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은 그 모습을 보고 진서준의 다리를 자기 다리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나도 할래.”“좋아,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진서준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 더 편하게 누웠다.허사연이 허리를 굽혀서 손으로 눌러야 해서 허사연의 풍만한 가슴이 가끔 진서준의 코와 얼굴에 닿았다.어차피 두 사람은 이미 명실상부한 연인사이었기에 둘만 있었다면 진서준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문제는 허윤진이 진서준의 허벅지를 열심히 마사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은은한 향기와 부드러운 촉감이 이중으로 진서준을 자극하자 진서준의 호르몬이 미친 듯이 분비하며 몸을 제대로 공제하기 힘들어졌다.허사연은 그런 점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마사지를 이어갔지만 허윤진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허윤진의 시선은 어느새 작은 텐트처럼 올라오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순간, 허윤진의 얼굴은 불타오르듯 빨개졌고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하지만 이미 허윤진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손은 점점 다른 곳으로 미끄러져 가더니 결국 실수로 그곳에 닿고 말았다.그러자 진서준이 가볍게 신음을 냈다.“왜 그래? 내가 너무 세게 눌렀어?”허사연이 깜짝 놀라며 묻자 진서준은 고개를 급히 흔들며 말했다.“아니야, 네 힘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허사연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허윤진의 문제란 말인가?허사연은 고개를 돌려 허윤진을 바라봤고 그녀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자 이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봤다.그제야 허사연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하지만 허사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진서준에게 마사지를 이어갔다.잠시 후, 허사연은 조용히 말했다.“윤진아, 너 먼저 방에 가서 쉬어.”“응, 알겠어.”허윤진은 황급히 진서준의 다리를 소파에 내려놓고 방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허윤진이 사라지자 허사연은 고개를 숙여 진서준의 귀에 속삭였다.“또 그런 생각 하는 거야?”“응...”진서준도 솔직하게 한 글자로 답했다.허사연의 부드러운 손길이 이어진다면 어느 남자라
허사연은 허순재의 전화를 받고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무슨 일이야?”진서준은 손으로 허사연의 얇은 허리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물었다.이 완벽한 몸매는 오랫동안 봐 왔지만 여전히 손길을 멈출 수 없게 했다.허사연은 진서준의 품에 몸을 맡기며 말했다.“허순재가 전화했어. 오늘 점심에 만찬을 예약했다고 하면서 어제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했어. 근데 변지오는 네가 어젯밤에 죽였잖아. 허순재 가족이 네 정체를 알 리 없는데?”허사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추측이 맞다면 사과는 가짜일 거야. 허순재 일행은 아마 우리가 만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유인한 후, 든든한 조력자를 불러 우릴 혼내주려고 그러는 거야.”허사연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추측이 맞는 것 같아.”누군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호의를 베풀면 분명 뭔가 음흉한 속셈이 있을 것이다. 허순재 같은 자존심 강한 사람이 진서준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사과할 리가 없었다.진서준의 말대로 든든한 조력자를 일단 불러놓고 식사를 핑계로 허사연 일행을 끌어들인 후, 따끔하게 혼내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그럼 어쩔래? 갈래, 말래?”허사연이 물었다.“우릴 초대했으니 당연히 가야지. 가서 허씨 가문이 어떤 대단한 인물을 불러왔는지 보자고.”진서준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허씨 가문은 물론이고, 설령 심국강이 오늘 초대한 부장급 군관이라고 해도 진서준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정오도 되기 전에 장서안은 약속한 식당에 미리 도착했다.오늘 장서안은 특별히 새 정장을 차려입고 왔다.키가 훤칠하고 우람진 체격에 맞춰 입은 양복을 보니 장서안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하늘 아래에 우뚝 서 있는 거인처럼 웅장한 느낌이 물씬 났다.“타고난 천재는 역시 분위기부터 다르구나.”“설표 특전대 최고 천재는 역시 달라도 한참 다르구나.”“서준
“그래? 정말 잘됐네.”“서안아, 이모가 진심으로 축하해.”허준서는 장서안이 언급한 처방전에 대해 궁금해졌다.“서안아, 네가 말한 그 처방전을 나한테 좀 보여줄 수 없어?”“그건...”장서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건 우리 설표 특전대 극비야. 교관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장서안의 단호한 태도에 허준서는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그럼 너희 교관님 이름이 뭐야?”“그것도 극비야. 우리 교관님은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셔. 누구에게도 교관님 사생활을 방해받길 원치 않으시거든.”장서안은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군대 내의 보안 규정은 다른 곳보다 훨씬 엄격했고 하물며 장서안이 속한 설표 특전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장서안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자 허준서는 한숨을 쉬었다.“그래, 안 알려줘도 괜찮아. 근데 네 절친 부탁 하나만 들어줘야겠어.”“군 규정을 어기지 않는 선이라면 당연히 도와줄 수 있어.”장서안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내 이 두 다리 보이지?”허준서는 자기 다리를 가리켰다.“나도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다리 어쩌다 부러지게 된 거야?”장서안은 미간을 찌푸렸다.허준서는 현재 성약당에서 지명한 연수생인데 감히 그를 건드리는 자는 곧 성약당을 적으로 돌리는 셈이었다.성약당의 위상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높아 어떤 가문도 성약당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어떤 죽일 놈이 부러뜨렸어.”허준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이고, 서안아, 넌 우리 준서가 요 며칠 얼마나 불쌍하게 보냈는지 모를 거야.”강정숙은 눈물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얼마 전 준서가 중부 지역에 가서 친척 하나를 만났어. 그 친척이 우리 준서가 성약당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질투해 사람을 시켜 준서 두 다리를 부러뜨렸어. 근데 그놈이 지금 동북에 와 있어. 오늘 점심 만찬에도 참석할 거야.”강정숙은 진실을 완전히 왜곡하며 모든 책임을 진서준 일행에게 떠넘겼다.장서안은 그 말을 듣고 속에서 분
“당장 그놈한테 전화해서 이리 기어 오라 해!”심국도는 엄숙한 목소리로 심국강에게 명령했다.조카딸을 죽이고 심지어 심씨 가문을 없애겠다고 떠벌리다니, 이 녀석은 부장급 장교 심국도를 허수아비로 여기는 걸까?심국도의 위상이라면 동북에서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예전에 동북을 주름잡던 조씨 가문조차 심국도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심씨 가문이 동북에서 점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형님, 그런데 그 녀석도 신분이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그 녀석은 국안부 소속 상경이에요.”심국강이 서둘러 진서준의 신분을 설명했다.어젯밤에 형님에게 상황을 일러바칠 때는 진서준의 신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국안부 사람이라고?”심국도는 그 말에 멈칫하며 물었다.부장급 장교인 심국도는 국안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호국사는 상황에 따라 지역 군부를 호출할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권력의 크기로 보자면 호국사는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더구나 호국사보다 급이 높은 상경이라면 심국도와 거의 동등한 위치였다.하지만 심국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국안부 상경이면 또 뭐 어때? 살인자는 마땅히 그 죗값을 치러야 해. 설령 오늘 내가 그놈을 죽여서 호국사가 책임을 물으러 온다고 해도 난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심국도의 강경한 태도에 심국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진서준은 이미 잠에서 깨어 조희선과 전화를 하며 집안 상황을 묻고 있었다.심국강은 진서준이 통화 중인 것을 듣고는 자기 전화를 일부러 끊었다고 오해했다.“형님, 그놈이 전화를 안 받습니다...”심국강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겁먹은 거겠죠. 우리 큰아버지가 무서운가 보네요.”심도준이 옆에서 대화에 끼어들었다.군부 부장급 장관이라면 명문대가들조차 머리를 숙이는 법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이 겁먹었다는 말은 심국강조차 믿지 않았다.“전화를 안 받으면 우리가 직접 가면 되지.”심국도는 냉랭한 얼굴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 너무 예의 없는 게 아닌가요? 오늘 점심이 뭐 일반 자리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죠?”강정숙이 화가 난 얼굴로 투덜댔다.“그냥 무시해. 음식 다 나오면 우리끼리 먹자.”호텔의 음식은 매우 빨리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상 위에 차려졌다.길이가 5미터나 되는 대형 원탁에 온갖 산해진미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서안아,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먹어.”허준서가 활짝 웃으며 음식을 권했다.“그래.”장서안은 수트 상의를 벗고 주저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오늘은 설표 특전대 장병들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휴일이었다.오늘이 지나면 무려 15일간의 혹독한 훈련이 장병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집중 훈련이 끝나면 바로 8대 특전대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서안아, 우리 한잔하자.”허준서가 고급 와인을 들고 장서안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난 주량이 개판이야...”장서안은 손사래를 쳤다.보통 사람들은 군 출신은 술이 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군부에서는 금주가 원칙이었고 특히 설표 특전대 같은 8대 특전대 중 하나의 정예부대는 명령을 어기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장서안은 설표 특전대에 들어온 지 3년째였다.평소에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마신다고 해도 설날 같은 특별한 날에 전우들과 조금 즐기는 정도였다.술이 약한 장서안은 몇 잔 마시지 않아도 금세 취해버리곤 했다.하지만 오늘은 허준서 가족들과 함께 기분 좋게 몇 잔을 마신 탓에 벌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그만해, 서안에게 술 그만 권해. 이따가 중요한 일이 남아 있잖아.”허순재가 말을 꺼냈다.장서안을 부른 이유는 허사연 자매를 혼내주기 위해서였다.그런데 핵심 인물인 장서안이 취해 쓰러지면 계획이 틀어질 판이었다.중요한 일이 언급되자 모두가 비로소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을 떠올렸다.“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안 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강정숙이 참다못해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아예 우리 허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 거 아니야?
VIP룸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게다가 진서준이 말할 때 다들 조용해졌던 터라 진서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마디가 허준서 일행의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겁먹고 쓰러졌다니, 눈앞의 남자는 오만한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헛소리도 정도껏 해. 내 절친 장서안은 설표 특전대 최고 천재이자 전신전에 들어갈 인물이라고. 그런 사람이 너 따위에게 겁먹고 쓰러질 리가 없잖아.”허준서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소리쳤다.진서준은 허준서를 힐끔 쳐다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장서안이 너 같은 사람을 절친으로 두다니, 진짜 눈이 먼 거지.”허사연 자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진서준의 말에 동의했다.허사연 자매는 장서안이라는 청년을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간주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장서안은 사람 보는 안목이 없어서 허준서 같은 인물과 친구가 되었다.“눈이 먼 건 너야.”허준서가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쳤다.“됐어, 얼른 서안을 일으켜 병원부터 데려가 봐. 왜 이렇게 쓰러진 건지 알아봐야 할 게 아니야.”장서안이 기절한 원인이 무척 궁금했던 허순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실 허순재 역시 장서안이 진서준을 보고 기절했다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었지만, 혹시 몰라 확인차 병원에 데려가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허순재의 말에 허씨 가문 사람들이 허둥지둥 장서안을 둘러업고 호텔을 떠났다.“흥, 너희 셋 두고 보자. 내 절친이 정신 차리고 나면 그날이 너희 제삿날이야.”허준서는 으름장을 놓고는 휠체어를 밀며 뒤따라 나갔다.허씨 가문의 떠들썩한 무리가 모두 나가고 나니 VIP 룸은 금세 조용해졌다.진서준은 남겨진 음식들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웨이터를 불렀다.“여기요, 아까와 똑같은 메뉴로 다시 차려주세요. 계산은 아까 그 사람들이 할 겁니다. 어차피 그 사람들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알겠습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은 방을 깔끔하게 치운 뒤 새로운 음식을 한 상 차렸다.“마음껏 먹어
“3분 줄 거니까 당장 그 시간 안에 진서준 그놈을 끌고 나와. 그렇지 않으면 우리 큰아버지가 전화 한 통 걸어 만여 명의 병력을 불러올 거야. 너희 조씨 가문도 그놈과 함께 완전히 소멸되고 싶어?”집사는 심국도의 어깨에 달린 군 계급장을 확인하고는 급히 말했다.“제가 바로 가주님께 전화드리겠습니다.”집사의 전화를 받은 조태희는 심국도 형제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기강과 함께 서둘러 저택 입구로 나왔다.“심 가주, 진 마스터님이 지금 이곳에 없는 게 사실이야. 한 시간 전에 외출했거든.”조태희는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했다.조태희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심국강은 잘 알지만 그래도 진서준이 도망갔을까 봐 의심스러웠다.심국강은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따졌다.“그 자식 어디로 갔다는 거야? 혹시 도망친 거 아냐?”“그건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진 마스터님이 오늘 어떤 연회에 참석하신다고 했어.”조태희가 전해 들은 얘기를 설명했다.“그럼 당장 그놈에게 전화 걸어. 지금 어딨는지 당장 물어봐.”“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봐.”조태희는 휴대폰을 꺼내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진서준은 호텔에서 한창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조태희의 전화를 확인한 진서준은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죠?”“진 마스터님,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국도는 와락 전화를 빼앗았다.“네놈이 지금 어디 있든지 상관없어. 당장 조씨 가문으로 기어와.”심국도는 오만한 명령조로 고함을 질렀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더니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날 보고 싶으면 네가 직접 와.”진서준의 어리고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국도의 표정은 물기를 짤 정도로 어두워졌다.이런 건방진 젊은이는 태어나 처음이었다.“내가 직접 갈 수도 있어. 근데 내가 거기로 가면 네 목숨이 날아갈 각오해야 할 거야.”심국도는 살기를 담아 냉혹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오기나 해. 안 그러면 난 밥 다 먹고 갈 거니까
“방금 난 정말 장서안이 그놈을 보고 놀라서 기절한 줄 알았어...”“그건 오버야. 장서안은 설표 특전대 최고 천재야. 장서안을 기절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야.”“젠장, 우리가 다 호텔을 떠났는데 이 틈을 타 허사연 일행이 도망가면 어쩌죠?”허준서는 진서준과 허사연이 몰래 도망칠까 봐 걱정스러워 우려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장서안 상태가 괜찮아 보이니까 우린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그 녀석들을 꼭 붙잡아둬야 해, 절대 도망가게 할 수 없어.”허순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희 중 두 사람은 여기 남아서 장서안을 지켜봐. 이따가 장서안이 깨어나면 바로 호텔로 데려와.”허순재의 지시가 떨어지자 허씨 가문 사람들은 급히 다시 햇살 호텔로 향했다.허씨 가문 사람들이 호텔로 발걸음을 돌릴 때, 심국강 일행 세 명은 이미 호텔에 도착했다.쾅!심도준은 발차기를 날려 VIP룸의 문을 부수고는 거만하고 기세등등한 자태로 들어왔다.어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였던 심도준과는 달리 오늘 그는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다.진서준의 시선은 심도준을 한 번 쓱 훑어본 후 군복을 입은 심국도에게로 향했다.심국도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고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심국도의 몸에서 풍기는 고압적인 위압감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네가 진서준이야? 내 조카딸을 죽인 범인이 맞지?”“그래, 내가 죽였어.”진서준은 평온하게 사실을 인정했다.쿵!심국도의 몸에서 미친 듯이 강렬한 살기가 흘러나왔다.테이블 위의 유리컵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갑자기 쟁쟁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바닥에 흩어졌다.진서준은 입꼬리에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왜? 나랑 싸우기라도 하려고?”심국도의 실력으로는 진서준과 싸워도 전혀 승산이 없었다.진서준은 고사하고 허사연 자매가 힘을 합치면 심국도가 여전히 당해낼 수 없었다.심국도가 갖춘 유일한 자산은 바로 부장급 군관 군직이었다.심국도는 방금 풍기던 위압감을 거두고 냉랭하게 진서준을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