박혀 있는 곳도 있었다.진서준은 그 상처들을 보며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려 했다.허사연 일행이 이런 고문을 당했다면 진서준은 오늘 밤 이후, 박씨 가문이 다시는 명주시에 존재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을 사랑하지 않았다.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연약한 여성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무자비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누구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진서준이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의 몸에 묻은 피를 닦을 때 의도치 않게 그녀의 상처에 손이 닿았다.가볍게 닿기만 해도 황예은은 몸을 바르르 떨며 움찔했다.진서준이 황예은의 온몸에 묻은 피를 닦는 데만 두 시간이나 걸렸고 수건은 20개 이상 교체해야 했다.가제에 묻은 핏자국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진서준은 흉터를 없애는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재가 부족해 늦은 시간임을 뻔히 알면서도 약왕 이용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누구야?”밤늦게 전화를 받은 이용진이 기분 나쁘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모든 이들의 몸을 감쌌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산맥이 자기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숨이 막혀 호흡이 어려웠다.본래 아무런 두려움도 없던 군인들도 이 순간, 총을 잡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진서준은 박신준의 비명이 울려 퍼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손에 든 참선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박신준의 배 부분의 살과 피부가 모두 떨어져 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 안에 하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몇몇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참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구토하기 시작했다.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이었다.하문천도 이 광경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몸을 돌렸다.“이건 시작에 불과해.”진서준의 말에 박신준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배가 파여 나갔으나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니, 박신준의 몸과 정신은 이와 같은 무자비한 대우를 감당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발을 들어 박신준에게 발차기를 날려 넘어뜨렸다.바닥에 쓰러진 박신준의 등은 진서준을 향해 있었다.이후, 진서준은 다시 참선검을 꺼내 이전의 행동을 반복했다.3분도 채 되지 않아 박신준의 등 쪽에 있던 척추뼈가 그대로 드러났다.박신준의 팔과 다리에 피가 남아 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물건이 수십 년 된 유골일 것이라 오해했을 것이다.박신준의 드러난 뼈 위에 살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날 죽여줘... 날 얼른 죽여!”박신준이 비참하게 울부짖었다.“진서준, 그 녀석을 죽여.”하문천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박씨 가문 사람들은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몰살하겠어.”말이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들어 공중에서 박신준의 등을 가격했다.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박신준의 등에 있는 뼈는 한 조각씩 부서져 부스러기로 변했다.진서준은 참선검을 들고 지옥에서 나온 악마처럼 냉정하게 자기를 막고 있는 군인들을 바라보았다.“비켜! 비키지 않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을 거야.”살인귀의
“저기 있어...”진서준은 박신준을 바닥에 내던지고 빠르게 건물로 달려갔다.“경비 연대 좀 보내.”박신준은 숨을 두어 번 가까스로 몰아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오늘 박신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황예은이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하문천 어르신, 보셨죠? 저는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얌전하게 있는데 저 녀석은 제 체면 따윈 신경도 안 씁니다.”박신준이 이를 악물고 바로 고자질하자 하문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만둬, 방금 일어난 일은 못 본 걸로 할게.”박신준은 하문천이 자기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줄 알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말은 사실 진서준에게 하는 말이었다.지선도 죽일 수 있는 진서준이 굳이 박신준을 두려워할 리 없다.진서준은 속도를 내서 뛰어가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진서준은 진한 피비린내를 맡고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빠르게 피비린내가 나는 쪽을 따라갔다.우르릉!갑자기 진서준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눈앞의 황예은은 도살장에 끌려간 죽은 돼지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황예은의 몸은 피투성이였고 피부가 찢겨나갔으며 살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거의 온전한 상태의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피는 황예은의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떨어져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쿵!진서준은 발로 감옥 문을 열어젖히고 참선검을 꺼내 밧줄을 끊어냈다.그러자 황예은이 이내 진서준의 품에 떨어졌다.“이 개자식!”진서준은 황예은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박신준이 여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대우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박신준의 아들 박진강은 황예은이 죽인 게 아니었다.참선검도 주인의 살기를 감지한 듯 미세한 빛을 발산했다.진서준은 황예은를 안고 천천히 건물을 빠져나갔고 참선검은 그의 뒤를 떠다녔다.작은 건물 밖에는 수백 명이 총을 장전하고 출구를 겨누고 있었다.진서준이 황예은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자 군인들은 총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