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별장을 나서는 정민아의 표정이 다소 가라앉아있다.김예훈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물었다. “여보, 억울해?”“억울하냐고?” 정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정씨 일가의 사람이야, 그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고 꼴불견일지라도 나한테는 가족이야.”“난 단지 아쉬울 뿐이야, 왜 멀쩡한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접고 성남으로 가려고 하는지!”“쇼핑센터 프로젝트가 잘 되면 우리 정씨 일가가 입지를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정씨 일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남해시의 일류 가문으로 거듭날 수 있어. 근데 다들 왜 이렇게 욕심이 과한지 모르겠어.”정민아는 마음이 괴로웠다. 쇼핑센트 프로젝트를 위해 그녀는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이런 결과가 있게 되어 그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불가능한 일이다.“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김예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정씨 일가가 성남으로 가는 일은 배후에서 누군가 손을 쓰고 있다는 걸 김예훈은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의 이익으로 정씨 일가를 움직일 수 없다면 상대방은 틀림없이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얻는 이익이 많을수록 정씨 일가는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고 더욱 비참해지고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예훈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현재로서는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매각한다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야.” 정민아가 한숨을 쉬었다.“YE 투자 회사의 인맥이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한테 대출해 줄 은행도 없을 거고.”“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쇼핑센터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성남 신도시 프로젝트를 가져와 YE 투자 회사와 손을 잡는 것이야.”정민아가 당당하게 말했다.“성남으로 가는 건 옳은 선택이야, 하지만 복씨 가문은 너무 세력이 강해. 이번에는 명의상 우리 쪽이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하지만...”“그러나 복씨 가문에서 우리
그날 오후, YE 투자 회사의 대표이사 사무실.김예훈은 최근에 회사로 자주 출근하지 않은 탓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아주 많았다.김예훈이 제시한 1조 원 계획은 현재까지 얼마 진행되지 않았다.오히려 이전에 했던 불량한 투자 항목들에 대해 김예훈은 자금을 회수하였다.그 덕분에 YE 투자 회사의 회사 자금은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물론 수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은 이건 회사를 개혁하는 시기에 반드시 겪어야 할 진통이라고 생각했다.서류를 다 처리하고 김예훈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천천히 말했다. “임원진한테 전해요, 회사에서 사람을 파견해 성남시에 지사를 설립할 계획입니다.”“앞으로 회사 업무를 대대적으로 성남시로 옮길 생각입니다. 우리와 같이 가겠다는 사람은 지금 연봉의 30%를 더 드린다고 해요.”하은혜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 성남은 김씨 가문의 세력이 꽉 잡고 있는 곳입니다...”“겉으로는 우리가 김씨 가문의 회사이긴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서 자회사를 설립하는 건 김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까?”김예훈은 일어서서 하은혜의 어깨를 툭툭 쳤다.하은혜는 온몸이 뻣뻣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김예훈도 개의치 않고 창가로 걸어가 고층 건물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길은 우리가 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김씨 가문에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내가 계속 남해시에 틀어박혀 있으면 아마도 그들은 끊임없이 탐색하고 핍박하려 할 거예요...”“누군가에 당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손을 쓰는 것이...”“3년이에요. 자그마치 3년입니다...”“내가 3년 동안 이 기회만 기다렸습니다...”“내가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난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난 잃어버린 물건은 꼭 내 손으로 다시 찾아오는 사람입니다!”미소를 짓고 있는 김예훈은 엄청 멋있어 보였다. “만약 내가 지금 돌아가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겁니다!”
정지용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결국 화를 억누르며 사정했다. “아주 특별한 사과이니 대표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니 한번 물어봐요.”“특별해요? 얼마나 특별한데요?” 프런트 여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정지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기억났어요. 듣자 하니 며칠 전에 정씨 일가의 부대표가 감정회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하던데 설마 그 사람이 당신이에요?”“만약 우리 대표님께도 무릎을 꿇을 생각이라면 한번 연락해보고요.”정지용의 얼굴이 이내 어두워졌다.이런 젠장, 이게 다 김예훈 그놈 탓이다!남해시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다행히 이제 이곳을 떠나 성남으로 가게 되었으니 창피한 일은 성남에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정씨 일가가 성남의 이류 가문으로 자리 잡고 나면 그때 남해시로 돌아와서 이것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리 프런트 여직원이 자신을 비꼬아도 석고대죄하러 온 정지용은 억지로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맞아요! 그럴 생각이에요...”“어떻게 할 생각인데요?”“무릎 꿇고 사과할 생각이에요...”프런트 여직원은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대로 하은혜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은혜가 전화를 받고 나서 대표이사 사무실로 들어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 정씨 일가의 정지용이 왔다고 합니다. 대표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고 하는데요...”“정말 온 거야?” 김예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동철이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정씨 일가의 파산을 막기 위해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이곳에 보내다니.김예훈도 정동철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이건 정지용한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것이다.만약 정말 이 일을 해결한다면 정지용은 정씨 일가에서 큰 공을 세우는 것이며 앞으로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었다.김예훈은 정지용이 쉽게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김예훈이 웃으며
정진 별장.정씨 일가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다.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YE 투자 회사는 남해시에서 하늘과 같은 존재다. 그만한 실력이 있고 자격이 있다.정지용 너도 능력 있는 사람이잖아?결국은 그들의 뜻대로 로비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어!우리가 모를 것 같아?남해시 전체에 이미 소문이 다 났다.“그만해!” 정동철이 손을 흔들었다. “듣자 하니 YE 투자 회사의 대표가 너의 태도에 매우 만족했다고 하던데!”“YE 투자 회사의 뒤에는 김씨 가문이 있어. 우리 가문이 아무리 복씨 가문과 손을 잡는다고 해도 김씨 가문과는 비교할 수 없어.”“비록 널 모욕하기는 했지만 난 이번 일은 네가 공을 세웠다고 생각해. 최소한 쌍방의 충돌을 막아냈으니까!”“이제 사람을 보내 YE 투자 회사와 협상을 하면 일이 잘 풀리게 될지도 몰라.”“지용, 네가 한 번 더 다녀오거라.”정동철은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다. 정지용이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한다면 그의 공은 엄청 크게 될 것이다.그러나 정지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무슨 그런 농담을.그날 오후, 그는 이미 남해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근데 또 찾아가라니? 무슨 일을 또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정지용의 모습을 보고 정동철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정씨 일가의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변하며 정동철의 시선을 피했다.정지용도 가서 그런 꼴을 당하고 왔는데 다른 사람이 또 간다고? 운이 좋으면 모를까 하루 종일 무릎을 꿇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정동철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좋은 일이라고는 했지만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도 잘 알고 있다.누가 체면을 마다하고 이 고생을 하려고 하겠는가?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지용이 갑자기 일어서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오늘 제가 무릎 꿇고 사죄한 덕분에 YE 투자 회사에서 우리를 용서했을 거예요!”“하지만 제가 또 나서는 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생
요 며칠 남해시는 유난히 시끄러웠다.YE 투자 회사에 새로 부임한 대표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다 접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또한 그가 1조 원을 내놓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있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누구나 탐내는 비즈니스이기는 하지만 거절당하는 게 부지기수였다.근데 뜻밖에도 정씨 일가와 같은 이류 가문에서 투자를 성공적으로 받았고 YE 투자 회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문제는 정씨 일가에서 이 좋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 프로젝트를 매각할 생각을 하는 건지?결국, YE 투자 회사의 세력으로 볼 때 정씨 일가는 두말없이 계약에 따라 배상해야 한다.정씨 일가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대표 정지용을 보내 협상을 시도하였고 결국 오후 내내 로비에서 무릎을 꿇다가 돌아갔다.보아하니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머리가 나쁠 뿐만 아니라 얼굴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이튿날 이른 아침, YE 투자 회사의 건물 앞에 고급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많은 가문과 기업들이 이 웃음거리를 구경하러 온 것이다.YE 투자 회사에서 정씨 일가에 준 기한은 내일까지다. 오늘 정씨 일가에서는 반드시 협상하러 올 것이다. 다만 누가 올지는 모르는 일이다.그러나 반나절이 지나도 정씨 일가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왜냐하면 정민아가 집을 나서려 할 때 하은혜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하은혜는 오늘 밤 직접 정진 별장으로 오겠다고 했다.대표님께서 해결 방안을 제시했는데 만약 정씨 일가에서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망하기만 기다려야 할 것이다......그날 저녁, 정씨 일가의 사람들이 또 다시 모여 자리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최근 며칠 동안 하나같이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모두 이 일의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사람들이 모이자 정동철이 자리에 앉아 급하게 입을 열었다. “민아야, 어서 말해보거라. 오늘 어떻게 됐어? YE 투자 회사에는 갔
정동철이 자신의 공을 인정해주자 정지용은 엄청 기뻐했다, 그가 들뜬 표정으로 정동철한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할아버지, 정씨 일가의 장손으로서 우리 가문을 위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앞으로 성남에 가면 우리 정씨 일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큰 공을 세울 것이에요!”“그래! 할아버지가 역시 널 아낀 게 헛되지 않았구나!”정동철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때, 정진 별장의 대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이내 하은혜가 슬림한 양복 차림을 하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순식간에, 정씨 일가 사람들의 시선이 하은혜에게로 쏠렸다.하은혜 같은 큰 인물이 이곳을 다시 찾아오다니, YE 투자 회사 대표의 화가 이미 가라앉은 것 같아서 정말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하 비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른 앉으세요!” 정동철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은혜가 이곳으로 온 건 YE 투자 회사의 태도를 대표한다.YE 투자 회사에서 한발 물러서야 정씨 일가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하은혜가 신분을 내려놓고 정진 별장으로 온 건 설마 정씨 일가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은 아닌지?정동철은 YE 투자 회사에서 정씨 일가에 더 큰 프로젝트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고 김칫국부터 마셨다.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정씨 일가는 꽤 인기 있는 집안이었다.하은혜는 담담하게 웃으며 정동철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 회장님, 앉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오늘 제가 이곳으로 온 건 정씨 일가에 기회를 드리려는 것뿐이에요.”“와-”이 말을 꺼내자 자리에 있던 정씨 일가 사람들이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하은혜한테 집중했다.정동철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정씨 일가에 기회를 준다고,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 한다!도대체 어떤 기회란 말인가?설마 더 큰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닌 건지?설마 정씨 일가의 운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이리 손쉽게 기회가 생기는 것인가?정씨 일가 사람들의 반응을
뭐라고!?2천억 원?!하은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주위에 둘러싸여 듣고 있던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들이마시며 충격을 받았다.역시 YE 투자 회사의 재력이 어마어마하구나!정씨 일가는 이 2천억 원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다.결국은?YE 투자 회사는 아무렇지 않게 2천억 원을 내놓았다!정씨 일가의 모든 자산을 팔아도 기껏해야 2천억 원 남짓하다. 아니 심지어 2천억 원이 안 될지도 모른다!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하은혜를 쳐다보며 이내 눈빛이 뜨거워졌다.이 2천억 원이 있으면 정씨 일가는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도 쉽게 성남시에 입성할 수 있게 된다.그렇게 된다면 정씨 일가는 손해를 볼 일도 없고 남해시의 가업도 지킬 수 있게 된다.이때, 정동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씨 일가의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감격해서 울고 웃었다.사람들이 흥분한 것을 보고 김예훈이 하은혜한테 눈길을 줬다. 이내 하은혜가 한 말을 듣고 그들은 흥분을 싹 가라앉혔다.“이 2천억 원은 저희 쪽에서 정씨 일가의 발전을 돕는 셈입니다.”“정씨 일가에서 앞으로 어디에 투자하든 어떤 사업을 하든 저희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단, 조건이 있습니다.”하은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정동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 비서님, 조건을 말씀하세요. 우리 정씨 일가는 뭐든지 받아들이겠습니다.”“저희 YE 투자 회사에 정씨 일가 모든 산업의 51% 주식을 넘겨줬으면 합니다.” 하은혜가 또박또박 말했다.뭐!?이 말을 들은 정동철은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해졌다.51%의 주식, 그것도 모든 산업의 51%의 주식을 달라고?이건 정씨 일가의 의사 결정권을 YE 투자 회사에 넘기는 셈이다.다시 말하자면, 앞으로 정씨 일가는 온전히 정 씨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가문이 발전하고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정씨 일가는 YE 투자 회사에서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이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정동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은혜가 그의 말을 끊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 회장님, 그런 일은 물어보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지금 회장님께서는 눈앞의 일이나 생각하세요. 제가 바빠서요, 5분 더 드리죠.”“도대체 어떻게 할지 상의해보세요. 5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하은혜는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정씨 일가의 사람들한테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정동철의 안색이 무척 어둡다.지금, 정씨 일가는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6천억 원을 배상하든지 아니면 땅을 잃든지.아니면 정씨 일가의 회사 소유권을 잃든지.어떤 면으로 보나 이건 엄청 어려운 선택이었다.바로 이때, 정가을이 갑자기 차갑게 말했다. “정민아, 언니가 그 대표랑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우리 가문이 궁지에 몰리는 꼴을 그냥 두고만 볼 거예요?”“그래! 정민아, 넌 어떻게 이렇게 양심이 없어?”“정민아, 이게 네가 생각해낸 해결 방법이니?”“민아야, 방법을 좀 생각해보거라.” 정동철도 별다른 방법이 없자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정민아는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도 내가 있든 없든 똑같다고 하더니 지금 나보고 방법을 생각해보라고?정민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나서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전 대표를 만난 적이 없어요. 근데 어떻게 도와달라고 사정하겠어요?”정가을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정민아, 그 사람이 언니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언니 제 발로 그 사람을 찾아가요, 그럼 일이 해결될지도 모르죠.”“탁-”정가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예훈이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던졌다. 정가을에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곁에 떨어졌다.“정가을, 말 함부로 하지 마.” 김예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비록 자신이 YE 투자 회사의 새 대표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정민아와 자신의 사이가 불순한 관계인 것처럼 말하는 게 언짢았다.정가을이 벌컥 화를 내며 일어서서 김예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찌질한 인간, 감히
아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동태원은 90퍼센트의 힘을 사용하기까지 했다.그런데 아무리 힘을 실어봤자 오히려 자기 손바닥만 점점 찢어지듯이 아파져 왔다.“대단하네요.”동태원은 적당히 물러나서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았다.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머리가 뛰어난 것도 모자라 실력과 마음가짐도 대단하시네요. 이번에 그 쪽한테 당한 것이 하나도 억울하지 않네요.”이때 동태원의 손짓 하나에 집사 한명이 테이블과 의자를 두 사람 옆으로 가져왔다.김예훈한테 자리에 앉으라면서 직접 차를 한 잔 우려주었다. 이어 집사가 정교한 다과를 차례로 가져왔다.동하임은 아버지가 김예훈을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 몰랐는지 의아하기만 했다.복수극이 열릴 줄 알았는데 마치 갑자기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동태원은 보이차를 마시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끗 보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하임아, 내가 김 도련님을 죽여버리지 않고 식사 초대를 해서 이상해?”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이에 동태원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원래부터 김 도련님께 식사를 초대하고 싶었어. 이곳까지 모신 이유는 나에게 중시 받을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해 보려고 했던 것뿐이야. 그럴 자격이 없더라도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아서 어젯밤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식사를 초대했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그저 순수한 저녁 식사 한 끼에 불과한 거지.”동태원의 의미가 담긴 말에 동하림은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이제 막 보석으로 풀려난 김예훈이 자신의 아빠에게 이렇게 중시 받고 있을 줄 몰랐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김예훈은 동태원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도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이 생각 많은 늙은 여우한테 함부로 말을 걸었다가 낭패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김예훈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동태원이 계속해서 말했다.“하임아, 내가 김 도련님께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동하임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어젯
샤샤샥!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동하임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김예훈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싶은지 가소로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그런데 결국 실망할 줄 몰랐다.김예훈은 뒷짐 쥔채 제자리에 서서 나뭇가지들이 몸을 스쳐 지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기 실력을 뽐내고 있는 동태원을 쳐다보았다.‘대단한데?’김예훈이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동태원이 선글라스를 벗어 와이프한테 건넸다.그러고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젊은 나이에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대단한데요? 제가 어젯밤 당신한테 호되게 당한 것도 이유가 있었네요. 당신 같은 사람 손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동태원은 김예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아까는 김예훈을 테스트하기보다 겁을 주면 놀라서 오줌을 지릴 정도의 사람인지 보고싶었다.그런데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모습에 다시 보게 되었다.진주·밀양 젊은 층 중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과찬입니다. 그런데 왜 저 때문에 호되게 당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젯밤 제가 경찰에 신고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시민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때 경찰에 신고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잖아요.”동태원은 멈칫하더니 박장대소를 지었다.“역시 재밌는 사람이네요. 맞는 말이죠. 경찰에 신고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자 권력이죠.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고요. 진주 1인자로서 큰 권력을 쥐고 있는 한편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에요.”동태원의 시원시원한 말투에 김예훈도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때 동태원이 앞으로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면서 말했다.“자, 정식으로 인사하죠. 저는 진주 1인자인 동태원이라고 해요.”김예훈도 배시시 웃으면서 악수했다.“그러면 저도 제 자기소개를 하죠. 저는 용문당 회
허유주가 김예훈을 데리고 아침 먹으러 가려고 할때, 구룡성 경찰서에서 어떤 몸매가 좋은 여자가 걸어왔다.그 여자는 바로 동하임이었다.동하임은 허유주와 함께 웃고 떠드는 김예훈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쓰레기 같은 자식.”이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김예훈의 옆으로 다가갔다.동시에 그녀에게 시선이 향한 추하린과 허유주는 진주 1인자의 딸인 그녀가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이해되지 않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설마 번복해서 김 도련님을 다시 구속하려는 건 아니겠지?’다시 경찰서로 들어간다고 해도 아무 상관 없는 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쳐다보았다.이대로 잡힌다고 해도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동하임이 한참동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말했다.“김 도련님,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다 같은 편인데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여기서 하시죠.”동하임은 잠깐 침묵하더니 겨우 한마디 꺼냈다.“저희 아빠가 김 도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침 식사 함께하는 거 어떠세요?”동태원이 주동적으로 만나자고 할 줄 몰랐는지 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은 이를 거절하지 않고 추하린더러 허유주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하고는 동하임의 포르쉐 911차에 올라탔다....반 시간 뒤, 태산 뒤쪽에 있는 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드넓은 이 별장에서는 멀리 있는 남태평양까지 보였다.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면서 소금 짠 내가 풍기기도 했다.하와이풍의 반바지와 반소매 티를 입은 진주 1인자 동태원은 손에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있었다.동하임과 함께 별장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동태원이 잡은 물고기를 들어올렸다.그의 옆에 있던 여인은 낚싯바늘을 떼어내고 다시 물고기를 방생했다.이 모습을 보고있던 김예훈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이런 생활은 그가 꿈꾸던 노년 생활이었기 때문이다.그때되면 과연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정민아? 하은혜? 우현아? 아니면 모두 다?김예훈
10분 뒤, 구룡성 경찰서를 벗어난 김예훈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홍성파 부하들을 발견했다.김예훈이 경찰서를 힐끔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진주 1인자라는 사람이 재밌군요. 상대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라고 해도 절대 봐주지 않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추하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래서 안동 김씨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홍성파에서 얼마나 벼르고 있는지 몰라요. 진주 1인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비 거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진주 1인자라는 그분 성함이 뭐죠?”추하린이 답했다.“동태원이요.”“동태원 씨가 진주 1인자 자리에 앉은 걸 보면 능력이 대단할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 그 사람이 그 위치에 앉아있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안동 김씨 가문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요.”김예훈은 추하린의 어깨를 툭툭 치려다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가 생각나 다시 손을 거뒀다.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진주 1인자인 동태원 씨랑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줘요. 그분도 저를 만나고 싶어 할 거예요.”김예훈이 손을 툭툭 털면서 이곳을 떠나려고 할때, 주차장에 있던 토요타 알파드 차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예훈 오빠.”온밤 여기서 기다리면서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한 허유주는 바로 김예훈에게 안기려고 했다.“나왔어? 정말 다행이야.”어젯밤 그녀는 김예훈이 홍성파와 일본 야마구치파한테 짓밟힐까 봐 걱정이었다.진주에 깊은 뿌리를 박은 홍성파는 진주 기관 사람들과 친했으니 말이다.김예훈이 무사히 풀려난 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였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라이언 킹의 뺨까지 때렸는데 김예훈이 보석되고 진세은이 갖힐 줄 몰랐다.김예훈은 자기를 와락 끌어안은 허유주를 떼어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난 다른 사람을 도와준 착한 시민일 뿐이야. 나까지 구속하면 진주 법도가 신뢰를 잃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네가 날 도와주고 있는데 누가 감히 날 건드리
추하린이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경찰에 신고하는 거에 그치지 않고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 이상 공평하게 처리해야만 했다.뚜벅뚜벅.두 사람이 대화를 마쳤을 때, 제복을 입은 한 경찰이 걸어들어왔다.짧은 머리에 혼혈인으로 보이는 그녀는 높은 콧대에 움푹 파인 두 눈을 하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있는 명찰에는 동하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그녀는 김예훈을 한참동안 쳐다보고는 추하린을 힐끔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추하린 씨, 이 사람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그런데 보름 동안은 진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언제든 저희 연락을 기다리셔야 해요.”추하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동하임 씨, 걱정하지 마세요. 김 도련님은 피해자예요. 누구를 죄인으로 몰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잘 협조할 거예요. 저희한테는 인증이면 인증, 물증이면 물증, 없는 것이 없어요.”이 말에 동하임은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에 대해 불만이 많은지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자료 하나를 던져주었다.“여기에 사인하고 당장 꺼져요.”펜을 든 김예훈은 급히 사인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림을 쳐다보았다.“저희 처음 본 사이인 것 같은데 제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을까요?”동하임은 콧방귀만 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추하린이 말했다.“김 도련님께서는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런데 진주 1인자인 동하임 씨 아버님을 건드린 건 맞죠.”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김예훈은 그제야 동하임이 왜 자신에 대해 불만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어제저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진주 1인자를 궁지로 몰고 갔으니 말이다.표정이 차갑기만 만 동하임은 사실 감정을 잘 숨기고 있었다.김예훈이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동하임 씨, 제가 보석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동하임이 김예훈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김현민 씨 일행이 모든 일을 도모한 사실은 증거 부족으로 전부 석방되었어요. 야마구치파는 죄가 극악
10분 뒤, 전신 무장한 경찰들이 닥쳐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체포했다.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열몇 명의 기자들도 피비린내를 맡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오늘, 이 거대한 사건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홍성파와 일본 야마구치파가 연루된 사건이었다.어느 한쪽만 있었다고 해도 뉴스 메인을 차지했을 텐데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진주 경찰은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 공평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아무리 진주·밀양에서 신분 높은 김현민이라고 해도 도망칠 수 없이 똑같이 조사받아야 했다.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진주 경찰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했다.그렇게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구룡성 경찰서에 잡혀가고 말았다.경찰은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을 포함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를 진행했다.김예훈도 구룡성 경찰서에 잡혀가긴 했지만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번에 일부러 김현민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한 것이다.안동 김씨 가문이 진주·밀양에서 어느정도로 대단한지, 그리고 이곳에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두번째 날 아침, 추하린이 그럴싸한 브런치를 들고 취조실로 들어왔다.추하린은 김예훈에게 브런치를 건네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도련님, 어젯밤 그 전화 한 통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알아요?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께서 화가 난 나머지 진주 1인자인 동태원에게 전화해서 왜 김현민을 구속했냐고 따졌대요.”김예훈이 브런치를 즐기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겁이 났대요?”“얼마나 많은 기자가 지켜보고 있는데 겁이 날 새나 있었겠어요? 계속해서 진주 1인자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추하린이 피식 웃었다.“그저 법대로 진행하는 거라고 답장했대요. 그리고 온밤 구룡성 경찰서를 포위한 홍성파 사람들은 자기 사람을 풀어달라고 하면서 김 도련님을 처리하라고 했대요. 그런데 증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요. 야마구치파가 허유주 씨한테 약을 탄 것만 해도 충
“이런 제기랄!”“지금 김현민 도련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죽고 싶어?”김현민 뒤에 서 있던 남녀들이 김예훈을 차갑게 째려보고 있었다.비록 김예훈이 어마어마한 실력으로 라이언 킹을 뺨 한 대로 죽여버리긴 했지만,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상류 인사들한테는 그저 싸움만 잘하는 사람으로 보였다.김예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들의 힘, 배경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지금은 예전처럼 혼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었다.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저 대단한 것뿐이었다.김현민은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저까지 건드리게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수장님도 참. 제가 언제 수장님을 건드리겠다고 했나요?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정의로운 분을 제가 왜 건드리겠어요.”9대 국방부 총사령관을 언급할 때 김예훈의 표정은 흥미진진하기만 했다.김현민이 이 타이틀을 이용해서 과연 거들먹거릴지 보고 싶었다.김현민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그저 소문일 뿐이에요.”“그래요?”김예훈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김현민은 9대 국방부의 총사령관인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이 기세를 빌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굳히고 싶은 모양이었다.이대로라면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새로운 수장이 될지도 몰랐다.아니라면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이순간 김예훈은 김현민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김현민은 한참동안 김예훈을 쳐다보다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김예훈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앞길을 막았다.“김예훈 도련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나요?”김현민은 김예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이런 순간에 김예훈이 자신한테 무슨 짓을 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아무리 실력이 대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모든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는지 정신마저 해이해지는 느낌이었다.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누구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라이언 킹이 결국 뺨 한 대로 김예훈의 손에 죽을 줄 몰랐다.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진주·밀양을 종횡무진하는 홍성파의 고수가 이렇게 치욕스럽게 죽어버렸으니 말이다.김예훈은 뺨 한 대로 라이언 킹을 죽여버린 것도 모자라 홍성파의 체면마저 짓밟아버렸다.홍성파 부하들은 복수심에 심장이 들끓는 대신 그저 총을 쥐고 있는 손이 무지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어마어마한 한기가 불어와 온몸이 굳어져 눈 하나 깜빡하지도 못했다.“죽여! 죽여버리라고! 라이언 킹 님을 위해 복수해야지!”잠시 후, 그제야 반응한 진세은이 이성을 잃었는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이순간 자기가 인생을 망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사카모토 류이치도 죽고, 라이언 킹도 죽고, 타케이도 살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일련의 사건 때문에 진세은은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김예훈이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만 했다.하지만 아쉽게도 홍성파 부하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총구를 김예훈에게 조준하지도 못했다.아까 그 뺨 한 대에 넋을 잃고 말았다.진주·밀양 용전 사람들 역시 김예훈이 이 정도로 대단한 줄 몰랐는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고있었다.이순간 그제야 김예훈이 왜 진주·밀양 용전을 접수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김서하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뺨 한 대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부들부들 떨고 있는 홍성파 부하들을 보고 있자니 진세은은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진세은은 총을 빼앗아 김예훈이 있는 곳을 향해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피융! 피융! 피융!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알은 김예훈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모조리 그의 발밑에 떨어지고 말았다.김예훈은 서서히 다가가 진세은의 턱을 잡으면서 피식 웃었다.“봐봐. 총을 가
김예훈 뒤에 서 있던 진주·밀양 용전 사람들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총을 꺼내 홍성파 부하들을 겨냥했다.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열세에 처해있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이들 역시 속으로는 김예훈이 너무 거들먹거린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홍성파가 용전처럼 도리를 따지고, 룰을 지키는 조직인 줄 아나 봐. 우리 몇 명으로 어떻게 홍성파를 제압하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안 돼.’투닥투닥.공격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 라이언 킹은 갑자기 표정이 확 변하더니 몸에 지니고 있던 비수 하나를 꺼냈다.라이언 킹은 갑자기 추문성 발밑까지 굴러가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비수를 내밀었다.아무 생각 없는 행동인 것 같았지만 추문성의 요충을 노리고 있었다.파란 불빛을 띠고 있는 비수에 찔리는 순간 추문성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비수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피 냄새가 맡아지기도 했다.일반인이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피하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때,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이 동반자살을 택하면서 당도를 내리 찔렀다.만약 라이언 킹이 계속 추문성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면 똑같이 추문성의 당도에 의해 두 동강 날 것이 뻔했다.등골이 오싹해진 라이언 킹이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았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더니. 김예훈 저놈의 말을 듣고 목숨까지 내놓기로 한거야.’추문성이 동반자살을 택한다고 해도 라이언 킹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홍성파 고수로서 매일 아무 걱정 없이 크루즈나 들락거리는 사람이 죽고 싶을 리가 없었다.다음 순간, 라이언 킹은 어쩔 수 없이 노리던 부위를 피해 비수로 추문성의 당도를 막았다.쨍!두 사람은 몸이 굳어져 버리더니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갔다.“풉!”바닥에 떨어진 순간,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해낸 추문성과는 달리 라이언 킹은 피를 꾹 삼키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라이언 킹은 추문성 같은 젊은이를 상대로 양쪽 모두 크게 다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