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 별원 2층 귀빈실.지금 손을 뒤로하고 서 있는 아름다운 그림자가 아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눈동자 속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그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둑을 두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홀의 그림자를 바라볼 때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눈동자 속에는 마치 파도가 출렁이는 것 같았다.한참 후,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김청미, 너의 사형이잖아. 내려가 보지 않아도 돼?”“오늘 파티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썼잖아.”말을 마친 남자가 몸을 돌려 곁에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말을 한 사람은 김 씨 가문의 사걸 수장 김병욱이었다.그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바로 김청미.김병욱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가 한 말은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마치 시험을 하는 것 같았다.김청미는 그런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홀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3년이 지났어요. 너무 많이 약해졌지만 기세는 여전하네요. 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그를 폐물로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요.”김병욱이 말했다.“그가 위장을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 3년 전. 그가 작은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어 우리 두 사람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면 오늘 이곳에 올 자격이 없었을 거야.”“3년 전에 손을 썼다면 진짜 해결할 수 있었을까?”김청미가 몸을 돌려 김병욱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오빠 혼자가 아니라 우리 4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도 진짜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저도 잘 모르겠어요...”김병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네가 아무리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자신이 김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거야...”“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더구나 그의 자랑이라면 과거에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기 전에는 자신이 김세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거예요.”김청미가 천천히 입을
홀의 중심에 있던 하은혜는 싱긋 웃으며 한 방향을 쳐다보았다.그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젓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전할 말이 있습니다.”“저희 대표님께서 자신은 이제 김 씨 가문의 상속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김세자 라는 호칭도 합당하지 않겠군요. 여러분께서 이제 김 대표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연회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김 세제가 이제는 김세자가 아니라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이지?진짜 소문과 같단 말인가?3년 전, 김세자가 성남을 떠난 것이 진짜 김 씨 가문의 권력 다툼에 졌다는 뜻인가?하지만, 진짜 실패했다면 왜 다시 나타났지?김 씨 가문은 백운별원에 그의 환영식도 마련해 주었다.하지만 김 씨 가문에서는 아직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모두가 추측하고 있을 때, 하은혜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많은 추측은 삼가해 주세요. 저희 대표님께서 성남에 오신 건 단순히 휴가를 오신 게 아니기 때문이죠!”“얼마 후, 성남에 새로운 그룹이 설립될 겁니다. 수십 개의 영역을 넘나드는 대형 그룹 CY 그룹! 여러분들도 함께 참관하러 와주세요!”“꼭 갈게요!”“김세자가 설립한 회사라면 우리도 함께 손을 잡았으면 좋겠어!”“맞아 김세자는 진짜 머리가 좋아!”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흥분하며 말했다.김세자가 혼자서 어마어마한 그룹을 설립했다.망해가는 김 씨 가문에 두 번째 봄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경기도의 거물이 되었다.그가 지금 김 씨 가문과의 사이가 어떻든, 그가 다시 돌아와 막대한 그룹을 만든다는 것은 지금의 김세자가 여전히 그 시대의 김세자라는 것이기도 하다.심지어 3년 전보다 더 강하고 무시무시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누가 이런 사람과 손을 잡고 싶지 않겠는가?김세자 세 글자는 경기도에서 제일 세력이 강하고 돈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하지만 하은혜가 더 이상 김세자를 김세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김세자는 언제 도착해?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심 가는 화제였다.하은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사실 우리 대표님께서는 이미 이곳에 와 계십니다. 대표님께서 워낙 검소하신 분이라 이런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 오늘 이곳에 온 것도 모두 저의 예측 밖이었습니다.”하은혜가 말하자 현장은 다시 한번 아수라장이 되었다.모두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김세자를 찾으려 했다.하은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러분의 이런 행동은 저희 대표님에 대한 실례입니다.”“대표님께서 여러분을 접대하라는 명을 저에게 전달했으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하은혜의 말을 들은 정군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미쳤어. 그러니까 선물을 바치라는 말이잖아. 우린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망했어.”임은숙의 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다른 사람도 선물을 바치라는 말로 해석했다.“복 씨 가문에서 김세자에게 고동 족제비를 선물했습니다!”“윤 씨 가문에서 김세자에게 야명주를 선물했습니다!”“성남 상업회에서 김세자에게 제주도의 별장을 선물했습니다!”“....”그 시각, 연회에 있는 사람들은 미치광이들처럼 끊임없는 선물공세를 했다.오늘 김세자의 눈에 든다면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돌아갈 것이다.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보면 된다.어떤 가문에서는 외국의 섬을 선물하기도 했다.다른 사람들이 선물하는 물건들이 가문의 전 재산이라는 것을 본 정군과 임은숙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정민아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너무 부끄러워!하은혜의 곁에 있는 책상에는 각종 선물들과 수표로 쌓였다.그 모습을 본 하은혜의 예쁜 얼굴에는 순식간에 먹구름이 쓰였다!“당신들 지금 우리 대표님을 무시하나요?”얼음장같이 차가운 하은혜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저마다 몸서리를 쳤다.김세자가 이제는 이런 선물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인가?김세자가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지?이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이 매우
정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김예훈은 자신의 장인어른이 큰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가 곁에 있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민아야, 나를 믿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해 보지 않을 거야!”정민아는 조금 망설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하은혜도 정민아를 발견하고 말했다.“정민아 아가씨네요.”“얼마 전 저희 대표님께서 감탄하셨습니다. 남해를 떠나면 민아 아가씨와 함께 일할 기회가 없어진다고요. 이곳에서 다시 만날 줄 몰랐네요!”“대표님이 민아 아가씨를 좋게 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네요. 우리 대표님을 이렇게 존경한다고 제가 꼭 말씀드리겠습니다!”주위 사람들은 하은혜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그들은 정민아 가문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그제야 정민아의 가문과 김세자가 처음부터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정민아의 가문과 잘 지내면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정민아 아가씨, 우리 CY 그룹의 개막식에 꼭 왕림해 주세요. 저희 대표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하은혜가 웃으며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나머지 가문의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그들은 하은혜가 사용한 단어를 주의했다. 왕림!김세자가 누구던가?하은혜가 누구던가?하은혜가 왕림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많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민아를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정민아와 그녀의 가족들은 어떤 표정을 해야 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정민아를 좋게 생각한 김세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마치 꿈만 같았다....연회가 끝났지만 정민아의 가족들은 아직도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우리에게 이런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정군은 성남 상업회 거물의 명함을 손에 쥐고 손을 떨었다.이 사람들은 그가 감히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하지만 조금 전
집으로 돌아온 정민아의 가족은 아직도 들떠있었다.정민아가 김세자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정군과 임은숙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정민아의 말에 두 사람은 정민아가 김세자의 숨겨둔 애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진짜 그렇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진짜 그러 사이라면 자신의 딸의 배가 커지게 되면 숨겨야 된다.만약, 김세자가 데릴사위를 싫어하면 어떡하지?고민에 잠긴 두 사람은 신경을 쓴 나머지 배가 아팠다.하지만 오늘 밤은 아주 달콤한 하루라고 생각했다.오늘 정 씨 일가에 한방을 먹인 생각을 하니 너무 달콤했다. 이제 누구도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때, 정 씨 어르신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정군, 너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정 씨 어르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계획대로라면, 내일 정 씨 가문의 본사에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하지만 정 씨 어르신은 정민아의 가족을 가문에서 쫓아내겠다는 뜻과 마차가지였다.“뭐라고요?”정군의 안색은 너무 어두웠다.이런 결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전화기 너머 정 씨 어르신의 차갑고도 무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너희 가족들에게 너무 실망했어! 이 순간부터 넌 이제 정 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야...”“아버지, 저는 정 씨 가문을...”정군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삼켰다.“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 네가 오늘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래? 넌 대체 우리 정 씨 가문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앞으로 너희끼리 잘 살아!”“뚜뚜뚜...”털썩!정군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한껏 긴장한 정민아가 다가와 물었다.“여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임은숙은 좋지 않은 예감에 사로잡혔다.“오늘 저녁에 있은 일을 아버지께서 아셨나 봐. 부끄럽다고 우리 가족을 가문에서 쫓아냈어...”정군의 안색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성남에서 정 씨 가문의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굶어죽으라는 말이 아닌가?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도 모두 정 씨
정지용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빠는 왜 그렇게 담이 작아?”“무슨 일이야?”“무슨 일이겠어?”“우리와 복 씨 가문이 이미 오래전부터 손을 잡았다고.”“그리고 우리는 이미 복현 도련님의 손을 잡았다고.”“복현 도련님이 있는데 셋째 삼촌이 어쩌겠어?”“그리고 내가 오늘 연회에서 들었는데 복현 도련님께서 셋째 삼촌 집 사람들 때문에 큰 손해를 봤대.”“우리가 먼저 쳐내지 않으면 우리도 함께 힘들어질 거야.”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했다.정군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그리고 김세자의 환영회에서 복현 도련님의 체면을 깎아? 진짜 죽고 싶은 거지?“그리고 오늘 연회에 다른 사람들은 다 선물을 바리바리 사들고 갔는데 정민아는 빈손으로 갔대!”“김세자가 선물을 가져오지 않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나 봐!”“하하하...”정 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는 정민아만 순진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부녀가 똑같은 멍청이였어!진짜 너무 바보 같아.성남에서 십몇 년이나 지낸 정군도 아직 이렇게 순진하다니. 정 씨 어르신은 더욱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을 우리 정 씨 가문에서 쫓아낸 것이 제일 잘한 선택이었어!”“할아버지, 진짜 잘하셨어요. 이제 그들은 더 기댈 곳이 없을 거예요! 어느 정도로 떨어지는지 우리 함께 지켜보자고요!”정지용이 말했다.오늘에 있은 일들이 너무 부끄러웠던 그들은 이 기회에 정군의 가족들을 내쳤다.정가을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할아버지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지금 사는 집도 뺏고 내칠까요?”정 씨 어르신이 말했다.“집을 왜 뺏어? 우리가 전세금을 빼면 그만이지.”“맞아요! 그러면 집주인이 알아서 쫓아내겠죠? 그리고 빚도 많이 졌다고 말하면 더 재밌겠는데요!”정지용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할아버지는 역시 우리와 생각 차이가 틀리셔..할아버지가 남해에 있을 때 그들을
정군의 가문.정민아는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김예훈이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민아, 큰일도 아니지 않아? 우리 집의 정권은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아니야. 이제부터는 YE 투자 회사라고.”“하 비서님은 네가 힘없이 회사에서 쫓겨난 것을 알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정민아는 그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어떻게? YE 투자 회사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작은 회사에 신경이라고 쓸 것 같아?”김예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누가 그래? 너 오늘 하 비서 만났잖아?”“하 비서가 너를 CY 그룹의 창업식에 초대했잖아? 그때 네가 정 씨 가문을 대표로 해서 가면 되잖아.”“정 씨 가문의 주식을 지금 YE 투자 회사가 손에 넣고 있으니 CY 그룹의 창업식에 참가하지 않으면 정 씨 가문을 버리는 건 시간문제야.”“너무 걱정하지 마. 정 씨 가문에서 너를, 우리 집을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정민아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김예훈이 자신을 걱정하여 위로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김예훈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하은혜에게 문자를 보냈다....다음날.방금 잠에서 깨어난 정 씨 어르신은 CY 그룹의 전화를 받았다.정 씨 어르신은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다.CY 그룹은 김세자가 설립한 것이고 남해에 있는 YE 투자 회사의 새 대표도 김세자라는 것이다.그래서 정 씨 가문의 주식 51%는 자연스럽게 CY 그룹에 전의되었다.정 씨 가문은 CY 그룹이 투자한 그룹이라도 할 수도 있다. 정 씨 가문도 CY 그룹의 힘을 받은 것이다.CY 그룹에서 정 씨 어르신에게 창립식에 대표로 보낼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했다.정 씨 어르신은 깜짝 놀랐다. 김세자가 어떤 사람인지 겨우 알게 되었으니 창립식에 참가하겠다고 대답했다.CY 그룹의 창립식에 참가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정 씨 가문에 경사가 났다고 할 수 있다.인맥을 넓힐 수 있고, 기회가 된다면 CY 그룹의 이름을 빌려 정 씨 가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여
정 씨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맞아. 남해에서 정민아가 이미 김 씨 가문과 만나보았으니 이번에 대표로 보내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구나!”“맞습니다 할아버지. 그동안 정민아 가족이 우리 가문에서 먹고 쓴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우리 정 씨 가문을 위해 힘써줘야죠!”“맞습니다! 지금 우리 가문의 돈만 축내고 있는 그들에게 이런 임무라도 내려주니 감지덕지해서 잘 해낼 겁니다.”“네. 정민아를 보내야 합니다.”정 씨 가문의 사람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나왔다.정 씨 어르신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래. 민택아. 셋째에게 전해줘. CY 그룹과의 일만 잘 처리되면 다시 출근해도 좋다고! 아니면 영원히 정 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거야!”....그 시각, 김예훈과 정군 가족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전학 수속을 마친 정소현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식탁에서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정민아와 그의 부모님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쓰여 있었다.아침 일찍 건물주가 정 씨 가문에서 전세금을 빼갔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정민아의 가족들에게는 돈이 많지 않았다. 거대한 전세금의 절반도 없는 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정민아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굶어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문을 여니 정민택이 들어왔다.그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집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성남에서 이렇게 큰 집에 살아도 보고 다 컸네? 아버지가 자비만 베풀지 않았다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되는 거 알지?”정군이 고개를 들고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형님, 아침부터 비웃으려고 찾아왔어요?”정민택이 웃으며 말했다.“비웃어? 내가 왜 그렇게 유치한 장난을 한다고 생각해?”“내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너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함이야! 너희 가족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버지께서 기회를 더 주기로 결정했어.”“CY 그룹의 창립식에 정민아가 우리 정 씨 가문을 대표로 참석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