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김예훈의 일행을 보고 정지용은 찌질하게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날 건드리기만 해봐요?”“우리 정씨 일가는 김세자의 초대로 파티에 참석하러 왔어요. 그분도 참석하겠다고 우리와 약속했고요!”“경호원 주제에 감히 우리 정씨 일가를 건드리겠다는 거예요?”“철썩-”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지용의 뺨을 후려쳤고 정지용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안 꺼지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경호팀 팀장은 차갑게 말했다.깜짝 놀란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정지용을 끌고 도망가려고 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정군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김예훈, 자네 말이 맞았어. 저들은 들어갈 수 없게 되었어.”김예훈은 웃으면서 정민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우리도 들어가죠.”“아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복씨 가문에서 준 초대장으로도 들어갈 수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평소에 무서운 게 없이 날뛰던 정군 부부도 지금 이 순간은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정소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형부, 장난 그만해요...”정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훈씨, 체면을 위해서라면 그럴 필요 없어...”“우리한테는 초대장도 없잖아...”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 두 사람 이혼해야 한다며? 그러니까 시도해봐야지 않겠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예훈을 보면서 정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그래, 당신 믿을게. 한번 해보자.”말을 하면서 정민아가 김예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약간 떨고 있었다.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지금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었다.정민아의 가족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입구 앞까지 걸어갔을 때 정가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비록 우리 정씨 일가의 사람들이기는 하나 우리 가문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맞아
정군, 임은숙, 정민아, 정소현...그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경호원들은 그들의 초대장을 확인하기는커녕 공손하게 그들을 백운가든으로 들여보냈다?한편 밖에서 웃음거리를 보려했던 정지용의 일행들은 지금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졌다.“저들이... 저들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이게... 그럴 리가?”정동철은 멍하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본 상황을 믿지 않았다.한편, 정군과 임은숙은 환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짜릿하다. 어찌 됐든 그들은 들어오게 되었다.성남시에서 오랜 시간 지낸 정군은 이곳이 얼마나 들어오기 어려운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냥 이렇게 들어온다고? 우리 사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지금 이 순간, 그는 김예훈에 대한 호칭도 바뀌었다.예전에는 폐물 같은 놈, 찌질한 놈,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불렀다.근데 지금 그가 김예훈한테 우리 사위라고 불렀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위가 꽤 쓸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최소한 그들의 체면을 만회했다.임은숙은 뭔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김예훈, 예전에 대학 동창이 성남시에서 사업한다고 하지 않았어?”“이번에도 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거야?”김예훈의 동창은 20억이라는 돈도 선뜻 빌려주고 포르쉐도 빌려준 걸 보면 분명히 신분이 높은 인물인 게 틀림없다.김예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장모님, 돗자리를 까셔도 되겠어요. 어떻게 그걸 단번에 알아차리셨어요?”“그래?” 정군은 웃으며 말했다. “그 동창이라는 사람은 어느 가문의 사람이야? 내가 알 수도 있는데.”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세울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돈이 좀 있을 뿐 유명한 가문의 자제는 아닙니다.”정군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래, 성남시는 돈보다 인맥이 훨씬 중요한 곳이긴 하지...”김예훈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은 이렇게 넘길 속셈이었다.하지만 정민아는
정군과 그의 가족들은 안색이 많이 어두워졌다.복현은 말한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복씨 가문의 사람에게 그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심지어, 복현의 말 한마디에 그들 가족은 이곳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정민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복현을 쳐다보았다. “복현 씨, 우리는 그쪽과 원한이 없어요.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런 거예요?”복현은 웃으면서 정민아의 귓가로 다가가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저 찌질한 놈과 이혼을 거부할 수 있는 거죠?”“내 체면을 너무 짓밞는군요!”“그러나, 오늘 밤 두 자매가 나랑 같이 밤을 보낸다면 난처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어때요?”“앞으로 당신한테 프로젝트라도 하나 줄지? 어떤가요?”“당신... 비겁하군요!” 정민아는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자존심이 강한 정민아는 그녀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이런 조건을 절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요. 그럼 어디 두고 보죠.”복현은 소리 없이 웃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얼굴이 창백해진 정민아를 보고 김예훈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민아야, 왜 그래? 복현이 뭐라고 했어?”정민아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복현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그는 분명 다음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이 그의 상대가 될까?오늘 밤만이라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가는 내내 정민아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그러나 가는 도중에 갑자기 십여 명의 양복 차림을 한 김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김예훈의 일행을 에워쌌다.이 사람들은 김씨 가문에서 경호를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김예훈을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하나같이 전기 막대기를 김예훈의 일행에게 겨누었다.정민아는 창백한 얼굴로 김예훈의 손
“빨리 초대장을 보여줘요!”복현은 거세게 몰아붙였다. “우리는 초대장이 필요 없는데요.” 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하하하, 팀장님, 들었습니까? 저들은 초대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초대장이 필요 없다고 말하다니?”복현은 박장대소했다.“이 데릴사위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어쩌면 담을 넘어 기어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경호팀 팀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가 바로 직책에 따라 명을 내렸다. “이 사람들을 보안실로 데리고 가서 정확히 조사한 후 다시 얘기합시다!”정군의 가족들은 갑자기 멍해졌다.심문하러 끌려가면 그들은 분명 백운가든에서 쫓겨날 것이다.지금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이대로 나가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그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잠깐만요! 언니, 우리는 정문에서 경호팀의 검색을 받고 들어왔어요!”“아무리 초대장이 없어도 이들이 무슨 근거로 우리를 보안실로 끌고 가요?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정소현은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들은 복현은 웃으며 말했다. “꼬마 아가씨, 거짓말을 해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뒷문으로 들어온 후 초대장을 버렸다고 해도 이 거짓말보다는 낫겠어!”“잘 들어요! 당신들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알려주죠!”“이곳은 백운가든입니다!”“당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씨 가문의 사람 그리고 김세자 조차도 이곳에 들어오려면 초대장이 있어야 합니다!”“초대장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네,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초대장을 확인하는 건 필수입니다.” 경호팀 팀장도 옆에서 거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너무 높은 사람들이었다.신분을 증명할 초대장이 없으면 어떻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다 데리고 가.”이내, 경호팀 팀장은 단호하게 명을 내렸다.의심스러운 점이 있긴 해도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
경호팀 팀장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김씨 가문에서 경호팀 팀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니만큼 그는 신중한 편이었다.그가 김예훈을 위아래로 잠시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좋아요, 우리 총관님께서 당신 같은 데릴사위를 아는지 어디 한번 확인해보죠!”이 말을 들은 복현은 더욱 기뻐했다.보아하니 좋은 구경거리가 생길 것 같다.주위에 많은 사람이 둘러싸여 있었다.정군 부부와 정민아 자매는 지금 모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창피하다!정말로 창피한 일이었다!경호팀 팀장은 김 총관한테 문자를 보냈고 이내 상대방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은 경호팀 팀장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그가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심지어,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자신이 말로만 듣던 전설의 그분을 건드리다니? “네... 김 총관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지금 이 순간, 경호팀 팀장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한편, 복현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 총관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저 데릴사위의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했습니까?”“철썩-”그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우렁한 따귀였다.복씨 가문의 사람이면 뭐 어때서?따귀를 맞은 복현은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다.“왜... 왜... 날 때린 겁니까?...”“난 복씨 가문... 복현...”복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복씨 가문의 사람이다!아무리 김씨 가문이 경기도의 최고 가문이라고 해도 경호팀 팀장 따위가 감히 나한테 손을 대다니?경호팀 팀장은 아무 말도 없이 앞으로 걸어가 복현의 얼굴을 세게 밟았다.“왜일 것 같아요?”“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까?”“김예훈 씨와 정민아 씨의 일행은 저희 귀빈이십니다!”“감히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고 우리 김씨 가문을 이용하다니?”“김씨 가문의 사람들을 그쪽이 이용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이 자의 다리를 부러뜨려 복씨 가문에 가져다
“별일 아니야!”“초대장은 없지만 우리는 경호팀 심사를 거치고 들어왔어!”“우리가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건 신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야.”“하지만 복현은 소란을 피우고 파티의 질서에 영향을 줬어.”“보다시피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여 있어!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잖아!”“김세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도 누군가가 자신을 환영하는 파티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복현은 말할 것도 없고 복률이 와도 소란을 피우면 내쫓았을 거라고!”김예훈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정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백운가든에 규칙이 많다는 걸 예전부터 들은 적이 있어.”“이곳은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만 있다면 아무도 너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아.”“감히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쫓겨날 것이야!”“그렇구나. 그러니까 초대장 한 장이 그렇게 비싸지!” 임은숙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정소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신분 있는 사람들이네요.”정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이 일이 분명히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김예훈의 설명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합리적이었다!...주위에 둘러싸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파티는 계속되었다.비록 소규모의 파티이기는 하지만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 인물들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정군은 지금 눈빛이 반짝거렸다.그가 두리번두리번하더니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성남시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다 왔어!”“평소에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오늘 이곳에서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장인어른도 성남시에서 십여 년을 사셨으니 아시는 분이 있으시죠? 가서 인사라도 나누시죠!”정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가 상대방을 알고 있어도 상대방은 정군을 모를 것이다!지금 이 순간, 그는 감히 이 거물들을 방해하지 못했다.그렇지 않으면, 일단 그 사람들의 미움을
정군은 안색이 어두워져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선물을 가져오라고 할까? 아직 시간 있어.”임은숙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와서 준비하면 김세자한테 성의 없어 보일 수도 있잖아?”정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김세자가 그렇게 오해를 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지금 이 순간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이때 정민아가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여기 계세요. 제가 나가서 후한 선물을 준비해올게요. 그럼 괜찮을 거예요.”정군과 임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를 악물고 큰돈을 들여 후한 선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예훈은 정민아를 끌어당겼다. “여보, 난 오히려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김세자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은 선물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 같아.”“그건 그 사람 사정이고 우리 쪽에서는 충분히 성의를 보여야 해.” 정민아가 대답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김세자는 떠벌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우리가 겸손하게 있으면 오히려 우리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잖아?”“게다가 우리한테는 초대장이 없어. 지금 나가면 어떻게 들어올 거야?”정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어떻게 김예훈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그러나 이 시간에 나가서 선물을 준비하면 정말 늦지 않은 것일까?만약 나갔다가 들어오지 못한다면 더 귀찮아지는 건 아닐까?“다들 봤어? 환영 파티에 참석한 온 사람이 두 손이 텅 빈 채로 오다니?”“저 집 식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의가 하나도 없어!”“김세자가 어떤 인물인데? 듣자 하니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했어! 그런 분을 만나러 오면서 감히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는다니!”“저 사람들은 낯설어 보여. 우리 성남시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상황이지?”“초대장을 사서 들어왔을지도 몰라.”“이곳에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와 같은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말도 마.
백운 별원 2층 귀빈실.지금 손을 뒤로하고 서 있는 아름다운 그림자가 아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그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둑을 두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홀의 그림자를 바라볼 때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눈동자 속에는 마치 파도가 출렁이는 것 같았다.한참 후,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김청미, 너의 사형이잖아. 내려가 보지 않아도 돼?”“오늘 파티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썼잖아.”말을 마친 남자가 몸을 돌려 곁에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말을 한 사람은 김 씨 가문의 사걸 수장 김병욱이었다.그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바로 김청미.김병욱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가 한 말은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마치 시험을 하는 것 같았다.김청미는 그런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홀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3년이 지났어요. 너무 많이 약해졌지만 기세는 여전하네요.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그를 폐물로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요.”김병욱이 말했다.“그가 위장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 3년 전. 그가 작은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어 우리 두 사람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면 오늘 이곳에 올 자격이 없었을 거야.”“3년 전에 손을 썼다면 진짜 해결할 수 있었을까?”김청미가 몸을 돌려 김병욱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오빠 혼자가 아니라 우리 4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도 진짜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저도 잘 모르겠어요...”김병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네가 아무리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자신이 김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거야...”“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더구나 그의 자랑이라면 과거에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기 전에는 자신이 김세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거예요.”김청미가 천천히 입을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