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내 짐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부회장 자리를 정지용에게 주셨어, 그리고 일이 있으면 정지용과 상의해서 진행하래." 정민아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그랬구나, 네가 정씨 일가에서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까지 뻔뻔한 짓을 할 줄은 몰랐네." 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근데 분명 지난번에 약속했단 말이야, 내가 이번 일만 해결한다면 정씨 일가의 쇼핑센터 프로젝트와 재무 관리 권한을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정민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그거야 뻔한 일이지, 정씨 일가에서의 네 권위가 높아져 정지용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걸 원하지 않고 있어, 어르신한테는 정지용이야말로 정씨 일가의 후계자이니까!" 김예훈이 말했다."왜? 내가 손을 떼는 건 두렵지 않은 거야?" 정민아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YE 투자 회사 쪽에서 또다시 정씨 일가에 기회를 줄 것 같아? 내가 가문의 일에 상관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YE 투자 회사에서는 정씨 일가에 기회를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정씨 일가를 떠날 수 있어? 가문을 버릴 수 있냐고?" 김예훈이 물었다.정민아가 흠칫했다, 그녀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문이다, 그녀는 가문에 보탬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었다, 어렵게 오늘 이 자리까지 왔는데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그것 봐, 이게 어르신이 널 잡고 흔들 수 있는 이유야, 네가 정씨 일가를 떠나지 않는다는 걸, 정씨 일가에 일이 있으면 네가 어떻게든 해결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김예훈이 한숨을 쉬었다, 가끔은 정민아가 단순한 건지 마음이 약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김예훈이 가장 좋아하는 점이었다.정민아가 어떤 결정을 하든 김예훈은 간섭할 생각이 없다, 게다가 정씨 일가의 회사는 확실히 괜찮은 회사이다, 바깥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민아가 정씨 일가의 회사에서 천천히 배우고 소
그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다, 단지 결정적인 순간에 권고할 뿐, 사실 정동철이 결정한 일에 대해 반박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리고 정동철은 정민아가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그녀도 정씨 일가의 빽이 있어야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니까, 일단 정씨 일가가 망하게 된다면 그녀 또한 고생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정동철이 고개를 저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사실, 내가 제일 걱정되는 건, 정민아의 공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야...""결국은 여자애이니 온전히 우리 집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만약 점점 권위가 높아져 회장이 된다면 우리 정씨 일가는 김씨 일가가 될지도 몰라!""맞는 말씀입니다, 정씨 일가는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비서도 이번에는 찬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정씨 일가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간다면 회장 비서인 자신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다.......남해시 번화가, 한 고급스러운 카페 안.김예훈과 정민아가 같이 앉아있다, 맞은편에는 조이영과 안지희가 앉아있다.카페 안,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 세 명이 함께 앉아 있자 많은 사내들의 시선을 끓었다.옆에 앉아 궁상맞은 모습으로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 김예훈,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많은 부러운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엄청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조이영이 앞에서 다리를 떨고 있어도 전혀 관심이 없다."흥--"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김예훈을 보며 민망한 지 콧방귀를 끼었다.지난번 경매회 일이 있고 난 이후, 그녀는 김예훈을 엄청 원망했다, 손건우가 그 일로 인해 아직도 그녀를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오늘 그녀가 이렇게 섹시한 옷차림을 하고 온 건, 김예훈을 망신 주려고 한 것인데, 이 남자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아참, 민아야, 너 설마 정말 이 자식이랑 동창회에 같이 갈 거야?" 안지희가 옆에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내 남편이잖아." 정민아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근데 예전에는 데리고 안 갔잖아?" 안지희가 호기심이 가득해 물었다."신경 쓰지 마, 능력 있으면 너도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던가?'안지희가 "쳇"하고 콧방귀를 끼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아야,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김예훈 저 찌질한 놈을 데리고 가면 너만 창피할 거야, 어떤 애들은 그걸 보면 기뻐하겠지.""누구?" 정민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주영 말이야! 잊었어? 대학교 때 주영이 좋아했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널 좋아했잖아, 고백만 하면 차였으니 널 죽이고 싶을 심정이었을 거야.""듣기로는 최근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잘 나간대, 성형도 해서 엄청 예뻐졌다고 들었어, 이번에 동창회 때문에 귀국했다고 하던데 너 때문에 참석하는 거겠지! 민아야,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아." 안지희가 걱정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주영 말이야, 운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듣기로는 온라인에서 가짜 사진으로 재벌 2세와 연애했다고 하던데, 그 남자가 매일 주영한테 돈을 준다고 들었어, 반년은 훌쩍 넘게 줬다고 들었어.""그러다가,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주영이 과감하게 그 돈으로 성형했대, 남편 되는 사람이 걔한테 흠뻑 빠지게 되었나 봐, 지금 잘살고 있대, 단체방에서 맨날 명품 가방 자랑질, 별장, 스포츠카 자랑질이야."조이영도 한숨을 쉬었다, 주영을 좋아하지도 않고 성형한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주영은 지금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삶을 말이다."결혼했어?" 정민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이런데 전혀 관심 없다."결혼했어, 우리 셋도 초대했는데 우리가 참석하지 않았어, 잊었어?" 안지희가 말했다."하아..." 안지희가 또 한숨을 쉬더니 다시 한번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말했다, "찌질한 김예훈, 네가 만약 남자라면 민아를 따라 동창회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민아가 너때문에 매번 동창들한테 조롱당하고 있어, 하아...
"이건 너희 오빠가 준 거야." 김예훈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명수 오빠? 그럴 리가? 이 차는 최소한 3억 5천은 넘는 차야, 근데 너한테 줬다고?" 안지희가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김예훈 이 자식은 너무 잘난 척한다, 어디서 빌려온 차를 가지고 선물을 받았다고 하니 창피하지도 않은지?동창회에 갈 때 고급 차 한 대를 빌려 잘난 척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인간, 거짓말도 좀 그럴싸하게 해야지? 이런 초라한 옷차림으로 포르쉐를 몰고 가면 자기 차라는 걸 어느 누가 믿겠는가?김예훈은 운전하면서 설명하기 귀찮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 근데 정말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포르쉐는 교외의 온천 리조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이 온천 리조트는 남해시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다, 피로를 풀고 피부를 가꾸고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평소에 이곳에 와서 방을 예약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이곳에서 온천을 즐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식사를 하는 것도 예약해야 해서 일반인들은 거의 예약이 안 되는 상황이다."안지희, 이 온전 리조트의 VIP 레스토랑은 반년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고 들었어, 도대체 누가 이렇게 대단해서 동창회를 이곳에서 하기로 한 거야?" 정민아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안지희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주영의 남편, 듣기로는 주영의 남편 집안이 이곳에 지분이 있다고 하던데, 대표가 남편의 외삼촌이라고 했어."정민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영의 남편이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니, 이 온천 리조트의 지분도 갖고 있으니 잘사는 집안인 게 분명하다."온천 리조트의 대표가 백욱 아니야? 남해시 백씨 가문의 사람, 리조트는 백씨 가문의 사업인 거지."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머, 백씨 가문의 사업이라는 것도 알아? 그럼 백욱이 어떤 사람인 줄은 알고 있어? 백씨 가문의 후계자야, 듣기로는 능력도 있고 사람 됨됨이도 괜찮대, 중요한 건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미혼이라는 거야, 진정한 골드 미스터지!" 조이영이 기대의 눈빛으
“우와! 포르쉐다!”어떤 동창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페라리만큼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더 높고 많은 사람들이 포르쉐와 페라리를 같은 클래스로 인식한다. 그러자 주영이 대뜸 화를 냈다. “중고차일 뿐이야. 2억 원 정도일 걸. 우리 집 10억 원짜리 페라리와 비기지 못해!” “뭐?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주영아, 남편이 큰 부자구나?”친구들이 더 부러워했다. 정말 대비가 있어야 차이가 난다. 포르쉐는 이미 좋은 차이지만 페라리 앞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주영은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남편도 당신들이 말한 것만큼 훌륭하지 않아. 그가 나를 쫓아다녔을 때, 난 반년 넘게 그를 보지 않았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어. 만약 그가 마지막으로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말을 마치고 주영은 일부러 왼손을 치켜들자 커다란 반지가 약지에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와! 이 다이아몬드 반지 1캐럿이겠지? 엄청 비싸지 않아?” 한 여동창이 부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2천만 원 정도일걸, 별거 아니야. 올해 결혼기념일에 더 큰 걸로 바꿔달라고 할 거야.” 주영이 웃으며 말했다. “여보,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 원래는 결혼 기념일에 말하려고 했지만 오늘 친구들이 다 모여 있는 자리에 솔직히 말할게, 나는 이미 너에게 티파니의 새로운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주문했어!” 백호는 의기양양했다. “와, 티파니, 명품 브랜드잖아?”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컷, 휘도, 광택은 다른 브랜드보다 엄청 좋아!”“그리고 많은 톱스타들이 결혼하는데 티파니 반지를 쓰잖아!”동창들은 백호의 말을 들은 후 하나같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주영은 감격스러운 것처럼 백호의 목을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 “여보, 정말 고마워, 사랑해!”“바보야, 내가 너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누가 너한테 잘해주겠니?”백호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현장에 있던 일부
“여보, 서로 동창인데 그렇게 따질 필요가 있어? 너무 쩨쩨해 보이잖아.” 그때 뒤에 서 있던 백호가 다가와 주영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동시에 그의 눈빛은 정민아의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살짝 놀랐다. 단순히 얼굴과 몸매만 놓고 봐도 주영은 정민아보다 못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영의 속된 냄새가 너무 심해서 전혀 기품이 없었다. 하지만 정민아는 외모와 기질 모두 최고다. 유일한 아쉬운 점은 그녀가 뜻밖에도 병신새끼와 결혼하여 방문 데릴사위를 찾았다는 것이다. 정말 아깝다!이때 김예훈은 차를 세워놓고 걸어왔다. 정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야. 그의 이름은 다들 알고 있겠지?”김예훈과 정민아의 혼사는 남해시에서 자자했으니, 정민아의 동창들은 당연히 그가 전설의 데릴사위 김예훈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 김예훈을 향한 눈빛은 경멸, 부러움과 질투였다. 설령 병신새끼라고 불린다고 해도 이런 미인과 결혼한다면 진짜 행운한 거야. 현장에 있던 모든 남동창들은 사실 대부분이 정민아를 짝사랑하거나 구애한 적이 있었다. “괜찮게 생겼는데 왜 병신새끼지?”“누가 알겠어? 이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태생적으로 기생오라비일 지도 모른다!?”“이 반반한 얼굴이 아깝다!”“그래도 내가 부자라면 이런 잘 생긴 남자를 정인으로 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사람들의 의론에 김예훈은 무시했다. 그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당신이 전설의 데릴사위이군요? 정말 데릴사위가 될 만한 능력이 있는 것 같군요.” 백호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 그는 일찌감치 주영으로부터 정민아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자원이다. 김예훈은 백호를 올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삼촌이 너에게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었어?”“하하하!” 백호는 폭소를 터뜨렸다. “네가 내 삼촌을 알고 있을 줄이야. 그래, 너 눈치가 좀 있구나. 하지만 우리 삼촌은 우리에게 너무 겸손하지 말라고
정민아도 약간 어리둥절했다. 전에는 백호를 똑바로 보지 않았는데 지금 계속 쳐다보고 싶었다. 원래 정민아는 재능과 용모를 겸비하는 남편을 원했기 때문이다. 조이영은 김예훈을 힐끗 쳐다보며 탄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아한테 김예훈을 데려오지 말라고 했는데, 체면이 아니지?이에 주영은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말했다. “미안. 우리 남편이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습했고 꽤 잘 쳐. 방금 피아노를 보고 손이 근질근질해서 친 거야. 절대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주영이 자랑하려고 않는다고 하지만 완전히 티나고 있다. 분명히 그녀는 동창들이 그녀를 칭찬하는 것을 매우 즐기고 있다. “주영, 너 정말 운이 좋아. 이런 훌륭한 남편은 찾기 드물어!”“맞아, 피아노는 유럽에서 귀족의 전유물이야, 네 남편은 그야말로 우리 남해시의 귀족이야!”“돈도 많고 멋있고 또 재주 있는 그런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야. “...” 여동창은 다 백호의 매력에 반했다. 특히 피아노 연주가 끝난 후 답례허는 것을 보고 더 반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호를 홀린 표정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다 주영을 부러워했다. “자기야, 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 말을 안 들어. 친구들이 우리 잘난척한다고 생각하겠어!”주영은 웃음을 머금고 백호에게 다가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득의양양하는 말투는 감출 수 없었다.“어쩔 수 없어. 피아노를 볼 때마다 손이 근질근질해지니까. 나의 예술의 혼이 불타고 있어.” 백호는 부득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영은 내쉬었다가 눈을 돌리고 정민아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민아, 네가 미래의 남편이 틀림없이 피아니스트일 거라고 대학 때 말했던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아?"이 말을 하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정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를 보고 더욱 흥분한 주영은 손뼉을 치고 말했다. “다들 기억하지? 우리 학교 여신이 그때 이런 말을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걔에게 고백했을 때 모두 그렇
“주영아, 너 정말 뻔뻔하구나. 자랑하고 싶으면 할 것이지 왜 하필 또 민아를 못살게 굴어?” 안지희는 분통을 터뜨렸다. “여긴 동창회지 네가 연기할 곳이 아니야!” “아이구! 왜 그렇게 화를 내? 설마 내가 이런 훌륭한 남편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나한테 질투하는 거야?”주영이 빙그레 웃으며 일부러 백호 옆에 기댔다. “너…” 안지희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민아는 자신의 절친이 자기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나섰다. “주영아, 다들 동창끼리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어?” 주영은 정민아를 보고 비아냥거렸다. “정민아, 내가 싫어서 개를 내세워 날 물게 한 거 아니야? 그렇다면, 네 남편보고 연주해라고 해. 그가 동요 한 곡만 연주할 수 있다면 내가 했던 말을 취소하고 네 개에게 사과하겠어”고 말했다. “근데, 네 남편이 피아노 칠 줄 알면 이상하지…”“하하하…”사람들이 낄낄 웃는다. 그 말이 맞다. 데릴사위가 어떻게 피아노를 칠 줄 알겠는가?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잘 연주할 수 없다. “주영아, 너 너무 해!” 정민아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영이 자기 절친을 개라고 욕보이다니. “왜? 기분 나빠? 기분 나쁘면 네 남편보고 연주하라고 해! 미래의 남편이 꼭 피아니스트라고? 꿈도 꾸지마!” 주영은 비아냥거렸다. “너…” 정민아는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고, 눈빛은 어두웠다. 남편이 어떻게 피아노를 칠 수 알겠는가? 오늘 틀림없이 망신당할 것 같다. 이때 침묵을 지키던 김예훈은 갑자기 웃으며 정민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디 녹음을 틀어놓고 피아니스트인 척 해?” 원래 백호가 자랑해도 그와 아무 관계도 없지만 지금 이 두 부부가 연합해 정민아를 괴롭히다니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데릴사위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입을 열어! 우리 남편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훈련해 증서까지 탔어! 헛소리하지 말어. 그렇지 않으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