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김예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너희 같은 속물은 세상이 너희들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너희 눈에 잘못 띄면 그날로 파리 목숨 취급이나 하고? 너희 같은 사람들에게 용서는 가당치도 않아! 손혁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전해. 똑바로 전하지 않으면 10일 안으로 너희 손씨 가문은 끝장이라고! 지금 당장 꺼져!”말이 끝나자 손혁오 부녀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그들은 오늘의 이 일로 인하여 자신들의 가문까지 책임을 져야 할 줄은 몰랐다.그들은 돌아가서 오늘 있은 일에 대하여 빠짐없이 보고하여야만 하였다. 자신들의 가문을 위해서!...단상 위.주현강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김예훈의 신분이 너무도 막강하다고 생각하였다.자신의 한 선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를 느끼면서 말이다. 안 그러면 지금 자신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였을 것이다.김예훈의 살기 어린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오고서야 옆으로 가 입을 열었다.“김예훈 씨, 이제 어떡할까요?”“성남에서 어디가 교육 환경이 좋아요?”한참을 생각하던 김예훈이 입을 열었다.“성남 고등학교요, 여기 선생님들의 경력도 풍부하고요.”주현강이 대답하였다.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러면 소현이 학업은 여기서 계속하는 걸로 하죠. 그럼 소현이 부탁드릴게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거예요.”주현강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네, 그럼요. 신경 쓰이지 않도록 제가 다 처리해 두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자리를 걸고 약속드릴게요. 지금부터의 성남 고등학교는 제일 공평한 대우와 우수한 교육과 질서를 수립하는 학교가 될 거예요!”“그리고, 저분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네요.”김예훈의 눈길은 방금까지 떨고 있던 이예운에게로 향하였다.그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손영지의 신분을 알고서도 자기 학생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주었으니 말이다.이예운은 선생으로서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었다.주현강은 놀라며 천일강을 마주 보았다.천일강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실망하게 해 드리는 일 없을 거예요!”주현강은 그 어느 때보다 벅차 있었다.그도 자신의 인생이 이런 방식으로 제2막을 맞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정소현도 걱정 없이 돌아가서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예운 같은 좋은 선생님이 있어서 안심되었다.김예훈은 차로 돌아가 차 문을 열고 떠나려고 준비하려는데 어디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니 발갛게 상기 된 표정을 하고 이예운이 김예훈 옆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눈빛을 하고 있는것 같았지만 왠지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무슨 일이라도?”김예훈이 물었다.이예운이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김예훈 씨, 오늘 일 너무 고마워요. 김예훈 씨 아니었더라면 소현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김예훈이 웃었다.“소현이 제 가족이에요, 감사를 드려야 할 사람은 저 같네요. 오늘도 우연히 들렸을 뿐이에요. 선생님께서 저희 소현일 위해서 목소리도 내주고 용기 있게 나서준 것에 대하여 감탄을 표하는 바에요.”김예훈의 말을 들은 이예운의 얼굴은 더욱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소현이는 제 학생이에요. 제가 대신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단지 제 힘이 여기까지라 별 도움이 안 됐어요. 하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교장직을 맡고 있는 한 다시는 이런 풍기 문란이 저희 학교에서 발생하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믿어요.”김예훈이 떠나려고 하자 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예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김예훈 씨,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요.”김예훈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하였다.“그래요, 저도 마침 배고픈 참이었는데. 하지만 밥은 제가 사드릴게요.”“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오늘 제가 교장으로 취임한 첫날이기도 하고 밥은 제가 사드리고 싶어요.”이예운이 웃었다.그러자 김예훈은 웃을 뿐 거절도 하지 않았다
손지강! 벤츠를 타고 온 이 남자는 그 유명한 손씨 가문의 세자 손지강이었다.그가 이예운을 알고 있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필경 손영지도 이예운 반 학생이었으니까.이예운에게 거절당하였지만 손지강은 사실 화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 옆에서 가만히 서 있는 김예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설마 이 남자 때문에 날 거절하는 건가? 이딴 싸구려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이 남자 차가 설마 내 차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이예운의 미간이 좁혀졌다.“손지강, 이 차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냥 단지 너랑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야. 싸구려 똥차를 끌고 와도 이 사람과 저녁 식사 자리를 했을 거니까.”손지강이 웃었다.“이예운, 이건 나랑 해보자는 얘기로 들리는데! 전에도 알려준 거 같은데. 내 허락 없이는 그 어떤 남자도 너한테 접근 못한다고! 왜냐면 넌 내 꺼니까!”말을 내뱉는 손지강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만하였다.이예운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어두워졌다.그녀는 사실 전에 관심 가는 남자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으로 인하여 모두가 하나같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사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두 자신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였지만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손지강 때문이었던 것이다!성남에서 손지강을 연적으로 두고 그 누가 감히 경쟁에 뛰어들려고 하겠는가!그건 저승길로 가는 거나 다름없었다.“전에 만났던 그 남자들도 대단한 게 돈 몇 푼에 바로 꺼지던데, 그중에는 네 소꿉친구도 있었지 아마도? 가만히 보자, 여기 이 남자는 한 일억쯤이면 내 눈앞에서 꺼질 것 같은데... 이번에 네가 맘에 든 이 남자는 얼마를 줘야 떨어져 나갈까?”말을 하는 손지강의 눈길이 김예훈에게서 멈췄다. 그의 캐주얼한 모습을 보자 그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난 또 뭐라고! 렌터카로 허세나 떠는 놈이었어!”말을 마친 손지강은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더니 김예훈 얼굴에 뿌렸다.“이봐, 이거 가지고 꺼져. 다시 이예운 앞에 나타나면 그때는 다리를 부러뜨
김예훈의 말을 들은 손지강은 순간 멈칫하였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자식, 틀린 말 한 거 없네. 찐 사랑이면 돈을 더 추가해야지. 그래, 말해봐. 얼마를 원하는 거야?”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이예운의 낯빛은 더 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그리고 그녀는 김예훈이 돈 몇 푼에 자신을 팔아먹을 사람일 줄은 몰랐다.이내 김예훈은 손을 내밀더니 웃었다.손지강은 어리둥절하였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하였다.“햐 이 자식 봐라, 너무 하네? 설마 2억을 바라는 거야!”김예훈이 웃었다.“손세자 오해했네, 그거 아니야.”“20억?”손지강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분노하고 말았다.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를 사람이 자신을 기회로 삼아 한 수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났다.그리고 이예운을 보는 눈빛에도 경멸이 가득하였다.이게 겨우 네가 선택한 남자였어?눈에 돈 밖에 안 보이는 남자인데?김예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손지강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하였다.“설마 200억을 원하는 건 아니지? 이것 봐 적당히 해, 정도라는 게 있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곱게 말하는 것도 다 이 선생 체면 봐서야.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적당히 해.”김예훈이 다시 한번 웃었다.“손세자,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방금 말하지 않았나? 사랑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떠나길 바란다면 1조는 준비해 와야 할 거야.”“풉!”옆에서 방금까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이예운은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그녀는 그제야 김예훈이 그에게서 돈을 가질 뜻이 없다는 걸 알았으며 단지 손지강을 자신의 손바닥위에 놓고 갖고 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1조 현금?손지강뿐만 아니라 이런 금액이라면 손씨 가문에서조차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손지강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고 김예훈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감히 그를 이런 식으로 조롱하지 못할 것이다.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그 시각 손지강의 눈빛이 갑자기 변하였다.그리고는 웃으면서 물었다.“이름 뭐야?”
라운지 바.바 안은 젊은 사람들의 천지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기에 즐기기 충분한 곳이었다.주문을 마친 김예훈은 식사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김예훈 앞에 있는 이예운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하였고 음식조차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음식 식기 전에 빨리 드세요, 좀 있으면 먹을 수 없을 거예요.”김예훈은 말을 하면서 그녀에게 음식을 권하였다.이예운은 예의상 음식을 먹고 있을 뿐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왜요? 입맛에 안 맞아요?”김예훈이 물었다.한참을 머뭇거리던 이예운이 마지못하여 입을 열었다.“예훈 씨, 여기 손지강 명의로 된 곳이에요.”말을 들은 김예훈도 어리둥절하였다. 이런 우연이?김예훈이 어리둥절해하자 이예운은 그가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알고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예훈 씨, 빨리 식사하고 우리 일어나요. 손지강 얕보면 안 돼요, 그래도 명색에 일류 가문 손씨 집안 세자인걸요.”“오늘 손씨 가문에 손혁오도 나한테 무릎 꿇었는걸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내뱉었다.이예운이 미간을 찌푸렸다.“달라요, 손혁오가 손씨 가문의 사람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에요. 하지만 손지강은 달라요, 그는 손씨 가문의 세자이며 손씨 가문의 90퍼센트 이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고요.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 적 있어요. 경기도 조직 보스들과 군에도 그의 세력들이 있다고요. 손지강과 손혁오의 차이점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우러러도 볼 수 없는 존재들이겠지만 그 둘 사이에는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고요.”김예훈이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그렇게 차이가 커요?”이예운이 한숨을 내쉬었다.“혹시 성남시 출신 아니세요? 그래도 적어도 김세자에 대해서는 들으셨죠?”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이예운이 계속하여 입을 열었다.“김세자 그 분은 이미 삼 년 전에 경기도의 일인자가 되었어요. 그때 이미 김씨 가문의 90퍼센트 이상의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이후에 김씨 가문을 더
잠시 후, 정장을 한 남성들이 손지강 옆으로 다가왔다.“세자님, 이미 조사 끝마쳤습니다.”“이 남자 차 어느 그룹 명의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유주는 한 여성분 이름이었고요. 그러니까 렌터카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그리고 이 사람 이름으로 조사해 보니 아마 데릴사위 같아 보였습니다.”“그리고 다른 자료들은 아마 내일까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남자의 설명을 듣고 있던 손지강은 콧 방귀를 꼈다.“렌터카를 가지고 온 데릴사위 따위가 감히 이 세자의 여자를 탐내? 아니 필요 없어, 이런 사람한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말을 마친 손지강은 그대로 방문을 열고는 김예훈과 이예운이 앉아 있는 자리로 발길을 옮겼다.“휙!”몇 장의 지폐가 김예훈이 앉은 테이블 위로 떨어졌고 그 때문에 야채즙이 튀어나와 김예훈의 옷은 금세 더러워졌다.김예훈이 고개를 들자, 손지강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김 씨, 당신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아봤어. 당신이 어떤 주제인지는 나보다 더 잘 알 거야! 이 돈 가지고 꺼져!”김예훈은 천천히 젓가락을 놓더니 담담하게 내뱉었다.“여기 이 음식은 내 앞에 계시는 이분이 사는 거야. 가치가 높은 음식을 당신이 망쳤으니 배상해야 할 거야.”손지강이 웃었다. 그가 손을 들어 사인을 주자 바 안이 금세 조용해졌다.“무슨 일이야?”“여기 분위기 때문에 온 건데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이러면 계산 못 해!?”주위 고객들이 불만을 표하기 시작하였다.“의견 있는 새끼들 다 내 앞으로 나와!”손지강이 소리를 내 질렀다.소리를 지른 장본인이 손지강인 걸 보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손 세자님이셨군요! 미안합니다. 저희가 실수했어요!”“손 세자님께서 일 보시는데 바로 불 켜야죠!”“빨리 손 세자님을 도와줘!”얼핏 보아도 손지강의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그리고 손지강의 이런 행동은 속수무책이었다. 안 그러면 모두가 그의 행동에 이렇게 겁을 먹을리가 없었다.“탁탁탁!”의자에 앉아 있던 김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그러니까 방금 성남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잘난 척한 것도 이 남자에게 그만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순수하게 손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던 것이었다.운도 좋게 그의 와이프가 불러온 사람들이 그를 도와줬던 것뿐이었다.비록 많은 것들이 의구심을 남기기에는 충분하였다.하지만 데릴사위라는 네 글자로 인하여 이예운이 김예훈을 보는 시각을 다르게 하기엔느 충분하였다.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혐오감마저도 비쳐 있었다.데릴사위였으며 자신이 식사 자리를 권했을 때 자신이 결혼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더러운 생각을 했을지 상상만 해보아도 역겨워 났다.하지만 이건 이예운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녀한테 접근하는 남자들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그걸 알아서인지 그녀도 자신한테 접근해 오는 남자들마다 모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에 김예훈이 딱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이예운의 표정을 본 손지강은 자신의 말이 드디어 효과를 본다고 생각하였다.그가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데릴사위, 지금 반성하지 않으면 이 돈도 가져갈 수 없어! 나 같았으면 이미 무릎 꿇었어, 그리고 여길 기어서 나갔을 거야! 아니면 내가 직접 네 다릴 부러뜨릴 거거든!”이런 험악한 말을 듣고도 이예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 데릴사위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손 세자님! 당신의 그 고귀한 신분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요? 저희가 도와드릴까요?”“이 자식 다리 부러뜨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또 이쪽으로 경력이 풍부한지라...”“저도 도울게요! 이런 쓸모없는 자식은 한주먹거리거든요!”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너도나도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이걸
“무슨 기회?”김예훈이 물었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손지강은 김예훈 테이블에 있던 음식들을 구두로 걷어차고는 발로 짓밟았다.“지금 당장 무릎 꿇어, 그리고 여기 있는 음식들 깨끗하게 핥아, 그러면 꺼지게 해주지!”“맞아! 빨리 꿇어서 핥아!”“손 세자님의 여자까지 건드리다니 미치지 않고서야!”“그러고도 세자님 앞에서 뻔뻔하기까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게 틀림없어!”“...”주위에 있는 모두가 손지강을 지지하였고 그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해서는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김예훈은 한숨을 쉬더니 이예운을 향해 말하였다.“이 선생님, 당신이 트러블 메이커일줄은 몰랐네요.”이예운은 눈쌀을 찌푸리더니 경멸의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데릴사위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일이 이 지경으로 되자 그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으니.숨을 크게 들이킨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손지강을 향해 바라보았다.“손지강, 이 사람 그냥 놔줘. 너랑 같이 밥 먹을게!”이예운의 말을 들은 김예훈은 조금 의아하였다.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손지강과 협상할 줄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손지강이 웃었다.“그 말은 방금 전에 했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이 손지강이 한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가 없어. 여기서 이 바닥에 있는 걸 깨끗이 핥지 않는 이상 다른 선택은 없어! 그런데 말이야, 네가 만약 오늘 밤 나랑 같이 보내겠다고 한다면 놓아줄 수도 있어!”손지강의 눈에는 이예운만 보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그녀에 대한 소유욕으로 가득 찼다.단순히 그와 함께 밥 먹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그의 목적은 간단하였다. 오늘 밤 그녀를 가지는 것이었다.“손지강, 선 넘지 마!”이예운이 불그락푸르락하면서 소리쳤다.지금까지의 손지강은 그녀 앞에서 신사적인 모습만 보였다면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손지강은 자신의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였다.손지강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나 손지강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